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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무슨 유행처럼 고양이를 키우며 자신을 집사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캣맘이라 불리우는 사람들도 동네마다 제법 수가 된다. 사실 고양이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지는 꽤 되었으나 한국에서 애완동물로 친숙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진중권의 이 책에서는 한국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집에 가두어 두고 펜스로 막아두지 않으면 언제 주인을 떠나버릴지 모르는 동물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고양이를 가두고 기르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갔다가 아기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다.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다시 산에 놓아주었는데, 차라리 데려오지 말걸 하고 한참을 울었다. 나 때문에 어미 고양이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본디 자유로이 산과 들과 도시를 다니는 동물을 납치 유인해놓고 구조라고 부르는 요즘 세태를 보면 내 어린 시절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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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고양이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집사'라고 한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간택'당한다'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만 보아도 개와 달리 고양이는 인간보다 위에 위치한듯 하다. 아무래도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언제나 변함없이 애교를 부리는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도도하고 냉미녀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거 같다(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이런 매력에 빠지면 출구가 없다고들 하더라). 작가는 자신의 고양이 루비에게 영감을 받아 책을 썼고, 고양이는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인 존재라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이 체험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은 고대 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세상이 막 창조된 곳이였을때, 신들은 하나의 동물을 임명하여 세상이 잘 돌아가도록 살피는 임무를 맡기기로 결정했고 그들이 선택한 동물은 고양이였다. 신들과 소통하고 세상에 같이 사는 다른 동물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언어 능력까지 부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타고난 쾌락주의자들이였던 탓에 맡은 임무를 소홀히하게 되었고 결국 그 임무는 인간에게 돌아갔으며 말하는 능력도 인간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인간보다 똑똑하고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것 처럼 보이며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귀찮은 일들을 인간에게 미뤘으니 고양이들은 생각이 깊고 사색적인 철학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신화에서 비롯된 고양이에 대한 깜찍한 상상이지만 고양이의 본성을 생각하면 근거있는 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의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전설이나 문학에서 등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영어로 쓰인 최초의 소설이 영국 극작가 윌리엄 볼드윈의 '고양이를 조심하라' 라는 소설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영국에서 소설 문학의 출범은 지금보다 늦었을거라고 작가가 말할 정도로 고양이는 문학에 큰 영향을 준건 의심 할 여지가 없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학작품에 나온 고양이들의 모습은 그 시대에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긍정적인 존재였는지, 부정적인 존재였는지). 폭 넓은 작품속 이야기를 따라가며 펼쳐지는 인문학이야기는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다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고, 고양이가 등장하는 문학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의욕도 불러일으켰다. 진정으로 집사가 되려면 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며 그것은 자신의 영혼과 정신에 고양이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타인의 사랑을 바라나 굳이 그것을 구걸하지는 않고, 속으로는 따뜻해도 겉으로는 늘 까칠하며, 이기적으로 보이나 실은 그 누구보다 이타적이고, 아무리 친해져도 끝내 어떤 알 수 없는 구석을 남기며, 사회 안에 살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는 존재. 고양이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이렇게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고양이 특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157p) 고양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진정 고양이를 사랑하는 작가인 거 같다. "고양이에게 배움으로써 우리는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고양이의 특성을 나에게 맞게 잘 갖춘다면 정말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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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중심주의 선언, 과연 이 말이 어떤 의미일까?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동물이라 할 수 있는 고양이, 그 도도한 모습과 알 수 없을 것 같은 음흉함, 왠지 인간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언제가 애완용 고양이가 집안 높은 곳에 오르도록 두면 자신이 인간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 한편으로는 수긍이 갑니다. 인간을 집사로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
저자 『진중권』은 언론을 통해 너무도 친숙하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의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부재 고양이에게 배움으로써 더 맬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문학편』(천년의 상상 펴냄)는 고양이를 철학자와 비교한다. 그는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시리즈를 통해 인문학적 통찰을 해오고 있다. 고양이를 중심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며 역사, 문학, 철학에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펴내고 있다. 페르시아 지방에서 전해오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는 신비롭다.
『마술사가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한 줌, 거기에 날름거리는 불길 한 자락, 반짝이는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 두개를 두 손에 고이 모아 쥐고 '후'숨을 불어넣자 연기는 고양이의 털이 되고 불길은고양이의 혀가되고, 별은 고양이의 눈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 그것이 바로 고양이다.』
그는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루비'의 영향을 받아 "고양이는 질문을 던지는 동물이라는 사실, 즉 인문학적인 존재"라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이 체험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처음 시작부터 고양이는 인류보다 앞선다. 신은 원래 고양이에게 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했지만 3번에 걸쳐 그 본분을 소홀히 하였다는 꾸지람을 듣게 되고, 결국 고양이는 귀찮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적합한 자로 '인간'을 추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인간이 피조물을 다스리게 되었고,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없는 동물로 변화했다는 것, 그리고 고양이는 하는 일 없이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만 철학자가 노동에 얽매이게 되면 사고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철학자는 생각을 할 시간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고양이의 모습은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 과거로부터 문학 등에 나타는 고양이의 모습은 다채롭다. 그런데 왜 하필 고양이였을까? 동화 이야기 '장화 신은 고양이'는 장화라는 특별함을 관련지어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였을까? 그럼으로써 이제 고양이는 인간 중심에서 고양이중심으로 전환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사랑을 바라나 굳이 그것을 구걸하지는 않고, 속으로는 따뜻해도 겉으로는늘 까칠하며, 이기적으로 보이나 실은 그 누구보다 이타적이고, 아무리 친해져도 끝내 어떤 알 수 없는 구석을 남기며, 사회 안에 살면서도 거기에 완전히동화되지않는 존재, 고양이성을 구현하다는 것은 이렇게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고양이 특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가르킨다. 고양이에게 배움으로써 우리는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따라 펼쳐지는 인문학적 이야기는 쉬운 내용은 아니다. 저자의 깊은 인문학적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 선에 도달하는 것 같다. 왠지 고양이가 우리보다 낳다는 생각마저 든다. 진정으로 고양이가 되어야 하는 부분에서 더욱 그렇다. 뮤지컬 '켓츠'의 배우들이 혹독한 훈련을 통해 고양이가 되어야 하고, 진정으로 '집사'가 되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좋하는 것을 뛰어 넘어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참 이채롭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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