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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宮闕)은 수명이 다한 건축 유형이다. 더 이상 짓지도 않고 원래의 의도대로 사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산이 없어져 버린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관심이고 지적인 관심”(서우석 지음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280 페이지)이라는 말을 따라 수명이 다한 건축 유형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이고 지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궁궐에는 임금과 왕세자 두 남자 외의 장성한 남자가 거처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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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궁궐은 언제가도 아름답지만 언제가도 알쏭달쏭하고 낯설다. 궁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침 뉴스에서 새로 발간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이 책을 보게 되어 이 기회에 읽어보고자 구입하였다.
이 책은 오롯이 건축학적인 입장에서 궁궐을 바라보기 보단 그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 시대의 제도, 이념을 같이 살펴보며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궁궐속에 녹아있는지를 해석하였다. 그래서 건축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 역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궁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이것이 무슨 형식이냐보다는 이 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이 안에서 무슨일이 있었느냐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학적인 내용 역시 중요하지만 이건 나의 지식이 조금 더 쌓인 후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앞 부분에서는 궁궐과 이념, 제도의 조화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해 조선시대 왕들과 궁궐안에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안에서의 예법, 의례, 조회의식등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2부와 3부에서 그 개념들이 어떻게 궁안에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현재 존재하는 5가지의 궁을 같은 비중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주로 조선시대의 법궁인 경복궁과 이궁중 가장 유명했던 창덕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덕수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이 조금 아쉬웠는데 다른 궁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더 있었으면 훨씬 알찼을 것 같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권력과 건축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폭군이라는 이유로 '군'의 칭호를 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열정을 쏟아부었던 건축분야로 지금 좀 더 화려하고 멋진 건축물을 갖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물론 그들이 정치적으로 위대하지 못한 군주였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현대에 전혀 남겨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화려하고 장엄한 궁에 대한 왕들의 욕망이 흥미로웠다.
또 한가지 저자가 지적한 것 중 지금 사람들이 종종 조선의 500년이라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태조와 고종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 살며 꽤나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저 '조선의 왕' 이라는 같은 범주안에 태조와 고종을 넣고 있었으니 무척 뜨끔한 말이었다.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태조가 만든 경복궁은 우여곡절끝에 그 자리에 건재했으나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도, 그에 맞춰진 제도도 바뀌었으니 궁궐의 쓰임새 역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경복궁이라도 여러가지 사용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궁에 대한 나의 지식은 매우 빈약하다. 특별히 미적 감각이 특별난 것도 아니고 건축학적 지식이 없으니 내가 궁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는건 역사 안에서 궁이 어떻게 이용되느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척 흥미로웠지만 이야기의 깊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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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쪽 공부는 꽤 했지만, 역사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홉스봄 책으로 유럽 근대사는 한 번 훑었으나, 한국사는 딱 수능을 치기 위한 암기 정도만 했다. 근현대사야 강준만 교수가 쓴 책으로 했으나, 조선부터는 까막눈. 근대 이전의 한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마 유교를 배우면서부터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 종교사 수업에서 배운 조선은 유교적 이상주의를 실현한 사회. 물론, 경제사나 미시사 등 다른 시선을 들이대면 저 명제는 바로 깨지긴 할 터. 그럼에도 관점이 흥미로웠다. 왕부터 지도층인 사대부와 양인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지배 이념으로 똘똘 뭉쳐 돌아간 사회는 유례가 없을 것이라는. 그 지배 이념이 돈이나 칼이 아니라, 인의예지를 기반으로 한 도덕률이라니! 꺄옷, 볼테르가 조선사를 공부했다면 청황제 대신 조선왕을 경배했으리라.
『궁궐, 조선을 말하다』라는 책을 본 순간, 결심했다. 사서 읽어야지. 재밌어 보였다. 진짜 재밌었다. 끝.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는 내가 이쪽 분야에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회와 궁궐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소 싱거울 수도 있다. 256쪽에, 사진이 많은지라 실제 분량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이쪽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있되 전혀 아는 게 없다면 즐겁게 독서를 할 수 있을 테다.
궁궐, 왕이 사는 공간이다. 왕은 개인이면서 임금이다. 궁궐에서 개인의 공간은 내전으로, 임금의 공간은 외전으로 형상화된다. 침전은 내전, 편전과 정전은 외전이다. 단순히 말하면 내전은 침실, 편전은 임금이 사무 보는 곳, 정전은 조하를 보는 곳이다. 조회의 종류는 조하, 조참, 상참이 있다. 조하가 가장 크고 정전에서 거행했다. 조참은 근정문에서, 상참은 매일 아침에 거행된다. 대규모 조회 의식은 점차 번거롭게 느껴져,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하례를 생략하는 쪽으로 결정한다. 5일마다 했던 조참도 효종대에 이르러 1년에 1회만 했고, 상참의 자리는 경연이나 차대와 같은 덜 형식적인 회의가 대체해 갔다고 한다.
조선에는 궁궐이 5개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그렇다. 경희궁은 일제시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법궁과 이궁이라는 구분이 있다. 법궁은 왕조의 가장 중요한 궁궐로 모든 의식의 기준이 된다. 이궁은 이보다 낮은 위계의 궁궐로 법궁을 보완하는 위치에 있다. 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로 대원군이 새로 세우기까지는 창덕궁이 법궁 역할을 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로, 늘어나는 대비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세웠다.
그밖에 종묘가 가로로 길어지게 된 사연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종묘는 고대의 예를 따라 7칸이어야 한다. 제후의 종묘는 시조묘 1위, 4대조 신위, 그리고 불천위 2위 등 7묘로 구성해야 한다. 조선의 종묘는 19칸이다. 불천위, 즉 대수가 지나도 계속 모시는 신위가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편, 덕수궁은 전근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고종이 자리에서 물러나, 쓸쓸하게 늙어간 공간이기도 하다.
일제가 망한 뒤에도, 한국에서는 왕정 복고 운동이 없었다. 그만큼 조선 왕조가 엉망인 왕정이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이 실제로 맞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조선 왕궐이 흥미로운 텍스트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건축은 소통 양식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조선 궁궐에도 적용된다. 조선 궁궐은 2천 년을 넘게 중화문화권을 이끈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동시에, 조선의 특수함을 나타내준다. 조선 법궁인 경복궁은 최대한 중국의 궁궐처럼 지으려 했으나, 창덕궁은 상대적으로 이로부터 자율적이었다.
알면 알수록 많이 보이는 법, 좀 더 배우고 봄에 궁궐로 출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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