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을 지쳐 오면서 수백 수천갈래의 산줄기가 갈라지고 그 사이사이에 물줄기가 생기고 그리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풀들이 나고 그 물과 풀들을 먹고 사람과 짐승들이 자라난다. 대간 위에서 내려다 보면 사람과 짐승은 미생물이 되어 버린다. 대간이 곧 생명의 주인이 된다. 주인생명이 수억의 작은 생명들을 품고 세월을 쌓아 간다. 작은 생명들을 사랑으로 품고 또 품는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주 줄기는 서봉=장수덕유산으로 연결 된다음 할미봉, 육십령, 백운산으로 해서 지리산으로 거침없이 달려 나가고 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흘러 내려서 월봉산을 이루고 월봉산에서 다시 흐르다가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한갈래는 거망산으로 해서 황석산에서 그 끝을 맺는다. 또 한갈래는 금원산, 개백산으로 연결된다. 안의쪽에서 보아 좌측으로 황석산, 거망산, 우측으로 기백산, 금원산이 'V'자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긴 협곡을 이루고 그사이 한가운데 용추사,즉 이 책에 나오는 1947년 4개군당위원장회의가 열린 용추사가 자리잡고 있다. 전쟁때 불타서 일주문만 남아 있다.
한편 대간의 서봉에서 흐르는 주줄기는 육십령을 지나 영취산에서 호남으로 하나가 뻗어 나가고 영취산 지나 백운산에서 동으로 줄기 하나내려오는데 괘관산으로 우뚝 선다. 괘관산아래 선생이 근무했던 서하국민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괘관산은 한자로는 掛冠山인데 이 곳 사람들은 괘관산으로보다는 '갓걸이산'으로 부른다. 봉우리의 모습이 갓걸이를 닮았다. 한자 괘관을 풀면 '갓걸이'가 된다. 아니 '갓걸이'를 한자로 하면 '괘관'이 된다. 황석산과 괘관산은 마주보고 서 있다. 남덕유산에서 바로 흘러 내린 물은 이 서하를 지나 내려가고 거망산과 금원산에서 발원한 물은 용추사를 지나 서하에서 내려온 물과 안의에서 만난다. 이 물은 본격적으로 지리산을 끼고 흘러 간다. 그 이름을 바꿔 가면서. 어디서는 금호강, 어디서는 경호강, 어디서는 남강...
1947년 7월 27일 안의국민학교에서 미군정규탄대회가 열린다. 이 이후 산으로 들어가서 야산대 활동을 하게 되는데 초기활동이 이 인근에서인듯 하다. 이 병주의 '지리산'에는 괘관산이 근거지로 나오는데 산세로 보아 앞에 얘기한 거망산쪽이 아닐까 싶은데.... 황석, 기백, 금원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있어 숨기가 좋고 서상, 서하, 안의, 마리, 장수, 무주, 등으로 통할 수 있는 사통팔달의 산세이다.
남덕유산에서 동으로 흘러 내린 산줄기는 기백산을 지나면서 급속히 고도를 낯추어 바래기재를 이룬다. 바래기재는 안의에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바래기재를 지나 동으로 더 나가면 개목고개를 이루고 여기를 지나 고도를 약간 올리면 망실봉이 나온다. 망실봉에서 거창읍내를 한눈에 조망한다. 이 곳 사람들은 망덕산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부터 산줄기는 본격적으로 남으로 흘러 내린다. 지리산을 오른쪽에 두고 그 사이에 덕유산에서 발원한 강을 끼고 푸르게 남으로 남으로 흘러 내린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들이 줄기를 이루며 지리산과 나란히, 지리산을 바라보면서... 구석구석이 민가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거창과 합천을 경계로 하다가 산청ㅇ을 거치고 진주, 진양까지 흘러 내린다. 중간에 도당의 아지트 달뜨기 능선이 나오기도 하고 남부군이 경남도당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능선을 타고 내려 오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남로당 경남도당의 고위간부였으며 비전형장기수였던 박판수선생의 일대기와 그 가족에 대한 역사의 개괄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개괄이 부족한 점이 많은 듯 싶다. 그래도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간 한 개인과 그 가족의 역사를 개괄한 것에 대단한 의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