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책. 고등학교 때 양귀자 작가님의 책을 꽤나 많이 읽었다. <천년의 사랑>,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책들. 그 당시 알았던 이 책이 여전히 스테디 셀러에 올라있다는 것을 보았다. 오호라…꽤나 오랫동안 묵혔다 이제서야 읽었다.
<모순> 이토록 피상적인 책 제목이라니. 인생은 모순 투성이라는 말은 정말 사는 동안 수도없이 들어왔다. 근데 뭐가..? 싶다가 맞어.. 싶었던 말.
이 책을 읽으면서는 왜 모순일까…싶었는데, 마지막을 읽고서야, 아…. 싶었다.
주인공 안진진은 타인이 보기엔 불우하지만, 스스로를 보기엔 그닥 불우하진 않아보이는(?) 사람이다. 알콜중독의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
어머니와 쌍둥이 자매인 이모는 모든 것을 계획대로 사는 이모부를 만나 풍족한 삶을 누리며 산다.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날 결혼한 두 자매의 타인의 눈으로 보기엔 정 반대의 삶.
진진의 아버지가 술을 먹고 패악을 부릴때면 어머니는 진진과 진우를 이모네 맡겼고, 아버지가 잠들면 새벽에 진진과 진우를 데려와 학교를 보내고 시장에서 양말을 팔았다.
그런 진진은 대학을 가고 학비를 늘 걱정해야했고, 그래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직업전선으로 나갔다. 그런 진진은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김장우와 나영규를 두고 결혼을 저울질이다. 가난하고, 계획도 없지만 그런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장우,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모든 것을 계획대로 사는 영규.
책을 읽어갈 수록 장우는 진진의 아버지를, 영규는 이모부를 닮았다. (개인적으로 둘다 전혀 다른 의미로 숨막히게 한다..)
이모네 딸 주리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공부중이다. 그런 주리는 진진에게 결혼은 사랑이라 말하지만, 진진은 결혼은 상호 이해관계라 말한다. 주리의 말을 듣고 있지만, 악의는 없지만 말하는 상대에 대한 몰이해로 점쳐지는 폭력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98년도의 책인만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 당시의 결혼이라는 개념에 대한 사회적 이해 등. 양귀자 작가님이 이 책을 2024년에 쓰셨다면 어떤 모습일까 싶은 생각드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점등을 차치하고서라도 분명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생각은 있다.
누구나 동경할 것같은 이모의 삶과 그 반대의 진진 엄마의 삶이 그랬다.
하지만 작가님은 누군가의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이것이 정답처럼 보이지만, 때로 그 정답을 맞춘이는 이것이 오답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삶이다 라고.
그래서 책 제목이 모순이였음을.
책을 덮으며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너에게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 묻는다면, 중년의 나는 청년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아서. 나의 인생 안에서 조차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답이 바뀔 수 있으니까.
정답은 한 개인에게 조차 정답일 수도 오답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이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나부다. 이런 생각을 하게하니까.
25살 진진은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때, 어떤 생각을 할까.
”진모의 행동을 꾸짖는 천사의 얼굴은 엄격했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졸개들과 더불어 연적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갈겨대는 짓 따위는 해서는 안 될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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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에 이슬처럼 달려있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 젖어있는 휴지 조각, 맵싸한 기운이 아직 남은 먹먹한 가슴(P.10)에서 저는 그만, 이 책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처음 만난 양귀자 작가님.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 찬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라니, 읽는 내내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선물 이 떠오른 것은 두 작가님 모두 한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삶을 소개하며 우리네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탐구하는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당신이 접시를 가져오라고, 그것도 쟁반에 담아오라고 말했을 때, 갑자기 무언가가 내 몸을 쇠사슬로 칭칭 동여매는 것 같았어. 정말이야. 참을 수가 없더라구.” _p.86 아버지의 생일날, 무려 2팀의 지인들을 불러 생일상을 차리게 한 진진의 아버지 건하게 취한 밤, 모두가 돌아간 그곳에서 어머니를 향해 날아온 잡채접시. 누구나 똑같이 살 필요는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인정하지만, 그렇지만 하필 아버지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고. p.92 진진의 아버지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한 것은 무엇인지 진실로 궁금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나머지 가족들이 겪어야 할 불행에 대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사랑한다고 다 결혼하니? 결혼은 많은 것을 고려해봐야 하는 인생의 중요한 사업이잖아.” “그건 옳지 않아. 진정 옳지 못한 생각이야. 결혼은 사업이 아니야. 그것은 순결힌 사랑과 사랑이 만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축복이야.”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 그녀들은 또 같은 날 같은 시에 결혼을 합니다. 진진의 엄마는 건달이자 떠돌이 술주정뱅이와 진진의 이모는 번듯한 사업가와 그러했죠. 그로인해 360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은 닮은 듯한 그녀들의 자식들.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른 생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결혼에 대한 진진과 주리의 생각을 들으며 그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머리로는 진진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리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주리가 이야기하는 ‘옳고 그름’은 상대방이 되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오류가 아닐까요?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서로 다름. 또는 생존의 방법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삶은 언제나 고달프지만, 상대방의 삶은 언제나 내가 바라는 이상향,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일지, 지루하지만 평탄하고 평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일지.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게 인생이라 그렇겠죠. 죽을 힘을 다해 내가 만들어가는 것. 삶이자 인생. 그러나 이미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주변인들이 있기에 굉장한 의지와 열정이 없으면 내 삶의 주어진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은 어렵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안진진의 선택으로 인해 그녀의 앞으로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상상해 봅니다. 그녀의 용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과연, 나는 안진진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생각 없이 내밷는 말들이었다. _p.75 인생이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습과 손잡으면 살아갸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_p.173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_p.219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_p.232 |
안진진의 인생은 참 고난의 연속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폭력을 일삼는 아빠, 양말과 속옷을 팔며 근근히 먹고 사는 엄마, 조폭의 보스가 되겠다는 철없는 남동생까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가까스로 사무직을 얻으며 가난하지만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던 안진진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라며 처절하게 외친다. 자신의 삶의 부피를 늘려나가기 위해 사랑에 사로잡혀야 겠다고 생각한 안진진에겐 결혼할 수도 있는 두 명의 남자, 나영규와 김장우가 있었다. 인생 계획서에 프로포즈 날짜와 시간까지 있을 것만 같은 나영규는 짜여진 계획에 맞춰 삶을 완성시켜 나가고자 하지만,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며 야생화를 찍는 김장우는 당장 한시간 뒤의 일도 모르는 것처럼 즉흥적인 삶을 살아간다. 인생 계획표를 짜두고 철저하게 계획대로 움직이는 나영규와 그저 흘러가는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진작가 김장우 자신의 감정을 몰라 헤메던 안진진은 2박 3일간의 즉흥 여행을 통해 자신이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까지 읽었을 땐 사랑하는 김장우와 결혼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안진진은 나영규와 결혼을 했다. 김장우를 사랑하지만 그에게서 아빠의 얼굴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감당하지 못해 달아나버린 아빠처럼, 김장우에 대한 사랑이 넘쳐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이 일어날까 겁이 났던 것이다. 삶은 모순 덩어리다. 아니 인간이 모순 덩어리인 것 같다. 사랑을 시작했던 이유가 미워지는 이유가 되고, 모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이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김장우의 자유로운 모습에 사랑하기 시작했지만, 자유로운 모습 때문에 결혼할 수 없었던 안진진의 모순적인 선택이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삶도 결국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잘것 없어 보이는 나의 삶도 하나쯤 특별한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수를 되풀이하는 게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감으로써 나의 삶은 양감이 생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그 또한 내 인생이 되리라.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15p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21p 한없이 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리기만 할 줄 알고 멈출 줄은 모르는 자동차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었다. 언젠가는 멈추기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200p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217p |
주인공 20대 여성 안진진의 이야기입니다. 안진진에게는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것처럼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비현실적인 남자주인공을 만난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심한 일상들이 계속 반복될 뿐이죠.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요. 안진진의 심심한 일상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참 심심한 이야기들이에요. 안진진은 두 명의 남자들을 만나는데, 그 사랑도 심심합니다. 열렬하거나, 둘이 아니면 서로 죽는 그런 절절한 사랑은 절대 아니에요. 남자주인공들도 우리가 쉽게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고요. 이야기 사건이나 전개로 말하자면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 입니다. 평범한 20대 여자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라고 할까요. 그래서 술술 읽고 뭐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지? 하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책을 덮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책의 한 문장이 마음 속에 박혀서 나가질 않아요. 그 문장은,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어서 고마워." 제 기억에 기초해서 쓴 문장이라 실제 문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자꾸 생각나는 거에요. 별 게 기적이 아니구나,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 그러지 않고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해준 것도 기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내내 들면서 시시하다고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지금은 모순의 문장들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이 책을 필사까지 하고 있어요. 이야기 전개보다는 문장이 밟히는 책입니다. 자꾸 자꾸 마음 속에서 걸리는 문장들이 이 책 속에 많이 등장해요.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래서 소설을 읽는 거죠. 마음 속에 걸리는 문장, 하나 찾아내려고. 아닌가요? |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p15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 p64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7 철이 든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지닌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 p142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p173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 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 p268 그냥 살아가는 혹은 살아지는 일상을 찬찬히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모순들이 자리하고 있을 때가 있다. 행복하려고 돈을 버는 건데 돈을 버는 시간들이 불행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여유 있는 삶을 원해서 여유를 만들어내면 막상 그 여유가 불편해지면서 차라리 바쁘게 지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 p303(작가의 말 중) 처음 '모순'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롤러코스트처럼 역동적이고 급격한 사건이 발생한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모순'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인상이 좀 강한 탓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안진진이란 20대 여자의 이야기로 채워진 '모순'은 어찌 보면 무지 평범하고 보통날인 이야기인데 느릿느릿, 천천히 읽혀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작가도 작가의 말에 천천히 읽혀지는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천히 읽어나가면 '모순'이 어제의 뒷면에, 오늘의 뒷면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 안진진이란 이름도 진진을 부정하는 '안'씨가 떡하니 있어 진진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는, 모순적인 이름 아닌가 싶다. 하하 진진은 문득 인생에 온 생애를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갑자기 빈약한 인생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진진의 이야기 '모순'이 시작된다. 진진의 엄마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래서 엄마와 이모는 외향적으로 똑같다. 4월 1일 만우절에 태어나서 동시에 4월 1일, 같은 날 결혼식을 올렸다. 진진의 엄마는 집을 나가기 일쑤인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억세고 억센 사람이 되어갔고 이모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 정해진 계획대로 삶을 살아가는 남편과 결혼해 삶의 풍요를 여유 있게 누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쌍둥이의 앞면은 똑같은데 뒤집어보니 한 명은 빈곤, 한 명은 풍요 속에 삶을 안착했다. 진진은 김장우와 나영규라는 두 남자와 만남을 이어간다. 결혼은 사랑이 가미된 현실이냐, 그저 사랑이냐로 갈리는 두 남자와의 만남. 미지근한 듯한 온도의 만남 속에서 결혼이라는 팻말을 누구와 함께 뽑을 것인지, 진진의 고민이 깊어진다. 난 진진이 현실보다는 사랑을 택할 줄 알았는데, 진진은 현실을 택했다. 현실을 택하게 된 이유 가운데에는 이모의 죽음이 있었다. 엄마가 이모만 만나면 톡 쏘면서 불 붙는 화살마냥 이야기할 정도로 부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이모는 유학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한 자녀들을 뒤로 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모는 진진에게 편지를 썼다. 뒤치다꺼리하면서 속 시끄럽게 사는 진진의 엄마가 부러울 정도로,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이모가 그런 결정을 했더라도 진진은 자기가 겪어보지 못했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집을 주기적으로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던 진진의 아버지는 불편한 몸이 되어 돌아왔다. 진진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집에 있으라는 말을 모독이라 여겼던 아버지는, 결국 모독 가운데에 누워지내게 됐다. 진진의 동생 진모마저 감옥에 있게 된 이 상황에서 진진의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활력 있게 가족 모두의 뒷바라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삶이 푸석해지고 답답해질 수록 강해져만 가는 엄마의 기운. 세상 모든 엄마의 에너지는 모순 자체란 생각이 든다. 고요한 집 안에 있을 때보다 시끌벅적, 와장창 정신 없이 돌아가는 시간 속에 있을 때 에너지가 하늘 위로 치솟는다. 진진은 이렇게 말한다. '모순'의 시간을 겪어보니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고. 실수가 되풀이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렇다. 인생은 모순인데, 이 모순을 피한다고 해서 모순이 영엉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선택과 결정이 모순이 되어 실수가 되더라도 그것이 인생이고 탐구의 결과물이라는 생각. |
『모순』을 우연히 발견했다. 양귀자 작가라고 하면 내 또래에 유명했던 작가인데 새로 쓴 작품이 아닌 1998년에 나온 소설이 사람들이 ‘인생작’이라고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읽지 않은 베스트셀러는 고민하는 편인데 왠지 자꾸 눈에 띄어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가 ‘인생책’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는 어떤 판단을 하는 것도 잘못이지 않나. 읽고 판단을 해야겠다.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구매했던 것 같다. 왜 인생책이라고 하느냐고? 1998년이면 우리나라는 IMF로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때였다. 그때 출간한 책이 지금도 공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말끔히 없애준 책이었다. 시대가 갖는 아픔과 청춘들의 방황과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의 안진진.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이모부가 소개해준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중이다. 진진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라고 부르짖었다. 이제 진진은 온 생애를 다 걸고 살아내야 한다. 시장에서 양말을 파는 어머니, 술 취하면 온 집안의 물건을 깨트리고 지금은 가출상태인 아버지, <대부>의 말론 브랜도나 최민수처럼 조직의 보스가 꿈인 동생 진모가 가족이다. 이 소설에서 진진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어머니의 쌍둥이 동생 이모다. 이모는 어머니와 달리 돈 잘 버는 이모부의 그늘 아래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촌 동생들과 평탄한 삶을 산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하랴 진모 뒤치다꺼리하랴 인생이 쉴 틈 없이 바쁜 사람이다. 누군가는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그렇듯, 진진은 이모의 딸이었으면 했다. ![]()
스물다섯 살인 만큼, 진진은 결혼에 관한 고민을 한다. 두 남자 중에서 저울질 중이다. 매사에 계획적이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몹시 언짢아하는 나영규와, 어딘가 훌쩍 떠나서 야생화 사진을 찍는 예술가 김장우가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 데이트 일정을 조율하며 고민한다. 나영규가 주는 계획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마음은 김장우를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애를 보이는 건 훗날 의견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 진진이 누구를 선택할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모처럼 다소 심심한 사람과 지리멸렬한 삶을 살 것인가, 어머니처럼 불행에 앞장서 스스로 헤쳐가느라 불행할 틈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다소 역설적인 삶이긴 하다.
다분히 편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고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진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진진이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직의 보스가 꿈인 동생에게 삶에 대한 충고의 말을 하지 않는다. 더불어 집을 나간 지 5년이 넘도록 오지 않은 아버지를 탓하는 거 없이 그저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다. 여기에서 양귀자 작가의 필력이 빛난다. 심각한 것일 수도 있는 상황을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의 삶을 함부로 쥐락펴락할 수 있겠나. 삶이란 알 수 없는 것.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작가의 생각에 깊이 이입되는 지점이었다.
1998년에 첫 출간된 작품인 만큼 지금과는 다른 데이트 양상을 볼 수 있다. 전화기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아무 때나 통화할 수 있고 약속을 정할 수 있지만, 그때는 집 전화로 연락해야 통화할 수 있었다. 다르게 보면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전화기 앞에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상상해보면 설레지 않은가 말이다. 다소 답답해도 느린 미학이 있었다. 그 시절을 상상해보며 진진이 바라보는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대비해보며 삶의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다. 문학적 서사와 삶의 철학, 무릇 삶이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296페이지)
실수하는 인간에 가깝다. 실수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또 이겨내는 게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라. 오늘을 살며 삶을 탐구하고, 또 내일을 삶의 기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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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보라색인 것은 ?누추한 골목길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라일락(p.43)때문일까? 생각했다. 읽는 내내 라일락 향기가 내 누추한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책의 화자 안진진은 25살 결혼의 최고 주가인 나이에 접어 들어 인생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탐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진진이 탐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고 4월 1일 만우절에 태어났고 10분 먼저 태어난 엄마가 먼저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한다. 그렇게 운명은 갈린다. 엄마와 이모의 결혼도 생일날과 똑같은 만우절, 4월 1일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 모순! 또한, 이 소설의 재미는 등장인물에서 중요한 안진진의 두 남자 나영규와 김장우다. 그 둘 사이에서 늘 저울질 하며 결혼할 남자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한다. 누구와 결혼할까? 라는 궁금증으로 소설을 읽는데 재미가 더해진다. 나는 이모의 죽음으로 두 남자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예상과는 완전 빗나갔다. 그래서 소설을 읽은 후에도 한참 생각했다. 또한, 나 역시 누굴 선택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면서 고민스럽기까지 했다. ?술에 자신했던 안진진이 김장우와의 여행에서 필름이 끊어지고 쇠창살문에 갇힌 아버지처럼 자신의 안에서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두려움을 마주한다. 김장우를 아주 많이 사랑하지만 '헤어진 다음날' 노래가 더 잘 어울리고 남자는 김장우다. 하지만, 인생의 계획을 송두리째 어긋나면 감당하지 못할 나영규! 또 여러면에서 안정적인 나영규와 사는 것이 더 편안한 결혼생활이라 여겼을테다. 김장우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p.220)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에 자존심이 필요한 걸까? 안진진 스스로 합리화하는 사랑에 대한 모순은 아닐까? 안진진은 사랑이란 감정을 처음 느낀 김장우가 아닌 이모가 그토록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의 삶이 보이는 나영규를 선택한다. 결국 안진진은 모든사람들에게 행복해 보이는 삶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며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주체가 달라진다면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감하며 그 부분에 늘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여긴다. 소설속에 지리멸렬이란 단어가 유독 반복되는 느낌이다. (4번 이상은 나온 듯)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모가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어디선가 들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퓽요와 빈곤. 이런 상반되지만 필연적인 것들 안에서 살아간다. 세상의 일들이 모순으로 짜여있고 그 안에 나도 존재하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새겨본다. |
모순이라는 제목처럼,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쌍둥이가 나옵니다. 일란성 쌍둥이로 등장인물이 둘 나오는데 외모, 성격이 유사했지만 결혼하면서 성격이 달라지죠. 한 사람은 자상한 줄 알았던 폭력적인 남편과 결혼하고 같은 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만류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됩니다. 주변 사람의 영향력에 생각하게되는 책이예요.. |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라고 결심한 안진진은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꿔준 것은 결혼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서도 큰 변화를 주려면 결혼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 결혼 상대의 후보로는 모든 걸 계획대로 실행하고 움직이며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나영규, 가난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자유로운 영혼의 김장우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누구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어도 좋을지 시험해본다. 처음에는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혼밖에 없다는 안진진의 사고방식과 양다리를 걸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이리저리 재고 평가하는 안진진의 태도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후반부까지 읽다 보니 안진진처럼 삶의 풍파를 겪다 보면 모험보다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안정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안진진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녀의 최종 선택까지도. 누구나 자신의 삶보다는 남의 인생을 더 부러워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안진진도 자신이 지켜보고 겪어온 엄마의 파란만장한 인생보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이모의 인생을 동경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모의 극단적인 선택을 마주하고도, 사랑보다는 자신에게는 없는 환경과 안온함의 상징인 나영규를 선택한다. 자신의 선택이 이모가 벗어나고 싶어 했던 무덤 같은 평온함이자 실수하는 것이라 해도 겪어보지 못한 인생을 선택한 안진진을 통해, 인간은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나와 다른 환경과 성격,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모두 나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그렇지 못한 나와 비교하며 신세한탄을 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러워하는 그들도 자신과 다른 제3자를 부러워하며, 자신이 부러워하는 인생도 자신이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 수 없다. 사람은 다 자기 나름의 불행과 행복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결코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안진진처럼 모든 생을 걸고서 모순적이라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선택에 대해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당연히 없다. <p.21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p.127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88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p.296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로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p.296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스포 많음 25살 안진진은 살아온 배경이 무척 나와 비슷하다. 많은 점을 열거하다보니 확연하게 다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자의 성격인 듯하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반면에 안진진은 좀 더 회의적이고 인생에 저항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던 안진진은 어느 날, 자신의 인생에 자신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데...... 주인공과 나의 유사한 점과 함께 삶의 진리를 꿰뚫은 듯한 문장들이 존재하여 책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소설이라고, 나이가 든 후 다시 읽어보며 반추하고 싶은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쌓아온 인생의 부피에 비례하여 이 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이다. 내 나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인생의 부피를 가진 내가 이 책을 읽어내리면서도 이 책에서 느낀 이해와 감명이 적지 않다. 안진진은 부모의 생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므로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인생을 탐구한다. 건달에 술꾼인 아버지는 가정을 내팽개친 방랑꾼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의 삶은 내가 보기에 불행이다. 그러나 안진진은 어릴 적, 아버지와 단둘이 쌓아온 유대를 갖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곰곰히 생각할수록, 책의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나의 상황과 겹쳐지며 약간의 이해가 가능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마냥 싫어할 수 없는 모습...... 이것 또한 삶의 모순이었다. 어머니는 고난과 시련으로 인생에 굳은 살이 박히기 시작하며 결국 생활력이 무척이나 강한 대장부가 되었다. 혹자는 위험이 닥치면 발생하는 뜻모를 어머니의 활기를 여성의 고난을 별거 아닌 것으로 폄하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막막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삶 속에서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힘이 생기로 치환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쌍둥이인데 살아온 환경은 무척 다르다. 이모는 '무덤 속 같은 평온'의 삶을 어머니는 현실의 불행 속 삶을 살아왔다. 누가봐도 행복이었던 삶이 본인에게는 불행이었고 결국 그 끝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 또한 인생의 모순이다. 그리고 내가 전혀 체감할 수 없을 모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안진진의 선택처럼 말이다. 안진진은 여러 불행이 겹쳐오자 그에 대한 반작용처럼 나영규를 선택했다. 현실의 평온을 선택한 안진진을 100% 이해할 수 있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모순,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되지 않으면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는 서술을 통해 미래의 후회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안진진은 이모와 상황이 다르다. 불행한 현실에 놓여있던 안진진은 그 뜨거움을 잘 알기 때문에 무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으며 안온한 평온을 누리리라 생각한다. 별개로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을 하는 김장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많은 문장을 사진으로 찍고 마음으로 찍으며 열심히 책을 읽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내 인생의 부피가 늘어난 느낌이다. 앞으로 나도 이 책을 인생 책 중 하나, 몇 년 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라고 설명할 것 같다. 작가의 말을 읽고 인생에 대한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행복하게 책을 덮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