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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이분법적인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 정치과정을 통해서 보았다 니편과 내편으로 나뉘는 세계속에서 내편이 아니면 혐오대상으로 배제대상으로 여기는, 그런 기독교를 믿고 있는 시대에 이 책은 편가르기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예수와 함께 선을 가르지 말고 선을 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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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바로 안다는것은 참 중요한거 같아요. 매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시시비비를 가리지만 알고보면 성경안에 답이 있는데 교만함이 높아서 시시비비하는것 같아요. 성경을 바로 앎으로 차별이 아닌 구별을 할줄알기를 바라며.. 세상에 낮은 모습으로 우릴 찾아오신 분의 낮은자리의 이유도 찾을수 있길 바라며..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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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과 밖을 구분하는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지난 총선과 같이 정치적 성향 (진보냐 보수냐), 주류냐 비주류냐, 남자냐 여자냐, 나홀로 신앙이냐 공동체냐 등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렇게 세상을 둘로 나누어서 보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양분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 '그래 나도 이거 궁금했었어' 하는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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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그 자체로서 인간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그 고유한 가치를 가진 인간은 인간으로서 사유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은 세상이라는 공간과 영적, 육적인 괴리감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가치관의 영역과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두개의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분명히 양립하며, 동시에 사람의 속에 존재하나, 끝까지 양립 할 수는 없는 가치관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신앙적, 영적이며,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이다. 스스로 자신하는 나는 성도이나, 성도로 살아간다고 말하는 나의 행실은 성도인 그대로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를 책은 지적하며 고민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덫입은 하늘의 가치, 천국의 백성이 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게 한다.
저자는, 리디머 교회에서 팀 켈러와 함께 동역했던 사람이라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과도 비슷한 느낌의 독서를 하도록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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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이 강하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선 안쪽인가? 선바깥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을 한다 사실 이것은 선이 아닌 벽이다. 벽으로 막혀서 더 이상 포용없이 그냥 막아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벽을 부숨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선을 지우시며, 벽을 자기 육체로 허셨듯이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라서 선을 긋는 것이 아닌, 더 위를 도모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닌 벽을 허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꿀 것인가? 나를 바꿀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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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난뒤 결론은 예수님을 본받아라라는 것을 알게되어 기독교를 한번 뒤돌아보게하는점은 마음에 들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선에 대해 어떻게 보실지에 대해서 보여주어 생각하게 하였다. 이시대에 논쟁거리인 진보와 보수, 낙태, 가나안교인, 돈, 젠더, 다원주의, 천국과 지옥, 교회와 세상 등 우리에게 존재하는 많은 장벽과 경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 조금은 지루하지만 도움은 되었다. 읽으면서 내내 교회와 우리들일 변할점이 많다는것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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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기독교인 나는 제목에 혹해서 구매했는데 예수님이 이땅에 온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해서 좋았다. 요즘 교회 안에서 존재하는 선긋기와 교회와 세상을 나누는 선긋기의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이름답게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갈망함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상황에 이책을 접하니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읽고나서 기독교는 참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론을 얻게되어 나름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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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진실 왜곡이나 정치 술수, 권력 남용, 신념을 위해 ‘들고 일어나기’(성경에 예수님 혹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사회나 정부에 맞서 들고 있어났다는 기록이 있는가)를 통해 넓져지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보수적인 가치와 진보적인 가치 모두에서 비롯하는 전복적인 사랑의 행위를 통해 넓혀진다. 이것이 기독교 운동의 아름다움이다. 기독교는 두 시각의 모든 장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두 시각 모두에 내재한 흠과 단점과 불의를 거부한다. [선에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p.46 / 스캇솔즈] 사람들은 꽤나 많은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다. 내편이 아닌 이상 적이 되는 것이다. ‘다름’으로서 인정하기보다 ‘악’이 되어버린다. 나와 반하는 것들은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념들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저 유행에 따라 휩쓸려가며 그 유행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촌스러운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어떠한 분명한 기준도 제시되지 않으며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최악은 그러한 일들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각자의 이념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라 말하는 모습이 꽤나 우스울 뿐이다. 내 편이 아닌 다른편을 ‘악’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낸 예수님은 이땅에서의 삶에 어떠한 이념에도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떠한 정치적 이념에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이야기 또한 없다. 예수님은 율법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강조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가기위한 방법을 강조하시며 얼마나 보수적인지 보이셨다. 또한 얼마나 진보적셨는지 본다면 오랜 전통을 뒤엎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셨다.(마5-7)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모습, 부정하다 여겨지는 이들을 만지며 치료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교제를 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보수적인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제자중 세리 마태는 ‘정부’를 위하는 직업을 갖고있었으며 시몬은 정부에 ‘반대’하는 열성당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다른 이념을 갖고 있는 이들을 ‘악’으로 여기기를 거부하고 계신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하시며 공동체를 이루셨다. 어쩌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환대받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 싶다. 그저 착함을 말하는 종교가 아닌 세상의 것에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신을 향하라 말하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세상을 향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향하기에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그 이기적인 감정으로 인해 내가 더 이득을 봐야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함께 잘 살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서 갈라서기 시작한다.
물론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그건 잘못됐어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있겠지만 기독교인들 또한 이런 기독교인을 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믿는자들에게 가르치신 방법은 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사랑하는것. 여전히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말하는 삶을 살아냈을 때,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을 때 변하는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가운데 변하는 패러다임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이기심에 불타오르는 시대에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지 고민해보자. 선과 악으로만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판단은 정죄를 낳고 그들을 배척해버리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런 결과는 여전히 자신들은 선택된 민족이다 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유대교와 다른게 없다. 우리는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 역시 세상이 말하는 나, 그리고 그와 다른 너 로 인한 이분법적이 아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택하신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 악이 아닌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코 선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악'이 아닌 우리가'죄인'인 이유는 언제든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삶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스캇 솔즈’의 ‘선에 갇힌인간 선 밖의예수’ 실제로 기독교인이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고민해야 하지만 그저 바리새인으로서 그들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만 하고 내가 아닌 남을 악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저 이분법 적인 사고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이 땅에서 삶을 살아내신 예수님의 모습, 그 삶의 모습이 이 시대를 회복할 수 있다 도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