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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다한 궁궐을 중심으로 조선의 실체를 알아보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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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宮闕)은 수명이 다한 건축 유형이다. 더 이상 짓지도 않고 원래의 의도대로 사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산이 없어져 버린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관심이고 지적인 관심”(서우석 지음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280 페이지)이라는 말을 따라 수명이 다한 건축 유형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이고 지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궁궐에는 임금과 왕세자 두 남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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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宮闕)은 수명이 다한 건축 유형이다. 더 이상 짓지도 않고 원래의 의도대로 사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산이 없어져 버린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관심이고 지적인 관심”(서우석 지음 ‘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280 페이지)이라는 말을 따라 수명이 다한 건축 유형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이고 지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궁궐에는 임금과 왕세자 두 남자 외의 장성한 남자가 거처할 수 없었다.


사전에 의하면 궁궐은 왕이 거처하던 집이다, 이 말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궁궐의 반대어는 여염(閭閻)이라는 것이다.(宮: 집 궁, 闕: 대궐 궐. 閭: 마을 여. 閻: 마을 염.) 계급사회였던 옛날 건물에도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같은 신분 즉 서열이 있었다고 한다.(이장희 지음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참고) 궁궐에는 많은 전(殿)이 있다. 선정전(宣政殿),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근정전(勤政殿), 인정전(仁政殿), 자경전(慈慶殿), 대조전(大造殿), 수정전(修政殿), 만수전(萬壽殿), 춘휘전(春輝殿), 집상전(集祥殿), 경복전(景福殿).....


당(堂)도 여럿 있다. 희정당(熙政堂), 자선당(資善堂), 중희당(重熙堂)... 각들도 있다. 비현각(丕顯閣)이 그것이다. 재도 있다. 낙선재(樂善齋)가 그것이다. 루도 있다. 천경루(千慶樓), 경회루(慶會樓)...건축학 교수 조재모는 수많은 궁궐 관련 책들의 홍수 속에서 건축된 궁궐을 운영하는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한다. 메커니즘이란 의식(儀式)일 수도 있고 시스템일 수도 있다. 저자에 의하면 궁궐이 하드웨어라면 궁중의례는 운영체계쯤 된다.


‘논어(論語)’에 나오듯 공자는 대부(大夫)인 계씨에게 “천자(天子)의 팔일무(八佾舞)를 자기 집 마당에서 추다니. 이런 참담한 행위를 보고서도 그냥 참고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어떤 패륜(悖倫) 행위인들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는가?“란 말을 했다. 천자의 춤은 8☓8 즉 64명이 추는 춤이어야 하고 제후(諸侯)의 춤은 6☓6 즉 36명이 추는 춤이어야 하고 대부(大夫)의 춤은 4☓4 즉 16명이 추는 춤이어야 하고 사(士)는 2☓2 즉 4명이 추는 춤이어야 한다.


이런 엄격함을 염두에 두고 읽을 글이 본문에 나온다. ”국토의 중심, 혹은 천하의 중심이라 할 만한 자리에 대규모의 건축군을 구성하고 이 하드웨어를 훌륭히 운영할 수 있는 제도를 완비해 그 누구도 함부로 이와 같은 건축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절대덕인 공간, 궁궐을 만드는 관점이다.“(34 페이지) 왕사동례(王士同禮)냐 왕사부동례(王士不同禮)냐 하는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왕과 선비의 예법이 같으냐 다르냐의 문제이다. 조군건축(組群建築)이란 개념이 있다. 개별 건축물로는 뚜렷한 다양성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조합되는 관계 방식을 통해 그 특징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나는 광화문(光化門) 인근에 자주 간다. 광화문은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景福宮)의 정문(正門)이자 남문(南門)이다. 동문(東門)은 건춘문(建春門), 서문(西門)은 영춘문(迎春門), 북문(北門)은 신무문(神武門)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 전기의 법궁은 경복궁, 후기의 법궁은 창덕궁이라 할 만하다.(212 페이지) 한양의 5대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희궁(慶熙宮), 덕수궁(德壽宮) 등이다.(인경궁仁慶宮이 있었지만 지금은 소멸되었다. 인경궁은 광해군 때 인왕산 아래에 지었던 궁궐로 인조반정 이후 헐렸다. 경희궁도 광해군이 건설했으나 요행히 살아남았다.)


창덕궁은 왜란으로 불탄 이후 중건되기까지 비교적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된 궁궐이다. 창덕궁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212 페이지) 조선 전기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조선 후기에 경희궁, 덕수궁이 영건(營建)되었다.(영건: 집이나 건물을 지음)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東闕)이라 불렸다. 중요한 사실은 5대궁이 동시에 존재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103 페이지) 경복궁이 법궁으로 불렸다면 창덕궁 등은 이궁(離宮)이라 불렸다.(105 페이지)


경복궁의 경우 정전(正殿)이 근정전(勤政殿)이고 왕이 거처하는 공간인 편전(便殿)은 사정전(思政殿)이다. 왕세자와 임금의 통과의례가 명문화되어 있는 문서가 ‘국조오례의’이다. 관례(冠禮: 상투를 쓰고 관을 쓰는 것으로 남자에 해당), 계례(笄禮: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 것으로 여자에게 해당. 笄: 비녀 계)는 성인식에 해당한다. 임금에게 개인적 통과의례보다 중요한 것은 책봉(冊封)과 즉위(卽位)이다. 저자는 법칙과 개념으로 건축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익숙해진 대가로 잃었던 사람들, 그들은 결국 다시 손에 쥐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85 페이지)


이를 보며 나는 구조주의를 떠올렸다. ”구조주의는 세계의 가시적 현상들과 다른 수준의 존재, 그들을 그렇게 나타나도록 만드는 법칙성의 존재를 탐구해 보여줌으로써 사변적 철학의 이상을 이어받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사변적 철학의 이상을 이어받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사변적 철학이 지니고 있는 수학적 맹점을 논파한다...“(이정우 지음 ‘담론의 공간’ 140 페이지)


지난 번 북촌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걷다가 목은(牧隱) 이색(李穡) 영당(影堂)을 보았다.(종로구 수송동) 내가 사는 연천군의 왕징면 노동리에서 보았는데 영당이 두 군데(이상?)인 것이 의아했다. 영당은 영정(影幀)을 모시는 곳이고, 사당(祠堂)은 신위(神位)를 모시는 곳이다.(90 페이지. 영정은 고인의 사진을 모시는 곳이고, 신위는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신위는 두 곳에 둘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신위가 두 군데에 있으면 혼(魂)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신위는 종묘(宗廟)에만 둔다는 논리는 그런 차원이다.(종묘는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宗: 마루 종, 廟: 사당 묘) 임금의 승하(昇遐: 오를 승, 멀 하)는 바른 죽음 즉 정종(正終)이어야 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유언이 별도로 있었는지, 후사(後嗣)가 변경되었는지 등의 의혹이 생기고 후계 문제에 관한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 후기 한양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5대 궁중 덕수궁은 건설 전이어서 표현되어 있지 않다.


세종의 시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유교적 예치 공간으로서 궁궐을 인식하고 국가의 의례체계 정비와 건축 공사를 병행했기 때문이다. 주희(朱熹), 정현(鄭玄) 등의 대 유학자들의 글에 건축과 관계된 담론이 상당히 많은 것은 그들이 건축가는 아니지만 유교적 예치 사회를 꿈꾼 결과이다.(152 페이지) 경복궁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완전히 소실(燒失)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세종이 만든 경복궁은 태조의 경복궁과는 사뭇 달랐으며 한참 후에 세워진 고종대의 경북궁과도 또 달랐다.(123 페이지)


세종 시대의 경복궁에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은 그것이 유교적 예치(禮治)를 위한 공간적 바탕이기 때문이다.(123 페이지) 경복궁은 중국적 규범에 충실했다.(107 페이지) ‘논어’에는 예에 관한 말이 많이 나온다. 흥어시(興於詩), 입어예(立於禮), 성어락(成於樂)이 그것이고 도(道)에 뜻을 두었고 덕(德)을 쌓았으며 인(仁)에 의지해 예(禮)에서 노닐었다는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 의어인(依於仁) 유어예(遊於藝)가 그것이다.


저자는 안동의 능동재사 앞에서 추원루라는 건물의 이름을 논어의 ‘신종추원(愼終追遠)’과 연관지어 볼 것을 주문한다. 신종은 부모의 장례를 극진히 하는 것을 말하고, 추원은 부모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오래 되어도 잊지 않고 추모하여 제사를 받드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은 증자왈(曾子曰) 신종추원(愼終追遠) 민덕귀후의(民德歸厚矣)이다. 신종추원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란 의미이다.


저자에 의하면 정전(正殿), 편전(便殿), 침전(寢殿)은 조선시대 궁궐 건축의 세 유형이다. 정전은 대규모 조회를 위한 가장 장엄한 장소이다. 편전은 임금의 집무실이다. 침전은 임금의 침소이다. 앞에서 위계를 이야기(전당합각재헌루, 8佾舞와 6일무, 법궁과 이궁 등)했지만 명당(明堂)과 정침(正寢)도 그렇다. 명당은 천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특별한 건축 유형이다. 정침은 천자, 제후, 정대부, 선비가 모두 소유할 수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건축이다.(152, 153 페이지)


정조 1년 인정전(창덕궁의 정전)에 품계석이 설치되었다. 이전까지의 의례 실행에서 품계에 따른 반열이 문란(紊亂)했기 때문에 정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예를 따라 인정전에 품계석을 설치했다. 주목할 점은 1품에서 3품까지는 두 줄씩, 4품에서 9품까지는 한 줄씩으로 하는 12줄의 품계석을 세웠는가, 이다. 저자는 전제권력은 건축사의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역사의 전반적인 경향이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문화의 취향은 점차 개인적으로 변해갔는데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의 건축물이 소박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회의 통치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190 페이지) 조선은 군약신강의 시대 또는 임금과 사대부에게 권력이 나뉜 시대였다. 흥미로운 것은 세종과 정조 시대가 임금들이 관료들의 지식 수준을 뛰어넘으면서 획득한 절대지식 권력의 시대라는 저자의 정의이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은 절대 권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195 페이지)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이래 270년간이나 공터로 남아 있던 곳을 중건해 조선의 자존심을 회복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저자에 의하면 궁궐은 권력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축이다. 또한 제도와 이념으로 다스려지는 유교주의적 궁궐 건축도 종종 권력자들의 욕망에 따라 변동되어 후대에 새로운 면모를 남겨놓기도 했다.(196 페이지)


창덕궁에만 후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창덕궁에 비원(秘苑)이 있다면 경복궁에는 향원지(香遠池), 창경궁에는 상림원(上林園)이라는 후원이 있다. 한양 도성 내에 왕실 사묘(私廟)가 많았는데 이는 정비(正妃)가 아닌 사람들은 종묘(宗廟)에 모셔질 수 없는 등의 엄격한 규정 때문으로 이는 정조에게는 궐 밖으로 행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227 페이지) 왕실 사묘들은 궁정동에 칠궁(七宮)이란 이름으로 합사(合祀)되어 있지만 원래 한양 도성 내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다.(228 페이지)


정조는 이 궁궐 밖 행차를 통해 격쟁(擊錚: 조선 시대에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이 임금의 거동길에 징, 북, 꽹과리 등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 錚: 쇳소리 쟁)을 활용해 민의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사라진 제국의 궁궐이 더 이상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라 말한다.(24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궁궐은 정치적으로 처단되어야 할 옛 권력의 상징적 이미지이자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향수와 분노를 일으킬 뿐이다.


향수와 분노라는 말이 묘하게 다가온다. 양가감정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말 같다. 저자는 물리적으로 사라진 건축이 가진 의미를 살피려면 건물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256 페이지) 공감한다. 다양한 책들을 읽어야겠는데 어떤 것부터 접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궁궐을 낭만과 향수의 시각으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조선의 멸망은 여러 요인이 두루 얽혀 일어난 사건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당쟁, 그리고 당쟁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성리학에 대해 우선 알아보고 싶다.

m******1 2016.05.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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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보는 조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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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궁궐은 언제가도 아름답지만 언제가도 알쏭달쏭하고 낯설다. 궁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침 뉴스에서 새로 발간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이 책을 보게 되어 이 기회에 읽어보고자 구입하였다.      이 책은 오롯이 건축학적인 입장에서 궁궐을 바라보기 보단 그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 시대의 제도, 이념을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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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궁궐은 언제가도 아름답지만 언제가도 알쏭달쏭하고 낯설다. 궁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침 뉴스에서 새로 발간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이 책을 보게 되어 이 기회에 읽어보고자 구입하였다.

 

 

 이 책은 오롯이 건축학적인 입장에서 궁궐을 바라보기 보단 그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 시대의 제도, 이념을 같이 살펴보며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궁궐속에 녹아있는지를 해석하였다. 그래서 건축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 역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궁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이것이 무슨 형식이냐보다는 이 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이 안에서 무슨일이 있었느냐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학적인 내용 역시 중요하지만 이건 나의 지식이 조금 더 쌓인 후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앞 부분에서는 궁궐과 이념, 제도의 조화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해 조선시대 왕들과 궁궐안에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안에서의 예법, 의례, 조회의식등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2부와 3부에서 그 개념들이 어떻게 궁안에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현재 존재하는 5가지의 궁을 같은 비중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주로 조선시대의 법궁인 경복궁과 이궁중 가장 유명했던 창덕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덕수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이 조금 아쉬웠는데 다른 궁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더 있었으면 훨씬 알찼을 것 같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권력과 건축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폭군이라는 이유로 '군'의 칭호를 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열정을 쏟아부었던 건축분야로 지금 좀 더 화려하고 멋진 건축물을 갖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물론 그들이 정치적으로 위대하지 못한 군주였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현대에 전혀 남겨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화려하고 장엄한 궁에 대한 왕들의 욕망이 흥미로웠다.

 

 

 또 한가지 저자가 지적한 것 중 지금 사람들이 종종 조선의 500년이라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태조와 고종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 살며 꽤나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저 '조선의 왕' 이라는 같은 범주안에 태조와 고종을 넣고 있었으니 무척 뜨끔한 말이었다.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태조가 만든 경복궁은 우여곡절끝에 그 자리에 건재했으나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도, 그에 맞춰진 제도도 바뀌었으니 궁궐의 쓰임새 역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경복궁이라도 여러가지 사용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궁에 대한 나의 지식은 매우 빈약하다. 특별히 미적 감각이 특별난 것도 아니고 건축학적 지식이 없으니 내가 궁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는건 역사 안에서 궁이 어떻게 이용되느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척 흥미로웠지만 이야기의 깊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다.

 

 

 

 

w*******7 2012.10.2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봄에는 궁으로 출사를 가자 - 조재모, 궁궐 조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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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쪽 공부는 꽤 했지만, 역사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홉스봄 책으로 유럽 근대사는 한 번 훑었으나, 한국사는 딱 수능을 치기 위한 암기 정도만 했다. 근현대사야 강준만 교수가 쓴 책으로 했으나, 조선부터는 까막눈. 근대 이전의 한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마 유교를 배우면서부터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 종교사 수업에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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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쪽 공부는 꽤 했지만, 역사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홉스봄 책으로 유럽 근대사는 한 번 훑었으나, 한국사는 딱 수능을 치기 위한 암기 정도만 했다. 근현대사야 강준만 교수가 쓴 책으로 했으나, 조선부터는 까막눈. 근대 이전의 한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마 유교를 배우면서부터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 종교사 수업에서 배운 조선은 유교적 이상주의를 실현한 사회. 물론, 경제사나 미시사 등 다른 시선을 들이대면 저 명제는 바로 깨지긴 할 터. 그럼에도 관점이 흥미로웠다. 왕부터 지도층인 사대부와 양인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지배 이념으로 똘똘 뭉쳐 돌아간 사회는 유례가 없을 것이라는. 그 지배 이념이 돈이나 칼이 아니라, 인의예지를 기반으로 한 도덕률이라니! 꺄옷, 볼테르가 조선사를 공부했다면 청황제 대신 조선왕을 경배했으리라.

 

『궁궐, 조선을 말하다』라는 책을 본 순간, 결심했다. 사서 읽어야지. 재밌어 보였다. 진짜 재밌었다. 끝.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는 내가 이쪽 분야에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회와 궁궐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소 싱거울 수도 있다. 256쪽에, 사진이 많은지라 실제 분량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이쪽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있되 전혀 아는 게 없다면 즐겁게 독서를 할 수 있을 테다.

 

궁궐, 왕이 사는 공간이다. 왕은 개인이면서 임금이다. 궁궐에서 개인의 공간은 내전으로, 임금의 공간은 외전으로 형상화된다. 침전은 내전, 편전과 정전은 외전이다. 단순히 말하면 내전은 침실, 편전은 임금이 사무 보는 곳, 정전은 조하를 보는 곳이다. 조회의 종류는 조하, 조참, 상참이 있다. 조하가 가장 크고 정전에서 거행했다. 조참은 근정문에서, 상참은 매일 아침에 거행된다. 대규모 조회 의식은 점차 번거롭게 느껴져,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하례를 생략하는 쪽으로 결정한다. 5일마다 했던 조참도 효종대에 이르러 1년에 1회만 했고, 상참의 자리는 경연이나 차대와 같은 덜 형식적인 회의가 대체해 갔다고 한다.

 

조선에는 궁궐이 5개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그렇다. 경희궁은 일제시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법궁과 이궁이라는 구분이 있다. 법궁은 왕조의 가장 중요한 궁궐로 모든 의식의 기준이 된다. 이궁은 이보다 낮은 위계의 궁궐로 법궁을 보완하는 위치에 있다. 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로 대원군이 새로 세우기까지는 창덕궁이 법궁 역할을 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로, 늘어나는 대비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세웠다. 

 

그밖에 종묘가 가로로 길어지게 된 사연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종묘는 고대의 예를 따라 7칸이어야 한다. 제후의 종묘는 시조묘 1위, 4대조 신위, 그리고 불천위 2위 등 7묘로 구성해야 한다. 조선의 종묘는 19칸이다. 불천위, 즉 대수가 지나도 계속 모시는 신위가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편, 덕수궁은 전근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고종이 자리에서 물러나, 쓸쓸하게 늙어간 공간이기도 하다.

 

일제가 망한 뒤에도, 한국에서는 왕정 복고 운동이 없었다. 그만큼 조선 왕조가 엉망인 왕정이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이 실제로 맞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조선 왕궐이 흥미로운 텍스트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건축은 소통 양식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조선 궁궐에도 적용된다. 조선 궁궐은 2천 년을 넘게 중화문화권을 이끈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동시에, 조선의 특수함을 나타내준다. 조선 법궁인 경복궁은 최대한 중국의 궁궐처럼 지으려 했으나, 창덕궁은 상대적으로 이로부터 자율적이었다.

 

알면 알수록 많이 보이는 법, 좀 더 배우고 봄에 궁궐로 출사 가야지.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3.01.07.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