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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확실히 아포리즘의 작가는 아니다. 이 책 <리퀴드 러브>(새물결, 2013)는 아포리즘 표제와 신문 칼럼의 본문을 결합한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경구를 활용하는 수준은 니체나 롤랑 바르트의 수준에 못 미친다. 바우만식 '타령'의 문제점은 언제나 똑같은 내용을 변주하여 물린다는 것이다. 이제 책 제목과 목차만 봐도 바우만이 무슨 말을 할지 대략 느낌이 온다. 유동적인 삶! 유동적인 공포! 유동적인 시대! 유동적인 사랑!
내가 보기에 2000년에 출간된 걸작 <액체 근대> 이후로 더 이상 수작이라고 부를 만한 저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가의 노년에 이렇다 할 대작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 책이 국내에 이처럼 뒤늦게 번역이 된 이유도 알 것 같다. 바우만 이름값만으로도 책이 어느 정도 팔릴 거라는 계산이 섰을테니 말이다. 원님 지난 뒤에 나발 분다는 우리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의 컨설턴트다. 지인들의 남녀관계나 애정관계에 상담을 안 해본 사람은 없으리라. 사랑의 컨설팅을 해줄 때 가장 유용한 범주는 고독과 연대감 혹은 자유와 안전감이다. 사회학의 대가도 예외는 아니다. 바우만 역시 남녀관계를 논할 때 고독과 유대감의 범주를 강조한다. '군중 속의 고독'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홀로'를 중시하는 고독의 문화가 엘리트 문화라면, '함께'를 중시하는 반고독의 문화는 대중 문화에 속한다. 따라서 '누구나 다 그래'라고 말하며 외롭고 지치고 다친 대중을 위로하고 힐링하려는 자기계발산업은 '고독 퇴치 산업'이기도 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는 그런 반고독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인 셈이다.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그것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간에 '힐링'은 우리의 성감대를 건드리는 무척 느낌있는 수식어가 되었다. '느낌 아니까'라는 말이 괜히 유행인가!
"소비 가능한 것은 유혹한다. 그러나 쓰레기는 질색하게 만든다. 욕망이 지나가면 쓰레기를 처리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것은 나와 다른 것으로부터 이질적인 성격을 짜낸 다음 만족의 기쁨으로 응결되고 남은 바싹 마른 껍데기를 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이 끝나자마자 즉각 없애버려야 한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파괴 충동이다. "(46쪽)
유동하는 현대사회는 노골적인 소비사회다. 따라서 시장의 눈으로 볼 때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타겟이 된다. 사랑과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사랑을 소비하고 관계를 소비하는 문제가 부각된다. 바우만은 한걸음 더 나아가 유동하는 시대에 인간은 생산자/소비자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인간 자체가 상품이 되었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시장 이성의 범람과 생활세계의 식민화 그리고 개인의 상품화가 우리의 공존 번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사회관계에서 도구이성 혹은 소비이성이 범람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비생활은 가벼움과 속도를 좋아한다. 새로움과 다양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소비 이성은 소비자로 하여금 매혹적인 상품이 되라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유동적 현대성은 유대, 관계, 연대감을 파괴하고 있다. 리퀴드 러브는 이미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해체하고 있다. 소비자주의적 시장 경제의 힘이 도덕 경제의 기지인 코뮤니타스를 침입해서 식민지화했는데, 가정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부부 교환’ 등의 엽기적인 뉴스나 이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마다 '가정의 해체'라는 테마를 생각하게 된다. 참고로 바우만은 인간이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양상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1)양성관계, 즉 남녀로서 관계를 맺는 성적인 관계, (2)이웃으로서 관계를 맺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관계, (3)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들과 맺는 ‘환대/적대’의 관계, (4)‘나-우리’를 축으로 구성되는 '연대’ 또는 ‘함께함’의 관계가 그것이다.
액체 근대는 연대와 유대라는 공동체의식과 공존의 양식에도 해를 끼치고 있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에 따르면 공동체는 소시에타스와 코뮤니타스라는 두 가지 공존 양식이 있다. 소시에타스는 정치적 법적 경제적 위치들이 구조화되어 있는 계층화된 체계로서의 사회를 말한다. 반면에, 코뮤니타스는 구조화되어 있지 않아 무질서해 보이는(무정부 상태의) 도덕 경제의 공동체, 혹은 상대적으로 미분화된 종교적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말한다.
"제대로 만들어지고 순조롭게 작동하며 질서정연하 세계라는 렌즈를 통해 본다면 인간들 사이의 유대, 우애와 파트너십이라는 '회색지대'는 무정부 상태의 왕국으로 보일 것이다."(174쪽)
"코뮤니타스(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소시에타스도 마찬가지지만)의 생존과 번영은 인간의 상상력과 발명심 그리고 상투적인 일상성을 깨부수고 시도되지 않은 방법들을 시도해보려는 용기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리스크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의존한다. 바로 그러한 능력들이 '도덕 경제', 즉 서로 돕고 보살피며, 타자를 위해 살고, 상호 헌신의 조직을 짜내며, 인간들 간의 유대를 단단히 하고 수리하며, 권리를 의무로 해석하고 모두의 운명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ㅡ즉 뚫린 구멍을 막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구조화 작업이 방출한 홍수를 막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이런 것들을 지탱해준다."(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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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만은 지금 이 시대의 '사랑'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와 소비가 인간관계에까지 잠식해가는 이 사태를 누구보다 염려하며 그 현상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바우만답게 멀리 갈것도 없이 지금 당장 우리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사랑 없는' 현실, 편의 혹은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고유 영역인 사랑에 대해 소제목-내용 식으로 짧은 문장문장들이 한 페이지마다 소개되고 있다. 특히, 소제목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소제목만 읽어도 우리 사회에 대한 슬픈 단면들을 많이 느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읽으면서, 나 또한 내 안에 사랑이 너무나도 나 중심으로 혹은 편리함이라는 함정에 갇혀 나의 성(城)을 깨고 그 밖으로 나가보려 하지 않았던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나와 상관없는 이웃일지라도 그들을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눈이 마주치면 소소하게 미소지을 수 있기를.. |
-<문명, 그 길을 묻다> 지그분트 바우만 인터뷰 중에서-
안정, 자유, 행복. 이 세가지를 다 손에 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 '행복은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유동하는(liquid)'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문제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걸까?
이 책의 주인공은 유대 없는 인간이다.
서로 느슨하게 묶여서 상황이 바뀌면 바로 풀어버릴 수 있도록. 이러한 취약한 유대 속에서 '불안'은 탄생한다.
유대를 긴밀하게 하려는 동시에 느슨하게 유지하려는 현대인의 상충적인 욕구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다.
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인간들이 맺는 관계'다. 우리는 관계 맺고 싶어하면서 관계를 두려워한다. 관계를 맺으면 자유가 심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 쓰는 방식이 좀 독특하다. 번역가는 이를 '이미지적 글쓰기' '고급 에세이' '쿨한 리얼리즘' 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비유가 무척 많은 문장들을 사용한다.
또 처음 몇 줄에 중심 화두를 던지고, 그것에 대해 몇 페이지씩만 서술한다. 자유롭게 쓰는 에세이처럼.
마지막으로 바우만은 현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해부하여 내보인다. 우리에게 '이것이 현실이다' 고 선언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유동하는' 세계 중 두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그는 '인터넷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용에 의미를 두지 않는 관계. 현대인은 유동하는 세계에서 어디엔가 속해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를 지지해 주는 건 약한 인간관계뿐이다. 가족이 무너져내렸고, 종교가 무너져내렸다.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현대인들은 약한 끈을 쥔 채 허공에 대고 말을 한다.
가끔 인터넷 공간에서 정말 의미 없는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국 바우만이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저 말을 하는 사람. 무슨 말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
두 번째는 '이방인',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많은 이민자들이 유럽을 향하고 있다. 유럽, 특히 독일은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유럽인들이 '이방인'을 삼켜버릴 지, 토해낼 지 그건 알 수 없다.
유럽인들이 그들을 품어주고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인간성'에 관한 인류의 거대한 시험이 될 수도 있다.
바우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은 인간 공동체로 가는 길 위의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견들이 모두 진실이며, 무엇보다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는 확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진실이 만약 우리와 다를 경우 그저 '단순한' 의견일 뿐이라는 믿음이 바로 장애물이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 '이방인'들과 '논쟁'해야 한다.
"어떻게 계속 나아갈지를 아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전부이다.
좀 어려운 책인데, 바우만이 인터뷰때마다 이야기하는 것들이 선명하게 손에 잡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책은 현대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둘러싼 문제들, 그리고 사랑, 행복, 불안, 자유, 안정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방인'에 대한 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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