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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저자 황대권/출판 열림원/발매 2013.04.11.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민들레는 민들레의 삶을 살다 간다. 장미는 장미의 삶을 살다 간다. 그렇게 각자 개성적인 모습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조화롭게 돌아가고 있다. 본질을 벗어나는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P81 행복이란 저 멀리에 있는 풍경에서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얻어진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밥상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나의 정체성은 내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이다. 양계장 같은 환경에 앉아 화공약품으로 뒤범벅이 된 음식을 먹으면서 고귀한 영혼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고귀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밥상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고뇌하는 지식은'으로부터 벗어나 '수행하는 지식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생태적으로 각성이 되어 있는지를 불어야 한다. 야생초를 생명의 관점에 바라보다. 생명의 관점에서 야생초를 바라보게 되면 야생초와 우리가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이 틀림없이 보인다. 시골로 들어가자. 야생초와 하나 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보자.
P48 고무신을 신고 산을 오르게 되었다. 얇은 고무 밑창을 통해 전해지는 땅의 굴곡과 작은 돌들의 속삭임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무심코 제법 큰 돌의 모서리를 밟은 모양이다.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딛고 다니기 쉬운 길을 골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더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게 되었고 발 놀림도 조심스러워졌다. 장시간 산행이 곤란해지니 개울을 만나면 물가에 발을 담그고 자연히 동행한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무신을 신고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자연 앞에서 겸손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것, 그리고 겸손한 만큼 자연을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작은 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믿는 이들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소유와 소비의 기준에 입각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소비를 그만두다. 소유와 소비의 기준을 낮추고 대신 '나눔의 극대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면 된ㄷ. 자연과 '상생', '조화', '협동'하면서 순응하는 삶을 읽혀가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거기엔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창조의 새로운 힘이 거기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P240 새로운 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돈이 덜 들어가면서도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풍부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지하여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공동체적 구조가 필요하다. 때문에 예전의 전통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명이 한 바퀴 돌아 그 끝을 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황대권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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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편지로 온 나라를 야생초사랑에 빠지게 했던 저자.
이 책은 그 후에 나온 책으로 그의 생태학자로서의 철학과 삶의 가치관이 고스란이 담겨있다. 빠르고 급박하게 변화하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선 책 제목이 참 가슴에 와닿았다. 나 스스로 민들레같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에 ㅎㅎ 소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는 화려한 꽃의 대명사인 장미를 부러워하지않는다. 이 책에선 민들레가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타인도 그런 민들레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서민, 보통사람들의 삶이 힘들진대 결코 무의미하거나 헛되지않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민들레의 지혜와 미덕을 결코 지나치지 못 하게 될것이다.
야생초 편지에 이은 또하나의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아름다운 편지이다.
![]() 야생초편지로 산과들의 야생초들이 수난을 당한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그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독자들이 그에 대해 진솔하게 알지 못했던 바가 참 많았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할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야생초를 집안으로 들여와서 키워라, 어떤 야생초가 몸에 좋다는 등의 의견을 말한 적이 없다. 마당의 풀 한포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나가는 개미 한마리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며 생명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난 저자의 글이 좋고, 그림도 소박해서 좋다. 무엇보다 그의 자연과 생명을 아끼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진 그의 생각과 의식이 좋다.
저자는 크게 3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멀리 내다보기로 구성되어있다. 그는 생태계와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한다. 문명의 발달로 몸이 퇴화하고, 고령화의 원인을 생태계의 불균형에서 찾는 등의 날카로운 지적도 우리를 다시 일깨운다. 생명을 중시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공동체의 부활을 위한 그만의 가이드라인은 멀리 내다보기를 통해 제시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우친 바대로 사는 것’이라고 마무리 짓는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곡선회복운동’을 벌여야 한다. 도시의 구석구석에 곡선을 되살리고 너와 나 사이에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슬쩍 틀어놓고 그 사이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령 이쪽에서 화가 났다 하더라도 굽은 길을 지나 저쪽으로 가는 동안에 어느덧 기분이 풀어지게 마련이다. 지난 시절의 구부러진 도로를 무조건 직선으로 고칠 게 아니라 그 곡선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애환과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문화이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우리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생명들이 무지한 반란자들의 직선화의 욕심 아래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직선은 그것을 만드는 자들에게 쾌감과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겠으나 곡선에 몸 붙여 살던 뭇 생명들에게는 재앙을 가져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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