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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꾸리찌바라는 책, 신선했다. 쉽게 도시에 대해서 특히 도시계획에 대핸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 책을 본지가 10년이 지난 이 즈음 ‘꾸리찌바 에필로그’가 나타났다. 10년 동안 저자의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삶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글인 것 같다.얼마 전에 본 책 ‘음식, 도시를 지배하다.’ 도시를 지탱하기 위한 많은 것들, 다 어디에서 오는가 를 보고 이 거대한 도시를 어떻게 운영하는 지가 아주 궁금했다. 주위의 사람, 자본 등을 모든 것들을 끌어 당기는 거대도시가 궁금했고, 계속 이렇게 도시에 의존하는 삶이 문제가 없는지 조금 걱정도 했지만, 나는 오늘도 시골이나 농촌으로 향하지 못하고, 도시의 삶을 살고 있다. 석유와 끈끈하게 이어져온 현대인의 삶,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석유기반 문명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 특히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석유 의존도는 높다는 역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세계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올라갔지만, 기후변화와 피크오일 등 위기에 대한 대비는 거의 없다. 최근 부는 바람, 세계화에서 지역화 그리고 Act big, act now.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정부가 주장하는 녹색성장은 녹색으로 분칠한 개발전략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4대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지만 강행하는 이 사업 과연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세월만이 정답을 알겠지. 우리가 본받고, 부러워해야 할 도시들. 1. 프라이부르크. 차 없는 도시, 독일의 환경수도, 1982년-2007년 까지 자동차 통행은 38%에서 32%로, 자전거는 15%에서 27%로, 대중교통수단은 11%에서 18%로 변화하였다. 자동차통행량이 줄어들어 산업의 위축을 걱정했으나 오히려 고용과 1인당 소득은 증가하였다. 더 많이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통행거리는 단축과 지역 접근성 보장원칙에 기초하여 대중교통, 도심은 경전철로, 버스노선은 지선 중심으로 확대하였다. 굴절버스, 트램, 자동신호우선체계 등을 도입하여 자동차 이용이 더 비싸고, 느려지고, 덜 편리하게 되면서 대중교통이 자동차에 비해 휠씬 더 매력적인 대체품이 되었다. 2. 꾸리찌바. 국가의 세기에서 도시의 세기(창조 도시)로 변화, 창조도시는 상상력이 풍부, 혁신적, 창의적 방법으로 도시문제를 처리, 꾸리찌바의 창조성은 이 도시만이 지닌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토대를 둔 ‘혁명적인 변화능력’과 재미와 장난이었다. 지속 가능한 도시교통은 간선 교통축, 버스전용차로, 이중 굴절버스, 경궤도 버스체계와 버스전용도로시스템 등은 버스를 지하철처럼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만들 수 없는가? 에서 출발한 시스템이다. 시민들에게는 사회적요금제, 버스회사에는 거리 별 지급시스템으로, 그늘과 신선한 물 프로그램, 자연배수시스템(작은 도랑 건설과 호수를 조성), 하천보호 지대에 선형공원으로 개발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좀 획기적인 방법인, 모든 건물을 간선도로로부터 의무적으로 5m씩 후퇴시켜 식재공간을 확보하고, 주거지 면적 50%에만 건물을 건축이 가능하게 하고, 가로수와 식물을 영구적인 식생보존 조치를 취하였다. 문화정책에서는 지혜의 등대, 가난한 사람들의 정보와 교육기회 확대, 도서관, 인터넷, 치안의 등대이며 문화공간이다. 고형폐기물 관리정책, ‘쓰레기 아닌 쓰레기’를 통한 아이들 교육(환경교육)과 쓰레기 구매와 재활용품 수거와 수거쓰레기의 교환(식량 등으로), 녹색교환(식품백을 재활용쓰레기와 교환), 무단투기 쓰레기를 은퇴자나 실업자를 고용하여 처리, 유해폐기물 분리배출과 수거로 쓰레기 제로 배출사회로 다가간다. 인터뷰, 꾸리찌바 그 후 10년,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서울의 버스교통 개혁은 반길만한 일이다. 또 많은 한국인들이 꾸리찌바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수박 겉핥기 식의 방문으로 수많은 꾸리찌바 전문가들이 탄생했다. 우리는 대형사업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 일 예로 과대한 교통수요와 과소한 투자비로 도시철도는 만성적자로 지방재정과 위기와 파탄에 내몬다. 또 자차체의 내부타당성 조사와 정부의 타당성 조사의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교통수요와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 육교나 지하도는 자동차를 위한 발상이다. 많은 부분을 개선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저탄소 사회. 현재의 자동차 중심사회는 변화가 필요하다. 짧은 거리는 자전거로, 자전거는 무엇보다 환경친화적 교통수단,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유연, 시간과 에너지 절약, 단거리와 5km 이내에서 우위, 보관과 통행에 적은 공간을 차지, 지역사회의 사회적 유대 재확립에 기여한다. 불리한 점은 기후(눈, 비, 강풍), 지형, 이륜구조의 안전성이 낮음, 가장 문제는 반사이클링문화이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자전거들이 있지만, 이용도가 높지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아마 자전거에 대한 교육과 문화가 없어서일 것 같다. 어릴 때 잠시 이용하고, 짐처럼 되어버리는 자전거, 먼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는 한 자전거의 활성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현정부는 도시간의 자전거도로 건설, 지자체는 도시 안의 자전거도로 건설로 각자 따로 노는 정책이다. 먼저 도시 내부의 자전거도로를 완성하고 도시간 자전거도로는 나중의 일인 것 같다. 정부가 추구하는 세계3대 자전거 생산국은 고가자전거(명품자전거) 생산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토지이용과 교통정책에서 도시전체에서 사이클링 안전을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두바이 신드롬. 석유로 부를 얻은 곳에서 석유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왜 이러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두바이의 대규모공사, 인공섬, 사막의 스키장과 사우디의 메가시티계획 등이 진행 중이다. 어떻게 보면 발전이나, 생태발자국으로 보면 두바이는 낙제수준이다. 그러기에 두바이의 몰락은 예견된 재난일 것이다. 한국판 두바이, 송도국제신도시의 현실을 보라, 무엇보다 우리 실정에 적합한 창조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공동체 실험. 한밭 레츠, 지역통화제도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공동체를 살리는 운동, 환경운동이다. 우리 사회는 지속 불가능한 생산, 유통, 소비, 폐기시스템이기에, 주민들 스스로 가능한 한 자립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 공생, 소박한 생활방식 확립으로 변해야 한다. 지역화폐운동(두루)의 문제점은 운영비(간사의 인건비 등) 재정문제, 전용공간, 상근인력, 회원 지역제한, 접근성, 거래내용(대안모색), 시간여유계층의 확보이다. 앞으로 실업문제와 지역통화운동을 결합시키고,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지역교환 거래체제를 확립하여 생물지역주의에 이바지 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는 사랑, 돌봄, 베풂, 나눔을 토대로 물물교환, 노동의 제공, 공동체 농원,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 우정 어린 인간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밭 레츠는 경제적 조직, 재정 안정화, 전업활동가가 필요하다. 또 지역화폐 단체의 전국적 연대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라민은행. 대항문화, 소액신용금융 시스템으로 지구촌을 대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빈곤의 문제, 특히 여성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도구이다. 무엇보다 그리민은행 회원의 16가지 결의사항을 보라 왜 그들이 성공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사랑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정부의 보조금, 해외 원조금 지원이 없으면 고리대금 수준의 높은 이자률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돌려 막기 등 부작용도 발생한다. 교훈. 국민국가, 국민경제는 서서히 퇴조하고 도시정부, 도시경제는 중요성 증가하기에 지역사회 만들기가 더욱 중요하다. 먼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인식의 변화와 시민의 의식변화, 도시와 마을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앞서가는 도시들. 프라이부르크. 친환경적인 인간중심의 도시, 볼로냐. 역사적 거리의 보존, 개조, 정비를 통한 도시재생과 미래의 공장(장인기업과 첨단기술의 만남), 보고타. 세계 최초의 대중교통분야의 청정개발체제, 타마 뉴타운. 차 없는 개발, 녹색교통과 대중교통, 2세대 동거형 주거 등 리더십과 거버넌스. 거버넌스는 협치이다. 조정 매커니즘, 보다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참여자들 상호간의 협력적 의사결정 방식을 요구되는 도시 및 지역사회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식량 거버넌스와 도시. 우리나라는 토건업 비중이 높고, 농업을 복합적인 산업으로 인식한다. 농업은 산업이 아니다. 우리 생명의 기본이 되는 자연이다. 우리의 음식들의 푸드마일을 한 번 보라. 도대체 이 음식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이르렀는지를! 세계식량체계는 저가연료 정책에 의해 달성된 것이기에, 고유가나 석유가 사라진다면, 이 바벨탑은 무너질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한 식품의 공급, 취약자들의 접근성 보장, 충분한 양의 공급, 지속가능성,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 공급 등을 생각해야 한다. 공동체 지원농업, 생산자인 농업과 소비자가 함께하는 농업 등 지역 여건에 맞는 생산방식, 농민 장터, 도시농업(유휴자원과 유휴노동력 이용, 소규모 농산물 생산), 공공기관이 지역먹거리 공급시스템 구축, 학교급식에서도 농장과 학교를 연결하여 안전하고 영양가 많은 음식을 공급, 기초식품에 대한 정보제공, 창고형 소매점, 이동식 매점 운영, 서민식당, 농업마을 조성, 가족농업, 자가소비식량생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글로 우리 모두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도시를 얼마나 알고, 얼마나 이해하는가? 비난은 잘하지만, 대안이 잘 없는 우리네 사람들, 말만 뻔지러하게 하는 정치인들, 공무원들 좀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계획은 지금 당장보다는 앞으로 위한 계획이 되어야 하는데, 항상 근시안적이며, 나 아니면 안 된다, 나만을 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더 큰 상처만을 남길 것 같다. ‘꾸리찌바’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발전한 것보다는 더 퇴보한 느낌이 든다. 말로만 친환경, 생명 어쩌구 저쩌꾸 하면서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유야무야하며 집단과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당리당략에 움직이는 정치인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변화가 어려운 것 같다.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인 실천이 더 중요하고 많은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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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리찌바! 꾸리찌바는 브라질 남부 빠라나주의 주도(州都)이다. 면적은 대전보다 약간 작지만, 인구는 다소 큰 도시라고 한다. 1940년대 프랑스 도시계획가 아가쉬에 의해 도시계획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나, 브라질의 자동차붐을 예측하지 못하여 처음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물리적 한계를 넘는 도시로 성장을 지속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꾸리찌바가 1970년대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의 주도아래, 35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교통분야의 혁신적인 조치들로 인하여, 지구촌에서 가장 완벽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한 도시가 되었다.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도시의 창조성과 연계된 대표적 사례로, 관주도형 창조도시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저자는 10년전에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출간하여 우리에게도 소개하였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서 시작되어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간선 급행버스 시스템이 바로 꾸리찌바의 대중교통체계를 모델로 한 것 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도시는 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물리적으로 자꾸 커져만 간다. 그러다 보니 도시 주위에 신도시라고 이름 붙여진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난다. 신도시의 도시계획이라는 것은 잘 정비된 도로가 얼마나 구비되어 있는지, 그리고 확장되는 신도시의 성패여부는 도심까지 진입하는 시간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중학교를 시골에서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 서울에 입성한 나는 처음에는 도시가 주는 삭막함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한두해가 지나가면서 오히려 도시가 주는 안락함과 문화세계에 빠져들면서, 시골이라는 곳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허나, 지금은 복잡하기만 하고, 시도때도 없이 정체되어 있는 교통을 보면서 오히려 서울에서 떨어져 생활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위기는 IMF 사태나, 요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금융위기에 피크오일과 기후변화 위기등이 복합적으로 얽히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고, 그것의 출발점이 세계화에서 지역화로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왜 그러한 시도를 하고, 또 진행하고 있는 도시들은 왜 그것을 시작했고,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자고 한다. 꾸리찌바의 교통분야 혁신조치는 자가용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에게, 동력차량 보다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행위 주체의 철학적 산물이라고 한다. 또한 꾸리찌바의 창조성은 교통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친환경적인 하천관리나, 체계적인 쓰레기 재활용 시스템, 그리고 도시의 재개발도 공동체형 문화도시를 목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하천관리는 강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홍수위험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도로 및 건물의 건설을 금지시키고 있다. 하천의 직강화와 함께 호안을 시멘트로 싸바르는 우리나라의 하천개발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재활용품과 유해폐기물의 구분등 쓰레기를 매개로 하는 환경교육의 생활화로 쓰레기 제로 배출사회를 향해 나가는 그들은, 우리나라 대다수의 자치도시와는 달리 쓰레기 소각장을 하나도 건설하지 않고 있다. 도시의 재개발 역시 마찬가지이다. 높은 투자비를 들여 문화시설을 만드는 토건형 문화도시가 아닌, 역사 문화유산의 보존과 재생을 통해 지역주민이 우선적인 수혜를 보도록 하는, 공동체형 문화도시의 전형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피크오일 이후의 우리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가장 싼값으로 우리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게 해준 화석연료가 고갈되면서, 우리의 삶이 피폐해지기 전에 그 대안을 찾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피크오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교통문제를 비롯하여, 대형공사나 지역의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대안 교통수단이 아닌 자가용을 선택 함으로서, 일상적인 통행을 위해 가구소득의 많은 부분을 끊임없이 지출하고 있다. 자원위기가 닥칠 때, 자동차에 대한 의존은 우리의 자립적이고 능동적인 삶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꾸리찌바나 독일의 환경수도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가 우리에게 주는 귀중하고 값진 경험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행하는 대형사업들은‘마키아벨리주의 공식’과‘역전된 다위니즘’을 따른다. 마키아벨리주의 공식은 과소평가된 비용, 과대평가된 이익, 과대평가된 지역개발 효과, 과소평가된 환경영향이 잘 결합하여 환상적인 세계를 디자인하는데 토대가 되는 공식으로, 대부분의 대형사업들은 이들 요소에 의존하고, 사업제안자들은 이들 공식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또한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지막에는 적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이 다위니즘이지만, 역전된 다위니즘에 따르면 아주 문제가 많은 사업만 살아남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토건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그 도가 더욱 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때 두바이는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토건사업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새만금 개발, 송도 신도시, 4대강 사업등 토건국가를 유지하게 해 주는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 말, 두바이의 파산과 함께 두바이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우리가 한국판 두바이라 부르는 많은 사업들 역시, 두바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토건국가를 지탱해주는 대형 토목사업 위주의 무모한 개발이 불러온 참화라고 한다. 이들 사업 모두 마키아벨리주의 공식과 역전된 다위니즘의 생생한 실례가 되고 있다. 저자는 저탄소 사회로 가는 지름길로 교통분야에서는 자전거를 꼽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자전거 정책은 자전거 이용의 대중화를 막고 있다고 한다. 자전거는 거리마찰효과가 있는 통행수단 이다. 도시 안에 생활밀착형 도로망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국일주 자전거도로나 4대강 주변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또 세계 자전거 3대 생산국이 되겠다는 목표아래 명품 자전거 타령을 하고, 각 지역마다 자전거 산업기지를 만들겠다고 추진한다. 그런가 하면 고가터널형 자전거 급행도로의 건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것은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 사업의 활성화를 통하여 저탄소 사회로 이행해 나간다기 보다는, 토건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토목사업의 한 방편으로 기획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의 자전거도시들이 어떻게, 어떠한 정책으로 자전거를 교통수단화 하였는지를 하나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때 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우리는 또한 정부와 국민 모두, 농업과 식량의 석유에 대한 극심한 의존도를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세계식량체계로 까지 확대하면 사정은 더욱 심각해 진다. 살충제, 제초제, 비료, 농기계, 식량운송체계등 무분별하게 석유를 태워야만 지탱이 가능한 농업과 식량체계는, 석유생산 정점의 도래와 저유가시대의 종말로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지금부터라도 도시농업과 유기농등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지역통화운동의 활성화를 제안하고 있다. 공동체의 모든 것이 화폐경제로 흡수되어 사랑의 경제와 사회적 기업 영역이 붕괴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재해를 비롯한 식량, 에너지 위기등 위급상황에 처해질 경우, 약탈과 폭력, 방화, 살인 같은 인간성이 상실된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공동체가 살아 있거나, 사회적 협동경제 영역이 나름대로 남아있는 지역의 경우는, 협동과 연대의 힘으로 고난을 피하고, 우정과 배려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끊임없이 보듬을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전자는 카트리나로 물바다가 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일이고, 후자는 대지진 참사 이후의 일본 고베의 모습이라고 한다. 한밭레츠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인 레츠와 같은 지역화폐 운동을 통해 사랑의 경제영역을 확고히 하는 것은, 자연적 재앙과 금융, 기후, 석유, 식량위기에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몸짓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계는 경제활동의 글로벌화에 따라 국민국가와 국민경제가 퇴조하고, 도시정부와 도시경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는, 시 자체의 정책적인 환경보호 노력과 시민, 기업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할수 있도록 제도화된 효율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에 의해 환경도시로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역사적인 가구의 보존목적을 문화재, 관광재로서의 보존뿐만 아니라, 시민 생활환경까지 포함하는 도시의 재생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이들 세계의 모범도시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탁월한 단체장이나 리더들의 열정어린 노력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간의 협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한탕주의식, 토건이 주가 되는 도시재개발이 아닌, 그리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길위의 차안에서 보내는 그런 도시가 아닌,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그런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나저나 주말에 자동차를 버리고 집에 간다면 지금보다 시간이 배가 더 걸릴텐데, 어떡할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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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의 생태지수와 행복지수를 스마일 그림으로 표시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는 어떨까? 적어도 서울이 꿈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비록 서울시가 2010년 7월 유네스코의 창조도시 네트워크의 디자인 분야에 등록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이런 영광이 실은 대형 토건 사업에 기댄 '사기에 의한 디자인'의 눈가림 효과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꾸리찌바(Curitiba). 나는 이 이름을 처음 접한다. 하지만 [꾸리찌바 에필로그](서해문집, 2011)를 통해서 브라질 남부의 한 도시에 저자 박용남이 10년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켜 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의 소장으로 국내에 꾸리찌바를 소개한 장본인이다. 대표적인 관 주도형 창조도시 꾸리찌바는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라는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고 있다. 꾸리찌바의 도시 관리 철학은 자이메 레르네르 전 시장의 말을 빌리면 ‘도시 침술’이란 비유로 정리된다. 건축가 출신인 레르네르는 시장의 역할을 “도시의 중추신경을 잘 파악해서 문제가 있을 경우 정확한 침술로 소생”시키는 도시 침술가에 비유한다. 참고로 레르네르는 꾸리찌바 시장을 3회, 빠라나 주지사를 2회, 세계건축가협회 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꾸리찌바는 이미 한국에서 창조도시의 붐을 일으킨 멘토로, 서울의 중앙버스전용차로가 포함된 간선급행버스 시스템이나 동두천시의 지혜의 등대 도서관, 폐채석장에 만든 안양 병목안 공원, 폐품을 이용한 박물관 등이 바로 꾸리찌바를 벤치마킹한 사례다.
저자는 꾸리찌바를 비롯, 금융 위기, 기후변화 위기, 에너지 위기라는 전지구적인 3중 위기에 직면한 세계 도시들의 혁신적인 지역공동체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향후 25년 내에 석유와 천연가스 소비량을 절반으로 감축하려는 미국의 포틀랜드, ‘차 없는 도시’를 꿈꾸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신뢰와 연대에 바탕을 둔 국내 지역화페운동인 한밭레츠, 방글라데시의 사회적 기업 그라민 은행 등이 소개된다. 또한 지역식량체계 구축을 위한 기본구상도 잘 정리하고 있다. 참고로 대전의 ‘한밭레츠’는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통화운동으로, 레츠(LETS)란 지역교환 거래체계(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의 약자이다. 지역통화운동은 지역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이 가진 노동과 물품을 가상의 지역화폐로 거래하는 활동이다.
레르네르의 말대로 “도시는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이다.” 살맛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형 지방자치를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각지의 지역화 운동과 대안공동체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한다. 이 책은 환경운동가와 도시정책 관계자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에 관심 있는 일반독자들에게도 좋은 지침서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이 좀 더 인간적인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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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리찌바 에필로그를 읽고 조석현·김영은|예술철학연구
![]() ![]() 사진출처:http://blog.daum.net/namullan/8857978
브라질 생태도시라고 책은 소개했다. 꾸리찌바가 무슨 뜻일까 싶어 더 찾아보았더니 소나무 마을이라고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나무와 다른 파라나 소나무 군락지인 셈이다. 그 나무도 보호수종이라 함부로 벨 수 없다고 한다. 벌목금지인 셈인데, 우리나라에서 벌목이 된 것과 자연환경의 훼손은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임을―이 책을 통해 반성하는 자세로 읽게 됐다. 자라난 곳이 서울이고, 서울 중에서 가장 급속도로 변한 영등포였다. 당시 구로공단이 들어서지 않았으나 성장하면서 동네 앞에 흐르던 개울이 점점 시꺼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경제발전의 시초였다. 개울은 썩어 공을 차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건져내야 하는데, 몸에 묻은 검은 흙은 냄새는 물론 온몸에 가려움을 동반했다. 그 썩은 물은 지금은 흐르지만 빗물처리와 다른 수로로 흐르는 터라 보이지 않는다. 빗물만 조금 흐르는 그 위로 전철이 지나다니는 그곳에서 본 변화는 꾸리찌바를 깊게 생각하게 했다. 물질의 집착이 발전인가? 라는 의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가졌다는 것이 행복의 척도가 되었으나 그 행복이라는 것이 정지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계속 몸집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물질과 자본의 결합은 행복조차도 행복하지 않게 해버렸다. 그러나 그 생활을 버리고 조금 더 불편한 삶으로 갈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율배반이 서울에서 태어나 살았으면서도 서울을 떠나 살게 한 동인이 되었다. 맑은 하늘을 보다가 잃어버린 밤 하늘의 별들, 바람을 하나둘씩 도시에서 잃어버렸다. 고향이 아닌 지역으로 내려와 살면서 별을 보는 것도 바람을 만지는 것도 서투르다. 아이에게 잃어버린 것을 알려줄 수 없어, 그저 수학과 논술에 대한 이야기를 작은 거실에서 하는 시간을 보내곤 한다. 지역에서도 점차 대규모로 공사가 벌어지는데, 인구의 유입이 곧 지방세의 증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장래를 보고 결정한 공사라 하더라도 산이 잘려나가고, 오래된 나무들이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장을 보곤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런 결정이 과연 경제성장과 얼마나 연관이 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더 잘 산다는 것이 기회를 잡은 소수의 개인이 아니라 기회가 왔는지 조차 모르는 이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생태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된 생각을 하나 풀어냈다. 삶을 바꾸려는 여러 시도를 했으나 번번히 막히고 넘기 힘든 절벽같은 사회 속으로 들어왔다. <꾸리찌바 에필로그>가 여러 시의성 시각을 던지는 것은 이 때문일 듯 하다. 노블리제 오블리제가 끝난 듯한 도시에서는 숨을 쉬기 쉽지 않다. 보이지 않은 매연인데도 무색무미무취에 가까워 생명활동은 부자연스러운 곳이 도시가 아닐까.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 아이디어이고 유혹을 잘하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며,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희생된 가치와 본질은 어마어마하다. 꾸리찌바는 이를 되살리려는 반성이고 노력이라 생각이 들었다. 삶이 피폐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탐욕이 거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튤립이라는 꽃은 투기 대상이 되었던 역사가 있다. 아래의 꽃이 그 꽃인데,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영원한 황제)라고 불리는 튤립이다. 돌연변이종인데, 미추美醜는 결국 거품논쟁처럼 돌연변이에 의해 결정되는 듯 하다. 꽃 하나가 몇 채의 집 값을 호가할 정도였듯, 지금은 보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핸디폰이나 스마트 폰이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제품이라 하지만, 정보화보다는 정보의 쓰레기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 구조 속에 소비자들이 살고 있는 셈이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꾸리찌바는 도시의 공간에서 사라졌던 숲을 끌어들이는 노력이다. 숲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그 자리에, 숲을 다시 초청하는 일이다. 한번 관계가 깨졌다면 쉽게 회복을 할 수 있겠는가? 전략과 전술은 양심보다는 이익을 남겨야 하므로,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묘한 변증법과 돌연변이적인 개념으로 기형사회를 만들었고 기형도시를 만들었다. 꾸리찌바는 그런 것을 되돌리자는 운동에서 실천하고 있는 반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발전과 새마을운동은 차이가 있다. 균형의 시각에서 보자면 새마을운동은 전국적이었으나 현재 도시 집중화 현상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닌데도 몰아주는 것은 세금을 조금 더 걷을 수 있다는 막연한 행정 착오에 기인하지 않을까. 중소기업이 사라지게 만든 풍토에서는 꾸리찌바가 설 수 없다. 아무리 꾸리찌바가 괜챦은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내부적으로 흐르는 것을 익히지 못하면 공약에 지나지 않는다. 당선자들이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펑펑 써대는 돈이 공돈이 아님에도, 개인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욕망은 도덕 불감증에서 찾아야 한다. 더 큰 건물과 더 큰 화려한―그래서 동물의 수컷들이 벌이는 암컷 쟁탈전과 다를 바 하나도 없다. 도시가 이성의 산물일 수 있지만, 현재의 도시가 그런 기능이 사라지거나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생태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도시도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몸인데, 자기분열을 계속하기만 하고 성장을 멈추지 못하는 암癌과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한 후에 멈추는 자연의 성장점을 위배한 곳에서는 언제나 불행이 뒤 따른다. 청년실업은 문사철 과잉공급 탓이라고 2011년 4월 25일 고용노동부 장관이란 이가 말한 내용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이폰이 문사철에서 나왔다고 스티브잡스가 언급했는데도 행정을 위한 행정만 한 까닭에, 돈만 많이 받는 봉급쟁이에 지나지 않는 이들이 설계한 도시는 기형일 수밖에 없다. 절대 다수라고 하지는 않지만, 타자他者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는 터라 도시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활동은 경쟁으로 몰아넣은 결과가 부패이고 무능이지 않던가. 생명이 숨쉬는 땅이 되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들은 물러나야 한다. 멀리 보고 넓게 보며 동시에 깊은 안목을 지닌 이들이 필요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그 즉시 사라지는 대계大計들을 볼 때마다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풍토에 대한 슬픔이 적지 않다.
혼창통魂創通이 꾸리찌바를 이끄는 힘이 아닐까. 부산의 저축은행 문제에서 불거진 탐욕의 문제는 가진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꾸리찌바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고치고 변화시켜야만 비로서 이룰 수 있는 도시다. 탁상행정가는 결코 꾸리찌바를 설계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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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장 혹은 중요한 공무원이 된다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시장이 되기 어려우니 어떤 시장을 뽑을 것인가 또는 어떤 정책을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우리 나라 광역시급 대도시의 문제 중에 하나가 지하철일 것이다. 서울을 빼고, 부산부터 시작하여,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모두 지하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용인 경전철, 공항 철도 등도 있다. 대도시이면 당연하게 교통체증을 없애고 사람을 수송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답이 지하철인 것이다. 꾸리찌바를 보면서 이 답은 틀린 답이라는 생각이다. 지하철 보다는 경전철이 싸게 들고, 경전철 보다는 버스가 싸게 드는 것이 너무 당연한 논리이다. 꾸리찌바의 버스 승강장을 보면서 지하철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교통수단인 것이 명확해 보인다. 꾸리찌바도 우리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인구 증가 등의 엄청난 확장과 증가를 맞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교통 체계도 어떻게 합리적으로 짤 것인가 당연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심의 혼잡을 줄이고, 버스 전용으로 버스의 속도를 확보하고, 간선으로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여 자전거도 잘 다닐 수 있는 교통체계를 갖추었다. 값싸고 편한 교통체제에 대해서 노력하고 그 결과물이 현재의 결과물인 것이다. 배울 점이 많다. 꾸리찌바가 교통체제에 대해서만 배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서관과 공동체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등대, 그리고 저소득층에게도 돈이 되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쓰레기 교환 제도 등 배울 점과 생각할 점이 많다. 또 다른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대표적인 생태 도시이고 도심에 차를 성공적으로 없앴다. 대표적인 정책이 도심으로 갈수록 주차 비용을 아주 비싸게 하고, 외곽에 환승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시가 커질수록 교통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도시 계획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책이 여러 분야를 두루 적고 있는데, 이 중 중요한 것이 지역 중심의 사회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 레츠라고 하는 지역 화폐의 소개, 그리고 우리나라 대전의 한밭 레츠의 사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내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아직 안정되지 않고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식량 체제에 대해서도 지역 중심이 생각나고, 소액 대출의 모범 은행인 그라민 은행에 대해서도 지역 공동체가 떠 오른다. 세계화의 세상이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곳이 중요하고, 내가 보고 갈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결론으로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살고 싶은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 나라는 너무 돈을 많이 사용하는 토건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돈 많이 안 사용해도 좋은 정책이 많을 것으로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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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치바(Curitiba) 혹은 꾸리찌바라 불리는 브라질의 도시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도시의 주도권을 자동차에서 사람에게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대중교통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는 내용으로 꾸리찌바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기억해 보면, 우리나라에, 서울에 처음으로 중앙차로가 도입이 되었던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엔 낯설었던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이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중교통으로 이끄는 매개체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치적으로 홍보가 되고 있긴 하지만, 꾸리찌바에 비교해서 서울이라는 도시는 여전히 사람이 거주하기에, 이동하기에 편안하고 즐거운 도시는 아닙니다. 지하철과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동의 중심에 자동차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도시의 삶을 바꾸기엔,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멀리 이사를 떠나야 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거주하는 걸 넘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와 영주의 권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더 빠른 속도를 거슬러 이제 그 속도를 늦추는 노력, 인간의 속도에 맞추어 도시를 재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걷고 싶은 가로, 자전거를 타고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도심은 누구나 꿈꾸는 도시의 모습일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게 불편하도록, 대중교통이 더 편하고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도시를 재편한 결과 도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책에 소개된 많은 도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차도와 완벽하게 분리된 자전거 도로의 확충, 도심을 오가는 차량의 통제, 나무가 우거진 도심 속 공원 확대 등 인간을 도시의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은 무수히 많을 것 같습니다. 정책의 방향이 '인간'을 지향할 때 도시의 변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태도시를 지향하는 곳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박철수교수가 '아파트'라는 책에서 "장소는 한 곳에 오래 뿌리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집과 땅에 대한 세월의 주름이 빚어내는 온전한 기억이자, 켜가 쌓이는 동네 풍경이 일구어내는 시간의 굳건한 결정체가 곧 장소이다." 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거주형태에서 문제가 되는 건 아파트가 아니라 폐쇄적인 단지가 문제인 것처럼, 우리네 도시의 문제도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도시가 지향하는 매체가 자동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를, 거기에 사는 주체인 사람에게 돌려주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도시에도 숨 쉴 공간이 생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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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꾸리찌바를 갔던, 그곳에서 처음 느꼈던 느낌이 새록새록 나는 좋은 경험을 주신 Yes24에 우선 감사. 당시 꿈의 도시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크게 느끼지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탐스런 마을에 왔구나 하는 기억을 더듬게 해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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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에는 자하 주차장이 있다. 지은지 10년도 더 된 아파트라 지하 주차장은 물론이고 지상 주차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이면 주차장뿐만 아니라 일렬주차, 도로주차, 난리가 난다. 1가구 2차량은 보통이고, 1가구 3차량을 보유한 집이 다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차를 마구 굴려도 좋은 나라일까.굳이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아도 대중교통만으로도 이동이 충분한 그런 교통대국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동네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두사람이 걷기도 좁은 인도에 듬성듬성 가로수가 있고, 거기에 버스정류장도 있으며, 또 거기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그러니까 버스정류장에 버스라도 도착할 량이면 자전거도 멈춰야 하고 인도로 걷던 사람도 멈춰야 하며, 한줄로 나란히 정류소박스 뒤편을 걸어야 한다. 걷고 있던 중이던 자전거를 타고있던 중이던, 혹은 버스에서 내릴때건, 짜증이 나는건 당연하다. 아 글쎄,한 사람도 걷기 힘든 곳에 자전거도로가 왠말이냐구. 참고로 말하자면 그도로는 왕복 6차선 도로이다. 전철을 타면 가끔 1호차에 자전거 전용석이 있다. 좌석을 들어내고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둔 것인데, 나는 한번도 단 한번도 그곳에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는걸 본 적이 없다. 볼 때마다 꾸역꾸역 손잡이에 매달리고 난간에 걸터앉은 지친 사람들만 바글댈 뿐이며, 그리고 그들은 다들 한마디씩을 잊지 않는다. "사람 앉을 곳도 없는데 자전거가 왠말이냐구." 언젠가 TV에서 본 광고. 세련된 도시 여인이 신발 정리를 하고 있다. 멀쩡하고 역시 세련된 구두들을 집어 던지며 "버려!"를 외친다. 그때 나타나는 남자, "그러면서 차는 왜 그모양이냐?" 여자는 "바꿀꺼야!"라고 소리친다.
이 책은 10년 전에 출판된 <꿈의 도시, 꾸리찌바>의 후속편이다. 꾸리찌바 그 후의 10년 뿐아니라, 두바이 신드롬이 지나간 자리와 나눔과 볼살핌의 공동체 실험, 지역화폐운동, 가난한 이들에게 신용 하나만으로 대출을 해주는 그라민 은행 이야기 등이 이 책에 함께 실려있지만 나는 주로 자전거 도로와 교통을 중심으로 읽었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꾸리찌바 배우기 열풍이 일으켰으며, 각 단체의 높으신 분들은 차례로 꾸리찌바를 배우기 위한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정부는 '생태도시, 저탄소, 지속가능, 녹색성장' 등의 모토로 개발정책을 계속 하고있다. 겉으로는 '녹색'을 내세우며 '토목강국'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낡은 것은 수선의 대상이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를 담은 세계인들의 눈들로부터 감춰져여 할 철거의 대상이며, 새롭고 도시적인 것들은 이른바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명품'이란 이미지는 새롭고, 고급스러우며 급조된 듯한 세련됨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이 대통령께 먼저 추천드린다. 그리고 각 부처의 높으신 분들과, 개발정책 실무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이 한 번은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힘들지만, 미래를 위한 의식개발과 꾸준한 노력은 반드시 성과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정부 만이 우리에게 녹색으로 덧칠한 헛된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모든 것에는 맥락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리더에겐 대중을 한 방향으로 몰 책임과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말잔치로만 끝나지 않는 진정한 '녹색'과 '지속가능'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10년 후 쯤엔 우리나라의 창조적 도시 정책을 배우기 위해 각국의 높으신 분들이 행차하는 그런 상상을 해보며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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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나온 꾸리찌바란 단어가 책에서 차지하는 양은 전부가 아니었고, 또한 반을 넘지 않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열풍 속에 무너져가는 가계와 서민, 그리고 지역경제을 위해 마련된 새로운 해법이나 계획, 그리고 그것들이 시행되고 있는 현상황을 분석한 책이었다. 또한 일관된 서술방식이 아니라 인터뷰 내용까지 한 Chapter를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글방식이 있는 매우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그 속에 꾸리찌바란 환경도시가 있었고 자전거 등의 새로운 교통편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알고만 있을 뿐, 한국에선 그리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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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서울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서울에 살아본 적은 없다. 서울에 직장을 둔 적도 없어서 가끔 방문하는 서울은 나에게는 좀 낯설고 사람 많고 교통이 혼잡한 도시 정도로 느껴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울은 그리 멀지 않다. 20Km 내외이니 근접 거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내가 요즘에는 서울에 자주 간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아니고 지금 직장에서 바로 우리 집으로 오는 대중교통이 없다. 서울에 들려서 다시 버스나 전철을 갈아타야만 우리 집에 올수 있다. 그래서인지 잠이 들기 전에 알람을 맞추면서 항상 고민을 한다. 차를 가져갈까?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차를 이용하면 30~40분이 걸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이 걸리는 길을 이용할까? 지하철을 타면 두 번 갈아타고 버스 한번을 타야한다. 버스를 이용하면 광역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되지만 번잡한 서울 거리를 들렸다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만만치 않다. 직장을 옮기면서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갈까 하였으나 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 선뜻 결정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잠들기 전 고민을 아직도 하면서 산다. 더구나 서울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지하철은 3년 넘게 개통을 미루고 있다. 올해도 개통이 불투명하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는 좀 고민스럽다. 이 녀석만 개통하면 1시간 거리인데 하는 생각에 이곳에 살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런 상황에 차를 몰고 다니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꾸리찌바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그저 당연하게 생각하였던 나의 출근길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이런 상황에 직면하였는가를 고민하면서 꾸리찌바라는 브라질의 한 도시를 10년 전 소개한 박용남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살고 일하고 여가를 보내는 장소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고 있고, 도시 밖 교외에 살고 있다며 걱정합니다. 그는 도시구조를 유기적으로 개편해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을 경우 결코 우리는 삶의 질이 높고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94쪽)
우리가 가진 도시의 문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서울 출근길이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만원 버스와 만원 지하철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약속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눈길에 미끄러진 버스에 끼어 사망한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한 생명을 구하고 도시의 미관과 안전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부분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게 만든다. 좀 미흡한 사진 실력이지만 어렵게 찍어 보았다. 원통형 버스정류장에 굴절 버스까지 우리의 버스정류장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모습이라면 추운겨울 버스에 먼저 오르기 위해 달려가는 일은 그리고 차에 끼이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 생각을 해본다. 도시의 설계가 그렇게 변하는 일은 아마도 정책 결정이 가져온 힘이 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제는 다시 고민을 시작하여 볼 때가 된 것 같다. 자동차를 대체하기위한 수단으로 우리나라에서 선택한 것이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저 나는 상황이 되지 않아서 자전거를 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고 전국에 건설되는 자전거 도로가 어디에 생기는 것인지도 잘 알지 못하였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물론 달리는 자전거는 아니고 제자리에서 운동삼아 발만 구르는 자전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자전거 도로가 어디에 생기는지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면,
자전거란 거리 마찰 효과가 있는 단거리 통행 수단이므로 전국 일주 도로나 4대강 주변 자전거도로를 만들어도 아주 극소수의 자전거 동호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수요도 없는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여한다는 것은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저탄소 사회로 이행시켜나간다기보다는 토건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토목사업의 한 방편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반증해준다. (133쪽)
헉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자전거 도로가 여기에 생기는 거였나? 나는 왜 이제 안거지? 좀 무심하게 살았던 것 같다.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탄소배출이 적어지고 건강에도 좋겠군.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던 건가? 허긴 요즘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을 보면 출퇴근용으로 타시는 분들을 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도시에 대한 생각은 왜? 일까? 다시 저자의 말을 빌어 본다. 우리가 왜 이런 것을 고민하면서 살아야하고 미래 도시의 모습을 꾸리찌바라는 도시로 선택하고 그 것이 형성하는데 30년이라는 세월을 줄기차게 만들어 왔는지?
지속성이 생기려면 인류는 지구의 생산량을 사용하되, 그 생산능력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느리게 사용해야 하고 그것을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회복속도보다 빠르게 이용하면 환경은 손상을 입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생명을 키워내는 지구의 수용력은 파괴되고 만다. 이것은 ‘생태발자국’이 크면 클수록 지구가 수용 가능하지 않고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15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