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반'. 바람의 딸, 바람의 딸, 바람의 딸.... 바람의 딸을 한동안 입속에서 중얼거리던 나는 이내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천여개의 산이름을 외우며 기억력의 고삐를 틀어쥐려는 한 노시인의 회한에 찬 고백을 떠올린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고백. '애비는 종이었고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그 시인의 고백과 걸어서 지구를 세바퀴 반 돌았다는 오지여행가의 모습은 서로 얼마나 닮아있는 것일까. 60여년 전의 바람이 운명을 가로지르는 맵찬 칼바람이었다면 이제 그녀가 숨쉬는 바람은 그보다는 조금 견디기 쉬운, 훈풍이기라도 한 것일까. 불가항력적인 떠돌이의 삶이 코스모폴리탄이라는 멋진 레토릭으로 변한 저간의 60여년 세월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가려져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여행이란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 하나가 밀려가는 여행, 울면서 가는 길,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길 위에서 내내 싸름해야 하고 한(恨)을 곰삭여야 하는 길이라면 다른 하나는 견고한 일상을 전제로 한 떠남, 탈출로서의 여행, 유성이 밤하늘을 단 한번 가로지르기 위해서 자신의 전 생애를 쏟아붓듯이 안정과 익숙한 것들, 때로는 확실한 인생을 포기하고 다시 간소한 배낭짐을 꾸리게 하는 여행길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가지는 여행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마치 서로간의 의사 소통에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주고받는 것이 아닐까. '여행'이라는 말은 국민소득 만 달러 시대를 산다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서 통용된다. 대학생들의 배낭여행, 국토 순례, 젊었을 때 하지 못하면 영원히 못할 어떤 경험 같은 것. 그러므로 우리에게 '여행'은 젊음의 상징이고 선진국의 반열에 어슷비슷 끼여드는 대한민국 국력의 상징이며 때로는 애국심의 상징이기도 한 것. 장려할 만한 어떤 것, 막연한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 그러므로 '이번 방학에 어디어디 여행 다녀왔어.'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시도에 뛰어드는 과감함, 경제적인 풍요, 마음의 여유, 혹은 유행 따라잡기. 그렇다면 30대 중반의 인텔리 아줌마가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지로 여행을 떠날 때 그 여행은 어떤 문맥에 놓일까. 집도 절도 없이 배낭 하나 메고 세계 곳곳으로 돌아다니는 그녀의 삶이 정박할 곳은 어디일까. 사설이 길면 여행이 시들해지는 법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다보면 신발끈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사이 기차는 이미 떠나버리고 여행에의 기대는 거품 빠진 맥주처럼 싱거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만 더. 여행은 이를테면 끊임없이 밑줄 긋는 행위가 아닐까. 경험을 경험으로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조직화하는 일련의 신념체계가 있는 법. 여행이 아니라 관광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그어준 밑줄을 찾아다니느라 바쁜 사람들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미리 익혀둔 그네들은, 시간이 촉박한 그네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장관(壯觀)이라는 장관은 있는 대로 찾아다니며 눈요기하기 위해 밑줄 그어진 문장, 방점 찍힌 단어 위로 건너뛴다. 차근차근 문맥의 결을 따르기에는 그들은 너무 적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관광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네들이 관광지에서 기대하는 것이란 정해진 포즈로 사진 찍는 일, 기념품 사는 일, 보신하는 일, 그리고 무사히 일상으로 귀환하기 위해 안전한 경로를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문장에 밑줄을 긋고 새로운 단어에 방점을 찍는 일이다. 문장을 내 것으로, 단어를 나만의 것으로 전유(專有)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만이 가능하다. 문맥의 숨결을 느끼고 단어의 근원을 찾아가야 해낼 수 있는 작업을 할만한 여유가 없는 이들은 그저 관광, 싸이트 씽(sight-seeing)에 머무를 일이다. 하지만 여행은 계속해서 관광의 위협을 받는다. 관광은 끊임없이 여행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고 점령하여 속절없이 여행객은 변두리를 떠돌 수 밖에. 그러므로 새롭게 문맥을 가로지르고 의미를 양각해 낼 방법을 찾지 못하면 여행객은 수많은 인파의 관광객 속에서 자신의 길을 잃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녀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풍경을 풍경이게 하고 마을에, 도시에 숨을 불어넣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리라.(그렇다면 풍경을 풍경이게 하지 못하는 우리네의 삶, 마을과 도시에 사람의 훈기를 불어넣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란 정말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체 3권으로 구성된 책 중 첫째 권이라는 이 책은 그 일단락을 중국을 거쳐 고국으로 귀환하면서 짓는다. 내게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즐거움은 천생 여행객, 방랑자에게도 비빌 언덕이 되는 마음의 위안거리인가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본 것'은 여행지의 아름답고 진기한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이었지만 내가 '읽은 것'은 여행가 한비야가 자기가 몸소 체험한 문화들을 새롭게 밑줄 긋고 편집해가는 과정이었다. 인류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녀의 시각 역시 서구중심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가 『슬픈열대』를 쓰면서 '익힌 것은 날것으로 돌이킬 수 없다'고 한숨지었던 그 탄식이 이 책에는 없다. 서구적인 진보주의의 가치, 서구대 비서구의 이분법, 혹은 잘못 구 획된 오리엔탈리즘의 정서가 책의 곳곳에 묻어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제가 읽은 문화에 제가 밑줄 긋는다는데. 제가 땀흘리고 제가 위험을 감수하며 겪은 여행을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놓겠다는데. 학문적인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에 동참할 수 있게 할만한 에세이 식의 여행기를 쓰겠다는데.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귀환하기 마련이지만 일상과 비일상의 반복이 또 하나의 여행의 궤적을 그려내는 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라면 이제 슬슬 배낭을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지. 너무 많이 넣어 제대로 짊어지지도 못할 만큼 욕심을 부리지도, 너무 적게 넣어 곳곳마다 낭패볼 만큼 어리석지도 않은 내가 될 때쯤이면 나도 내 인생의 어느 미로에서 용케 출구를 찾고 새로운 곳에 도전할 수 있을 만한 여행객이 되어 있을까. |
| 작년에 힘든 고3이란 터널을 통과하던 중에 만나게 된 책이다. 힘든 수능 공부중에 잠심 잠시 읽었는데, 너무 푹 빠진 나머지 공부에 지장을 줄까봐 힘들게 읽었던 책이다. 한마디로 너무나도 재밌는 책이다!! 한비야 하면 이젠 모르는 사람이 드물것이다. 여자 혼자서 세계를 그것도 오지만을 여행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희망을 가졌다. 내가 수능을 잘 쳐 꼭 대학에 합격해서 방학때는 꼭 세계를 나가자!! 라는 희망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수능을 치고 대학에 입학하여 나는 이번 여름 방학때 내 꿈을 실현했다. 혼자힘으로 벌어서 중국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이런 책을 써준 한비야씨가 고맙고 이제 더 큰 세상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
|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놓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가져야 하는지는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한비야는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힘을 제대로 축적하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가 라는 것에 중요성을 가지고 자기 목표를 뚜렷하게 세웠다는 것에 정말 존경을 보낸다 남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가면서 무엇을 하는지 비교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실천한 인물이다 지금처럼 경쟁사회에서 나는 누구와 비교하고 나 자신을 얼마나 돌아 보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정말 고단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여행을 떠나보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 자신에게 새로운 충전요소를 주어야 겠다 |
| 텔레비전 광고에서 한창 인기를 구가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이다. 이미 한비야 씨는 유명인이고, 책이 나온지도 5년이상이나 지났지만, 내가 읽은 것이 최근의 일이었고, 여행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몇자 옮겨적어보고 싶다.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하는 것은 내 할일은 아닐터이고, 책을 읽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감상을 이야기해야겠다. 삶의 여유가 없고 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대표적인 유형의 사람들이 학생일 것이다. 나 역시 학생이기 때문에 현재의 내 자리에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동경이 많다. 때로는 몽상의 세계로 빠지기도 하고, 가까운 미래에 실현할 수 있는 소박한 꿈으로 바꿔보기도 하면서 그러한 욕구들을 해소하기도 하고 삶에 힘을 내게하는 기폭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욕구와 소망의 한가지가 바로 여행이다. 그 여행은 돈많이 들고 떠나 흥청망청 떠나는 호화판 여행이거나, 잘 갖추어진 유럽이라고 하는 기라성으로의 관광에 대한 동경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만나려는 욕구이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는 욕구로서의 여행이다. 이 여행은 나에 대해 주변인들에 대해 깊은 생각없이 지나치는 일상에 대한 반성이며, 새로운 인식에 대한 갈망이고 가슴속에 새로운 산소를 불어넣어, 결국에 평생 하게 될 그 어떤 "반복"을 더욱 성실하고 참신하게 하고 싶은 욕구라고나 할까? 한비야씨의 바람의딸 시리즈는 이러한 내 마음 속 생각을 그녀의 언어로 정리해주었으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을뿐 아니라 꽤 괜찮은 생각이라며 힘을 실어넣어 준 책이었다. 읽는 내내 줄도 많이 쳐댔고,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특히, 문화인류학적 고찰들이 묻어나는 감상들은 나의 동의를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어느지역 어느 계층의 사람들에게나 눈물과 웃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부분이다. 그가 부유한 사람이기에 더 고귀한 눈물과 웃음을 갖거나 그가 비천한 사람이기에 더 싸구려 눈물과 웃음을 갖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분명 한비야씨의 말대로 "여행 1년은 일상의 생활 10년의 가치가 있다." 에너지 넘치는 영리한 누나의 눈에 비친 세상이어서 잘 풀어낸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만 여행이 그녈 성숙시켜 우리에게 호응할만한 좋은 성찰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너무도 부러운 부분은 그녀의 여행의 끝이다. 여행 중에 보았던 난민촌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가슴에 담았던 그녀는 지금 월드비전이라는 구호관련 NGO에 소속되어 그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주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유익이 여행에 있다면 난 너무나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앞에도 밝혔듯이 이상주의자인 나는 내 능력의 한계와 내 재능에 대해 정확히 모른채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동남 아시아 오지에 나가서 의료 선교사가 되고 싶고, 또 이웃 일본에 기독교적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좋은 목사가 되고 싶고 좋은 선생이 되어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한비야씨처럼 여행속에서의 만남(나와의 만남이며 남과의 만남)이 나를 성찰로 이끌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 것이다. 여행의 유익을 묻는 당신인가? 여행은 그대에게 성숙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일상에서 그대의 집착이 얼마나 불필요하며 비본질적이었던 것인지를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그리고 소개하였던 여행은 다시 일상을 위한 여행이다. 그대의 삶은 반복의 삶이다. 똑같은 곳,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반복이며 그 어떤 의미를 지닌 반복이 유익할지를 고심하자. 난 여행이 나와 그댈 그렇게 인도해 주리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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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그녀의 이름 비야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녀가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돌고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활동을 하는 삶을 살게 된 건 그녀의 아버지와 집안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단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선 힘이 느껴진다. 그녀의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3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전국 일주를 떠난 용기나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선뜻 여행을 하겠다고 떠난 용기나 여자의 몸인데도 아프라카, 중동, 중앙아시아를 다니면서 다른 문화와 사람들 사람들의 삶 속에 뛰어드는 용기가 대단하고 부럽다. 하지만 난 부러워만 할 뿐 비야씨처럼 그렇게 할 용기는 지금도 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글 속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새 문화를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간접 체험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다. 반정부 지도자 오마르 혹은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을 그와의 열흘간의 사랑에 안타까워지고 비야씨도 오마르씨도 잘 지내기를 바라고 탈레반 반군 사진 두 장으로 총살 당할 뻔 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커피 한 잔이면 세 명의 아이들을, 레스토랑 저녁 식사 한 끼로 오십 명의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단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영적으로, 돈을 가진 사람은 물질적으로, 국제 관계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정치적으로,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가지려고만 한다면 난민들을 돕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비야씨는 이 책에서 쓴 것처럼 어떻게든 돕겠다 했는데 그녀의 의지대로 스스로의 약속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통해 아직 접해보지 못한 문화와 건물들 유적지를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한 다리에 한 팔뚝이 없으면서도 제 먹을 것조차 없으면서도 자신의 빵을 내어주는 아이들과 자기는 먹지도 않으면서 한 숟가락 더 떠서 먹으라고 내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코끝 찡한 감동을 주었다. 잘 아는 이도 아닌데 마음이 통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으로 선뜻 초대를 하고 길가다 만난 인연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동생이 되고 누이가 되고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비야 이모따라 한국간다는 아이들...... 여행 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잠깐 머문 곳도 내게는 고향이라는 비야씨는 아마도 지구 위의 모든 나라가 그녀의 집이요 고향이고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그녀의 친구이고 가족일 것이다. 인도에서는 내사랑이라는 뜻이고, 이란에서는 이리 와, 에티오피아에서는 나의 조국,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로는 하늘에서의 섹스, 남아메리카에서는 비(雨)의 스페인어인 주비야.... 비야씨의 이름은 아마도 비야씨의 삶을, 미래를 알고 있는 하늘이 미리 알고 알려준 이름인가 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읽고 나서 처음에 책을 집어 들면서 너무 부러워하고 나도 가까운 어디라도 가족들과 여행을 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다. 다 읽고 나선 아프라카, 중동, 중앙아시아 여행 이야기인지라 내가 한국 땅에 태어나서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네들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지 않는 삶을 두고 그네들은 정말 불행하다 안됐다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와 견주어 볼 때 드는 생각이 그렇단 것이다. 여행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보다 넓게 멀리 보라고.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나와 이웃들 더 넓게 지구촌 가족들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그리고 다양한 나라와 문화, 사람들과 생활, 그들의 삶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1권을 읽었으니 이제 이어서 2권을 읽어야겠다. 이어질 비야씨의 여행 이야기가 자못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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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난 한비야 아줌마를 잊을수없을꺼다,
내가 이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디 나만의 특기가 있었으랴?
나만의 관심사가 생겼으랴? 아마 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겠지;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나게 향하는곳은 한국이라는 베이스캠프카아닌
W라는 무대였지, 정말 멋지지 않나?
그 흔한 관광지의 그런 식상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게 아니다,
우리가 잊고있었떤 그런곳, 다른 나라의 숨겨진 곳, 한비야 아줌마가 시도한
대다한 도전과 인간관계 등등... 정말 마음이 열려요!
당신이 지금까지 몰랐던 곳이 어떤곳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전 이책으로 꿈을 키웠고,세상을 배웠어요^^ [인상깊은구절] ★ |
| 여행 4년차 베테랑 여행가가 된 한비야,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는 오지 중의 오지이지만 그녀는 해냈다. 왜 이 코스를 1권에 담았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더 흥미진진하고 기억에 남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이란에서의 로맨스는 '여행기'가 아닌 '로맨스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마디로 사랑에 눈이 멀어 일정이고 뭐고 '그'에게 몰입했던 '그녀'의 모습을 볼 때 그렇게도 대단해보였던 그녀가 인간적으로 보였다. 1권이기 때문에 '나의 세계여행을 있게 한 세가지'가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어떤 일을 하던지간에 그 일의 동기가 무척이나도 중요한 것인데 한비야 씨가 세계여행에 뛰어든 동기는 물론이고 짧지만 그녀의 인생이야기도 함께 있어서 술술 읽혔다. 또한 막바로 그녀의 로맨스 이야기가 나오기에 고조에 달했던 흥미가 지속될 수 있었다. 이 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여행이라는 것, 그저 가이드북에나 나오는 삭막한 여행정보가 아닌, 구수한 사람냄새, 인생냄새가 섞인 책이다. |
| 이 책의 저자 "한비야" 씨 처럼 나도 세계일주 하는 것을 어렸을 적 꿈으로 희미하게나마 간직해왔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 19.. 그 동안 뚜렷히 계획 세운 것도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그냥 막막하게나마, 그냥 그 꿈을 키워오기만 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그 막막했던 꿈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불빛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 갈망해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어떻게 내 꿈을 키워나가야 할지.. 그렇게 까마득하기만 하던 것들을 한꺼번에 해소시켜주고 희망을 갖게 해 준 책이다. 보다보면 문장같은게 아주 자연스럽게 매끄럽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이 나에게는 더 큰 친숙함으로 저자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냥 읽다보면 같이 여행을 하게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깐.. 아무튼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추천" 이 아닌 "필수"라 여겨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저자 한비야씨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
| 이 책을 만나 건,아니 한비야 그녀를 만난 건 7년 전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무엇인가에 방황하며 혼란스러워 하던 17살 초여름,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녀의 이 첫번째 책은 그후로 지금까지 그녀의 매니아가 되게끔 하였다. 나에게 그녀의 많은 여행 시리즈 책들 중, 특히 이 책에 애착이 가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단순히 그녀의 여행일정을 따라서 읽은게 아니라 책속에서 나의 인생여정을 계획하고 그 당시 답답한 내 인생에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그 당시 난 항상 사막에 가서 홀로 작열하는 태양아래 누워보고 싶었는데,그녀의 아프리카 종단부분은 나의 가슴을 살아있게끔 만들었고,내 상상이 단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여줬다. 책을 읽는 동안 글자 하나하나,페이지마다 죽은 글이 아닌,생명력이 가득한 한비야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지금도 내 책장에는 그녀의 책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7년 전,도서관에서 발견한 그녀의 책은 그당시 진귀한 보석과도 같았고,7년이 지난 지금의 그녀 책은 우리들에게 성경(?)과도 같은 책이 되어버렸다.. 특히 나는 이 책을 많이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그녀의 책들을 읽으면 단순히 여행 이야기가 아닌,그녀의 향기와 인생 여정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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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의 ’바람의 딸’ 책을 처음 읽은 건 10년여쯤 전, 내가 대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때였던 듯하다. 한창 혈기왕성할 때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그녀의 책은, 정말이지 이제까지 어디서도 접해보지 못했던 생생히 살아있는 여행기와 사람들 삶의 이야기로 읽는 내내 나의 가슴을 방망이질 해댔던 기억이 아직도 뚜렸하다. (얼마 전 불현듯 그녀의 나머지 책 2,3,4권도 마저 읽고 싶어 1권과 함께 구매해 차례로 읽어나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여느 여행기와 뚜렷하게 차이나는 점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관광용 여행지를 다니며 겪은 일들이 아니라 때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세계오지의 깡촌들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얘기해준다는 것이다. 참, 여행 중 그녀의 원칙은 절대 육로로만 다닌다는 것이였는데 어쩔 수 없었던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정말이지 무식(?)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도 참으로 놀라웠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특별한 볼거리가 아니라 여행지마다 일부러 현지인의 집에서 민박할 꺼리를 꼭 찾아내서 그곳의 문화와 생활의 일부가 되어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이 가는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책을 읽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었다.
우리가 흔히 떠나는 여행지가 아닌 아프리카나 중동,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한비야씨가 들려주는 매력적인 오지여행기를 이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