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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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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결국 이것을 말한다. '오직 자신으로 돌아갈 것',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할 것'. 저자는 이성과 체계로부터 벗어나 욕망을 가진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존재하여야 인격적으로 완성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 사회와 체계 속에서 자기 욕망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기가 제일 어려운 일이다. '자기 욕망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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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결국 이것을 말한다. '오직 자신으로 돌아갈 것',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할 것'. 저자는 이성과 체계로부터 벗어나 욕망을 가진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존재하여야 인격적으로 완성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 사회와 체계 속에서 자기 욕망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기가 제일 어려운 일이다. '자기 욕망에 따르라'라는 말은 이젠 너무나도 흔하고 모두들 그러고 싶다고 공감하지만 감히 그대로 행할 수는 없는 그런 신기루 같은 말인 것이다. '오직 자신으로 돌아갈 것', '자신의 욕망에 집중할 것'을 외치고 있는 저자는 그것을 막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듯하다. 사실 '하고 싶은 대로, 욕망에 따라 살라'라고 해도 그래서 그걸 당장 어찌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아무튼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 중에는 좋은 메시지도 꽤 많이 있었다.

 

 

-이념과 신념을 기준으로 평가해서 아름다운 일상은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실제 세계'다. 계속 높아져만 가는 이념을 버리고 자기의 구체적인 삶에 집중하라.

 

-완벽한 기준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 못나고 추레한 자신도 인정하며 긍정해라. 잘난 나도 나이고, 못난 나도 나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한국이나 동양의 학자들은 '왜 그 주제를 연구합니까?'라는 질문에 거창하고 장황한 이유를 대지만 서양의 학자들은 같은 질문에 'because I like it'이라는 간단한 대답을 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을 좋아하니까'여야 한다. 그래야 잘할 수 있다.

 

-'안정'이나 '완벽함'은 죽음의 세계다. 오히려 '불안'이 세계의 진상이다. 죽은 것은 안정을 유지하고, 살아있는 것은 불안정하다. 불안을 피해 안정으로 나아가려는 꿈, 불완전을 피해 완전이나 완벽에 도달하려는 꿈은 불가능하다. 불안과 불완전을 감당하고 다루는 힘을 길러야 한다.

 

r**********2 2019.06.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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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최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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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최진석 교수는 1950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났으며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퇴임 후 사단법인 새말새못짓 이사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인문학 책 추천 인간이 그리는 무늬, 나홀로 읽는 도덕경,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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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최진석 교수는 1950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났으며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퇴임 후 사단법인 새말새못짓 이사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인문학 책 추천 인간이 그리는 무늬, 나홀로 읽는 도덕경,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경계에 흐르다, 노자이소 등이 있다.

 

※책에서 나오는 주제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마주 서기

*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 존재하라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욕망으로 새기는 인간의 무늬

 

※하고 싶은 이야기

 

제주도 여행을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한지 어느새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당시(2017년?)에는 내가 찍은 풍경 사진과 지식백과를 통해 얻은 정보를 꼼꼼하게 담아내서 포스팅을 꾸준히 했고, 하면 할수록 특정 단어 검색 시 상위노출이 되고 방문자수가 늘어나면서 여행 인플루언서로 자리잡았다.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블로그를 했을 당시 느꼈던 성취감과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오랜 시간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블태기(블로그+권태기)'와 다르게 글쓰는 게 싫어진 것이 아니라 '내 블로그인데도 나 자신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여행 명소를 가든 상품 리뷰를 작성하든 그곳에는 '나'라는 존재 없이 남을 소개할 뿐이었다. 내가 직접 겪은 주관적인 후기가 아닌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위키백과처럼 내 블로그는 단순히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활동 중인 제주 독서모임 '울림나비'에서 토론 책으로 선정한 인문한 책 추천 최진석 교숭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는 내가 느꼈던 생각에 대한 글귀가 담겨 있다.

 

* 자기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사람, 이건 '죽은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막연히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바로 먹고 싶은 음식이 구체적으로 떠오릅니다. 생명력이 고갈된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배고프다는 느낌만 갖습니다. 안주 하나 따위로 '죽은 사람' 운운하다니, 듣기에 불편한가요? 제가 좀 지나쳤나요?

 

다시금 강조합니다. '아무거나'와 같은 안주를 시키는 사람은, 자기 욕망을 깔아뭉개는 '죽은 사람'입니다. 가장 원초적인, 그리고 가장 욕망하는 나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가장 근본적 욕망인 식욕조차도 제대로 마주할 줄 모르는, 아니 자신의 식욕조차 타인에게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먹을 수 있는 신체 기능은 있으되 무엇을 먹고 싶은지, 그 욕망이 거세된 사람입니다 - 69

 

*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가 없는 곳에는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사회'나 '국가'에 양보하면 안 됩니다. 각자 자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튼실한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라야 건강합니다. 사회를 위해서 자기 욕망을 소외시키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국 부조화스럽고 비틀어집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해서 '자기의 것'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길 수 있습니다. 즐길 수 있어야 또 잘할 수 있지요. 즐겨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그 잘하는 성취로 한국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어요. 사명감에 짓눌려 일을 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행복한 개인들로 자라나서, 그런 개인들이 이룬 사회라야 강하고 튼튼하며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도덕이 유지되고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 75

 

블로그를 통해 마케팅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자기' 아닌 '타인'의 관점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체험보다는 조회수를 획득할 수 있는 '남이 좋아하는 음식'을 우선순위로 찾았고 체험을 하는 곳에 가면 직접 경험을 하기보단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저 바라만 봤다.

 

처음에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내 목적은 직접 체험이 아닌 타인에게 콘텐츠를 소개시켜주는 게 일이었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 자신이 없는 내 블로그는 최진석 교수가 언급한 대로 '죽은 블로그'였으며 성취감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부턴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땐 최대한 나의 생각과 나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찍을 때도 기획을 하게 되고, 글을 작성할 때도 몸소 느꼈던 경험을 담아내 오히려 이전보다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로지 나의 욕망과 관점만을 담아내는 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취미로서의 활동으로 즐길 수 있다면 당연하겠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트렌드와 유행이 바뀌는 세상에서 과연 마케팅과 인문학이 공존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공부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 책 추천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속에서 최진석 교수가 여러차례 언급하는 말로는 대답이 아닌 질문을 해야만 인문적 통찰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바라는 것, 하고 싶은 것, 자신의 욕망을 알고 행동해야 인문적 통찰을 할 수 있으며 나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명사가 아닌 동사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서 인문학적 사고와 철학을 할 수 있다는 최진석 교수의 말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예술이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문학 책 추천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는 '덕'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덕'이란 '인간 본래의 마음'으로 거짓없이 순수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덕'을 표현할 수 있는지는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분들과 의견을 나눠보고 싶었다.

 

평소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꾸준히 작성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인문학 책을 많이 읽진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은 인문학을 필수로 배운다고 하는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의 미래에 할 일에서 권태기를 느끼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하려면 나 역시 인문학을 꾸준하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학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출간된 지는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2021년을 넘어 2022년에 읽어도 공감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추천하기에 충분하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좋아하는'을 통하면 확실히 보편적인 기준이나 합리적 계산 혹은 객관적 표준 등을 벗어납니다. 누구나 숭앙하는 '이념'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는 사회적 합의를 추종하지도 않습니다. 체계를 초월할 수 있지요. 자신만의 욕망에 집중할 뿐입니다.

 

자기 내면에 비밀스럽게 웅크리고 있으면서 불현듯 일어나는 충동질, 자기만의 고유하고 비밀스런 어떤 힘을 따릅니다. 욕망을 따르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고유한 바로 '그 사람'으로 살아 있습니다 - 10

 

생과 사와 같은 경계에 서서 민감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갖추어진 고도의 감각, 저는 이것을 '더듬'이라고 부릅니다. 상인들에게는 고도의 더듬이가 발달되어 있어요. 상인들은 고도의 더듬이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 이 더듬이를 가지고 이론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랄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대게는 정확하게 알아요.

 

제가 만나 본 상인들 가운데 큰 상인들은 대개 의사 결정을 할 때, 논리를 따지거나 분석을 하거나 하지 않고 바로바로 판단하더라공요. 내면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짐작건대 아마 감으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것이 매우 탁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37

 

만약에 여러분이 '좋다' 내지는 '나쁘다' 하는 둘 중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면, 여러분은 아직 리더로서는 준비되지 않은 겁니다. 일류의 삶을 살 수 있는 길로 나아가는 것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제 말이 너무 야멸찬가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금 당겨 말한건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단지 '좋다'라거나 '나쁘다'일 뿐이라면, 분명 여러분은 리더가 되려는 준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 여기서 '리더'라 함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사회나 어떤 조직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끌고 가는 사람, 물론 이런 사람도 리더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리더는 우선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끌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 43

 

여러분이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판단을 했다면, 여러분은 그저 정치적 판단을 했을 뿐입니다. 인문적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정치적 판단은 자기 머릿속에 있던, 자기가 믿고 있던 신념, 이념, 가치관을 따라서 세계와 만나거나 혹은 그것을 근거로 세계를 해석한다는 거예요.

 

무엇을 보고 나서 바로 좋다라거나 나쁘다고 한다는 것은 인문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길들여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 인문적 통찰은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는 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기 삶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나 어떠한 사회 조직을 이끌고 가는 사람을 '리더'라고 합니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이 위대한 리더를 '성인'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성인은 일반인과 다른 특징이 있어요.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뭐냐? 바로 조짐을 읽는 능력입니다 - 44

 

인문적 통찰은 대답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데서 비로소 열립니다. 질문하는 활동에서 인문적 통찰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선경지명의 빛은 자신에게 이미 있는 관념을 적용하는 데서 나오지 않고, 질문을 하는 곳에서 피어오릅니다. 모두가 대답하려고 할 때 외롭게 혼자서 질문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 46

 

'리理'라는 글자를 볼까요? 옥돌에는 무늬가 있지요. 즉, 결이 있는 거예요. 옥돌에 새겨지는 무늬를 '리'라고 해요. 그렇다면 '리'는 인간이 그려 넣은 건가요? 자연이 그린 건가요? 자연이 그린 거지요. 인간과 아무 상관이 없이 그려진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있는 것들에 대한 연구, 그것이 바로 이과 학문이에요.

 

한편, '문文'이라는 글자를 봅시다. '문'은 원래 무늬라는 뜻입니다. 우리 옷에 무늬가 그려져 있지요. 그것을 '문', 즉 문양이라고 합니다.

 

무늬는 누가 그립니까? 인간이 그려요. 그럼 '인문人文'은 뭐냐? '인간이 그리는 무늬'입니다 - 57

 

고대인은 고대식의 무늬를 그려요. 중세인은 중세적인 무늬를 그리죠. 근대인과 현대인은 각각 근대적 혹은 현대적 무늬를 그립니다.

 

인간은 이런 큰 틀의 결 속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문'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무늬' 혹은 '인간의 결'입니다.

 

쉽게 '인간의 동선'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과거는 '인간의 동선' 뒤쪽이고 미래는 앞쪽 방향일 뿐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이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을 가늠하지 않고도 가능할까요? - 61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혹은 결이라고 했지요?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인간의 동선입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당연히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 되겠지요? 지금의 학문 분류에 따라서 말할 때, 인문학에는 대표적으로 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이라는 세 분야가 포함됩니다. 줄여서 '문사철文史哲'이라고 하지요.

 

철학이든 사학이든 문학이든 인문학으로서의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동선을 알려주려고 하는 학문들이지요. 언어적 수사적 기법을 사용하여 감동의 형식으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사건의 시각적인 계기를 재료로 삼아 인간이 그리는 곁의 정체를 알게 해주려고 하면 사학이 됩니다. 명중한 범주와 개념들로 세계를 포착하여 그것들의 관계 및 변화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인간의 동선을 알게 해주면 바로 철학이 되는 것입니다 - 62

 

이미 있는 것들은 사람을 콘크리트처럼 굳게 만들어 객관적이거나 투명하거나 청명한 태도로 세계와 관계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되지요. 마치 성공한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성공 기억인 경우와 같습니다. 성공 기억이 너무 강하면 새로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그것 자체의 맥락으로 보지 못하고 항상 성공했을 때의 그 맥락으로만 보게 됩니다.

 

지난 시대의 기억으로 새 시대를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면 두 번째 성공도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하려면 자기를 지배하던 이전의 성공 기억을 벗어나서 새로운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봐서도 안 됩니다. 오직 텅 빈 마음을 가지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으로 하여금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게 하는 강제성도 강해지지요.

 

이념가들이 변화하지 못하다가 실패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념가들이 선명성 경재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 66

 

재미있는 것 같다, 맛있는 것 같다, 더운 것 같다, 즐거운 것 같다, 슬픈 것 같다, 여러분, 대체 이런 말들이 가능한 겁니까? 내가 재미있으면 누가 뭐래도 그냥 재미있는 거예요. 날이 더우면 더운 거고, 맛있으면 맛있고, 즐거우면 즐겁고, 슬프면 그냥 슬픈 거예요.

 

굳이 사전적 의미를 빌려 설명하자면 '~같다'는 '추측,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이잖아요. 예컨대 "비가 올 것 같다"랄지 "어쩐지 내일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날 것 같다"랄지 이렇게 추측하거나 불확실한 마음을 드러내는 말인 거죠.

 

그런데, 내가 즐거운지, 재미있는지, 슬픈지 하는 것들이 추측하는 겁니까? 그게 불확실한 겁니까? 지금 내가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추측해서, 또는 불확실하니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결정 내리는 상태입니까?

 

말꼬리 잡기가 아니예요. 이건 가장 원초적이며 단순한 욕망조차도 무언가 불확실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거예요. 즐거운지, 재미있는지, 슬픈지를 자기가 모르는 거예요. 지금 자기그 그렇게 느끼고 있는 데도 말이죠.

 

가장 원초적인 욕구조차도 추측해야 하고 불확실한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지금 뭘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죽은 사람이에요.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 70

 

'바람직함', '해야 함' 그리고 '좋음' 등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행사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단일한 기준으로 관리되고 통제된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기준만을 가진 사회, 참 삭막하고 답답합니다. 매우 폭력적인 사회입니다.

 

우리가 사회가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로 진입하려면 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권력자 행세를 하고 있는 '바람직함'이나 '해야 함' 혹은 '좋음' 대신에 자기가 바라는 내적 충동, 즉 욕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것보다는 바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고,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집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샘솟게 됩니다. 더욱 부드러운 사회가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바라는 일을 할 때,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 사람은 잘할 수 있어요. 왜 그런가? '바람직함', '해야 함' 그리고 '좋음'에는 '내'가 없고 '우리'가 있을 뿐이고, 좋아하는 일, 바라는 일, 하고 싶은 일 속에서야 '우리'가 아닌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동력은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에서 힘을 받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이념의 틀을 벗고 우뚝 선 자아만이 아무 편견 없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83

 

인문학의 기본 출발은 '생각'이에요. 인문학은 출발부터 생각과 함께합니다. 철학의 출발 자체가 믿음의 체계인 신화로부터 벗어나면서 시작되지 않았나요? 철학 즉 인문적 사조가 시작되기 전인 신화의 시대에 인간이 하는 일은 뭡니까? 바로 믿는 일이에요. 이 믿을음 거부하고, 믿음의 대상에 고개를 쳐들고 인간의 길을 가겠다, 하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이때가 바로 철학의 시작입니다. 바로 인문학의 시작입니다 - 104

 

'개념槪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개'라는 글자를 봅시다. 쌀가게 쌀을 한 되 사러 갑니다. 쌀가게 주인은 한 되를 재는 됫박을 가져와 거기에 쌀을 수북히 붓습니다. 그럼 고봉이 되잖아요. 근데 그대로 주면 손해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싹 깍아 냅니다.

 

정확히 한 되가 되도록 깍아 낼 떄 쓰는 이 도구를 평미레라고 하는데, 한자로 '개'라고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개'라는 말은 뭐냐 하면, 공통의 틀 속에 들어가지 않은 여분의 것을 깍아 버리는 도구입니다.

 

그럼, 개념이라는 말은 어떤 뜻이 될까요? 공통의 틀 속에 들어가지 않는 여분의 것이나 사적인 것, 특수한 것은 제외하고 공통의 것, 일반적인 것만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개념'입니다 - 118

 

명사가 딱딱합니까? 동사가 딱딱합니까? 명사가 딱딱하겠죠. 모든 개념은 딱딱해요. 개념으로 무장한 사람은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가요. 우리의 이념, 지식, 신념들은 다 무엇이냐? 개념의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이념을 가지고 부드러운 동사적 세계를 제어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동사적 세계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힘들 뿐만 아니라 사실은 가능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인문적 통찰을 한다는 것은 뭡니까?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는 상태를 부드러운 상태로 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명사적으로 세계를 보는 습관을 동사화하는 거지요. 점점 굳어가면서 명사화되어 가는 자신을 율동감이 있는 동사로 되살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바로 예술이 필요한 겁니다! 에술을 명사적으로 굳어진 나를 동사화하도록 자극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단계를 미학적 삶이랄지 예술적 경지랄지,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문적 통찰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바로 여기예요 - 120

 

공자가 말한 '예禮'란, 전체 사회가 모두 따라야 하는 보편적 기준이었어요. 이 기준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공자가 건설하려 했던 '인간의 길'이었죠. 노자는 바로 이 점을 공격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걸으려 한 사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볼까요? 노자가 보기에 조직이나 사회의 건강성은 개별적인 각자가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부여받고 얼마만큼의 자발적 생명력이 허용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거대 사회나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자기만의 고유함을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익명성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익명성 속에 존재하는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기는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는 느낌을 갖기가 어려워요. 단지 부속품으로만 존재한다고 느낄 테지요.

 

그래서 노자는 조직을 작은 단ㅇ위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나 조직이 거대해지면 그 속에 있는 구성원들은 익명의 존재가 되기 십상이겠지요. 구성원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 가치를 느끼려면, 작은 단위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작은 단위 속에서는 각자의 활동이 모두 자기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거기서 인간은 보편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니라 개별적 욕망을 실현하는 매우 자발적인 존재로 재탄생될 수 있습니다.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욕망의 존재로 살 수 있는 것이죠. 바로 거기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비로소 움을 틔웁니다 - 138

 

세계를 발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론가들이 아니라 실천가들이고 행동가들입니다.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 틀로 실천가와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쉽게 지위가 높아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가와 실천가들에게 사용되고 이용되어야 합니다. 실천가나 행동가들은 사건에 집중해요. 수준 높은 이론가들이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행동가, 수준 높은 실천가들이 나오는 겁니다.

 

세계는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그래서 '내공' 있는 실천가와 행동가들이 역사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말을 기점으로 해서 우리는 지식을 중심에 놓고 매우 중요한 통찰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식을 무엇에 관한 일정한 형태의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관해서 이해만 하고 적철한 예측을 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새로운 사건을 만나서 거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입니다 - 146

 

인문적 통찰이라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지식의 정체를 한번 정확히 대면해 보자는 겁니다. 우리는 지식을 관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우리는 지식을 신봉하는 사람인가? 지식의 지배자인가? 아니면 지식에 지배당하는 사람인가? 지식을 희롱할 수 있는가? 아니면 지식에 포박당해 꽉 막혀 있는가?

 

지식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지식인은 예측을 할 수가 없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예측할 수 있는 것에까지 인도할 수 있는 내적인 동력이 있는 사람은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 이념을 바꿀 수 있는 비밀번호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합니다 - 149

 

'덕'이란 건 무엇인가? 바로 인간 본래의 마음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글자 풀이를 해보죠. '덕'이라는 한자는 다 쓸 줄 알죠? '덕德'은 한자로 보면 두이 변(걷는다는 의미)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직심直心'이에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덕이라는 글자는 처음에는 그냥 '직'과 '심'으로만 되어 있었죠. 바로 덕이라고 썼던 거예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글자입니다.

 

그럼 '직심'이란 뭘까요? '직'이라는 글자에는 '반듯하다'라는 뜻도 있고, 또 '곧바로'라는 뜻도 있어요. 영어도 그렇더라고요. 영어로 right는 '옳다'라는 뜻도 있지만, '바로'라는 의미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직'이라는 것은 바로 툭 튀어나온다는 것이예요. '직심'은 아무런 고려도 없이 바로 툭 튀어나온 마음이지요 - 173

 

덕은 오로지 주체, 그 자체일 뿐입니다. 지식의 체계도 벗어나고, 가치의 결탁도 끊어 버리고, 이념이나 신념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떤 내적인 동력입니다. 오로지 자기가 자기로만 존재하는 '터전'이징요.

 

그 터전에서라야 자기가 독립적 주체로 드러납니다. 결국 인간의 맨 얼굴 상태가 바로 덕인 것이죠. 덕은 신으로부터 인간의 독립을 상징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주체와 덕은 깊이 연관됩니다. 여기에서 주체는 '성숙'의 둥지를 틀게 되지요.

 

자!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기억나시는지 모르겠네요. 인문적 활동은 지식과 이념의 지배를 벗어나서, 자신이 주체로서 우뚝 섰을 때라야 가능하다는 말씀 말입니다. 인간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라야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여 인문적 통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동선을 편견 없는 맨 얼굴로 만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매력적인 힘도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 180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사람,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이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삶 속에 잠복해 있는 혈관 사이로 뜨듯한 피가 흐르는 사람일 수가 있을까요? 창백한 이론과 관념의 세계에다 자기를 아무 생각 없이 내동댕이쳐 버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지경이 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욕망 다음의 일입니다. 욕망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생래적으로 있던 모든 활동성이 제거된 후, 움직임이 없는 정물화로 있다는 뜻입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호기심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어떤 문제의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으되 사람이 아니지요 - 198

 

'안정'이나 '완벽'은 죽음의 세계예요. 오히려 '불안'이 세계의 진상입니다. 죽어 있는 것은 안정을 유지하고, 살아 있는 것은 불안정합니다. 죽은 것은 가만히 있고, 산 것은 움직이지 않습니까?

 

불안을 피해 안정으로 나아가려는 꿈, 가능할까요? 불완전을 피해 완전이나 완벽에 도달하려는 꿈, 이루어질까요? 가능하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없는 일이니까요.

 

불안과 불완전을 감당하고 가볍게 다루는 힘을 갖는 것이 맞습니다. 불안과 부정형성이 이 세계의 진상이고, 그것이 이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이념의 세계에 있지 않고 일상에 있습니다. 저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 207

 

세계에 대한 인간의 소유적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활동이 바로 세계에 대하여 개념화하는 일입니다. '개념'은 인간의 소유적 태도가 관념의 형식으로 남겨진 것이죠. 세계는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정지란 없습니다. 하지만 개념은 변화를 정지의 상태로 고정시킨 것입니다. 개념은 변하지 않지요. 움직이지 않아요.

 

개념으로 형성된 지식 또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활동성이 없지요.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이념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변화가 존재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품사의 형태로 설명한다면 세계는 동사입니다. 세계를 포착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의 산물, 즉 개념이나 관념 혹은 지식이나 이념은 모두 명사적 형태입니다. 세계에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동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재를 모두 담을 수도 없고 또 실재를 사용하여 소통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어가 있고, 개념이 있고, 관념이 있고, 지식의 축적이 있고, 이념의 세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명사의 세계를 구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사는 존재하는 것이고, 명사는 존재를 아주 제한적으로 담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세계를 제한적으로 고정시켜 놓은 명사적 세계에 함몰되어, 그것을 세계 자체로 착각하면서 고집을 부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숨막혀도 숨 막히는 줄 모르고, 답답해도 답답한 줄 모르다가 스스로 질식하거나 스스로 고갈되어 갑니다. 우리는 왜 삶 속에서 지치고 피곤한가? 이 명사적 세계에 스스로를 단단히 가두고 스스로 고가ㅏㄹ되어 스스로 질식되기 때문입니다.

 

행복해지는 길, 생명의 길, 창조의 길, 윤택한 길은 바로 명사로 굳어 있는 자신을 동사적 상태로 깨우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수양의 핵심, 깨달음의 핵심은 사실 명사로 굳어 있는 자신을 동사적 상태로 되돌리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예술이 개입됩니다.

 

예술은 명사적 자아가 동사적 자아로 부활하려는 길목에서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건입니다. 예술적 감동이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는 자신을 깨우는 충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와인 잔 들고 '논論'해야 하는 체계가 압니다. 바로 인간을 깨우는 활동이자 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덕이나 욕망은 예술적 힘이 뭉쳐 있는 요처입니다. '덕이 있는 삶'이랄지 '욕망이 주인의 삶'이 결국 미학적 삶으로 승화되는 이유입니다. 부처님의 해탈도 장자의 소요유도 바로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 219

 

이 세계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개념이에요. 구체적인 실재가 아닙니다. 그럼 이 세계에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 '죽어가는 일'이 존재해요. 이 세계에 진짜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건'입니다.

 

개념에 의해 인간이 움직여지기는 어렵습니다. 피상적으로 짧은 충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 의한 피상적 충격은 심연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지요. 영혼을 자극하지는 못합니다.

 

영혼은 우리의 것으로 공유되지 않습니다. 고유한 나의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것이지만, 나의 것은 아닙니다. 죽어가는 일, 죽어가는 사건이 비로서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죽어도 일상에서 죽습니다. 보편의 세계에는 '우리'가 존재하지만, 일상의 세계에는 '내'가 존재합니다. '죽음'은 보편이지만 '죽는 일'은 일상입니다. 보편적 개념으로 내 영혼을 자극하기는 어렵습니다 - 228

 

낯설게 보이는 골목길에 서서 나무를 보고 발생한 사유의 궤적이 바로 속도에까지 꽂힐 수 있는 활동, 이것이 바로 철학적 태도의 시원적인 출발 형식입니다.

 

단, 여기에 조건이 있겠죠? 먼저 과음을 할 것, 둘째, 외박을 할 것, 셋째, 같은 시간대에 역류를 할 것, 이 역류의 과정 속에서 여러분은 매우 보배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낯섦'입니다.

 

낯섦이 발생하는 예민한 상태의 관찰력을 가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로수의 환영처럼 그냥 지나치는 것일 뿐입니다. 익숙함과 결별하여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철학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 240

 

윤리적인 사회는 윤리 규정이 만드는 게 아니에요. 덕이 있는 개별적 존재들이 많아질 때 윤리적인 사회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자기 삶을 일상에서 영위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질 때 윤리적인 사회가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자기 일상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저절로 윤리적인 사회가 됩니다 - 254

 

이것저것을 많이 배운 사람이 대답만 할 줄 안다면, 이건 바보입니다. 왜 바보일까요? 자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기는 언제 존재합니까? 바로 질문할 때 존재합니다.

 

질문을 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죠? 일단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생겨납니까? 호기심이 있어야 돼요. 호기심은 무엇이 만들어 냅니까? 이성이 만들어 내나요? 우리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에게만 고유하게 되는 것입니까? 나에게만 고유하게 있는 것이지요.

 

자기가 욕망의 주체로서 작동할 때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 호기심을 한번 내뱉어 보는 일, 이것이 질문이에요. 대답하는 곳에는 자기가 존재하지 않아요. 질문하는 곳에 자기가 존재합니다. 자기가 우리라는 집단 속에 용해되어 있으면 대답만 가능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 살아 있을 때, 질문이 시작됩니다 - 257

 

머리를 굴리고 혀를 놀려서 뱉어 내는 말들로는, 근육에 맺히는 땀으로 배운 것을 절대로 당해 낼 수 없어요.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에 속지 마세요. 책 속에는 책을 쓴 그 사람이 생각한 길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나의 길은 아니에요.

 

다만 앞선 이들의 고뇌한 흔적을 엿보고 힌트를 얻으면 족할 뿐, 책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진리를 구하지는 마세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내 것인 양 받아들이지 마세요.

 

책에서 읽은 다른 이의 말을 나의 언어로 둔갑시켜 차용하지 마세요. 다른 이의 말을 빌려서 내 욕망을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런 좋은 말들은 듣고 난 뒤 씹어서 뱉어 버리세요.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도 여러분의 말이 아닙니다. 읽고 나서 버리든가, 남을 주던가, 아무튼 몸 밖으로 뱉어 버리세요 - 266

 

저는 여러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 아닌 것은 힘이 없습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 아니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면 아름답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습니다. 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장르는 자기로부터 나온 이야기에서 흘러나옵니다 - 280

 

세계는 잠시도 정지하지 않습니다. 항상 움직여요. 그런데 인간의 사유, 개념, 지식은 모두 정지되어 있어요. 틀이 갖추어져 있지요. 명사형이에요. 이 특정한 틀을 포기하는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계란 하나도 깰 수 없어요.

 

지식과 이념의 틀로부터 벗어나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힘'이에요. 바로 '주체력'이고 '덕'이에요. '욕망의' 친척들이지요. 거듭 강조한건대, 인문적 통찰은 명사 형태로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가는 틀을 자기가 뚫고 나올 수 있을 때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대답하는 주체에서 질문하는 주체로 전변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287

YES마니아 : 로얄 x**x 2021.11.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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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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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인문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리는 무늬가 내 삶인 것이다. 어제도 그렸고 오늘도 그리고 있고 내일도 그릴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이라는 벙커 강의가 올라 온 것을 봤다. 머리를 짧게 자른 어떤 강사가 술술 이야기 하는 모습에 빠져서 강의를 모두 들었다. 속으로 저 사람 누구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매력이 있었다. 조금 농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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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인문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리는 무늬가 내 삶인 것이다. 어제도 그렸고 오늘도 그리고 있고 내일도 그릴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이라는 벙커 강의가 올라 온 것을 봤다. 머리를 짧게 자른 어떤 강사가 술술 이야기 하는 모습에 빠져서 강의를 모두 들었다. 속으로 저 사람 누구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매력이 있었다. 조금 농담이 어설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마음에 들었다. 최진석이라... 예스24에서 검색을 하니 몇권의 책이 있었다. 한꺼번에 구입을 하고 읽고 싶었던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을 읽었다.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 들어오는 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교내 서점을 서성이다가 얇은 책 한권을 샀다. 공학을 전공하는 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는 생각이 겉표지에서 나타나는 책이었다. ‘양주철학의 이해’였던가? 하여튼 그런 책이었다. 몹시 얇았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책에서 그렇게 큰 희열을 느꼈던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그 책 내용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 책에 쓰여 있던 내용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이 양주를 말하기 위해서다.

인문학에 관련된 팟방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중국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양주를 ‘극도의 이기주의’라는 말을 했다.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런가? 양주가 말한 내 장단지에 있는 털 한올이 천하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이기주의’인가? 내털을 내가 안뽑겠다는데 왜 그게 이기주의 인가? 내가 너의 털을 뽑아서 내 인생을 피게 만들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게 이기주의 인가? 우리의 집단 교육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 때 그 얇았던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이기주의가 아닌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옳으면 세상이 올고 내가 깨끗하면 세상이 깨끗하다. 난 이 말을 서슴없이 이해를 했다. 어렵지 않았다. 모든 개인이 각자가 깨끗하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깨끗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은 옆을 쳐다본다. 나만 깨끗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그게 아닌데...

앞에도 밝혔지만 난 공학을 전공하였지만 그곳에서도 사이비다. 그곳을 떠나왔으니...
그렇지만 난 내 실존을 내 안에서 개념으로 만든다. 남이 만들어준 개념이 아닌 내 개념이다. 그 개념은 너희들 개념보다는 조금 여유롭고 아름답다. 내가 도덕을 떠난 것을 너희들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내 도덕은 너희가 말하는 비도덕이나 부도덕이 아니다

그 87년의 여름도 많이 더웠던가?

아무래도 거칠다.
몹시 반가운 책을 만나서 허둥지둥...
g******i 2018.07.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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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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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 책을 뒤는게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둘째, 이전에 알았어도 제 그릇이 크지 않았기에, 이 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 했을거라 생각합니다.솔직히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전입니다. 출판사 사장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인문학 책은 많이 읽어 봐서 어느정도 알고 있다" 는 거만한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를 미뤄왔습니다.그리고 최근 여러 힘든 일을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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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 책을 뒤는게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둘째, 이전에 알았어도 제 그릇이 크지 않았기에, 이 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전입니다. 출판사 사장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 책은 많이 읽어 봐서 어느정도 알고 있다" 는 거만한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를 미뤄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여러 힘든 일을 겪은 이후로,,,이 책을 펴보고 싶어 졌고,,,하루만에 다 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입니다. 이 책을 미리 알았으면 좋았겠다.



저자는 말합니다.


"욕망하라" 라구요,,


생각 말고, 이성 말고 "욕망하라" 라구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알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사회적 잣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말고, 남이 만든 기준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찾아서 자신의 삶을 살아라...라고 말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욕망이 아닙니다.

자신의 본능과 하고 싶은 마음에 충실하는 그런 욕망.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그런 욕망입니다.




최근 저를 뒤흔든 것이 바로 "이성과 욕망"의 깨달음인데,,,..그 핵심을 이 책에서 만났습니다.



심리학 책 들 중에도 본질을 다루는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제목만 거창하지 않고, 진정 본질을 다루는 책들 말입니다.

자존감 책 들 중에도 제목만 이쁜 책들 말고 핵심을 제대로 다루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본질을, 핵심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p******1 2018.06.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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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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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트브 보다가 고명환 씨가 매년 읽는 책이라며 언급 했어요. 이 책 구절 중에 인간은 무늬를 만들어 낸다.책 긍금해서 사봤어요. p58인간은 그냥 들쑥날쑥 사는게 아니에요. 하니의 큰 무늬, 커다란 결 위에서 사는 겁니다. 그외에 고대와 중세 근대를 사건으러 나누는게 중세시대는 신이 중심이 된 사회였다면 사회가 변화기된 계기, 즉 사건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라는 철학적 질
"굿" 내용보기
유트브 보다가 고명환 씨가 매년 읽는 책이라며 언급 했어요.

이 책 구절 중에 인간은 무늬를 만들어 낸다.

책 긍금해서 사봤어요.

p58

인간은 그냥 들쑥날쑥 사는게 아니에요. 하니의 큰 무늬, 커다란 결 위에서 사는 겁니다.

그외에 고대와 중세 근대를 사건으러 나누는게

중세시대는 신이 중심이 된 사회였다면

사회가 변화기된 계기, 즉 사건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라는 철학적 질문이 생겨나서 라고 합니다.

우선 한 번 쭉 읽어봤는데
다음주 부터 천천히 다시 읽어볼 책 이네요 ㅎㅎ

소장가치 100프로.

고명환씨가 왜 매년 이 책을 읽는다고 하는지 알겠어요 ㅎㅎ
c**********2 2022.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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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 대해 쉽게 알아갈 수 있는 책
"노자에 대해 쉽게 알아갈 수 있는 책" 내용보기
책방 투어가 취미인지라, 서울대 근처 서점을 찾았다.한쪽에는 노자 관련 철학책들이 즐비해있길래, 주인장분께 입문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 부탁드렸다.결론적으로 그 다음 스텝으로 읽기 좋은 책을 추천받으러 그 서점을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이런 북 큐레이션이 책방에서 책을 사는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노자에 대해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작가는 현
"노자에 대해 쉽게 알아갈 수 있는 책" 내용보기
책방 투어가 취미인지라, 서울대 근처 서점을 찾았다.
한쪽에는 노자 관련 철학책들이 즐비해있길래, 주인장분께 입문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 부탁드렸다.

결론적으로 그 다음 스텝으로 읽기 좋은 책을 추천받으러 그 서점을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이런 북 큐레이션이 책방에서 책을 사는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노자에 대해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작가는 현재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을 개념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고 시야가 좁을 곳에 갇히게 된다. 독서모임에서는 그 이유가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 이어졌다. 서양은 어떠한 학문을 기반으로 토론을 진행해 새로운 것들을 쌓아나가는 반면, 동양은 기존의 학문을 이해하고 더 깊게 분석한다. 실제로 서양은 어떠한 현상을 이해하고 논문을 쓸때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다고 하지만, 동양은 과거의 이론을 가져와 현재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쓰려고 한다. 현재를 과거를 기반으로 파악하고 알아내기 보다는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파악하려는 차이랄까.

세상을 동사로 보기위해서는 나의 욕망에 집중해야한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건 식욕과 성욕이다. 오늘 점심에 무얼 먹을지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아무거나. 라는 답변이 줄곧 돌아오곤 한다. 이또한 사회 혹은 집단에 맞추어 개인의 욕망을 들여다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또 서양과 같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주도해나가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개개인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욕망을 들여다 보고 행동할 때, 노자가 말하는 자연과 같은 삶에 더 다가갈 수 있다.
k*****9 2021.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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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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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에서 부터 느끼는 거지만 쉽지 않고 뭔가 깊이 사고 해야 될 것 같은 생각때문에꽤나 어려운 책이 아닐까라는 두려움도 있었다.인문학이란 단어는 요 몇 년 사이에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듣다보니 익숙하지만막상 그게 뭔지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과연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기에오히려 마음 편하게 읽기 시작한 것 같다.그래서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인간이 그리는 무늬" 내용보기

도서명에서 부터 느끼는 거지만 

쉽지 않고 뭔가 깊이 사고 해야 될 것 같은 생각때문에

꽤나 어려운 책이 아닐까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인문학이란 단어는 요 몇 년 사이에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듣다보니 익숙하지만

막상 그게 뭔지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과연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기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읽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장이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런 모습이 스스로에게 무늬를 새기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가장 핵심 포인트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이 부분이다.

지식이나 경험들이 과연 진정으로 나에게 좋은일일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결국은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하고 본능에 솔직해 지는것만이

내 모습에 그려지는 가장 나다운 무늬가 아닐런지..

어렵게만 느껴지고 막연한 인문학이라는 세계에

그래도 살짝 한 발짝 들여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해주는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금이라도 내 사람의 주인이 되고 싶다.


h*******1 2020.03.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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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낭독이 좋다는 부분이 나와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구절에 맞닥뜨렸습니다.‘이야기에는 감동이 있다. 거기에는 여백이 존재하여 다른 '나'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울컥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에 참여한 순간이자, 또 다른 내 이야기가 생겨난 순간이었습니다.저 이야기들 속에서 '나'와 '여백' 느껴지고 감동과 기쁨의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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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낭독이 좋다는 부분이 나와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구절에 맞닥뜨렸습니다.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다. 거기에는 여백이 존재하여 다른 '나'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컥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에 참여한 순간이자, 또 다른 내 이야기가 생겨난 순간이었습니다.
저 이야기들 속에서 '나'와 '여백' 느껴지고 감동과 기쁨의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울어~본 적~이 언.젠.가'를 부르게 하는 뜨거운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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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노래의 제목은 김동률의 '노래'입니다. 조심스럽게 강력추천합니다.

s***s 2019.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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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흔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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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10월책을 받은 날 늘 그렇듯, 표지 안에 한 줄 남겼다.내가 그려 온 그림은, 내가 제대로 보기는 하는가?그 '제대로'가  무엇인지는 알고 살아 왔는가?지금의 나를 좋아하는가? 사랑하고 있는가?그리고 책을 읽은 20년2월엔이렇게 썼다.누가 기억이나 할까?특별한 날에나 떠올리겠지.'내 의지대로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았다고'의식있을 때 말하고 떠나고 싶은데 그리될라나, 이도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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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10월

책을 받은 날 늘 그렇듯, 표지 안에 한 줄 남겼다.

내가 그려 온 그림은, 내가 제대로 보기는 하는가?

그 '제대로'가  무엇인지는 알고 살아 왔는가?

지금의 나를 좋아하는가?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책을 읽은 20년2월엔

이렇게 썼다.

누가 기억이나 할까?

특별한 날에나 떠올리겠지.

'내 의지대로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았다고'

의식있을 때 말하고 떠나고 싶은데 그리될라나, 이도 욕심이겠지? 라고

최진석 교수, 작가, 철학자의 책은 항상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이 좋아서 자주 사서 읽게 된다.

쉽게 풀어 이해하기 쉽고,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서 그 또한 좋다.

흔히 하는 말로 '나만 잘하면', 난 이 말을 참 좋아 한다.

s*******e 2020.04.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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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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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첫 걸음<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저, 소나무)류경림언제부턴가 ‘인문학’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관련 책은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발간되었고 수시로 신문이나 잡지에 인문학 관련 글이 실리며 강의나 강연, 인문학 캠프, 여행까지 생겨났다. 그뿐인가, 이제는 각 분야에서 인문학을 접목시키고 있다.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인데 이토록 열광하는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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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첫 걸음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저, 소나무)

류경림

언제부턴가 인문학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관련 책은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발간되었고 수시로 신문이나 잡지에 인문학 관련 글이 실리며 강의나 강연, 인문학 캠프, 여행까지 생겨났다. 그뿐인가, 이제는 각 분야에서 인문학을 접목시키고 있다.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인데 이토록 열광하는가. 인문학이란 주제로 강연에 몇 번 참석해 보기도 하고 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무엇이라 정의하긴 어려웠다. 아니, 정의는커녕 무엇을 해야 할 지조차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건 어렴풋이나마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어려웠다.

갈피를 못 잡던 중 읽게 된 책은 바로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중국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노자의소>, <장자철학등을 쓴 저자는 이 책에서 인문학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외쳐 볼 법한 인문학, 넌 누구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쉽고 다양한 예시를 통하여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문학이란 글자의 의미, 우리의 상황,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성찰해봄으로서 인문학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라는 글자를 봅시다. ‘은 원래 무늬라는 뜻입니다.(중략) 무늬는 누가 그립니까? 인간이 그려요. 그럼 인문人文은 뭐냐?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말입니다.”(p. 58)

인문학이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욕구대로 자신만의 무늬를 그려가는 과정이다. 정치적 판단, 이념과 같은 우리의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에 집중하라고 한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체계로부터 이탈"(p. 85) 하라고 한다. 세계를 개념의 틀에 갇힌 명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 바라보며 사건을 중심으로 대처한다. 익숙함과 결별하여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 낯섦을 잡고 놓지 않는 집요함으로 깨어있는 예민함을 유지하여 창조적 세계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신과 대면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글쓰기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은 자신이 자기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p. 263)라고 했다. 두 번째는 운동으로 머리를 굴리고 혀를 놀려서 뱉어 내는 말들로는, 근육에 맺히는 땀으로 배운 것을 절대로 당해 낼 수 없어요.”(p. 266) 라며 직접 몸을 움직여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 번째는 낭송으로 낭송이 사라졌다는 것은 글 읽는 과정에서 정신만 사용하고 육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p. 268)라며 낭송을 통한 육체화의 회복과 체득의 실현을 통해 자신의 등장에 대해 강조했다. 결국 자신의 욕망대로 살고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인문적 성찰의 힘을 기르라고 한다. 

틀에 박히고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린 공허한 삶에 지쳤다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것으로 변화를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기 위한 첫 걸음,‘자신이 그리는 무늬를 찾는 첫 걸음은 결국 우리가 아닌 내가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작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r*********m 2018.0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