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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무척 당혹해했다. 이것이 철학책인가, 난삽한 말은 없고 오히려 평이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나의 내공이 딸려서 그러한가, 처음 읽어서 그런가.
얼마 전에 <니체의 문체>라는 책을 읽었다. 왜 니체의 문체가 문제가 되는가. 니체의 문체의 목표는 문자라는 수단으로 구어성의 형식과 영향을 재현해내는 것, 다시 말하면 글을 말로 바꾸는 것으로서, 이것은 수사학의 전통과는 관계가 적고 문자에서 다시 소리가 울리도록 하려는 시적-음악적 의도와 관련이 있다. 니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에 대해 상상하는 그런 방식으로 철학을 하지 않는다. 그는 철학에 도취,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기에 그를 이성의 파괴자라 한다.
석가는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린다”는 말을 했다. 철학자란 논증을 사용하고, 다 썼으면 버린다. 아,<니체의 문체>가 그에 충실하였구나.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일반적인 철학책으로만 생각하고 논리적으로만 읽으려하였으니 어찌 읽히겠는가.
이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고, 니체의 시적-음악적 도취, 열광의 리듬을 나도 타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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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스스로가 대단한 고문 수사학자였다. 물론 니체의 고문헌학자로서의 자존심은 1872년 바젤 대학의 겨울 학기 교양 강의에서 무참히 깨지고 만다. 그 수업에 단 두 명의 학생만이 수강했던 것이다. 수업은 당시 니체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 매주 수요일 저녁 니체의 자택에서 진행되었다. 첫 수업에서 자존심 강한 니체는 학부생 두 명을 만나 보고서 분명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대학원 수업도 아닌 학부 교양 수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나 볼쌍스러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름 모를 독문과 학생과 법학과 학생의 착실한 노트 필기 덕분에 우리는 140여년전 니체의 고전수사학 강의 내용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 노트 필기를 보면 수사학이야말로 니체 글쓰기의 강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즉흥적인 것이라는, 기적처럼 순간적으로 생긴 것이라는 믿음을 불러 일으킬 때 그 작품이 완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46쪽)
니체는 이처럼 언어와 수사학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철학자였다. 니체가 잠언 스타일의 글쓰기에 강점을 보인 이유나, 우화나 과장 등의 수사법을 동원하여 비판적 글쓰기를 수행한 이유를 많은 니체 연구자들과 담론 분석가들이 궁금해했다. 물론 뇌매독에 의한 정신병의 증후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니체의 전공을 고려한다면 니체의 글쓰기는 단순히 병리학적 접근법으로만 다가가서는 안 된다. 하인츠 슐라퍼도 바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니체의 문체에 대해 무척 독일적인 풍격의 메타담론을 풀어 내고 있다. 아마 영미학자라면 보다 체계적인 증거와 논증을 가미한 문체 분석을 가했을 텐데 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서는 좀 더 위대해지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더욱더 아래로 추락하여, 좀 더 얄팍한 것, 좀 더 기분 좋은 것, 좀 더 약삭빠른 것, 좀 더 유쾌한 것, 좀 더 평범하고 좀 더 개성 없는 것, 좀 더 중국 같은 것, 좀 더 기독교 같은 것으로 변해가리라는 예감이 든다."(51쪽)
하인츠 슐라퍼의 니체 문체 연구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데리다는 니체의 문체를 탐구한 저서 <에쁘롱>에서 "나는 내 우산을 잊어버렸다"는 니체 메모의 한 구절을 주요 열쇳말로 삼아 니체 텍스트 전부를 특징짓는 '결정 불가능성'의 의미를 '해석학적 몽유병'에 비유한 바 있다.
니체의 잠언적 글쓰기나 독설과 같은 화려한 수사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기대한 독자라면 이 책은 실망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크게 보아 니체의 시학적 문체와 실증 과학의 통계의 문체를 대비시킬 뿐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분석 범주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니체의 시학적 문풍과 잠언 스타일에 대한 보다 철학적인 담론과 예시가 부족하여, 니체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이들이나 니체에 대해 꽤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실망하기 쉬운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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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기에는 모든 일이 새롭게 보인다.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그리고 스마트 폰으로 나의 손안에 든 아이템이 바뀔 때마다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자동차의 디자인이 변형될 때마다 우리는 그 자동차를 그 전의 모델이 아닌 신형으로 믿는다.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푸코의 계보학, 데리다의 해체주의, 들뢰즈의 유물론을 거치면서 그 지적유행의 흐름을 내맡긴다, 그 원형에는 니체가 있었다는 주지의 사실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 니체의 스타일은 철학자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그 영향을 미친다. 벨리 타르는 그의 마지막 영화 <토리노의 말>의 첫 장면에서 니체의 일화를 소개한다. 영화는 남자의 묵직한 읊조림으로 시작한다.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문밖으로 나선다. 그런데 길에서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니체는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를 말리고 말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 있다가 마지막 말을 웅얼거렸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이 일화는 그의 영화의 내적세계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니체는 이처럼 전혀 관련 없을 만큼의 세상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철학자이다. 그러한 이유는 그의 문체가 다른 철학자와는 달리 명료하고도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서를 잃고 나는 종종 난처함을 느낀다. 그의 스타일이 사변적이고 산문적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난 이것을 그냥 그가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정신착란 증세의 한 과정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니체의 책은 거의 이런 문체로 쓰여 있다. 그래서 흔히들 그의 철학을 난해하다는 이유가 이런 연유 때문이다. 철학을 픽션처럼 썼기 때문이다. 그 픽션은 단지 텍스트만 채워져 있지 않다. 과학적인 숫자와 철학적인 말과의 서로의 자리에서 우열관계에 놓이기를 원하는 인정투쟁의 과정의 산물이라고 했다. 하인츠 슐라퍼는 말을 수행하는 사람과 숫자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구분지은 다음, 숫자(경제)와 말(철학·문학)의 대립에서 숫자가 승리한 듯 보이는 오늘날, 니체의 위대한 문체는 “숫자에 대한 언어의 자기방어이자 자기주장”이라고 해석한다. 숫자는 정의를 손쉽게 내릴 수 있다, 그 과정중의 참/거짓의 검증과정 만 따지면 답은 쉽게 도출된다. 그렇지만 말은 그 진위여부를 따지기에는 너무 주관적이다. 니체는 그의 철학을 세계에 정립하기 위해서 그 주관적인 도덕으로의 ‘의지’의 기원을 고전적 플라톤주의로 살핀 철학자였다. 고대 그리스 시절 인간의 이성은 도덕 완결체였던 신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이상주의 사회에 가까웠다. 즉, 플라톤의 철학과 그 전통, 감각적 사물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불변하고 영원한 실재인 이데아(idea)가 있다고 보고, 그것이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 내용, 특히 인간의 삶에 가치와 의미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니체도 플라톤의 이러한 사상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 특유의 문체로 그의 철학을 전집을 출판 할 만큼 많은 글을 썼다. 그러나 후대의 그의 이 난해한 필체로 쓰인 책들에 묘사하는 초인적 인간의 의지라는 문구 때문에 나찌에 의해 그 사상적 근원으로 오해받았다. 나찌의 사상은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인물이 등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절망의 늪에 빠진 독일 국민들은 이 호소력 깊은 전언을 받아들였다. 독일의 사상이 나중에 가서야 니체를 다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 편견을 걷어 찬 이후였다. 오히려 그의 사상은 프랑스 철학자들에 의해서 계승된다. 문학, 음악, 미술에 표현되는 니체의 스타일은 모두 ‘광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의 철학이 이렇게 정신분석학적으로 펀집증을 보이는 환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쎄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돌고 돌아 니체의 문체는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하나의 그의 해석방법이 되었다. 그에 대한 삶의 가까운 접근 한번 해볼만 하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