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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콘에 새로 등장한 코너 ‘시청률의 제왕’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개그맨 박성광은 시청률의 제왕으로 저조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투입된 시청률제왕이다. 진지한 내용이 나오면 어김없이 ‘재미없어’를 외치며 ‘패륜으로 가자!’를 외치자마자 시청률이 마구 올라간다. 거기에 PPL광고를 위해서는 죽어가는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끼워넣으며 시청률만 나오면 돼 !를 외치는 모습에 무한공감을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한국드라마의 현실에 이렇게 시원하게 돌직구를 날리는 유머를 보는 기분은 빵 터진 웃음의 크기만큼이나 공허함을 남겨주기도 하였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각종 포털 사이트의 메인화면에는 낚시문구가 거의 도배되다 시피 선정적인 문구들로 넘쳐난다. 인터넷에 무분별한 황색언론이 넘쳐난 것은 비단 작금의 현실만은 아니다. 이 책 《타블로이드 전쟁》은 그런 황색언론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는 르포형식의 소설이다. 부제 <황색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의 큰 축은 1897년 6월에 일어난 토막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벌어지고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타블로이드들의 황색언론이 또 다른 축으로 전개되는 형식이다.
어떤 사람은 끔찍하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기회라고 봤다. 더운 여름 무더위에 지쳐갈 즈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의 무료함처럼 커다란 기사거리 없이 보내던 기자들에게 하늘이 내려 준 기회라는 선물은 화려한 붉은 색과 금색 방수천으로 꽁꽁 사매져 있는 꾸러미였다. 꾸러미 안에는 사람의 팔 두 개가 근육질의 가슴에 연결되어 있는 시체였다. 근처 시체 공시소 건물이 있고 의대생들의 실습용 시체가 종종 떠내려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끔찍한 시체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보이지 않았다. 의대생들의 실습용 시체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가시덤불 사이에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과 잇달아 발견되는 시체토막으로 예사롭지 않은 사건임을 감지하게 되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사건을 다루게 된다. 발견된 시체토막은 결국 한 사람의 것으로 조각이 맞춰지고 이때부터 언론들은 최대의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보도경쟁에 열을 올린다. 그중 독보적인 황색언론의 선두주자로는 퓰리처가 이끄는 <월드>신문사와 허스트가 야심차게 이끌고 있는 <저널>신문사이다. 특종을 잡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퓰리처와 허스트는 서로 누가 선정적인지 대결이라도 하는 양 살인사건을 보도한다. 심지어 <월드>의 허스트는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 공모전을 열고 500달러 포상금을 내걸기까지 한다. 독자들은 누구라도 셜록 홈즈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열광했다. 점점 밝혀지게 되는 사건의 전말은 허먼 낵과 오거스터 낵으로 좁혀지는데 허먼 낵과 오거스터 낵이 부부로 살고 있을 때, 터키탕 마사지사 굴든수프가 하숙하게 되면서 오거스터 낵과 바람이 난다. 허먼 낵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오거스터 낵은 굴든수프와 도망가 16개월을 동거하며 지냈는데 그 사이 이발사 마틴 손과 사랑에 빠졌다. 오거스터 낵은 조산사로 일하며서 생계를 꾸려갔는데 어느 날 굴든수프와 낵부인이 심하게 싸운 뒤로 굴든수프가 사라졌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이들의 관계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경찰과 기자들은 마틴 손을 굴든수프의 살해용의자로 지목하고 사건의 정황 또한 마틴 손의 동료이발사 친구 존 고사에 의해 밝혀지게 되면서 마틴손과 낵부인은 굴든수프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이 과정에서 황색언론들은 앞다투어 선정적인 문구들로 1면 기사를 도배했고 살해현장과 살해동기를 밝히는 과정에서 돈을 뿌린 저널의 허스트가 장악하는 모습은 드라마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잔인하고도 선정적인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마는 개콘의 시청률제왕 코너와 흡사하다. 또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독자들이 혹할 수 있는 머릿기사는 포털사이트에 넘쳐나고 있는 낚시기사와 판박이였다. 마틴 손과 낵부인이 체포된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마틴 손과 낵부인의 재판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재판과정에서도 황색언론의 장악은 상상초월한 방법으로 마틴손과 오거스터 낵을 보도했으며 오거스터 낵은 오히려 언론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저널의 허스트는 범죄현장을 통째로 사기도 하고 월드지의 퓰리처의 전화선을 끊기도 하며 기자들은 변장하여 범인을 잡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폴콜린스는 서문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덧붙인 단어는 하나도 없다’는 말을 일러두고 있다. 《타블로이드전쟁》은 오로지 팩트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1987년 열 개가 넘는 신문사에서 ‘세기의 살인사건’으로 굴든수프의 살해사건을 다루며 보도된 신문기사와 관련자들의 사후수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 책은 절대적으로 논픽션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간결체와 건조체로 쓰여 져 사건에 더욱 진실성을 느끼게 하고 신문기사를 읽는 기분마저 들게한다. 무려 백 년이라는 텀을 두고 있음에도 작금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는 황색언론을 통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 아닐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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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뷰어 클럽의 [역사/지리] 분야에서 세 번째로 받은 책이다. 앞서 받은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중국의 역사』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가 어느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이 책은 그에 비해 주의를 필요로 하는 책이었다. 등장인물이 수십 명이고, 살힌 혐의자가 출옥했을 때는 관련 당사자 중에서 상당수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을 만큼 긴 기간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내용을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처음 얼마 동안은 읽기에 부담스러웠다. 이 책은 1897년 미국 뉴욕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토막 살인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다뤘다. 저자는 "인용부호 안의 대화는 모두 (각종) 기록에 나와 있는 그대로이고, 장황한 부분은 생략하기도 했지만 내가 덧붙인 단어는 하나도 없다,"라고 밝혔다. 즉 소설 형식이지만 실제의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책에는 피살자, 살인 용의자, 피살자나 살인자와 관련된 증인, 경찰과 검찰, 신문사 기자, 재판소, 교도소 등 이름이 거명된 인물이 백여 명이 넘고, 중요 등장인물도 수십 명이다. 일반적인 장르 소설같이 저자의 암시도 없다. 실제 상황이니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집중을 해서 읽어야 할 내용이었다.
둘째, 신문의 막강한 힘을 느꼈다. 이 말은 긍정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지금과 같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공권력과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무리한 권력을 견제도 하고 있다. 그것은 이렇게 오래 된 역사를 지니면서 끊임없이 진화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신문(저널과 월드 등 이른바 황색 언론들)들의 행태를 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기자들은 경찰에 앞서 사건현장에 도착하여 피의자들을 상대로 각종 조사를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범행 현장의 각종 물증들이 왜곡되기도 하고, 심지어 가해자나 피해자 어느 한 쪽을 편들면서 대리전을 치르기까지 한다.
특히 쿠바에 정박 중인 미 해군 전함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로 붕괴되었을 때, 이것을 스페인의 소행으로 몰고간 <뉴욕 저널>의 기사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는 압권이었다. 그러면서 신문들은 스페인을 응징하라고 외쳤다, 결국 미국은 스페인에 선전 포고를 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메인호 폭파와 그로 인한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 경과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메인호를 침몰시킨 것은 스페인이 아니라 쿠바의 과격 독립군이라고 한다. 그들은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을 부추겨서 독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런 일을 계획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쿠바에서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른 것이 유리했다. 미국은 메인호 폭파를 빌미로 스페인과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함으로써 뜻을 이루었다. 메인호 폭파만 놓고 볼 때 스페인은 억울한 누명을 썼고, 그 주범은 미국의 황색언론들이었다.
문득 천안함 사건이 떠올랐다. 한국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몰아붙였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그 주장에 동조했다. 북한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물증은 없다. 다만 천안함 사건과 메인호 사건의 공통점 중에는 언론의 역할이다. 미국의 황색언론들은 스페인의 소행으로 몰고 가며 전쟁을 부추겼고, 한국의 수구 언론들도 그와 유사하게 북한 응징의 목소리를 높였었다.
셋째, 미국 언론의 정체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상은 퓰리처상이다. 또한 최신 기계와 기업 합리화에 의하여 미국 신문계에 장족의 진보를 가져왔기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 저널리스트 허스트이다. 나는 지금까지 퓰리처상을 제정한 풀리처나 신문왕 허스트가 미국의 자유 언론을 개척한 위대한 언론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황색언론의 쌍두마차로 갖가지 행패를 저지른 추악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미국의 퓰리처와 허스트 등의 언론 모습에서 한국 언론을 떠올렸다. 일제강점기 때는 친일, 해방이후에는 권력에 기생하며 갖가지 이권을 챙기면서 지금은 고고한 언론으로 가장하고 있는 족벌언론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한국 족벌신문들의 추악한 실상에 비하면 퓰리처와 허스트의 행적은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넷째, 그러면서도 희망을 느꼈다. 미국의 경찰은 아무튼 끈질기게 이 사건을 수사했다. 공명정대한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으로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언론이나 공권력과 사건 관련자들의 족적에는 이런저런 그늘이 있었지만, 결국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데 바탕이 된 것이다.그들의 소행은 결국 미국의 언론이 어느 정도 정화되고, 범죄 수사 기법이 과확화 되는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 역시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책장을 덮으면서 조금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볼 수 없으며, 범죄자들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했다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간 사건 전모에 대해 소상히 추적하는 눈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기록자는 기록을 하면서 독자는 읽으면서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의 방향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도 폴 콜린스와 같이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의 눈을 가진 이가 보다 많았으면 좋겠다. 수양대군의 찬탈과 사육신의 충절을 기록으로 남긴 추강(남효온) 선생이나 1864년(고종 1)부터 1910년까지 47년간의 비사를 매천야록에 담은 매천(황현) 선생 같은 분이 그런 인물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백범 선생 암살이나 장준하 선생 의혹 같은 사건에 대해 당시의 사건 전모를 명확히 기록하는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흘러간 역사는 바르게 되돌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심판이고, 역사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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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타블로이드 전쟁(폴 콜린스: 양철북, 2013) 세기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언론 전쟁 ![]()
<옐로 저널리즘은 또 다른 범죄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옐로 저널리즘"(역: 황색언론)이란 인간의 불건전한 감정을 자극하는 범죄 및 괴기사건 혹은 성적 추문 등을 과대하게 취재 보도하는 신문의 경향을 말합니다. 보다 쉬운 말로 하자면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사들을 과도하게 취재 보도하는 형태의 경향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옐로 저널리즘"과 관련하여 최근 한국 언론 매체가 언급되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옐로 저널리즘"이 확장되고 성장하는 것은 '독자'가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필자도 수많은 독자들 중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타블로이드 전쟁>(양철북, 2013)은 "옐로 저널리즘"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뉴욕월드드>와 <뉴욕 저널> 그리고 여러 언론 매체들의 경쟁적인 보도 전쟁의 실상을 르포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책의 저자인 '폴 콜린스'는 고서적과 오래된 잡지, 신문, 서신 등을 뒤져 잊힌 사건들 뒤에 숨은 사연과 의미를 밝혀내는 능력이 탁월하여 '문학 탐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1897년 미국 전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토막 살인 사건이 남긴 비밀을 풀어내고자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토막 살인사건을 구성하여 사실을 바탕으로 한 법정 추리 소설 같은 작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블로이드 전쟁>의 줄거리는 1897년 6월,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과 비슷한 시기에 발견된 뉴욕의 여타 지역에서 발견된 신체 부위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과 그 대상은 누구인가로부터 시작된 "보도 전쟁"이야기와 살인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19세기 말, 토막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뉴욕 월드>의 퓰리처와 <뉴욕 저널>의 허스크가 벌인 선정적인 취재 경쟁과 이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모습과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언론에게 도덕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선정성과 자극적인 기사에 열광하는 딜레마 속에 있음을 상기하면서 이 책을 본다면 놀라우리 만치 반복되는 역사적 사건을 마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들 "황색 언론"에 노출되고 잠식된 사람들은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원하는 중독성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보여주는 뮤지컬 영화 "시카고"(2002)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살인한 여자 아냐?" "그런 여자가 어디 한 둘인가?" - 영화 "시카고(2002)"의 대사 中
살인사건에 연류된 사람을 미화시키거나 선정적으료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에 무덤덤해진 사람들이 자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인식과 경게심이 무덤덤해진다고 합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이 과장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현상은 영화 속 과장된 이야기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요?
<타블로이드 전쟁>에서 만나는 보도경쟁과 '살인 범죄'의 지독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가지고 있는 지독한 모습을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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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언론사의 기자는 특종(Scoop)을 잘 잡아야 한다.강렬하면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제목과 기사는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고도 남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법이다.내용의 밀도도 중요하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제목,기사라면 더욱 시선을 끌고도 남을 것이다.요즘에는 SNS가 발달되어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상에서 누리꾼들의 거침없는 찬.반 양론으로 가르는 파죽지세와 같은 댓글과 실시간 이슈가 핫뉴스로 떠오르는데 골치 아픈 영역보다는 가벼우면서도 가십거리가 되는 엔터테인먼트성 이슈가 커다란 화제거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선정적이고 프로적인 보도로 장기간 세인들의 뇌리에 남고 있는 <타블로이드 전쟁>은 19세기말 정확히 1897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토막사건에 얽힌 뉴스인데 이 선정적인 뉴스를 둘러 싸고 판매부수 전쟁에 언론사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해당 언론사는 바로 퓰리처의 뉴욕 월드의 전신인 퓰리처사와 뉴욕저널의 전신이 허스트이다.
미국 언론의 역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1897년 당시 미국 언론은 교통,통신 문제가 요즘과 비교하여 격세지감은 있지만 <토막살인>과 관련하여 사실과 진실을 가리고 판매부수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언론의 사주 및 기자들의 열띤 경쟁은 요즘과 비교하여 전혀 뒤떨어지지도 않고 손색도 없다.어떠한 이유든 '토막살인'은 씻을 수 없고 용서할 수가 없다.게다가 죽은 사람의 두부를 자르고 두 다리를 끓는 물에 삶았다는 경악할 세기의 사건은 그 자체로 전율감과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왜 이러한 세기의 토막살인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건의 내막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자 부부가 생활력도 없는 가운데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부인이 외간남자를 좋아하게 되고 그 외간남자는 부인의 교사(敎唆)에 의해 남편을 살해하고 주검을 다시 톱으로 두부를 자르고 양다리를 끓는 물에 삻았다는 것이다.외간남자가 남편을 죽인 후엔 다음 과정은 부인이 모두 저질렀다는 증언이 나왔다.살해된 장소인 우드사이드 오두막을 중심으로 시체 토막 발견 지점,낵 부인의 아파트,마사지로 일했던 희생자 굴든수프의 목욕탕,법정,경찰 본부 등이 스케치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사건,사고의 전개과정을 알기 쉽게 한 점도 인상적이다.즉 피살자,용의자,기소,재판,평결순으로 되어 있다.가해자 낵 부인은 수감생활을 마치고 난 뒤 자신은 남편 굴든수프를 사랑했고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알쏭달쏭하게 말을 남기고,이발사였던 마틴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이스트 강과 허스트 강에서 발견된 시체토막의 진실에 관해 미스터리를 푸는 자에게는 포상이 걸리다 보니 돈에 눈이 먼 허접스런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지만 공시소를 비롯하여 시신의 해부,법의학자 등이 등장하면서 사인(死因)을 정확하게 파헤치려는 과학적 수사도 눈길을 끌었다.
"인간 본성에 숨겨진 천박하고 야만적인 면을 드러내는 충격적이고 충동적인 괴물 신문들이,새로운 살인 사건 덕에 매우 호황을 누리고 있다.(중략)현실과 허구의 유명한 탐정들을 모두 부끄럽게 만들 지경이다." - 본문 -
이 사건이 종결되고 이 세기적인 사건에 대해 재탕이 반복되는데 그것은 바로 이것을 소설로 각색했다는 점이다.읽어보지는 않했지만 <세 남자와 한 여자 : 뉴욕의 삶 이야기> 그리고 <굴든스프 미스터리>와 <머리 없는 시체 살인 사건>등이다.죽은 자는 말이 없다.내 생각에 낵 부인은 모양만 여자이지 체형과 하는 짓은 꼭 남자 이상이고 악녀라고 부르기에 딱 맞다.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면 남자의 경제적 무능력이 가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데,남편 굴든수프가 비록 마사지 일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갔지만,그는 광산채굴 일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이발사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고 뒤늦은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억울하기까지 하다.이를 놓칠세라 두 언론은 각축을 겨루면서 판매전쟁에 돌입했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가상하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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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진우 시사IN기자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한 기사를 봤다. 주요 외신들이 이 사건을 기사화하며 코미디 같은 한국의 상황을 비꼬기도 한 모양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권장하는 사회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대로 떠드는 것에는 발작을 일으킨다.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권에서 한 일 중 지금 가장 큰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언론정책이다. 방통위와 주요 방송의 요직에 낙하산으로 인사를 집어넣어 장악했다. 이미 틀어진 언론의 환경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효과는 지난 대선에서 그대로 나타났고 이제는 TV만 틀면 지겹게 뉴스를 볼 수 있고 넘쳐나는 신문들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언론의 사명 같은 것은 사장된 지 오래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업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될 리 만무하고 MBC조합원들은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요 며칠 핫이슈가 되고 있는 윤창중씨 사건도 그렇다. 정확한 팩트에 기반한 뉴스를 전달하고 수사를 촉구하는 것으로 갈무리하면 될 일을 이리 볶고 저리 볶아 뉴스 피로도를 높인다. 그러면 듣기만 해도 짜증나는 이런 뉴스를 계속 내보내는 이유는 뭘까?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임을 먼저 밝히고, 다른 뉴스를 묻어버리기 위함이다. 남양사태, 국정원 댓글부대 수사 등 산적한 사안을 일거에 덮어 버릴 수 있는 호재다. 어느 쪽에는 분명히 그렇다. 결국 우리는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2차정보를 접하게 된다. 바쁜 출근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뉴스를 검색하면서 그 기사 전체를 읽을 여유가 없다. 한 줄의 기사 제목만 보는 것이다. 말도 그렇지만 글을 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단어 하나, 단어의 위치 하나에 따라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한국에서 생산되는 뉴스의 제목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목만 보고 클릭을 해 들어가면 전혀 엉뚱한 내용의 기사인 경우도 있고 제목은 부정적인 듯 하지만 기사 내용은 긍정적인 경우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뉴스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는 미디어 종사들에게는 특별한 사명감을 요구한다. 공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미디어 종사자 대부분에게 이런 사명감은 아웃 오브 안중!! 조중동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지상파 TV매체는 완전히 언론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정치와 경제 권력에 완전하게 유착된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런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선정성이다. 보다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을 찾는다. 언론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색으로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데 다들 비슷하다보니 다들 질적으로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환경에서는 어떤 매체가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특정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매체가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 「타블로이드 전쟁」은 이런 ‘옐로 페이퍼’들이 난립했던 20세기 초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이지만 르포르타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500달러 포상 <월드>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스트 강과 할렘 강 근처에서 발견된 남자 시체 토막에 관한 미스터리를 정확히 푸는 사람에게 500달러를 금화로 지급할 것입니다. 사건에 대한 가설이나 추측을 봉투에 “살인 사건 미스터리”라고 표시해서 <월드> 사회부 편집장 앞으로 보내십시오. 반드시 <월드>에만 보내야 합니다. 다른 신문에 같은 해법이 게재된다면 포상금 지급이 취소됩니다. (p.56) <월드>, <헤럴드>, <이브닝 텔리그램>, <프레스>, <이브닝저널>, <브루클린 이글> 등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신문사들은 난립하는 그들의 숫자만큼 고약한 싸움을 이어갔다. 굴든수프라는 남자의 시체가 토막 난 채 강에 버려진 사건을 두고 이들이 벌인 악취 나는 경쟁에 속이 더부룩해 진다. “경찰은 아직 이 사건에 착수하기 전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미 뛰어 들었다는 것을 캐리는 알게 되었다. 기자들이었다.” (p.31) “죽은 사람 손이 신문 지면에서 튀어나와 독자들의 멱살을 잡을 것 같았다.” (p.44) 이들에게는 토막 난 시체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신문사보다 더 빠르게 더 자극적이게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퓰리처의 명성을 뛰어 넘으려 발버둥을 치던 <월드>의 허스트로 인해 이러한 진흙탕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경찰보다 더 빨리 정보를 캐내고 급기야 수사본부 까지 만들어 직접 정보원을 고용하거나 증인을 찾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를 이기려 안간힘을 썼다. 온갖 불확실한 정보와 제보가 난무했고 이들 ‘옐로 페이퍼’들은 그것을 이용했다. 상대 신문사보다 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만 달아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정보와 제보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만약 전혀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고 한다면 간단하게 정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냄비에 물을 붓고 멈추지 않고 물을 끓이는 것처럼 가열에 가열을 거듭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기관차처럼. 책에서 굴든수프를 살해한 피의자를 잡아 놓고 벌인 법정다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이들 ‘옐로 페이퍼’들은 굿판을 벌인다. 증언한 내용 한마디 한마디 표정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기사화 한다. 기사라고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신문에 실었다. 오리 발자국으로 추적한 살인이라고 <헤럴드>는 외쳤다. 죽음의 집! <월드>가 소리 높였다. 무시무시한 남녀! <프레스>가 덧붙였다. 뉴욕 신문들의 주 메뉴는 여전 했다. 100년 전 뉴욕의 상황이나 지금 한국의 상황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씁쓸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오늘 아침 이 서평을 쓰기 전(새벽6시 경) 오늘자 뉴스의 헤드라인을 훑어봤다. <헤럴드>와 <월드>와 <프레스>의 그 헤드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가득했다. 기사거리가 되지도 않는 것에 지면을 낭비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하는 착각이다. 그들 스스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는 것이 당연하다. 작년 대선 시즌 SNS에서의 여론과 실제 여론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SNS라는 것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 번 경험한 ‘예로 미디어’들은 이제 더 이상 겁먹을 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뉴스를 쏟아낼수가 있다. 그렇게 마음대로 휘갈겨도 착하디착한 국민들은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니까. “허먼 낵은 이름이 알려져서 배달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1903년, 굴든수프가 살해되고 거의 6년이 지난 뒤에, 허먼 낵은 조용히 배달마차를 커낼 가에 버려두고 허드슨 강에 몸을 던졌다.” (p.369) 굴든수프 사건은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그렇게 난리를 치던 신문들은 굴든수프 사건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기사를 쓴 적이 있었나?’ 잊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로 인해 실제적인 고통을 받았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요즘 한국의 언론, 미디어 환경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워낙 발달한 인터넷 환경과 굴절된 정치적 환경은 특정 기사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신상을 단 몇 시간 만에 만천하에 까발릴 수 있는 지경이다. 인격을 말살시키고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데 손가락 몇 번 클릭하면 된다. 무섭고 저급한 세상이다 .
“1911년 사망한 뒤에 퓰리처는 역사적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황색 언론 전쟁은 잊히고, 컬럼비아 대학에 재산을 기부하고 작가와 기자들에게 주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상이 제정되어 장밋빛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허스트는 반성할 줄 몰랐다. 허스트는 황색 혁명이 길러 낸 블록버스터 일요판 신문에서 늘 희열을 느꼈다.” (p.391)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그 퓰리처가 황색 미디어 전쟁의 당사자였던 그 퓰리처라는 것을 몰랐다. 그의 사망 후 퓰리처상이 제정되고 수상되면서 지금의 퓰리처는 전혀 다른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한창 옐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언론인들이 100년 뒤 어떤 역사로 기록될 지 궁금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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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 전쟁>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사건 미국 전역을 뒤흔들어 놓은 토막 살인 사건이 남긴 끝내 풀리지 않은 비밀.
타블로이드... 많이 들어보았지만 확실히 그 뜻을 몰라서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본다.
타블로이드-신문의 판형(判型)의 한 가지로 표준판(대판) 신문의 2분의 1 크기의 판형. 또는 이러한 판형의 소형 신문을 말한다. 서양의 경우, 선정적 내용에 사진을 많이 곁들인 대중 오락지들이 이 판형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소형판 황색지(黃色紙)들을 타블로이드신문이라고도 부른다. <매스컴대사전 인용> 용어 정리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온몸을 채운다. 이 책은 19세기의 사회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과학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인간의 상상력이 극대화되었던 19세기 산업 혁명 시기. 가능성과 상상력이 넘쳤지만, 지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술로 세상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 군상들의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작품 곳곳에서 세밀하고 익살스럽게 그려진다. 기삿거리도 별로 없는 1897년 6월의 어느 날. 뉴욕 이스트 강 부두에서 놀고 있던 한 소년이 화려한 붉은색과 금색 방수천으로 꽁꽁 싸매진 꾸러미를 발견하고 끌어올린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근육질의 가슴에 연결되어 있는 팔 두 개. 토막난 시체는 의대생들의 짓이라기에는 너무 서투르게 손질되어 있었다. 드디어!! 나른하고 심심했던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살인 사건, 그것도 토막 시체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사건의 실마리에서부터 증거에 이르기까지 경찰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언론 보도사들이었다. 그 때 미국의 양대 언론은 퓰리처가 이끄는 <월드>와 허스트가 이끄는 <저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월드와 저널은 서로서로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 경쟁을 한다. <저널>은 살인전담반을 만들어 형사, 탐정 노릇을 하고 ‘이야기’를 제공하는 자에게 <월드>보다 더 많은 포상금을 걸어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하면서 <월드>를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질세라 있는 힘을 다해 <저널>을 쫓으라고 지시하는 퓰리처. (우리가 알던 퓰리처 상의 그 퓰리처 맞는 거지?)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주도하는 탐정이 나와야 탐정, 추리 소설이라 할 것인데, 이 사건에는 이렇다 할 주도권을 쥐는 탐정이 나오지 않는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야 사건의 줄기가 잡혀나가기 시작한다. 작가의 의도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경찰은 한 발 물러서 사건을 관망하는 팔자 좋은 뒷방 노인네쯤으로 그려지고,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미국을 들썩이고 사건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월드>와 <저널>의 한판 대결 뿐. 피살자는 터키탕에서 일하던 근육질 마사지사 윌리엄 굴든수프다. 굴든수프는 맨해튼에서 유인되어 퀸즈에서 살해되었고, 시신은 브루클린, 맨해튼, 브롱크스에 뿌려졌다. 용의자는 허먼 낵의 부인이지만, 피살자였던 윌리엄 굴든수프와 동거 중이었던 오거스터 낵 부인과 그녀의 내연남 마틴 손 이발사. 언론이 하는 것 중에 가장 기본인 신상 털기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오거스터 낵의 과거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허먼 낵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돈벌이를 위해 낙태시술을 하던 오거스터는 죽은 아기를 술이 든 병 안에 넣었고 태운 것도 많았다고 한다. “8-10년 동안 태웠고, 한 달에 두엇은 됐어요.” 오거스터를 구슬려 인터뷰를 따낸 <월드>는 1면에 이런 헤드라인을 달았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여자는 헤롯왕보다 잔혹했다”
‘사라진 머리 미스터리’의 살인사건은 옐로 저널리즘의 희생양이 되었고, 그 사건은 급기야 재판에 회부되어서도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코미디를 연출한다. 마틴 손의 변호를 맡은 유명 변호사 하우는 손가락마다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흔들어 대며 ‘코퍼스 델릭티’(범죄가 일어났다는 명백한 증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큰소리를 치는가 하면, 배심원단, 증거, 증인 등을 조작하여 변호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우 변호사의 달변과 유창한 화술에도 불구하고 마틴 손은 일급 살인 평결을 받고 만다. 낵 부인은 어떻게 되었냐고? 훗날 한 기자의 회고에 의하면... “낵 부인은 작은 가게에서 웃으며 동네 순진한 꼬마들에게 싸구려 사탕을 팔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진 작은 설명 하나가 오싹하다.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낵 부인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88 법정 기록과 이 사건에 관계한 언론인들과 형사들의 수기가 있어 많은 덕을 보았다고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실제 사건을, 기록을 토대로 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매일같이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자극적이며 현란한 문구들, 헤드라인들.
황색 언론이 장악한 미래를 그 시절의 언론인들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지만, 지금의 언론은 황색이 아니라는 것만 다를 뿐. 그 시절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낚시 기사에 혹하여 클릭하고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는 네티즌들이 19세기의 과도기에 신문에 올라오는 기사에 좌지우지 되던 우매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이 책은 ‘문학 탐정’이라 불리는 폴 콜린스가 <월드>와 <저널>로 대표되는 황색 저널리즘의 시초였던 언론사들의 실제 역사를 그려낸 수작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나...우리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나, 무엇을 생각해보아야 하나. 거대 공룡 언론사들의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기도 하지만, 엄중한 체에 걸러 사건을 마주 대하는 독자, 혹은 네티즌의 자기정화 과정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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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무서운 속도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데 필수적인 기반을 이룬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양질의 노동력이 공급되어, 기업이 훌륭한 인적 자원을 싼 값으로 조달하는데 큰 수월함을 갖기도 했는데요, 그 중요한 추동력은 바로 보통 교육의 확대였습니다. 무지몽매한 노동자보다는 글을 잘 읽고 쓰는 노동자가, 기업주 입장에서도 부리기 편했겠는데요, 이런 노동 계급이 여가 시간에 그 문자 해독력을 이용해서 다양한 화제와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곧 신문의 독자층 확대로 이어집니다. 이 노동 계층의 수요가, 이 시기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신문 제국의 확립에 결정적 믿받침이 됩니다. 처음에는 이민자 출신의 음울한 사업가 퓰리처가 이 판을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문사에서 수습 기자로 일하며 <일하는 요령, 사업하는 비결>을 배운 대재벌가의 소생 허스트 2세가,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새로운 신문사를 차려 그와 대결하게 되죠. 퓰리처의 신문은 <월드>, 허스트 2세의 신문은 <저널>로 약칭되며, 어느 국가 간 전쟁 못지 않은 치열한 경쟁을 시장에서 벌이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바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바로 그 무대입니다. 이 소설에서도 잘 암시되듯, 처음에는 퓰리처의 독주로 시장이 주도되다가, 그의 빼어난 상술과 전략을 용케 잘 빼내 자신의 것으로 만든 허스트가 나중에는 경쟁 상대이자 전 오너, 선배를 압도하기에 이릅니다. 허스트의 무기는 기발한 상상력, 그의 젊은 나이로만 가능했던 <행동하는 저널리즘> 정책, 그리고 기본적으로 밝은 성품이 빚은 공격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소설에서도, 엽기적인 굴든수프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 내내 경쟁사인 <월드>에 단 한 치도 밀리지 않고 판을 주도합니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분위기에 압도됩니다. 어떻게 일개 신문이, 정부보다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가? 실제로 마르크스는 "정부는 자본가의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적도 있죠.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신문이고, 수많은 독자의 머리에 일정 영향력을 의제 선점 효과에 의해 행사할 수 있는 신문, 미디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한때나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 같은 무서운 언론"의 위력을 1부 내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는 오타가 있습니다. "마틴 손에을'에서 '에'자는 빠져야겠죠.
영어에 as dead as Kelsey's nuts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바로 그 사건(켈시라는 시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린치를 당해 죽은 사건)이 표현의 어원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책 본문에는 오타가 저 사진에서처럼 나와 있습니다.Kely 가 아니라, Kelsey가 맞습니다.
아직까지 무선 전신이 널리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이라, 이 사진의 본문에서처럼 전서구(비둘기)를 활용하는 신문사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대부호 로스차일드는 이보다 한 세기 앞선 시절, 비둘기를 이용해서 나폴레옹의 패전을 알았다고 하죠.
2부에서 재미있는 점은 더 이상 신문사의 전쟁 양태가 아니라, 법정에서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 간의 다툼입니다. 영미 문학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재 중 하나는 법정 다툼이잖아요? 이 책은 비록 한국어 제목이 <타블로이드 전쟁>이라고 붙어 있지만, 원제는 <세기의 살인>입니다.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신문사들의 전쟁도 요란하게 전개되었고, 법정에서의 진짜 전쟁도 최고 두뇌와 일류 재사들이 총동원된 대단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아무리 좋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하우 변호사가 펼치는 기막힌 쑈와 교묘한 변론 내용에 매료되었을 만합니다. 이 사진 마지막 줄을 읽어 보세요. 표현이 기가 막힙니다. 타블로이드 전쟁 당시에는 기막힌 표현이 들어간 헤드라인 한 줄로 독자 수만 명의 지갑을 열어야 했기 때문에, 이처럼 멋진 수사가 많이 등장했고, 이것이 바로 편집자와 기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 대목 번역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영어에서 살인은 고살(manslaughter)와 모살(murder)로 나뉩니다. 전자는 욱하는 기분에 꼭 그렇게까지 할 의도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충분히 안 상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후자는, 처음부터 누군가를 죽일 계획을 정밀히 짠 후에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가리키고요. 미스테리 소설에서 대부분 그 제목에 murder가 붙은 것은,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치밀한 계획을 짠 후에 일을 벌이는 게 추리소설의 속성상 당연히 등장하기 때문이죠. 이 말은, 낵 부인의 혐의는 모살까지는 아니고, 고살로만 그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고의적이지 않은 살인>의 이름이 <고살>일 수가 있을까요? 줄거리만 대충 따라가다 짐작으로 옮긴 엉터리 번역입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만 못했네요. 여튼, 진상은 이 책을 다 읽은 분이면 알 수 있듯, 모살 혐의를 교묘히 벗고, 고살로만 죄를 받고자 했던 낵 부인의 음모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암시입니다. 손(Thorn)은 그저 낵 부인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처지에 대신 죽은 거나 마찬가지구요. 다만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므로 저자는 노골적인 표현은 피하고 있죠.
재미있는 삽화도 실려 있습니다. 당대에 작성된 것인 듯합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까요.
표지가 예쁩니다^^ 그러나 그 제목은 더없이 살벌한!
범죄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무려 손금쟁이도 등장하는 미국의 당시 난장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날개에 소개가 실려 있는 다른 책도 읽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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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에 숨겨진 천박하고 야만적인 면을 드러내는 충격적이고 충동적인 괴물 신물들” 책의 한 대목이다. [타블로이드 전쟁]은 100년도 더 된 ‘토막살인사건’을 좇는다. 지은이는 대단히 권위 있고 영예로운 상으로 알려진 퓰리처상을 만든 퓰리처의 ‘뉴욕월드’와 허스트가 만든 ‘뉴욕 저널’이 공격적 마케팅과 선정적인 보도로 황색언론 전쟁을 벌인 19세기말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뉴욕 시내 곳곳에서 팔, 다리, 몸통이 발견되고, 심상치 않은 살인사건임을 눈치 챈 기자들은 경찰보다 더 경찰 같은 모양새로 취재경쟁을 벌인다. 살인전담반을 꾸려 시체를 싼 방수포의 출처를 찾아 헤매고 조각난 신원미상의 인물을 퍼즐을 맞추듯 추적해나간다. 판매부수를 늘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겨 서로의 독자를 빼앗기 위해 벌이는 언론사간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자들은 타사에 특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찰보다 앞서 증거를 찾아 훔치고, 제보자에게 일년 치 연봉의 포상금을 제안하고, 용의자의 집에 외판원을 가장하여 잠입하기도 한다. 이 총성 없는 전쟁의 목적은 ‘정의를 찾거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자극적인 사건을 다뤄 판매부수 기록을 경신하고 경쟁지들을 압도하기 위해서였다. 그중에서도 ‘황색언론’을 주도했던 [월드]와 [저널]의 기자들은 목격자를 조작하고 범죄현장을 훼손하고 근거 없는 비난을 서로 퍼부어댔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판매부수 기록 경신을 치열하게 다투다 사건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다루어 사회적으로 신랄하게 비난받았음은 물론이다. 두 신문사는 아랑곳없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서로의 기사를 비웃으면서도 토막 난 시체의 신원을 찾고 치정관계가 얽힌 사건의 내막도 점차 밝혀나간다. 살인, 신체절단, 불륜, 청부살인, 신분위장, 시신거래, 도박, 불법낙태, 의료사고 등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오는 각종 문제들로 버무려진 사건이었다. 언론들은 빛을 쫓는 불나방처럼 ‘엄청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인사건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기자와 언론사, 경찰과 시민의 관점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1897년 무렵의 뉴욕풍경이 빼곡하게 펼쳐진다. 의사회와 조산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불법화되어 성업 중이던 낙태시술, 조산사 자격증의 남발과 매매실태, 낙태수술 뒤처리를 해주는 장의사, 약사, 의사의 연계 고리 등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진출에 반감을 보이는 남성들의 모습 또한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은이가 당시의 방대한 신문기사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다채롭게 각색해내서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리저리 오가는 관점과 오밀조밀한 이야기가 장황해서 정신없으면서도, 범인은 누구고 어떻게 결말지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장을 쉼 없이 넘기게 된다. 매체와 사건만 바꾸면 그대로 우리 현실이 된다. 여론을 호도하던 당시의 기자와 언론사의 극성맞은 모습위에 자전거와 상품권을 준다며 구독을 권유하는 족벌신문사, ‘북한군 개입’운운하며 숭고한 5.18 민주화운동을 욕보인 종합편성채널, 진위확인 없이 여론몰이를 위한 보도남발과 권력자를 위한 보도에 앞장서는 지상파방송이 넘쳐나는 현재 우리의 언론행태가 자꾸 겹쳐진다. 전청와대대변인의 국제성추문처럼 때때로 현실에서 영화 같은 터무니없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토막살인사건’을 둘러싼 신문들 사이의 경쟁을 다룬 이 책 역시 소설 같은 실제이야기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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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길을 끌었고, ‘황색 언론’이라는 단어도 괜히 눈에 들어와 손에 잡게 된 이 책은 제목에 비해서는 좀 더 꼼꼼하게(덜 자극적이게) 하나의 살인 사건의 처음과 끝 그리고 후일담을 써내고 있다.
저자의 말 그대로라면 “기록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촘촘하게 재구성하려고 하고 있다.
“1897년 6월,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빈들거리던 아이들이 방수천에 싸인 채 바다에 떠있던 시체 토막 하나를 건진다. 비슷한 시기, 뉴욕 브롱크스 숲으로 버찌를 따러 간 가족들이 가시덤불 사이에서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을 발견한다. 며칠 뒤, 지나가던 배에 부딪힌 시체 꾸러미를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낸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오리들 깃털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저자 폴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광고,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이 충격적인 토막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하나도 덧붙임 없이 흥미진진한 법정 추리 소설(Fiction)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어떤 재미나 흥미를 일부러 만들어내려고 하진 않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잘 이어붙이고 있고, 그걸 토대로 살인 사건을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고 있다. 진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어떤 구경거리로만 다루려고 하지 않고 있어 한편으로는 읽을 재미가 조금은 부족할 수 있기도 하다. 반대로 다양한 자료로 어떤 식으로 사건을 살펴볼 수 있을지 알 수 있기도 하고. 다만, 제목처럼 황색 언론이 얼마나 난리법석을 만드는지는 그렇게 크게 부풀려지진 않고 있다. 내용의 초반 부분만 집중적으로 활약하고 있을 뿐이다. 분명 이 살인 사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걸 너무 부각시키지 않고, 다른 구성들 또한 충분하게 다뤄내고 있어 언론에 대한 잘못된 모습만이 다뤄지는 책으로 읽는다면 잘 읽혀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처음과 끝에서는 “<뉴욕 월드>의 퓰리처와 <뉴욕 저널>의 허스트가 벌인 선정적인 취재 경쟁” 진지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 생각하며 읽을 순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일종의 법정물 혹은 수사물로 읽는 게 알맞을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간의 욕망”이다. 작가 폴 콜린스가 끌어가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줄기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과도한 취재 경쟁에 빠진 <월드>와 <저널>의 보도 경쟁이고, 또 하나는 한 여자와 그녀의 전남편, 전애인, 현재 애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정 살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기삿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쓰고자 했던 언론의 욕심과 남의 불행을 구경하는 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의 심리, 자신의 위기 앞에서는 사랑도 버리는 인간의 욕망,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친구의 믿음도 버리는 인간의 배신, 돈벌이라면 자기의 불행도 팔 수 있다는 인간의 추악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사건은 머리가 없어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던 시체를 두고, 처음에는 “이 시체의 주인은 누구인가?”로 공방을 벌였지만, 나중에는 “공범인가, 단독범인가? 단독범이면 범인은 누구인가?”의 문제로 논쟁이 번졌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광기, 자기 방어, 자기변명, 잔인함, 음모, 배신 등의 욕망은 처절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100년도 넘은 이 사건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진 욕망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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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하고 재미있다. 제목도 참 잘 지었다. 사건을 취재하기 위한 열띤 취재전쟁이 돋보인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작품이 많지만 셜록 홈즈류의 탐정소설은 절대 아니다. 독자가 모르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훌륭한 탐정이 논리있게 셜명하고 끝내는 추리물이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사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돌리는 점이 특이하다. 책을 읽어나가며 대부분의 독자들은 두 명의 유력한 살인자 가운데 누가 진짜 피의자인지 궁금해진다. 둘 중 하나가 될지 아니면 두 명 다 범인일지 그 결말을 알기위해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더 주목하게 되는 점은 과연 이 열띤 취재현장에서 어떤 신문사가 승리하게 되느냐이다. 월드냐 아니면 저널이냐? 그것도 아니면 생각지도 않은 다른 신문이냐? 시체의 주인이 누구고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던 초기의 관심사가 점차 언론사의 취재경쟁으로 옮아감에 따라 제목이 왜 타블로이드 전쟁인지 이해가 가게된다.
아마 요즘 같으면 이런 언론의 행태가 뭇매를 맞을 것이다. 확실한 내용과 증거는 없고 새로운 무언가가 터져나오기만 하면 마치 사실이 전제가 된 특종인양 속보로 전달하는 행태말이다. 신속성 못지않게 정확성이 생명인 언론은 책에 소개 된 것과는 달리 독자들로부터 외면받다 못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고 매일 다음 날 사과문을 발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폴 콜린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 챕터마다 마구 쏟아져나와 일일이 기억하거나 때로는 메모를 하며 읽어야 했다. 혹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던 누군가가 마지막에 범인이 되어 나타날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어디까지나 당대의 언론이 발표했던 기사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사건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있는 문체와 유력한 용의자라 지목된 인물에게도 혐의만 있을뿐 물증이 부족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으므로 판단은 유보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아무도 주목을 하지 않는 과거의 일을 찾아 색다른 관점을 전달하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지금 이 시간에도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중대한 뉴스거리를 위해 바쁘게 발로뛰어다니는 기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게 된다. 퓰리처와 허스트의 대결에서 승자는 없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고, 잘 나갈때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보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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