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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송축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찬양한다는 말과도 비슷합니다. 시편 34편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여기서 “입술”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님을 송축하는 것은 주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말하는 것’ 또는 ‘노래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영혼으로부터 고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혼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예수님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같은 위선의 위험성을 알았기에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설교합니다. 사실상 그는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내 영혼아, 와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보라. 내 입술과 더불어 온 마음으로 주님을 송축하자. 우리의 전 존재로 주님을 송축하자!” 자녀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돕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자녀들 앞에서 끊임없이 주님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영혼을 담아 진실하게 말입니다. -시편을 마음에 채우다 중 발췌
시편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입체적으로 존 파이퍼 목사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해주고 있다. 단순하게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쁘고 좋은 감정만을 갖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되고 벅찬 삶의 모든 정황 속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다 내어드리고 그 안에서 느끼고 바라보는 모든 것을 노출함으로 하나님 한분으로 채워가는 삶을 시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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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는 하나님의 원수들을 저주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저주 시편이라 불리지요 이 시들은 자주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 위에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런데 저주 시편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과 반대되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이번 장에서 살펴볼 시편 69편이 그렇습니다 가장 긴 저주 시편 가운데 하나이지요 이 시편은 과연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생각하고 느끼도록 우리의 마음을 빚을까요?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살펴보면,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주하는 부분을 포함한 7개 구절이 신약 성경에 분명하게 인용되어 있지요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저주 시편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과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저주 시편을 사용합니다 -5장 분노하는 마음에 시편 69편을 채우다 중 발췌 시편을 읽어보다 보면 그 다양성에 놀랍기도 하고 신앙 생활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저주와 욕설이 난무하는 시편을 접할 때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지점이 그 저주 시편에 대한 파이퍼의 견해가 공감되어 발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