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유성룡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들을 기록한 글이다. 당시 영의정이란 지위로 선조를 바로 옆에서 보필하면서 기록한 글이기에 그의 기록은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볼수 있겠다. 임진왜란의 진행상황을 크게 나누어 보면 일본의 침략, 선조의 피난, 명나라군의 참전, 평양탈환, 강화협상, 강화결렬로 인한 일본의 재침략, 일본의 퇴각으로 이야기 할수 있겠다.
임진왜란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당시 막 그에게 굴복한 다이묘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그들에게 수여할 영지가 부족해짐으로서 그에 대한 해소를 위해 시작한 전쟁이었다. 100여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일본군은 전투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었고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통해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건국이래 200년간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면서 조선 초기 잘 지켜지던 청년들의 병역의무도 점차 해이해 지고 있었고 더구나 진관체제로 운영되던 국방체제 조차 제승방략 체계로 바뀌면서 국방에 대한 기강이 점점 사그러 들고 있었다.
이런 차이로 인하여 임란초기 일본은 승승장구하며 불과 20여일 만에 서울까지 도달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관군의 무기력함도 있지만, 조선건국이래 지속적으로 조선에 조공하며 상경길을 익혔던 대마도주가 일본군에게 안내하는 향도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을 배신한 일부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첩자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순화군과 임해군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에서 우리가 왜군을 막을수 있었던 것은 명나라의 참전보다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수군의 활약과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그들의 공적보다는 모든 공적을 명나라의 공으로 돌렸고, 많은 공훈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정도로 조선의 관군과 의병들의 공적을 대단찮게 보았다. 이것은 선조가 한양을 떠나 신의주로 피난가면서 그가 두눈으로 목격한 민심의 이반때문에 더욱더 절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행차를 향해 돌까지 던지는 백성들의 모습은 조선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선조가 갖게 하였고, 이는 선조가 더욱더 명나라에 매달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조선에 들어온 명군의 가장 큰 목적은 조선을 구원하는 것보다는 일본군이 조선의 국경을 넘어 자신들의 영토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상황은 더욱더 교착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명나라 군은 참빗, 일본군은 얼레빗' 이라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참빗은 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한 대빗이고, 얼레빗은 빗살이 성기고 굵은 큰 빗입니다. 명나라 군이 지나간 자리는 참빗이 자나가면 비듬, 이, 서캐가 남지 않듯이 깨끗한데, 일본군이 지나간 자리는 그래도 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명나라 군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먹을 것이건 재물이건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는 말이죠 (2권.p.94)
일본군보다 명나라군이 조선에 더욱더 큰 피해를 주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백성들은 조선땅에 들어온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야 했고, 조선의 왕이 명나라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그들의 요구에 따라 퇴각하는 일본군을 공격할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야만 했었다. 또한 외교협상에서도 조선의 명운을 두고 일본과 명나라가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임진왜란은 조선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권력지형을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을 소모함으로서 국력을 소모하게 되었고, 이 사이 성장한 여진족의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고 수십년후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게 된다. 일본은 조선에서 약탈해온 자기와 활자 그리고 조선에서 납치해온 도공들로 인하여 도자기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서부 다이묘들의 세력이 소진한 공백을 이용하여 동북의 다이묘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로이 쇼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임란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조선은 인구의 감소, 국토의 황폐화, 수많은 문화재의 소실로 인하여 국운이 쇠퇴하게 된다. 나중의 이야기 지만 이미 기진맥진해 있던 조선을 후금의 홍타이시가 두번이나 침략하면서 조선의 국력은 그야말로 망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할수 있겠다. |
|
리더가 버린 회사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하물며 나라는 모든 이 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의 역사는 그런 교훈을 주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교훈을 잊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잘못을 반복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전쟁이 일어날 것 이다. 라고 하고 누군가는 전쟁은 없을 것 이다. 라고 하면서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며 때로는 권력자의 힘을 빌려 목숨까지도 빼앗는다. 임진왜란 이전의 우리나라라 조선이 그랬다. 동인과 서인 그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던 임금, 그리고 그들의 힘을 양분시키며 나라의 힘을 스스로 갉아 먹고 있었다. 유성룡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임금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나라를 왜군에게 내어준 재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의 관점이다. 임금이 못나고 어리석어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 있으나 지도급 인사 지금으로 치면 집권여당의 당수쯤 되는 사람이 후회와 반성의 글을 남겨 어쩌면 자신을 변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임금이 이랬고 신하가 이랬으며, 백성은 이랬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징비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반성과 후회는 접수한다.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을 포장하여 공덕으로 만드는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위대한 장수라 할 수 있는 신립도 어느 관점에서 보면 군사를 사지로 몰아넣은 무식한 준비되지 못한 리더였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의 공적비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관점에 따라 비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읽는 동안 속이 타지 않으면 한국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이렇게 분열이 잘되고, 임진왜란 첫 승리를 거둔 사람을 모함하여 처형하게 만드는 임금이 있는가 하면, 싸움에서 혼자 도망쳐온 이일을 반기는 분위기는 장수가 없어서 임금을 지킬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고는 하나, 해방 후 실무경험이 많은 일본에 동조했던 관료를 고급 관리에 앉힌 역사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전쟁은 권력자나 재산가들의 삶을 망가트리지는 않는다. 다만 불편하게 만들뿐이다. 그들의 불편함은 일반인들의 불편한 수준이지 결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불편함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백성을 버리고 떠난 임금을 위해 곡식을 운반해야 하며, 왜군의 칼을 피하면 명군의 핍박을 피할 길이 없어지고 때로는 목숨으로 그 고통을 덜어 내기도 한다. 아마도 그 것이 지금의 삶과 다르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 전쟁이 난다면 누구의 생명이 더 위태로울까? 국민을 위하는 모든 분들 보다 아마도 내 목숨이 더 파리 목숨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서울을 버리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소리 지를 때에 선조 임금은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왕실과 나라가 이 곳에 있는데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간단 말이냐?” 그러나 임금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몰래 피난을 갔습니다. 일본군은 1년 동안 서울을 점령하면서 수많은 우리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중략- 그 후 350여 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 왔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피난 가느라 야단법석을 할 때, 이승만 대통령은 “영특하고 용감한 국군이 적들을 물리치고 있으니 서울 시민은 안심하라”는 말을 방송국 녹음테이프에 걸어 놓고 먼저 기차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2권 21페이지) 역사를 빗대어 현실을 조명하라는 유성룡의 말처럼 징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라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목숨으로 나라를 사랑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세상에 이름 석자 남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행태는 정말 극한 적인 상황이 왔을 때 말뿐인 자신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것이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여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스스로 자신과 가족을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만들었는지, 사교육비를 줄여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자식은 정말 머리가 좋아서 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인지? 국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지도자들의 행태가 어쩌면 오랜 옛날부터 믿지 못할 행동을 한 우리 지도자들의 전통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다행히도 이 책은 아이들이 읽기에 좋은 설명과 말 그리고 해설이 따라온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쩌면 미래의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좋은 길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바라보는 선택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의 과오를 유성룡처럼 징비라는 이름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
|
1. 징비록은 우리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중 하나인 임진왜란의 참혹한 패배를 기록한 자료다. 이러한 기록을 남긴 서애 유성룡은 제목을 징비 (懲毖 : <시경(詩經)>의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라고 붙였는데, 그 이유는 이 기록을 대하는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임진왜란은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200년 동안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았기에 평화라는 울타리 속 나태에 젖어있었던 조선의 무능한 유학자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서 권력 싸움을 하기 바빴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유명한 장면은 전쟁 전.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황윤길(서인 출신)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 같다."고 주장했고, 김성일(동인 출신)은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는 엇갈린 진술이었다.
여기서 징비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두 사람의 힘겨루기를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거짓말을 한 김성일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전쟁 확률을 100%로 보지 않았고, 따라서 괜히 그 사실을 밝혀서 혼란만 부추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정세는 김성일의 '설마 하겠어'라는 안이한 생각과는 달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시대가 종결되었고, 전쟁이 불러온 넘치는 힘을 국외로 분출할 필요성과 더불어 자신의 정적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이용하려 했던 것처럼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했다.
3. 그리하여 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조선에 밀어닥친 일본의 대군은 침입한 지 고작 열흘 만에 한양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들이 이렇게 빨리 조선의 성들을 함락시킨 원인은 기본 병력의 부족, 조총과 대검 Vs 활. 무기의 열세, 넓고 개방된 지형에 축조한 성, 일본의 조총부대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전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인 백성을 아우르지 못한 것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신립이나 이일처럼 유명하다고 소문난 조선의 장수들은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쓰러졌고, 선조는 평양으로 도피를 떠나야 했다. 점점 더 수세에 몰리게 되자 평양을 지나 의주까지 피난했던 선조는 광해군에게 왕권을 위임(분조)하고 자신은 명나라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귀화를 선언했으니…. 참으로 한심한 임금이 아니던가. 그랬던 자가 전쟁이 끝내더니 귀화 건을 없던 일로 되돌려버렸다. 그냥 명나라에 가서 살지 참, 나….
그러고 보니. 근 100년 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던 당일. 국군은 잘 싸우고 있으니 서울시민들은 침착하라. 자신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라디오 방송을 대전에서 녹음했던 지도자 이름이 생각난다.
4. 한편, 이렇게 굴욕을 당하고 있는 사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에 파견된 명나라 군사에게 전쟁의 모든 권한을 이양했다. 그래서 조선의 장수들은 왜란 내내 명나라 군대의 지휘 아래에서 전투를 벌여야 했고, 조선은 안중에도 없이 맺은 명나라와 일본 간의 협정에 따라 조선군은 일본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조선에 지원 온 명나라 군대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군을 명나라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명나라는 일본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국경에 접근하는 일본 군대를 평양 아래까지만 붙잡아두면 되었으니. 답답한 것은 조선이었다.
이런 지지부진한 전쟁 동안 일본군은 한반도의 조선인을 마음껏 학살했다. 항복하려거든 창고에 들어가라고 했으면서 사람들이 들어가자마자 창고에 불을 질러 전부 태워 죽이기도 했고, 정유재란 때는 목숨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코를 베어 갔다. 어이없는 것은 명나라는 일본인의 귀를 베어오라고 명령했다고 하는데, 모자란 귀는 조선 백성의 귀로 대신했다고 전해진다.
장기간 이어진 전쟁과 명나라의 군량의 많은 부분을 조선에서 지원해야 했기 때문에 식량을 얻을 방법이 없어진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고,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시체를 먹거나, 산 사람까지 잡아먹었다고 한다.
5. 이런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두 차례의 왜란에 나라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일본의 혼란을 야기시킨 이름 없는 의병의 항쟁도 거룩했다. 하지만 절망적인 사건에 직면하여 어쩌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영웅을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애초에 그런 굴욕적인 순간을 맞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징비록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것은 징비록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군사력, 외교력, 경제력 같은 하드 파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서 이 시대의 눈에 맞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 그리고 문화와 예술 같은 소프트 파워를 더할 수 있겠다. |
![]()
![]()
![]()
![]()
|
|
이 책은 임진 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임무를 맡았던 문신 유성룡이 기록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알고 있던 임진 왜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이 였다 그것은 아주 간단하게도 이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 허탈했다 명나라 조선 그리고 일본병사를 포함 수십 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시작한 것도 한 사람의 신념 때문이였고 그 전쟁이 끝나게 된 것은 그 사람의 죽음 때문이였다니 .. 그 전에도 임진왜란 관련 책은 물론 이순신 관련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껴졌다 우리나라 특히 조선의 역사를 선비의 유구한 역사라며 자랑스레 말하는 책들을 보면 정말이지 분노가 끓어오른다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도리와 명분을 따지며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이익을 위해서 왕의 눈을 멀게 하는 가신들과 그런 가신들의 말에 우왕좌왕 하며 백성을 팽개치고 자신의 목숨만을 보존하고자 도망다니기에 급급하고 명나라의 눈치를 보며 오매불망 도와주기만 기다리는 왕의 처신을 보면 내가 지금 그런 조선의 후예라는 것에 참으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고급관리 직책에 골방에 틀여 박혀 공부만 잘한 사람들이 포진 되어 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감출 수 없다 본문 중 다듬어 쓴 이의 말이란 코너에서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인용하는데 “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어서 여자와 아이들은 마음대로 바깥 출입 조차 못할 형편 이었다 굶어 죽은 시체가 쌓이면 사람들이 다투어 그 살을 떼어 먹었으며 시체의 골까지 뻐개 그 진물을 빨아 마신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엎어져 죽었다 또 쌓인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으나 거두어 장사지내 주는 자사 없었으며 아비가 자식을 팔고 남편이 아내를 팔아먹었다 1592년 봄에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고 시체를 쪼개 먹었다 부모형제라도 먹거리를 놓고 다투었다..” 라고 쓰여 있듯이 정말이지 지옥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였는데 조선의 조정에서는 명나라의 눈치를 보면 이리 저리 도망 다니면서도 얼토당토 안한 명분과 당리당략에 의해 이순신이 투옥되는 상황까지도 연출 되었으니 우리에게 조선 600년은 차라리 없었어야 할 역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안타까웠던 역사는 그렇다치고 지금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나 저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하여 참 안타까웠다 이 책을 맺으며 저자는 박종화의 장편소설 ‘임진왜란’을 인용한다면서 “ 360년 전 우리 조상이 겪은 임진왜란은 360여 년 뒤 오늘날 우리들 모두가 당하고 겪은 비참한 6.25전쟁과 닮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임진왜란은 남에서 북으로 왜놈들이 삼천리 강토를 짓밟았고 오늘날 이 전쟁은 북에서 남으로 동족이 진흙발길을 내디뎠으니 지역적으로 침략의 발단이 남과 북이 다르고 침략한 족속이 서로 다를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어쩐 이리도 무식한 작자가 저자 일 수 있을까? 북한의 우리 민족을 족속이 다를 뿐 왜놈과 같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굳이 비교를 하게 된다면 일제 강점 36년을 비교해야지 강대국 이데올로기에 피해를 입고 지금도 피해로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 같은 민족을 비교하다니.. 이 책의 출판사나 작가의 저의와 배후를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징비록에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똑바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해설한 책을 권하고 싶다 |
|
'懲-지난 일을 뉘우치고, 毖-후세를 위해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錄-뼈아픈 역사의 기록' ... 제목에서부터 비장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그 뼈아픈 역사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이 사무치도록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일본을 탓하지만 말고 그 침략을 통해 우리의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지만 부끄러움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그다지 큰 교훈을 찾지 못하는 것도 서글픈 우리의 현실임에는 분명하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이란 3권의 부제에 공감하지 못하겠다. 진정한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징비록'은 두번째다. 무슨 재미로 같은 책을 두번이나?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겠으나 출판사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는 탓인지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보았다. 고전이라 하니 원본이 바뀔리야 없을테고 3권으로 나누어 그 기록의 생생함을 보여주고자 한 듯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2권 달아난 임금 남겨진 백성,3권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각 권의 부제만 보더라도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는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으며 도체찰사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혹은 외교적으로 많은 힘을 썼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의 주역들을 발탁했다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전쟁을 끝낸 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후세에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을 남겼다. 남한산성의 역사를 그린 <산성일기>처럼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유재란때 일본에 잡혀갔던 강항의 기록인 <간양록>처럼 간절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왕과 나라를 향한 징하디 징한 충정 또한 담겨 있으니 그 시대가 과연 왕조시대였구나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간혹 보이던 그림들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조금은 낯선 기법의 그림이었음에도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책의 말미에서 그림에 대한 해설을 해주고 있다. '이야기 너머, 상상의 이미지들' 이란 제목이 왠지 아련하다. 불에 달군 인두로 목판에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을 입힌 '채색 인두화'라고 하는데 그 말조차도 낯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두화를 그리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한번 되돌아가 꼼꼼하게 그림을 살펴보다가 그림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될 수 있겠구나,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그림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그림이 안고 있는 상징성이 이토록이나 큰 것이었구나 싶었다. 숨고 숨기고 숨쉬고 숨막히는, 모두 한 목소리의 처량한 털들, 비좁은 구멍-막힌 산, 비어있는 주인의 얼굴,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바람, 무뎌진 칼춤, 이빨 자국같은 흔적, 녹슨 칼... 그림마다 붙여진 제목이 비장하다. 어떤 그림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조금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그림속에 우리의 전통이나 일본의 전통을 숨겨놓았다고 하니 그림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각 권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분의 해설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당시의 상황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풀어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설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피상적인 전쟁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3권이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
|
지난 일의 잘못을 주의하여 뒷날에 어려움이 없도록 한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징비록이라는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런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은 이번에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나 훌륭한 뜻인가? 지난 날의 잘못을 주의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의 출발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일도 해 나갈수가 없다. 또한, 똑같은 실패를 경험할 확률이 크다. 잘못을 인정했으면, 그것을 발판으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따르기 힘든 것 중의 하나이다.
유성록의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이유와 그 시대의 사회상. 그리고, 우리 나라의 정치적 상황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고, 임진왜란 당시의 사건에 대하여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에 대해서 잘 알수 있는 아주 소중한 자료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기록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근 400년 전의 일들을 이렇게 소상히 알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꼼꼼한 기록 때문인 것이다. 전쟁을 통해 기존에 있던 기록마저 없어져 버렸던 시대에 , 대부분이 실패하고 부끄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한 유성룡의 노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물론 객관적 기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완전히 수긍하기는 힘들다. 특히 이순신에 대한 부분은 유성룡에 의해 관직에 오른 이순신 이기에 모든 것을 이순신에게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물론 이순신이 임진왜란의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이순신 만저 없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됬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순신에 비해 원균,권율과 같은 장수의 평가가 너무도 박하다는 점은 유성룡또한 당파의 논리에서 마냥 자유로울수 만은 없었다는 방증인듯 하여 씁쓸할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대표되는 일본의 야망과 조선의 안일함이 만들어낸 최고의 비극이 임진왜란이다. 조선은 근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전쟁과은 무관한 나라였다. 태평성세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아무튼 조선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은 이후 조선은 물론 명나라에 대한 침략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물론 일본 자국내의 여론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조선에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많은 징후가 포착되었고, 여러 관료들이 이에대한 대비책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당시 조선은 치열한 당파로 인한 분할의 시기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익은 항상 뒷전이었던 신하들로 인해 번번히 일본 침략에 대한 대비책은 묵살되기 일수였다. 선조임금은 신하들의 눈치를 보며 안일한 태도를 취했고, 안일함 뒤에는 중국(명나라)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조선은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해 조선의 위정자들은 탁상공론말 펼칠뿐이었다. 임금이라는 자는 자신을 믿는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백성들에게는 적에게 맞서 싸우라고 하고, 자신만 살 궁리를 한 것이다.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는 임금의 거짓말은 백성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 후 처절하게 패하기만 했던 조선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나라의 지원군이 도착한다. 말이 지원군이지 외세의 개입일 뿐이다. 어느 나라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며 뛰어든단 말인가? 조선은 자국의 자존심과 모든 권리를 포기한 순간이다. 물론 조선의 그당시 사회적 상황은 중국이라는 대국의 속국 신분이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자주국방이라는 말이 참으로 소원하게 들릴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명나라는 조선의 평화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조선 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아주 열린 자세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조선과 일본은 똑같은 속국일 뿐이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나라였다. 물론 전쟁에 참가해 수많은 사상자들을 냈지만, 그것또한 지극히 정치적이고 계산적인 속셈의 어쩔 수 없는 손실일 뿐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모를 병사들만 불상한 뿐이다.
전쟁은 조선의 힘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잠시 중단될 뿐이었다. 300년이 지난후 일본은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조선은 또다시 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다. 그 과정에 중국은 또 한번 조선땅에 군대를 보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같지 않았다. 조선과 중국은 똑같은 수모를 당하게 된다. 그 후 러시아,미국과 같은 또 다른 외세가 슬슬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유성룡의 징비록 이후 300년이 지난 시점에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유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분명히 과거의 잘못을 주의하여 뒷날 똑같은 어려움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유성룡은 머지않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후세를 위해 자신의 치부를 다 들어내면서까지 제발 똑같은 전철을 밟지 말것을 호소 했건만, 우리는 전보다 더한 우를 범하고 만다. 역사는 결국 반복되는 것이었다. 징비록의 속뜻만 정확히 알고 있더라도, 똑같은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수백년 전과 똑같은 위정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제침략이후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또다른 비극을 경험한다. 이제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다. 그 과정에는 또다른 외세가 자리잡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저마다의 이익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치열하게 싸우고 많이 아플수록 점점더 풍요로워 지는 사람들이다.역사는 반복되는 것이었다. 백성을 등지고 저만살겠다고 피난길에 오른 선조임금이나,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멀쩡한 한강다리를 끊어버리는 대통령이나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징비록을 뒤집어 놓고 읽은 것 같다. 차라리 안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술에 취해 거꾸로 놓고 읽다 보니 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만 똑같이 따라하는 형상이 되버렸다. 유성룡이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다.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수 백년 수 십년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위정자들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종묘사직을 떠받들던 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로 바뀌어 있다.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참으로 한결같다. 국가와 민족을 입으로만 위하는 자들은, 항상 어려움에 처하면 국가와 민족을 헌신짝 처럼 버려왔다. 징비록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책을 열심히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똑같은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잘못된 것을 잘못됬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예전과 지금이 다른 것은 치욕을 치욕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총과 칼에 의해 피를 보고 무릎을 꿇어야만 치욕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 그것이 부끄러운지 모르는게 더 치욕이다. 부끄러운일이 더이상 부끄럽지 않고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 더 비굴한 치욕이다.
징비록을 읽되 허투로 읽을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기술한 것은 그와 같은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지, 그것을 시대에 맞게 고쳐서 교묘하게 악용하자는 말이 아니다.권력에 가까이 있는 자들은 이 책의 참 뜻을 잘 헤아려 주길 바랄 뿐이다. 더불어, 우리는 모두 유성룡이 되어 새로운 징비록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거창하다면 , 국가와 민족을 위한 개개인의 작은 치부책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므로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군사를 잃거나 땅을 잃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잃었을 때,비로소 나라를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2권 154쪽 |
|
일본의 침략으로 비롯된 두 번의 난(亂),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역사에서 지울 수도, 씻을 수도 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이 전쟁은 순전히 조정 내 군신들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충분한 준비와, 대비만 갖추어졌더라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다. 부산에 상륙한 왜적이 한 달이 채 못 되어 한양까지 진격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7년 전쟁으로 조선의 전 국토와 강산(江山)은 온통 핏빛과 백성들의 시체들로 넘쳐났으며, 조정 또한 유명무실했다. 임금은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나기에 급급했으며, 분노한 백성들은 하늘처럼 여기던 임금이 사는 궁궐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 와중에 한 외로운 신하는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과 굳은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서애 유성룡이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임금의 안위와 피난, 명나라의 원병 요청, 평양과 서울 수복, 명장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과 임용,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 등등 전쟁의 와중에 큰 공을 세워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밀려나 그 뒤에는 오직 글쓰기에만 몰두 하게 된다. 서애는 벼슬에서 물러난 다음,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임무를 맡으면서 자신의 두 눈으로 본 전란의 참상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징비록>은 바로 전쟁 당시 참담한 상황에 대한 기록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발발 당시 서애 유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도 없었을 것이고, 조선은 안위와 운명은 어찌 되었을 지 아무도 예측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거북선과 일본군이 가장 무서워하는 최강의 무적 수군을 양성하여 조선의 바다를 지켜내고 왜적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수복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서애는 다시는 이와 같은 참상이 되풀이 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임진왜란의 당시의 참상을 기록하게 되는데, 그 기록의 산물이 바로 서책으로는 드물게 지정된 보물로 지정된 <징비록>이다. 이 "징비록(懲毖錄)"은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하는 기록"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조금 더 확대 해석하면, 지난 일을 뉘우치고(징(懲)),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비(毖)), 역사의 기록(록(錄))이란 의미이다. 이와 같이 <징비록> 속에는 임진왜란의 당시에 있었던 조정내부의 내분과 갈등, 전쟁의 참상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과 조선군의 대립과 관계, 명나라, 조선, 일본 삼국의 관계, 전란의 참상, 백성들의 생활상, 군신간의 갈등, 신하들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아울러 기록 되어 있어, 선조 시대, 조선의 한 국면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1권에서는 전쟁 전의 조선과 일본, 그리고 일본의 침략에 대한 내용이 실려져 있다. |
|
징 비 록 - 징(지난일을 뉘우치고) 비(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록(역사의 기록)
징비록의 뜻을 플이 하자면 이렇다.
과거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일어난 임진왜란을 유성룡이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한 서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조선 국민을 무참히 죽이고, 온갖 것들을 약탈한 일본...
그리고, 일본의 왕 도요토미 히데요시...일본을 통일 시키고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몽환을 가지고 조선과 명나라를 빼앗겠다는 야심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일본의 영주들의 업신여김과 깔봄에 독기를 품고 이들을 전쟁에 내보내 힘을 다 쓰도록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이 안 사실에 이 끓어 오르는 분노는 무엇일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일본의 사신이 서울에 왔을때의 한 일화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 나라는 이제 망했다. 나라의 질서와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게 엉망이니 어찌 망하지 않겠느냐?'
라고 이 글귀를 읽는 데 정말 부끄럽다. 쪽 팔리고, 창피하고,
왜 한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한국 사람의 민족성에 대해서....
제 한몸 지키겠다고 수많은 백성들에게 거짓을 말하며, 백성들의 죽음을 등진 나라의 주인
그리고 그에 빌붙어서 사리사욕만을 챙기려는 간신들.
421년이나 지난 지금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421년 전과 비교한다면 모든 생활이 편리하도록
기술의 발달이 있지만, 정작 한국 사람의 인성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몇 몇의 소수 영웅들....그들이 있기에 이 나라가 그래도 버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순신...나의 어릴적 우상 이순신 장군...아빠 엄마 손잡고 현충사를 갔을 때가 제일
좋았던 기억이 아련한 그런 나의 우상이였다. 위인전도 아마 이순신 장군만 읽었으리라...
권율장군...유성룡...곽재우장군....등등 징비록에 나온 그분들이야 말로 우리 나라를
대표 할 수 있는 진정한 한국인이다 라고 생각한다.
본 서는 징비록 원문을 쓰고 이에 김기택작가님께서 다듬어 쓰시고 이부록작가님께서
여러 의미를 가진 그림까지 넣어 주셔서 학생들이 쉽게 역사에 대해서 접근 할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다.
과연, 대한 민국이 진정 국민을 위한 나라가 되기 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6.25 전쟁등의 여러 사건들을 볼 때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 할 것 같다.
나랏일 하시는 분들 이런 역사서 보고 감상문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출은 국민에게 하는거로 해서...반성 합시다. |
|
오래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은 책중의 하나가 징비록이었다. 좋은 책이라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고 먼저 읽은 사람들의 추천도 있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생각만 너무 오래 해온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손에 쥐게 되어 참 기뻤다. 좋은 책을 갖게 되면 언제나 기쁘고 만족스럽다. 책 자체는 좋지만 책의 내용은 반대이다. 제목부터가 아프다. 징비록. 지난 일의 잘못을 주의하여 뒷날에 어려움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저자인 유성룡 개인에게가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살피고 지키지 못한 국민이자 책임을 진 사람의 아픔이고 허물이다.
아마 징비록을 읽는 한국사람이라면 다들 느낄 감정이겠지만 나도 참 불편하게 읽었다. 어쩜 이렇게 사람들이 멍청하고 욕심만 가득한지 이해하기 힘들어 화가났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신료들이었다면 그렇게 긴 전쟁은 피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났다고 해도 피해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전에 전쟁을 간파할수도, 대비할수도 있었는데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안일하게 있었다는데에 가장 기분이 나빴다. 장님처럼 아무것도 못보고 하지 않고 있다가 맞이한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너무 허무하게 져서 땅을 빼앗기고 사람들이 죽어갔다. 겨우 20일만에 서울까지 왔다고 하니 제대로된 싸움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책 속에 언급된 패전이야기는 내눈에도 싸움이라고 볼 수 없는 것으로 꼬마아이들의 다툼만도 못했다. 이러니 속에서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저 줄거리만 훑듯이 알고있는 임진왜란이 실제의 기록과 해설을 통해 더욱 입체적이고 자세하게 다가왔다. 전쟁 전의 일본과 우리나라 사정에 이어 명나라의 형편까지 설명되어 있었다. 명나라는 국운이 기울어가고 여진족의 기세가 오르는 시기였고 우리나라 역시 조선 건국이래 200년간 큰 전쟁없이 지내 서로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때였다고 한다. 더욱이 신료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국정보다 당파싸움에 몰두했고 감시가 소홀한 지방관아들은 세금을 과하게 걷거나 뒷돈을 받는등 자기 배를 채울뿐이어서 백성들의 고생이 많았다. 이런때에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나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고 그간의 전쟁으로 싸움에 아주 능할때였으니 흐름상으로도 씁쓸하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아마 다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징비록을 읽는동안 유일하게 속이 편한 부분이 수군의 승전이었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하면서 일본의 계획은 틀어졌다. 그들은 수군이 또 쳐들어올것이라며 협박을 했는데 그들이 패해서 오지 못했다. 누가봐도 임진왜란의 공로는 이순신 장군과 권률 장군, 의병장들에게 있다. 그들의 활약이 속시원하고 통쾌할수록 후에 이어진 조정의 행보는 한심했다. 그저 명나라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고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리기만 했으니. 제사람을 챙기지 않고 사실을 보지 못하니 임진왜란은 정말 치욕스러울만큼 우리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보인 재난이다.
무려 7년이나 이어진 전쟁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것이었는데 징비록이 외국에도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왜 하필 이걸..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책의 내용은 마음을 참 불편하게 했지만 3권으로 나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참 좋다.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져있고 관련 도서까지 살피고 언급하며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전하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중간중간 더해진 그림도 하나의 볼거리인데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넣었다고 한다. 좀더 우리의 문화를 잘 알았다면 그림에 담긴 의미를 알아볼 수 있을것같다. 다 읽은 후에 그림을 따로 골라서 보는것도 전시회에 온듯 기분이 색다르고 좋았다. 알마 출판사의 고전시리즈에 있는 다른 책들도 다 보고싶어진다. 이어서 난중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