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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33권은 "조선후기의 경제"를 다루고 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의 경제상황을 다룬다. 1부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에서는 농업,수공업,어업,광업에서의 경제력의 발전을 2부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서는 상인층의 형성과 경제발달로 정착된 화폐경제의 운용모습을 다루고 있다. 같은 시기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들썩들썩하고 있었다. 유럽, 특히 영국의 산업혁명은 결과론적으로 위대한 혁명이었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많은 농민,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깔려있는 혁명이었다. 결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정 피와 땀이 맺혀 이루어낸 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의 초기에는 저임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층의 분화가 이루어져야 했다. 땅을 잃은 농민들이 있어 공장에서 일할 저임의 노동력이 공급될 수 있었다. 말이 쉬워 저임이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만큼의 수입이었고 그나마 재해와 질병에 취약한 환경덕분에 생존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후기에 들어서면서 농민층의 분화로 자본주의방식의 노동자가 생성되어 근대적 생산관계가 형성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책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이야기는 세가지다. 1.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의 생산력 증대 백성들은 끊임없이 인구증가의 압박과 반복되는 자연재해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생산성이 서서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증가하였다.
2. 사회 분화 하지만 이앙법등 의 개발로 생산성이 좋아지면서 노동력이 절감되어 새로운 경제체제가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좋든 싫든 우리가 풍요롭게 누리고 있는 이 자본주의의 기초에는 토지를 잃고 도시빈민이 되어 형성된 노동자라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조선도 이앙법 등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반복되는 자연재해속에서 저임금의 노동력이 풍부해졌다. 이제 "이익" 지상주의의 근대적 생산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생산력 등대와 사회분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익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3. 성장없는 발전 증대된 생산력과 임금노동자의 형성이라는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던 조선은 엉떵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시감인지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듯한 모습을 이때부터 보여주기 시작한다. 1) 농민은 밑바닥까지 무너지고 화폐유통의 발달은 농민층과 화폐경제와의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어 농민은 화폐를 얻기 위해 상품생산과 교환관계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즉, 농민은 농업생산 재료나 생활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또 조세 납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전 마련을 위한 교환 시장에 편입되었다.~~농산물을 싸게 팔고 필요한 물건은 비싸게 사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많은 경우 자신의 필요생산물까지 값싸게 팔아야 하는 [궁박판매]에 의해 파산하고 몰락했다. 2) 자본이 성숙해진 것도 아니고 "사상"들은 생산지로부터 모든 유통체계를 장악하였다. 이러한 독점은 조직력과 자본력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독점과 매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들은은 궁방이나 아문, 또는 권세가문과 사업이윤을 분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인들은 권력기관의 개입으로 자본축적에 큰 제약을 받게 되었다. 3) 그렇다고 국가재정이 풍족해진것도 아니고 화폐수탈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중앙 재정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국가 권력이 화폐수탈의 독점권을 상실하는 데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19세기 이후 정부의 지출경비는 능어난 반면 수입은 줄어 재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1 아무리 좋게 보아도 무너지지 않은 것이 신기한 조선의 후기모습이다. 왜 수 많은 민란은 실패했을까? 정치와 경제는 실패에도 정권의 보위는 성공한 조선후기의 모습이다. 민란이나 공부해봐야 겠다. *2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인터넷등의 IT기술로 대치하면 조선 후기의 모습이나 21세기 초반의 모습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거대 상인들의 힘이 강력해지고 과거보다 대외경쟁력이 좋아졌다 하지만 다른 모습은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