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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일이 처음이였다. 나보다 3살이 많은 오빠로 해맑은 얼굴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보는 순간부터 그치지 않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왜 우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오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빠가 듣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그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는 알지 못했다. 연민이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신에 대한 원망이었을 수도 있고 나였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리 끝에 주일학교 선생님이 오빠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무어라 기도해야 좋을지를 알지 못했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커서도 이 특별한 다름과 마주했을 때 나는 울었다. 뭘 어찌해야 좋을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의 주인공 해티에게 어느날 갑자기 애덤이라는 삼촌이 생긴다. 해티가 12살 생일을 앞둔 지금까지 어른들은 애덤에 대해 해티에게 언급을 하지 않아왔다. 애덤이 12살에 들어간 학교에서 더 이상 지낼 수가 없게 된 지금에서야 해티에게 애덤에 대해 털어놓는다. 애덤은 22살의 청년으로 자폐가 있다.
이 이야기는 해티가 애덤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그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깊이 사랑함으로서 조금의 고통스러운 슬픔이 있지만 대부분은 즐거운 이야기로 이끌어진다.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은 애덤이 해티와 함께 건강하고 밝고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애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데 이야기 속의 가족들의 당혹스러움을 읽고 있는 독자도 함께 느끼게 한다. 애덤의 죽음 후에 해티는 가족들이 그들 방식대로 애덤을 사랑해왔음을 알게 된다.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는 감동적이고 마음을 울리면서 대부분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삭막함이 엄습할 때마다 다시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모두 해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편견으로 다름이 있는 사람에게도 내면이 존재하고 하나의 사람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괴물로 부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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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언젠가부터 '다르다'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들은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우선하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거나, 대중적으로 통용 되거나, 아니면 대중에게 인정받는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격식을 차리는 장소에 양복이나 예복을 입고 가는 것이나, 한국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색상이 대부분 흰색과 검은색 2종류에 국한된다는 사실 등이 그러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사회가 너무 딱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의 비난의 대상이 될 원인을 제공 할 지언정, 배척의 대상으로서 사람들의 '위기의식'을 자극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뭐 간단하다, 실제로 사람들이검은차를 타고 다니고, 양복을 입고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 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어서 혐오감을 유발하거나 정신적이고, 또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회의 인식과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또 대다수에게 '문제'로서 의식되어야 한다는 것은 돌려 말하자면, 그러한 공감대가 자신과 상대방에게 있어서 씻을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의 인식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의 주제가 되기도 한 내용 즉 '편견'이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해티는 미국의 전형적인 서민의 딸이자,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쌓고 또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하숙집 딸내미' 이다. 그녀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하숙집의 아주머니(그리고 할머니 라고도 정의한다) 의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받는것에 대해서 조금의 꺼리낌도 없는 순수함들 지닌 소녀로서, 이러한 순수성은 어느날 여름 처음 만난 (자폐아)삼촌 '애덤'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큰 요소가 되어준다.
주인공 '해티'에게 있어서, 애덤 삼촌의 존재는 남들보다 더 표현하고, 더 잘 웃고, 뭐든일에 행복해 하는 얼굴을 잊지 않는 솔직한 사람일 뿐이다. 물론 그녀는 애덤 삼촌이 자신에게 말하는 "너는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야." 같은 이야기에 대한 의미나 숨겨진 메시지를 이해하고 또 공감하는 능력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애덤 삼촌의 존재보다는 그를 '정신병자'라는 이유로 눈쌀을 찌뿌리고, 홀대하고, 심지어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주변 인물들의 존재가 더욱 더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해티는 애덤삼촌과 거리를 걷고, 산책을 하면서, 그가 활기찬 이야기를 떠벌리거나,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눈물짓기도 하는 감정의 표현을 모두 보아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다른사람과 다르다.' 라는 주변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에덤 삼촌이야 말로, 주변 사람들보다 더욱 더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절친' 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물론 시간이 지난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그녀의 믿음은 한치의 변화도 없다.) 물론 애덤에게 있어서도 귀여운 소녀 해티의 존재는 단순한 친척이라는 관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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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 2003년 뉴베리 상 아너 수상작
이 이야기를 읽기전 공교롭게도 우리는 영화 플립을 보았고 그 안에서 탯줄에 목이 감겨 정신지체를 안고 있는데 줄리라는 여주인공 소녀가 만나고 온뒤 삼촌의 존재를 더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바로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에서 그 이야기를 잊지말라고 당부하고 싶은듯..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리지 않고 평범한 소녀가 애덤삼촌이라는 존재를 만나 그가 오기 전과 후로 삶의 모습이 바뀐다고 설명하면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삼촌의 존재가 과연 해티에게도 문제가 있어 보일까? 그 문제의 기준은 '우리'들이기에 해티의 시선에서 보는 삼촌의 존재는 다를 수 있다.
애덤의 첫인상은 해티에세 매우 인상적이었다. 환사로 치부되는 자폐증 환자인 애덤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도 사실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힘든 존재라고 말했을 정도로 복잡한 시선과 감정으로 그를 매일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어딘가 자신과 닮은듯 하고 너무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애덤삼촌을 지켜보다 보니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도 사로잡히는 해티.. 삼촌이 반한 여 성에게 질투까지 하기도 하는데.. 반면 어떤 때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는 삼촌이 무섭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삼촌을 가족들은 부끄러워만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랑하고 있었으나 힘든 사랑을 하느라 그랬다고생각하게 되는 과정까지 그녀의 맑고 여과되지 않은 시선으로 우리는 함께 걷게된다. 애덤 처럼 우리와 다름을 지닌 사람에 대해..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인식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
"나는 네가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믿어." ![]()
한 평범한 소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말을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자폐증 환자 애덤 삼촌이었다. 이 책은 끝이 있지만 여운을 담은 ... 의 끝을 지닌 향기로운 책이며 우리가 보다 더 '다름'을 바라보는 눈에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줄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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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베리상을 수상한 개암나무의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를 만나보게 되었어요. 열두살 해티라는 소녀의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애덤 삼촌. 가족들은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애덤 삼촌의 존재를 밝히게 되고 애덤 삼촌의 등장으로 펼쳐지는 에피소트들이 해티의 시선을 통해 흥미롭게 그려졌어요. 하숙집을 하시는 부모님과 하숙집에 같이 사는 페니아저씨와 은행일을 하는 에인젤등 다양한 사람들의 조용한 일상을 느껴볼수 있어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것처럼 행동하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애덤 삼촌을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 그런 삼촌을 가족들 조차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보단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들을 통해 조금은 가슴아프게도 느껴지지만 해티는 그런 삼촌을 진심으로 보듬어주면서 한사람으로서의 인격체로 대하며 함께 하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차별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가슴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어느날 카니발에서 만난 친구 라일라와 애덤 삼촌으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자폐증 가족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수 있었어요. 해티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가족들이 삼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걸 깨닫게 되네요. 직접적으로 자폐증에 걸린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 막상 마주하면 어떤 생각을 먼저 갖게될지 과연 편견없이 대할수 있을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아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볼수 있었어요. 조금은 어렵게 생각할수 있는 소재를 일상에서 만나볼수 있는 이야기로 친근하게 다가갈수 있어서 잘 볼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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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읽어보았던 아동 또는 청소년 문학은 성장소설이랍시고 우울한 내용만 가득인 책이 많았는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저는 스포일러가 될 것임돠, 내용을 미리 알기를 원치 않는 분은 backspace!)
프롤로그에 영사기를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과 끝 부분에 주인공이지만 왠지 서술자 같은 해티가 영사기를 돌리면서 사진 속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에 참 짠, 하더라. (요 앞부분이 왠지 집중이 잘 되지 않긴했음. 요즘에 영사기라 함은 역시 잘 모르는 분들이 많겠지만, 필름 마운트를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프로젝터에서 보여주는 것인데. 예전에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잠깐 사용해봤던 기억이 있어서 추억을 돋우며 읽어보았다.)
해티는 친구가 많지 않은 조금은 수줍은 아이로 이 책은 어느 여름 방학(이라고 표현해도 되려나?) 처음 알게 된 막내외삼촌, 애덤을 만나게 되며 겪는 이야기다. 사실, 애덤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자기 조절이 안되는 사람으로 해티의 외할머니는 애덤을 병적으로 나무라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해티는 애덤의 좋은 부분을, 순수한 부분을 참 좋게 바라보며 친구같다고 생각한다.
제목,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라는 표현은 애덤이 해티에게 가끔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인데, 날짜를 부르면 요일을 맞출 수 있는 애덤은 특출난 천재적인 기질이 사실 숨겨져 있는 듯!
"해티" 삼촌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믿어." - p.75 중에서
작은 것에 크게 감동하고, 작은 사고에 크게 흥분하고, 또 작은 상처에 깊게 놀라 운명을 달리한 애덤. 해티는 그런 삼촌을 참 사랑하지 않았나 싶다. 애덤을 만나기 전과 후의 해티는 조금 변하는데, 자신을 무시하는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애덤의 장례식에서 애덤이 좋아했던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말한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저의 삼촌이 괴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중략) 제 생각에는 애덤 삼촌이 우리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 p.261 중에서
처음에는 어린 시선이란 게 부담스러웠는데, 어리지만 점차 자신만의 어른스러움을 찾아가는 해티는 그녀만의 눈으로 세상을 차별없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조금은 다정다감하지 않았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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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위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해마다 가르치는 학생들 중 꼭 한 명 정도는 자폐증을 앓거나 그와 유사 증상을 가진 있는 학생이 있지요.
약물 복용으로 증상이 완화된 아이도 있지만, 부모님이 아이의 자폐증적 성향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시기를 놓쳐 증상이
악화되어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잦아 반의 다른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새 학년만 되면 자폐증을 가진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지레짐작으로 학교에 항의를 하며 반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하는 부모님들도 있지요. 그럼 모두에게 그렇게 거부당하는 아이는 교육 받을 기회도 없어지겠지요.
학습 분위기가 흐려진다거나 친구들을 괴롭힌다면 내 아이에게 조금은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견뎌내는
것들도 아이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요즘처럼 참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참는 법을 배우게 하고, 부족함이
있는 친구를 도우는 것 또한 인성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이 책은 열두살 소녀 해티의 눈으로 본 남들과 다른 자폐증환자인 '삼촌 애덤'의 이야기입니다.
해티는 처음에는 보통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르게 행동하여 '괴물' 소리를 듣는 삼촌을 보고 당황하지만, 삼촌과 함께
지내면서 삼촌이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여 삼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지요.
그래서 해티는 동네의 아이들이 삼촌을 '괴물'이라고 놀릴 때에는 보호자 역할을 하고, 삼촌을 부끄러워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씩 반발심을 갖기도 하며, 삼촌과는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가 되지요.
하지만 삼촌은 해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낯선 사람이 되기도하여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삼촌은 해티 곁을
떠나게 되지요...
삼촌과 헤어지게 된 해티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이 책의 제목은 삼촌이 주인공에게 한 말, "나는 네가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믿어."라는
말에서 나온 말 같아요. 해티는 이 말의 뜻을 나중에야 깨닫고 삼촌을 괴물이라고 불렀던 사람들 앞에서 삼촌은 우리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맘이 찡해져왔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차별하지않고, 그들의 다름에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여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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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초등학교때부터 같은 학년에 자폐아가 있었습니다. 처음 1학년때 그 아이를 만났던 우리 엄마들은 적잖이 당황을 했더랬죠. 여기저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기억이 있네요. 그 아이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 우리 딸아이반입니다. 동네이다 보니 중학교도 같이 간거죠. 물론 여러 자잘한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이제 그 아이가 이상한 아이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선입견, 편견이라는 것이 겪어 보지도 않고 말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겪어보면 별 거 아닌데도 말이죠. 아이들에 눈엔 자폐증 친구가 어떻게 보여질까 궁금했습니다. 딸아이도 책을 읽었는데요. 자기는 오래동안 봐왔고 그 친구는 정말 착한 아이여서 별다르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라구요. 조금 다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구요.
열 두살짜리 소녀의 눈의로 본 '남들과는 다른'삼촌의 이야기! 애덤 삼촌은 자폐증을 앓고 있어요. 그래서 '괴물'소리를 듣는 답니다. 이웃이 아닌 내가족이 자폐증환자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책 속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이라는 것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가 참 쉬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소녀 해티는 삼촌의 다름을 이해하고 삼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데요. 해티의 감성이 제 가슴 속 깊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아 내내 여운과 감동이 전해집니다. 하숙집을 하는 해티의 집에 자폐를 앓고 있는 애덤 삼촌이 나타나고 처음엔 조금 이상하게 생각됐지만 삼촌과 같이 지내다 보니 즐겁고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삼촌이 순수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니 삼촌의 행동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봅니다. 안타까운 삼촌의 결말이지만 삼촌이 해티에게 했던 말 "나는 네가 우주의 모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믿어"라고 했는데요. 아마 제목이 그래서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인가 봅니다. 제목이 붙여진 것이 궁금했었거든요.
마음이 아픈 책이지만 감동과 여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어른이 더욱 힘든 것임을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데요. 아프지만 마음이 클 수 있는 책이기에 아이들이 보면 좋을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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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옛 속담이 있다. 다르다는 것은 단지 개성이라 특별하다고 평가받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다르지만 또 모두가 같기를 원하는 규율과 잣대가 있다. 거기서 벗어나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인적인 부분들은 환영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질타와 비난 속에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지닌 이들을 보는 시선에도 낯섦에 대한 거리감과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맑고 고운 열두 살 소녀 해티. 해티가 그리고 꿈꾸는 세상은 따스하다. 해티의 눈길이, 발길이 닿는 곳은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할지라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운과 감동을 남겨준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공동체인 하숙집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해티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계산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애덤 삼촌의 환한 웃음은 해티에게만 전염시킨게 아닌 모양이다. 자기 자신을 조절하기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도 가끔 하며 특수 학교에 다니는 스물두 살의 애덤 삼촌은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나도 해티처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충격스러운 사건을 겪고 난 후 삼촌의 보물상자를 들여다보고 삼촌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깨닫게 된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의 의미가 와 닿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바꾸고, 주변을 여기저기 살펴보며, 이것저것 모퉁이를 들어 올려 보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 아래에 있는 것을 찔러보라. 때로는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탐험은 하고 있는 셈이니 인생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눈물 나는 이야기인데도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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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은 자폐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독특한 성향의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연예인이 토크쇼에 나와 자페아 가족이 있음을 밝히고 힘들었던 지난 날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평범한 사회에서 '형벌'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란 제목은 평범하지 않은 한 자페인이 정상인에게 던지는 보석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잘나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개미처럼 미친 듯이 일하며 나 자신을 중요한 사람이라 주문처럼 외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조금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안도하며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돌아가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나만의 모퉁이를 찾으라고 말해줍니다.
자페아가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라고나 할까요?
그들은 우리보다 내면적으로 훨씬 큰 우주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에 돌을 던지기 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에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풍성해 질 것 같습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주의 내 작은 모퉁이>는 한 편의 아름답고 슬픈 고전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삼촌을 알기 전과 후로 내면적으로 많은 부분이 변화한 열 두 살 소녀의 성장 소설이며.
가슴 속 깊이 사랑했지만 주위의 시선으로 고통받았던 가족간의 사랑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며.
끝으로 자페아든 정상인이든 그들만의 우주를 인정하고 삶을 즐길 줄 알며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알게 해준 훌룡한 소설입니다.
공부에 경쟁에 지친 우리 아이들에게 가슴뭉클한 아름다운 소설을 선사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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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턴 마을에는 해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데 매우 부자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해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사람 다 성공회 교인이다. 해티의 아버지는 수입이 신통치 않는 화가로써 생활의 방편으로 하숙집을 운영하고 살았다. 해티의 평범한 생활에 어느 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애덤 삼촌이 등장하며 이 책의 내용이 전개된다. 자폐증 환자가 다 그렇지만, 애덤 삼촌의 경우에도 좌충우돌 말썽과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해티의 가정은 갑자기 불안이 엄습한다. 해티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애덤 삼촌의 변덕스런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기를 원하며, 항상 사고뭉치 취급을 하였고, 그럴수록 해티는 애덤 삼촌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애덤 삼촌을 괴물 취급을 하고, 늑대인간이라고 까지 경멸했지만, 그 때마다 해티는 애덤 삼촌을 대신하여 역성을 들고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애덤 삼촌이 해티라는 여자 조카를‘우주의 작은 모퉁이’라고 불렀다. 자폐를 앓고 있는 삼촌이 정말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조카에게 붙인 이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카는 이 이름의 의미와 같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나이와 성별은 힘이 있는 삼촌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면에 있어서는 조카가 더 지혜롭게 어른의 역할을 수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애덤 삼촌을 좋아했다고 고백한다. ‘난 삼촌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덤 삼촌처럼 표현하지 않거든. 행복하다고 느끼면 삼촌은 꼭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지. 가끔은 소리도 질러. 행복해!라고(138p)’ 삼촌의 이와같은 꾸밈이 없는 순수함과 솔직함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는 별스럽게 보이겠지만, 해티에게는 호감의 이유가 된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천대받고 차별을 받는 삼촌이 해티는 좋은 것이다. 항상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삼촌을 생각하고, 프레드 카멀 카니발에도 함께 구경을 다닌 해티였다. 그러나, 결국 애덤 삼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해티의 곁을 떠나고 만다. 다른 사람들과 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폐증 환자인 삼촌과 해티라는 조카의 때 묻지 않은 짧은 우정이 돋보인다. 나이 어린 조카가 성격에 장애가 있는 삼촌의 보호자의 역할을 용감하게 수행한 부분이 동화처럼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