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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할까 낯선 주제 “괴물” 그리고 그림,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대개 이런 류의 책들은 번역서가 많아서 외국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그림과 미술사를 전공한 예술가(?)였다. 아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구나. 그러나 이런 책들이 얼마나 읽히고 팔릴지! 보통이 아닌 것들을 우리는 비정상(이상한 것)이라 여기고, 그 중에서도 좀 더 이상한 것들을 괴물이라 부르는 것 아닐까? 이런 괴물들이 등장하는 다양한 그림을 통해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괴물의 탄생에 대해서 들여준다. 과거의 서양의 그림 속에서 괴물은 인간을 특히 영웅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들, 그들은 괴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인간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네 괴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본다. 아마 가장 먼저 귀신, 그것도 흰 소복에 긴 머리 늘어뜨린 처녀귀신, 아니면 도깨비 정도가 아닐까? 서양 귀신에 비해서 휠씬 덜 징그럽다고 해야 할지. 무서운 귀신과 친근한 귀신들이 잘 어우러진 세계일 것 같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괴물과 요정, 천사와 악마 등의 이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괴물은 인간의 기형에서 유래한 것과 동물의 기형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특이한 것과 못 본 것은 다 괴물이었다. 과거 서양에서는 동양이 괴물의 나라라고 여긴 적도 있으니. 인간의 인식이란 게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니 당시의 상황과 수준을 잘 반영해주는 것인 것 같다. 특히 우리와 사뭇 다른 용에 대한 서양의 해석, 우리에게는 신물이며 신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반드시 처치해야 할 괴물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종교 특히 기독교 때문이 아닐까? 종교는 삶과 생각의 방식을 지배하기에. 괴물과 유혹, 과연 괴물들이 어떤 유혹을 하기에 못 이기고 파멸을 맞는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야망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그 징그러운 괴물들의 꼬임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나약해서인지. 아니면 괴물들이 진정 매력적이라서.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책을 읽는 중 인간의 한정된 상상력을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것은 결코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을 끌어 모아서 조합한 것들이 괴물로 둔갑하는 것을 보면. 괴물이란 게 괴물이 아니라 단지 조합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세이렌과 인어공주에서 보듯 이미지는 조작이 가능하다. 왜 종을 초월한 사랑, 그리고 종의 극복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줄까? 힘든 역경을 이기고 이룬 사랑이라서. 그러기에 괴물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떠오르는 형상은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다. 괴물이라기에 다양한 괴물들만 등장할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전체적으로 아이디어가 돋보인 책이었지만, 그러나 용두사미라는 느낌도 조금 받는다. 뒤로 갈수록 괴물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책과 그림을 보았을까 생각해본다. 참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가 엮어낸 이야기들 특히 깨져버린 환상, 지옥, 최후의 심판 등 저자의 강박적인 해석(?)이 돋보였다. 의외로 서양그림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본 것 같고, 일본 그림 이야기는 좀 낯선 느낌이다. 그리고 평소에 잘 보지 못한 그림들 설명과 함께 보여주기에 그림공부가(?)가 되었다. 그림은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저자는 괴물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우리도 괴물이 될 수 있다.“괴물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여기 없어야 할 존재가 여기 있으면 괴물이다.”, 괴물은 우리의 두려움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옥의 티. p. 163. 5-10 실레.-> 5-11 *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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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http://blog.yes24.com/document/6873046에서 화가 바질 홀워드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보고 예술적 이데아를 본듯 빠져들어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예술혼이 담긴 그 그림을 보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처음 인식하게된 도리언 그레이도 그림처럼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고자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예술에 담고자하는 마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기괴한 것, 두려움을 주는 것, 피하고 싶은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하는 화가와 이런 그림에 매혹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지 알고 싶어진다. 이 책에서 다루고있는 괴물들은 모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환상속의 존재들이다. 선사시대 인류의 조상들이 사냥에서 잡고 싶던 동물들을 동굴에 벽화로 남기면서 이미 그 동물들을 취한 것으로 믿고 사냥터에 나갔듯이 용, 악마, 죽음, 유령, 거인, 반인반수 까지 다양한 괴물들을 그린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괴물은 형태가 변형되거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동물의 여러부분이 기이하게 조합된 것으로 정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규격을 벗어나는 낯선 존재들이며 초월적 힘을 가졌다. 스핑크스를 예로 들면 여자의 머리, 황소의 몸통, 사자의 발과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고 인간에게 수수께끼를 내며 지혜를 시험한다. 한 가지도 아니고 네 가지의 동물의 속성을 다가진 존재였다. 이 괴물들과 싸우는 영웅들도 괴물을 뛰어넘는 힘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영웅속에 존재하는 신적 요소들이다. 페르세우스는 황금의 비로 변한 제우스와 다나에 사이에서 났으며 헤라클레스는 테베에 사는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신과 인간의 잡종으로 괴물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괴물들을 그린 그림에 빠지는 것은 사람들이 갖지 못한 힘과 능력이 있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부러움일 수도 있고, 마음속에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숨길 수 밖에 없는 동물적 본능과 파괴적 광기를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괴물이 된 그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림과 조각, 문학 뿐 아니라 영화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재미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다. 멋진 도판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만화와 영화로만 접하곤 했던 일본 귀신들이 일본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진 것임을 엿보게 해준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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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이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에 괴물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괴물성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안감을 몰아내기 위해 괴물의 이미지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일까? 2. 두말할 나위없이 괴물은 이미지다. 형상을 지닌다. 15세기 그뤼네 발트가 그린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란 그림과 설명부터 시작된다. 괴물이 유혹을 한다는 것은 '얼굴 없는 미녀'라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일단 괴물이 유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괴물의 이미지나 형상을 보면 우선 긴장하며 움츠러들것이다. 경계하고 도피하는 수순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림에는 하나같이 '유혹'이 붙는다. 아마 그림 속에서 당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 눈에는 괴물의 형상이 아닌 '유혹' 그 자체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3. 이 책의 지은이는 '괴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괴물은 나와 다른 것, 바깥 세계의 존재, 혹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것을 일컫고, 스스로 가늠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내면의 충동과 광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안팎에서 존재하며 작용하는 불가항력의 힘이 괴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림 속에 제 모습을 나타낸 괴물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 내면과 바깥을 탐구하는 일이며, 동시에 인간의 문화에 대한 탐구이다." 4. 세이렌과 스핑크스는 수많은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앞다투며 그림을 그려냈다. 세이런은 나중에 인어공주로 변신해서 이미지 전환을 한다. 귀스타브 모로의 스핑크스는 깃털 달린 날개를 위로 바짝 치켜들고, 머리는 마치 불꽃처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묻는다. 대체 저 머리는 누가 저렇게 치장해 주었다는 말인가? 별게 다 걱정이다. 그러나 나도 궁금하다. 화가에게 묻고 싶다. 하녀가 따로 있는지? 슈투크의 스핑크스는 알몸이다. 암사자처럼 엎드려 있다. 남성들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의지가 온 몸에 충만해있다. 5. 용(龍)은 상서로운 동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역시 괴물이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은 다르다. 동양에서 용은 구름과 비를 부리는 신령스러운 존재이다. 용이 번개와 천둥, 파도와 폭풍우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서양의 용은 대개 거대한 몸집에 박쥐의 날개가 달렸고, 꼬리에 가시가 달린 도마뱀 또는 뱀의 형상을 지녔다. 입에서 불길을 토하고 코에서 유독한 가스를 뿜어낸다. 6. 괴물의 또 다른 이름은 '악마'다. 기독교에서 악마는 일반적으로 사탄(satan)이라고 불린다. 그림 속 악마의 이미지는 만만치 않게 많다. 그래도 앞서의 세이렌이나 스핑크스에 비하면 평준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악마는 하나님에게 반항했다가 추락하면서 흉측한 모습이 된다. 손발은 짐승의 것으로, 손톱은 갈고리 손톱으로, 코는 새의 부리로, 깃털 날개는 박쥐와 같은 가죽 날개로 바뀌었다. 악마의 몸둥이가 검은 것은 빛이 결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날개는 필수다. 그래서 악마는 잘도 돌아다닌다. 7.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그림을 보면 나의 심경까지 복잡함으로 채워진다. 유배지에서 오래도록 고생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정치범과 그를 맞는 가족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주인공의 홀쭉하고 어두운 얼굴에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쁨과 안도감,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엉켜있다. 아마도 가족들은 오랫동안 가장이 없는 삶에 몸과 마음을 적응시켜 왔음에 틀림없다. 흉터는 남았지만, 고통은 사라진 듯 하다. 그런데 가장이 갑자기 돌아왔다. 가족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기뻐하거나 낯설어 하거나 불안해한다. 노모는 기쁨과 놀라움에 사로잡혀 마치 유령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괴물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여기 없어야 할 존재가 여기 있으면 괴물이다."라는 지은이의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 8. 인간이 만든 조각이 생명을 얻은 경우도 이 책의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전설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이해하려면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새하얀 상아 미녀가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사람이 된다. 해피 엔딩이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종종 여성을 피조물처럼 여기는 남성의 욕망을 가리키는 장치가 된다. 버나드 쇼의 희곡[피그말리온]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나,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에서 나오는 여주인공이 그 모델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9. 이 책엔 95개의 도판(그림)과 수십 권의 참고문헌이 들어있다. 지은이의 열정이 느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괴물은 그저 이미지에 불과할까? 아니 설령 이미지로 머물지언정 우리 주변엔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 없는 곳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든다. 어떤 형상을 하고 있던 우리 마음에 괴물로 그려진다면 괴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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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구성주의 그림의 대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중심으로 미술비평을 담은 <감각의 논리>를 읽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 베이컨의 작품을 보면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역겨울 정도로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어 마치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를 그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하태환님은 “베이컨이 지나온 도정은 끝없는 선택과 포기, 그리고 선택된 요소들의 새로운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새로운 종합을 통해 감각은 눈에 보이게 되며 이렇게 포착한 감각을 우리는 형상이라고 부른다. 형상은 만지는 눈에 호소하는 전통적이면서도 언제나 새롭고 참신한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포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것이지만 아울러 이 책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또 하나의 장점은 들뢰즈의 통찰에 기대어 예술사를 한눈에 일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베이컨의 작품세계와 이를 바라보는 들뢰즈의 성찰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중세의 신중심적 세계관에서 다시 그리스 시대처럼 인간중심 세계관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데카르트는 인간은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라고 보아 동물과 다르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이컨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할 수 없는 형체를 자주 그린 것은 인간중심주의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에 이런 경향이 어떤 흐름을 이어왔는지 살펴본 책이 미술사가 이연식님의 <괴물이 된 그림>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림이 괴물이 된 것은 아닐 터, 여는 글에 담긴 작가의 뜻은 사람다운 사람 혹은 진정한 인간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끌어낸 이름으로 보입니다. “괴물과 견주어 보았을 때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프롤로그에 해당할 ‘괴물이라는 형상, 혹은 환상’에서 저자는 괴물을 기괴한 형상, 뒤틀린 형상, 타락한 형상, 합쳐진 형상, 한없이 작은 형상, 한없이 커다란 형상, 인간을 닮은 형상, 손끝에서 나오는 형상 등이 있다고 정리하고 그런 형상을 그린 대표적인 그림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연대별로 구분하고 있지 않은 듯 12세기 작품으로부터 현대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특히 일본화가의 작품을 다수 인용하고 있는 것은 유령 혹은 귀신과 같은 기괴한 이야기가 흔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그림에 많이 반영되어온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악마를 그린 작품들을 소개하는 제3장 ‘악마의 형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악마는 하느님에게 거역한 흉측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근세 낭만주의 사조의 문인이나 예술인은 주류질서에서 일탈하는 반란자, 즉 자유로운 존재로 다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께서도 인간을 두고 악마와 내기를 했다는 이야기에서는 대부분 악마와의 거래를 후회한 인간이 신께 빌어 구원을 얻는 다는 결말에 이르는 것은 애당초 신이 악마와 한 내기의 조건이 불평등하였거나 신이 악마와의 내기에 성실하게 응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이 요구한 삶을 살지 못한 인간이 가는 지옥에서의 삶은 악마보다 못하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저자의 지적이 따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닫는글에서는 저자의 집필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괴물로 가득찬 거리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자동차는 괴물이다. 자동차의 전조등은 괴물이험악하게 번득이는 눈이다. 인도를 난폭하게 내달리는 오토바이는 반인반수다. 이들 괴물에 쫓기고 떼밀리며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한다.(244쪽)”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결국 사람다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흉악한 사건들로 넘쳐나는 신문 읽기가 겁나는 세상에서 괴물이 된 인간들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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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보면 강치라는 반인반수 괴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괴물이라 불리는 반인반수를 괴물로 보며 두려워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괴물이 아닌 그저 강치로 보며 사랑을 주는 인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괴물과 인간의 경계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강치를 보며 스스로 괴물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끼게 되며,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는 순간, 그는 괴물이 돼 버린 것이다. 이 물음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물음이 되기도 한다. 괴물은 인간의 공포, 불안, 욕망 등이 투사돼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괴물이 된 그림> 속 괴물들은 묘한 공포감과 함께 나름의 안식을 느꼈던 것이 말이다. 예술의 소재로 자주 사용된 괴물,,, 미술사가인 저자 이연식은 <괴물>이라는 키워드로, 고전 명화에서부터 중세 종교화, 19세기 말 그림, 현대미술까지 미술사 전체를 살피고 있다. 그림 속에 나타난 괴물의 형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 내면과 바깥, 인간의 문화에 대한 탐구와 함께 두렵고도 매혹적인 괴물 그림 분석해 놓았다. 하지만 단순히 흉측한 괴물만이 아닌 왠지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래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괴물들을 보며,,, 내가 왜 이러지? 왜 괴물에 빠져드는 걸까 란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충동과 광기가 묘하게 스며들어있기 때문 아닐까 문득, 시대와 지역을 넘어 화가들은 전설 속 괴물의 형상을 상상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내 가고, 기괴한 형상인 괴물은 역대 화가들에게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무의식을 보여주는 좋은 소재로 스핑크스, 세이렌, 용 등 미술사 전체에서 나타난 괴물 형상을 흥미롭게 추적해가고 있는 <괴물 속 그림>을 읽다보니,,, 팀 버튼이 떠올랐다. 붕대를 칭칭 두르거나 몸 곳곳에 꿰맨 자국이 남아 있는 괴물 등 전시된 드로잉과 다리가 길어진 세 개의 의자가 탁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림, 발끝에 주사기들을 꽂은 채 박쥐 날개를 달고 있는 거미 그림, 점토ㆍ철사ㆍ스티로폼 등으로 만든 괴물 모형,,,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팀 버튼의 작품 속 괴물들은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산 자와 죽은 자,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개의 세계를 오가는 우리의 모습이 말이다. 인간은 괴물을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괴물이 될 수 있을지도, 혹은 괴물일지로 모른다는 생각 때문 아닐까? 그만큼 그림 속 괴물에게 느껴지는 두려움 속 위안은 내가 괴물에 닿아있단 얘기가 될 른 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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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름답고,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도 많을텐데,굳이 '괴물'을 그린 그림일까?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이였다.그리고 알았다. 내가 생각한 '괴물'이란 것은 얼마나 편협했던 가를. 괴물스러운 그림 그자체가 때로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왜 불편할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애써 외면하고픈 것들의 대부분은 괴물스러운 그림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일종의 메멘토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선과 악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이 특히 내 시선을 끌었다. 신화 속 이야기부터 성서 속 이야기까지,신화를 모르더라도,성서를 읽지 않았더라도 그림을 통해 신화와 성서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괴물'이란 혐오스러운 이름으로 불리워지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그림의 주제라고 보면 되겠다.
특히 이 책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최근에 읽은 '파리대왕'과 '변신'이란 고전에 대한 제목에 대한 해석(?)을 마주한 기분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신약 성경에서는 악마를'바알세불'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바알세불은 원래 가나안 사람들이 모시던 신의 이름이다. 유대인들은 주변의 적대적인 세력이 모시던 신에게 악마의 딱지를 붙였던 것이다.바알세불은 밀턴의 <<실낙원>>에도 사탄에 버금가는 악마로 등장한다.그런데 구약 성경의 <열왕기>하권에는 '바알세붑'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유대인들은 바알세불을 경멸조로'바알세붑'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이는 '파리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바알세붑을 거대한 파리의 모습으로 상상했다. 악마가 '파리의 왕'이라면 흔히 파리는 악마의 졸개, 악령인 셈이다. /100쪽
라인 강 상류의 장인 <죽은 여인들,죽음과 육욕> 중 일부
'파리대왕'을 읽으면서 제목이 '파리대왕'인 이유가 퍽 궁금했었다. 내용의 흐름으로 대략 추측해 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친구가 생각한 '파리 대왕'의 느낌은 또 그림 속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하나의 이유로 '파리대왕'이란 제목이 만들어지진 않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유대인들은 바알세불을 경멸조로'바알세붑'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이는 '파리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바알세붑을 거대한 파리의 모습으로 상상했다. 악마가 '파리의 왕'이라면 흔히 파리는 악마의 졸개, 악령인 셈이다. " 라는 것.
선혈이 낭자한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파리대왕'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이유이기 할게다. 바로 '악마'!
변신은 더 나은 존재가 되거나 더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이것이 변신에 대한 관념이다.변신은 수직적이다.(...)변신에는 이유는 필요 없지만 계기가 필요하다.그리고 그 계기는 종종 변신 자체보다 아름답고 황홀하다 /200쪽
'변신'에 대한 개념을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그렇게 이해되어야 할 것만 같아서 이해했던 '변신'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순간이다.
『괴물이 된 그림』속에는 참 많은 불편한 그림이 등장한다. 액면 그대로의 괴물 같은 그림도 있지만,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사연들의 그림들이 훨씬 더 많다. 저들이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상태로 존재해야 우리가 '선(善)' 에 대해 생각할 것이며,악에 대해 경계할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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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한 것 이상이 되면 괴물이 된다. 상상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강력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형체도 정의도 개념도 아무 것도 종잡을 수가 없는 이 존재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우리는 매일같이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괴물 투수’를 보기도 하고, 강가에서 서식한다는 ‘괴물쥐’의 소문을 듣기도 하며, 하늘 사진 속에 희미하게 찍힌 미확인 물체로부터 ‘괴생명체’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한다. 어떠한 것이 되건 의심이 되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 등장하면 ‘괴물’이라는 범주 안으로 집어 넣으면 된다.
상상력이 풍부한 죄로 나는 한동안 ‘괴물’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책 『괴물이 된 그림』을 감히 펼치지도 못했다. 그림이 담긴 책을 좋아하고 그 시대의 사상이나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림의 해설 또한 좋아하지만, 강렬한 핑크빛 표지에 날카롭게 그려진 어떤 ‘괴물’의 낯선 형체에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치자 괴상한 그림보다 ‘이야기’가 먼저 보였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혹적인 괴물, 용과 기사, 악마의 형상, 떠오르는 형상, 나를 찾아온 죽음, 잃어버린 형상, 변신, 그리고 그림 밖으로 나오는 괴물 이렇게 테마를 꼽아가면서 우리가 괴물을 어떻게 창조했고 그려냈는지 그림과 함께 간단하고도 세련된 구성으로 담아냈다. (세련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에 근거하여서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2장 <용과 기사>는 동양과 서양의 생각을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우리에게 신령스러운 존재이자 신비한 힘의 상징이기도 한 용(龍), 사실 많은 그림에서 그려지는 용은 일관성이 없다. 어떤 곳에선 아홉 가지의 동물을 합쳐서 만들어 내기도 하고, 1000년 묵은 뱀이 변한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동양에서-특히 우리 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존재로서 용은 신비로운 ‘괴물’이다.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된 문무왕이나, 임금님의 얼굴을 뜻하는 ‘용안’ 속에 용은 살아 있다. 강력한 지배자로서, 신비롭고 때로는 의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용이 언제부터, 왜 ‘괴물’로 둔갑하여 많은 기사들의 창과 활에 공격을 당하게 되었을까. 공주를 구하러 오던 왕자들을 가로막던 용이 불을 내뿜게 되면서 부터였을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의 유래가 될 법한 ‘바실레의 《펜타메론》속〈해,달,탈리아〉’의 용조차도 왕자를 공격하는 괴물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공주를 ‘지키는 존재’였을 뿐인데.
미술사에 등장하는 ‘용’은 사실 기독교 문화와 대립하는 토속 신앙의 의미였다고 한다. 토속신앙이 기독교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되면서 용은 이교도, 악덕, 이단의 오명을 덮어쓰게 되었고 이것은 그림 속에서 ‘자연의 힘, 질서 없던 세계의 혼돈, 내면의 폭력과 어둠’이기 때문에 용맹스러운 기사나 자애로운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꺾어가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널리 알려야 했던 종교계의 부득이한 선택도 이해가 되지만 괴물로 전락해 버린 용의 신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늘 즐겁게만 흥얼거렸던 ‘puff the magic dragon’이란 동요 속에서 문득 홀로 남겨진 퍼프가 보였다. 저자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용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 변했을 뿐’이라 읊조린다. 사람들의 목적에 의해 괴물로 변해버린 용은 이제 사각 캔버스 속에서 ‘괴물이 된 그림‘으로 남게 되었다.
꼬마 아이였을 때 나는 사람들이 ‘도깨비’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모두들 내 앞에서만 사람의 형상이었다가 내 눈을 벗어나면 소리만 남은 채 이상한 형상으로 바뀌곤 하는. 나이가 들어 내 꼬마 시절의 ‘도깨비설’의 근원을 추측해보니 그 뿌리에는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있었다. 어설픈 분장에 약간은 푸른 빛이 도는 조명,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라는 삼박자가 쿵짝을 맞추며, 무서운 귀신들과 낯선 이야기들을 보여줬고 그 존재들은 어린 아이의 머릿 속을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다. TV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더 ‘괴상한 일’이 있을 법도 하다는 그럴싸한 생각이, 방 밖으로 나가버린 사람들을 문틈 사이로 몰래 훔쳐보던 꼬마를 만들었다. 확인해볼 수 없던 존재들을 죄다 도깨비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괴물은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등장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 아닐까. 때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기쁨을 의미하기 위해서(4장) 혹은 신화 속의 절대자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7장) 때론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러주기 위해서(3장, 5장). 존재해서는 안될 것 같은 존재가 이야기 속에 살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하나 둘 그림이란 형체로 살아나게 되면서 우리는 ‘괴물’을 더 완전히 인정하면서 살게 되어 버렸다. 그대가 괴물을 필요로 하면 괴물은 태어날 것이고 괴물을 원하지 않으면 괴물은 사라지고 만다. 모든 것은 그대 마음에서 시작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괴물이 된 그림은 괴물 혹은 그림 속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작가는 괴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책의 내용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괴물이나 그림에는 어떠한 정형이 없어 보이며, 따라서 어떤 일정한 기준에 따라 그림을 나누기는 어려워 보인다.
괴물이 된 그림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여러가지 재미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혹적인 제목이다. 괴물이된 그림이라고 해서 꼭 해괴망측한 그림이 그러하리란 법은 없을 것이다. 평범한 것 처럼 보이지만, 괴물같은 그런 그림이 오히려 더 매력있는 그림이지 않을까? 책 속의 저자 역시 그런 면에서 평범해 보이는 곳에 어떤 변형이 있을 때 더욱 괴상하게 보인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평범해 보이는 것이 더욱더 평범해 보인다면, 오히려 더욱 더 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책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첫장에서 매혹적인 괴물에서 이야기하면서, 인어공주, 세이렌, 스핑크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이들 괴물들의 관능적인 면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않고 있다. 이어, 2장에서는 용과 기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다음 3장과 4장에서는 괴물의 형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서, 5장에서 잠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6장에서 형상 이야기로 돌아간다.
7장에서는 변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8장에서는 그림 밖으로 나오는 괴물이란 제목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게 아니라, 정말 그림밖으로 나온 괴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의 장점이라면, 정말 다양한 괴물 혹은 귀신의 그림, 기이항 형상을 한 그림들을 원색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 속에는 고야의 그림이나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평소에 익숙한 화가의 그림도 있었고, 르동과 같이 모르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매력적인 화가도 있었다.
또한 책에서는 서양과 동양의 그림을 모두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점 역시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괴물이된 그림은 어찌보면 그림 속 괴물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림 밖 괴물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한정된 분량의 책에 정말 많은 그림이 소개된다. 그래서 이 책 한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그림들에 대해 책을 덮으며 더욱 궁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각각의 그림에 대한 책을 더 찾아보거나, 관련된 화가들의 전시회가 있다면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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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동의 그림(좌), 르동은 기이하면서도 무섭기 보다는 만화같은 인상의 그림을 그렸다. 마그리트의 그림(우), 마그리트의 그림은 환상에 가까운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의 몇 몇 그림은 최근 몇몇 광고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 ![]() ![]() ![]()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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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은 왜 흉측한 괴물을 그리는가 과연 괴물에서 무엇을 발견하였고,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림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느끼는가 이연식의 『괴물이 된 그림』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비록 전면적인 해석과 자세한 분석을 통해서 저 깊은 내면에까지 다가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의 세계가 아니라 추함의 세계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만큼은 충분히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매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건 괴물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괴물은 그저 괴상망측한 존재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 달리 말하면 주류의 세계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 비주류에는 시체와 악마와 같은 것도 포함되고, 용과 같은 상상 속의 동물, 여성과 같은 존재도 역사적으로 비주류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괴물이 그렇다면 괴물을 그리는 이유가 나온다. 주류를 그리는 것은 세상에 적응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화가에게 부와 명예를 줄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예술가라면, 세계의 작은 조짐에도 민감한 예술가라면,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반응하는 예술가라면, 아무래도 익숙치 않은 것, 주류가 아닌 것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고,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외받는 존재들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감성 아닌가. 바로 그 지점에서 한 순간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는 그림이 나온다. 한 순간 눈살을 찌푸리지만, 돌아서도 자꾸 생각나고, 도대체 저 그림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화가들이 이처럼 추함과 기이함에 집착하여 왔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앞에서 괴물의 매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지만, 미술이란 주로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했지, 이처럼 추함에 대해서 천착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했다. 숨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고, 나 역시 그런 것들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분명히 하나의 분야이고, 의미를 갖는다. 저자 이연식은 좋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 (2013.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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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를 유혹한 ‘세이렌’이라는 매혹적인 존재는 많은 화가의 붓 끝에서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오이디푸스와 운명적으로 얽힌 ‘스핑크스’는 슈투크, 크노프, 모로 등 19세기 말, 20세기 초 화가들의 의해 묘한 의미를 부여받았다. 종교화 속에서 악마는 천사에 내몰리고 용은 기사에게 처단당한다. 하지만 인간의 눈길을 붙드는 것은 언제나 뿔이 돋고 박쥐의 날개가 달린 악마이자 뱀을 닮은 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