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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오늘은 20대 총선이기도 하지만 97년 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의미있는 날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하면서 임시정부 외에도 일제에 맞서 가열차게 투쟁했던 비밀결사의 존재 또한 상기하게 된다.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의 접점에서 투쟁했던 대한광복회, 암살테러 전술을 본격화했던 의열단, 공산주의 국가를 꿈꿨던 조선공산당, 학생들의 비밀결사 성진회와 독서회 중앙부, 무장투쟁과 인민전선 결성으로 맞섰던 조국광복회, 광범위한 세력을 모아 독립을 추진하고 건국을 준비하려던 조선건국동맹,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의 레지스탕스'에서는 좌우를 망라한 여덟 개의 비밀결사조직을 다루고 있는데, 비밀결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학생의 독서회조차도 비밀리에 회합을 가질만큼 일제의 감시와 통제는 날로 조선의 일상을 조여왔지만 항일투쟁은 봉쇄됐고 합법적인 활동으로는 투쟁이 소극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
의열단이 친일파,일본군 사령관을 암살하는 영화 '암살'에서 보듯이 비밀결사대원의 목숨을 건 투쟁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독립투쟁의 일각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들 조직의 수명은 길지 못했다. 무엇보다 일제의 공세가 치밀했고, 중국,소련의 비협조, 거기에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쟁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고무적인 것은 여운형 주도로 조선건국동맹이 결성됐다는 것이다. 이 동맹은 독립을 준비하고 무장투쟁을 위한 좌우세력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량을 총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무장을 통해 국내에 입성하려던 이 계획은 분명 시의적절했지만 이 시도가 무산된 것은 뼈아픈 일이었다. 일본의 항복과 함께 진격의 기회도 사라져 버렸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후 발언권을 잃은 조선의 운명은 전적으로 미소 양국의 손에 결정되고 말았다.
일제의 지배가 강고해진만큼 폭력을 수단으로 한 투쟁은 기대만큼 일제에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비밀결사대원들은 끝까지 조국에 진격하기를 소망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극도의 위험을 감수하고,독립을 위한 소임을 다 하고자 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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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담긴 이들은 치열하고 명랑한 “독립운동가/레지스탕스”이자, 건설적이고 뚝심 있는 “혁명가/크리에이터이”이기도 했다. 그들은 굳이 이승만, 친일파 등과 견줘보지 않아도, 탁월하고 충만하다 할 만한 역사적 자산이었다. 그들은 엄혹한 시대를 살다 간 불운한 조연이 아니라, 야만적인 시대를 창조적인 기획과 모색으로 가득 채웠던 20세기의 또 하나의 주연이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무엇보다 그 당시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사료를 선별하고 엮었으며, 쉽고 흡입력 있는 서사로 그것을 풀어냈다. 그들을 값싼 영웅으로 미화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목표와 전략 및 전술, 성과에 대한 아쉬움과 한계도 균형적으로 다루었다. 저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나라의 해방과 건국의 공로와 정통성의 처소가 바로 그들의 투쟁과 비전에 위치한다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다.
1.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고! 깊이도 있고! 일제강점기를 주요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책이라 어둡고, 난해할 줄 알았다. 기우였다. 생생한 우리글 사료와 꼼꼼한 해설 등이 이해와 감정이입을 도와줬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과 서사 등은 흥미진진한 독서를 가능케 했다. 좀처럼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들었다. 뭐, 그건 그렇고, 먼저 죽기 위해 제비까지 뽑았다니...... “테러리스트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삶. 죽음을 각오한 이상 삶과 죽음은 단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삶은 명랑하게 살아야 했다. 임무를 위해 거침없이 삶을 버려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순간의 죽음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바쳐야 했다.(127P)” 그렇다고 서술이 가볍거나 얕지는 않았다. 주요한 사료 사이사이를 메우는 학문적인 연구내용과 평가 등은 책의 무게와 깊이를 더했다. 비록, 7개의 비밀결사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다루었지만, 한반도와 중국 전역, 연해주, 미주 등을 아우르는 공시적 조망과 구한말부터 해방기까지 꿰뚫는 통시적 일괄은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아쉬움이 없었다.
2. 승리의 기록이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괜찮아!!! 어떤 장면을 보면, 그들은 우유부단하고 어설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수한 구한말의 지사와 무관, 지주와 농민, 교사와 학생, 상인과 노동자, 종교지도자와 학자, 기자와 군인들이, 세계·국내 각지의 또 다른 레지스탕스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대하여 만들어낸 성과는, 그야말로 장쾌하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 방략의 정수였다. 미국, 만주, 러시아의 공립협회와 교감하며 국내의 신민회를 조직한 안창호는 물론이고.... “박상진의 위대한 포부 중 만주 벌판을 조선식 수전을 장려하고, 중국과 노령에 거주하는 동포 및 국내 동지로 내외 상응시키고, 구미제국에 외교한다는 계획은 대단했다. (......) 박상진의 말에 내심으로 참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어 맹세하고 몸을 허락했다.(62P. 우재룡의 회고, 1946에서 재인용) “이렇듯 독립운동 세력들(중국 충칭의 임시정부, 화베이의 조선독립동맹, 만주의 빨치산을 대표했던 연해주의 김일성 부대, 국내의 조선건국동맹 등)은 서로를 갈구했다. 자신이 모자란 힘을 다른 세력으로 보충하고 하나로 묶어 조국 해방을 위한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들의 전술은 국외 무장 세력의 국내 진입과 이에 맞춘 국내세력의 무장봉기였다.(288P)”
3. ‘독립운동가/레지스탕스’ + ‘혁명가/크리에이터’ = 그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며, 사상과 지연 및 학연에 따라 내부가 분열되어 있고, 재벌과 이기적인 기회주의자가 득세하고 있는 점 등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일제강점기 그들의 수많은 기획과 모색을 차분히 곱씹어보는 이 책이 유독 의미 있어 보였다. 그들은 대한제국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민중을 중심에 놓고 공공의 복리를 우선하는 공화국을 바랐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실천했다. 그들을 해방과 건국에 기여한 독립운동가라고 간편하게 뭉뚱그려선 안 되는 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반공을 국시로 하며 독재를 합리화하는 알량한 건국신화에 결코 용해되지 않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혁명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입헌공화 정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도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나온다.”라고 일갈했다. 뿐만 아니라...... - 해방 직전 국내에서 해방과 건국을 준비하던 조선건국동맹의 여운형 : “우리 민족으로서도 대다수 인민을 봉건적 토지제도와 대재벌의 독점적 착취에서 해방하고, 유산계급만의 정치적 특권이 행사될 수 없고, 구성원의 절대다수인 광범한 인민의 모든 자유와 기회균등이 보장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국가로 재건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 광범한 인민적 민주주의 건국을 위한 현 단계적 정강을 가지고 나가자는 데에 동지들은 완전히 합의하여 그 노선을 실천하여왔다.(271P. <민주정당 활동의 노선>, 조선인민보, 1946.5.11.에서 재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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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달성하려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든 조선인들은 오로지 두 가지를 열망하고 있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하는 것이었다. 자유. - 김산 (8) 그렇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유였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독립운동가라고 불렀고, 그들의 활동을 민족해방운동이라 부르며 국사 시간에, 교과서로, 수업으로 배우고 익혔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독립운동을 배워왔건만, 그들의 애국과 그들의 희생과 그들의 열망을 가리려는 자들이 있다. 자신들의 매국과 자신들의 안위와 자신들의 비열함을 숨기기 위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레지스탕스'라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독립운동가들의 가열찬 인생을 더욱 부각시키고, 비루한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제목이 되었다. 안타까운 현실을.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를 가르치면서 내가 수업 이면으로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그들의 고민과 노력과 희생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그들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번민하는 평범한 인생이었다는 것. 그 무수한 번민과 고민의 인생이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이라는 것.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치열하고 명랑하게 저항했던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고민하고 방황하며 실수하고 넘어졌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있다. 예컨대, 4장 의열단의 이야기에는,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며 제비까지 뽑았던 사람, 한번 만나면 모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카리스마의 사나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친일 경찰,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독립운동가가 된 밀정, 작전 중임을 알면서도 공적을 가로채려 작전을 무산시킨 지방 경찰, 밀정의 존재를 부인해야 하는 중앙 경찰,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는 데 힘썼던 일본 변호사 등등 다양한 인생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도 다양한 인간들이 저마다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저마다 다른 이상을 꿈꾸며 저마다 다른 고민을 했던 셈이다. 7장 조국광복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민생단 사건이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에서 아프게 그려졌던 것처럼, 각 장의 모든 이야기가 모두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독립의 큰 그림을 그렸던 신민회, 순진한 정도로 열망에 넘쳤던 대한 광복회, 일제의 교육 아래 자란 새로운 운동의 씨앗 성진회.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넘기는 손가락이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것은, 그들 인생의 아픈 결들이 손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적인 역사 글쓰기를 꿈꾸는 남편의 첫 결과물이다. 방을 거대한 벌집처럼 만들어버린 자료들 사이에, 구부정하게 앉아 작은 고민과 결정까지도 놓치려 하지 않았던 남편의 둥그런 등과 같은 책. 소년처럼 눈을 빛내며 들려주던 이야기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아파하던 탄식이 페이지마다 묻어있다. 우리 함께 역사를 공부하길 정말 잘했다며 서로를 행복해하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글은 리뷰이되 리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이런 옛글들을 찾아내며 매우 감동하곤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또한 감동하곤 했다. 오늘 동지를 만주로 전송하노니 의를 행할 칼 가는 곳 가을 물에 밝게 그 마음을 비치도다. 뭇 정성 합친 곳에 능히 대업을 이루리 서로 이겨 만날 때 반드시 큰 외침 있으리라. - 김한종의 전별시.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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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만큼 투쟁의 대상이 명확한 시대가 있었을까? 식민지라는 현실이 외부에서 침입해 온 적대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면, 독재라는 내부의 적을 상대해야 했던 한국의 근대사에 비해 무엇을 해야할까라는판단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면역학적 사회, 어떤 형태로든 상대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회로 보자면 일제 강점기만큼 그 정의가 확실하게 다가오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친일을 일삼은 조선인이라는 내부의 적, 조선인을 돕고 이해하려는 일본인이라는 적안의 양심 등등의 복잡하고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이런 세부적인 면면은 접어두고 서술한다. 면역적으로 반응을 일으켜야 할 대상이 매우 분명한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은 왠지 생소하거나 새로운 느낌을 준다. 레지스탕스라는 단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나찌에 대항하던 유럽인들의 이야기에서 레지스탕스라는 단어는 익숙하게 다가오건만, 왜 우리의 식민투쟁사에서는 이리 익숙치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는가.. 친일 기회주의자들이 지금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이 단어가 어색하다는 것은 적어도 나는 일제강점기의 투쟁사를 잘 모르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일이 아닐까?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 산'의 일대기는 투쟁의 처절함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 그 책에는 수없이 맨모습으로 묘사된다. 추적을 피해 혹한의 겨울 갈대늪에서 며칠을 버텨야 하고, 굶기를 밥먹듯 하며, 결핵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했던 처절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젊은 나이에 결국 병으로 숨져가며 말하는 마지막 소원은 연애한 번 못해 본 한 때문에 여인네와의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동지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동지가 자신의 아내를 데려다가 입맞춤을 시켜주던,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도 사치인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기록에 비하면, 한국의 레지스탕스 책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내용도 구성도 무언가를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하려는 듯한 의지가 보인다. 일제의 현금수송마차를 감쪽같이 털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정체절명의 포위망 안에서도 죽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는 의지는 죽는 순간까지 권총 방아쇠를 당기고 있더라는 열사의 모습, 임시정부의 실체,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준 이승만의 기회주의적인 모습과 그의 실체까지, 친근하고 쉬우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책장을 쉽게 넘기게끔 한다.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왜 우리는 이제껏 이런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없었던가, 이런 내용들은 우리는 왜 직접 찾아내어 배워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아쉬움은 말미에 더 깊어진다. 우리에게 해방은 어떤 모습인가. 이 책에서는 미완의 해방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해방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저항을 이야기함에 있어 굳이 깊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 말아버린 듯한 말미의 내용은 무척 아쉬움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내가 공부한 해방의 모습은 해방이 아닌, 식민상태에서 지배세력의 교체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과정이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미군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을 때, 그들은 중무장 상태의 행군이었고 그들을 맞이하러 태극기를 들고 나간 조선인들 중, 감격에 겨워 행군대열 앞으로 뛰쳐나가던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이 내가 공부했던 해방의 모습이다. 해방이후 조선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거쳐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해 온 것은 자유당으로부터 시작된 독재와 친일잔재의 연연이었지만, 이를 거슬러 해방의 과정과 형식을 살펴보면 과연 우리는 정말 해방이 되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저자에게 우리의 해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가를 묻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해방의 이해는 편향된 공부때문에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알아야 할 해방의 모습의 일부인지, 그리고 내가 모르는 그리고 이해해야 하는 이면이 존재하는 것인지, 이 책을 쓴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책의 내용을 보아서는 무척 재밌고 쉽게 말해 줄 것 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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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에서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안창호 선생님께서 안락한 미국생활
을 포기한 채, 일제의 탄압이 기다리는 조국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그랬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떠나는 이회영 일가의 모습도 다시 한 번 코끝을
찡하게 했다. 지금의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번영을 누리며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모두 훌륭한 선조들 덕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 이념이 개입되면서 읽기에 거북한 부분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김일성에 대해서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마치 일제시대 후반부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이끈 것 처럼 미화된 부분은, 기존의 역사지식과 많은
차이가 있어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차이가 나는 부분들은 좀 더 상세한 설명들이 곁들여지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또한, 일관되지 않은 용어 사용은, 평소 역사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도
혼돈스럽게 만들고 저자의 지식을 뽐내는 것처럼 보여서, 어색하게
받아들여졌다. '만주'를 그냥 '만주'라고 하면 될 것을 '만저우'라고 여러
곳에서 표기함으로써,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떤 때는 '만주'고, 다른 곳에서는
'만저우'라고 하는 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간도'를 '젠다오'라고 한 것이나,
'연해주'를 '옌하이저우'라고 하는 등 작가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독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져서 거북했다.
역사는, 특히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작가의 이념이 지나치게 개입되면
역사적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변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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