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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석가탄신일에
요즘 무척 바쁜 신랑 다들 황금휴가라며 놀러가는 데 신랑은 회사 갔어욤 일요일 하루 쉬어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 있을소냐?
종묘에서 만난 조선왕 이야기 라는 책을 읽으면서 종묘가 궁금해진 두남매맘 지하철 타고 종묘를 향했답니다.
어 해설이나 자유관람이 선택인 줄 알았는데 토요일만 제외하고는 시간제관람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되고 해설자분을 따라 설명을 들으면서 종묘를 둘러보게 된답니다.
우리가 석가탄신일 금요일에 가니 시간제관람을 하게 되었지요.
어른만 천원~ 아이들은 무료
역사에 관련된 것이라고하면 드라마도 보지 않는 두남매맘 그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었답니다.
종묘에서 만난 조선왕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 친절한 책이었음에도 술술 넘어가지는 못 했지요 워낙....역사를 잘 모르기에
문득 가서 봐야겠다 종묘
그런 생각에 갔는데 역시나 어렴풋이 읽은 책의 내용이 눈 앞에서 바로 보니 역사가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
바로 책에서 보았던 그 신로
해설자님도 신로는 왕도 밟지 않은 곳임을 알려주고 우리는 밟지 않고 조심히 건너갔죠.
아주 땡볕인 오후라 별양은 무척 더워하는 반면 별군이 의외로 더 관심을 갖고 설명도 듣고 사진도 유심히 보더라구요.
역사에 대해 보통 남자아이들이 더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별양도 ...엄마를 닮지 말고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아무튼 아쉬운 소식은 종묘제례를 일년에 한 번 종묘에서 재현하는데 그 날이 바로 올해는 5월 5일 어린이날로
지났다아!!
내년엔 꼬옥 보러 오리라!! 정말 너무 근사할 것 같아요!!!
그리고 세종대왕님의 업적 중 몰랐던 업적이 또 있었으니...
종묘제례에 쓰이는 노래까지 만드신 세종대왕님!!!
대왕님 대왕님 세종대왕님!!!
역사를 알아야 된다는 거 무엇보다 우리 역사가 너무 훌륭했기에 우리 역사를 알면 알 수록 나라에 대한 자긍심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전에 신라에서 보물찾기. 고구려에서 보물찾기.... 학습만화였지만 우리나라 보물찾기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새로이 알게 되는 문화유산의 훌륭함에 읽으면서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었거든요.
지금 수능에서 역사과목이 선택이라던데...
너무나 아쉬운 일이에요
역사체험도 이제 자주 다녀야겠어요!!!
해설자님을 놓치지 않고 잘 쫓아다니는 별군 ^^
그리고 오늘 처음 본 정전 유심히 바라보며
그리고 엄마가 읽는 책에 있는 종묘에 간다고 하니 책 갖고 가라고 했던 별양
여기 책에 있는 곳임을 알고 별군은 비교하며 똑같다며 더 관심을~
한 번 더 한 번 더 더더더 보게 되더라는...
옆에서 별양은 내가 책 갖고 가자고 한 거라며 별군에게 자신의 공을 알리고~~^^
그러게 갖고 오길 잘 했다아^^
1시간의 해설자님이 설명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책에서의 내용이 더 상세한 편이고 조선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지만
요 부분은 책에 없던 내용
캬~~ 그러고보니 문이 다 비뚫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ㅎㅎ 친절모드로 갈까 말까???
아무튼 우리 선조들은 너무너무 지혜로와!!!!
또 한 번 더 감탄^^
제상에 올라갈 음식을 준비하는 곳인 천막단 성생위 사진을 보며
어 방금 보고 온 곳임을 알고 또 유심히~~~
종묘 정전과 영녕전의 차이점 책에서도 읽은 부분이지만 직접 와서 보니 역시나!!!
높이. 지붕.벽...
책을 읽고 체험하든 체험하고 책을 읽든 이 두가지가 합쳐지는 효과를 실로 경험한 두남매맘^^
별군은 책의 사진과 건물명칭만 볼 지라도
이렇게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을~
역사
"우리아이들에게 아직이야 "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종묘나들이로 인해 우리아이들에게
역사
"바로 지금이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별군은 계속 책을 들고 다니며
앉아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우리가 본 곳이 어디
그러다 종묘 지도를 발견하고는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을 찾아보고
영녕전 저 끄트머리에 있는 영녕전 악공청은 어디지 하더니
직접 찾아본다며 나섰어요.
그리고 영녕전 악공청을 찾아서 보고 돌아오는 별군
해설자님도 그렇고 영녕전에 대한 설명만 해주셨지 영녕전 악공청에 대해선 언급도 안 해 주셨는데
아마도.아마도. 영녕전 악공청까지 찾아준 손님은 별로 없지 않았을까.....???
ㅎㅎㅎ 종묘에 가면서 책도 가져가라고 한 건 별양인데
책을 십분 활용한 건 별군이네~~
ㅎㅎㅎ 종묘에서 만난 조선왕이야기는 중간정도까지 읽다가 종묘 가봐야겠어 란 생각이 들어 다녀온 종묘!! 두남매맘이었지만 책도 읽고. 종묘를 직접 다녀오니
왕들의 업적에 따라 종묘에 오른 왕도 있고 영녕전으로 옮긴 왕도 있고. 하지만 종묘에 오른 왕 중에 공정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알게 됩니다.
왕들의 업적을 읽으면서 세조에 대한 재평가 저...사실 세조와 수양대군이 같은 분인 것도 모를 정도로 역사 모르는데 그래도 수양대군 하면 안 좋은 임금 정도로는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보니 내가 조금밖에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죠.
그 중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세조는 후궁을 거느리지 않았으며 검소한 생활을 했어!!!
옛날에야 후궁들이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요즘 그렇지 않은 시대에도 높은 지위. 권력을 가진 사람들 여자 알기를 뭐 같이 알아서 여자로서 갱장히 분노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종묘 가기 쉬워요 종로3가에서 종묘방향으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된답니다.
종묘관람을 마치고 인사동으로~~~~ 궈궈궈~~~
신로는 밟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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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종묘의 붉은 판문을 열고 그 곳에 모신 역대 왕과 왕비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일은 엄숙하고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의미있는 일이기에 종묘에 모신 역대 왕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네요.^^
'종묘'란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를 모신 '유교식 신전'으로 조선 왕과 왕비의 혼령이 머무르는 곳이자 후대 왕들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에요.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지방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종묘의 참모습을 책을 통해 먼저 만나보았어요.
종묘의 '신실' 안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어요. '신주'는 뽕나무나 밤나무로 만든 작은 나무토막으로 죽은 이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신주에 혼령이 깃든다고 믿었으니 귀하게 여기는건 당연하겠지요? 죽은 이는 산 사람과 반대로 서쪽이 높은 곳이라 '서쪽에 왕의 신주'를, '동쪽에는 왕비의 신주'를 모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묘(墓)'와 '묘(廟)'의 차이점도 짚고 넘어 가네요. 왕릉은 죽은 이의 시신을 묻는 무덤으로 묘(墓)이고 종묘는 죽은 이의 혼을 모신 사당을 의미하는 묘(廟)라는 것 잊지 마세요.^^
종묘의 건물의 건물들은 '박석'(얇고 넓적한 돌)이 깔린 길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길이 울퉁불퉁한 건 각별히 몸과 마음을 삼가하라는 의미로 특히 가운데 길은 조상들의 혼령이 다니는 길이니 아무렇게나 뛰어다니는 일은 절대 금물이랍니다.
처음에 7칸이었던 종묘가 19칸으로 늘어나는 과정이 곧 '조선의 역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묘를 운영하는 원리'는 나라를 세운 태조 임금과 현재 왕의 4대 조상까지를 종묘에 모시는 것으로 임금이 죽으면 5대가 지난 윗대 조상부터 순서대로 종묘에서 신주를 내보내 종묘 마당에 묻었다고 해요. 하지만 조선은 중국과는 달리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종묘 옆에 별도의 사당을 지어 모시게 됩니다. 조선의 2대 왕인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면서 '목조'의 신주를 '영녕전'으로 옮겼지요. 이 때부터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5대가 다 차면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긴 뒤 새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하네요.
신주조차 제 자리를 못 찾고 푸대접 받는 '정종'의 예를 보며 권력의 비정함을 느끼게 되요. '묘호'조차 받지 못 하고 툭하면 신주도 이리저리로 옮겨지다가 영녕전으로 쫓기듯 건너갔으니 말이에요. 왕통보다 자신의 직계 조상의 핏줄을 챙기는 왕들을 보며 피가 땡긴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덕분에 종묘를 운영하는 원칙도 뒤죽박죽되고 말았지만...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종묘에 신주를 모시면서 공과 덕을 따져 '묘호'를 올리게 됩니다. 우리가 부르는 태조, 세종, 정조 같은 임금의 이름들은 모두 '묘호'랍니다. 종묘에서 5대가 지나면 또 공덕을 따져 종묘 정전에 영원히 모시는 세실과 영녕전에 건너갈 왕으로 나누게 되는데 '종묘란 죽은 왕에게 매겨지는 일종의 성적표'였던 셈입니다. 5대가 지나도 종묘 정전에 모셔지는 '세실'은 공덕이 높은 왕에게 올리는 특혜로 종묘를 운영하는 원칙이 흔들리는 빌미가 되었어요.
공과 덕은 사라지고 제 핏줄만 챙기면서 신주를 모실 곳이 모자랄 때마다 종묘의 칸수를 늘려 해결했으니까요.
역대 조선 왕의 성적표 속에 숨겨진 암투와 권력이 죽어서도 유효하다는 생각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네요.ㅡㅡ;;
해마다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치르는 종묘 대제에 꼭 가보고 싶어요. 새벽 1시에 치르던 옛날과는 달리 오늘 날에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낮으로 제사 시간을 바꿨다고 하니.... 같이 가실래요? ^^;;
정종과 단종, 태종과 세조 임금을 보며 역사는 승자만 기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공정하게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아닐까 해요. 종묘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역대 왕들의 치적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자녀와 함께 '종묘로 만나는 색다른 역사 공부' 어떠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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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사실이 아니다. 역사란 사가의 견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저리도 열심히, 끈질기게, 욕을 먹어가면서 동북공정을 감행하는 것이고,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또 우기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역사 이야기가 재밌다. 가까운 곳에 있는 종묘 이야기가 새롭기도 했고, 종묘와 관련된 조선시대 우리 임금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숙종의 재발견"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바로 조선시대 역사 바로 잡기.. 같은 일을 이룬 이유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이 책은 조선시대 왕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와, 그 종묘의 주인공인 왕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3장까지 저자의 설명과 그림, 사진들을 보며 종묘를 탐방하고, 4장, 5장은 조선시대 왕들의 이야기를 옛이야기처럼 재밌게 읽어볼 수 있다. 그외 6장은 조선의 왕들을 섬기고 왕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 가는 신하 이야기, 7장은 종묘에 치러진 제사와 제사 때 사용된 음악, 즉 제례악을 다루고 있다.
먼저 종묘의 뜻을 살펴보자. 종묘에서 사용된 '묘'(廟)는 혼을 모시는 '사당'을 의미하며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와는 다르다. 또한 임금을 지칭하는 태조, 세종, 태종, 영조 같은 이름은 후대 왕과 신하들이 그 업적을 따져 신주를 올릴 때 붙혀진 묘호(사당 묘)다. '~조'는 나라를 세우거나 큰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이 있는 임금에게 붙였고, '~종'은 선왕이 이룬 업적을 이어받아 태평성대를 이룬 덕이 있는 왕에게 붙였다. 이 이야기는 책의 본문 중간 설명된 '묘호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70쪽)
한마디로 종묘는 제사를 지내는 유교식 신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원래 종묘에는 조상들의 신주를 모셔두기 위한 건물로 정전을 세웠다. 중국이 7대 조상을 모셨지만 조선은 중국의 제후의 나라로 여겨 5대 조상까지만 모셨는데, 처음 7칸 짜리 건물을 지었던 이유는 형제끼리 왕위를 상속한 경우를 대비했을 것이라 추측한단다. 즉 현재 왕의 4대 조상 신주를 모셨고 5대가 지난 웃대 조상부터는 순서대로 종묘에서 신주를 내보내 종묘마당에 묻어야 했다. 그러나 차마 땅에 묻을 수 없어서 새로 건물을 지어 신주를 모셨는데 이 건물이 바로 영녕전이다.
종묘는 '조선 왕의 성적표'였다고도 볼 수 있다. 왕이 세상을 떠난지 3년 뒤에 종묘에 신주를 모시면서 공덕을 따져 묘포를 올렸고, 종묘에서 5대가 지나면 또 공덕을 다져 종묘 정전에 영원히 모시는 세실과 영녕전으로 건너갈 왕으로 나누었다. 또한 폭정으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들지 못하고 군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종묘를 운영하는 원칙이 흔들려 공덕에 따라 세실을 정하지 않고 현재 임금의 직계조상인지를 먼저 챙기기 시작했단다. 결국 세실의 원래 기능은 사라지고 정전은 19칸으로 늘어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른 왕들의 평가를 볼 수 있다. 특히 숙종을 새롭게 보았다. 원래 태조에 이어 왕이 된 정종은 묘호도 없이 공정대왕이라 불렸다. 그것은 태종과 세종도 묵인한 일이었다. 조선 왕의 혈통을 정리하는 일을 했던 숙종 때에야 비로소 정종(定宗)이란 묘호를 갖게 되었단다. 또한 세조에게 쫓겨난 단종도 노산군이라는 이름 대신 단종(端宗)이라는 이름을 회복한다. 역사란 강자의 편에 서서 기술하다 보니 그런 잘못된 평가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이 책은 이른바 숙종의 재발견을 가능케 했다.
그밖에 학문을 좋아하고 문화를 일으켰으나 국방에 소홀히 해서 임진왜란 맞게 된 선조의 이야기나, 광해군을 쫓아냈기에 높게 평가되었지만 실상은 광해군과 다를바 없는 일을 저지른 인조의 이야기 등 기존에 알던 내용과 달리 소개된 왕들의 이야기가 새롭고 재밌었다.
종묘와 관련해 재미있는 조선 왕 이야기를 통해, 역사란 사가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배운다. 사가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역사라 하니, 바른 관점, 바른 생각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종묘라는 조선왕의 성적표를 보며 이름없는 내 인생의 성적표를 위해서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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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세움의 배움터 시리즈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사진과 자료로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내어 거의 대부분의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나도 꽤나 좋아해서 읽으려고 구입했는데 먼저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있다. 휴가 때 맘잡고 읽어 볼까나~^^
이 책 [종묘에서 만난 조선 왕 이야기]가 아이세움 배움터 시리즈 34번째 책이라고 하니 일단 읽지 않고도 재미와 구성은 보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기대를 잔뜩 안고 책과 만났다.
종묘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는데 그 이유가 목조 단일 건물로는 이렇게 길게 지어진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아이들 사회를 가르칠 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총 19칸 왜 이렇게 길게 지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 간단한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조선 왕조 왕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얽히고 섥힌 왕들의 치열한 자리다툼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사연을 '종묘'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통해서 알아본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취지이다.
![]() 이 책의 저자는 [세상을 담은 지도]와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 등을 쓴 어린이책의 베스트셀러 작가 '김향금' 선생님이시다. 어린이책 중에서도 주로 지리와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쓰셨다고 하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 글이 굉장히 쉽고 자연스럽게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많은 책을 쓰신 경험과 다루고 있는 분야에서의 지식이 깊어서 그런지 글 속에서 상당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책의 구성에 있어서도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지고,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으며, 책을 쓴 목표가 방향이 분명하여 여러 가지 둘러 배우면서도 한 가지 목표를 향해가는 통일성이 느껴져 산만하지 않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특별하게 정리할 필요없을 정도로 읽으면서 정리가 되어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종묘가 조선 왕의 성적표라는 사실을 놓고, 감히 공자의 춘추필법을 흉내 내어 조선 왕과 조선 역사를 바라보아 역사를 배우는 참뜻을 되새기려고 했어." --- p.164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공부도 부족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까닭이 있어. 흔히 역사를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한단다. 패배한 자는 역사를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무리 역사가 이미 지나가 버린 사건이라고 해도 후손들이 억울하게 패배한 자,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사건들을 제대로 평가한다면 역사는 한결 더 공정해질 수 있을 거야. 이 책에서 그런 예를 정종이나 단종 임금에게서 봤지? 그렇게 역사를 제대로 평가함으로써 우리 시대에는 억울한 패배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이어질 수 있단다." --- p.165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 사실을 종묘라는 매개를 통해서 좀더 냉정하게 평가해보고자 했다. 저자의 이러한 의도를 몰랐을 때에도 읽다 보니 그동안 왕들에 대한 보편적인 평가와는 조금 다른 시각이라는 것이 느껴졌었다. '승자'가 만든 왕의 평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냉정하면서도 적나라한 평가에는 허탈함이나 아쉬운 마음까지 든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처럼, 억울한 패배가 되풀이 되지 않고 공정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종묘'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종묘란 무엇인가, 왜 세웠을까? 그리고 처음에는 7칸으로 시작한 건물이 19칸까지 늘어난 배경, 그리고 '정전'과 다른 '영녕전'이 만들어진 이유와 신주를 모시는 규칙까지 종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 여기까지 읽으면 보통의 역사 유적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여느 다른 역사책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다음 장 "종묘에 오른 왕, 영녕전에 건너간 왕"부터는 단순히 종묘에 대한 소개를 위한 책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정작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부터라는 생각도 든다.
"정종, 억세게 운 나쁜 왕
"태종, 태평성대를 준비한 철권 왕
쫓겨난 단종, 영녕전에 오르다!
세조, 공도 허물도 많소이다!
성종, 조선의 문물제도를 완성하다
쫓겨난 왕, 영원히 종묘에 들지 못하리!"
이렇게 후대의 평가에 의해서 정전과 영녕전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 평가는 공정했을까?에 대한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5장 "종묘에 오른 왕의 성적표는 공정했을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다.
![]() 특히나 우유부단 했던 중종이나 판단력이 부족했던 인조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가 왜 중요한 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또한 중조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분석에서는 공감이 되기도 했다.
또한 왕이 집권할 때 가장 공을 많이 세운 신하 한 명이 선정되어 '공신당'에 신주를 모시게 되는데, 이 선정 과정 역시 정당하지만은 않았음을, 조선 후기로 갈수록 권력에 좌지우지 되었음을 저자는 짚어주고 있다.
![]() 다양한 자료와 사진이 지루할 틈없이 읽히고, 무엇보다도 옛날 얘기 들려주듯 술술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에 푹 빠져서 읽게 된다. 무엇보다도 흔하게 접할 수 없었던 종묘에 대한 숨겨진 얘기나 역사적인 진실을 새롭게 접할 수 있어서 더없이 좋은 기억에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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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재미없는 엄마, 역사가 재미있다는 1호군~ 그래서 그런지 아들따라 엄마도 역사에 대해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 요즘이예요.
차례를 살펴보니 음... 역사에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엄마의 눈엔 그저 복잡해 보이기만 할 뿐이예요.
그런데 신기한 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그 복잡하던 느낌은 사라지고 마구 마구 시간을 거슬러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너무도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종묘~
그러나 이 종묘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그 의미도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충분한것 같아요.
종묘는 쉽게 말해 조선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예요. 제사를 지내는 유교식 신전이라고나 할까?
사직은 곡식의 신과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구요.
종묘와 사직은 작게는 임금이 조상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장소였으며 크게는 왕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장소였다고 하네요. 바로 왕실과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죠~ (본문 p38)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칸으로 쳐서 종묘는 처음엔 7칸의 건물이었다고 해요. 7칸의 양쪽엔 제사에 쓰는 그릇이나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는 좁은 방이 있구요.
나라를 세운 태조 임금과 더불어 현재 왕의 4대 조상까지를 종묘에 모시다가 한 임금이 죽으면 5대가 지난 윗대 조상부터 순서대로 종묘에서 신주를 내보내 종묘 마당에 묻는 것인데요~
차마 신주를 묻어버릴 수가 없어서 종묘의 서쪽에 별묘를 세우고 그 건물의 이름을 '조상과 자손이 함께 편안하다'는 뜻을 지닌 '영녕전'으로 정했다고 하네요.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5대가 차면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기고 새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거죠~
그런데 나라를 세운 태조 임금 신주는 절대 옮길 수 없어 그대로 두었고 나라를 잘 다스려 공덕이 높은 왕도 세실(종묘에 대대로 모심)로 정해서 영녕전으로 옮기지 않고 종묘 정전에 영원히 모셨다고 해요.
그렇게 세실이 늘어나면서 종묘에 신주를 모실 수 있는 곳이 모자라게 되어 조선 13대 왕인 명종 임금에 이르러 종묘의 칸수를 늘리는 공사가 시작되었답니다.
그렇게 늘어난 종묘 정전은 영조 임금때 15칸, 헌종 임금 때 19칸으로 늘고 영녕전도 마지막에는 16칸까지 늘었답니다.
이렇게 종묘에 영원히 남는 세실과 영녕전으로 건너가는 신주가 있다보니 당연히 종묘는 조선왕의 성적표인 셈이 되겠죠.
조선 임금을 칭하는 '태조'나 '태종'같은 왕의 이름은 종묘에서 왕의 신주를 올릴 때 붙이기에 종묘의 '묘'자를 따서 '묘호'라고 해요.
묘호나 세실을 잣대로 해서 왕의 성적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면 임금이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막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었겠죠.
조선왕들은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평가받을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고 나라를 다스리면서 끊임없이 후대의 평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요. (본문 p69)
왕들이 어떤 사연으로 종묘에 오르거나 영녕전으로 건너갔는지 종묘 정전에서는 어떻게 세실로 정해졌는지, 그 성적표가 과연 공정하지를 살펴보는 내내 지금의 정치하시는 분들이 오버랩이 되었답니다.
그 분들 또한 역사가 어떤 평가를 하게 될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눈앞의 이익에 눈 멀지 않고 조금 더 역사적인 눈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평가하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구요.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이기도 하고 남겨질 역사를 생각케도 하는 이유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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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가면 쉽게 만날수 있는 종묘입니다. 하지만 광활한 그곳에서 무얼 얼마난 느끼고 역사를 보고 오는지 모르지요. 여기 책을 읽고 조선왕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가면 완전히 달라질듯하네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의 각 방에는 왕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조상의 혼령이 깃드는 물건이라 하여 신주를 귀하게 모셨어요. 하지만 모든 역대 왕들이 다 모셔져 있는것이 아니랍니다.
종묘에는 주요건물로 종묘정전, 영녕전, 공신당, 칠사당이 있는데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에요. 정전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모신 19칸건물이고, 영년전은 정전에서 옮겨온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곳으로 16칸이며, 공신당은 신하들을 모신 곳, 칠사당은 왕실과 나라와 백성들에게 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곱 신을 모셨어요.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는 왕이 지나온 발자취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요. 여기 종묘에서 살펴봤어요.
종묘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 조선역사에 아직 흥미가 없는 아이들이래도 이렇게 현대판 이야기랑 함께 묶어 풀어낸 재미난 이야기라면 쉽게 이해할수 있겠지요.
종묘를 돌아다보면 조선역사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데요^^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역대왕의 신주를 모신곳에서 정성으로 제사를 잘 지내는 과정을 통해 나타난 말이지요.
종묘는 세계에서 보기드물게 긴 건물이야.
조선 시대에 종묘와 사직은 임금이 사는 궁궐보다 먼저 짓어지는곳이였답니다. 유교의 나라 조선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 할수 있지요.
나라를 세운 태조 임금과 더불어 현재 왕의 4대 조상까지 종묘에 모시게 되는데 태조 4년에 세워진 종묘는 원래 7칸짜리 건물로시작해서 여러 번에 걸쳐 자꾸 칸수가 늘어났다고 해요.
영년전의 모습도 아주 기품이 있네요. 영년전에는 주로 공덕이 없다고 평가받은 왕과 대한 제국 마지막 황태자와 황태자비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고 해요.
이렇게 책을 읽고 내용을 알고 가면 훨씬더 가깝게 역사가 인식되겠지요^^
살아서 얼마난 공덕을 쌓았느냐에 따라 좁은방으로 옮겨지기도 합니다. 종묘는 바로 조선 왕의 성적표라고 할수 있지요.
백성들의 눈으로 어떻게 평가되어지느냐는 죽고나면 더 적나라해지네요. 현대에도 대통령의 사저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도 있으니 말이지요.
조선에서 왕위에 오르려면 형식적으로나마 중국 황제의 승인으 받아야 했답니다. 지금도 국제 사회에서는 힘센 나라와 약한나라가 있고 국제 사회는 힘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조선이 큰 나라를 섬기는 비룰한 나라가 아님을 알려주었어요.
1대 태조부터 시작해서 27대 순종까지 왕들의 업적도 알고 종묘에 자리잡은 왕들은 또 어떻게 왕이되어 공덕을 쌓았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종묘에 가면 왕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유독 역사에 관심이 많은 막내가 오늘 책과 함께 독후활동을 했어요. 마지막이 참 ㅋㅋ 어떤 업적을 쌓고 후대에 알려지기를 원하는지 한번 써보자 했는데 역사와 과학을 좋아하는지라 '명철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고 썼네요.
햇살 가득받으며 역사여행길 떠나보는것도 유익할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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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어렵다는 아이들, 역시 엄마처럼 역사과목이 부담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도무지 모를 내용들을 한꺼번에 숙지해야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학습과 연계하자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일쑤라는 것, 이건 정말 문제가아닐수 없다.
그래서 한국사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가끔씩은 역사극을 아이들과 함게 시청하곤 했더니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역사극을 더 좋아하고 찾아 보게 되었다는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 오백년은 물론 임금들의 일화나 역사의 인물을 묘사하는 많은 드라마를 보며 실제 역사에 관한 도서들을 찾아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놀라운 변화이다.
그래서 그런지 극중에 등장하는 용어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런데 어린이 눈높이로 역사의 어려운 부분일 수 있는 우리나라 종묘에 관한 내용을 소개해 주는 책이 등장해서 화제이다. 바로 [종묘에서 만난 조선 왕 이야기]가 그렇다.
이미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종묘 조선의 건국당시 태조 이성계 때는 7칸 이었던 것이 왕조가 진행되는 동안 추존되었던 왕과 왕비들을 모시다보니 점차로 늘어나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궁궐보다 더 먼저 지어졌다고 하니 종묘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에 대한 예날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두자.
종묘란?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이다. [두산백과 참조]
실제 종묘에 다녀오진 못했지만 얼핏 스쳐간 영상이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소개되는 장면을 보니 더욱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조선왕의 계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줄줄 암송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 글자만 따서 태정태세문단세..... 암송했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 잊을수 없는 폭군으로 선명하게 각인된 연산군이나 광해군에 대한 일생도 떠오르고 왜란이나 호란과 관련있는 임금들도 기억에 남아있다. 역사란 역사가의 시각이나 관점에 의해 성격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어린시절에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다라고 순진하게 믿었다가 성장하면서 차츰 다른 입장도 되어 보며 역사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하는 부분도 있다.
어떻게보면 전통이고 우리의 뿌리가 되는 종묘이야기, 그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떠올려보니 낯설게 생각되던 것이 점차 익숙하게 여겨진다. 역사란 현재의 '나'를 있게한 과정이며 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 어린이들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중에 역사현장을 탐방할 기회가 생긴다면 종묘의 참모습을 보는 방법도 어쩌면 이 책에서 소개받을 수 있을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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