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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무척이나 낯설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내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처음 보는 것 같아 움찔하기도 한다. 거울 속에 있는 나는, 정말로 내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간혹 집사람이 나에게 말한다. 집에서 보는 나와, 밖에서 친구들과 같이 만나는 내가 다른 사람 같다고.. 그렇다면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똑같게 알고 있을까?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저렇게 알고 있지는 않을까? 흔히 우리는 각기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진다. 사람들이 개성 혹은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되도록 만들어 준다. 이런 정체성의 사전적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라고 되어 있다. 물론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만들어 주는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과학산업관에서 기획한 컨퍼런스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에 발표된 11개의 논문들을 묶은 이 책은, 생물학적 부분에서부터 철학적, 인류학적, 심리학적 부분까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체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먼저, 정체성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고찰해보면, 생물학적으로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는 0~6세 사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아이들이 2살까지는 타인의 흉내를 내며 유사성을 발견하는 모방단계에 머무르다, 거울 속의 자신을 알아보는 자의식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후 6살까지는 자신의 생각, 믿음, 욕구 등과 타인의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처럼 타자와의 공명(흉내) 메커니즘과 거리두기(억제) 메커니즘 국면이 아이의 정체성을 구축하게 만든다고 한다. 또한 우리의 신체는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분명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문이나 얼굴인식, 홍채의 줄무늬, DNA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신체의 준거들이 누군가를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더욱이 그것들을 확인하는 데 있어 우리들은 사람이 아닌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성정체성 이라는 단어이다. 우리들이 가지는 성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지지만, 이러한 성정체성의 구성요소는 신경내분비적인 것이나 생물유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소도 포함된다고 한다. 따라서 한 주체의 성정체성은 생식기관으로 요약되지 않으며, 그보다 우세한 것은 느껴지고, 겪고, 수행되는 것 이라고 한다. 정체성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살펴볼 때, 학자들은 정체성을 역사의 움직임 속에 새겨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초기 공동체에서는 태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씨족, 부족 하는 형식으로 정체성이 자동으로 부여되기 때문에 별 영향력이 없어서 무시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들어서는 개인의 일상 모두가 몇 개의 신분증에 집적할 수 있다고 여겼고, 따라서 정체성이란 간단하고 관리 가능한 정보인양 파악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종종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어떤 소속 안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는 공동체주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회사나 내가 다녔던 학교 등 내가 가지고 있는 소속의 정체성이 과연 나의 정체성과 일치하는지는 생각해 볼일이다. 오히려 이런 정체성이야말로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기는커녕 그들 속의 하나로 인식하게 만들어 우리 스스로를 물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속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내 자신만의 자아를 찾는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자아라는 것이 뇌와 기억과 육체시스템의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환경에 따라 획득 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렇게 볼 때, 이 책 역시 그리 만만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이 들려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행은 나 자신의 자아 혹은 정체성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