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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이탈리아의 한 바닷가 벽촌 포르타 베르고냐에 금발의 아름다운 미국 여배우가 등장한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조그만 어촌에서 아버지가 남긴 작은 호텔을 운영하던 파스쿠알레는 전체적이 조화로움이 유난히 아름다운 여배우 디 모레이를 처음 보는 순간 특별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것은 그러니까 의심할바 없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로케중이던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으러 왔다는 디 모레이는 몹시 아팠고 디 모레이를 인적드문 곳으로 보낸 사람은 당시 폭스사의 캐스팅디렉터였던 마이클 딘이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한창 스캔들이 나 있는 상태로 영화의 흥행에 또 제작비에 도움이 되던 중에 남자 주인공 리처드 버튼과 사랑에 빠진 또 다른 여배우 디 모레이는 마이클에겐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업계에서 노련한 그답게 마이클은 디와 리처드를 떼어놓는다. 파우쿠알레는 죽어간다고 믿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기다리고있던 남자를 찾아 직접 로마로 떠나 디에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다 주지만 결국 디는 마이클 딘의 교묘한 오해의 덫에 빠지고야 만다. 명망 높은 상인가문이었지만 전쟁통에 내리 두 아들을 잃고 더 이상 자식을 잃지 않으려고 벽촌으로 숨어들었던 아버지 카를로가 죽자 파스쿠알레는 어렵게 허락을 얻어 다니던 피렌체의 대학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보살피기위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언젠가 미국인 관광객으로 성황을 이루는 호텔을, 해변을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유일한 단골 미국인 투숙객 앨비스 벤더가 파스쿠알레의 아버지 카를로에게 아무것도 바꾸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던 포르타 베르고냐의 그 천연의 아름다움을 닮은 파스쿠알레는 디 모레이를 그대로 사랑하기에 앞서 책임져야만 하는 일이 있었고 그렇기에 파스쿠알레는 안타까운 사랑을 잃었으나 비겁하지 않은 남자가 되고 또 다른 사랑을 지켜낸다. 결과적으로 파스쿠알레가 선택한 것은 하나의 사랑이었으나 지켜진 것은 순수한 그의 모든 사랑이라 할 수 있었다. 파스쿠알레와 디 모레이와 앨비스 벤더와 마이클 딘 또는 그의 비서 클레어, 디의 아들 팻등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962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거 이탈리아와 현재의 미국을 중심으로 50여년의 세월이 교차되지만 이야기는 잔잔하고 생기가 가득하다. 영화 비포선셋과 비포미드나잇에서 제시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제시가 말하는 부분은 잠깐이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이야기는 짧지 않다. 지루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찰나에 느끼는 감정들, 마음의 깊은 곳을 드러내는 일이란 요약적인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가 짧게 응축된 시로 표현될 수는 없는 일이고 어떤 이야기는 꽤 긴 호흡이 필요하기도 하다.
열정적으로 산화하는 아름다움은 강렬함과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오래도록 많은 이야기를 품은 아름다움은 크고 긴 여운을 남긴다. 어떤 영화에선가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삶이란 온통 아이러니로 가득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인생의 편직물이 된다.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른다. 하나의 기억,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지우고 싶거나 상처받거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은 모든것이 그렇듯 지나가고, 시간이 흐른 뒤 단순한 추억에 머물렀다가 기억의 폐허가 되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되살릴때 기억속의 폐허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발견되기도 한다. 읽는 내내 디와 앨비스 그리고 파스쿠알레(파스쿠알레의 어머니의 사랑까지 포함해서) 세 사람이 끌어안고 있던 아침의 태양이 미처 태워버리지 못한 안개같은 슬픔과 아름다움, 그리고 포르타 베르고냐의 어부들의 감초같은 깨알같은 재미에 시간이 부드럽게 녹아 들었다. 과거의 추억들은 슬프지만 아름다웠고 과거의 부산물인 팻의 인생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함께 마주하자 이야기는 오히려 흥미로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맘에 안들던 표지가 상관없을만큼 긴 여운이 가슴 가득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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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미터 떠러진 곳에서 파스쿠알레 투르시는 여자의 도착을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아니 어쩌면,나중에 생각해 보면,그것은 꿈이라기 보다 오히려 한평생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대하는 소나기의 청명함이라 할 수 있었다. - 본문 -
나도 이러한 시절이 있었는가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되고,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현재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삶의 조각일 수도 있지만 위험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도 해본다.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과거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삶의 방향과 생존 방식이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면 시간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쉬이 잊혀져 가는 것이 일반인들의 사고일 것이다.설령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만난다해도 '만나지 말았어야 좋았을 걸'이라고 뒤늦게 가슴을 쓸어 내릴 수도 있다.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들은 진실한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그 기억과 추억을 함께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이십대에 만나 칠십대라는 인생의 황혼기에 진실된 친구로서 삶의 여생을 함께 할 수가 있다는 것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제스 월터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시.공간,등장인물 등이 다양하게 얽히고 섥혀 대서사적인 파노라마와 같이 도도하게 보여 주고 있어 무척 감동적이었다.이야기의 시작이 50여 년 전에서 시작하되 등장인물들이 연루되고 관계되는 역사적,개인적인 사건과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만의 디테일하고 만연적인 문체 등이 가미되어 마치 직조기의 날실을 기준으로 씨실을 엮어 가는 것과 같이 대충 읽어 내려가면 그 흐름을 놓칠 수도 있고 주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약간의)지루함도 없지는 않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성되는 사연과 감정은 단답형이 아닌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첫 장부터 끝까지 완독했다는 것이 장거리 마라톤을 완주한 런너에 비유하고 싶다.
1960년대 미국 <폭스사>에서 <클레오파트라>영화를 찍기 위해 안토니아 상대역인 클레오파트라역을 물색하던 중 주인공 디 모레이가 낙점되는데 크레오파트라역인 리처트 버튼과 디 모레이는 여차저차해서 아이를 갖게 된다.영화 홍보담당관인 마이클 딘은 영화 흥행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디 모레이에게는 '암'이라고 둘러대고 이탈리아의 휴양지 포르토 베르고냐로 그녀를 보내게 되면서 파스쿠알레와의 기적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파스쿠알레가 경영하는 에더퀴트 뷰 호텔에 그녀를 비롯하여 작가 엘비스 벤더,영화 홍보담당,자료 대독자,파스쿠알레의 이모,짐꾼 그외 조연에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하게 된다.한편 이야기의 정교함과 이해도를 고양시키기 위해 제2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무솔리니 지휘하에 참전과 지원을 하는 상황과 1846년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직전 백인이 원주민인 인디언을 학대하면서 추위와 절망과 함께 식인행위가 더해진다는 서사성이 더해져 시공간적인 배경지식을 더해 주었다.
한편 디 모레이는 팻을 낳고 미국 아이다호 샌드포인트에서 삶의 후반기를 보내면서 그의 아들과 며느리인 팻과 리디아에게 소극장 감독권을 넘겨 준다.부전자전이듯 아들 팻도 밴드와 공연 일에 전념을 하게 되는데 한때는 밴드 메니저를 잘못 만나 해외에서 술,마약,섹스로 삶을 방황과 시련을 겪기도 한다.파스쿠알레는 아리땁고 아름다웠던 20대의 디 모레이와 어머니의 진혼미사를 계기로 이별을 하고 그의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흰머리,주름살이 늘어만 가는 파스쿠알레에게는 그래도 디 모레이와의 한시절이 설렘과 환희로 가득 찼기에 그는 용기를 내어 디 모레이를 만나러 미국 땅을 밟고 극적인 해우를 하게 된다.아름다웠던 두 사람의 관계,추억,인생 이야기를 다큐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나이와 연륜만큼 그들간의 대화와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한 치의 앞도 장담할 수 없었던 이십대를 훌쩍 넘기고 칠십대가 된 그들에겐 아무런 방해요소와 장애물도 모두 걷히고 여생만큼은 그야말로 후회없는 아름다움만이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모든 일이 지금,이 순간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동시에,수천 개 방향으로,끝없이 일어난다. 이 모든 아름답고 부서져버린 인생들..., - 본문 -
고깃배 두 척 정도 간신히 오고 갈 정도의 벽촌 마을 포르토 베르고냐에서 우연과 같이 운명이 같이 만나 한 세대를 넘고 넘어 긴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둘의 마음 속에는 불같이 따오르는 뜨거운 사랑 못지 않게 남은 삶의 방향을 진주보다 더 귀하고 보석보다 더 영롱한 찬란한 대로가 그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사랑과 배신,기만과 소용돌이를 헤치고 파스쿠알레와 디 모레이는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행복의 세레나데를 들려 주고 있다.인간이 만들어 가는 숙명과 존재 방식도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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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탈리아 해안의 작은 섬인 포르토 베네레에서 시작한다. 가파르고 척박한 토양을 극복한 작은 마을들로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오랫 동안 고립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실제 존재하는 지형으로 주변 해양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을 국립공원,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 이 곳은 두 시간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만에 잇닿은 바위섬이다. 여남은 호의 집들이 바위 절벽을 붙들고 나앉은 조그만 마을로 주인공인 파스쿠알레는 섬 한가운데 단 하나있는 가족 소유의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라고는 몇 년 동안 미국인 작가 앨비스 벤더가 유일한,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그 섬에 1962년 4월, 죽어가는 한 여배우를 태운 보트가 도착한다. 파스쿠알레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야위고 굴곡이 진 몸을 가지고 있고, 키도 자신만큼이나 되어 보이고, 좁은 얼굴에 비해 이목구비가 좀 크고, 턱선은 날렵하고, 입술은 도톱하고 눈은 아주 크고. 날카로운 턱과 지나칠 만큼 섬세한 코는 어딘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미인이라곤 할 수 없다. 라고. 그런데 이런저런 그의 판단들은 그녀가 그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스스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그녀가 그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그 극단적인 얼굴에 담긴 각각의 요소들이 하나의 완벽한 물체롤 융합되면서, 파스쿠알레는 피렌체의 어떤 건물들은 여러 특정한 각도에서 볼 때면 실망스럽다가도 부조로 제시되면 보기 좋으며 그래서 사진이 언제나 잘 나온다는, 말하자면 각각의 시점들이 하나로 결합되게끔 설계되어 있다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가 미소를 지었으며, 바로 그 순간,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파스쿠알레는 사랑에 빠졌고, 이제 그는 남은 평생을 그가 알지도 못하는 그 여자에게라기보다는 그 순간을 대상으로 한 사랑에 빠진 채로 보내게 될 것이다.
![]() Portovenere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이탈리아 청년 파스쿠알레와 미국에서 온 신인 여배우 디 모레이의 우연한 만남, 그녀가 호텔에 묵는 며칠동안의 일이, 이후 지속될 50여년 간의 이야기의 전부이다. 배신당하고, 사람들의 욕망에 휘둘린 죽어가는 여배우가 고독한 섬에 사는 파스쿠알레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50여년 전 이탈리아의 섬에서 벌어진 일과 현재, 미국 할리우드의 한 영화사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번갈아 가면서 전개된다. 전설적인 영화 제작자 마이클 딘의 수석 개발 보좌로 일하고 있는 클레어는 업무에서 겪는 불만들로 인해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셰인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영화 피치를 하기 위해서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한 노인은 50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여배우를 찾고 싶다고 마이클 딘을 찾아온다. 그 노인이 바로 50여년 전 이야기의 주인공인 파스쿠알레이다.
자, 50년 전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인은 영화 피치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50여년의 시간을 왕복하면서 우리는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도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폐허가 되고 만다는 것을. 혹은 현재 폐허가 되어 있는 많은 것들도 언젠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때는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똑같지가 않단다." 어머니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파스코, 네가 하고픈 일과 해야 하는 옳은 일 사이의 틈이 작을수록 너는 더 행복해질 거야." 그 순간 파스쿠알레 투르시는 몸이 두 갈래로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삶은 이제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가 살아갈 삶과, 그가 평생 궁금해 할 삶.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갈림길에서 한 쪽 길을 선택한다. 두 가지 길을 모두 가볼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는 자신이 가보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후회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선택했으면서도 머뭇거릴 것이다. 또 누군가는 현명하게 결정해서 만족스런 삶을 살 것이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명백하고 더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말할 자격은 스스로 말고는 아무도 없다.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삶이 이렇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매순간 내리는 모든 결정들이 우리를 만들어준다. 우리를 이루는 신념과 동기와 역사들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전부이니 말이다. 시공간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신인 여배우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녀와 호텔 주인에게서는 어떤 마음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전설의 영화 제작자는 무엇을 했는지.. 숨겨진 진실과 감춰진 과거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드디어.. 50여년의 시간을 거쳐, '그'와 '그녀'가 마침내 만나는 순간이 온다.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가득하고, 턱도 쭈글쭈글해진 노인이 되어, 다리를 저는 늙은 남자와 늙고 병든 여자는 50년간 따로 살아낸 긴 인생을 사이에 두고 그저 서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회색 양복을 입은 노신사가 올라온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주방과 거실 중간의 카운터를 향해 걸어오는 이 남자가 그녀의 시선을 붙든다. 그가 중절모를 벗고 거의 투명하게 보이는 하늘빛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온기와 연민이 뒤섞인 그 눈은 순식간에 디 모레이를 50년 전으로, 다른 삶으로 끌어당긴다. 그가 말한다. "안녕, 디." 데브라의 찻잔이 카운터 위로 떨어진다. "파스쿠알레?" 이윽고 디 모레이가 침묵을 깨며 늙은 친구에게 미소를 짓는다. "페르케 하이 페르소 코시 탄토 템포 Perche hai coosi tanto tempo(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녀의 사랑스런 얼굴에 비해 여전히 지나치게 큰 미소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녀가 이탈리아어를 배웠다는 사실이다. 파스쿠알레는 미소로 화답하며 조용히 말한다. "미 디스피아체. 아베보 파레 쿠알코사 디 임포르탄데 Mi dispiace. Avevo fare qualcosa di importante(미안해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눈물이 핑 돌고, 울컥해진 마음을 겨우 추스리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제목 때문인지, 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의 몇 구절이 떠올랐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나는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쿵쾅거리고, 저리고, 뭉클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절절한 마음이 현실의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고 할까. 사실 사람사는 건 다 똑같지 않나. 모두들 페허 속에서 사랑을 끝내고, 누군가를 만나 다시 시작한다. 한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상처받고 엉망이 되어도 한번쯤은 누군가를 사랑해보는 것이 더 낫다고 하지 않은가.
이상하게도 이 작품 <아름다운 페허>는 마치 고전문학같은 품격이 있으면서도, 진행되는 스토리는 완전히 대중소설의 그것과 같다. 지루할 틈이 없고, 다양한 인물들이,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들고 나와 자신을 보아달라고 아우성친다. 풍부한 감성이 먹먹하게 가슴 한 켠을 저릿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쿡쿡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대목도 있다. 한 마디로 이 책,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예쁜, 좋은 작품이라는 것. 완전 강추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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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허 - 이야기들은 사람들이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이야. 나도 이야기고 너도 이야기고... 네 아버지도 이야기지. 우리 이야기들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나가는데, 가끔, 운이 좋으면, 우리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해. 그러면 우리는 잠시나마 덜 외로워지는 거야. (92쪽)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절벽과 바다 사이의 틈새에 낀 작고 외진 마을인 포르토 베르고냐. 전화도 없고 도로도 없고 기차도 없는, 오직 배로만 오갈 수 있는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이다.
가족 소유의 작고 텅 빈 호텔을 꾸려가고 있는 젊고 멋진 파스쿠알레 투르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호텔식당일을 도와주는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장차 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명성을 얻게 되리라는 것은 단지 그의 희망사항일 뿐, 실제로는 권태와 만족 사이, 행복과 불행 사이를 적당히 오가는 일상이다.
어느 날 죽어가는 미모의 미국 배우 디 모레이의 도착으로 어둡던 호텔에 활기와 긴장이 돋는다. 회색빛 삶 속에 짧게 무지개가 드리워지는 순간이랄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오히려 한 평생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대하는 소나기의 청명함이라 할 수 있었다. (9쪽)
이탈리아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 <클레오파트라>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캐스팅되면서 영화 홍보담당인 마이클 딘은 두 주인공의 실제 열애사실로 홍보효과를 노리려고 한다. 두 주인공 모두 기혼자였던 만큼 그들의 열애는 기자들의 관심과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다. 리즈의 시녀역인 금발의 디 모레이는 리처드 버튼의 사랑을 받고 그의 아이를 가지지만 영화를 위해 몰래 멀리 보내지게 된다. 뜨거운 열애설이 지저분한 스캔들로 알려지는 순간 영화홍보는 물 건너 간 것이 되므로....
엉뚱하게 도착하게 된 곳이 바로 파스쿠알레의 포르토 베르고냐의 호텔.....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충격에 의사의 암 진단은 그녀를 절망에 빠뜨리게 된다. 죽음만 바라보는 그녀에게 호텔에서의 유일한 낙이라면 젊고 멋진 파스쿠알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근처 절벽을 오르거나 실패한 미국의 작가 앨비스 벤더의 쓰다만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며칠 뒤 자신이 위암이 아니라 리처드 버튼의 아이를 임신했고 이 모든 것이 뱃속의 아이를 없애려는 마이클의 계략임을 알고 더욱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던 그녀는 파스쿠알레와 앨비스 벤더의 도움으로 미국에 꼭꼭 숨어버리게 된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마이클의 스튜디오를 찾은 은발의 파스쿠알레.....디 모레이를 찾아 왔다는데....
1962년에 일어난 한순간의 이야기가 50년의 세월을 흘러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한 편의 영화를 보듯, 1962년과 현재 사이를 오가는 동안 일어난 사랑, 인생, 가족, 일에 대한 이야기들.... 파스쿠알레, 디 모레이, 마이클 딘의 이야기들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그 외 주변 단역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끼어든다.
디 모레이를 짝사랑했던 파스쿠알레는 상사병이 든 청년의 마음을 숨기고 자신의 첫사랑과 자신의 아들을 찾아 피렌체로 떠나고 거기에서 아이들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살아간다. 가슴 속에 남겨진 말 못한 그리움은 우울증으로 변하지만 현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주어진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실패한 작가, 성공한 술꾼인 미국인 작가 앨비스 벤더. 글을 쓰기 위해 해마다 들르는 파스쿠알레의 호텔에서도 그의 글은 진전이 없고 술 실력만 는다. 아버지의 자동차 대리점 성공으로 글쓰기를 포기하고 가업을 이어가고....아름다운 디 모레이를 찾아서 그녀와 결혼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한다.
자유로운 영혼 디 모레이. 연극배우를 꿈꾸다가 영화판에 뛰어 들었지만 리처드 버튼과의 짧은 사랑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서 꼭꼭 숨어 살게 된다. 말없이 갑자기 떠난 파스쿠알레에 대한 우정과 사랑에 감사하지만 이젠 가슴 한켠에 자리한 쓸쓸한 추억이 되고....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억누르는 대신 학생들의 야망을 북돋워주는 일에 재미를 느끼며 교사로 ,극장운영자로 살아간다. 데보라 무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진정한 희생에는 고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삶을 견뎌온 여자.....
마이클 딘. 20세기 폭스사의 홍보담당으로 시작해서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성공으로 탄탄대로를 달린다. 더 젊어 보이고 싶다는 욕망으로 온갖 시술을 해서 피부를 탱탱하게 유지하지만 영화판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만 골몰하는 진실성이 결여된 남자....
마이클 딘의 도움으로 드디어 만나게 된 파스쿠알레와 디 모레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미안해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426)
흰머리에 주름투성이, 지팡이나 휠체어의 신세를 지고 만나게 되는 늦은 황혼, 호숫가에서의 조우......
살짝 비껴가는 인연들이 들쭉날쭉하다가도 마지막에는 전체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인생인가보다.
젊은 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눈부신 설렘과 야망이 세월이 흘러 서서히 허물어지고 폐허로 남을지라도 그래서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인생은 아름다운가 보다.
그리고 설령 그들이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햇빛 아래서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451쪽)
지나간 일들이 다 화려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여러 빛깔의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음료처럼 마시기도 하고 나무처럼 기대기도 하다가 황혼의 노을 앞에서 이야기를 음미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예상 밖으로 꼬일 때도 있고 의외로 술술 풀릴 때도 있고......
매순간 여러 방향으로 퍼졌다가 모였다가 부서지기도 하는 인생..... 그조차도 아름다운 것임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나라와 같다. 이탈리아는 대서사시, 영국은 두꺼운 장편소설, 미국은 화려한 테크니컬로 찍은 경박한 영화다. - 앨비스 벤더 (409쪽) 어떤 때는 말이야.....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똑같지가 않단다.....네가 하고픈 일과 해야 하는 옳은 일 사이의 틈이 작을수록 너는 더 행복해 질 거야..... 우리의 의지와 욕망이 언제나 맞아 떨어진다면 인생이 얼마나 살기 쉬워질까.....(407쪽)
인생은 몇 장의 서류로 요약되기도 하고 한 권의 소설로 완성되기도 한다. 인생은 한 편의 다큐로 찍을 수도 있고 한편의 시로 노래할 수도 있다.
엘도라도. 그 환상의 이상향이 현실엔 없을지라도 우리는 맺어진 인연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각본에도 없는 스토리를....... 이야기들은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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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인생은 이야기가 되고 그 중심은 결국 사랑 이야기라는 뻔하고 뻔한 그런 소설일까?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게 되었다.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서가 아니라 가장 하잘 것 없는 꿈에 그의 위대함을 쏟아부었다는 역설에서 오는 비장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위대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이해가 되지 않고 그의 무모함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아름다운 폐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누구 하나 위대하지 않다. 위대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찌질하고 그들이 살아온 흔적은 폐허와 같은데도 그 안에 일말의 아름다움이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랑은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따르는 사랑과 사랑해야 한다는 의지를 따르는 사랑이 있다면서, 욕망을 따르는 사랑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차드 버튼의 세기의 로맨스를 제시한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현장에서 만나게 된 그들은 모두 가정이 있었지만 서로를 향하는 불타는 욕망에 사로잡혀 뜨거운 사랑에 빠졌고, 영화사 관계자들은 영화홍보를 위해 그들의 로맨스를 실시간 중계하며 최대한 부풀렸다. 이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지만 소설에서는 이들의 로맨스에 묻힌 또 다른 사랑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은 아마도 픽션일 것이다. 천하의 바람둥이이던 리차드 버튼이 리즈 테일러와의 연애행각 중에도 디 모레이라는 신인 여배우와도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헐리우드식 연애법칙을 거부하는 그녀는 스캔들을 우려한 영화사 홍보 담당자에 의해 해안 마을 포르토 베르고냐의 작은 호텔로 보내진다. 호텔주인 파스쿠알레는 그녀의 아픔을 보듬어 주며 운명적 사랑을 느끼면서도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가족을 돌보는 사명을 마치고 오십년만에 그녀를 찾아온 그는 진정한 사랑과 희생, 예술적 성취를 이룬 그녀를 만나게 된다.
헐리우드의 영화제작 프로세스, 영화관계자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스캔들의 이면에는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있을때면 의례히 연예인들의 가십성 기사가 터져서 관심을 엉뚱한 일에 돌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대중을 뒤에서 움직이는 집단이 따로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적당한 소설로 보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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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별로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책이 바로 '아름다운 폐허'다. 제목이 근사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책 뒤를 보니 2012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등에서 꽤 인정을 받았다. 더욱 호기심이 생긴다. 과연 어떤 책일까?
소설의 시작은 1962년 4월 이탈리아 포르토 베르고냐이다. 그 곳은 사람도, 집도, 시설도 거의 없는 척박한 섬이다. 그 섬의 유일한 호텔, 애더퀴트 뷰 호텔. 사실 호텔이라고 할 수도 없다. 1년에 손님이라곤 고작 열 명 남짓일 그 작은 호텔의 주인은 20대의 젊은 청년 파스쿠알레 투르시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낙후된 섬으로 귀향한 이후, 인근의 유명 휴양지인 칭케 테레의 섬들처럼 언젠가 포르토 베르고냐도 미국인 휴양객들로 북적일 그날을 꿈꾸며 파스쿠알레 투르시는 호텔 아래에 손바닥만한 해변을 가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어가는 여배우가 그 섬을 찾아오고 그녀가 그를 보고 미소를 짓는 순간, 파스쿠알레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디 모레이(디).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촬영하던 그녀는 암 판정을 받고 스위스의 병원에 가기 전, 베르고냐의, 파스쿠알레의 호텔에 묵게 된 것이다. 파스쿠알레와 디의 기묘한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편 소설은 최근의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곳에는 한때 '할리우드의 학장'으로 일컬어졌지만 지금은 한물간 영화제작자 마이클 딘과 그의 수석비서 클레어와 영화 피치(무언가를 팔기 위한 광고, 설득, 권유의 총칭)를 위해 헐리우드에 입성하는 셰인 휠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곳에 1962년에 딘을 만났다는 노인, 파스쿠알레가 찾아온다.
소설은 1962년과 최근을 오가며 진행된다. 파스쿠엘라와 디 모레이, 파스쿠알레와 마이클 딘, 파스쿠알레와 리처드 버튼, 리처드 버튼과 디 모레이의 관계가 직물을 짜듯 교묘하게 펼쳐진다. 거기에다 엘리자베스(리즈)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실제 스캔들이 덧입혀진다. 그러다 보니 실제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여기에 파스쿠알레와 아메데아와의 사랑도 살짝 나오고, 아메데아와 디 모레이 사이에서 운명적 선택을 하는 파스쿠알레의 선택에 진정 공감이 가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의 앞에 놓인 운명을, 누구나 자신이 행한 일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스쿠엘라는 멋진 상남자다.
그리고 디 모레이(데브라 무어, 후에 포르토 베르고냐를 그녀보다 먼저 찾은,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던 앨비스 벤더-그 무엇에도 흥미와 안주를 하지 못하고 떠돌던, 소설을 쓰기 위해 베르고냐를 찾지만 소설의 첫 장만을 완성한-의 아내가 된다). 마이클 딘의 음오(?)에 의해 걸리지도 않은 암에 걸리고, 리처드 버튼의 아이를 임신, 출산을 하고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배우이자 아내이자 무대 연출가로 활동을 한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 파스쿠엘라와의 짧은 만남은 기나긴 잔상을 남긴다. 그리고 재회...
팻. 디 모레이와 리처드 버튼의 아들. 천부적인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지녔지만 술과 약물, 여자와의 무분별한 관계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허비하다 탕아처럼 다시 어머니와 애인(리디아)의 품에 돌아온 그. 젊은 날의 좌절과 방황을 충분히 건넜기에 그에게 하루하루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그 곁의 사람들 또한 소중하기만 하다.
소설은... 글쎄. 일단 재미는 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속에서 인물들간의 관계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는 사랑과 실제 현실 속에서 하는 사랑의 차이를 세밀하게, 공감을 일으키게 전개한다. 누구나 하는 사랑이지만 또 누구나 나만의 사랑이 있기 마련. 바로 그 사랑을 소설은 잔잔하게 표현한다. 운명처럼 만나는 이들과 운명처럼 헤어지는 이들. 그리고 운명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이와 운명처럼 그와의 사랑을 간직하는 이. 숙명적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사랑이야기인 것은 맞지만 마음은 아련하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하는 디와 파스쿠엘라. 정착과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꿈같은 행복을 떠난 보낸 디와 앨비스 벤더. 그리고 실제 연인이었던 리즈와 버튼. 그리고 현실 속의 사랑 클레어와 데릭, 셰인 휠러와 손드라. 어느 족이 옳고 그르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내 자신의 사랑, 내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맞게 현실을 살아가는 수밖에.
재미는 있지만 깊은 감명을 주는 소설은 또 아니다. 그냥 기욤 뮈소같은, 더글라스 케네디같은 작가들의 책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해야 하나? 다만 그들의 소설보다는 삶에 대해, 운명에 대해 좀 더 깊이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랑이 어울리는 이 가을에 무척 어울리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영화화해도 괜찮은 책일듯. 옮긴이도 영화화를 강력히 바라더군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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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서는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찬란한 슬픔'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절대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단어 '아름답다'와 '폐허'가 '찬란하다'와 '슬픔'을 연상시켰나 보다.
우리의 모든 것이 끝난 어느 날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느껴질 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더미 속에서 우리가 추억하는 우리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사랑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당장은 억울하고 희생양 같은 삶이 언젠가 아름답게 추억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일에 휘말려 살았어도 아름다웠다고 원망하지 않고 반추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사랑만큼은 감기 같은 것이어서 계획하지 않아도 어느 날 우연한 만남으로 또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했는데도 비극적인 일들에 대한 것은 어떻게 추억해야하는 것일까도…한 편의 소설일 뿐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듯한 책이다.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구성해 이야기를 전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주인공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처럼 조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굉장히 긴 이야기-50년에 걸친 이야기이고 455쪽이나 되는 분량의 이야기-임에도 아름다운 배경을 상상하면서 주인공들의 대화를 듣느라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느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느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주인공들이 얽혀 있는 사건과 인물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헐리우드 배우들의 스캔들이나 영화여서 '어 진짜인가?' 마치 숨겨져 있는 비밀을 듣고 있는 듯 착각도 들게 한다. 그런 이야기의 재료들이 흥미를 더해준다.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도 이 촉망받는 작가의 전작들에 관심이 간다. 특히 다음엔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읽어볼까 계획 중이다. 블랙코미디 작품일 것 같은 기대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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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던 소설. 등장인물들이 많고, 시간적, 공간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전개방식이라서 한번에 여러 사건들을 생각해가며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작은 섬의 포르토 베르고냐라는 항구마을에 위치한 허름한 '애더퀴트 뷰 호텔'을 운영중인 파스쿠알레 투르시. 그의 호텔에 미국의 여배우 디 모레이가 로마에 영화 촬영차 왔다가, 암에 걸려 스위스 병원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물러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그녀는 암이 아닌 같은 영화의 남자 주인공 리처드 버튼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영화의 촬영을 관리하는 마이클 딘이 영화의 진행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 암이라고 거짓말로 속여서 낙태를 하기위해 리처드 버튼과 떼어놓으려는 수작으로 이 호텔로 보낸것입니다.
소설은 다음 장에서 50년 후의 미국 헐리우드로 넘어가고... 영화제작자가 된 마이클 딘과 그의 수석개발보좌인 클레어 실버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화 시나리오 제안을 하는 셰인 휠러와 앞에서 등장했던 파스쿠알레가 노인이 되어 마이클딘을 만나게 됩니다.
소설은 미스테리하게 파스쿠알레와 디 모레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그 후 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지가 중심축을 이루면서, 클레어 실버와 셰인 휠러, 그리고 파스쿠알레의 호텔에 매년 머무르던 미국 작가 앨비스 벤더의 이야기도 나오게 됩니다.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있고, 거기다 이 소설에는 영화이야기, 연극 장면도 그대로 나오는 부분도 있고, 앨비스 벤더가 쓴 소설, 앨비스 벤더가 겪은 전쟁 이야기, 디 모레이의 아들의 콘서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부분에 집중이 되기 보다 여러 방향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게 좀 과한것 같습니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다양한 인물의 인생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겹치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극적인 인생의 부분들도 있었지만 노년이 되면 결국 그것들도 모두 추억이 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아름다운 폐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 기쁘거나 슬프거나 되돌아보면 다 아름답게 받아들여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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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443페이지, 24줄, 29자.
어찌 보면 통속적인 글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와 비서, 영화 초안 제시자, 옛날 여배우, 그 여배우을 사랑했었던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청년, 그 여배우의 아들. 장마다 시공이 달라지기 때문에 조금 끊어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꾹 참고 읽으면 그리 나쁜 편집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1 죽어가는 여배우, 2 마지막 피치, 3 애더퀴트 뷰 호텔, 4 천국의 미소, 5 마이클 딘 프로덕션, 6 동굴벽화, 7 인육을 먹다, 8 그랜드 호텔, 9 방, 10 영국 투어, 11 트로이의 디, 12 열 번째 퇴짜, 13 디, 영화를 보다, 14 포르토 베르고냐의 마녀들, 15 마이클 딘 회고록의 삭제된 첫 장, 16 추락 이후, 17 포르토 베르고냐의 전투, 18, 프런트 맨, 19 진혼 미사, 20 끝없는 불길, 21 아름다운 폐허.
여기서 1962년인 시점은 1, 3, 6, 8, 11, 14, 17, 19입니다.
대략 1962년 4월에 이탈리아의 한적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와 현 시점에서의 재접점 그리고 몇 중간 시점에서의 이야기들과 별개의 소설 시작 부분과 희곡의 1막1장,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제목 아름다운 폐허란 글자 그대로 2차 세계대전시 해안 진지 벙커 벽에 그려진 벽화를 의미할 수도 있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파스쿠알레 투르시라는 이탈리아 청년, 디 모레이라는 신인 여배우, 마이클 딘이라는 영화제작자가 주인공인 셈이고 클레어 실버는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조연인 셈인가요? 셰인 휠러는 잘못된 곳에 놓인 잘못된 역할일 수도 있겠고.
전체는 좀 그렇지만 부분은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느꼈냐 하면, 제가 시간에 쫓기면서 급히 읽었기 때문입니다. 글은 아무래도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서 읽다가 말다가 해야 재미있는 법인데, '이거 내일 반납해야 하니 오늘 꼭 읽어야 해.' 하면서 시계를 보면 주의력이 분산되어 재미가 떨어지고 전체를 파악하는 게 약해집니다. 나중에 다시 빌려서 읽든지 할 목록에 넣어야겠습니다.
등장인물(이름순)
160108-160109/16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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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것 이상의 아픔과 좌절이 있을 때 첫사랑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에 있어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늘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첫사랑과 마주할 때면 첫사랑을 하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찌들어 있던 삶이 회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첫사랑도 그 모습이 각양각색이고,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도 천차만별이라 작가는 모두가 공감하는 첫사랑의 주제를 어떻게 새롭게 꾸밀 것인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첫사랑에 관한 소설을 꼽자면 단연 황순원의 소나기를 꼽을 수 있다. 시골 더벅머리 소년과 도시 소녀의 사랑을 읽으면서 우리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첫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어느 연령대가 되자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공식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창회에 가서 초등학교 시절 만났던 첫사랑에 실망한 이야기는 이제 너무 지겨워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에 채택도 되지 않을 정도다. 『아름다운 폐허』의 소재도 첫사랑이다. 이탈리아의 시골 중의 시골에서 낡은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파스쿠알레와 도시에서 클레오파트라 영화를 찍던 배우 디 모레에 대한 이야기다. 언뜻 보면 영화 『노팅힐』이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시골 총각과 영화배우의 사랑?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다보면, 이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파스쿠알레는 옛연인에게 자신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랑을 선택하기 보다는 책임지는 인생을 살고자 한 것이다. 젊은 날에 '책임'이라는 단어는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열정적인 사랑 앞에 맹목적으로 무너져야 정상인 것 같은 20대 청년에게 책임은 중년의 단어이고, 지나쳐도 되는 항목이 아니었을까? 이미 결혼을 한 내 입장에서 보면 파스쿠알레의 선택은 정말 솔로몬의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탁월한 선택은 그의 사랑이 퇴색되지 않게 해 주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정도 든든히 지킬 수 있게 해 주었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있다. 모두들 사랑에 실패하였고, 실패하는 중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파스쿠알레를 만나면서 사랑을 제대로 하게 된다. 그만큼 그를 만난 것이 그들 인생에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믿어주는 것,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도 기다려보는 것...어쩌면 우리 시대는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자체를 재앙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작가는(게다가 미국작가인...) 좀 더 느긋한, 섬세한 사랑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왜 제목을 아름다운 폐허라고 했을까? 아마 파스쿠알레에게 있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폐허가 되었을지 몰라도, 그의 책임감과 상대를 배려해주는 그 마음은 아름답기에 폐허라고 해도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