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부한 여름 곁에서 입추의 바람이 살랑댄다. 여름의 막바지, 피곤에 쪄든 분粉옷을 벗긴다. 이내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읽다만 책의 페이지를 펼친다. ‘착각의 뒷모습’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사랑과 이별을 데려온다. 이내 ‘조급증’이라는 단어 밑으로 젖은 혹이 생긴다. 곧 사라져버릴 멍울이다. 우리의 상흔도 이처럼 금방 증발돼버리는 성질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물기서린 것들과의 빠른 이별이 고프다. 그러면서도 하냥 그립다.
![]()
가슴이 저민다, 아리다는 표현의 상습적 공격에 언제나 무방비상태였던 나는 지금도 꼭 그렇다. 감정을 충분히 내버려둠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詩를 가장한 에세이와 수십 장의 사진이 침범했고, 그들은 그대로 내 안에 눌러앉았다. 이별조차 기약되지 않은 동거인들이 되었다. 마치 오래도록 부둥켜안고 살기위해 운명 지어진 것처럼, 나는 결코 적다할 수 없는 그들과 함께 여러 날 동거하며 원 없이 사랑하며 뒹굴었다. 그들은 詩의 몸짓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나풀거렸다. 수필이고 사진이고 할 것 없이 굉장한 속울림을 주는 것이면 나는 전부 詩라 불렀다. 그렇다. 詩란 인간과 자연의 모든 것, 문학적 장르로서의 형식적 역할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어떤 것이다. 심지어 생사를 초월한 가운데, 인간의 도구라 여겨지는 모든 것들의 힘을 단박에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것. 한 드럼의 고통과 번뇌, 사랑과 추억, 만남과 이별, 욕망과 꿈 - 이 요리조리 뒤섞인 진흙탕혼돈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연꽃처럼, 詩는 그 자체로 결핍 안의 포화된 낭만이다. 그와 관련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져버릴지 모를, 무한 잠재력을 간직한 그대도 시고 나또한 시인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 모두 공평하니... 본서 공감포토에세이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을처럼.
# 사랑이라서 증명할 수 없는 詩의 아지랑이 #
![]()
눈부신 그녀가 달린다. 바큇살에 휘감긴 햇살이 잘게 부서지며 까르르, 거리의 벚꽃으로 피어난다.(140쪽) 보름달 같았다가 반달이 되었다가 초승달로 얇아지는 눈매를 본다. 뾰족한데도 찔리면 보드라울 것 같고 깊게 찔릴수록 행복할 것만 같다.(141쪽)
열 삽, 스무 삽 아무리 파대어 봤자 사랑만한 것이 나올까. 덜컹거리는 굴삭기로 재고의 땅을 수도 없이 파고 돌았을 건축업자의 심장에도 달달하고도 아픈 사랑이 빼곡했던 모양이다. 이 또한 과격한 작업현장에 노출된 육체의 고통조차 뚫어낼 수 없는 청춘이란 순정이었겠거니. 심박이 셈여림으로 슬프게 춤추어대면 그리움이다. 사내의 그것도 한밤중 두어 번 보내곤 끊어버리는 신호음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안으로만 맴돌았다.(22쪽) 한때 사랑에 흠뻑 젖은 사내는 비도 눈도 바람도 온통 기회고, 핑계고 강철 같은 스케줄을 쪼갤 수 있는 칼(30쪽)이었다. 글집을 보니 연인의 뒷모습이 그리도 절절할 수 있음을 진즉에 알아채버린 그 사내, 속으로 눈물 꽤나 삭혔겠다. 그럴진대 어째서, 그는 달가울 리 없는 이별을 내내 응시하며 살아야만 했을까. 이별이 보여주는 풍경들을 필사하느라 허둥대었을까. 혹시 과거/현재/미래형 사랑을 추억하고 짓는데 특자재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이별이 빠진 사랑은 골조 약한 부실공사. 수십 수만 채의 건장한 詩를 건축하기 위해 사내는 그렇게 자신만 아는 통증으로 긴긴 날 앓았으리라. 그리하여 사내의 튼튼한 詩집이 슬프다. 그 집에 걸린 모든 사진도 아프다... 난 뜨내기 입주자에 불과한데도 다만 그랬다.
# 가슴 벅찬 세상의 무늬들에 대하여 #
![]()
전신의 슬픔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이는 곳이 발이다. 부유하는 마음을 따라 어디든 디뎌야 했던 기억의 저장소가 발이다. 슬픔의 행로를 지도로 새겨둔 곳이 발바닥이다. 손바닥과 달리 건드리면 간지러운 것도, 발바닥이 웃음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래서 누군가의 맨발을 보는 일은 서글픈 화집의 첫 장을 넘기는 것과 같다..(264쪽)
맨발이 슬프다, 로 시작하는 이 챕터를 소리 내 읽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서서히 끓어오르던 용암이 분출된 데에는 제동을 건 인사들을 먼저 살펴봐야하겠다. 저희들끼리 눈을 맞아도 왠지 춥지는 않을 것만 같은, 외딴집 섬돌에 놓인 고무신(153쪽), 물끄러미 제 발등에 쌓이는 눈을 내려 보며 발 시리지 않았으면 좋겠는 가로등(156쪽), 한때 꼿꼿한 창으로 가을 하늘을 찔렀으나 어느 때 칼 맞아 산산이 토막 난 채 말을 잃고 푸른 냄새로만 뒤엉킨 대파(168쪽), 대청 시렁에 얹힌 채 버짐 핀 얼굴로 배부른 장독들을 바라보고 있을 메주(206쪽), 어머니 일을 돕는 효자인 양 초롱초롱하던 것이 감감 처음부터 맹인이었던 것처럼 눈을 감은 문 닫힌 점포의 전구(241쪽)... 불과 몇 시간 전, 된장찌개의 풍미를 더하겠다고 댕강댕강 무참히 절단했던 대파의 통곡이 떠올랐고, 어디에서 어떤 매무새로 세워졌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수없는 가로등의 고독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흑백사진 속 벤치에 모로 누운, 롱스커트 밖으로 빼꼼히 나온 어느 여인(심상의 의도된 착시다)의 두 발과 벤치 아래 놓인 그녀의 낡은 구두. 사실 여잔지 남잔지 분간할 수 없는 하반신의 뒷모습이었다. 노숙자들이 으레 그렇듯 이불삼아 후줄근한 점퍼가 덥혀진. 어쨌든 정말 그랬다. 성별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맨발을 보는 건 너무나도 서글펐다. 웃음에 결코 익숙하지 못했던 온갖 슬픔의 행로들을 거친 발. 도대체 발은 무슨 운명으로 인체의 끝단에 위치해 쉼 없이 부려야했을까. 그에게 인간의 수레바퀴가 된 걸 기꺼워할 여유나 있었을까. 등과 연계된 발바닥은 통한痛恨이요. 발의 자유는 숭고한 노동이다. 그러므로 응시하는 것만으로 눈물을 쏟는 건 세상 모든 무늬들에 대한 사랑이자 애도일 것이다.
# 산 동안은 맑은 거울을 찾아야하는 의무감으로 #
![]()
나는 조금 더 오래 흔들려야겠다. 돌아보면 벼랑 아닌 곳 없었다.(282~3쪽) 사방 눈밭이고 발자국 하나 없는 숫눈인데 밟아볼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그런 자리, 그렇게 텅 비어서 충만한 자리들을 내 안에 들여놔야 조금은 철이 들 것도 같아서다.(295쪽) 서서히 기울어지는 나뭇가지를 보며 임계점까지 생의 무게를 견디다 순간 부러진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리하셨듯이 내게도 생의 무게가 쌓이고 있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고, 알기에 피하지 않는 무게감 말이다.(312쪽)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는 걸 아버지가 되고서야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삶이란 각박할수록 아버지를 닮아있다. 타인도 저마다 아버지를 적어도 한 명은 가졌다. 나와 더불어 우리 모두는 어린 아버지로 태어나 어른 아버지로 떠나게 되어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손주의 아버지가 된 아들. 아들은 아버지가 잠드신 곳에 가 내리 사흘 퍼부은 봄비에 묻혀 울었을 테다. 그랬단다. 절기가 여러 번 바뀌고 눈발이 차곡차곡 쌓인 어느 겨울의 봉분 안에 잠드신 아버지는 여전히 자상하다. ‘다 괜찮아 질 거다. 아무 걱정마라, 이 애비가 있잖니.’ 부러진 건 아버지가 아니라 생의 무게를 알아버린 아들의 경험이 아닐런지. 순수는 둔탁과 흐린 것 중에 숨어있으면서도 언제나 아무 불만 없이 술래를 자청한다.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은 생을 마치기 전까지 술래가 된다. 답을 찾다 멈추고 다시 찾다 기다려도 보고 그래도 못 찾겠으면 잠시 지친다. 그러곤 쉰다. 그게 경험이고 삶이다. 시인이 된 아들을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할 아버지의 미소가,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수차례 길을 잃어도 결코 두렵지 않을 詩가 이 안에 있다. 가슴 미어지는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게 될 그대들을 위한 아버지 같은 詩. 혹은
연인 같은 詩. 다가오는 가을의 어느 날, 어쩌면 그대에게 한 통의 숲이 배달될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숲이 띄우는 러브레터가...
|
|
내 안의 그대, 나를 만나는 시간 ‘이 사내를 양도 합니다’로 시작하는 공고를 냈다. 나 이런 사람임을 밝혀 내가 쓴 글이 당신의 마음에 혹 있을지도 모를 불편함에 대한 저항을 차단이라도 하려는 걸까? '공고'라는 머릿말에서 나는 한 페이지도 더 나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무엇이 날 붙잡고 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멈춘다면 자신을 양도한다고 공고한 저자의 바람과는 사뭇 어긋난 지점에 서 있는 것일까? 다소 머뭇거리며 책장을 넘긴다.
익숙지 않은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기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천천히 아주 심사숙고해서 읽어야 머리로 이해하고 심장에 이르는 더딘 걸음걸이를 감내해야 한다. 하여, 애서 걸어온 문장으로 다시금 되돌아가야 한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문장을 놓치지 않고 더딘 걸음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전영관의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은 이렇게 불편한 책이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 쓰리기에 붙잡아두기 싫어 외면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천천히 곱씹도록 만들고 있다. 더디지만 그럴수록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 공감이 이뤄져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기에 이 공감을 불러오는 과정이 더디다는 것은 소통에 장애로 작용한다. 무엇이든 쉽고 빠른 것만이 능사인 현대사회에서 이런 불편함은 역으로 깊은 공감을 위한 전재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곱씹어서 깊은 공감을 일으키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을 이뤘을 때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기에 전영관의 글이 가지는 매력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에 대한 부재증명’, ‘세상의 무늬들’, ‘맑은 거울을 찾아서’로 구분된 이야기 속에는 누구나 겪는 일상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불편과 불안한 요소들에 대해 자기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성찰의 근본요구는 상처로부터 치유에 있기에 자신의 상처를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이라는 말이 만병통치약처럼 사람들의 허약한 내명으로 파고드는 이 시대에 애써 상처로 돌아가게 만들기에 그의 이야기는 쓴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힐링프로그램을 찾을 시간이 있다면 고요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저자의 완곡함에 신뢰가 간다. 더불어 또 한명의 저자인 한겨레신문의 탁기형 기자의 사진은 전영관의 글과 어우러져 보다 깊은 자기성찰로 이끌며 때론 전영관의 글과 독자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 역할까지 하고 있다.
4월 16일 이후 온 나라가 슬픔과 비탄에 빠진 가을의 초입에서 국민들의 집단적 상처를 치유할 무엇도 찾기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찾아야 하는지 반문해 본다. 마음의 상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이를 이겨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냉정히 우리의 현주소를 살펴 국가와 사회가 주는 상철르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스스로 얻어낼 때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개인들의 삶 속에서 안고 살아가는 상처를 극복하는 일 역시 스스로의 힘을 믿을 때 시작할 수 있으며 가능한 일이 된다. 이 가을 이 책과 더불어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봄도 좋을 것 같다. |
|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고요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간!
곰감포토에세이는 무엇일까? 호기심을 자극시켰던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담고 품고 있는 듯하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 애틋함, 설레임, 절실함, 애절함, 소중함, 고요함, 험난함, 상처, 아픔.. 그리고 소소한 행복과 일상을 통틀어 세월과 인생이라는 우리네 이야기를 시간과 함께 하나씩 풀어놓았는데 소소한 사물과 풍경들 속에서 저자가 전해주는 문장들은 독특하게 전달되어 소중한 추억과 잊지못할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꼭 오래도록 우리고 우려서 달여 마셔야 하는 진한 보약이나 귀한 차처럼 느긋하게 한모금씩 음미해서 삼켜야 비로소 그 맛과 효능이 무엇인지 참의미를 깨달아갈 수 있는 것처럼 한페이지를 넘길수록 많고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왠지 이 책의 느낌은 무채색 같으면서 또한 왠지 모를 쓸쓸함과 외로움이 공존하고, 내가 지나온 길과 지나가야 할 길을 곰곰히 꺼내도 보고 그려도 보게 하면서 누군가를 떠올려도 보고 기다려도 보고 싶게 만든다. 제목처럼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에서 그리움이 많이 느껴졌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무언가 공허해지는 느낌.. 무엇인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빠뜨리거나 잃어버린 느낌.. 그게 무엇일까? 답을 찾는다.
이 책은 시와 산문의 접경 지역을 저공비행하는 문장들의 겹납고로 문학을 꿈꾸는 독자라면 가까이 두고 수시로 읽어봐야 할 백과사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에서 묵직하게 잡아끄는 당김으로 한 번 읽고 눈을 쉽사리 떼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느껴지는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는 전영관님의 멋들어진 글솜씨와 탁기형님의 느낌있는 사진들이 어우러져 문득 스쳐지나간 길을 멈칫하게 만들고 다시 뚫어져라 보면서 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이렇게 공감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 자꾸 그의 글을 되씹어보게 하는 여운이 있었다. 아픈 상처나 아물지 않은 기억들을 보듬고 다독거리듯...
그나라에는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사랑 말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심장 하나만 주세요.
p.84~85 혼자 남았을 때도 온전히 나의 내부만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싶은 것이다. 사랑을 잃고 원망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손잡이까지 날이 선 칼을 움켜 쥔 것과 같았다. 그땐 몰랐다. - 연인이라는 호칭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유리잔의 다른 이름이다 -
자극적인 글도 없는데 자극이 되고, 치료제를 처방한 것도 아닌데 마음의 치유가 되고, 운동을 시킨 것도 아닌데 힘을 얻게 하고, 상담을 한 것도 아닌데 위로가 되는 소소한 글귀들.. 그래서 공감포토에세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걷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과 사물을 볼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을 나만의 시각과 생각으로 나열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무의식적으로 담아두었던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 어둡고 탁했던 마음이 조금은 빛을 받은 느낌이었다. 만약, 살다가 누군가 그리워지고 생각이나 길을 잃는다면 당황하거나 애써 길을 찾지 않고 잠시 멈춰서 있어도 좋을 것 같다.
|
|
어느새 나도 모르게 따듯한 봄이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듯하다. 겨울이 지나고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따스한 봄날에는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요즘들어 더워지는 날씨 탓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간절했던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든 것 같다. 여행에세이, 포토에세이, 감성에세이 이런 종류들의 책들은 첫 느낌이 매번 비슷하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거나 감성에 젖어들만한 사진들. 첫 페이지를 펼치기전 항상 그렇듯 쉬리릭 책을 펼쳐 넘겨본다. 사진들이 가득 들어있다. 탁기형 사진작가의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전에 그의 저서를 본적이 있었다. 금새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뒤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매번 주제가 바뀌는 짧은 글들은 읽기가 수월하기도 어렵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글들은 많은 생각을 하며 읽곤 한다. 글을 쓴 저자의 생각뿐 아니라 나의 생각과 비교해 보면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들을 최대한 잘 느끼고 싶기도 하지만 그 즉시 와닿는 나의 느낌은 어떠한지 생각해 내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 이러한 책은 자투리 시간이 많을 때 활용해서 읽는 것이, 그리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 책을 덮어버리기 보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감상하며 천천히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 읽은 지금은 가끔 아무런 페이지를 펼쳐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
책은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든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다. 포토에세이는 그리 많이 접해보지 않았지만, 은근히 멋스러움을 선사하는 것 같다. 거기다 내가 동경만 하는 풍경에 대한 찰나의 감동들을 잡아내는 사진을 볼때면 괜시리 반갑다. 이 책은 사진과 글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은 사람과 글을 쓴 사람이 동일할것 같은데, 이 책은 사진 따로 글 따로 이다. 그래서 더 신선한것 같기도 하다. 요즘 대세인 단어가 아마도 힐링일것이다. 우리들은 잘 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다 자칫 의기소침해질때도 있고, 주저앉은채 멈춰버릴까 생각할때도 더러 있다. 이때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끔, 다시 가동하게끔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따뜻한 말한마디, 따뜻한 시선과 다독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봤던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가 난무하다는 표현이 어쩜 그렇게 적절한 표현일까 싶다. 우리는 완전치료까지 시간이 더디다 생각하고, 1회성 진통제를 맞아가며 오늘을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번뇌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냉철하게 들여다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아프고 상처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요소이니, 자신을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가게끔 노력할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가슴에 와 닿았다. 난 또 이런 장르의 책을 접하고 나면, 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과 사물과 모든 환경에 대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사진을 토대로 나만의 다이어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과거의 기억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게 될 내 시간대를 언제 어느때든 꺼내보고 생동감있게 느끼게 하는데 있어서는 사진과 그때 당시의 글을 함께 적어놓는 이런 포토에세이가 딱인데, 아직 그런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 마냥 아쉽기만 했다. |
|
포토에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사진을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순간을 포착하고자 카메라 전원을 켜고 초점을 맞추면 벌써 그 장면은 사라지고 만다. 순간의 미학, 그 순간 담아내지 못하면 영원히 사라진다. 항상 사진을 찍고자 하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좋은 작품이 나올까말까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정말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에 글이 없으면 뭔가 모자란듯한 느낌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이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사진과 글이 적절히 어우러져 새로운 감동을 준다면, 조금은 낭만적으로 변하는 이 봄, 내 마음에 부드럽게 감수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기대감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 사진 작가와 글을 쓴 사람이 따로 있다. 그 점을 알고 읽어서일까. 모르고 읽어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솔직히 사진과 글이 따로노는 느낌을 받았다. 책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서 마음을 활짝 열고 책 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자꾸 튕겨져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나는 사진과 글을 따로 보기로 했다. 사진과 그 밑에 있는 글을 먼저 읽고 나서 글을 나중에 읽었다. 그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두 권의 책으로 따로 따로 엮어야할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어쨌든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었으니 충분히 목표달성은 했다. |
|
천천히 음미해야 해. 안 그러면 놓치고 말아.
도무지 더듬기 어려운 문장이 있다. 단어가 커다란 돌부리라서 문장 속 빈틈마다 눈동자가 쉬어 가야만 하는 글이 있다. 옆으로 가다가 물음표를 달고 되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시가 그랬다. 시인들이 만들어낸 단어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다. 감각기관 전부를 열어놓고 산다. 천 개의 눈을 다 꺼내 걸어두고 고막은 산 하나를 덮을 크기로 확대시킨다. 바늘쌈지에 손을 넣는 마음으로 촉감을 키운다(263p)는 시인 전영관의 글도 다름없었다. 나에겐 천 개의 눈도, 산만한 고막도, 그만한 촉감도 없었으니까 쉽게 읽히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를 아주 오래 읽었다.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는 탁기형 사진작가와 전영관 시인이 함께 한 공감포토에세이다. 탁기형의 사진 한 장에 전영관의 글이 짝처럼 구성되어 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의 사진이 책 속의 글을 더 가까운 이야기로 느끼게 했다. 사진보다는 글에 더 집중되어 있다. 단순한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 글이어서 그리 가볍다고는 볼 수 없다.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인데 빈틈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작품으로 빼곡하다.
도저히 내 머리로 그려낼 수 없는 문장을 읽고 있을 때는 이보다 더 난해한 외국어도 없겠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럴 땐 탁기형의 사진을 뚫어져라 봤다.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기 때문에 글만으로 어려울 때는 사진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오래 걸린 독서에 지치긴 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가 맞닥뜨린 걱정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 이 많은 문장들을 언제 다 필사하지? 옮겨 써두고 자주 보면서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이 그리도 많은 것. 좀 아이러니한 결과지만 늘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면을 잘 볼 수 있는, 그러니까 나보다 눈이 두 개 쯤은 더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깊이를 더 잘 알 수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내 것과는 비할 수 없이 큰 기쁨을 느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더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시를 읽는 기쁨은 하나다. 글 속에 들어가 작자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완벽에 가깝게(절대 완벽히 알 수는 없겠지)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체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 그 때의 전율! 아무도 모를 비밀의 낙원을 글을 쓴 사람과 나만이 보게 된 것 같은 특별함이랄까. 전영관의 글도 그렇다. 그가 본 신세계를 많이 들여 봤다. 전부를 볼 수 있도록, 노력은 나의 몫이다.
-花
사진과 함께 글귀가 적혀 있다. 글귀는 본문에서 가장 돋보였던 문장으로.
왠지 어디선가 봤을 것 같은 장면. 사진은 주변 가까이의 장면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도 더 가깝게 다가온다.
제일 좋았던 사진.
책이 쫙쫙 펴지는 건 참 좋은데 다 읽고 나면 이렇게 된다는 단점이.
|
|
포토 에세이....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고 글은 오래 마음에 남는 여운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한변을 이뤄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도 이렇게 어울려 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에 잠기게 했다. 감성이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감성의 글들로 채워진 책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은 넉두리인 듯, 마음에 담은 고백인 듯한 글들로 저녁시간 차분한 나와의 만남을 가졌던 시간이었다. 사실 긴 문장에 익숙해있지 않아서인지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문장도 있었지만 그럴때는 쉬어가라는 뜻이라 생각하며 다시 읽게 된다. 언뜻 스치는 순감의 표정과 마음 고백이 만들어내는 감성 포토 에세이
열쇠가 매달린 창살 그림 아래 쓰여 잇는 글귀 -연인이란 호칭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유리잔의 다른 이름이다. 이 글귀를 읽으며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적절한 표현이여서인지.... 아님 다른 이유인지...글귀와 사진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면서 이런 장면이나 순간도 책속에서는 글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리에 앉아서 거울을 보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들이 친근하지만 한 컷으로 책속에 실리니 색다르게 다가온다. 사진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의 말이 사진을 다시 보게 한다.
-한 포기의 꽃도 아름드리 거목과 견줄만한 존재감을 가진다. 우리가 흔히 보는 풍경을 순간으로 잡아내고, 그 순간을 감성의 글로 써내려간 작가의 이야기들이 지친 우리들의 일상에 위로 말을 던지고 있다. 한줄의 글귀는 길을 잃은 우리에게 일상으로의 돌아오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
|
생각해보면 시를 읽으면서 행복하거나 즐거웠던 적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분해하고 외우고, 또 이에 비교 혹은 대조할 수 있는 시들을 암기하며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한 시를 만났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그때의 부담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인 시의 흐름, 느낌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 혹은 감성 등과 소통하는 시간도 분명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런 아쉬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고, 수업시간에 이 모든 과정을 이행하기에는 항상 바빴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번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분명 이 책은 시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 산문의 느낌보다는 시의 감성을 담고 있는 듯이 느껴져서, 짧은 문장들과 절제된 표현들, 어떻게 보면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연결되는 긴 글의 흐름이 아니라 템포마다 쉬어가는 듯 느껴지는 글의 호흡이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거리가 느껴지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라 볼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도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표현과 감수성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글쓴이가 그 순간과 전적으로 대면하고 마주하고자 하는 부분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사랑의 감정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헤어짐과 그 무게를 적고 있음에도, 일상을 담고 시간의 흘러버림을 담고 또 우리의 그리고 그 주변의 모습을, 그 일상과 그 이면을 담고 있음에도 그것이 온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분명 각 글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 혹은 구절들을 찾게 되기도 하지만 그 감성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부분들이 꽤 있었기에 책과 잘 소통하지 못한 듯한 느낌에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미 그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성에 열려있기 보다는 알게 모르게 닫혀 있는 시선으로 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과 글을 동일한 이가 표현하고 있지 않기에 이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글과 사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글쓴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문장의 실체에 닿는 것은 쉽지 않았다. 뭐랄까 이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적 감수성에 대한 반발이 무의식중에 작용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키가 어떤 에세이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이 책과 딱 어울리는 시간과 공간에서 다시 한번 읽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그때는 이 책에 딱 어울리는 느낌을 발견하길 바란다. |
|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제목에서부터 끌리는 책이다. 제목을 읽으니 막연히 누군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외로움이 부쩍 다가서기도 한다. 공감 포토에세이라고 하니, 책을 읽으며 같이 그리워하고 같이 외로워하고 그러면서 위로가 되었으면 싶었다. 더위가 미리 찾아오기는 했지만, 봄에는 ‘그립고 외로운’ 책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
이 책은 글 작가와 사진작가가 다르다. 자신의 글과 사진으로 스스로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글과 사진이 만나는 경우도 흔한 경우다. 때로는 그 조합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때도 있다. 이 책의 경우에는, 필자의 이름은 처음 들었지만 탁기형 기자의 사진은 무척 궁금했었다. 시인의 감성과 유명 사진기자의 만남이라니 어느 정도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혹은 감성의 차이인 걸까? 이상하게도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난해하게도 느껴진다. 마치 중역(重譯)을 거친 번역서를 읽는 듯 문맥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때로는 빽빽하게 읊조린 모더니즘 시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전문서적의 경우에는 어려워도 꾸준히 읽게 된다. 하지만 편하게 읽고 싶은 감성 에세이가 어려우니 읽는 동안 마음이 자꾸 갑갑하다. 책읽기가 힘든 적은 별로 없었는데 몇 줄을 꾸준히 이어 읽기가 쉽지 않으니, 나의 부족한 독서 내공을 탓할 뿐이다. 다른 리뷰들을 보니, 책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리뷰어들도 꽤 보여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런저런 이유로, 사진은 글과의 조합과는 별개로 사진 자체로 보았다. 사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스치는 풍경, 놓치는 순간들을 담고 있었다. 사람들의 뒷모습과 미시적인 풍경 속에 우리들의 일상이 들어있었다. 사진을 넘기며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 작고 미세한 것에까지 미치는 작가의 시선을 함께 볼 수 있었다. 페이지 양면에 걸친 사진 편집도 답답하지 않아 좋았다. 다만 처음에는 글과 사진을 같이 보려했으나 여의치가 않아 나중에는 사진만 따로 보았다.
알면 알수록 글이란 것이, 사진이란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두 가지를 동시에 다 잘한다는 것도, 두 가지를 잘 조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으니 더 해볼 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