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67%
  • 리뷰 총점6 3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르네상스의 어둠]계몽주의자의 역사관을 주의하라
"[르네상스의 어둠]계몽주의자의 역사관을 주의하라" 내용보기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도현신 저자의 최근작이다.이분은 지난 5년간 벌써 12권의 대중역사서를 낸 부지런한 저자이고, 20대부터 작가의 길로 전력질주한 젊은 작가이다. (예스 블로그의 리뷰를 통해 이 저자분이 추천하는 역사서를 따라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분은 나를 모르겠지만, 여튼 이 리뷰를 빌어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 분의 책을 보면 제대로 된 사관으로 재구성
"[르네상스의 어둠]계몽주의자의 역사관을 주의하라" 내용보기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도현신 저자의 최근작이다.이분은 지난 5년간 벌써 12권의 대중역사서를 낸 부지런한 저자이고, 20대부터 작가의 길로 전력질주한 젊은 작가이다. (예스 블로그의 리뷰를 통해 이 저자분이 추천하는 역사서를 따라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분은 나를 모르겠지만, 여튼 이 리뷰를 빌어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 분의 책을 보면 제대로 된 사관으로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려는 노력이 보인다. 나는 그래서, 흔한 역사 블로그를 방문하다보면 보이는 전쟁과 무기, 폭력적이거나 성적 에피소드를 흥미위주로 소비하는 어린 남자 글쟁이들의 미숙함이 없어서 이 젊은 저자가 좋았다. 아직도 90년대 이전의 오류 투성이 서구식 세계사 지식만을 아무 문제의식없이 자신의 책에 인용하여 잘못된 지식과 세계관을 재생산하는, 나이 지긋하고 게으른 저자들과 달라서 좋았다.

 

이번 책 역시 저자분에 대한 나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르네상스의 어둠>이란 도발적인 제목과 어울리게 저자는 흔히들 (게으른) 사람들이 옛날 지식 그대로 '중세 암흑기' 운운하는 통념을 신나게 깨 주신다. 저자분은 그리들 찬양하는 '르네상스'란 예술 분야에서만 찬란했으며,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1,.16세기 유럽은 전쟁과 약탈이 끊임없이 자행되던 야만의 시공간이었음을 밝혀 준다. 또한 마녀 사냥은 종교 광신의 중세가 아니라 근대에 더 대규모로 자행되었으며, 인본주의를 내세운 르네상스 시기에 종교를 둘러싼 살육이 더 잦았음을, 노예제도나 제국주의의 시작이 바로 이 시기부터였음을 고발한다.

 

결국 르네상스의 환상을 심어준 것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이성적 존재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전시대인들과 명확히 금을 그어 차별화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중세 대 르네상스, 근대의 대립 구도는1990년대 이후 학계의 연구를 통해 수정되고 있는 중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뒷북치는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나 로마 문명과 그 문명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를 높이 평가할 뿐. 게으른 저자들이나 아직도 그런 단순한 사고로 중세와 근대를 이분법으로 나눠 집필할 뿐.

 

,,, 그리고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다시 세상을 암흑과 빛으로 선과 악으로 나누는 단순하고 무지한 의식을 퍼트린다. 좋은 역사서, 제대로 된 사관으로 쓰여진 역사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점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과 부합하는, 얇지만 묵직하고, 흥미로운 역사서 한 권,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음탕하고 타락한 도시 바빌론을 정복해 악의 잔재를 쓸어버리고 있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느꼈다. 이런 점에서 1527년 로마를 공격한 란츠크네히트 용병들은 20세기 중엽 중국의 홍위병들과 비슷했다.

- 본문 59쪽에서 인용.

 

위의 한 문단은 맛뵈기. 카를로스 5세의 개신교도 용병들의 로마약탈 부분 서술이다. 이렇듯 이분은 확실한 논평을 해 주시는 저자이다. 전쟁사 쪽이 특히 강하신 것 같다.

 

***이하, 그냥 읽으면서 눈에 띄어 메모함.

 

7쪽   : 1611년부터 1641년까지 30년이나 전쟁을 치렀다 => 독일의 30년 전쟁은 1618 ~ 1648년임

30쪽 : 로렌초 데 메디치 2세는 ~ 자신의 어린 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앙리 2세에게 시집보냈다

       => 카트린의 아버지인 로렌초는 카트린 생후 1주일만에 사망. 삼촌인 교황 클레멘스 7세가 결혼 주선.

32쪽 ; 카트린과 앙리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앙리 4세의 결혼식이 열렸다

       => 앙리 4세는 사위.

135쪽 : 올리버 크롬웰은 열렬한 성공회 신도였다.

       = > 청교도.

119쪽 : 버터 금지 포고령 부분, '가톨릭 교회가 왜 이런 금식령을 내렸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 > 이 부분은 맛시모 몬타나리 저 <유럽의 음식 문화>에 나와 있음.

 

그리고 군데군데 영어식 표기는 이왕이면 현지어 인명과 지명으로 표기했으면 더 좋을듯. 이분 책에 종종 이런 점이 눈에 띄는데, 참고 문헌 목록을 보니 영어 원서를 참고하다 보니 영어식 표기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플로렌스 공화국(40쪽) 카를 3세 부르봉 공작(52) 태조 강(233) 포르투갈 국왕 존 2세 (237쪽)

=> 피렌체, 샤를, 태주 강, 주앙 2세.

 


 

m******n 2013.03.09.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르네상스의 어둠 빛의 세계에 가려진 11가지 진실
"르네상스의 어둠 빛의 세계에 가려진 11가지 진실" 내용보기
르네상스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입니다. 알다시피 오랜 시간을 무지와 야의 폭력에 제 운명을 맡기고 살아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핍과 가난에 시달렸으며, 이 모든 모순과 생존위기를 오로지 종교라는 수단에 의지해서 넘겨 온(사실상 도피해 온) 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서서히 종지부가 찍혀지기 시작한 게 바로 르네상스(재생)의 시기이니까요. 이 르네상스 시기에 활약
"르네상스의 어둠 빛의 세계에 가려진 11가지 진실" 내용보기

르네상스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입니다. 알다시피 오랜 시간을 무지와 야의 폭력에 제 운명을 맡기고 살아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핍과 가난에 시달렸으며, 이 모든 모순과 생존위기를 오로지 종교라는 수단에 의지해서 넘겨 온(사실상 도피해 온) 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서서히 종지부가 찍혀지기 시작한 게 바로 르네상스(재생)의 시기이니까요. 


이 르네상스 시기에 활약한 스타들은, 다재다능한 탤런트들이었으며, 요즘 식으로 말하면 통섭적 지식인, 기능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개인이 1인 기업이었으며, 비록 유력자나 봉건적 권력의 통제와 속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세상을 향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서비스와 제품으로 그 효용과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오늘날에야 그들을 현대적 기준에 맞춰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하나, 당시의 그들은 예술가 이상의 존재, 제가 위에 말한 대로 1인 기업의 위상에 보다 가까웠습니다. 그들이 창조하는 제품과 시설은 무수히 많은 파생적 부가가치를 빚어 내고, 도재 양성이나 기타의 파급 효과를 통해 지역 경제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란 어느 상인, 귀족이 부럽지만도 않았습니다.

근대에 들어 산업 혁명이 인간 생활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그리고 이에 맞춘 표준화한 감정, 사고 조절 방식이 모든 개인을 지배했습니다. 이렇게 수 세기가 흐르자 각 분야에 축적된 성과와 노하우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인류의 대다수를 절대 빈곤선에서 해방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인류는 기본적 욕구를 거의 충족한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옮아갈 단계는 무엇이겠습니까? 개별화, 특성화, 차별화, 대체할 수 없는 개성의 화려한 개화의 레벨입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지배하던 시절의 레디메이드 프라덕트는 이미 당대에조차 경멸과 회의의 대상이었고, 이제 다가올 미래에서는 아예 금기의 대상으로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레드 오션을 넘어, 블랙홀의 영역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이런 미래, 개성과 창의가 지배하면서도 한편으로 통섭과 경계 허묾이 시대 정신의 주류가 되는 미래를 전망하는 책입니다. 시대가 돌고 돌아 다시 만능인, 1인 기업을 숭상하는 쪽으로 변전했습니다. 다만 발전 없는 쳇바퀴식 순환이 아니라, 나선형 상향 곡선을 그리며 변증법적 진화를 이뤄 나가는 중입니다. 르네상스란 본디 완결적, 일회적, 폐쇄적 구조가 아니라, 외부와 내부의 그 모든 변혁 가능성에 오픈된 예측 불허의 거푸집과도 같습니다. 이 책은 바로 개인의 중요성과 생산성이 이전의 그 모든 패턴을 압도하고 대체하는 가슴 뛰는 미래상을 우리에게 펼쳐 주고 그 대비책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v*****7 2019.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환한 빛은 짙은 어둠을 낳는다
"환한 빛은 짙은 어둠을 낳는다" 내용보기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여느 때보다 풍성한 문화 예술 작품이 완성 돼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시기가 온다면, 이번에는 융성한 기운이 끊이지 않도록 한 번 잘 살아보고 싶다. 직접 경험해 본 건 아니나 왠지 좋았을 것만 같은 시절 중 하나가 바로 르네상스 시기다. 그 전까지 인류는 종교에 지나치게 기댄 나머지 자신
"환한 빛은 짙은 어둠을 낳는다" 내용보기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여느 때보다 풍성한 문화 예술 작품이 완성 돼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시기가 온다면, 이번에는 융성한 기운이 끊이지 않도록 한 번 잘 살아보고 싶다. 직접 경험해 본 건 아니나 왠지 좋았을 것만 같은 시절 중 하나가 바로 르네상스 시기다. 그 전까지 인류는 종교에 지나치게 기댄 나머지 자신이 지닌 능력을 백분 발휘하질 못했다. 타락한 종교는 불필요한 전쟁까지 일으키며 숱한 인명을 앗아갔다. 전쟁 못지않게 모두를 긴장시킨 흑사병도 있었으니, ‘암흑시대’라 중세를 일컫는 것에는 하등의 이상함도 없어 보였다. 르네상스는 인간 능력에 대한 긍정이었으며 이미 한 차례 이룩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밝은 부분에 대한 지나친 집중이 그 시절의 미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 아무리 태평성대라 하여도 문제점은 있기 마련인데 어찌 르네상스라 하여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든 게 우리 마음에 들었겠느냐는 것이다. 일종의 딴지걸기와도 같아 보이는 저자의 지적에 눈과 귀를 집중해 보았다. 문제가 있다면 과연 어떤 문제가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을까? 꼭 11가지만은 아니었겠지만 저자는 주된 문제 11가지를 르네상스 시대가 품은 어둠이라고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 ‘군주론’을 통해 체사레 보르자라는 자를 자신의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이상적 군주로 꼽았다. 그런데 이 인물의 면모는 잘 알려져 있듯 위대한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각종 권모술수를 통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류에 속했다. 비참하고 또 한 편으로는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한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가 이 인물을 추앙했던 것은 그만큼 사회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사회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힘이라면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동 정도는 용납할 수 있을 정도로 르네상스 시대는 혼돈 그 자체였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는 해적의 출몰이 잦았다. 십자군들의 단죄(?)가 이슬람 국가를 박살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근거지를 유럽 대륙과 좀 더 가까운 북아프리카 일대로 옮겨 이탈리아와 스페인 일대를 괴롭히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해야 이 이교도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단 말인가! 과거처럼 차라리 기독교의 힘이 강성했으면 좋으련만, 세속적인 왕권의 도전으로부터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기독교가 이슬람 해적들을 처단하는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쓸데없는 데 힘을 쏟았으니 마녀사냥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들 중세에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가 마녀사냥의 중흥기였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중세는 종교가 충분히 강성했는지라 마녀의 존재를 긍정할 이유가 없었다. 이토록 종교적으로 충만한 공간에 마녀가 있을 리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보임으로써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기독교는 허락지 않았다. 나약한 기독교는 하지만 적을 필요로 했다. 마녀의 존재는 무너지는 스스로를 붙들어 맬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 제국주의와 결합해 신대륙에서 벌인 약탈 살육 행위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허약한 종교가 낳은 주체 불능의 괴물이었다. 이 외에도 인류의 태반을 사망케 만든 흑사병과 전쟁,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인종차별의 씨앗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이었다.

분명 그 시절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아니었다. 노동을 하는 계급과 그들을 고용하는 계급 간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화폐를 찍어내는 체계적인 시스템도 없었다. 그럼에도 저자가 언급한 많은 문제들은 경제적인 측면이 강해 보였다. 이 말은 르네상스 시대의 문제가 곧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될 수도 있어 보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을 부르짖은 루터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종교적 신념이 아니었다. 버터를 즐기던 독일인들은 버터에 부과되는 과도한 세금을 견딜 수가 없어 종교개혁에 힘을 쏟았다. 급기야 교황청을 공격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할 정도로 르네상스 시절의 사람들은 이해타산적이었다. “인간성을 잃은 무리가 마치 짐승처럼 무자비하게 날뛰었다.”는 목격자의 기록이 과연 르네상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아도 좋을지,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인간성과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 널려 있지는 않은지를 되묻고 싶었다.

 

이달의 사락 q*****2 2013.08.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