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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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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앎이기보다 신념이며, 신념은 실천에서 얻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실천의 신념을 뜻하며, 삶의 결실을 이웃과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134쪽)     늦은 출장길에 야간열차를 탔다. 언제나처럼 창밖의 풍경은 어둠에 갇혀 짙은 검음만이 가득하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 중 눈이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밤하늘 높이 떠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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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앎이기보다 신념이며, 신념은 실천에서 얻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실천의 신념을 뜻하며, 삶의 결실을 이웃과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134쪽)

 

  늦은 출장길에 야간열차를 탔다. 언제나처럼 창밖의 풍경은 어둠에 갇혀 짙은 검음만이 가득하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 중 눈이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밤하늘 높이 떠다니는 빨간색 십자가와 모텔의 네온사인 불빛이다. 이들만이 그 어둠을 밀어내고 화려하게 반짝인다. 어느 도시 어느 지역을 가도 밤의 어둠을 지키는 존재는 같다. 모두가 잠들은 검은 세상을 지키는 유일한 대상이다.

 

  한국의 교회는 서양에 비해 짧은 신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교세의 확장을 이뤘다. 어느 지역에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이 없으며,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시골 오지에 가도 반드시 교회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듯 수많은 교회 첨탑의 높은 곳에 세상을 밝히는 십자가가 높이 솟아있는데, 그리고 밤이 되면 수많은 십자가가 허공에 부유하며 떠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그 교회의 빛에 밝아지지 않은 걸까.

 

  누가 나에게 종교를 물어보면 난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교회를 나가지는 않는 기독교인이다. 초등학교시절 친구의 전도에 의해 만나게 된 기독교와 교회는 그 이후로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조그만 개척교회였던 교회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믿음 안에서 공동체적인 활동과 사회를 위한 봉사와 세상의 부조리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그 모습이 좋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을 지나오는 동안 내 삶의 제 일 순위는 신앙이었고 교회였다. 대학시절에는 방학만 되면 개인적인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교회의 행사에 참여했다. 유년부와 중, 고등부 하계 수련회를 시작으로 대학부나 청년부 수련회, 그리고 농촌지역 교회를 위한 봉사활동까지를 치러내면 방학이 끝났다. 그것이 내가 다니는 교회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일상에서 떠오르는 의문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하여 교회의 교세가 확장되어가고, 신도수가 늘어가면서 교회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되었다. 처음 교회를 다닐 때 그 교회는 남의 건물에 세를 들어서 살았다.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건물주의 눈치를 봐야만 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후 신도수가 수 천 명이 넘어가는 교회로 급성장했다. 물론 교회도 거대하게 신축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당연히 발생하는 인간적인 갈등과 신앙인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자주 대하게 되었다. 그저 교회도 하나의 조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집단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한 교회의 진정한 목적과 하나님의 소명이 아닌 교회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이들을 위한 요란한 행사와 세속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한 의문까지도 들게 했다.

 

  교회 건물은 높아지고 신도 수는 늘어나지만 세상은 그 이전보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믿지 않는 이들의 본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교회로 인해 믿음의 시험에 들어 신앙을 져버리는 이들도 보게 된다. 지금도 가끔 번화가에 나가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전도라는 명분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뿌리게 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복신앙으로 전래한지 오래이다. 일부 성직자는 그를 이용해 개인의 이득을 취한다. 교회에 잘하고 목사님에게 잘하면 복을 받는다는 논리로 믿는 자들을 현혹한다. 물론 그러한 논리를 펼치는 것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함인가? 아니면 살아서 복을 누리기 위함인가? 만약 그것이 기독교의 근본 목적이라면 그처럼 이기적인 종교가 어디 있는가? 우리 이웃의 고통과 가난을 외면한 채 살아서는 남보다 잘살아야 하고, 죽은 후의 삶을 위해 신을 믿어야 한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다. 단순히 내가 교회에 나감으로 인해 무언가 보상을 받고자 하는 보상심리이다. 그건 신과 인간의 거래이다. 인간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인간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의 이름을 빌어 교회의 부흥에만 힘쓰는 이 땅의 교회는 교회로서의 그 본분을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신도들에게 십일조를 강조하고, 그 십일조로 교회의 부흥에만 힘쓰고, 불신지옥을 부르짖으며 전도라는 명분으로 기독교에 대한 이질감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궁극적인 고민이나 지식도 없이 그저 자신의 편리에 의해 그 말씀을 왜곡하고 그로 인해 이익을 추구하는 수많은 종교인의 모습은 나처럼 많은 이들이 교회를 등지게끔 했다.

 

  이 책은 교회를 등지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가졌던 많은 신앙에 대한 질문.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못했던 그 많은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준다. 그동안 다양한 종교서적을 접했지만 이렇게 후련함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어쩌면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는 그 말씀 하나로 성직자가 전해주는 말씀이 진리일거라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이 책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들려준다. 저자인 김형석은 철학과 교수로써 교회에 얽매이지 않고 오랫동안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어오며, 진리 안에서 자유 한 크리스천의 사회적 책임론을 강조하신 분이다. 한국의 그 수많은 교회를 두고 교회가 아닌 일반 모임장소에서 성경모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역설적으로 한국교회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나타내준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첫째 장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라는 소제목으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그 답을 준다. 2장에서는 기독교를 탄생시킨 예수의 존재와 진면목에 대해서, 3장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갖게 되는 의문들인 구약과 신약의 관계, 믿음과 기적, 기복과 종교를, 4장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에서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을, 5장에서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이 사랑인데, 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기도인 주기도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저자의 친절한 해석과 더불어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갖게 되는 의문과 기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해줌으로써 현재 이 땅의 교회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신약의 성서구절속의 예수님 말씀을 통해 하나씩 증명해 보이고 설명해 간다. 그 설명의 논리와 그 논리의 근거를 성경 말씀에 둠으로써,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시각도 제공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속이 다 후련했다. 논리적인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종교의 기본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을까? 기독교의 존재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받쳐 모든 이들의 죄 값을 대속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건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을 향한 종교이다. 바로 나를 포함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대부분이 올바르고 소망스러운 대인관계, 즉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신약 신앙이 인류의 종교로 확대되며 기독교가 인류의 진리로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참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진정으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럼 이웃이란 누구인가. 이웃이란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225쪽) 진정한 믿음이란 이웃에 대한 사랑이고,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실천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종교학자가 쓴 책에 ‘한국의 교회가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느님의 심판이 칼날같이 내리 칠 것이다’고 하였다. 이제 한국교회는 거듭나야 할 때이다. 교회만을 위한, 몇몇 성직자와 교인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는 더 이상 안 된다. 폐쇄적이고 이익집단으로 변모한 기존의 기독교에서 벗어나 굳게 닫힌 교회의 문을 열고 우리의 이웃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과 이웃의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그들의 사랑의 손길을 펼칠 때 이 땅의 초기 기독교가 그랬듯 그 부흥의 역사가 온누리 끝까지 들불처럼 번져갈 수 있을 것이다.

 

 



h*****o 2013.10.21. 신고 공감 7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믿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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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고라>라는 영화를 보았다. 배경은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392년 이후 알렉산드리아이다. (현재의 이집트) 불과 몇 십년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이교도('여호와', 곧 '야훼'로 계시된 유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아왔고, 박해를 피해 멀리 이주를 하기도 했으며, 사자우리에 던져져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영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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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고라>라는 영화를 보았다. 배경은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392년 이후 알렉산드리아이다. (현재의 이집트) 불과 몇 십년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이교도('여호와', 곧 '야훼'로 계시된 유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아왔고, 박해를 피해 멀리 이주를 하기도 했으며, 사자우리에 던져져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그런 박해를 벗어나 기독교인들이 이교도와 유대교를 박해하는 모습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그려내고 있었다. 단순하게 '종교가 다르기때문에'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정치적, 역사적 갈등의 원인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믿음'이라는 것이 사회적 현상으로 드러난 사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심한 박해를 받아온 역사또한 사실이며, 권력과 정치적인 결탁으로 인류에 큰 오류를 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잘못한 점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마땅하고, 올바른 믿음이 무엇인지 나타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으로는 '믿음'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물론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바로 인간의 부패한 본성과 연관된다. 지향하는 바가 있지만 의지나 노력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인간의 한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역사적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같이 박해를 받으며 고통속에서 '순교'를 당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대부분 일반적으로 보기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서신과 주변 인문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단순히 죽음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런 믿음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의 '믿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말한다.


"그렇다면 참다운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누구도 그 정의를 만족스럽게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들의 지성, 의지, 감정을 모두 묶은 고요하고도 엄숙한 전인적이고 인격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신앙은 흥분상태나 감정의 내용만도 아니며, 합리적인 사색이나 신학적 결과 그 자체가 생명력 있는 신앙의 전부도 아니다. - 130쪽


  신앙이라고 해서 다 같은 신앙이 아니라는 말이다. 곧 믿음이라고해서 다 같은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 김홍전 박사는 <구원의 신앙>이라는 저서에서 신앙을 역사신앙, 현세신앙, 기적신앙, 구원의 신앙으로 구분했다. 역사신앙이라 함은 역사적으로 있었던 가르침을 믿을뿐, 그 가르침들이 한 인격을 변화시키기보다 역사적 사실들, 신학적 지식들을 공부하는데에 집중하게 되는 신앙을 의미한다. 현세신앙은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과 연결되며, 기적신앙은 신비적인 측면에만 사로잡혀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무모한 믿음을 견지한 신앙을 말한다. 그렇다면 구원의 신앙은 어떤 신앙을 말하는 것인가? 


'구원은 믿음을 대가로 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이 단번에 하나님께로부터 그에게 임하고 그로 말미암아 동시에 성도에게 믿음이 심긴 것입니다. 오랫동안 씨름해서 조금씩 얻는게 아니고 단번에 주신 것입니다. 어둠에 있다가 빛으로 쑥 들어오는 것입니다. 회의, 방황,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던 상태에 있다가 "아, 그렇다!" 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경계는 분명합니다. "혹시 그런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그런 것 같다." 이런 건 결국 아닌 것입니다.' 


  결국, 구원이 먼저다. '믿음'음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비참함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죽음에 이를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은혜로 구원해 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구원자를 위해 살아가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참 신앙과 참 믿음을 가진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분하기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이다, 그 믿음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면 방향을 바꾸어야 하며, 올바른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탈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저자가 말한 '전인적이고 인격적인 과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영혼과 육체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로 전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육체에 이상이 생기면 영혼에도 이상이 생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덕이나 윤리를 지향점으로해서 인격을 수양하며 믿음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인간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 그 감사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신앙이다. 철학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믿음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런 시도들은 믿음을 온전히 설명해 낼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현시대에 비판받는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진, 참 된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유에서다. 저자가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이유에 백번 공감하지만, 좀 더 원색적이고 본질적인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고 관념적인 수준에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불친절함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 



s********8 2013.09.16. 신고 공감 4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어떻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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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안병욱 교수와 함께 김형석 교수의 글은 독자들에게 꽤 울림을 주는 책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철학적으로 빈곤했던 한국 사회에 그나마 철학적 안목을 담아 삶의 길을 묻는 에세이를 쓴 필자였다. 책 표지를 통해 오랜만에 만나본 김형석님의 얼굴을 보면서 그 간의 세월을 간극이 느껴짐은 어쩔 수 없었다. '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일반 대중이 아닌 기독교 신앙인들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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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안병욱 교수와 함께 김형석 교수의 글은 독자들에게 꽤 울림을 주는 책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철학적으로 빈곤했던 한국 사회에 그나마 철학적 안목을 담아 삶의 길을 묻는 에세이를 쓴 필자였다.

책 표지를 통해 오랜만에 만나본 김형석님의 얼굴을 보면서 그 간의 세월을 간극이 느껴짐은 어쩔 수 없었다.

'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일반 대중이 아닌 기독교 신앙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앙 안내서라고 할까. 어떤 정신으로 기독교 교인이 되고 신앙인이 돼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나 요즘 우리 사회의 기독교인 엄밀히 말하면 개신교인들을 보면 호감보다는 비호감을 느끼는 축이었다. 신도 수가 줄고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 개신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과히 좋지 않은데, 그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개신교 내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격적인 선교방식에서 보여지는 유일신의 원리주의적인 일면과 그러면서도 대형화와 기복적, 물질적으로  치닫는 교회를 보면 또 신앙인이 아닌 속물의 모습, 이 양면성에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인의 모습에 실망하고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연 그런 모습들이 신앙인으로서 참된 자세일까?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날선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이런 교회의 모습에, 기독교인의 모습에 의문을 품고 있는 신앙인이라면 읽어 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또 이성적인 시각에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도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어차피 종교 자체가 이성으로 모두 이해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신비적인 요소나 초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종교에 대한 이해의 차원에서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책은 필자가 34개의 단상을 담은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단상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해 명쾌해진 것들이 여러가지 있었다. 우선 신앙의 개념에 대해서인데,

 

             

 

"믿음은 앎이기 보다는 신념이며, 신념은 실천해서 얻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믿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실천의 신념을 뜻하며,삶의 결실을  이웃과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134쪽)

 

이 대목에서는 머리 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인간과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관계에서 해결받는다는 정신이 깔려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신에게 의지하거나 단순히 의지만이 아닌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서 신앙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가져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이 말은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고 종교를 가진 모두에게 해당사항이 되지 않을까.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닌다고 신앙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오늘날 기독교, 특히나 개신교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신앙의 목적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궁극적 완성과 신앙적 구원에 목표를 두고 있고, 인간애를 실천하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신앙인의 자세를 잘 짚어주고 있다. 분단 사회, 자본 주의사회 전체 속에서 그 마음가짐을 전해주고 있다. 물질과 일과 관련해서 지켜야할 덕목들도 빠지지 않고 언급하고 있어서 현실성도 있었다. 마냥 종교 지상주의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종교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었고, 이웃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다는 것도, 인간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형석님의 인생경험, 즉 일제시대에서 기독교인이라 탄압받고 신앙심을 시험받아야 했던 경험이나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에서 탈출해 월남했던 경험, 그래서 신앙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가슴깊이 깨달았겠지만, 한편으로는 비장감이나 무거움이 느껴져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고루해 보이기도 했다.

요즘처럼 일상의 유혹 물질의 유혹, 신앙인으로서 일상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고 타 종교와 공존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상대적으로 약하지 않았나 싶었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를 통해 신앙으로서의 기독교를 신학적으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 비개신교인이라 전적으로 다 공감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원래 신앙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제 막 신앙인이 된 기독교, 특히 개신교인이라면 새겨둬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이 책을 덮으면서 기도했다.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기독교, 특히나 개신교회 목회자들과 개신교인들이 진정한 신앙을 깨닫게 되기를, 그리하여  사랑을 실천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참신앙인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YES마니아 : 로얄 e****0 2013.08.21.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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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거듭됨에 따라 신앙과 삶이 영원한 것으로 성장하는 기독교 이야기
"기도가 거듭됨에 따라 신앙과 삶이 영원한 것으로 성장하는 기독교 이야기" 내용보기
‘교회와 그리스도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이 책은 철학자 김형석의 지적 성향과 실존적 관심이 펼쳐지는 신앙서적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하나님은 궁극적 관심의 해결을 위해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적 개념들로 해명할 수 있는 신앙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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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그리스도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이 책은 철학자 김형석의 지적 성향과 실존적 관심이 펼쳐지는 신앙서적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하나님은 궁극적 관심의 해결을 위해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적 개념들로 해명할 수 있는 신앙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을 기다리면서 산 유일한 분으로 정의한다. 예수의 그런 삶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희생제물로서의 자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의 관심은 휴머니즘에 닿아 있다. 물론 그것은 종교와 신을 거부하는 철저한 인간주의로서의 휴머니즘이 아닌 인격적 삶의 완성을 위해 신앙과 신을 받아들이는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저자는 반신적(反神的) 인도주의자들을 오히려 기독교 신앙에 가까이 이른 사람들로 정의한다. 저자의 그런 문제의식은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 인간의 문제는 인간에 한한다고 본 실존주의자들,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등 인간의 완성은 신의 은총에 의해 가능하다고 본 실존주의자들을 아울러 인간의 실존적 완성을 문제삼았다고 보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알게 되는 사실은 무신론적 실존주의도 신앙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그리스도를 영원 속에서 우리에게 시간을 나누어주는 분으로 정의하는데 이 부분에서 내가 느낀 것은 무신론적 실존주의도 그리스도에게로 합류된다는 기독교적 자신감이다. 표적주의와 신비주의를 경계하는 저자는 성령에 대한 관점이 물리적인 데에서 궁극 차원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저자에 의하면 성령은 위로의 영적 작용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은총을 내리고 우리들을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데 동참하게 한다. 저자는 어떤 역경이나 시련 속에서도 선과 악의 가치판단을 명백히 내릴 수 있는 것이 진리이며 그에 따르는 것이 자유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참 어려워 보인다. 그 어려움은 정의 위에 사랑의 질서를 살려가야 하는 과정의 어려움이며 정의를 살리면서도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랑의 뜻을 실천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다. 저자의 예수 해석은 흥미롭다. 예수는 당신이 육체적 질환을 고친 사실을 숨겼는데 그 이유는 그래야 정신적 질환과 인격적 병을 치료하는 복음과 말씀을 널리 증거할 수 있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정녕 문제시한 당시 유대 사회의 병은 육체적 질환이 아니었다. 예수는 정신적인 병, 인격적인 병을 치료해야 할 진짜 병으로 보았다. 이는 성령의 본질이 물질적인 관심을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고 위로와 은총, 궁극적 관심을 해결하는 데 있는 것과 맥락이 같다.



성령에 의한 은총을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에게 선택된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가룟 유다는 종교적 신앙과 은총 앞에서 굳게 문을 닫았다. 유다의 문제는 은총을 세속적으로 이용했다는 데 있다. 저자는 바울을 읽고 연구하다가 예수의 교훈으로 돌아오면 그리스도의 교훈이 태산과 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넓은 것에 놀라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학자들이 바울을 택하는 것은 기독교를 이론의 그릇에 담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바울은 유대인의 정통을 지켜온 사람이기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구약적 전통과 연결지으려 노력했다.



문제적 상황인데 그렇게 구약적 전통에 의거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의 하나는 십일조 강요이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저자는 이에 교회를 위한 십일조보다 가난에서 이웃들이 해방될 수 있는 사명에서 교회의 책임을 강조한다.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논리이다. 십일조 문제보다 근본적인 것은 예정론이라는 문제이다. 예정론은 (기독교 전체의) 진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특정 교파의) 교리에 의거한 것일 뿐이다. 저자의 또 다른 흥미로운 해석 중 하나는 기독교는 신학(神學)이 아니라 신학(信學)을 갖는 종교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무신론자에게도 신학(神學)은 가능할 수 있다. 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도 인간의 실존적 완성을 문제삼았다는 앞서의 견해와 상응한다.



저자는 허무와 절망에 허덕이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구원의 약속과 체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은총이며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은 항상 우리들의 인격을 변화시키며 정신생활을 고귀하게 이끌고 역사 속에 영원한 것들을 남겨 가게 해준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망친 것은 공산주의라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인용하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보다 앞서 있지만 방향과 목적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하는 저자는 인간 소외를 낳은 경제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 주체와 인간 목적의 정신을 가진 기독교(에의 참여)를 제안한다. 이것이 참된 휴머니즘임을 분명해 보인다.



최인훈의‘광장’에 기독교(카톨릭)와 공산주의(볼셰비즘)의 유사점을 열 가지 항목에 걸쳐 설명해 놓은 대목이 있는데 저자는 기독교의 절대주의를 공산주의의 절대주의와 비교하며 전자는 선택의 자유 속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이 겸손하고 성실한 갈망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저자는 교회사를 더듬어 보면 교리와 교회를 이웃의 생명이나 인격보다 더 소중히 여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사례가 무수히 많았음을 지적한다. 이는 인간애(人間愛)의 종교인 기독교의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죄(인간이 악을 저질렀을 때 느끼는 죄책감)와 악(인간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할 수 있는 가능적 존재 전체)이 만연해 있다. 악무한(惡無限)이라는 말을 하는 철학자가 있을 정도이다. 이런 세계에서 현대인이 드릴 수 있는 기도는 무엇인가?가 저자의 근본 관심이다.(저자에 의하면 기독교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종교이다.) 예수께서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마지막 기도 제목으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역사의 악과 사회의 악으로부터 해방시키며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종교는 참다운 신앙을 약속해준다. 기독교가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종교이라 했지만 관건은 기도가 거듭됨에 따라 신앙과 삶이 영원한 것으로 성장하는 것이리라.

m******1 2013.08.20.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노 철학자의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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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을때 읽었던 세계철학사를 간단하게 100장면으로 간추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책의 저자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형석 교수가 쓴 책이였는데 꽤나 쉽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어느정도 직감을 했지만 이 책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를 통해서 이분이 그리스도의 신앙안에서 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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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을때 읽었던 세계철학사를 간단하게 100장면으로 간추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책의 저자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형석 교수가 쓴 책이였는데 꽤나 쉽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어느정도 직감을 했지만 이 책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를 통해서 이분이 그리스도의 신앙안에서 철학을 올린 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오래전에도 이분이 쓴 철학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뭔가 고전적이면서도 보수적이고 생활 철학자 같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교회와 그리스도,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노철학자의 신앙고백서와 같은 책이다. 말하자면 저자 김형석 교수의 내가믿는 신앙은 무엇인가에 대한 일종의 정리서 같은 책이다. 개인적 사도신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인 신앙학술서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신앙을 여러범주에 걸쳐서 정리해 놓은 것이기에 읽기 편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여러 가지 사회와 정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적은 것이기에 신앙에 도움이 되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2장은 예수와 그 주변 사람들, 3장은 신앙적인 문제들, 4장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5장은 은총의 질서속에서, 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철학자 답게 신과 인생과 역사와 영원의 관점에서 본인이 성경을 통해서 믿고 있는 것들을 정리한 일종의 본인의 신앙고백서라고 할수 있고, 2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고, 즉 기독론이라 할수 있고, 3장은 신앙의 난제들에 대한 변론과 해설, 4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5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과 주기도문 해설이라고 할수 있다.

 

깊은 철학적 훈련을 거친 학자답게 번득이는 예지와 통찰과 감동이 어울어진 뛰어난 명문장들이 참으로 많았다. 깊은 통찰에서 건져내는 교훈과 고백은 오래동안 묵혀놓은 진한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였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 사단의 시험을 받는 과정을 쓴 글에서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기 이전에 사람의 아들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수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도 먼저 버릴것은 버리고, 떠날 것을 떠날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신앙의 길을 예수님처럼 쉽고 간단한 길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현실의 길에서 참된 인간의 길, 즉 예수의 길을 묵묵히 따라갈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다는 부분에서 많은 감동이 밀려왔다.

 

신앙의 길을 단순히 성경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삶을 실천하는 삶이며 깊은 사색과 묵상을 통해서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참된 기독인의 길이라는 것을 노(老) 그리스도인 철학자가 설파하고 있다. 요즘 너무나 가벼운 종교인들이 많고 성직자들이 많다. 신앙은 잔기술이 아니고 내공이다. 깊은 숙성을 요구하지 가볍고 발빠른 처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면 복받는다는 식의 상업화된 소비주의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의 요구에 부합한 인본주의 가르침이다.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진정한 예수님의 정신과 길이 어떠한 것인기 깊이 고뇌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분의 길을 묵묵히 따르고자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고뇌가 울리는 것을 느낄수 있다.

 

1981년에 출판된 책을 개정하여 다시 출판한 것이라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읽으면서 담담하게 고백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깊은 울림을 줄지 몰랐다. 제자가 된다는 것, 즉 참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것과 새것을 함께 꺼내올 수 있는 서기관과 같은 것이라는 복음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깊이 흐르는 신앙의 물로 세례받는 기분이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 길밖에 택할 수가 없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사람의 아들’로 출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악마는 예수를 떠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예수와 함께 하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버릴 것을버리고, 떠나야 할 것을 떠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받게 된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어렵게 예수의 뒤를 따르는 일이다. p.77 



YES마니아 : 플래티넘 f****1 2013.10.30.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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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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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님은 연세대를 졸업하시고 연세대에서 오랜 시간 동안 교편을 잡기도 하신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수필가입니다. 요즘은 신간 발간이 좀 뜸하신 편이라고 해도, 지난 시절 그분의 주옥 같은 수필 한 편을 안 읽어 본 분은 아마 없을 거에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수필가의 위상에 오르는 건 극히 힘든 일인데요. 특정 시대의 독자를 보편적으로 통찰하고 사로잡을 줄 아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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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님은 연세대를 졸업하시고 연세대에서 오랜 시간 동안 교편을 잡기도 하신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수필가입니다. 요즘은 신간 발간이 좀 뜸하신 편이라고 해도, 지난 시절 그분의 주옥 같은 수필 한 편을 안 읽어 본 분은 아마 없을 거에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수필가의 위상에 오르는 건 극히 힘든 일인데요. 특정 시대의 독자를 보편적으로 통찰하고 사로잡을 줄 아셨기에, 그토록이나 큰 사랑을 받으셨던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새로 나온 책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당신께서 남기신 주옥 같은 글 중 가장 빛나는 명편을, 새로운 디자인과 판짜기 작업을 통해 다시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이 내용은 저도 오래 전에 읽은 것이고,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반 형편이 큰 변화를 겪었다고는 하나, 신앙과 세상사 사이의 간극으로 마음에서부터 큰 갈등을 치르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아 이것이야말로 내 영혼의 답을 단비처럼 내려 주는 고마운 말씀이구나. '하는 감명과 각성을 갖게 해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바로 저 자신이 그러했었구요.


이 책은 예전 학원사에서 나온 적이 있고, 저는 아직도 빛바랜 그 오랜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곁에 항상 있었으니 절판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그다지 크게 바뀐 게 없지만, 세월이 이렇게나 지나서 깔끔한 활자와 질 좋은 종이에 깨끗이 인쇄된 모습을 보니,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짱짱한 효력과 마음의 울림을 가득 안기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반가움과 감동의 진동 또한 남다릅니다. 인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 온 노학자의 통찰과 깨달음, 그 깨달음의 삶이 독서와 신앙에까지 투철히 침투해 드는 심오한 경지, 이 모든 것이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예수는 누구였는가, 역사적 예수는 어떤 존재였으며, 그를 따르던 사도와 제자들은 오늘의 시선에 비추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우리는 이들을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영접해야 하는가. 책과 그 저자는 독자에게 책상 위에서의 공론이 아닌, 현실과 치열히 벌이는 전쟁 와중에 있는 생활인으로서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현자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초월해서 공명하게 하는 바가 있나 봅니다. 

k*********6 2013.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