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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9세기 벨기에의 화가, 판화가, 풍자만화가, 삽화가였던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의 <악녀들>로 1884년 쥘 바르베 도르비이 Jules Barbey d'Aurevilly 의 소설 『 악녀들 Les Diaboliaques 』(1874)를 위한 삽화로 그려진 연작이다. 이 작품은 ‘ 잔인한 간음' 을 주제로 하고 있다. 두 연인 암살자는 메두사가 조각된 석상 위에 있는 반면 , 조금씩 중독되어 거의 죽음에 다다른 부인은 그 석상을 홀로 기어오르고 있다. 메두사는 돌처럼 굳은 시선으로 관람자를 향한 얼굴을 보인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범죄에 승리한 커플은 유혹 그 자체인 뱀과 조우하고 있다. 더 이상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죄악은 두 연인 암살자들의 양심에는 자리하지 않는다. 쥘 바르베 도르비이의 소설은 이와 같이 우울하면서도 음침한 구석이 있다. 그의 ’진홍빛 커튼‘, ’동 쥐앙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죄악 속에 꽃핀 행복’, ‘휘스트의 숨겨진 패’,‘무신론자들의 저녁 만찬’,‘어느 여인의 복수극’ 여섯 개의 중편을 모아 <악마 같은 여인들 Les Diaboliques>(2013)은 참없수 없는 관능의 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러 해 전 나는 서부 늪지대로 물새 사냥을 떠난 적이 있다” 로 시작하는 그의 소설은 나중에 펼쳐진 괴기스럽거나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전초전 같은 역할을 한다. “마차에서 내가 마주친 브라사르 자작은 이미 채찍을 휘두를 나이가 지나 있었다.” 의 문장은 앞으로 있을 브라사르 자각에 대한 행동에 대한 강렬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아닌게 아니라 브리사르 자작은 정말 멋쟁이 댄디였다.” 그러면서 이 소설의 화자는 그런 이의 풍채에 대해서 몹시도 부러워한다. “이처럼 그는 군인에게 필요한 뛰어난 풍모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름다움도 없으면 젊음도 없는 법” 이처럼 극찬을 하는 이유는 뭘까? 작중화자는 이 연극의 커튼 콜이 닫힐 때까지 계속해서 그의 뛰어난 외모와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물론 그의 여섯 편의 소설을 일관된 테마가 있다. 그는 이미 1847년 출간 당시 서문에 이러한 말을 남긴다. "도덕성이 희박한 '악마' 같은 여인들을 모아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악마와 악마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믿고 있기에 맑은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 공포심을 가지게 하려고 이 이야기들을 썼다." 그는 당대의 문필가 빅토르 위고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그의 낙관적이고 도덕적인 사상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동전 몇 닢에 희개하고 몇 시간씩 싸우다 개과천선하는 그런 인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루이스 브뉴엘같이 부르조아계급의 허위, 기만, 거짓, 위선을 고발하는 데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러한 그의 목표의 지향점이며 북극성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한 여성들은 김기덕의 여성들이 처럼 보인다. 즉 뒤집혀진 멜로드라마. 남성이 여성 역활을 하고 여성이 남성의 대변자로 돼버린 뒤집혀진 역학관계로 발전한다. 이 대목에서 현대적 의미로서 유추적용하게 되면, 지금의 사회적 역할이 그렇다. 이분법적 구별은 사라지고 그 고유의 경계영역을 드나들면 새로운 개념을 셍성하는 것, 지금의 시대가 변증법적 제네레이션의 한바탕의 유희극이 펼쳐지고 있는 광란의 축제의 현장이다.과거의 그가 「죄악 속에 꽃핀 행복」에 묘사한 구절은 현재의 나에게 울림이 있는 문장이 되었다. “남자들은 다 똑같소. 남자들끼리는 유별나게 튀는 사람을 싫어하고 기분 나빠 하지만, 그런 별종이 치마만 둘렀다 하면 좋아서 사족을 못 쓰니까! 프랑스는 말이오, 남자가 하는 걸 할 줄 아는 여자는 비록 그것을 남자보다 훨씬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여자들에 비해 단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그런 나라요. 그런데 오트클레르 스타생 양은 뭐든지 했다 하면 남자들보다 훨씬 더 잘하는 여자인 거요” 프랑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