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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니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남들을 보기 이전에 나만 보더라도 책과 그리 가까이하고 있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책은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지만 어떤 점이 좋은지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지금도 책을 읽기는 하지만 흉내내기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사람들이 읽으니까 따라 읽고 이 책만은 꼭 읽어야한다고 하니까 읽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얻는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가고 있는지 늘 의문이다. 어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책읽기에 서툴고 어떤 책들을 접해야하는지 혼란스러운 한 사람으로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갑다.
얼마 전 개봉한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인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 2007년 4월 16일부터 2011년 2월 28일까지 격주로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101통의 편지와 함께 101권의 책을 선물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작가가 하퍼 수상에게 쓴 편지와 어떤 책들을 추천했는지 알수 있다. 추천한 책은 참으로 다양하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함께 읽었던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 <깊은 밤 부엌에서>부터 많은 이들이 읽은 고전 <노인과 바다>까지 많은 책들이 있다.
소설과 희곡과 시는 인간과 세계와 삶을 탐구하는 가공할 만한 도구이다. 지도자라면 인간과 세계와 삶에 대해 당연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나는 열렬하게 성공을 바라는 지도자에게 "국민을 효과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책을 광범위하게 읽으십시오!" 라고 말해주고 싶다. - 서문 중에서
책을 추천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보며 알고 있었던 작품들이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나고 읽지 못했던 작품들을 만날때는 작가가 말하는 것에 중점을두고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은 책읽기에 서툴고 매번 문학작품을 접해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내게는 도움을 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아직은 그가 책을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읽으면 지금과는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아니 달라지기를 바라본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아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지만 좀더 많은 책을 깊이 있게 읽어나가며 작가가 101권이라는 책을 추천한 이유를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내고 싶은 욕심마저 들게 하는 책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추천하는 책을 보며 이 책을 나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것이다. 나또한 추천하는 책들 중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고 읽어 본 책들은 내 생각보다는 작가가 추천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며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읽고 어떠한 점이 좋았다라고 생각이 들어도 상대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할수도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책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낌이 다른 책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람도 아닌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 추천하는 책이라하니 분명 일반적인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의 성장을 아닌 나라의 성장과 그를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성장할수 있도록 하는 책을 만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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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파이 이야기>를 쓴 작가 얀 마텔이 자국인 캐나다의 수상에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달라는 의미로 보낸 101통의 구애편지다. 이 편지들은 거의 사년 간, 격주로 추천 도서와 함께 수상 집무실로 보내졌다. 얀 마텔의 편지와 책 선물을, 주기적이며 일방적으로 받아야 했던 캐나다 수상은 마지막 101번째 편지가 도착한 이후로도 이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드물게 수상 집무실의 문서담당관으로 부터 짤막하고 피상적인 감사의 인삿말을 담은 짧은 편지가 보내지기는 했다. 101통의 편지 중, 총 7통의 대리 답장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나라의 수반인 수상이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노닥거릴 여유가 없다는 뜻이였을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제안되는 독서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였을까? 아니면 수상은 원래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수상이 침묵하지 않았더라면, 얀 마텔과 수상간의 활발한 논의로 일방적인 책 추천이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었고, 또 근본적으로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수상이라면 자국민의 주기적이고 장기적인 이러한 노력에 아주 작은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무래도 수상이라는 직책은 독서할 짬이 나지 않는다는 쪽으로 나는 추측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작가가 수상에게 권하는 책이 어떤 것이였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추천도서 목록에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깊은 밤 부엌에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우리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바로 그 모르스 샌닥의 그림책이 바로 수상을 위한 추천도서 목록에 있었던 거다. 얀 마텔은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는 뜻에서 두 권의 그림책을 고른 것인데, 무엇보다 문학의 힘이 '상상력'에 있다고 믿는 그는, 따분하고 편협만 마음을 가진 어른은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직책 때문에라도 늘 경직되어있을 수상에게 어린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볼 것을 권하는 의미였던 것이다. 얀 마텔이 수상에게 문학을 권하는 이유는 이 두권의 그림책을 고른 이유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물론 정치는 한 개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독자적인 의견으로 하는 것은 아닌, 여럿이 함께 모여 나누어야 하는 가장 사회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며, 어쩌면 가장 덜 창의적인 분야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상상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풍부해질 수록 이성과 감성에서 모두 유능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나를 내려놓고 남과의 타협을 이끌어내려면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상상력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수상에게 보내진 책들은 소설과 희곡, 시, 동화와 만화, 그림책과 몇편의 논픽션이 있었으며, 놀랍게도 '할리퀸 로맨스'까지 포함되어있었다. 이 역시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쪼그라들지 않는 상상력을 위한 추천서였다. 과연 수상은 얀 마텔이 보낸 책들을 몇 권이나 읽었을까? 또 만약 읽었다면 얀 마텔의 기대대로 조금이라도 더 현명해졌을지 살짝 궁금하다. 그랬다면 그렇게 끝까지 묵묵부답으로 둘만의 특별한 독서클럽을 끝내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 대해, 그리고 수상 스티븐 하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얀 마텔에 의하면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는 자신의 원칙과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며,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만을 기대하는 원칙주의자이다. 얀 마텔은 나라의 지도자에게 이런 모습은 바람직 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현시스템에서 '나'라는 개인은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지도자인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가 그의 학력이나, 경력, 재산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또한 책을,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서 바른 생각과 깊은 사색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얀 마텔은 수상에게 둘만의 특별한 독서 클럽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가 얀 마텔의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시작은 일방적인 것이였더라도 만약, 작가와 수상의 특별한 독서 클럽이 주고받는 관계속에서 이어졌더라면, 이는 어쩌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례로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어떤 작가라도 박근혜 대통령께 둘만의 특별한 독서 클럽을 제안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 수상처럼 작가와 노닥거릴 짬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떠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한나라의 수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한사람의 독서광으로 얼마든지 특별한 독서 클럽에 흠뻑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추천서들 중 캐나다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그중 캐나다 자유당 당수를 지냈다는 마이클 이그나티에프의 <덜 악한 것>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의 만남이 불행한 방향으로 흘러간 이유는 어느 한쪽이 열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둘 모두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427)이라고 쓴 치아누 아체베의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지다>를 꼭 읽어야 겠다.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는 더 현명한 사람이 되려 한다. 87번째로 보내진 책 <정다운 고향 시카고>에 관한 에피소드는 오래 생각하고 싶다. 얀 마텔은 문화 친화적인 페스티벌에서 <정다운 고향 시카고>를 쓴 작가 애슈턴 그레이로 부터 직접 이 책을 샀다. 애슈턴 그레이는 이 소설을 자비로 출판하고 페스티벌에서 직접 판매까지 했는데, 얀 마텔은 이 책이 결함도 많고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불분명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에게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작품의 질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애슈턴 그레이의 열망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작가에게서 태어난 이야기는 병을 탈출하려는 요정처럼 누군가에게 공유되기를 원한다는 얀 마텔의 설명도 근사했지만, 무엇보다 애슈턴 그레이가 다음해인 2011년 캠핑도중 급사했다는 작가 이력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무명의 소설가이거나, 한 나라를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이거나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는 똑같은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며 미친듯이 일만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채 어느날 그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책을 읽거나 읽지않거나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나는 사라질 수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나는 삶을 절실히 느끼고 싶다. 관대하고 싶고, 겸손하고 싶다. 물론 책을 통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장장 600쪽의 장서였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좋은 책이였다. 다만 아쉽게도 소소한 오타가 너무 많아서 속상했다. 철자의 실수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얀 마텔인듯 한데, 정작 자신의 책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이렇게 오타 투성이로 출판된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내심 걱정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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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수상에게 문학작품을 추천하며 4년 동안 쓴 101통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101번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총 105권이 소개된다. 여기에는 카프카, 조지 오웰, 애거서 크리스티, 제인 오스틴, 필립 로스, 미시마 유키오 등 유명 작가의 명불허전 작품도 많지만 조라 닐 허스턴, 마르잔 사트라피, 앨런 베넷 등 호기심을 부추기는 미지의 작품도 다수 포진해 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궁금증이 밀려온다. 바쁘기로 따지자면 수상 못지않을 인기 작가가 왜 그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수상에게 책을 보냈을까?
스티븐 하퍼는 자신의 독서 습관에 대해 나에게는 물론이고, 2004년 선거 기간에 좋아하는 책이 <기네스북>이라고 말한 것 이외에는 어떤 기자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수상이 지금 무슨 책을 읽는지, 여하튼 책을 읽기는 하는지, 또 과거에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스티븐 하퍼 수상처럼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이 자칫하면 나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읽어야 제대로 된 사람 정치를 할 수 있고, 살기 좋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얀 마텔은 이러한 이유로 외로운 북클럽을 시작했다. 그리고 열성 회원 하나, 유령 회원 하나이던 둘만의 북클럽은 4년을 이어지다가 열성 회원이 두 개의 임신(아내의 임신, 떠오른 소설 영감)으로 마음과 몸이 분주해면서 겨우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그 유령 회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무응답으로 응답했다! 수상에게 단 한 통의 답장이라도 받길 바랐던 얀 마텔은 자신의 부름에 끝까지 응답해주지 않았던 수상에게 직접적으로 섭섭함을 드러낸다.
나는 이 ‘죽자고 묵묵부답이었던, 책을 읽지 않는 하퍼 수상’의 초지일관함에 웃음보가 터졌다. <기네스북>을 인생의 책으로 꼽는 사람에게 <길가메시>라니, <등대로>라니,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니,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라니…… 아마도 수상은 책만 보면 잠이 와 하면서 꾸벅꾸벅 졸았을 수도 있고, ‘문학이 밥 먹여주나’ 하며 거들떠볼 생각도 안 했을 수 있고, 그것도 아니면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시간 나면 읽어야지 하고 내내 밀쳐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자기변명을 하면서 자꾸 책을 밀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는 각하에게 돌직구로 책들을 투척한 얀 마텔의 발상과 실천에서, 이미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한 중년 남자의 문학에 대한 고집스럽고 별스러운 사랑, 거침없는 강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나무늘보’에 비유하며 가지에 매달려 책을 읽는 모습을 묘사해놓은 글에서는 정말이지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감각적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파이가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사랑하게 된 순간(!), 잡아먹히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믿었던 순간(!)에 내 속에서 피어났던 짜릿한 감정처럼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러니까, 책을 안 읽을 수 없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파이 이야기』에서 나와 비슷한 등장인물이 있다면, 파이가 아니라 나무늘보이다. 나에게 좋은 책이란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와도 같다. 나는 지칠 때까지 책을 읽은 후에야 배가 불러 잠자리에 든다. (...)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는 푸른 정글 한가운데,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귀가 먹먹해지는 폭우에도 나무늘보는 개의치 않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물에 만물은 다시 소생하고 동물들도 폭우를 고맙게 생각한다. 그 와중에 나무늘보는 책을 가슴에 품고 빗물에 젖지 않도록 보호한다. 나무늘보는 한 단락을 겨우 읽었다.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무늘보는 그 단락을 다시 읽는다. 나무늘보는 그 단락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떠올린다. 나무늘보는 그 이미지를 되새긴다. 아름다운 이미지다. 나무늘보는 주변을 둘러본다. 나무늘보는 아주 높은 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정글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빗줄기 사이로 다른 나뭇가지들에 맺힌 밝은 점들이 보인다. 예쁜 새들이다. 아래에서는 화난 재규어가 앞만 쳐다보며 맹렬하게 달리지만, 나무늘보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자족의 한숨을 내쉬며 나무늘보는 온 정글이 자신과 함께 호흡한다고 생각한다. 폭우는 여전히 계속된다. 나무늘보는 느긋하게 잠든다. (39쪽)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처럼 책의 줄거리가 상세하게 소개되지 않아도,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처럼 독서를 둘러싼 온갖 지식과 역사가 없어도, 이 책은 풍자와 유머와 되새겨볼 의미로 가득한 특별한 책의 책이다. 그가 권하는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어떠랴. 얀 마텔이 진정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한 권 한 권을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왜 읽어야 하는지, 문학을 읽지 않으면 세상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도 안 읽는다면 “세상을 명철하게 바라볼 수” 없을 것이고, “상상력이 죽어”버릴 것이고, “삶의 진정함 공감도” 느끼지 못하며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삶은 조용한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는 건 우리뿐이다. (26쪽)
시의 경이로움은 질문처럼 짧지만 대답처럼 강력하다는 데 있습니다. (81쪽)
책은 요정이 들어 있는 병입니다. 책을 문지르고 열면, 우리 마음을 빼앗는 요정이 뛰쳐나옵니다. 요정이 있는 병을 갖고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정말 흥분되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그런 병들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병을 문지르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187쪽)
일과 가족과 성격이 낯선 곳을 찾아가는 기회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책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면 거친 산야와 싸워야 하는 배낭여행족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210쪽)
누구도 파괴할 목적에서만 열심히 일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뭔가를 새롭게 건설해내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잔혹하고 서글픈 사건들로 채워지더라도 그 이야기의 효과는 언제나 정반대의 것입니다. 따라서 즐거운 이야기는 즐거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잔혹한 이야기는 반어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동정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잔혹행위를 거부하게 되니까요. (213쪽)
지금 수상님의 손에 쥐어진 책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어서 그 책에 어떤 가격을 매긴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짓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저는 수상님에게 사 달러 오십 센트를 청구할 생각입니다. (225쪽)
결말이 무척 흥미롭긴 하지만 한결같이 비극적입니다. 여기에서 삶의 지혜가 얻어집니다. ‘독자+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이야기=더 현명해진 독자’라는 수학 방정식과 비슷하다고 하면 아시겠습니까. (226쪽)
문학의 세계에서 모든 독자는 평등합니다. 다른 소매점과 달리, 서점은 고가품과 저가품을 실질적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서점은 그냥 서점입니다. 독자의 계급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서점에서는 누구나 환영받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학식이 높은 사람과 독학하는 사람,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 진취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 등 모두가 똑같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도 서점에서 여왕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271쪽)
제가 좋아하지 않는 책을 수상님께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까지 폭넓게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폭넓게 읽어야 독학자가 흔히 빠지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독학자는 자신의 한계에 맞는 책들을 주로 선택해서 그 한계를 굳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285쪽)
예술은 다른 현실, 다른 세계, 다른 선택을 우리에게 더 명확하고, 더 밝게 더 가까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미경인 동시에 망원경입니다. 예술은 현실이 잉태되는 풍요로운 꿈입니다. (396쪽)
고유한 목소리가 있다면 문학이 있는 것이고, 없다면 문학도 없는 것입니다. (482쪽)
수상님을 위해 책을 선정하고, 그 책을 읽거나 다시 읽으며 그 책에 대해 생각하고 거기에 걸맞은 편지를 쓰는 일, 또 그 편지의 번역을 제 부모님께 부탁하고 그 번역에 대해 두 분과 의논하는 과정, 책의 겉표지를 스캔하고 영어와 프랑스어 편지들을 관련된 웹사이트에 업로드하는 작업, 끝으로 격주로 월요일에 정확히 수상님께 도착하도록 책과 편지를 부치는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연적으로 들어갑니다. 수상님께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이 과정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5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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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을 읽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는가가 관심이고, 요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해 먹는가가 관심이며, 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가 관심인 것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가가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얀 마텔이 쓴 책에 관한 책이다. 나는 지금까지 몇 권의 이런 책을 읽어 봤는데, 얀 마텔은 특이하게도 캐나다 수상에게 편지 형식으로 그 글을 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캐나다 국적의 작가고, 자기네 수상에게 보내는 것은 어떤 면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다 자기네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상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별히 한 나라의 수장에게 어떻게 감히 책을 읽으시라 직언하면서 매 격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 용기와 발상이 나름 독특한 것 같아 관심이 간다. 제목도 참 직설적이 아닌가.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라니!
그런데 얀 마텔과 캐나다 수상은 좀 재미있기는 하다. 책의 머리말을 읽어보면, 정치를 하는 사람 일수록 문학을 읽으라는 직언과, 바쁜 일정에 도무지 책 읽을 짬도 없고 더구나 문학에 관심도 없는 수상이 이런 편지를 받게 됐으니 그 밀당이 흥미롭다. 직언을 들어 좋을 리 없는 수상은 때로는 비서를 시켜 보냈을 편지에 대한 답장이 공손하지만 거부의 가시가 있다는 말을 얀 마텔은 서슴없이 책에 밝히기도 한다. 그것은 수상이 자신의 편지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자신은 끝까지 보내겠다는 의지로도 해석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낸 편지가 101통이고, 2008년부터 시작한 편지가 2011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무려 햇수로 4년여간이다. 더구나 이 작가는 편지만 보낸 것이 아니고, 충실하게도 해당되는 책을 보내기까지 한다.
그런데 또 특히한 것은 해당책을 보내면 깨끗한 새책을 보낼 것 같지만 가끔은 헌책방을 뒤져 헌책을 보내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것을 받는 수상의 마음은 어땠을까? 처음엔 자신이 뭐가 부족하여 이런 편지와 책을 받아야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또 무슨 악의가 있어 보낸 것은 아닐테니 받아는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받으면서도 조금 이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얀 마텔의 편지는 달을 넘기고, 해를 넘겨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쯤되면 아무리 문학에 문외한이더라도 보내주는 정성이 가상하여 한번쯤 읽어 볼 마음도 생길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다. 얀 마텔은 그렇게 편지를 보내면 계속해서 수상의 답장을 받았는지. 앞부분에서만 수상의 답장을 이런 식으로 받았다고 밝히고 있지, 그의 편지 하나 하나에 수상이 뭐라고 답했을런지에 관해선 나오지 않고 있다. 하긴 워낙에 바쁘신 분이니 꼼꼼하게 편지에 대한 해당책을 읽고 답장을 했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보내도 형식적인 인사치레정도였겠지. 아, 답장 없는 편지를 쓰기란 또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일인가? 하긴, 누구는 작가는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고 했으니 답장없는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것엔 이골이 나지 않았을까?
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얀 마텔은 너무나 명확하게 이렇게 쓰고 있다.
선진 국가의 조건은 그 나라가 국방만 튼튼하다고, 정치나 경제가 안정됐다고, 복지가 앞섰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나라의 문.사.철이 올바로 서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이 분야에 깨어 있는 사람의 말과 글을 즐겨 듣고, 실제로 등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얀 마텔 그런 편지를 보냈다고 해서 정치에 딱히 관심이 있어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이런 글을 썼던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자신의 나라 수상이 문학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쉬웠던지, 수상에 대한 애정이었는지 자신이 읽은 문학 작품으로 끊임없이 구애의 편지를 해댄다. 제발 문학 좀 사랑해 달라고. 나는 그점에서 얀 마텔이 왠지 낭만주의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사람 정치의 테이블에 참모로 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무리 측근에 괜찮은 참모가 있어도 정치에만 골몰할 테니 약간의 엔터테인먼트한(실제로 얀 마텔은 이런 표현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비정치인을 가까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니라나는 어떤가? 과연 올해 새로 당선된 새 대통령에게 문학으로 직언하는 참모가 있을까? 갑자기 캐나다 그 나라가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했다(사실 난 캐나다를 그리 동경하지는 않는다. 다른 뜻은 없고 추운 것과 나와는 상극이니까). 얀 마텔은 고맙게도 우리나라의 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지 않았다.
이 책은 캐나다 수상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띄고 있지만 실제로는 작가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얀 마텔. 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는 직접 책으로 읽어보면 될 것이고, 읽다보면 작가의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곳곳에서 느껴져 좋았다. 하지만 이런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은, 저자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뭐하는 건가 하는 자과감 내지는 열등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런 점만 특별히 주의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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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전』 / 반덕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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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을 매우 효과적으로 물먹이는 방법, 그것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내게 알려 주었다. 얀 마텔은 문학을 이용해서 정치인의 교양을 일깨우고, 그의 불손과 무례와 무지를 대중들에게 폭로하는 매우 고상한 유머를 알려 주었다. 얀 마텔은 2007년부터 4년간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101통의 편지를 보냈다. 격주로 쓴 그의 편지는 그가 총리에게 강추하는 문학작품과 더불어 배달됐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101번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총 105권의 책을 선물한다. 그러나 총리는 단 한 통도 답장하지 않았다.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마텔이 바로 이런 문학의 진정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그것도 무척 색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대한 책은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겉보기에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 같지만, 책을 덮고 나면 세상을 더 명철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컨대 책은 세상을 더 날카롭게 관찰하는 눈을 독자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283-4쪽)
정치인의 민낯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문학적인 방법. 바로 얀 마텔이 내게 알려준 노하우다. 비록 총리의 비서관들이 감사의 편지를 사무적으로 보내오긴 했지만 하퍼 총리는 단 한 번도 마텔이 언급한 책이나 편지 내용에 대해 아무런 언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4년 동안 꾸준히 편지와 책을 보내는 마텔도 분명 놀라고 서운하고 힘이 빠졌을 것이다. 정치인의 이런 철저한 무응답도 일종의 답신의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무감각한 일관성은 그 정치인을 무척 오만불손한 사이코패스적 인물로 보이게 한다. 솔직히 4년간 격주로 행운의 편지를 받았어도 이토록 야무지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저자의 원래 의도는 한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결코 아니었다. 마텔은 그저 시민적 가치에 기대어 한 국가의 수반과 무언가 문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모험을 감행한 셈이었다. 저자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정치에 투신한 인물이라면 과연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떤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인지를 부단히 고민해야 하는데 문학 작품이 바로 그런 정치적 고민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모험의 결과는 얼핏보면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광대 신세였다. 정말 문학을 사랑하는 정치인이라면 한 작가가 자신을 위해 정성껏 독서목록을 짜주고 소설책과 시집을 선물하고 거기다 책에 대한 소감까지 적은 편지를 보내준다면 무척 기쁘고 행복해 할 것이다. 그런데 하퍼 총리는 마치 죽은 송장처럼 꿈쩍도 않았다. [파이 이야기]를 읽고서 마텔에게 친필 서한을 보낸 오바마 대통령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국역본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도 실려 있는데, 과연 마텔은 각하로부터 친필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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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라는 이 책은 제목부터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눈에 띄는 책이도 했지만 굳이 각하가 아니더라도 나 또한 책을 좋아하지만 가장 적게 읽는 분야가 문학이니만큼 왠지 문학에 대해 어렵다고 느끼는 편견들을 스스로 깨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안고 본 책이었다. 얀 마텔은 자국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격주로 보낸 편지 묶은 책이라고 한다. 나는그가 스티븐 하퍼 수상에게 몇년동안 이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상상하니 그의 정성이 대단하는 생각마저 들었고 문학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에게도 무엇이 그토록 그를 이끌었는지, 왜 그는 문학을 이토록 사랑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했으며 그 답은 이 책에서 찾을수 있을거라고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나와 또 다른 인연을 맺은 수많은 책들이 답해줄거라는 확고한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나와있는 101권의 책들을 보면서 좋은 문학작품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나에게도 손에 꼽힐만큼 소중한 책으로 남아있는 앵무새 죽이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역시 명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밖에도 고도를 기다리며, 명상록, 덜 악한 것: 테러시대의 정치윤리, 싸구려 행복, 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읽어보고 싶은 책들도 눈에 띄었다. 내가 비록 정치를 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문학에서 좀 더 배우고 느껴야 할 것들이 많으며 그것이 내가 현재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들에게 대해서 좀 더 바른 질서를 잡아주고 올바른 지향점을 찾아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앵무새 죽이기 대한 내용 중 마음은 언어를 위해 필요하고 언어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말해지고 이해되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라는 글은 내게 몇차례나 반복해서 읽었던 부분이고 말해지고 이해되어 할 것들이 많다는 것에서 내 스스로 생각되는 바가 컸다. 내가 너무 내 삶에서 이해되지 않은 것, 말하고 싶지 않은 것에만 집중하고 산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세상의 반만 보게 될것이고 보는 것보다 보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 큰 아픔일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시선집에 대한 내용 중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이게 내 지향점이다.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타협은 없다는 글을 읽으며 내 스스로 예술가는 아니지만 내 지향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고 공간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생각할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101권의 책과 편지의 내용등을 보며 여러가지로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많았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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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는 단순하지만 한없는 사랑이 있어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다. (p.62)
사랑 자리에 문학을 쓰고싶기도 한 사람이 얀 마텔이었을 거다. 문학을 좋아하고 사모한 나머지 책없이 못살게 되어버린 문학애호가들의 마음과 <파이 이야기>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작가가 된 얀 마텔의 마음이 같아지는 지점에서 이 책은 원래 목적인 스티븐 하퍼 수상 외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선물이다. 얀 마텔이 101권의 책과 편지를 띄우면서 수상과 자신, 독자에게 하고자했던 이야기를 행간에서 읽어내고, 문학이 개인의 세계를 얼만큼 풍요롭게 하는지 알고나면 이 모든 책을 우리 대통령님에게 보내고픈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읽기는 결국 세계의 끝과 끝이 만나고, 가장 보잘 것 없고 소박한 존재에게까지 미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얀 마텔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한 나라의 수많은 국민의 마음 속에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퍼 수상에게 책을 소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몇몇 책과 편지에 대해 보좌관들을 통해 대리편지를 보내오기는 했지만 끝끝내 답장이 없던 하퍼 수상의 고뇌와 망설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몇 줄의 진심어린 답장으로도 가능했을 일, 캐나다국민은 물론 일개 한국 독자가 궁금해하는 독서취향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얀 마텔의 지극한 문학사랑과 문학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삶의 통찰, 소소한 행복, 작은 희망, 큰 의미를 배웠다는 점에서 원래 문학에 지극정성인 독자로서 자부심과 따스함을 느낀다. 인문학으로부터 나오는 현실적이면서 상세한 시공간적 배경에 문학이 주는 상상력, 공상, 폭넓은 세계가 더해지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도, 적어도 문제해결의 난관에서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내공이 생기지 않을까. 얀 마텔이 문학만 읽는 독서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문학을 쓰는 예술가로서, 상대적으로 덜 읽히거나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평판을 받는 문학의 오른손을 들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새삼 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말할 필요나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어떤 책을 읽느냐보다 책을 읽거나 안 읽거나의 문제가 대두인 세상에서 어느 책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수고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는 점도 한몫한다.
말과 글을 가지고 생각이란 걸 하는 국민이 있다면 그 어디에서도 문학은 존재할 수 있다. 할머니 무릎에서 듣던 옛날 이야기나 아프리카 대륙의 구석진 부족들이 둘러앉아 서로가 서로의 귓가에 속삭이는 전통과 노래들, 지금 읽지 못한 책에 대해 다이제스트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로 듣는 얀 마텔의 이 책 속 언어까지. 노래와 말, 생각은 곧 문학이다. 이미 읽은 책, 아직 보지 못한 책, 처음 알게 된 문학작품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섞인 이 책 속의 101편의 문학이 나는 물론 당신에게도 문학에 대한, 문학을 향한, 문학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읽는 게 먼저, 생각을 나누는 일은 다음이다. 편지가 짤막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담아내고 있어 다양한 국적의 작가와 작품, 소재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나열식의 다이제스트를 벗어나 문학을 통해 하고싶은 얘기를 찾아낸 얀 마텔의 통찰과 입담에 박수를 보낸다. 별이 하나 빠진 건 101편씩이나 되는 문학을 전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형식의 부단한 반복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서다. 문학작품을 제대로 읽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누군가에게 소개해주는 일은 두말할 것 없이 멋지고 신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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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전공했는데, 회사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문학책을 손에 쥔 적이 없었다. 경제경영 책을 통해 업무에 관한 공부하느라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좀 사치스럽고 여유가 있을 때나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조차도 현업 관련된 책 외에는 잘 읽기가 힘든데, 얀 마텔은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격주 1권씩 무려 4년간 101권의 문학 책을 읽으라고 책과 함께 편지를 보낸다. 왜 그랬을까?
얀 마텔은 자기 위에서 자기를 지배하는 정치가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문학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수상이 직접 쓴 답장은 단 한 통도 받지 못한 얀 마텔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학을 읽지 않는 스티븐 하퍼를 절대 본받지 말고, 늘 문학책을 가까이 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를 본받아야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과연 박대통령은 어떤 정치인일지 궁금하다.
근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편지 글이다. 101개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하나의 책에 대한 소개가 세 장을 넘어가지 않는다. '하퍼 수상님께'로 시작하는 편지에 소개하는 작품의 작가 설명부터, 간단한 줄거리 요약과 왜 이 책을 읽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밝고 명랑하게 써내려 가서 읽힘이 쉬운 편이다.
편지에서 소개한 작품을 보면, 저자가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편지에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추천하였는데,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만화를 통해 표현한 대작이라고 평했다. 또한, 저자 대신 다른 작가, 찰스 포란이 보냈던 편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유명한 중국 루쉰의 '광인일기'는 단편이지만 상당한 시대의식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루쉰은 중국 국민이 선정한 20세기 중국 문화 아이콘 10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루쉰을 톨스토이와 위고로 비유한 것이 흥미로웠다. 100개의 작품이 단편이어서 200쪽 내외의 작품들인데 반해, 마지막에 보낸 101번째 편지에서는 자신이 읽으려고 계획한 4,347쪽에 달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권한다. 난해한 책이지만, 두려움과 나태함을 극복하도록 하는 책이라 같이 도전해보자고 제안한다.
받는 대상이 문학과 거리가 먼 정치인이어서 왜 이러한 무모한 짓을 했을까 의아했지만,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형식은 편지글이지만,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지라, 이 책은 처음부터 읽을 것 없이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책부터 찾아 읽어도 좋겠다. 모두 서양작가의 작품이고, 단 두권이 동양작가의 작품인데, 중국 루쉰의 광인일기와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오후의 예항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없는 것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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