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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들리고, 눈을 감으면 안다. (133페이지)
그림을 좋아한다. 책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 보곤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희망」이란 그림. 그림을 넣어 둔 거울속에서 만난 그림을 보며 저자는 절망 만이 가득한 그림 속에서 간절한 희망을 빛을 보는 것이다. 희망을 빛을 가리게 하얀 천으로 눈을 가렸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게 말은 신발도 신지 않는 맨발이다. 그곳에서 희망을 엿본 저자의 그림을 보는 방법을 배웠다.
저자 황경신은 33편의 그림을 이야기한다. 그림을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황경신이 이야기하는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 그림을 속속들이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의 그림에 관련 된 책들은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돈이 없어 모델을 살수 없는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화가에 대한 마음을 열고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황경신은 그림을 달리 보는 방법을 가르켜 준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그림을 보며 그림속에 깃든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그림속의 이야기는 정말 진실인것만 같다. 아래 그림 「새장을 든 소녀」도 왠지 사랑을 기다리는 한 소녀가 새장 속의 새에게 노래를 가려켜주려는 것만 같다. 이렇게 그림속의 소녀의 이야기는 사실처럼 다가든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요제프 리플로너이. 「새장을 든 소녀」
황경신이 이야기하는 제임스 티소의 「지나가는 폭풍」을 말할때는 폭소를 터트렸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남자, 그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서도 폭풍이 오기를 바라는 여자의 바램을 말했다. 폭풍이 오면 비가 내릴테고, 비를 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는 여인,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저 여인을 보라. 때로는 평범하게 다가드는 사랑이 좋음을 모르는 것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랑, 잊을 수 없는 기억 한 자락을 갖기 위한 여자의 모습이다.
제임스 티소. 「지나가는 폭풍」
글의 첫머리에 있는 말처럼,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이 들린다. 언젠가 친구들과 등산을 할 때이다.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산행을 하고 있을 때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게 걷고 있을 때의 새의 지저귐은 굉장히 기분을 싱그럽게 만들었다. 산속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하나의 새가 지저귀면, 다른 새는 다른 지저귐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산속이었기에 들리는 새소리, 평소에 듣지 않았던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우리가 눈을 감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때, 눈을 감고 명상을 하게 된다. 무념무상의 시간을 갖가고 하는 명상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한참이 걸린다. 눈을 감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이 난다. 마치 그림처럼 그 광경이 보이는 것이다. 갖가지 생각들을 버리고자 하지만 그 생각들은 날개가 되어 춤을 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애써 지우고자 했던 것들도 생각나, 때로는 지우고자 고개을 흔들기도 한다.
![]() 로렌스 알마-태디마. 「실버 페이버리츠」
여태 그림에 관련된 책을 읽어왔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과 화가의 이야기가 있는 글들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그림을 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심미안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속의 그림과 작가가 그림을 보고난 뒤, 눈을 감고 생각난 것들을 그린 이야기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지어낼 수도 있을것 같다. 그림을 본 뒤,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우리만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경신이 눈을 감고 이야기하는 이별, 슬픔, 성장,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읽고 본다. 그림을, 그림속의 이야기들을. 그림속의 이야기들을 우리만의 이야기로 만든다. 눈을 감으면, 이제 그림이 보인다. 그림속의 이야기들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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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하게 스토리 라인보다 곱디 고운 문체로 기억되는 작가가 있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가 신경숙.. <깊은 슬픔>을 읽고, 소설인지 시어인지 노래하듯 풀어내는 고운 문체를 처음 접하고, 나는 작가 신경숙을 열렬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을 보내고, 우연히 읽은 소설<달려라, 아비>로 나를 홀린 풋풋한 젊은 작가, 김애란을 알게 되었다. 무방비 상태로.. 그 어떤 기대나 계획도 없이 읽기 시작한 <달려라, 아비>.. 그녀의 글은 신경숙의 문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나를 사로 잡았는데,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스치는 생각을 놓치지도 않고 휙휙~ 낚아서 풀어낼 수 있는지.. 그녀의 필력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2013년 5월.. 작가 황경신.. 낯선 작가의 신작 <눈을 감으면>을 읽고, 신경숙과 김애란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탄과 놀라움을 다시 느끼며..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느낀다.'는 오래된 카피 문구를 떠올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황경신이라는 작가는 신경숙의 곱디 고운 문체와 김애란의 사소한 일상에서 흩어지는 생각을 붙잡아 그려내는 필력을 모두 가졌구나.. 느꼈다. 모두다 옮겨 적고 싶을 만큼 고운 문체가 가득해서..일일이 옮기는 것은 포기! 대신, 내가 미처 낚아채지 못했던 생각을 담은 글들만 추려서 블로그에 옮겨두었다. 그녀는 이 책 <눈을 감으면>에서 33개의 그림과 그 그림으로부터 그녀의 머리속에 불러일으켜져 떠도는 사유를 이별, 슬픔, 성장, 사랑이라는 네가지 틀 안에서 멋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낯선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낯선 그림들.. 그러나 눈을 떼기 어려운 그림들과 그녀의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일야화>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매일 밤을 기다린 그 마음이 그러했을까? 한 편, 한 편.. 아까운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내가 뱉은 말.. 내가 쓴 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왜곡되어 받아들여져서 답답했던 날들이 많았다.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니 그런뜻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건... 사랑한다면서 왜 몰라주는거야?' 이런 속상했던 상황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 글을 보고 .. 아! 그런 것이었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처럼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고, 누가 봐도 똑같이 읽히는 글이 어째서 왜곡되고 변질 되었을까? 살면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말로 그려지지 않는 생각을 토해낼 때, 참 답답하다. 아주 가끔은 그런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지 못함에도.. 눈치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간 무엇인지 말로 풀어내지 못했던 그것이 무엇인지 글로 조근조근 풀어내어주니.. 황경신! 이 작가가.. 이 책이.. 더없이 반갑다. 유레카!! 책 중반에.. 광대의 여인이라는 짧막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디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시거든 꼭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황경신이란 작가가 사라지기 쉬운 생각을 쏙쏙 잡아다 곱게 엮기만 잘하는게 아니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테니.. 5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에.. 정말 고운 책을 만났다. 들꽃같은 글을 송송이 엮어서 곱게 풀어낸 책.. 감정선이 여린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책.. 읽고 나서 꼭 안아주게 되는 책이다.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넣고 둥둥 떠다니다.. '황경신처럼 글을 잘 쓸수는 있지만, 그녀처럼 쓸수는 없다'라고 평한 글을 찾았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 나 역시 풍덩 빠져버렸으니.. 이제 그녀의 다른 책에 빠져보려한다. 무엇이 좋을까? ![]() 참, 초판 마지막 표지 날개를 들추면 이런 멋진 책갈피가 숨어있다. 즐거운 책읽기에 더없이 좋은 친구!! 센스있는 깜짝 선물에 책읽기에 날개를 달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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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나 말을 잃어버린 그림이라고 잠깐 생각했었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알겠다. 이제 막 숨을 쉬기 시작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듯한 느낌에 탄생의 신비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한 점의 그림에 하나의 삶을 불어넣어 살아가게 만드는 것처럼, 황경신은 자신이 본 그림들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혀주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것마저도 옳게 보지 못하는 게 수두룩한 하루하루일지도 모르는데, 없었던 이야기를 마치 그동안에 숨어 있다가 나온 듯한 느낌으로 우리 앞에 풀어낸 이야기들이다. 그림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펼쳐냄으로써 또 다른 시선으로 그 그림을 보게 만들더니, 그리는 이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이야기 한편이 이 그림을 보는 황경신의 시선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우연히, 작가의 여행길에서 마주친 한 점의 그림이 그 제목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었던 것을 알아채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결국은 보고 있던 그 순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더 흐른 후에,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리는 느낌들이 그녀의 손에서 한편의 이야기로 재탄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그림보다 더 깊이, 더 애틋하게...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사람의 사정 같은 것과는 별개로, 살다 보면 비가 내리는 날도 있었고, 내리지 않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우산을 갖고 있거나 말거나, 그로 인해 연이들의 운명이 변하거나 말거나, 비는 신경 쓰지 않는다. (38페이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때로는 비가 오는 날에 우산 없이 걸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굵은 소나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게 우리의 삶이라면 자연스럽게 맞아야 한다고... 설령 그게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이별일지라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삶이 이치인 것처럼 들린다. 이미 때늦은 후회 앞에서 아픔을 만나는 것도 견뎌야만 하는 것이라고.
<책상 앞에 앉은 성 바울 / 렘브란트 판 레인> “내가 아는 건, 인생이란 견디면서 기다리는 거라는 거야. 기다리는 게 온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지. 그래, 이전에 나는 잊기 위해 글을 썼네. 무언가를 끝내려고. 아니면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썼지.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103페이지)
「책상 앞에 앉은 성 바울」의 그림으로 태어난 한 노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삶은 견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담담함을 갖게 한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다 받아들이겠다는 듯한 회한의 분위기는 후회의 순간을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감당하는 모습이었다. 내 삶에서,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것도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내 몫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지나가는 폭풍 / 제임스 티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잃을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인 우리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무언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림 속의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를 잃어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뭔가를 가져야 하잖아요. 지금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괜찮은 기억도, 그럴 듯한 추억도.” (199페이지)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자신의 인생을 채울 어떤 것들을, 그게 휘몰아치는 폭풍일지라도... 한번 맞아보고 경험하는 것, 그 경험의 결과가 쓰디 쓴 약을 넘기는 것처럼 고통스럽더라도 부딪히고 닿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폭풍도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실버 페이버리츠 / 로렌스 알마 - 테디마>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자매의 모습은 평범한 어느 집의 오후 한때를 보는 듯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는 세 여인은, 같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결국은 그 가지를 뻗어 제각각의 생각과 인생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삶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의 이상형, 결혼관, 살아가는 태도. 모든 것이 다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며 호흡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그 다름으로 인생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 시간일 테지. 아마도...
<음악 수업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소녀여, 그대가 읽고 있는 편지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오래오래 기억하기를. 이토록 짧은 삶의 티끌 같은 사랑을 위해,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를 위해 슬퍼하기를. 그리하여 이 완성되지 않은 사랑이, 내가 그대에게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언젠가 그대가 알아주기를. (186페이지)
33편의 그림이 이별과 슬픔, 사랑과 성장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져가고 있었다. 그저 벽에 걸린 그림 하나였을 뿐이었는데, 싶은 마음은 어느 순간 새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사연(?)을 가진 표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던 것은 그 시간을 살아가던 삶의 주체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 그 안에서 이별이나 슬픔을 겪더라도 사랑을 하고 성장을 하는 것 역시 그들이라는 것이다. 그건 저자가 첫 번째 그림으로 들려주었던 ‘희망’을 품은 결말로 가기 위한 과정인 듯했다. 그림이 품었던 단어인 ‘희망’을 저자가 찾아냈던 것처럼,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것들이 가진 의미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시간이 흘러 당장 내 눈앞에 없어도, 눈을 감고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림 뒤에 가려졌던, 혹은 가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미처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작가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이 매력적인 책이다. 그림 하나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더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제각각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하나 심어두고 보는 그림이 있다면 그것도 썩 괜찮은 위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나만의 그림 한 점에 나만의 이야기 한 편, 괜찮지 않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들리고, 눈을 감으면 안다. 현실은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감은 눈으로 그녀는 언제나 더 중요한 것을 보았다. (13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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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그림에 조예가 깊거나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림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고,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한다. 다만, 한때 친했던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 친구는 나와는 사뭇 달랐고, 조금 특별했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으며, 세상의 편견과 오해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대학 시절, 그 친구가 다녔던 대학의 캠퍼스 안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그 친구는 옷을 모두 벗은 채 그 연못에서 수영을 했다. 단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친구는 그 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친구도 그 대학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했다. 갑작스레 결혼을 했고,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예정에도 없던 아이가 태어났다. 삶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아주 가끔씩 보았던 친구의 모습은 볼 때마다 여위어갔다.
제 멋대로 자란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으로도 그의 야윈 얼굴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깊이 패인 주름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가 살던 도시의 번화가 한 귀퉁이에 작은 화실을 내고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그림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띄엄띄엄 얼굴을 비치던 친구는 그때마다 정신을 놓을 정도로 심하게 취하곤 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친구는 그가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여 단독주택 반지하로 거처를 옮겼다. 집들이를 한다기에 겨우겨우 찾아갔던 그의 집. 그때 나는 빛도 잘 들지 않는 그의 집에 집들이 선물이라며 창문에 롤스크린을 달아주었다. 친구라고는 달랑 나 혼자였던 그날의 집들이에서 그의 아내는 구운 고등어와 김치 몇 가지를 올린 밥상을 내오며 그냥 가겠다는 나를 한사코 붙잡았었다.
IMF 금융 위기는 그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상과 한걸음 떨어져 살던 그 친구에게 'IMF'는 멀리 비껴가는 한 줄기 바람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렇게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결혼을 했고, 한동안 바쁘게 지냈고, 가까운 곳에 살던 친구들 몇몇만을 줄기차게 만났을 뿐이고, 그렇게 잊고 지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내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 우연히 방문했던 또 다른 친구의 사무실에서 들었던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은 한동안 나를 얼어붙게 했다.
살아서는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반지하의 단칸 셋방에서 그 친구는 끝내 목을 맨 채로 세상릉 떠났고, 그렇게 그는 빛도 잘 들지 않던 그 방을 스스로 벗어났다고 했다. 아이 둘과 아내를 남겨둔 채. 그 방에서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자화상을 나는 끝내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로 인해 가끔씩 찾던 갤러리도 발길을 끊었다.
황경신 작가의 <눈을 감으면>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그 친구를 생각했었다. 화가에게 그림은 숨겨진 삶의 이야기이며, 어쩌면 그것은 지나온 세월의 종지부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일 터였다. 황경신은 그 아픈 상처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끄집어내어 독자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와츠가 그린 <희망>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프롤로그를 대신하여') 이어 펠릭스 발로통의 <옷장을 뒤지는 여자>와 그녀가 선택한 다른 7점의 작품에서 보았던 이별 이야기, 앙리 팡탱라투르의 <밤>을 비롯한 8점의 작품에서는 슬픔을, 장-밥티스트 그뢰즈의 <깨진 거울>과 다른 11점의 작푼에서는 성장을, 그리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음악 수업>과 다른 7점의 작품에서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이인의 <자화상>과 <화색, 비움>을 배치하여 에필로그를 대신하고 있다.
나는 책의 첫장부터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서성였다. 밤이면 내 숙소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마치 레퀴엠처럼 여겨지게 했던 이 얇은 한 권의 책이, '이별'부터 시작하던 감정의 이입이,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비가역성이 나를 슬프게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즉각적으로 '슬픔'을 떠올리게 했던 건, 그 시절의 운명이 나에게 혹독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희망의 뿌리는 슬픔이며 슬픔에서 벗어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희망은 슬픔 그 자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유를 따져보자 막막해졌다.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p.5)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이목구비가 없이 실루엣의 형체만 그린 이인의 <자화상>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친구를 만나지 못했던, 어둠에 묻힌 몇 해가 이인의 어두운 자화상 속에서 아픈 색깔로 채색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자화상> 속에 빗줄기처럼 녹아들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 당신을 본 적이 있다. 새벽이었다. 난폭한 꿈에서 밀려나온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 지하 세계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라온 것 같은 회색빛 안개가 낯선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습기를 잔뜩 품은 바람이 불어와 내 뺨과 머리카락이 금세 축축해졌다. 당신은 골목 모퉁이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자의 형체였다." (p.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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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벚꽃이 날리는 듯한 표지 그림이 신비로운 느낌이 들어서 반드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더랬다.
표지그림의 제목 : 오딜롱 르동의 <꽃이 핀 나무 아래의 인물>(부분)
그림 전체를 보고 싶어 인터넷을 헤매어 찾아봤으나 실패..ㅠㅠ
책과는 별개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는 게 내 동생이야. 누구의 우산 속으로도 뛰어들수 있는 아이라고. 그리고 우산을 내어준 사람은, 그 아이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기뻐해버리고 말아. 자신이 그 아이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억울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는 사람.
프레더릭 차일드 해섬의 <비 오는 날의 피프스애비뉴>를 한참을 들여다봤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림보는 재미, 웬지 진짜일것 같은 그림스토리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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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유럽 여행에 갔을 때, 도시마다 미술관에 들렀다. 딱히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미술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던 나는, 결국 남들이 한두번쯤 들르는 유명한 박물관들을 뒤로하고 하루종일 미술관에 머무는 날이 늘어났다. 그렇게 결국 미술관에서 산 그림 엽서가 쌓여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비가 내렸다. 나는 비닐에 싼 우산을 들고 조심스럽게 미술관을 걸어다니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그려 놓은 그림 하나에 매료되어 하루 종일 그 그림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그림 속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그림 속 하늘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 자꾸만 그때의 공기가 생각났다. 축축한 공기, 여행자들의 냄새, 조심스러운 발걸음.
황경신님의 글에서는 늘 물감이 마르는 냄새가 난다. 또는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림이 있는 글에서도 그렇고, 그림이 없는 글에서도 그렇다. 그림과 그림 사이의 이야기. 그리고 글과 글 사이의 그림. 어떤 그림에서 이런 글이 나왔을까, 또는 이런 이야기로 어떤 그림이 완성되었을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챕터 하나하나가 넘어갔다. 마음이 두근거릴 때 마다 나는 조심스레 책에 밑줄을 그었고, 그때마다 눈을감고 그림 속에 들어가 있었다. 결국 나는 밤새 계절을 알 수 없는, 어느 유럽의 미술관 안을 서성거리는 꿈을 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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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paper) 편집장으로 오래전부터 익히 잘 알고 있었던 황경신 씨의 이야기책을 이번에 처음으로 읽었다. 사실 저자 소개에 페이퍼(paper)에 대한 이야기 없어서 적잖이 당황했는데, 그래도 펴낸 책 목록에 많이 들어보았던 "종이인형"이 적혀 있어서 내가 아는 그 황경신이 맞음을 직감하였다. 첫 장 부터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이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희망의 뿌리는 슬픔이며 슬픔에서 벗어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깨달음을 구체화 시킨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먼 이국땅에서 여행하며 우연히 다시 마주했던 사연, 희망이 희망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희망 외의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눈을 가린다는 명제가 가슴을 울린다. 이 책은 이별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는 서른 세편의 이야기가 상황에 맞는 회화 작품들과 함께 실려 있다.
팰릭스 발로통, 프레더릭 차일드 해섬, 윌리엄 메릿 체이스, 로렌스 알마-태디마 등 우리에게 낯선 화가들과 르누아르, 칸딘스키, 마티스, 고갱, 뭉크 등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들의 그림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적인 이 책은 진짜 그 그림 속 이야기라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글에 의해 또 한 번 감동받게 된다. 사실 작가의 글은 특징이 있어 보였다. 우선 나의 세계는 작고 가벼웠다든지, 영원한 무(無)가 되길 희망했다든지, 무정한 여인으로 연기한다던지 하듯 이야기 속 주인공은 대부분 가볍고, 상처받은 이후 세상에 무감각하게 살아가려 하고 있다. 또한 언니와 동생이 각자 입장에서 쓴 이야기, 걱정이 많고 치밀하게 계획을 하는 남자와 별 걱정 없이 사는 여자 이야기, 레슨 선생님과 17살 난 제자의 서로 다른 시각에서의 사랑 이야기, 왼쪽과 오른쪽의 이야기 등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한 쌍을 대조하며 파국을 예견하고 있다.
그 밖에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넝마주의자라는 표현, 괴물의 입에서 괴물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는 표현, 그리고 슬픔이란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든가 누군가 박다 만 못과 같다는 비유는 참신했다. 이 책의 이야기들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이라면 "광대의 여인"이라 하겠다. 어디서 읽은 거 같기도 하고,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한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보여주는 반전이 압권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눈을 감으면"에서는 눈을 감으면 보이고, 들리고, 안다는 주장과 함께 밋밋한 오딜롱 르동의 "감은눈"이란 그림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정말 눈을 감으면 나에게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페이퍼(paper) 잡지를 마주한 것도 거의 15년 전쯤인 거 같다. 눈을 감으니 1990년대 말 그 때의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작가 황경신의 힘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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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속을 원했고, 나는 단절을 원했다. 당신은 모든 것이 영원한 미완성으로 남기를 원했고, 나는 완전하고 완벽한 완성을 원했다. 당신은 타오르는 여름 안에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고자 했고, 나는 겨울이 곧 다가오는 서늘한 가을 속에서 안식처를 꿈꾸었다. 친절한 세월이 우리를 멀리까지 데려왔으나, 그래도 나에게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온 것보다 더욱더 먼 길. 그리고 기다림에 대해 말하자면, 나로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마치 당신이 부드러운 멜로디의 애조(哀調)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우리는 그렇게나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햇살 가득한 이쪽 길을 걷고 있었고, 당신은 그늘이 진 저쪽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발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지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신과 나는 가끔 걸음을 멈추었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이 길을 건너 다른 편으로 넘어가겠다는 결심은 선뜻 하지 못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는 순간마다 나는 멈칫거렸지만, 그때마다 당신은 갑자기 흐려졌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매번 신호가 바뀔 때마다, 깊어졌나, 사랑은? -황경신, <눈을 감으면>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음악 아래서 황경신의 글은 위험하다. 황경신의 글은 고유한 리듬을 갖고 있어서, 그 리듬을 따라가다 어느덧 길을 잃고 주저 앉게 된다. 황경신의 이번 책도 마찬가지. 이별/슬픔/성장/사랑의 네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그림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렬한 씬(scene) 하나를 던져주고, 그녀의 글이 조용한 목소리로 거기에 숨겨져 있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하지만 그녀의 모든 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글은 편차가 심해서, 어떤 문장은 감탄을 터트릴만큼 좋지만 어떤 문장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위해 억지로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끝내놓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이야기들은 먼저 이야기가 쓰여지고 나중에 그림이 그려진 것 같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그림을 빌려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글이 위험한 것은 변함없다. 문장 안에서 주어의 위치를 바꾸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순간에 나는 그야말로 대책 없어진다. 그녀의 글에 묻어나는 것은 화려함이나 발랄함이라기 보다는 애잔함, 쓸쓸함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는 그녀와 인터뷰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할 때는 녹음기조차 꺼내놓지 않고 인터뷰를 하는데, 후에 인터뷰한 것을 보면 그녀만큼 자신을 가감없이 잘 그려낸 인터뷰이도 없었다면서.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 그녀를 본 적이 두 번 있다. 4년에 걸쳐서 두 번 보았는데, 실제로 만난 그녀의 모습은 아주 평범했다.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취향이 분명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잡을 줄 알았다. 말투는 편안했고 대답에는 거짓이 없었다. 하기 싫은 말은 굳이 하지 않는 편이었다.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책들이 읽혀지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속도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세상이다. 봄과 가을은 사라졌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졌다. 사람들은 침묵을 참지 못하고 서로에 대해 쉽게 오해하고 미워한다. 그런 세상에서 황경신은 서른 점 남짓한 그림을 내보이면서 이야기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랑과 희망이 있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쪽이었지만, 저자 싸인을 받으러 간 책에 그녀는 꾹꾹 눌러서 썼다. 눈을 감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 ISBN : 책 맨 앞장이나 맨 앞 장에 적혀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또는 (말장난같은 유머로) I Saw a Book aNd 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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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라고 믿었던, 내겐 충분히 소중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을 때, 그 때 서른 세 개의 그림이 말을 걸었습니다. 이 책의 첫번째 이야기는 '이별'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혼자 남겨지는 슬픔으로부터 덤덤하게 하루를 버티어 사는 일. 그리고 받아들이는 일.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아예 없었던 일이라 치면 어쩌면 더 쉽게 일어설 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순간이 있었다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그가 여기 있었다 말합니다.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부디 다시 살아내기를. 꽃처럼 자라기를. 그리고 책의 시작 페이지를 다시 펼치지 않기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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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배에 타고 있는 듯 머리가 울렁거렸고, 눈은 시큰거렸으며,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책을 펼친 후, 2시간 23분만에 나는 이 책을 완독했다. 책을 읽고나서 이렇게 힘든 것은 너무 꾸역꾸역 집어삼켰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장을, 다음 문단을, 다음 문장을, 다음 글자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림들이 속삭이던 비밀들은 달콤했고, 시큼했으며, 아름다웠고, 슬펐고, 때로는 위험한 것들이었다.
봄이 지나면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면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이다. 비밀들을 농익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첫번째 그림 '희망'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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