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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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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로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촉천민'이 되는 이 시대에 남덕현 작가의 『봄,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를 보고야 말았다.   ...............................................................   『봄,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날이 더워 숲에 갔더니 숲도 덮다.날벌레들이 기를 쓰고 내 눈동자를 파고든다.내 눈이 그렇게 서늘한가.무엇을 보고 살아왔기에 나는 이토록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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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로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촉천민'이 되는 이 시대에 남덕현 작가의 ,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를 보고야 말았다.

 

...............................................................

 

,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

.

.

날이 더워 숲에 갔더니 숲도 덮다.

날벌레들이 기를 쓰고 내 눈동자를 파고든다.

내 눈이 그렇게 서늘한가.

무엇을 보고 살아왔기에 나는 이토록 서늘한 눈동자를 가졌나.

숲속전문

.

 

남덕현 작가의 전작 한 치 앞도 모르면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노을이 코앞까지 번져온다. 슬픈 것들이 타 죽기에 딱 좋은 빛깔이다. , 무엇이라도 끄적거리지 않고서 어찌 저 노을을 견딜 수 있으랴.”

 

작가의 견딜 수 없는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그 후로도 노을은 계속해서 온다.

그 노을 덕에 통찰되어서는 안 되는 모순의 세계’,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번 생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남덕현 작가의 신작 , 불가능이 기르는 한때를 만나보게 된 듯하다.

 

- 잘 타드라! 곰국 두 솥 너끈허대.

(……) 마르크스를 태우고, 레닌을 태우고, 스탈린을 태우고, 마오쩌둥을 태우고, 김일성을 태워 끓인 곰국이니 어찌 아니 그러하랴!

 

앞마당에서 솥 걸고 끓인 곰국의 땔감은, 스무 살 남덕현의 가슴을 불태웠을(?) 그리고 다른 이유로 그의 부모님 가슴을 새까맣게 태워먹었을 부도난 혁명 채권들이다. 그렇다면 잘 타드라는 그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도 모두 슬픈 것들일까? 애당초 태어나 울음부터 터트리는 것이 사람 되는 순리였으니 우리 모두 그 슬픈 것들의 혐의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어쩌면 그 울음은 미덕으로든 악덕으로든 낡은 시간의 승계자로서 이생에 엄숙히 귀의하겠다는 연결자를 향한 서약일지도 모르겠다.

 

그 서약에 대한 답례처럼 노인들은 시계점포 앞에서’ ‘나풀나풀 걸으며 제 그림자와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운다. ‘낡은 시간의 계승자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의 지루함과 수고로움을 먼저 겪은 자로서, ‘시지푸스는 자신의 돌만 굴릴 수 있을 뿐, 다른 시지푸스의 돌을 굴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홀로남은 선대로서, 그리고 그것만이 실존의 존엄이자 시지푸스의 존엄이라는 것을 직관한 존재로서 하염없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평생 반복하여 돌을 굴려 올릴 어린 시지푸스에게 직관의 도약’(나는 이것을 감히 돈오頓悟라고 말하겠다)을 위한 당부를 위태롭게 전한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밥 먹는 일, 옷 입는 일, 걸음걸이, 부채질, 붓질, 먹을 가는 일, 인사하는 일처럼 일상의 사소한 행동들을 정성껏 반복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행위의 반복이 아니라 행위를 하는 나의 감각의 반복이다.() 유가는 일상의 사소한 행위를 형이상학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을 일상의 반복적 경험 세계로 끌고 내려와 감각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늘 하던 대로 마당을 쓸다가 문득 불가의 한 소식을 깨우치듯이, 역시 늘 하던 대로 정성스레 방을 쓸다가도 격물치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 감각의 반복을 통해 결국 열리는 것은 직관이다. 직관은 이성과 합리의 추론 과정을 문득 뛰어넘어 한 소식과 격물치지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세상의 이치와 사물의 본질을 깨우친다는 것이 우리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태어난 생이지지(生而知之)’를 일상의 반복과 반복의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발견하는 것임을 직관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여.

아무 의미 없는 일상의 반복처럼 중요한 일은 없나니, 지겹고 무의미하더라도 그대는 매일매일 일어나서 이불 개고 씻고 밥 먹고 학교 가는 일에 게으르지 말라.

 

이제 이 당부는 저 매미 소리, 여름 아니고서는 갈 곳 없는 소리.’처럼 독자들이 아니고서는 갈 곳 없는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바라건대 그의 아름다운 상념이 작가와 나, 작가와 독자 사이의 사잇소리가 되어 더 이상 고독하지 않기를, 그의 시 유랑에서처럼 무릎이 쓸쓸히 다 울 때까지세상 곳곳에 마저 떠돌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바람의 이름도 바람이 아니라서, 비의 이름도 비가 아니라서,

봄의 이름도 봄이 아니라서, 매번 제 이름을 물으러 내게 온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름을 내가 잘못 부르기에,

바람과 비와 봄은 다시 온다.(……)

변치 않고 나를 찾아오는 것들은 죄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것들,

내가 그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들, 내가 모르는 것들이다.

 

글의 첫머리에 밝혔던 노을도 아마 이름이 노을이 아니라서 매번 제 이름을 물으러 우리의 코앞까지 번져오는 것 같다. 나는 끝내 그 이름을 알지 못할 것이며, 내 생각엔 작가도 끝끝내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벌써부터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이유다.

 

. 밤새워(?) 리뷰 쓴 아침… '공연히 착해'진 것만 같다.

YES마니아 : 로얄 p******7 2020.03.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