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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좋아하는 작가임을 알수 있게 하는 책 제목이다.
이 책은 십수년전 대학때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서 무라카미 하루키 라는 작가에 대해 광팬이 된 후에 첫 단편집이라 하여 한 번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최근들어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때의 그 신선했던 느낌은 조금 줄었지만 천재작가의 풋풋한 초기 작품을 읽는 다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이다.
단편모음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책의 가장 말미의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동화 같기도 한 설정,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한 내용, 왠지 허무한듯 싱거운 해결.
여전히, 웃음이 빙긋 나면서, 무언가 복잡한 이야기를 꿈꿀 독자들에게 단순한 결말을 내려주는 작가의 이야기에 말려 들게 된다. 마치, 이런 소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p23 그녀는 아주 열심히 일했다. 나도 거기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일했지만,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일의 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컨대 내가 일에 임하는 태도는 '적어도 무슨 일인가 하긴 하는 것이니, 열심히 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란 의미 정도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그녀의 태도는 좀더 인간 존재의 근원에 가까운 종류인 것처럼 보였다. 뭐라 재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일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그녀 주변에 있는 모든 일상성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겨우 하나로 뭉뚱그러져 유지되고 있는 듯한 기묘한 절박감이 있었다.
p86 "한밤중에 세 시까지 깨어 있다 보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범이야. 이것 저것, 누구든 그렇지.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기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지." |
|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첫 단편집입니다. '중국행 슬로보트', '가난한 숙모 이야기', '뉴욕탄광의 비극', '캥거루 통신',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땅속의 그녀의 작은 개',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이렇게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국행 슬로보트'는 조금은 우습고 안타까운 연애 얘기를 사실적으로 다루는 있는데, 어딘지 레이먼드 카버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에서는 사립탐정과 양사나이와 양박사가 등장합니다. 무라카미 씨는 레이먼드 챈들러 등의 미국 하드보일드 작가들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무라카미 식의 하드보일드라고 할까요. 동화적이고 단순한 느낌을 줍니다. 양박사는 '양박사의 크리스마스'라는 단편에도 등장하는데, 이 단편은 아직 번역본으로 출판되지는 않은듯 합니다.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은 이 소설집이 다른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번역되었을 때, 원타이틀 단편인 '중국행 슬로 보트'를 밀어내고 제목으로 채택되었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등장인물 단 두명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마져 느끼게 만듭니다. '캥거루 통신'은 양을 둘러싼 모험의 첫머리를 떠올리게 하고, '가난한 숙모 이야기'는 약간 괴기스런 느낌을 줍니다. 무라카미 씨 팬이라면 필독서라고 할만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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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는 하루키가 쓴 최초의 단편집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와 1973년의 핀볼. 이라는 장편이 나온후에 쓴 것이다. 이작품에는 작가가 말하듯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전체상이 들어있다. 작품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 쓴 단편집이기 때문에, 젊은이 다운 진지함이 묻어나온다.
특히 '중국행 슬로보트'와 '가난한 숙모 이야기', '뉴욕탄광의 비극'은 정말 잘쓴 글이다. '땅속에...'와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는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앞의 세편은 정말이지 '역시 하루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할만한 작품이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어떤 상징을 통해 잡아보려는 진지한 노력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다. 예전에 읽었었고 요즘에 다시 읽었는데,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해 지는 듯하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듯 하다.
나는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슴깊은 곳에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인것 같아서 좋다. 하루키에 입문한 친구가 나에게 말을 하기를. 하루키를 읽으니 세상과 괴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 했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와 나 사이에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면, 하루키를 통해 세상과 좀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 그 방랑은 이 도쿄의 지하철 차내와 택시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험은 근처 치과의 대합실과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있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쿄 - 그리하여 어느 날, 야마노테 선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거리마저 리얼리티를 잃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창 밖에서 느닷없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전철표를 꼭 쥐고 그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도쿄의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뿌려지고 ,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한다. 그것은 차츰차츰 상실되어간다.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는 상실되고, 우리가 품었던 꿈도 어느 사인가 뿌옇게 사리져간다. 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러 여겨졌던 따분한 청춘기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그 옛날 충실한 외야수였던 시절의 미미한 자부심이나마 트렁크 바닥에 채워, 항구의 돌계단에 앉아, 텅 빈 수평선에 언젠가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기다리리라. 그리고 중국 거리의 반짝이는 지붕을 그리고, 그 푸르른 초원을 생각하리라. 상실과 붕괴 뒤에 그 어떤 |
| 사실 이 책과는 상당히 오래전에 대면한적이 있었다. 책이 읽고 싶다는 나의 생각 하나에 친구가 빌려준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내 자세에 문제가 있었으니 막상 책을 대하고 나니 책을 그다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버렸다는.... 더군다나 그때까지는 하루키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당연히 이 책을 접했을때 `야~ 정말좋군`이란 미사여구는 나올리 만무하고 `응? 이게 뭐야? 참나.`라는 표현이 나오기 딱 적당했다. 그렇게 나와 하루키의 첫만남은 서로의 실망으로 끝나 버린것이다. 친구에게 중국행슬로보트를 돌려주며 한마디 했던것이 지금은 후회가 된다.`야! 이 책왜이래? 추상적이기만 하고 뭘 나타내려고 하는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뒤 다시 하루키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 책에 대한 그 편견은 영원히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 하루키의 특성은 대충알것 같아.`란 생각의 든뒤의 이 책은 정말이지 괄목상대였다.(책은 비록 가만히 있었지만 나에게는 꼭 책이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다가온것 같았다.) 더 이상의 어떤 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시 그 때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말했다. `야! 너무 좋더라~~` 그 책을 계기로 해서 난 하루키의 팬이 되고 말았다. 하루키팬들이라면 당연히 숙지하고 있을 책이지만 혹시나 아직 하루키와는 서먹서먹하신 분들은 이 책을 계기로 하루키작가와 좀더 친근한 관계를 만들었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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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직 먼지만 털면 먹을 수 있어. 라는 건 중국행 슬로보트의 한구절이다. 한장면이 떠오른다. 야구복을 입고, 글러브를 베고 누워 있는 아이. 가물가물 눈을 뜨고선 한마디. 그리고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는 아이들의 깜빡이고 있는 눈. 그리고 시원하게 나무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다시 멀리서 그 풍경을 잠깐 바라보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엮어 내는 다음 장면들은 이 앞에와도 상관없고, 이 뒤에 있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중국이라는 것도, 실은 그것이 중국이건, 몽고건 아니면 다른 행성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국이라는 언어에 절취된 내 자신]이므로.
아직은 하루키는 그 불확실성 속에서 부유하고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그것을 관통한다. 다음 작품을 통해서... 읽을 때마다 굉장히 성실히 손에 쥔 문제의 끝까지 가본다는 느낌을 주는 게 하루키였는데,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뻤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이 못마땅 했는데, (대체 책 한권을 사면 단편 한개 빼고선 다 모두 읽은 것들이니!!!) 이 책엔 내가 읽지 않은 것들만이 있어서 덥썩 샀다. [인상깊은구절] 하기야, 대부분의 내 기억에는 날짜가 없다. 나의 기억력은 아주 불확실하다. 너무도 불확실하여, 때로 나는 그 불확실함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 대치 무엇을 증명하는가란 문제에 이르면,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애당초 불확실함이 증명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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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루키의 단편집으로는 처음으로 나온 것으로 하루키가 그의 전집에 수록하기 위하여 조금씩 손 본 것들이라 한다. 나에 앞서 평을 쓴 분의 글을 읽어보니 분명히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면에서는 나와 공통점을 갖고 있는듯 하지만 취향의 면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그 분이 잘쓴 글이라고 뽑은 세 편중에서 "중국행 슬로보트"에 대해서나 그분이 실망한 작품이라고 한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에 대해서는 나 역시 공감을 하고 있으나 그 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니 서로의 선호도가 절반씩 겹치고 있는것 같아서 꽤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로 같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총론적 입장에서는 공감을 하지만 그의 개개의 작품에 대한 각론적인 면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니.. 하하하, 재미있는 일이다. 이번에는 "오후의 잔디밭"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나는 원래 글의 주제나 교훈을 찾는 일을 끔찍히 싫어하지만-특히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의 주제는 그나마 "찾는"것도 아니고 남들이 그렇다고 "정한" 것을 그냥 "외는"것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특히 하루키의 글에서는 딱히 주제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는 주제나 교훈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약 15년전쯤 십대후반 무렵에 잔디를 깎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그 여름의 마지막의 일거리였던 잔디깎이와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냥 담담하게 얘기하는 내용 뿐이다. 그다지 대단한 이야기랄수도 없는 이 글을 나는 왜 좋아하는 걸까? 흠.. 나도 딱 부러지게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냥 글속에서 느낄수 있는 어떤 분위기를 좋아한다고밖에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테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 하루키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간단히 한마디씩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글에 대해서는 장편으로 쓰기를 바라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루키는 이 작품이 장편으로 확대될 여지가 별로 없어서 안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좀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키가 장편으로 개작했다해도 과연 어떤 내용의 글이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도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에서 유지되었던 사실적인 분위기의 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루키의 "처녀 단편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초창기 하루키의 스타일과 나중에 그의 스타일의 근간을 이루는 원형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꽤나 커다란 즐거움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리고 그 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벤치에 앉은 채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빈 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시계는 이미 열두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그 밤에 저지른 두번째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아홉시간이나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너무도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는 빈 담뱃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성냥곽까지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힘 닿는 한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의 명부에도 전화번호부에도, 그녀의 전화번호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의 학생과에도 문의를 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그 이후 그녀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내가 만난 두번째 중국인이다. |
| 그의 글은 편안하다. 많은 소설과 방송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과장된 치열함 대신 그의 글에는 '과장된 편안함'같은 것이 존재한다. 바쁜 삶을 꾸려가는 주인과 달리 편안히 늘어져 자고 있는 고양이 같은 느낌 말이다. 가는 곳마다 살인 사건이 따라다니는 탐정도,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에 고통받는 연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그저그런 생활의 반복에 '더 이상 이렇게 지낼순 없다'며 떠나버리는 여자친구가 있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 잘되는 듯 보여도 그녀의 연락처는 곧 잃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우연히 만나는 일은 없다. -사실 이게 더 현실적이다. 서울 시내에 까페, 술집이 몇 개길래 드라마 주인공들은 항상 마주친다. 이게 더 이상한 것이다. 탐정 사업을 시작해도 의뢰가 들어오는 건 양가죽을 뒤집어쓴 사내가 자기 귀를 찾아달라고 하는 정도 뿐. 현실과 다르면서도 어딘가 현실과 가장 많이 닮아있는 듯한 그의 글을 읽노라면 조금 우습기도 하고 때론 서글프기도 하다. 상복을 맞추고 난 후엔 입을 일이 없더란 등장인물의 말에 지극히 공감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는게 다 그런거지, 별거 뭐 있겠어? 근데 뭐 재밌는 일은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