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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로 곧장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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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인간에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회귀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들떠서 떠난 며칠간의 여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오다 드디어 ‘우리 집’이 있는 도시의 이정표를 봤을 때 반가움과 안도감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속한 삶의 테두리가 답답하지만 벗어날 용기가 없는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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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인간에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회귀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들떠서 떠난 며칠간의 여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오다 드디어 ‘우리 집’이 있는 도시의 이정표를 봤을 때 반가움과 안도감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속한 삶의 테두리가 답답하지만 벗어날 용기가 없는 내겐 그래서 여행은 좋은 휴식이며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그렇기에 떠나고,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매번 설레는 것일까?


‘삼포 가는 길’은 어릴 적 ‘TV 문학관’에서 스치듯 본 것도 같은데 기억나는 거라곤 드넓은 눈밭밖에 없다. 사회상, 주인공들의 아픔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수십 년이 흘러 드디어 책을 마주했다. 솔직히 책 읽는 내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끊이질 않으면서 말이다.


물론 70년대 태어났지만 그 시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풍요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보호속에 행복하게 자랐고, 내 주위의 삶은 한없이 평온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난 우리나라가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인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의 삶은 평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대의 문턱마다 그는 한가운데 있었고, 애써 피하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런 살아있는 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


단편의 호흡을 못 따라가는 편이라 읽기 버거워하는데 의외로 금방 글 속에 들어갔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수월했다. 그 속엔 내 아버지가 어머니가 할머니가 있고, 어쩌면 시대는 다를지 몰라도 내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산다는 게 다 그렇고 그렇듯 아직도 시대는 흉흉하고, 힘들고, 벅찬 일들로 가득하다. 하나가 해결됐나 싶으면 다른 하나가 터지는 삶의 순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삼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잊어버릴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으며 꼭 가야할 곳. 그 의미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그것에 대한 열망은 한결같으리라. 그렇기에 아직도 ‘삼포 가는 길’은 존속되는 것 같다. 제발 대한민국도 더 이상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삼포’로 곧바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렸으면 좋겠다.  

d*******7 2008.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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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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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20세기 한국 소설 25 황석영 지음 창비    중견작가 황석영 중단편 전집 두 번째 책으로 우리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황석영의 중단편들을 모았다. 산업사회의 병폐와 인간소외의 현장을 뛰어난 문장으로 소화해낸 「삼포가는 길」,「한씨연대기」를 비롯하여 「낙타누깔 」, 「 밀살」, 「 기념사진」, 「 이웃 사람」, 「 잡초」, 「 돼지꿈」, 「 야근」, 「 북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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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20세기 한국 소설 25

황석영 지음

창비

 

 중견작가 황석영 중단편 전집 두 번째 책으로 우리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황석영의 중단편들을 모았다. 산업사회의 병폐와 인간소외의 현장을 뛰어난 문장으로 소화해낸 「삼포가는 길」,「한씨연대기」를 비롯하여 「낙타누깔 」, 「 밀살」, 「 기념사진」, 「 이웃 사람」, 「 잡초」, 「 돼지꿈」, 「 야근」, 「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섬섬옥수」등 11편의 소설을 싣고 있다. 우리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문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1권 <객지>, 3권 <몰개월의 새> 등 3권 1셋트이며 희곡전집 <장산곶매>는 별도로 묶었다.

이 책은 제목과 같이 주인공 영달이 삼포에 가게 된 배경과 삼포에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카에서 이번 봄학기 프로젝트로 '고전 : 사회를 보는 눈'이라는 제목으로 사회학 서적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바, 5차시 수업에서는 이 책, 「삼포 가는 길」을 비롯하여 「징소리」, 「서울, 1964년 겨울」등 세 권의 단편 소설을 읽고 197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변해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포착해주는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으며, 앞으로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해 보려고 한다.

영달이라는 인물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30대의 남성이다. 그는 소설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마을의 한 주민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그 현장을 남편인 천 씨에게 들켜서 난리를 치르고 겨우 빠져나와서 다른 곳으로 도망갈 궁리를 하던 중이였다.

그러던 중에 그저 얼굴만 알던 주민 정 씨와 마주쳐서 정 씨의 고향인 삼포에 함께 가기로 결정한다. 삼포로 향하던 중에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읍내의 한 국밥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된다. 그 국밥집에서 백화라는 이름의 처녀가 식당에서 도망 갔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잡아다주면 돈 만 원을 받기로 하고 식당을 나온다. 그리고 다시 삼포로 향하는 길에서 백화를 발견하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냥 백화를 고발하지 않기로 하고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

입담이 센 백화는 점점​ 영달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영달과 함께 고향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정 씨는 백확 좋은 여자 같다면서 함께 갈 것을 조언하지만, 영달은 백화를 보내주기로 하고 백화는 잊지 않겠다며 자신의 본명이 '이점례'라고 이야기 해 준 뒤에 눈물을 흘리며 떠난다.

좀 예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영달이 불륜을 저지르는 일이나, 백화가 하는 이야기나 성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였다.

최근에는 이런 한국고전(?) 소설에 흥미가 생겨서인지 전에라면 질색을 하며 싫어할 내용인데도 재미있게 보았다. 백화가 그저 기가 센 화류계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는 진지한 듯 해서 느낌이 달랐다.​

2015.5.4.(월) 이은우 (중2)

 

i***2 2015.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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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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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작가 황석영.장편뿐만이 아니라 단편에서도 그의 힘은 놀랍다. 맛깔스런 그의 단편의 맛을 볼 수 있는 '삼포 가는 길'에는 11편의 단편들이 있다. 그중 TV 문학관으로 널려 알려진 '삼포 가는 길' 은 오래전 드라마였지만 세사람이 거친 눈밭을 걸으며 황량한 겨울속을 걸어 삼포로 향하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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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작가 황석영.


장편뿐만이 아니라 단편에서도 그의 힘은 놀랍다. 맛깔스런 그의 단편의 맛을 볼 수 있는 '삼포 가는 길'에는 11편의 단편들이 있다. 그중 TV 문학관으로 널려 알려진 '삼포 가는 길' 은 오래전 드라마였지만 세사람이 거친 눈밭을 걸으며 황량한 겨울속을 걸어 삼포로 향하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삼포 가는 길' 도 서민들의 삶을 노래했지만 처음에 있는 작품인 '한씨연대기' 는 정말 안타깝고 불쌍하여 눈물이 난다. 

장의사에서 허드레일처럼 미천한 일을 하던 노인 한씨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중 넘어져 그의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만다. 같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세를 살던 사람들은 그가 살던 방을 탐낼뿐 한씨의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그가 어떤 노인네인지 모르기에 일터인 장의사로 그와 함께 일하던 노인네를 찾아가지만 그도 딱히 한씨에 대하여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청진기와 낡은 수첩에 적힌 세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보고 연락을 취하여 달려온 사람들에 의해 그의 한많은 삶은 들어나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기전 북에서 산부인과 의사이던 그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 남으로 혼자 오게 된 사연이며 꼿꼿한 성격때문에 남의 눈에 나서 불행의 길을 걷게 된 질곡의 삶. 자신이 의사라는 것도 발히지 못하고 장의사 일을 했던 그가 소중히 간직한 청진기, 때론 인생이란 둥글 둥글 굴러가기도 해야하는데 너무 반듯한 선으로 일관하여 자신을 비루하게 만든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을 주었던 작품이다.

'낙타누깔' 월남전에 참전한 소대장은 남들처럼 번듯하게 돈을 마련하여 돌아온것도 아니고 마지막 군생활도 병원에서 있다가 바로 왔기에 두둑한 주머니를 차고 오지 않았지만 우연히 '낙타누깔' 이란 것을 거리에 나갔다가 사들고 오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그가 병장과 잠깐 나갔던 외출에서 구토증을 느끼며 간신히 참아 가다가 많은 돈을 마련하여 돌아왔다는 자를 만나 하룻밤 즐기려 들어갔던 곳에서 상대에게 주었던 낙타누깔을 그가 그이 입에 넣어주자마자 그동안 참아왔던 구토증과 함께 모두 게워내고 만다. 토사물들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낙타누깔, 자신의 모습을 닮은 낙타누깔 또한 우리의 아픈 한시대를 대변해 주고 있다. 

밀살, 얼마나 배가 고프고 없으면 남의 것을 탐할까? 서리도 이만저만한 서리가 아니다. 세명이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닭 서리라면 괜찮겠지만 그들은 남의집 암소를 밀살하기로 한다. 미리 봐둔 암소를 산으로 끌고 와 밀살하려 하지만 양심은 있었는지 자꾸만 빗겨 맞는 도끼자루, 하지만 그런 도끼자루에 암소의 운명은 끝이나고 그들은 피를 뒤집어 쓰고 암소를 죽이고 만다. 달빛에 허옇게 들어나는 흰살과 함게 뱃속에서 나온 죽은 새끼소, 자신의 아내가 곧 해산이 다가왔으면서도 내일을 위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농가의 소를 탐한 그들에게 내일은 어떤 태양이 뜰까? 아이를 잉태했던 아내는 아무일없이 해산을 한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이며 죽음을 느낀 소가 그토록 절박하게 온 산이 울리도록 울었는데도 주인이나 동네사람들은 그 소시를 정말 못들은 것인지. 배고픔 앞에서는 그 무엇도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나이가 어려서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만 철이 들고부터는 고향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마음, 여기 그런 두명의 남자와 여자가 있다. 떠돌이로 막일을 하는 영달과 정씨 그리고 술집 작부일을 하다가 몰래 도망가는 백화, 그들은 누구의 고향인지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하며 길을 떠난다. 삼포, 먼 기억속의 삼포는 열집도 안되는 가구가 모여사는 정말 그림같은 고향이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서 전해 들은 그곳은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여기저기 벌어지는 공사판으로 예전의 그곳이 아니다. 영달과 정씨와 헤어져 기차를 타던 백화가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처음 밝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어쩌면 내 이름도 고향도 알지 못하며 무언가에 쫒기듯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고향' 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든든한 언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눈밭이거나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지만 그마져도 없다는 것은 삶의 희망이 사라진것처럼 절망적이다. 

그의 단편들을 읽고 있다보면 맛깔스럽고 정갈한 우리네 토속음식을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티비 프로에 나와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그가 한동안 이슈가 된것처럼 그의 입담처럼 맛깔스런 작품들은 장편이건 단편이건 '읽는 맛' 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 오래된 작품들이라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쓸어버리기라도 하듯 그의 언어들은 그의 입담만큼이나 찬물에 헹구어낸 것들처럼 반들반들 윤이 난다. 우리네 삶에서 사각지대에 있어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의 삶을 한번 더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은 연말이라서 그런가 자신의 피를 팔아 하루하루를 살던 '이웃 사람' 이란 작품처럼 어느 티비광고문구처럼 한방울의 피가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만 한방울의 피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 단편외에 다양한 이야기꾼 황석영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y******2 2009.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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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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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본인은 노동자이다 물론 지금에 노동자가 우리나라 경제개발도상국을 외치던 60-80년대의 노동자와는 매우 많이 다르다 하지만 아직도 국회와 많은 3D 업종의 근로자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무어라 더 말을 할수 있을까? 나는 이 책에 제목을 본것은 영화였다 백일섭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삼포가는 길 물론 여자주인공 백화와 정씨는 누가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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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본인은 노동자이다 물론 지금에 노동자가 우리나라 경제개발도상국을 외치던 60-80년대의 노동자와는 매우 많이 다르다 하지만 아직도 국회와 많은 3D 업종의 근로자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무어라 더 말을 할수 있을까? 나는 이 책에 제목을 본것은 영화였다 백일섭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삼포가는 길 물론 여자주인공 백화와 정씨는 누가 맡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교육방송에서 해 준 이 어설픈영화는 나에게 책을 사게 해주었고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이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읽으려고 했던 "삼포길"(야칭) 보다 "섬섬옥수" "야근" "돼지꿈" 등에 더 애착이 간다 그런 내가 노동자이고 너무 단편적이 심적표현이 지금에 내자신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근에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라는 책을 읽고 노동자에 대한 아픔을 이리도 잘 표현 책이 또 있을까 했지만 이 책 또한 노동자라면 꼭 읽어 봐야하는 책이라도 두서없이 말하고 싶다
l****9 2004.1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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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산업화로인해 떠도는 뜨내기 인생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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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묘사하고 있다. 힘든 삶 속에서도 마음의 위안을 주던 고향이 개발의 여파로 점점 옛모습을 잃어감을 안타까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나는 작가가 고향의 상살이라는 산업화의 후유증을 경고하는 듯 했다 또 '백화'가 일행에게 본명을 밝히게 된 심리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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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묘사하고 있다. 힘든 삶 속에서도 마음의 위안을 주던 고향이 개발의 여파로 점점 옛모습을 잃어감을 안타까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나는 작가가 고향의 상살이라는 산업화의 후유증을 경고하는 듯 했다 또 '백화'가 일행에게 본명을 밝히게 된 심리적인 이유는 발목을 삔 자신의 업어 주고, 비상금을 털어 차표와 빵을 사 준 영달과 정씨의 훈훈한 인정에 백화도 자신의 진실된 마을을 보여 주고 싶었던것 같았다고 유추해 보았다 이것은 산업화 시대에도 인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 작가의 메세지가 아닐까??
r*****7 2004.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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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원한 휴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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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개발독재주의는 이농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된 농민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 가족처럼 무허가 판자촌에 살면서 도시 빈민을 형성한다. 이들을 위해 정권은 광주 대단지를 조성하지만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처럼 내 집 마련의 꿈을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고향을 떠난 또 다른 사람들은 「삼포가는 길」의 '정씨', '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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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개발독재주의는 이농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된 농민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 가족처럼 무허가 판자촌에 살면서 도시 빈민을 형성한다. 이들을 위해 정권은 광주 대단지를 조성하지만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처럼 내 집 마련의 꿈을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고향을 떠난 또 다른 사람들은 「삼포가는 길」의 '정씨', '영달', '백화'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이들이 고향을 찾아 가는 이야기이다. 이 중 '정씨'는 고향으로의 회귀 의식이 특별하다. 그는 십 년이 넘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가는 이유를 "그냥, 나이 드니까, 가보구 싶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랜 방랑과 교도소 생활을 통해 얻은 결과로 보인다. 폐가에서 '백화'의 과거를 듣고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라든지 '영달'에게 '옥자'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란 곁에서 오랫동안 두고 보지 않으면 저절로 잊게 되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 등을 보면 삶에 대해 어느 정도 내면적 인식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의 나이는 서른 대여섯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오랜 떠돌이 생활과 교도소 생활로 인해 그는 나이에 맞지 않는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영달'은 경망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다. '청주댁'과 있었던 일이나 '백화'를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았던 대화를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영달'은 '정씨'에 비해 고향으로의 회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정착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 '영달'이 삼포에 같이 가자는 '정씨'의 권유에 "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신발끝을 내려다보며 아무말"이 없어던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영달'의 내면 의식을 나타낸다. 또한 '백화'와 같이 가라는 '정씨'의 권유에 "시무룩해져서 역사 밖을 멍하니 쳐다보며", "어디 능력이 있어야죠"라고 말한 것과 대전에서 함께 살았던 '옥자'를 계속 생각하는 것도 "말뚝 박고" 살고 싶은 그의 내면 의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인물의 이름은 성격 창조의 출발점이다. 이름을 짓는 방법으로는 우의적 방법과 음성 상징을 이용한 방법, 별명을 이용한 방법 등이 있다. '백화'라는 이름은 우의적 방법에 의한 인물 명명법인 것 같다. '백화'를 '하얀 꽃'이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독자라면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갈매집 집'에서 군인들을 3년간 옥바라지했던 일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본명은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던 '백화'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본명을 '이점례'라고 밝힌다. 이런 장치는 그녀가 더 이상의 '백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며, '영달'의 걱정과 달리 시골에서 조용히 살 것이라는 그녀의 희망과 그러기를 바라는 '정씨'의 믿음의 표현이다. 이 소설에서 '삼포'는 실제 장소일 수도 있고, 가상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삼포'는 영원한 휴식처이며, 산업화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고향을 상징한다. 또 하나의 상징은 '눈'으로 생각된다. 이 소설에서 '눈'은 그들 세 사람이 걸어가야 할 고달픈 삶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하층민들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이들의 화해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층민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달'이 '백화'를 업어주는 장면과 세 사람이 폐가에 모였을 때, '백화'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백화'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백화'가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장치는 그들의 인간적 유대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YES마니아 : 골드 s****7 2001.10.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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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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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에서   바닷가 포차에서 나온 사내는 잠시 주춤하여 컴컴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 듯했다. 눈 그친 하늘은 불투명한 얼음처럼 하얗게 얼어있었다. 어지러이 널려있는 어망더미 위에는 내린 눈이 빙수처럼 덮여있다. 담뱃불을 붙인 그의 눈길에 흐릿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허름한 유리문이 보인다. 사내는 그쪽으로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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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에서


 

바닷가 포차에서 나온 사내는 잠시 주춤하여 컴컴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 듯했다. 눈 그친 하늘은 불투명한 얼음처럼 하얗게 얼어있었다. 어지러이 널려있는 어망더미 위에는 내린 눈이 빙수처럼 덮여있다. 담뱃불을 붙인 그의 눈길에 흐릿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허름한 유리문이 보인다. 사내는 그쪽으로 몸을 돌려 걷는다. 바닷가 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그의 콧등과 귓덜미를 베며 지나간다. 휘잉~

사내는 밭전(田)자 모양의 유리창이 달려 있는 오래된 나무문짝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좀 늦었지만 술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리 앉으세요.”

화장기 짙은 중년의 여자가 자리를 권하며 꾸며진 웃음을 던진다. 여자가 주방 쪽으로 들어가자 좀 더 젊은 다른 여자가 간단한 안주거리와 물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는다. 아마도 이 여자는 종업원일 것이라 사내는 짐작한다. 제법 눈길을 끄는 용모를 가진 여자다. 순간 사내는 소년시절의 이모들이 떠오른다. 시도 때도 없는 기억의 침입, 사내는 당혹스럽다.

“뭘로 드릴까요?”

“글쎄, 아무 거나, 독한 것이 좋겠네요.”

“어머, 그럼 양주로 드릴까요? 우리 집에 양주도 있는데”

“아뇨, 그냥 소주로 주세요, 얼큰한 안주로 해서”

“여기 분이 아니시죠? 출장 오셨나 봐요? 여행하시는 분 같지는 않고”

“……. 그냥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아침바다가 보고 싶어서, 아침까지 달릴 작정으로 왔는데……. 아침은커녕 새벽도 오기 전에 길이 끝났고 말았네요, 후후”

사내의 어투엔 쓸쓸함이 물씬 배어있다.

“어머,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 보다 호호~ 그죠?”

사내는 말없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담배를 꺼내 문다.


 

불과 몇 시간 전 사내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회사는 부도처리 되었고 모든 부동산은 빨간 딱지와 함께 법원의 소유가 되었다. 아니다. 소장을 낸 채권자들을 위한 담보로 법원에 맡겨졌다. 아내의 이름으로 등기된 집 한 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IMF가 터지면서 하청의 대가로 받아두었던 어음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사내는 빚쟁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직원들의 임금까지 떼어 먹은 악덕경영주가 되어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봐, 내 돈 어떡할 거야? 당신 믿고 빌려준 생떼 같은 내 돈, 조금이라도 꼬불쳐두었을 거 아냐?”

“이런 씨팔, 어음이고 나발이고 개 발싸개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해결해 빨리, 안 그러면 당신 죽고 나 죽는 거야”

“사장님, 사장님 사정은 알겠는데 그래도 일 시킨 것은 해결해주셔야죠? 밀린 기름 값에 부속 값에 당장 굶어 죽어요, 우린”

큰 토목공사의 골재수급권을 따내자 너도나도 투자하겠다고 덤볐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제 돈은 투자금이 아니며 빌려준 돈이란다. 임차한 중기업자들은 사기네 형사고소네 하며 으름장을 놓고 채권자들은 아무 때고 들이닥쳐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그 좋다는 직장을 차고나와 사업에 손을 댄 것은 물론 사내의 욕심 탓이었다. 쥐꼬리 같은 봉급으로 어느 세월에 돈 벌어 떵떵거리며 살까? 사내는 한 방, 그 한 방으로 밑바닥 진창을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향응과 접대와 갖은 뇌물로 골재수급권을 따냈다. 한 동안은 제법 돈도 만지며 개천에서 난 용이 될 부푼 꿈을 꾸었었다. 그러나 IMF와 함께 그의 헛된 욕망을 말 그대로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개천은커녕 하수구의 진창에도 사내가 설 곳은 없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떻게 살 거냐고, 애들은 커가고 뭘 먹고 살 거야? 응, 그러기에 무슨 사업씩이나? 송충이가 솔잎이나 먹고 살아야지 주제에 가당키나 한 짓이냐고? 이렇게는 더는 못살아, 못산다고”

아내는 닦달을 했고 갈수록 히스테리는 심해졌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사내는 점차 죽어갔다. 정신은 쇠약해졌고 의지는 무너져 내렸다. 세상은 야박했다. 사정과 이해는 돈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세상의 어디에도 위로 같은 것은 없었다. 세상은 사내를 그가 그리 원했던 한 방으로 세상에서 묻어버리고 지워버렸다. 사내는 더 이상 산목숨이 아니었다.


 

“궁금하다? 이렇게 젠틀한 남자가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곳에 밤늦게 찾아왔는지?”

어느새 사내의 옆자리로 옮겨 앉은 여자는 추파를 던져가며 사내를 구석구석 살핀다. 여자의 손은 어느 틈에 사내의 허벅지를 더듬고 있다.

“그러게, 나도 궁금해죽겠네. 말 해봐요, 신사오빠?”

처음 인사를 했던 주인 여자가 매운탕 냄비를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는다.

“신사? 후후, 사연은 무슨…….”

“아가씨는 이름이 뭐에요?”

사내는 몸을 붙여오는 옆의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이름요? 사연이 뭔지 물었는데 뚱딴지 같이 제 이름은 왜요? 이름 알아서 어디다 쓰시게요? 오빠”

“아니,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훗~ 혹시 이점례라고 아세요?”

“이점례? 그게 누군데요? 여기에 살아요? 혹시 그 분 찾아오신 거예요? 도망간 애인인가? 크크”

“그런가보다, 호호호, 이 아저씨 좀 엉뚱한 분이네”

맞은편의 여자가 은근한 눈짓과 함께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를 친다.

“아뇨,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그 이름이 생각이 나서요. 그런 거 아닙니다.”

사내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술잔을 목을 젖혀 털어 넣는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채 오랫동안 말이 없다.

 

 

그녀의 이름이 백화, 아니 이점례였지. 그 이름은 사내에게 수많은 이모들의 이름이었고 세상의 억울한 이들의 이름이었으며 이 천박하고 몹쓸 세상에서 가장 순정한 여인의 이름이기도 했다. 공순이라 무시를 당하면서도 시골집의 가난과 비루한 삶을 온 몸으로 감당해낸 누나들의 이름이었고 미자(몰개월의 새)였으며 영자(영자의 전성시대)였다. 그 이름은 어둡고 컴컴한 세상에서도 죽지 않고 꽃을 피운 한 떨기 야생화였다.

까까머리 소년은 어느 날 이모들을 따라 시골 극장에 갔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제목이 생각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소년의 기억에 그 영화는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심어 놓았다. 영화 때문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던 이모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더니 종내에는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우는 것이 아닌가.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소년은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소년은 (어차피 관람불가인) 영화를 볼 수 없었고 눈물이 마르도록 슬피 울기만한 이모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 극장을 나왔다.

극장을 나온 이모들은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이 되자 다시 술을 따랐고 노래를 불렀으며 이름 모를 사내들과 잠자리에 들었다. 사내는 자신이 있는 이 선술집이 소년의 집과 같다는 생각을 지금 막 하는 중이다. 그리고 옆에 앉아 제 잔에 술을 따르는 이 여자가 바로 이모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기억은 그렇게 아무 때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사내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이모들은 조용히 울음을 삼키며 술을 따르다가도 어느 때는 술병을 깨고 발악을 하며 발가벗고 손님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리곤 어제와 다른 남자와 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술상도 치우지 않은 그 퀴퀴한 방구석에선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인지 거친 숨소리인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열린 방문 틈사이로 보이는 이모와 남자는 벌거벗은 채 부둥켜안았다. 구멍 난 칸막이로 나누어진 또 다른 방의 냄새나는 술상 밑에서 소년은 잠을 자야했으므로 이모와 남자의 짓거리는 소년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광경이었다.

“재상아, 일어나 학교가야지, 얼른”

소년을 깨우고 식은 밥덩이나마 챙겨 먹이며 소년을 학교에 보낸 것도 이모들이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몸을 팔아야했던 이모들의 그런 보살핌이 여간 쉽지 않은 정성이었다는 것을 소년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이모들에게 소년은 집에 두고 온 동생이었고 꿈에서라도 보고픈 피붙이 대신이었다. 첩질 에나 빼어난 능력을 보인 아비와 그런 서방을 향한 악다구니로 사는 것이 낙인 듯했던 여러 명의 새 어미들은 소년을 돌볼 기력이 없었다.


 

“멋진 오빠, 술만 마시지 말고 말 해봐요. 이점례가 누군지? 응, 어서어서, 말을 안 하니까 더 궁금하잖아.”

여자는 혀 짧은 소리와 함께 노골적으로 몸을 붙여온다. 그런데도 사내는 그것이 싫지 않다. 취기에 잠을 깬 욕정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인가. 회사 문도 닫고 아내의 원망과 채근에 쫓겨 온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내는 사내로 서고 있는 것이다. 참 난감하고 계면쩍다.

“글쎄, 사실은 나도 몰라, 내 인생에서 이점례가, 백화가 누구였는지……. 마누라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지”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내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그것마저 불분명하다. 어쩌다 임신을 하고 세태에 맞추어 결혼이란 제도에 삶을 끼워 넣은 것은 아닌지? 이모들처럼 울리지 않겠다고, 자식들을 소년처럼 외롭게 버려두지 않겠다고 살아버린 세월 같기만 하다.


 

지옥 같은 선술집을 소년은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다. 시골 깡촌에서 대처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소년의 ‘빠삐용’은 이루어졌다. 고달픈 자취생활 속에서도 마음만은 편했다. 그 때에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과 만났다. 아하, 이모들을 울린 영화가 바로 이 소설이었구나! 알아차렸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고 때마침 TV문학관을 통해 드라마로도 백화와 영달과 정씨를 만났다. 삼포? 그곳이 어딘지도, 적어도 방향정도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소년은 대학생이 되었다. 학비마저도 스스로 벌어야 하는 고달픈 고학생의 삶 속에서 소년은 이모들의 삶이, 이모들의 울음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그들의 책임이 아님을,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천박한 자본의 세상에서 착취와 억압이 없이는 자신들의 배를 불릴 수 없는 기득권이 쳐둔 촘촘한 그물 탓이었고,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만이 강요된 세상의 그릇된 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유신은 교과서에나 있는 거짓 신화였으며 개발독재의 과실은 언제나 소수의 가진 자들 것이었다. 사내와 같은 밑바닥 출신들은 늘 그 과실을 위한 거름에 지나지 않았다. 겨우 소년에서 사내로 자란 풋내기에게 의식화는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이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가장 부끄러운 치부였으며 소위 먹물로서 회피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사명이었다.

권력은 양심을 탄압했고 잡아다 고문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별을 달지 않기 위해서 사내는 권력에 의해 감옥 대신 군대에 갔다. 온갖 불합리와 인간성이 말살되는 현장, 해병대에서 사내는 명예라는 가치에 눈떴다. 가장 저급하고 더러운 병영에서 명예라니……. 그 비밀의 열쇠를 사내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가장 추악한 진창에서 험악하게 싸우다가 평생의 지기가 된 동기애가 그 비밀의 열쇠가 아닐까 사내는 다만 짐작할 뿐이다.

 

민주화를 향한 민심은 마침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독재의 아성은 무너졌다. 5공화국의 대머리 독재가 막을 내려가던 날의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과 백골단의 무자비한 몽둥이가 뼈를 부수고 살을 갈랐다. 골목으로 샛길로 쫓기다 숨은 곳으로 비닐봉지가 불쑥 내게 던져졌다. 봉지 안에는 하얀 우유와 두어 개의 빵이 들어 있었다. 고개를 내밀어보니 보자기에 싼 쟁반을 들고 있는 여자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대학생 오빠, 힘내요! 나도 아니 우리 모두 다 오빠들 편이에요”

그녀는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저기, 저기 누구세요?”

잡혀 끌려갈지 모르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저기, 언제 지나다가 들러요. 오늘처럼 숨을 곳이 필요하면 오던지요 호호”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00다방이라는 간판이 동굴 같은 지하계단 입구 위에 걸려 있었다.


 


 

“그럼 삼포라는 곳을 혹시 아세요?”

여전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호기심과 이런 어촌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봉에게 씌울 술값을 가늠하는 듯 한 눈빛으로 웃고 있는 여자에게 나는 또 불쑥 물었다.

“아니 이점례는 뭐고 또 엉뚱하게 삼포라니? 대체 삼포가 뭔데요? 어디 지명인 것 같은데?”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수상한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여튼 이상하면서도 재밌는 분이네, 이 오빠, 깔깔깔”

“술이 취해서 그런지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소리 같네요. 흐흐흐”

“거기가 어딘데요?”

“나도 몰라요, 그런 데가 있다고만 들었을 뿐 나도 어디에 있는지? .……. 몰라요. 아마 오늘도 그 삼포라는 곳을 찾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죠, 흐흐,.. 글쎄요,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내 인생에 삼포가 있기는 한 것인지 어떤지? 으으”

“에이 시시하다, 그런 이상한 말 그만 하고 우리 술이나 마셔요. 나 오빠가 무척 맘에 드는데……. 우리 밤새 재미난 얘기나 하면서 술이나 마셔요 어때요?”

“그럽시다, 날이 새도 마땅히 할 것도 없는 따라지 인생인 것을요, 자자, 마십시다.”


 

사내가 시위 현장의 그 다방을 찾은 것은 6.29 선언으로 성난 민심이 양은냄비처럼 들 끊다 금세 식어버린 여름날의 오후였다. 그날도 사내와 동료들은 거짓의 정치공작에 금방 가라앉은 시국을 안주 삼아 대낮부터 막걸리로 쓰린 속을 달랜 후였다. 동지들이 사라진 거리와 캠퍼스에서 사내와 동료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사내는 모처럼 최루가스가 없는 거리를 걸었고 걷다보니 다방 앞이었다.

조명 낮은 지하다방에는 몇몇의 손님들이 칠 벗겨진 싸구려 소파에 앉아 흔히 레지라 불리는 여자들과 희희낙락 농지거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입보다 더 바쁜 것은 레지들의 몸을 더듬는 그들의 손이었다. 이제는 이모들의 밤을, 이모들의 거친 숨소리를, 이모들의 울음을 알아버린 먹물 사내는 민망하기보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에게 우유와 빵을 던져준 그녀가 그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값싼 웃음을 실실거리고 있었다.

“어마, 오빠 그 오빠 맞지? 최루가스 푹 뒤집어쓰고 담모퉁이에 쪼그려 숨어있던 그 오빠 맞죠? 맞네.

“여기 커피 한 잔 주세요.”

사내는 수긍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획 돌리며 퉁명스럽게 커피를 시킨다.

“정말 커피 마시러 오셨어요? 저 보러 오신 거 아니구요? 호호, 알았어요. 잠깐만”

짙은 화장에 가려진 여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어려 보였다. 소년의 집에 있던 이모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그 소년과 거의 같은 또래였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 사내에게는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사내가 알 수는 없었지만 사내는 그녀도 많은 백화 중의 한 명이라고 마음속으로 우기고 있었다. 비록 다방에서 차를 나르며 웃음을 팔고 있을망정 최루가스를 뒤집어 쓴 몰골의 도망자에게 일용할 우유와 빵을 전해주었던 그녀는 사내에게 백화여야만 했다.

그 후로 사내와 그녀는 자주 만났고 늦은 밤 그녀는 사내의 자취방에서 피곤한 나신을 누이곤 했다. 곤한 잠을 잤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은 채 사랑을 했고 내일을 생각지 않으며 다음날을 기다렸다. 그들은 서로 생각하는 것을 숨기며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말을 섞었다.

사내는 졸업을 했고 직장을 찾아 떠났다. 그리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그녀를 잊었다. 잊기 위해 애썼다. 그녀 역시 그곳을 떠났고 그녀의 심정을 사내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문득문득 고개를 쳐드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괴로운 척 스스로에게 생색을 냈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생활이 애정을 지배하는 갑갑한 가정을 꾸렸다.


 

“이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뵈두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에, 포항 중앙대학, 진해 칠구, 모두 겪은 년이라구……. 야아, 내 배 위로 남자들 사단 병력이 지나갔어.”

불현듯 부끄러움이 가슴을 할퀼 때마다 사내는 백화의 악다구니 속의 남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사내는 점점 취해갔고 여자의 수작에 넘어가는 척, 아니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욕정의 포로가 되어 갔다. 그녀의 가슴과 치마 속으로 서슴없이 손을 집어넣었고 은밀한 욕망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사내는 한 때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이모들의 하룻밤 남자였으며 백화의 몸에 올라탄 그 숱한 수컷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몇 시간 전 빈털터리가 된 기억은 몽땅 잊어버린 짐승일 뿐이었다. 동은 터왔으나 사내는 아침바다를 보지 않았다. 취기는 욕정보다 먼저 절정에서 고꾸라졌다.


 

“잘 잤어요?”

심한 갈증과 지끈지끈 쑤시는 두통에 어렵게 눈을 뜬 사내를 향해 어제의 여자가 곁에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녀와 사내는 알몸이다. 여자와 사내는 술과 욕망과 이점례라는 알 수 없는 여자와 어딘지 모를 삼포를 빌미삼아 서로의 몸을 탐했을 것이다. 그녀와의 성애가 좋았는지 어땠는지 사내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살갗과 털의 부드러움, 그리고 그녀의 냄새만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느낌이다.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 지랄 맞은 느낌이란 것을 사내는 어찌할 수 없다.

“어서 일어나 삼포로 가야지요? 백화도 찾고……. 호호호”

“무슨 소리지?”

“호호, 당신이 어제 다 말해주었거든요. 삼포가 어딘지? 백화가 누구인지? 아직 찾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찾으러 가야한다고도 했구요. 자자, 일어나세요.”

“저런, 내가 헛소리를 다한 모양이네 취했긴 취했군.”

“아뇨, 난 재미있었는데……. 내가 백화가 되면 안 될까? 호호, 여기가 삼포라면 더욱 좋구요 히히”

“쓸데없는 소리,.……. 물 좀 줘요.”

 

사내와 여자는 바닷가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고 서로 다른 길을 향해 등을 돌린다.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선창가에는 겨울바람이 세차다. “꼭 다시 와요”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내는 또 다시 망설인다. 삼포? 삼포, 어디로 가야하지 중얼거린다.

정씨는 삼포가 고향이라 했다. 백화도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 흔한 고향조차 찾지 못하는 영달의 신세가 꼭 자신과 닮았다고 사내는 생각한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삶의 원형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 어미의 모성이 올곧이 기다리고 품어주는 곳이 아니던가. 사내는 그 고향이 없는 삶을 살았다. 자신이 그토록 경원시하던 천민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사내는 언젠가부터 더욱 추잡한 자본의 노예가 되어 살아오지 않았던가. 아내의 말이 맞았다. 한 방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느새 그는 백화를 잊고 삼포를 잊고 말았다.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께요.”

백화는 말했지 않은가. 그런데 사내는 그 삶의 원형을 잊고 인간의 모성을 잊은 채 가짜에 현혹된 삶을 살아왔던 거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고향을 묻는 정씨의 물음에 답하는 노인의 따끔한 충고가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듯 사내의 가슴을 찌른다. 언제부터 나는 삼포를 잊었나?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정씨가 고향인 삼포를 잃은 것은 산업화, 개발로 인한 강제적 실향, 바로 ‘객지’의 삶이다. 문제는 스스로의 실향(失鄕)인 것이다. 사내는 자신의 삶이 자기 스스로 택한 실향이라는 자책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삼포는 아니 보인다. 내리는 눈의 장막에 바다는 뿌옇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사내는 자신이 영달의 신세를 모면하지 못했다 생각한다.

쌓인 눈이 길을 지우듯이 ‘삼포 가는 길’은 도대체 어딘지 모르겠다. 사내는 어제 그 포차 앞에 그대로 서 있다.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할지 모르는 까닭으로…….



이 글은 예스24의 '제8회 블로그축제' 응모작입니다.




 

*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비롯한 초기의 장․단편들은 제가 세상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 부조리한 세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깨닫게 해준 삶의 엑스레이 필름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소설들은 늘 인생의 고비마다, 내가 외롭고 흔들릴 때, 혹은 물질의 유혹과 몰염치한 욕망 앞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도록 해주는 파수꾼이자 버팀목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 인생의 책 중에서 맨 앞에 놓인 항법도 같은 소설이자 삶을 비춰보는 거울이지요.

이런 이유로 예전의 블로그축제에 이미 글을 쓴 바가 있어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소설의 형식을 감히 빌어보았음을 밝힙니다.

다음은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이미 세상은 부의 팽창과 편중만을 위해 움직이는 자가 번식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가진 자만을 위해 기능하도록 철저히 설계된 자본의 그물망 속에서 애초부터 가지지 못한 군상들에게 삶이란 선택이 아니라 모진 생존의 현장일 뿐이었습니다. <삼포 가는 길> <객지> <돼지꿈> <섬섬옥수> 등 황석영의 단편 속에서 만나는 문제적 개인들은 바로 그 생존 현장에서조차 쫓겨나고 내동댕이처진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었고 억울한 삶의 희생양이었던 것이지요.


 

6, 70년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 힘없는 자, 배우지 못한 자들은 이제 고향마저 빼앗긴 채, 막장과 막노동판과 공기구멍조차 없는 밀폐된 좁은 공간으로 밀려나야 했습니다. 꿈은커녕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그들에겐 위법이었지요. 사람으로서의 대접은 고사하고 그저 일한 만큼의 삯을 제때 받아 굶지 않고 사는 것, 그 유일하고 소박한 바람조차 세상은 그들에게 용납지 않습니다. 비정한 자본과 그 기생의 무리들에 의해 인간은 공사판의 철근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락했지요.


 

그 즈음 황석영의 단편들은 이처럼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불쌍한 인생들을 통해 세상의 진면목을 바로 보도록 해준 가장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비단 황석영뿐이었겠습니까. 일일이 거명할 수도 없는 많은 작가들의 소설들은 우리의 분단현실로부터 이념과 피식민의 참상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사회의 충돌과 갈등으로부터 부조리한 세계에서의 좌절의 숙명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진실들을 깨우쳐준 삶의 나침반이었습니다. 내게 있어 소설은 곧 삶 베끼기(모방)를 넘어 현실의 삶 그 자체였던 것이지요.

 

 

 


e******1 2015.09.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내용보기
□ 삼포 가는 길 이 작품은 이만희 감독에 의해 73년이던가, 74년이던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는 ‘로드 무비’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집니다. 사족을 달자면, 이만희 감독은 연기자 이혜영의 아버지일 것입니다(제 기억에). 이 영화의 여주인공 백화 역을 맡았던 문숙은 당시 촉망 받는 신인 연기자였습니다. 그녀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연인 사이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내용보기

□ 삼포 가는 길

이 작품은 이만희 감독에 의해 73년이던가, 74년이던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는 ‘로드 무비’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집니다. 사족을 달자면, 이만희 감독은 연기자 이혜영의 아버지일 것입니다(제 기억에). 이 영화의 여주인공 백화 역을 맡았던 문숙은 당시 촉망 받는 신인 연기자였습니다. 그녀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의 개봉을 보기도 전에 죽고 맙니다. 저주스런 운명의 장난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죽음은 한국 영화사의 참으로 큰 손실이었습니다. 80년대 ‘바보’시리즈의 하길종 감독의 요절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이만희 감독은 고인이 되었지만 영화는 대종상 감독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흥행에도 성공합니다. 다만 감독을 사랑한 여배우는 대종상 신인여우상의 수상에도 불구하고 영화계를 떠납니다. 이 감독과의 사랑이 그만큼 깊고 아픈 것이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글을 쓰며 검색을 해보니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일을 전전하며 쉽지 않은 삶의 시간들을 견디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요가에 매료되어 명상의 시간과 함께 요가 선생을 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삼포 가는 길>은 비단 영화로만 제작된 것이 아니라 KBS의 영상예술 <TV문학관>으로도 제작 상영되어 많은 시청자들의 얼을 빼놓았습니다. 특히 백화 역을 연기한 차화연의 농익은 연기는 당시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겨우 신인의 티를 벗은 그녀의 성숙한 연기에 모두가 놀랐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로부터 차화연의 이름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이름에 빠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리메이크 되어 방영된 <사랑과 야망>에서 한고은이 연기했던 미자 역은 원래 차화연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남성훈의 아내 미자 역을 맡아 열연할 당시의 차화연을 많은 시청자들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삼포 가는 길>에는 또 한 명의 그리운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정씨’ 역을 연기한 문오장이 그 사람입니다. 제 나이 이상의 독자들이라면, “아, 그 사람”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악역 전문배우라 말해지기도 한 배우이지요. 시대극이 한참이었던 당시, 악랄한 인민군의 장교에서부터 야비한 폭력배의 두목까지, 도맡아서 연기한 배우였습니다. 영화에 독고성(독고영재의 아버지)이 있었다면 드라마에는 문오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살아생전에 탤런트를 그만 두고 연기한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을 나는 이는 드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분도 하나님이 일찍 부른 탓인지 이승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1 2007.11.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 마음에 보석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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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마음 속에 자신만의 보석상자를 가지고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살아가면서 지치고 피곤할 때 힘을 가져다 주는 어떤 것들이 소중하게 놓여 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한 공간일 수도, 시간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종종 한시절을 회상하곤 하는데, 바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지금 그 곳은 퍽이나 심난할 테다. 뒷길에는 노란 개나리가 산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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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마음 속에 자신만의 보석상자를 가지고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살아가면서 지치고 피곤할 때 힘을 가져다 주는 어떤 것들이 소중하게 놓여 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한 공간일 수도, 시간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종종 한시절을 회상하곤 하는데, 바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지금 그 곳은 퍽이나 심난할 테다. 뒷길에는 노란 개나리가 산발해 있을 테고 지하철 입구에서 교문 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마주치는 과천 도서관, 공원에 심어져 있는 꽃나무들, 모든 것들이 봄바람에 출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남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마음도 출렁이겠지. 돌아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 곳에 머물렀던 내 시절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그리워 했던 공간을 단 한번도 제대로 찾아 간 적이 없다. 좌석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 언뜻 보이는 모습에 설레이고 지하철이 그 곳에서 멈출 때는 당장에 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나는 머리만 그 쪽으로 두려 했을 뿐,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백화와 정씨, 그리고 영달은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상 부유하는 인물들이다. 사회에서도 그들은 주변에 있다. 술집 작부, 감방까지 갖다온 노동자, 밥값 떼고 도망가는 사람…….속된 말로 세상에서 닳고 닳은 사람들이다. 거침없는 말발과 뻔뻔스러움, 악다구니 해대는 모습은 그들이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해 보이고 거칠어 보이지만 실은 정에 약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들이다. 나는 상처나 외로움 같은 것들의 아픔이 겪을수록 항체가 생겨 덜 아플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이미 파여진 골을 더 깊게 팔 뿐이다. 백화가 옥바라지를 한 이유는 결코 그들에게 반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런 방법으로라도 정을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백화와 정씨, 그리고 영달은 '어느 길'에서 만났다. 그 길은 보석상자에 들어있는 보석을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라 그 보석이 있었던 장소로 직접 찾아가는 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신에게 어떤 소중한 것을 상자라는 배경을 두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가려는 걸까. 새삼 골의 깊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일시적으로 정을 주고 상처 받고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어느 한 곳에 정착하고 뿌리 내리며 지속적인 정을 쏟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달과 정씨는 삼포에, 백화도 자신의 고향에 도착했을까. 나는 왠지 그들이 들어섰던 길에서 샛길로 빠져 다시 뜨내기 생활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내 안에 있는 보석이 그 곳에서 한낱 돌에 불과하다면 어떻하나. 내가 그 동안 위로받고 사랑했던 보석은 결국 나만의 착각이였다면, 나는 그게 겁난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마저 잃어버릴까 봐서. 인간은 어떤 것으로에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죽음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어린시절 뛰놀던 고향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회귀의 목적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자궁 안 같은 원초적인 향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돌아가지 못한다. 내 안의 '삼포'와 현실의 삼포는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삶에 대한 감상적 위안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끊임없이 그리워 하고 돌아가려 하면서도 기어이 가던 길을 걸어가는 모습들이야 말로 치열해서 아름다운 인간의 그것이 아닐까.
r****9 2001.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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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그리고 韓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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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글들은 항상 읽고나면 불꽃이 어른거린다... 객지가 그렇고 한씨연대기 또한 만만찮다... 삼포가는길에 만난 백화역시 가슴을 다시한번 아프게하는 우리의 누이다..   적산가옥 이층의 구석진 단칸방에 사는 노인... 어느날 그 노인은 쓰러져 죽고만다... 주위사람들이 연고지에 연락하여 달려온 세사람... 한사람은 죽을고생끝에 이북에서 피난온 친구였고 한여자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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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글들은 항상 읽고나면 불꽃이 어른거린다...

객지가 그렇고 한씨연대기 또한 만만찮다...

삼포가는길에 만난 백화역시 가슴을 다시한번 아프게하는 우리의 누이다..

 

적산가옥 이층의 구석진 단칸방에 사는 노인...

어느날 그 노인은 쓰러져 죽고만다...

주위사람들이 연고지에 연락하여 달려온 세사람...

한사람은 죽을고생끝에 이북에서 피난온 친구였고

한여자는 노인의 동생이었으며..마지막으로 한여자는 노인의 딸이었다..

 

해방전 일본에서 공부하며 의사가 된 한씨

고향인 평양에 돌아온 후...한국전쟁중에 공산당원에게 휘둘리며

결국에는 총살당하는 한씨

기적적으로 살아나..국군이 평양을 수복할때 잠시면 될줄알고 가족들 모두남겨두고

단신으로...남쪽으로... 내려온 한씨

전쟁직후 혼란한 사회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한씨...

결국은 무고한 투고로 빨갱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무너지는 한씨

불기소로 다시 사회에 나왔지만 그가 살아갈수 있는곳은 아무곳에도 없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정착한 적산가옥 단칸방에서

그는 무었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데올로기였을까???

아니면 고단한 삶에대한 회한 이었을까???

k*****1 2009.03.13.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