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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것은 농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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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페라 관람을 좋아한다. 국내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보기를 즐겨하고 해외에 나갈 일이 생기면 해당 도시에서 하는 오페라 공연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기도 한다. 미친 듯이 쫓아다니지는 않지만 꽤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이라고 여긴다. 오페라 CD와 영상물 등으로 한쪽 벽의 반 정도를 채울 정도의 감상 정성도 기울인 편이다. 그런 내게 가장 좋아하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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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페라 관람을 좋아한다. 국내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보기를 즐겨하고 해외에 나갈 일이 생기면 해당 도시에서 하는 오페라 공연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기도 한다. 미친 듯이 쫓아다니지는 않지만 꽤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이라고 여긴다. 오페라 CD와 영상물 등으로 한쪽 벽의 반 정도를 채울 정도의 감상 정성도 기울인 편이다. 그런 내게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작곡가를 선택하라면 아마도 베르디를 고르게 되지 않을까 한다. 모차르트가 삐치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베르디에게 기우는 이유 중 하나는 집중해서 듣는 오페라 작품의 수와 곡조를 따라 흥얼거릴 줄 아는 부분이 베르디 작곡 분에 더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음악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히는 것이라는 표현처럼 베르디에게 빠졌다.

 

이 책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이 되던 2013-그러니까 베르디는 1813년생이다-에 나온 베르디 전기이다.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프랑스에서 프랑스 정치사를 전공한 사학자가 썼다. 전기 작가도 아니고 사학자가 베르디에 관해 썼다니 뭔가 잘 안 맞는 듯하지만 오히려 이런 배경이 이 책을 더욱 맛깔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물론 글쓴이는 베르디를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국에는 베르디를 알려주는 책이 거의 없는데 여러 모로 풍부하게 그를 알려주는 책을 만나게 되어 가뭄에 비를 만난 느낌이었다. 책을 붙들고는 거의 한달음에 읽었을 만큼 읽는 재미도 크다.

  베르디의 삶을 얘기할 때 19세기 이탈리아의 독립/통일 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를 뺄 수가 없다. 베르디가 직접 무기를 들고 리소르지멘토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신은 리소르지멘토와 분리될 수 없었고 그의 음악을 통해 이를 지원했다. 그의 음악은 해당 시기 동안 오스트리아로부터 이탈리아의 독립을 갈망하는 인민들의 용기를 고취하는 역할을 했으며 공국 등 여러 나라로 나뉜 채 각자도생하던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부추기는 자극제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음악 외의 활동을 통해서도 리소르지멘토를 적극 지원했다. 글쓴이의 역사 지식에 이러한 베르디의 삶의 행로와 음악 활동을 잘 버무려서 시대극을 보는 것처럼 글이 전개된다. 단순히 베르디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글쓰기에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둘러싼 주변의 역학 관계에 따른 리소르지멘토의 변화 상황과 베르디의 작품 활동을 연계하여 보여주는 내용들은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보인다. 사학자가 쓴 베르디의 효용이 올라가는 지점이다.

  책은 길지만 내용은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성공을 갈망하던 청년 베르디가 성공과 실패를 겪다가 나부코를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거의 일직선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베르디가 작곡한 모든 오페라가 등장하지 않으며 그의 삶의 과정도 모두 따져 기록하지 않는다. 주요한-음악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오페라 작품 위주로 작곡 배경, 베르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 해당 작품에 대한 베르디의 작곡 관점 등을 엮어서 작품의 의미를 들려준다.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해 베르디와 주변 인물들이 주고 받은 편지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베르디의 시각을 직접 볼 수 있는 장치로서 의미가 있었다. 거론되는 작품들은 해당 글의 말미에 어떤 내용인지 설명하는 난이 마련되어서 이해를 돕는다. 삶의 영역에서는 베르디의 성품과 정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일화들이 충분히 등장해서 인간 베르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가령 아버지와 결별하는 장면에서는 시시콜콜하게 어떤 트러블이 있었는지 밝히기 보다는 큰 틀에서 상황을 보여주고 해당 상황에서 드러나는 베르디의 성격을 강조한다. (글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장치이다.) 첫 아내와 두 자식의 죽음을 다루는 내용은 너무 간략해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베르디의 말년에 은퇴하였으나 생활이 곤란한 음악가들을 위해 지은 카사 베르디 얘기에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베르디는 정치 측면에서 보면 보수주의자였지만 자신이 보유한 재능과 재산을 평생 의미 있게 쓸 줄 알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아이다를 작곡한 이후 베르디는 새로운 오페라를 한동안 내지 않았다. 1871년 아이다의 첫 공연 이후 다음 작품인 오텔로의 공연이 1887년에 이루어졌으니 16년 간 새 작품 활동이 없었던 셈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베르디 스스로가 선택한 긴 공백 기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기간 중에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을 고치는 작업 등을 진행하면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복귀를 조금 더 서둘렀다면 리어 왕의 탄생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팔스타프1893년에 나왔다. 널리 회자되는 대로 팔스타프는 세상에 보내는 베르디의 인생 회고록 같은 작품이다. 크게 인기는 없는 편-그의 인기 작품들에 비해서-인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손이 자주 가는 오페라가 되었다. 팔스타프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농담일 뿐!” 그래 그렇게 농담으로 생을 이해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르디를 보여주는 책을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다. 책은 여러 모로 풍부하고 재미있었다. 베르디에게 관심을 두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만나봐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

  작곡 기법의 변천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지 않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들게 한다. 전혀 다루고 있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음악 기술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줄은 안다. 이 책의 잘못이 아니라 베르디와 관련한 책을 많이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하는 얘기다. 언젠가 이런 설명을 볼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안타까움은 잡설이다.

 

 

P.S.

이 책에서 오페라 공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 한 번 나온다. 며칠 전에 쓴 칼라스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열악한 음질이지만 이미 걸어둔 링크를 따라가셔서 꼭 들어보시기 바란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옮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올레타는 의문의 여지없이 마리아 칼라스다. 칼라스교 신자들에게 B.C.Before Callas를 의미한다. 그녀의 1955년 비올레타는 전설이 되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하고 루키노 비스콘티가 연출한 1955년 라 스칼라 극장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칼라스가 남긴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라 스칼라 극장 관객은 다른 비올레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964년 카라얀 지휘로 비올레타를 노래한 미렐라 프레니가 관중의 야유로 인해 중도 하차해야 했던 에피소드도 전설의 일부가 되었다. 프레니는 다시는 비올레타를 부르지 못하고, 라 스칼라 극장은 그 후 사반세기 동안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리지 못한다. (p.148)

a******9 2019.04.30. 신고 공감 4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