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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을 통해 만난 스테판 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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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고통, 후회와 반성이 담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작가를 따라 그 삶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쓰지만 내 안의 편견과 문화 차이, 사고의 경직이 만들어낸 벽에 부딪힐 때마다 주춤하게 된다. 게다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벌어진 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내가 가진 지식들이 너무나 알팍할밖에... 하지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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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고통, 후회와 반성이 담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작가를 따라 그 삶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쓰지만 내 안의 편견과 문화 차이, 사고의 경직이 만들어낸 벽에 부딪힐 때마다 주춤하게 된다. 게다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벌어진 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내가 가진 지식들이 너무나 알팍할밖에...
하지만 아흔이 넘은 노인이 뜨거운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분노하라>의 감동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다. 인권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향해 "분노하라"고 외치며 불의와 모순에 빠진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이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스테판 에셀'은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따라 일곱 살에 프랑스로 이주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인습과는 무관한 어머니 '헬렌 그룬트'는 남편의 친구인 '로셰'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들인 에셀도' 남편인 '프란츠'도 결코 비난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셀은 영화 '쥘과 짐'의 실제 모델이 된 부모의 세기적 연애 사건을 보며 자유로운 사고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성관계에 관련된 규범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내가 가진 잣대로 누군가의 삶을 재단할 권리는 없지만 열일곱 살의 나이에 서른 넷인 친구의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고 동성애에 탐닉하며, 아내의 외도를 모른 척 눈 감아 주고, 30대에 만난 여인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다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한 그의 행동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인 군자의 삶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행동하는 지성'으로 알려진 에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보며 적잖이 실망을 한 사람이 혼자 뿐일까? 그가 말하는 충만한 사랑과 자유의 모습은 이런 걸까?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감안해도 분명 충격이었다.



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런던으로 건너가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했던 에셀은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파리에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놓인다. 모국어와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이름을 빌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삶은 차마 말로 할 수가 없다. 장작더미처럼 쌓인 화장터의 시체를 처리하고 얻은 소시지 두 조각 앞에서 느낀 공포와 수치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적처럼 살아남은 그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회참여의 길로 뛰어 든다. 뇌리 속에 박힌 제국주의와 강제 수용소, 원자폭탄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세계 평화와 인권 수호는 그의 사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교관으로 유엔(UN)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며 유엔 주재의 프랑스 대사로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는 특히 식민지 독립 후 희망으로 꿈틀대던 아프리카를 주목한다. 백인과 흑인, 식민지종주국을 향한 배척과 거부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상황 앞에서도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던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안타깝게도 군부의 손에 알제리 정부를 넘겨주고 말았지만 그는 특유의 낙천적인 태도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걸림돌이 되는 장애들을 극복해 나갈 힘을 믿기 때문이다.

 



에셀은 이민 노동자나 불법체류자 등 약자의 편에 서서 중재자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차드의 반군에게 붙잡힌 인질 석방 교섭이나 파리 생탕브루아즈 성당에서 신분 보장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던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교섭에서는 실패를 맛본다. 브룬디와 르완다에서 벌어진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살인적인 폭력 상태를 중재했다고 믿었던 순간, 평화를 향한 의지와 노력은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에셀은 자신의 잘못이나 여러가지 이유로 조율에 실패한 사건들을 꾸미지도 변명하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실패를 통해 또 다른, 더욱 너른 중재의 길이 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좌절과 절망이 삶 속으로 끼어들 때면 세계 곳곳에서 만난 희망의 편에 선 사람들의 존재를 떠올린다. 사람들의 걱정거리들이 놀랍도록 많아지지만 지구인 절대 다수가 이런 걱정에서 놓여나고 싶다는 열망을 공유하기에 그의 낙관주의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

80년의 인생이 담긴 회고록이 결코 가벼울리 없다. <세기와 춤추다>가 나온 뒤에도 노익장을 선 보이던 그가 책의 서문에 남긴 말은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악몽같은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죽을 뻔한 고비들을 수차례나 겪으며 뜨거운 열정과 용기로 버텨온 삶에 숙연해진다. 퇴임 후에도 인권과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와 저술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에셀은 세기와의 춤을 끝내며 2013년 2월에 생을 마감했다. 샤를 드골,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스 테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피에르 모루아, 미셸 로카르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 밑에서 국제사회 관련 일을 맡아서 하던 인물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조용하고 우아한 죽음이었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그의 삶이 안타까울 때도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용기와 포기하지 않는 열정에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국경없는 시민, 체제 없는 유럽인, 당파 없는 투사, 한계 없는 낙관주의자 앞에 자유인이라는 이름을 더하고 싶다. 어느 것에도 얽매임 없이 살았던 그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답이 없어서, 길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 헤매기도 하는 삶이지만 마지막 순간 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이 전하는 무게가 너무 커서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음을 밝힌다.하지만 전장에서 시를 읊던 매력적인 청년과 분노의 당위성을 외치며 불꽃처럼 살다간 시대의 어른을 함께 만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묵직한 감동 속에 깃든 당부의 말을 전해 받으며 필독하기를 권한다.
1*******n 2013.09.2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