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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질베르 리스트는 튀니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해 현재 제네바발전학대학원(iheid) 명예교수이다. 내가 지원한 학교의 교수가 쓴 책이라기에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대가였다. 어떻게 이런식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해 나갈 수 있는지 감탄했다. 개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성장과 발전에 대한 서구의 역사관과 주요 정책들, 발전 담론들과 이에 대한 비판, 영미권 중심이 아닌 유럽 그중에도 프랑스학계의 발전에 대한 시각도 담겨있어 신선했다. 근대적 기술은 상품과 시장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지식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이와 유사하게, 축적의 결과로 국가의 부는 증가하지만 불평등도 증가하고, 산업화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만 창조적으로 일하며 사회적 인정을 받기는 더 어려워진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소비자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차를 선택할 '자유'를 누리는 반면 매연 때문에 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이상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보의 획득' 역시 많은 손실을 요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156쪽) 또한 다윈의 생물진화론 이전에 이미 사회진화론의 개념이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두 개념을 주의해서 구분할 것을 강조한다. 사회진화론은 예정된 결론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검증불가능한 목적론적 가설'에 기초한 역사철학이지만, 다윈의 생물진화론은 관찰기록으로 입증되는 설명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윈은 나중에 생긴 종이 먼저 있던 종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 가정하지도 않았다. 두 이론은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데도 다윈주의 덕에 사회진화론이 어부지리로 '과학적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모두가 동일한 발전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는 진화론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도, 점근적 성장지표에 매달리는 것도 경계한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기준과 역사적으로 빈곤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빈곤은 사회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누가 정의하느냐에 따라 정의가 달라진다. 제3세계에 방문한 서구인이나 전문가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부자와 빈자를 나누고, "이들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 잘라 말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찍힌 낙인에 대해 안다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또한 집단 자체가 검소한 삶을 영위하는 것과 빈곤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도 말한다. 소박한 삶의 방식과 시장체제의 확산으로 만들어진 근대화된 '빈곤'은 구분해야 한다. (323쪽) 역사적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박애주의 또는 온정주의적 태도다. 때로는 종교적 의무감으로 부자들은 구호품을 내고 교회나 모스크는 기부금을 모으고 배분했다. 두번째 해결책은 정치적으로,
법질서 유지와 관련이 있었다. 문젯거리였던 빈민들을 교외로, 때론 범죄자나 정신이상자들과 같이 추방시킨 역사가 있다. 세번째는 영국의 구빈원과 독일의 교화소같이 빈민 스스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 사회가 제공하는 원조를 받도록 구속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와같은 해결책은 세계적인 규모의 빈곤 해소전략은 아니었고, 단지 지역적으로 빈곤을 억제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저자는 이에 또 하나의 방안을 추가했다. [세계은행이 60여개국 6만명이 넘는 빈민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론은]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는 이유를 부각시키는 대신 어떻게 하면 빈민들이 '새로운 부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결과적인 목표에만 집중했다. 국제기구들은 이미 시도되고 검증된, 빈곤을 다루는 세 가지 방법(자선, 억압, 빈민들 스스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존재가 되라는 요구)에다 네 번째 방법을 추가했다. 부유해지라는 명령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간단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부자들에게 합류하라고,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덜 가난해지라고' 빈민들을 격려하는 것보다 빈민들을 처리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324쪽) 결국, 북반구의 부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 보지 않고는 남반구의 빈곤을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남반구 사람들의 운명은 북반구의 의사 결정에 달려있고, 각국 정부는 금융 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수직적 종속이 국가들 간의 수평적 상호 의존성을 흐트러뜨린다. 빈곤은 "언젠가 치료해야 할 자본주의의 질병이 아니라 오히려 축적을 자극함으로써 현존 체제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신호"가 되어 버린다. 그럼에도 저자는 '발전'은 "이미 예전에 죽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빛날 것 같은 별"이라는 말을 남긴다. 무한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해도 변화는 가능하다. 사회정의와 생활수준의 전반적인 개선이 더 높은 수준의 자원 소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자원을 소유한 이들이 이미 예정된 자원 고갈을 고려하며 절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나아가서는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자원은 모두에게 속한 것이며,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이라는 경제적 반계몽주의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386쪽) '발전시키는 자'와 '발전당하는 자'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에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효과는 커녕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때에는 해결책 또는 문제 자체를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역사에는 노예제, 인신공양, 식민지 건설과 같이 지금으로서는 용인될 수 없는 집단적 관행이 존재했다. 오늘날 대다수가 선호하고 숭앙하는 관행과 이론이 미래 세대들이 보기엔 기이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오늘의 진실은 늘 내일의 거짓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확고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비판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이다. 저자의 다음 저작은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인데, 이것도 꼭 읽어봐야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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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부와 부와 부를 쫓고있는 시대. 부자되시라고 광고에 나와서 외치는 시대. 이게 진정 우리의 삶인가. 꼭 이런 포인트가 아니더라도 요즘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가치를 찾지못해 내가 바른길을 가고있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물어보곤 할때. 이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비교하지말고 우리네 삶속에서 진정한 길을 찾기를 바란다. 꼭 이렇게 큰 관점이 아니더라도. 우리사회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개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발전은 환상이라는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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