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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따라 나오는 책은 죽어도 안 읽는 나름 지조가 있는 나는, 힐링이라든가 인문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들을 죽어라고 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일단 집어들어 한 문단 읽어보고, 나는 그동안의 내 지조를 과감히 버렸다. 읽는 내내 저절로 헤프게 입이 벌어지며 감탄이 나왔다. 아, 이 책, 참 좋은 걸, 향기로운 걸.
하지만 홀딱 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오래 시간이 걸렸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한 문장 읽고나면 저절로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하게 되고, 한 문단 읽고 나면 책을 놓고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한 꼭지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져 더이상 읽어낼 수가 없다. 이 책은 내게 통독하기 힘든 책이었다.
저자가 궁금해졌다. 저자는 영화와 드라마의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면서도 꼭 필요한 순간에 관련 개념을 설명하고 책을 소개한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전체 내용과 겉돌지도 않는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한편 이런 글의 특성상, 좀더 자신의 사적인 경험이 더 많이 소개될 법도 한데, 저자는 두리뭉실하게 그 정도 나이의 사람이 겪었을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며 자신을 숨긴다. 절제를 잘 하든가 지극히 내성적이던가,,, 아니면 영악한 글쓰기에 도통한 사람이든가.
이리저리 생각할 점이 많고 배울 점도 많은 독서였다.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멋진 작가를 한 분 알게 되어 기쁘다.
지적이면서 감성적인 남녀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인문학적 감성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둘 사이에는 지적ㆍ감성적 긴장뿐만 아니라 오묘한 성적 긴장까지 가세되어 더욱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풍경은 당사자들의 내면의 풍경이다. 제삼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만약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 지적ㆍ감성적 과잉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내면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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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주의자가 되고 싶은, 내 그림자를 위로해 주는 그녀의 수다 드라마를 무심코 보다가 아 저건 뭐야 하고 가슴이 서늘한데, 무엇인가 통속적인 답 외의 매력적인 다른 답이 있는데 적절히 떠오르지 못해 갈증을 느껴 보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 현재 무심한 듯 지나치는 사소한 많은 일들을 감성과 지성이 어우러진 교향곡으로 연주해 주니 갈증이 해소된다. 일상에 부딪치는 통속적인 일들이 인문학적 의미로 다가와 당신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인문학은 일상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서 꿈틀대고 있다. 출근을 위해 쳇바퀴처럼 화장을 하는 순간, 살이 얼마나 쪘나 거울에 비춰보는 순간,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나 주눅 드는 순간, 나도 이만하면 괜찮지 으슥해지는 순간, 별로 친하지 않은 동료와 밥을 같이 먹어야 하는 순간......이 책은 그 모든 순간들을 우리에게 인문학으로 피어나게 한다. 한귀은, 그녀의 수다는 그렇게 인문학적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녀가 참 무서운 사십대라는 생각이 든다. 생의 반은 살아버리고, 생의 반 이상은 더 살아버려야 할 나이. 그녀가 그런 사십대이기 할 수 있는 수다들이다. 지난 온 생을 통해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고 세상을 본다. 그리고 살아갈 나머지 날들을 본다. 또 그녀의 수다로 별 볼 일없는 노처녀도, 아줌마도 위로를 받는다. 단, 그 수다는 시시콜콜하지만 의미심장하다는 것, 지금 여기 나의 욕망과 진심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눈은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착한 여자로 살고 싶게 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존감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수다에 묻은 지성의 힘이다. 그래서 질투가 난다. 내 연령대의 작가들이 쓴 글을 보았을 때 드는 질투감. 하지만 결국 그 질투는 나를 주눅 들게 하기보다 정말 착한 여자로 살고 싶게 한다. ‘내가 그것 때문에 산다’를 읽고 당장 나의 ‘그것’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본다. ‘술은 결핍을 투명하게 한다’를 읽고 최근 나도 술을 너무 자주 마셨나 잠시 침잠한다. ‘엄마, 나를 부탁해’를 읽을 때는 딸이 힘들 때 눈치 보며 말 한 마디 먼저 건네지 못하는 나의 엄마가 밀려와 눈물이 핑 돌았다. 시집 못 간 늙은 딸도 엄마에게 새끼 노릇을 좀 하고, 시집 못 간 ‘콤플렉스를 잘 이용하며’ 착하게 사는 모습도 당당히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른여덟에 청상이 되어 오형제를 키웠던 우리 엄마는 에미 노릇으로 평생을 견디었으니, 온전히 에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새끼 노릇을 하는 게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 나를 부탁해’는 관심사가 제각기인 내 형제들에게도 읽게 할 것이다. 서로 상처를 보듬어 주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족이라는 이름이 어떤 것인지 공감을 만들도록. 내 나이 마흔 둘. 솔직히 세간의 말로 여자로서 지고 있는 나이다. 게다가 노처녀로 늙어가니 참 어지간히도 남자 가리고 산 까칠녀이기도 한 것이다. 이만하고 보니 흔한 노래 가사처럼 ‘사는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고 물으면 ‘그래 지겨울 때가 있지’하고 종종 대답하고 싶다. 밥벌이, 사회적인 시선, 일상의 자질구레함, 가끔 덤벼드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무력감 등등. 그냥 지겹고 외로울 때가 있다. 괜히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혼자 여행을 하고 싶거나 낯선 이를 만나 내밀한 느낌에 사로잡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비 오는 오후처럼 뿌연 이미지에 빠져 들고 싶을 때가 있다. 종일 창밖만 내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꼭 집어 표현할 순 없는, 그런 감성에 젖어 들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런 ‘순간’을 배부르고 한가해서 그렇다는 말들로 질타 받고 싶지는 않는 것이다. 대접 받고 싶고, 그 감성 그 자체를 사랑 받고 싶다. 그 ‘순간’을 철저하게 대접해 주고 사랑해 주는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이다. 나의 그 배부른 ‘순간’의 감성을 세기의 지성인들의 언어로, 이론들로 어루만져 준다. 그리하여 그 감성을 고급 실루엣으로 드러나도록 만들어 준다. 실루엣 속의 것들은 울고불고 짜고 궁상맞지만 그 궁상들도 결국 내 모습인 것, 그 모습을 감싸 안은 실루엣도 결국 내 모습인 것.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지금 여기의 나를 위로해 준다. 이 책에 보면 미운 오리새끼도 미운 오리 새끼 한 마리만 더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요즘 나의 미운 오리 새끼는 바로 이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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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참. 사진 찍을 맛 나게 해주는 예쁜 표지의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님 책은 두 번째다. 지난달에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무척 괜찮게 읽어서 다른 책은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는데.. 이제 보니 <모든 순간의 인문학>이 <가장 좋은 사랑>보다 먼저 나온 책이었구나.. 아무튼 두 책이 참 비슷하다.
먼저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고전 속에 사랑을 요즘에 맞게 재해석하며 (고전에 대한) 새로운 재미와 관점을 열어 준 책이었고, 이번에 읽은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삶의 곳곳. 모든 순간순간.에 녹아있는 인문학을 발굴해 내 가는 책 같았다고나 할까?
암튼 이번에는 고전이나 철학이나 뭐 그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보았던 영화, 드라마, TV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더 잘 읽혔는데.
그런데 아. 씨. 지난번 책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역시.. 책 읽으면서 어찌나 질투심이 느껴지던지? 나도 여태껏 읽고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이렇게 글로 마음껏. 게다가 잘! 써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부럽고 ㅋㅋㅋ 닮고 싶고, 아! 진짜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뒤늦은 후회도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ㅋㅋㅋ 질투심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면서도 어찌나 밑줄을 치며 읽었는지 ㅋㅋㅋ 물론 나는 반댈세! 하며 읽은 꼭지도 많았지만. 문체와 호흡이 참 나한테 딱 맞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챕터 사이사이 간지도 예쁘고 ㅋ ‘오라는 곳은 많으나 갈 곳이 없는 순간. 끈적한 지적 유희를 즐기고 싶은 순간. 늘 가던 장소가 무료해지는 순간. 즐겨 부르는 애창곡에 새삼 울컥하는 순간, 누구라도 붙잡고 수다를 떨고 싶은 순간…’이런 식으로 삶의 작은 순간순간을 분류해 놓은 것도 난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진짜 그런 기분이 들때마다 한 꼭지씩 찾아 꺼내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암튼, 한 번 내 스타일이구나 꽂히고 나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좋게 들리고;; 다 혹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사실 이런 카페는 이제 흔하다. 그러면 여기에 더해서 물물교환이 있는 카페라면 어떤가? 카페에는 일상생활용품에서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요상한 물건들까지 계통 없이 늘어서 있다. 그중에 마음에 딱 잡히는 것을 집어들면 된다. 그리고 자기 물건 중 하나를 내놓는 것이다. 물건이 없으면 노래나 연주로도 교환이 가능하다. 어떤 손님은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다른 물건으로 바꿔가기도 한다.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 나오는 카페다. 사람들은 이 카페에 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것과 바꿀 수 있다. 기타와 목마를 바꾸기도 하고, 하수구를 수리해주는 일과 요리책이 교환되기도 한다. 물건이 없으면 재능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확실히 탈 자본주의적이다. 돈이 사용가치를 넘어 교환가치, 상징가치까지 갖추게 된 자본주의에서 물물교환은 전근대적, 반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이다. 그런 반역의 행위가 타이페이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 모든 순간이 인문학 - 한귀은 :p 135~136
심지어 여태껏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영화 이야기에서도 오와!! 그런 영화가 있었군요? 막. 더. 계속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고, 또 나도 몇 번이나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러브 액추얼리> 이야기를 할 때도 여태껏 한 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발상의 전환도 되고 참 신선했다. 마지막으로 책 읽으면서 그놈에 인문학. 인문학 참 되게 좋아하네? 하는 생각도 잠깐씩 들었었는데 책 마지막 장 덮고 나니까 그러게 인문학이 뭐 별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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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문학이 대세다. 모든 제목에 일단은 인문학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다. 이 책도 모든 순간의 인문학, 인문학이 들어가 있어서 관심이 갔다. 인문학의 적용이 색다른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영화, 심리학, 특히 남녀간의 심리를 주로 다룬 책이다. 문학, 시, 연극, 예술 등 다양한 장르를 이성간의 사랑의 주제로 연결시키고 있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 정말로 수많은 순간의 느낌을 정말 잘 케치하고 그 느낌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있다. 여성 특유의 감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학문의 깊이까지 곁들여 흥미진진한 책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랑이 다양한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종류, 아가페부터, 스톨겐, 필리아, 에로스로 나누는지 알았는데, 에로스의 사랑에도 수많은 경우의 수, 관계, 성격 등에 따른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너무 복잡해서 다 이해하기가 불가능했다. 이런 복잡한 사랑을 어떻게 분석해 냈을까 탁월한 사랑의 감성에 찬사를 보낸다. 여자 작가이기에 여자의 심리에 대한 분석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여자의 심리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여성들의 질투, 상처, 굴곡진 마음, 사랑받고픈 애정 결핍 등등의 심리는 사실 남자로서는 너무 복잡해서 걱정이 된다. 이런 심리들을 어떻게 다 이해할 것이며, 이해한들 어떻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남자들이 아예 포기하나 보다. 그리고 그냥 자기 스타일대로 나가나 보다. 그래서 여자가 따르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식인가 보다. 남자는 감수성 있고, 서정성이 있는 남자가 매력적이라는 말은 여성의 감성을 건드려준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여성의 무한정한 그 감수성을 어떻게 다 채워줄 수 있겠는가? 언젠가는 남자가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역시 남자란... 하고 남성성에 대한 회의를 말하고 결론낼 것이다. p85 “진정한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매력의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의 조건과 무관하게 살아야 한다는 데에 진짜 어려움이 있다. 생각해 보라. 매력적인 사람이 된답시고 자신을 모호한 이미지로, 신비스러운 조재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다. 그냥 내 식대로, 아니 나를 잘 가꾸다 보면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다. 고독이 명랑해지는 순간. 우리는 고독을 너무 무겁고 차갑게 느낀다. 고독은 우리가 즐겁게 누려야 할 지적 순간이다. 모든 고독한 순간에 우리는 좀 더 깊어지고, 충만해지고, 명랑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고독해질 순간이 없다. 아니 고독해지면 불안해 한다.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과 친구하고, 같이 있어도 가상의 세계에 자신을 친구로 내어주고 있다. 고독할 시간이 없으니 인문학을 할 수 없다. 인문학은 고독한 때에 나온 학문이다. 고독이 없이는 인문학을 할 수 없다. 인문학을 할 수 없으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 인생을 논할 수 없으면 제대로된 인생을 살 수 없다. 고독은 인문학이다. 고독을 위해 떠나라. 남자도, 여자도 필요없다. 남자나, 여자가 진정으로 필요함을 알기 위해 남녀를 떠나라. 남녀가 소중해지기 위해 피해보라. 그러면 제대로 보게 될 것이다. 물건을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같이 있어도 고독하고, 고독해서 같이 있고, 그것도 저것도 안되면 물건이라도 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쇼핑을 한다. 그러나 물건은 진정한 결핍을 채우지 못한다. 순간의 채움을 더욱 더 깊은 결핍을 만든다. 진정한 사람과 사물에서의 결핍이 고독을 해결한다. 결핍은 나를 만날 수 있게 한다. 나를 만나면 남을 만나게 된다. 남을 만나면 행복해 진다. 모든 만남은 행복이다. 진정한 만남이 육체와 정신의 만남을 만든다. 이런 만남만이 인문학의 만남이다. 작가의 민감한 감성의 촉수와 깊이 있는 인문학과의 만남이 느껴진다. 사실 이런 만남은 쉽지 않다. 인문학이 깊이를 생각하게 한다면 가벼운, 아니 민감한 인문학을 읽을 느낌이다. 새로운 인문학에 눈을 뜬 것 같다.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단조로운 삶 가운데서 시 한 편을 떠올리거나 철학자의 사유가 생각나는 그런 순간, 간혹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평이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사건 속에서 매 순간 인문학과의 마주침을 이야기한다. 목욕탕에 갔다가, 가요를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소설을 읽다가, 엄마와 함께 잠들다가, 뉴스를 보다가, 시를 읽다가, 추억을 회상하다가, 드라마를 보며 훌쩍이다가 그녀는 인문학과 마주친다. 저자가 뜻하는 인문학이란 희대 지성들의 명언이나 공적을 익히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인문학적 사유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즐기고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아주 사적이고 지극히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의 즐거움은 철학자, 심리학자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의 저서, 영화, 드라마, 시, 소설, 수필, 가요 등 다채로운 소재들을 만나는 데 있다. 특히나 엠마누엘 레비나스와 알랭 바디우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이들의 사유를 통해 일상에서 조우하는 타자와 그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인문학이 빛을 발하는 아주 사적인 순간들'이란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소소한 일상에서도 인문학은 끊임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은 길잡이다. 인문학이라는 빛은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좀 더 성숙한 삶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책 속 활자에 붙들려 있는 학學은 죽은 빛이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 살아 있는 인문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삶을 사유하고 통찰하는 지혜를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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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고전이나 철학, 인문학 관련 서적 몇 권 쯤 읽었다고해서 인문학에 대해 안다고 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싶다. 인문학이란 것을 조금이라도 깊이있게 다룬 책은 기초상식과 이해가 필요하기에 처음만남부터가 호락호락하지 않더니 인문학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다. 서점에만 가면 손 닿을 거리에 있지만 내겐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인문학 역시 유행처럼 대중들의 소비문화의 한 장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일 것이다. 그래선지 철학은 철학 대로 고전은 고전 대로 따로 놀뿐 인문학 안에 스며들지 못하고 삶의 테두리 밖에서 겉돌기 일쑤다. 정작 일상에서 인문학이 필요한 순간이 따로이 있는 것인지, 인문학의 시작에는 늘 철학이 우선하기에 인문학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 여전히 쉽지않은 인문학 서적을 뒤적이며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들곤 한다. <모든 순간이 인문학>이란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나의 고민을 엿듣기라도 한듯 모든 순간에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나 드라마, 책, 음악을 통해 상처받고, 외로웠던 모든 사적인 순간에도 쉽게 인문학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감성 마케팅이 유행이라 더니 이젠 인문감성에 호소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책은 이외로 술술 읽히고 재미도 있다. 우리가 늘상 겪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상처를 포함해 지극히 사적인 감정까지 끄집에 내고 헤집어 놓고는 ‘인문학은 희대 지성의 명언을 따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삶에서 자기 자신의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다보면 삶의 매 순간마다 어떻게 인문학과 연결 되는지, 인문학적 정서가 우리의 감성을 어떻게 매만지고 상처난 마음을 다독여 주는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솔직함이 당차고 때론 당돌하기까지 하지만 그런 그녀였기에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고스란히 글 속에 녹아들어 고개를 주억거리며 빠져들게 한다. 아마도 그녀와 같은 여성이며 마흔을 넘긴 나이라는 공통점이 작용한 듯 싶다. 드라마를 보며 훌쩍여 본 적이 있고, 아픈 상처를 껴안고 몇날 몇칠을 앓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제 스스로 치유능력이 있음을. 그냥 두어도 상처는 아물겠지만 인문학이란 연고를 바르면 덧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사는 일은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쉼없는 경쟁을 박복하는 시대에서 우리 자신을 긍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고, 그럴수록 칭찬이 필요하고 그만큼 칭찬에 목말라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을 칭찬하면 내가 그 만큼 낮아지는 것 같아 자격지심에서 선듯 칭찬이나 격려의 말 한마디 건내기도 두려워 하는 건 아닌지. 저자는 이 시대의 칭찬은 단지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일시적인 처방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이끌고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힘이 있는 언어라고 한다. 그러니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칭찬에 인색하지 말자는 말이다. 인문학이 그리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알아가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순간들을 갖게 된다. 게다가 독서의 즐거움과 배우는 기쁨을 덤으로 얻게 된다.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순간에도, 삐걱거리는 위태로운 순간에도, 고독한 순간 마저도 인문학은 매순간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열어 주는 인문학이 현대인에게 더욱 중요시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볍지만 지나치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인문학과의 만남이 아니였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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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라는 주제가 서점가를 강타했다.심지어 노숙자를 대상으로 '인문학'강의를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도도 들려왔다.정확하게 인문학을 정의하여 보면,'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문학,역사학,고고학,종교학,여성학,미학,예술,음악,신학등이 있다.' -위키백과-한마디로 자연을 제외한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라는 소리다.흔히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그 모든 것들.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이 학문이 꽤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시시한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제목이 왜 '모든 순간의 인문학'인지는 금방 알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인문학이 있으므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외로운 모든 순간에...인문학은 숨어있다.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자신이 찾아낸, 혹은 느꼈던 인문학을대비시켜 은근히 학문을 비껴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옷자락을 끌어들여 앉혀 놓고 있다.가슴이 미어질 것같은 이별후의 아픔까지도 책읽기로 음미하라고 등을 떠미는 그녀의 인문학찾아내기는 아주 사소하기까지 하다.잠시 설거지를 미뤄놓고 막장 드라마라고 욕을 하며 보는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너무 아름답고멋진 몸매를 가졌다고 말하기 힘든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영화를보면서도 그녀의 머리속에 저장된 인문학은 꿈틀거리고 있다. 두 딸을 씻기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보다 장애인 언니를 둔 둘째 아이가느끼는 사랑결핍에서 그 야윈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환히 보인다고 했다.'스스로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잘 처리하고 -엄마는 둘째아이를 잘 보살펴주지 않기 때문에-인정받고, 누군가의 연인이 된다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여인이 될 것이다...그러나,제 안에 다 자리지 못한 여섯 살 여자아이 때문에 자주 아플 것이다. -203p그저 장애인인 큰언니도 안타깝지만 동생에게 무관심한 엄마도 많이 힘들겠구나...정도는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녀처럼 결핍의 아이의 미래때문에 울컥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아픔을 엄마와 나누는 것에 낯설었던 여자는 그래서 너무 착했던 여자는 좀 늦었지만이제라도 '늙은 애'가 되어 '애 늙은이'였던 자신을 토닥여주라고 말한다.그 충고는 사랑에 집착하고 이별조차 자신의 탓이라고 돌렸던 너무나 착한 여자들 뿐만아니라저자 자신의 반성이 아닐까.그녀가 일상과 만난 인문학은 시와 소설, 영화에 드라마까지 참으로 방대하다.스치는 모든 일상과 연결시킬 자료가 내게는 너무 부족해서 부끄러울 지경이다.차라리 모든 일상속에 떠올릴 것이 없는 인문학 빈곤의 내가 차라리 담백하지 않을까..자위해본다.그래도 이 책에서 인용된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적어도 빈 내 머리속에 저장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해야할까. 인문학이 어렵다고 도망다녔던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그 벽이 두껍고 높지 않음을 말랑말랑하게주물러 건네줘서 고마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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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감성을 공진하다 난 이 책이 이 가을에 있어서 너무 좋았다.(제목만 빼면.) 너무 고지식하거나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더군다나 암울한 시절에 피천득의 인연이나 알폰스 도데의 별을 교과서를 통해 보고 자란 같은 세대라서 더욱 좋았다. 저자의 기억과 영화, 드라마, 심지어 유행가에서 인간의 기억과 감성을 사유한다. 예를 들면 [신사의 품격]의 장동건과 최백호를 통해 중년의 판타지의 솔직함을 말한다거나. 영화 [은교]의 노시인 이적요의 욕망을 변호하거나. 물론 선택된 미디어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현대 미디어를 폭넓게 오가지만 그것에 대한 감성은 특정 세대에 머물러 있어서 다른 세대도 저자의 생각을 전부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는 걸 그룹을 좋아한다. 하지만 김광석이나 최백호는 다르다. 잠시 긴 숨을 쉬고 생각하고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마치 몸에 난 희미해져진 상처를 어느 날 문뜩 이유 없이 몰두해 하거나 이사 때마다 “이건 뭐지 버릴까" 하고 한번 꺼내보게 되는 낡은 박스 안에 개근상장처럼 잊고 지내던 걸 꺼내보며 “그래 그 시절엔 그랬었네.” 하게 되는 그런 게 있다. 인문학을 앓는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개봉이후 (2001년) 이후 매년 성지 순례 하듯이 보고 있다. 같은 영화지만 나 또한 성장하다 묵어감에 따라 처음에는 상우(유지태 분)의 몸서리치는 그리움과 실연에 마음 아팠지만 세월이 갈수록 은수(이영애 분)의 인스턴트 라면처럼 일상의 가벼움이 되어버린 사랑에 더 가슴아파했다 해를 더할수록.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상우만 몰랐을까?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을. 돌이켜 보니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두가 사랑이었다. 그땐 너무 어렸고. 지금은 너무 시큰둥하다. 그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요즘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인기다. 드라마를 보며 그때의 노래를 듣고 그때의 통신수단과 패션을 기억해내다 보면 그때의 감성이나 기억도 자연히 떠올린다. 응답하라 1988도 나왔으면 좋겠다. 내 지나간 세월에 안부를 묻고 싶다. 오겡끼 데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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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저, 한빛비즈, 2013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외로운 모든 순간에는 흔들리는 우리를 바로 세워줄 인문감성이 필요하다.’ 이 문구는 책의 표지 오른쪽 하단에 담담하게 적혀있지만 담담하지 않게 내 마음을 흔든다. 그간 내게 외로울 땐, 항상 음악이 곁에 있어줬다. 슬플 때는 발라드를 들으면서 더욱더 슬픔 속에 빠지려 애썼고, 그런 노력이 우울증이라는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반대로 즐거울 때는 신나는 댄스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움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저 평온한 어느 날 아침에는 거리를 걸으며 마음이 따스해지는 어쿠스틱 선율에 몸을 맡긴 적도 있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 하던 나에게 다가온 책 한 권은 항상 극단적으로 감정을 몰아가던 나에게 중용을 속삭여주었고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다른 여러 장르의 서적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에서도 우리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해줄 거리들을 아주 훌륭하게 찾아낸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용을 여기서 뽑아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도 잠시 연결된 훌륭한 결말이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하고 생각하게 해준다. 미처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고 평소에 잘 느끼지 못했던 일반적인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작가의 시선을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인문학이란 소위 ‘리더의 학문’이라고들 한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인문학이 비실용적 학문이라고 주장하였고 나도 그 편에 서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가장 큰 학문은 인문학이라고 크게 외칠 수 있을 만큼 왜 인문학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인문학을 알지 못한다면 삶은 윤택하지 않을 것이며 감정이 메마른 하나의 로봇과 같이 매일을 반복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처럼 조금만 더 자세히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든 순간에도 인문학은 적용되고 있다. 나는 인문학을 통해 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고민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한번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인문학은 생각보다 많은 답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여러분에게 열려있다. 다만 그 문을 여러분이 열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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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동서양의 무거운 고전이나 철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배워야할까? 이런 질문들이 많다. 현실적인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그 무엇처럼 이해되고 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인문학은 왠지 모를 접근 불가의 영역처럼 책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그렇게 인문학은 어렵기만 할 것일까? 우리는 인문학에 대한 내용보다 접근 방법 학문적 접근 방법에 지나치게 몰입되고 있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인다. 인문학도 그렇게 접근하고 나눠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드물었다. 나의 일상과 접목된 인문학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 가볍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면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완독 후에 강렬하게 남는 이미지였다. "세상 대부분의 일을 책, 영화, 드라마, 음악으로 배웠다. 마흔 즈음부터 그 배우고 익힌 것을 몸소 실험하면서 인문학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인문학으로 사랑뿐만 아니라 육아, 직장생활, 돈 쓰기나 쇼핑, 심지어 거절까지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문학 과격주의자이다." 저자 소개가 참 인상적이다. 대학교수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인문학 이야기는 일반적인 관념과 예상을 벗어나 있다. 한마디로 평범한 일상에 가장 맞닿아 있는 '생활밀착형'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끌어내는 저자의 글쓰기는 그래서 머리를 지나 가슴속까지 잔잔한 울림을 준다. 경중을 떠나 십 수권의 인문학 타이틀이 붙은 책을 읽어왔다.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느 인문학 관련 책에서 만나기 힘든 심야의 감성이 문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애창곡이 많이 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느낌처럼 말이다.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기 전에 감성으로 가슴을 채워라" 표지 뒷면에 있는 문장은 인문학을 대하는 첫 단추로 들어오기에 충분하다. 인문학을 학문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따뜻하게 다가갈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3040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에게도 참 반가운 책이었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책에 언급된 책, 음악, 영화 리스트가 마지막에 잘 정리되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