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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맹호부대에서 6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쳤을 때 면회를 갔다. 이제 아들은 자신이 근무할 부대로 배치 되는데 이때 부모들은 연병장에 도열한 아들들에게 다가가 계급장을 달아준다. 아들은 바짝 군기가 들어 아빠에게 거수경례를 하는데 코끝이 찡하다. 아들은 아빠와의 대화에서 “예 그렇습니다.”로 대답을 끝낸다. 이때의 정신자세를 지금껏 가지고 있다면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그러기에 남자들은 언제나 군생활을 과장되게 각색해서 자신의 무용담을 뽐낸다.(그러나 나의 군생활은 막걸리 심부름과 개구리 못 잡아서 뒤지게 맞은 것 밖에 없다…….ㅎㅎ)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래도 정신무장이 가장 잘 된 시기는 군대 졸병시절이었다. 그러기에 지금도 해병대 캠프가 인기 있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쓰는 이유는 요즘 우리시대의 화두는 ‘아픔’이다. 20대도 아프고 50대도 아프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졸병생활을 경험한 남자들은 안다. 이때는 아픈 것이 없다. 아니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꾀병이라고 몰아세우거나 더 큰 압력이 가해지기에 목숨이 끊어지는 상황이 아니면 참고 견디는 것이 상책이다. “아프니 어쩌란 말이냐?”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이름 깨나 알려진 유명 인사들은 토크 콘서트를 열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나름대로 그 아픔을 치유해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 답은 뾰족한 것이 없다. “인생 너 혼자 사는 것 아니니 관계를 맺으라.”“네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라.” 등등 나름대로 처방을 해주지만 그때뿐이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마치 피곤하고 힘들면 병원에 가서 포도당 주사 맞고 몇 시간 들어 누워 있으면 며칠은 거뜬할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드는 것과 같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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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이 책의 장점은 훈계나 지시가 아니라 그들의 감성을 움직이도록 책을 구성해 놓았다. 그 방법으로 누구나 꿈꾸고 있는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놓고 거기에 걸맞은 인생의 교훈을 말한다. 열정적으로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을 찍은 사진 밑에는 ‘플라멩코 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열정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이라는 것이다’ 정여울은 열정을 글이 아니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며 20대 친구들에게 열정의 소중함을 말한다. 이런 식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너희들도 나처럼 세계를 누비며 여행할 수 있고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되어 뒤에 오는 젊음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란 행간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저자 정여울은 20대 시절에 가장 소중히 여길 키워드인 방황, 여행, 우정, 사랑, 장소, 직업, 배움, 행복, 탐닉, 재능, 멘토, 죽음 등 20개의 키워드를 제시하며 성공적인 삶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문학평론가로서의 위상보다는 글과 방송을 통해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글은 쉽고 감성적이기에 가까이하기에 좋다. 이것만으로 끝난다면 생명이 짧은 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글이 가치 있는 것은 누구나 쉽게 경험하고 살아가는 현실의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친근감 있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자신의 사고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의 공감 때문에 밑줄을 긋는 경우가 많다.
5월에 읽은 책들이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것들이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좌절해 버리는 20대의 아픔, 남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삼키는 베이비부머의 아픔 등 책들 속의 내용은 우리 모두는 아프다는 것이다.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어지기에 우리 시대의 삶은 불안한 것이 특징이다. 책은 이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결론은 같다. “네 인생 네가 책임져!” 이것이 답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왜 군대생활이 생각날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 돈키호테의 외침이 세대를 벗어나 아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음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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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전설의 고향'이란 프로그램이 있어 오래 전부터 이야기로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TV로나마 정기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눈을 가리고서야 볼 수 있었던 납량특집 시리즈로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싹 날려주기도 했었는데 요즘엔 그런 신비한 이야기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물론 내가 TV에 매달려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보니 나만 놓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득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린 시절 보던 '전설의 고향'에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대충 정리해 보면 길가던 젊은 나그네가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서 선녀같은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우연히 만난다. 그들은 나그네를 유혹해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술과 유흥에 빠지도록 한다. 일주일 간을 아가씨들과 술에 빠져 지내던 젊은이가 어느 순간 깨어일어나 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있다. 꿈처럼 보낸 환락의 일주일이 이 세상의 몇 십년에 해당하는 기간이었고, 젊은이는 일순간의 쾌락을 위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허비해버린 것이다.
문득 살아온 지난 날을 돌아보면 그 전설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좌충우돌 다사다난 했을 몇 십년의 세월을 건너뛰고 단숨에 지금 내 나이가 된 듯한 착각. 일순간의 쾌락을 위해 평생을 허비한 그 젊은 나그네와 달리 내게는 실제 질풍노도의 10대의 시기가 있었고, 고민하고 아파하던 20대가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이 시기를 '중간생략' 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거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풀어놓을 이야기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살아온 날들을 가장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할까? 그건 아마도 죽기 바로 직전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처럼 지난 날에 대한 기억들이 많지 않다면 그처럼 비참한 일이 없을 것 같다. 난 왜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을 것 같다. 그렇게 될 걸 알고도 삶을 방치했다는 실망감까지 더해서 말이다.
이 책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으면서 내 20대의 고민과 공통점이 될만한 게 무엇인지 애써 찾아보려 했다. 그리고 20대의 시기를 겪어낸 작가처럼 나도 인생후배들에게 내 경험을 바탕으로 멋지게 해 줄 수 있는 말들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런데 정여울 작가가 자신의 지난 날을 책에 그려낸 것처럼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의 그림을 그려내지도 못햇고, 그 그림의 바탕이 된 퍼즐조각과 같은 기억의 단편들을 되살리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정말 무심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종국에 가서 '우물쭈물 살다가 죽을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내 유언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 작가의 말처럼 중년의 나이로 이미 접어든 내게도, 지금 막 20대를 살아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나름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이야기들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기억거리로 남는 것들은 실제 별로 없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은 좀처럼 사람을 바꿀 수 없지만, 공간은 기어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공간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동선을 바꾼다. 동선이 바뀌면 감각을 사용하는 패턴이 바뀌고, 감각의 패턴이 바뀌면 생각의 회로도 바뀌고, 생각의 회로가 바뀌면 당연히 행동도 욕망도 관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_(P.37)
고민하지 않는 무심한 삶은 우리를 정체된 채로 머물도록 한다. 무뎌진 감각으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게 한다. 살아지는 대로 살게 한다. 문득 그런 상태를 깨달았을 때 여행이야말로 정체된 일상을 깨고 변화를 꿈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여행'편을 읽으며 알게 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직접 체험하며 깨닫는 것만큼 좋은 배움은 없다. 온몸으로 체험하며 느낀 것만큼 우리에게 자극제가 되줄 만한 것은 없다. 앉아서 생각만 하다 많은 시간을 허비해 본 결과 그렇다. 모든 감각을 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만 느끼는 것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그렇게 생각이 달라졌을 때라야 변화는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체험한 것들을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때 내가 살아온 일상을 엮어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다. 정여울 작가의 글들이 그렇다. 마치 온 몸의 감각을 열고 살아온 사람처럼 일상의 세세한 조각들을 엮어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힘들고 좌절한 순간들이든 행복에 겨워 보냈던 순간이든 기억거리가 많은 인생만큼 풍요한 인생은 없을 것 같다.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여부는 결국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어낸 후 나중에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역경들을 내가 그려야할 인생의 밑그림의 한조각일뿐이라 여기고 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뒤돌아보며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해 기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처럼 기억의 공백 때문에 허탈감을 느낄 일은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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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나는 위로의 존재가 된 적이 얼마나 될까. 위로받고 싶어 했던 적은 많았는데 그래서 위로의 힘으로 다시 힘을 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위로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갈망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위로’라는 사전적 개념 정의는 정작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위로는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상대방이 품은 표정과 눈빛에, 나의 마음이 고마움과 안도감으로 바뀔 때 그때 비로소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위로는 타인만이 할 수 있죠.”라는 말을 들은 정여울은 그때서야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고 회피하던 20대에 자신의 동면을 살짝 두드리고 간 낯선 교수님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무엇인지 얼핏 알게 해주었다. 힐링, 테라피, 치유 등은 단어들은 정신적인 피폐와 삭막함이 배여 있는 오늘을 대변하는 유행어다. 30대 후반의 나이가 된 정여울은 20대를 위로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자신의 방황을 압축한 20대를 풀어놓음으로써 그들에게 자신도 별 것 없는 것에 고민하고 우울해했으며 삶의 외곽으로 도피하기도 했다고, 그러고 나니 비온 뒤 말갛게 개기 시작한 하늘처럼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삶이 보이는 30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잔잔하게 전한다. 그러나 음의 큰 변화가 없는 재즈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문체이지만 그 안에 강인한 확신이 담겨 있다. 나는 그랬지만 너희는 더 나은 20대를 보냈음 하는 바람이 전해진다. 여행을 하며 달리기만 한 너의 삶을 저기 멀리 비껴나 바라보라고, 어떤 삶을 살 때 ‘완전한 능동태’의 행복(117p)을 느낄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반드시 뭐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물음이기에"
내가 30대라 그런지 공감하는 그녀의 ‘그때 알지 못했던 것들’이 나의 그것들과 자꾸 겹친다. 학생증이란 신분증명서가 없어지고 나서야 배움의 갈망과 배우지 못한 곤궁함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그 절절함은 더 배우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가 쌓여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건 신분의 전환이 있어야 깨닫게 될 진리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배우고 싶은 갈망을 당장 실천으로 옮길 용기의 싹이 그때부터 솟아났으니까. ‘그때 알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공통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처럼 사랑, 연애, 우정, 직업, 방황 등은 20대 때 지나가야하는 전공과목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자신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얇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휙, 넘어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음 좋겠다. ‘삶의 의미’가 보이는지 조금 더 오래, 안보이면 두 팔을 잡아 당겨 휘저어서라도 다시 확인했음 좋겠다. 무엇이 자신의 삶을 비출 수 있을지.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선택이 무엇일지. 조금 늦게 필수 코스를 통과하더라도 그 앞 지점에 더 오래 머물며 자신의 삶 전체를 얇게나마 조망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과연 누가 당신을 달리게 하고 있는지, 그 많은 스펙들을 쌓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의 선택인지, 선택 같지만 타인의 강요를 짊어진 선택 상황은 아니었는지.
"우리는 과연 따로 있는 것일까?" (216p)
글을 참 잘 썼다. 20대들의 누나, 언니의 마음을 잘 담았다. 아무리 20대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도 자신의 마음을 이런 필력정도로 표현하니까 훨씬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더구나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사람이기에 숱한 20대 청춘들을 만나며 차곡차곡 쌓아둔 하지 못한 말들이 더 쭉 뻗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로 들릴 것 같다.
키워드<장소> "구스타프 모로 박물관" 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계단이 아닐까 싶다. 꼭 가보고 싶다.
이 책을 포장한다. 서울로 상경해 외로운 자취를 하고 있을 그 녀석에게 이 책을 싸 보내려 한다. 3년 동안 한 번도 마음을 표현하지 않던 녀석이 작년 말에 긴 편지와 상자 가득 담은 몸에 좋은 먹거리들을 받고 나니, 나도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로와 고마움을 건네고 싶었다. 작은 선물을 보낼테니 주소를 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변, 선물에 크고 작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그의 문자가 도리어 나를 위로해버린다. 이제는 내 차례다. 확실히 내가 그를 따스하게 안아 줄 차례다. 이 책이 그 녀석에게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수많은 지표 중 하나가 되었음 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 봉투에 담는다.
*아쉬운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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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면 모든 게 소중해 보이고 아름답게 여겨지더라고 회한 섞인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재적 삶에 충실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 나이 듦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마음으로는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을 때 생기 있게 움직이며 환호하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규율에 얽매여 살던 10대와는 달리 기존의 질서를 재편성해 스스로를 제어하며 관리해 가는 20대의 서막은 또 다른 도전의 시간으로 자리한다. 세상에 태어난 햇수에 따라 스무 살이 되어 어쭙잖은 어른 흉내를 내며 시행착오 속에 자립적인 틀을 조금씩 형성해 가기 시작했다. 강의실보다는 광장으로 몰려다니며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고 밤을 새워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에 동참하였던 열정이 가득했던 20대가 꿈결처럼 밀려들어 기억의 촉수를 자극할 때면 그 시절로 회귀하고 싶어진다.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 사람만이 나의 행복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지 못한 회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 시절을 보낸 저자는 스무 살 시절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2음절의 단어에 물 흐르듯 서술했다. 생활 속에 배태되는 고민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일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자립 능력을 쌓는 일과 결부된다. 그 시절에 미처 알지 못한 채 간과해버렸던 일들은 가슴 속 상처로 남아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20대에 만난 친구들과 소통하며 25년 남짓 교류하는 공감의 시간 속에 우정은 농익어 든든한 버팀목으로 활력을 더한다. 나락으로 떨어져 헤어나기 힘들 때 그 시절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은 불원천리(不遠千里)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서는 큰 힘을 줬다. 자기 나름의 편견에 사로잡혀 대학 시절에 만난 친구들을 홀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며 20대에 만난 친구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언제라도 전화해서 얼굴 보고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아군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송정 가는 기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삼량진 딸기밭으로 MT를 가서 즐겼던 추억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삶의 비타민으로 양분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익숙했던 생활 패턴을 벗어나 새롭게 느끼고 행동하며 움츠러들어 있던 감각을 끌어내는 여행은 인생을 관조하여 가슴 뛰는 삶을 살게 하는 원천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몸으로 부대끼는 여행은 이전의 궤도를 이탈하여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당위성을 일깨운다.
사랑의 열병을 앓던 친구는 거리의 공중전화 수화기에 대고 남자 친구에게 노래를 불러 준 일은 숱한 시간이 흘렀어도 친구들 입에 오르내린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을 낯설지만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감정으로 사랑하는 시간만큼은 인생의 주인공으로 오롯이 존재하게 된다. 너와 나로 구분 지었던 경계를 허물고 사랑하는 이의 안녕이 자신의 행복만큼 소중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사랑은 기쁨을 선물하는 일인 만큼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생활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부모의 양육 방침에 따라 움직여 왔다면 이제부터는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힘을 믿고 선택한 일에 몰두하며 정진하는 가운데 최고의 재능을 찾는 길에 서야 한다. 그 중에서도 책 속에서 길을 찾는 방법도 한 방편일진대 완독으로 사고의 깊이를 더할 일이다. 저자와 독자 간의 은밀한 소통으로 자신을 키워가는 일은 평생 이뤄져야 할 일로 다반사처럼 지속해야 할 일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천차만별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인연의 끈으로 맺어진 가족은 스스로의 삶을 지배하는 공동체이지만 가정환경에 매몰되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탈피해야 할 일이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이 원하는 삶의 형태인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참음으로써 행복한 생활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야 한다. 세상과 나를 이어줄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한 시도와 도전은 자기 안의 믿음을 이끌어내는 배움으로 이어져 맹렬히 집중하는 가운데 정밀함을 추구하는 활동은 상상만 하여도 가슴 뛰는 일이다. 타인이 자신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닌지 비교하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오류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정체성을 발견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야 한다. 그 길이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결단하고 결정한 일에 탐닉하는 자발적 행동으로 재능을 열어가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여 보인다. 안정적인 생활을 좇아 대학생을 포함한 취업 준비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대거 몰리는 기현상은 과도한 경쟁으로 진솔한 관계망까지 끊어놓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새롭게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의지로 스스로를 변혁시켜 나가는 일에 서슴지 않아야 할 20대 청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속에는 쉰을 바라보는 독자가 회한을 최소화하기 위해 품고 살아야 할 가치를 일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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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40을 넘어가고 있네요. 아니 벌써 넘어갔어요. 20대 시절에는 과연 나는 무엇을 했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혼 전에 20대 초반에는 철부지 어린 아이였던 것 같아요. 계획이란 것이 없고 그냥 마구 잡이 식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 조금만 뒤돌아서서 계획과 생각하는 방법을 조금만 고쳐먹어도 내 인생의 무엇인가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해봅니다. 책읽기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인생의 방향 말입니다. 정말 이지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인거죠. 저자는 서두에 자신의 20대에게 서툴러서 상처밖에 줄 수 없었던 20대 사과하며 라면서 이 책은 시작됩니다. 저도 저의 20대에게 사과를 하고 싶네요.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살은 나의 20대 말입니다. 물론 20대에 결혼도 했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2명이나 얻었다는 큰 행운은 사과라기보다는 저에게 행운이었죠. 소중한 아이들이 저에게 온 행운 말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중요시하는 키워드를 정해 그것을 설명해주는 형식의 책입니다. 아마 그 키워드들을 읽어본다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겁니다. 저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소중함에 더욱더 열심히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20대 분들이 미리 이 책을 읽고 자신의 20대에게 사과하지 말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 아끼면서 살아가길 바래봅니다.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 이리 20가지의 청춘의 키워드를 정해서 그것에 대한 설명이 들어갑니다. 특히나 좋은 것은 저자가 여행한 곳이나 스쳐간 곳에서의 사진도 좋고 그 키워드에 대한 설명에 짧은 글의 미학이라는 거죠. 책을 읽으면서 아 좋다. 각 키워드 부분에 두 가지의 이야기로 정해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꼭 20대에 필요한 부분인거죠. 사실 40의 내가 읽어도 좋은 부분이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거죠. 사실 이 책은 하나의 키워드마다 깨닫게 되는 글들이 참 많답니다. 나는 동창회를 싫어한다. 친구들끼리 주판알 퉁겨가며 인생의 속도를 비교하고, 괜스레 남의 곁눈질하기 싫어서, 누구는 의사가 되고 누구는 변호사가 되고 누구는 강남의 어느 아파트에 살고. 이런 요란한 소식들로 우리 삶의 가치를 저울질하기 싫어서. p17 우정中에서 사실 첫 장부터 제 마음에 들어가 있네요. 이상하게 저도 동창회를 싫어합니다.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그렇지만 친구의 소중함을 알기에 내가 과연 어려운 상황에서 힘든 상황에서 의지할 사람은 친구란 것을 알기에 다시 한 번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내 편’이 아닌 관점에서 바라보는 참신한 시점. 나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닌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 그런 사람과의 우정이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처럼, 여행처럼, 문학처럼, 우정은 얌전히 고여 있는 ‘명사’가 아니라 영원히 움직이는 ‘동사’니까. p32 우정中에서 나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들’ 보다 20대에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기회는 노력해서 다시 만들 수 있지만, 감성은 노력만으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지식은 추구하여 얻을 수 있지만, 감성은 노력보다 그때 그 순간의 우연에 기댈 때가 많다. p35 여행中에서
20대에 느낄 수 있었던 감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나도 크다. 그 시절의 소중함을 놓쳤기에 다시 돌아가기에 내 감성이 그것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정말이지 다시 기회를 얻어 그곳을 스쳐 간다고 하지만 그 감정은 같지 않을 것이다. 내가 20대에 들렸던 부산의 바닷가는 지금 내 나이의 감성으로 틀리게 전해지기에 말이다. 그 기회를 얻어 그곳에 다시 간다고 해도 그 감성은 틀릴 것이리라 생각한다. 아마 지금 내 감성에 충실해 여행지를 더 많이 가보고 싶다. 나이가 더 들어 60대에 바라보는 감성 또한 틀리기에 말이다. 그러니 지금 20대의 청춘들은 그 감성을 놓치지 말고 만끽하길 바란다. 나는 20대에 여행을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가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어린이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맹렬한 질투심을 느낀다. 내가 30대가 되어서야 간신히 깨닫게 된 것을 저 친구들은 벌써 알고 있겠구나. p54 여행中에서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못한 것에 후회도 되고 우리 아이들에게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된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해줘야하는데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이라도 먼저 깨닫기를 바래본다.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감각’이지만, 재능을 실현하는 것은 ‘열정’이다. ‘저 사람은 재주가 참 많은데, 왜 저렇게 인생이 안 풀리지?’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의 특징은 열정과 재능을 일치시키는 뚝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열정이야말로 재능의 연료이고, 성실이야말로 재능의 보호자가 아닐까. 플라멩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열정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이라는 것이다. 춤의 열정에 흠뻑 빠져서 온몸의 소름끼치는 고통조차 망각하는 엑스터시를 느끼는 춤꾼의 지극한 순수함을 배우고 싶다. p78 재능中에서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빛나는가? 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무엇을 할 때 그것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나도 이 ‘열정’이라는 단어가 참 좋다. 내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열정이라는 단어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어 그 열정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많이 노력한다. 열정을 다 쏟다보면 내 인생도 무엇인가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멘토가 될 수 있다. 그때는 몰랐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도 미래의 내가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나를 냉정히 바라보는 나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절실한 나 자신의 멘토가 될 수 있다. 가르침은 가르치려는 자의 의지보다는 배우려는 자의 절심함 속에서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기에. -멘토中에서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멘토를 찾으려는 노력을 참 많이 한다. 자기계발서나 아니면 성공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읽으면 그 속에서 수많은 멘트들을 찾게 된다. 이 찾음의 노력이 다 그 시간 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저자따라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기를 바래본다.
p169 화폐中에서 결핍이라는 단어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노래다.
요새 나는 눈에 보이는 상품의 소비를 최소화하고, 보이지 않는 생활의 체험을 소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옷을 사지 않는 대신 영화를 한편 보고, 가방을 사지 않는 대신 전시회를 가고, 신발을 사지 않는 대신 산책을 나간다. 물건 대신 삶을, 유행 대신 우정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대신 생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p174화폐中에서
저자와 같이 책을 읽다가 요즘 내가 실행하는 부분도 발견하게 되니 참 기분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저자도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내가 늦은 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실행하는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졌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소비와 낭비보다는 도움 되는 것에 더 치우치게 살기를 바래본다.
나의 글을 읽어주는 ‘마음의 20대들’은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았으면 한다. 진로를 생각할 때 ‘실현가능성’부터 생각하지 말자. 진로를 생각할 때 곧바로 ‘직업’과 연결시키지도 말자. 미래를 생각할 때 생활의 안정을 2순위로 하지 말자. 하지만 이런 건 괜찮다. 예컨대, 내가 얼마나 그 꿈에 몰두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것.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약속 시간도 잊고, 무언가에 몰두해본 적이 있는가. 그게 바로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밥이 되든 안 되든, 그런 건 우리의 짐작만큼 중요하지 않다. p183 직업 中에서
그러니 조금은 귀찮더라도, 소통 자체가 매번 두려울지라도, 세수를 하고, 신발을 신고, 겉옷을 걸치고, 세상 밖으로 나가자. 표현하지 못하면 우리 영혼은 매일 조금씩 질식사하게 된다. 영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외로운 자신의 영혼에게 언제든지 마이크를 대주는 바지런함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저 머나먼 세상 바깥이 아니라, 바로 타인의 마음속에, 우리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숨어 있다. p226 소통中에서
아무렇지도 아닌 일과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 소통을 잘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소통을 어긋나게 살아가는 이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세상으로 잘 소통해 나가길 바래본다. 교육은 ‘쓸모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빛나는 힘’을 끌어내는 일이 나닐까. 최고의 스승은 미주알고주알 각종 정보를 주입하지 않고,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정체를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무엇이 너의 ‘눈뜸’을 가로막는 것인지. 무엇이 너의 숨은 날개를 꺾고 있는 것인지. 그 장애물의 정체를 깨닫고 그것을 마침내 무너뜨리는 것은 스승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p247 배움中에서
소중한 배움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이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소중한 배움이 쉽게 얻어지고 빨리 이해하면 좋으련만 그 배움들은 늦게 얻어지고 늦게 깨닫게 된다. 모든 이들이 같은 시기에 배움을 얻어지게 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 밋밋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가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들이 많기에 이 세상 배움을 놓지 않고 끝까지 배우게 되고 깨닫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내 삶을 함께 나눌 사람은 누구인가 때로는 완전히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 느낌을 받는 다. 내 작은 서재에 푹 파묻혀 혼자 지내는 시간, 그 시간이 있어 나는 힘겨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산더미 같은 책 무덤에 파묻혀 혼자 뒹구는 시간. 그때 나는 내가 함께했던 사람들,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 함께할 수 없지만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나와 함께한다. 내 작은 서재에서 나는 그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나누었던 사람들과 함께 숨 쉬며 울고 웃는다. 따로 또 같이. p360 질문 中에서
이렇게 저자의 20가지 키워드를 읽다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속에 들어가게 된다. 20대에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 방황하는 젊은 20대 들이 이 책을 많이 읽고 기 키워드를 하나씩 잘 이겨나가길 바란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나는 오늘도 저자 따라 살며시 책속에 들어가 본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 정여울님의 글들이 가슴에 많이 와 닿았다. 특히 사진도 좋다. 사진과 글이 하나가 되어 내 가슴속에 속 들어왔다. 책속의 글들이 이리 좋다고 세삼 느끼니 책이 더 사랑스러워진다. 이 책은 저자가 이렇게 마지막 한마디 한다. 이 글은 나와 내 친구들이 20대를 보내며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람과 우정의 ‘뒤풀이’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차라리 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던, 그래서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나와 내 친구들의 20대를 향한 때늦은 뒤풀이 나는 그 뒤풀이의 주모(酒母)가 되어 밤새도록 향기로운 술을 나르고 푸짐하게 안주를 요리하며 아직 우리 가슴속에 여전히 시린 꿈으로 빛나는 20대를 다독이고 구슬리고 보듬어주고 싶다. 사랑과 혁명과 우정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너무도 푸른 꿈을 향해 골든벨을 울리고 싶다. p366에필로그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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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그 중에 '후회'라는 것이 긴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시곗바늘 뒤를 쫓는 것을 보고있자면 현재와 과거의 교차점에서 많은 생각이 든다. 후회의 꼬리는 너무도 긴 탓에 과거 현재 미래로 잇닿으며 나의 기억을 팽팽하게 잡아끈다. 그 와중에 미움,질투,자책과 같은 먼지들이 덩달아 쓸려온다. 그러면 그 먼지에 코를 킁킁대다가 무릎을 탁!치게 된다.'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 없는 삶이 어디있겠느냐만은 되도록이면 후회따윈 없었으면 좋겠고 뺑 돌아가야 하는 길보다는 직선으로 쭉쭉 뻗은 길로 갔음 하는것이 우리네가 바라는 삶의 모습일테다. 특히 20대에게 인생은 잘 살아보고 싶고, 잘 살아야만하는 때다. 눈부신 청춘의 꽃을 활짝 피어 멋진 시간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테니 말이다. 나 또한 그렇다. 삶의 순간, 그 어느 때 하나 놓치고 싶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더더욱 놓치고 싶지 않은 때가 바로 지금,20대다. 이 책 제목은 현재의 나에게 방향키가 되어줄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정여울씨가 자신의 20대에 비춰 오늘날 20대에게 해주는 조언의 책이자 수다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처럼 무언가를 재촉하거나 자극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그 시절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며 조근조근 풀어보는 수다의 장이랄까.하지만 나보다 한 발 앞서 20대를 살아왔고 그 누구보다 그 때를 되돌아가고 싶은 저자의 마음은 가슴을 울리는 찐한 매력이 있다.내가 지금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느끼는 그 설렘과 풋풋함에 대한 부러움이 곧 그러하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학점관리 잘해라,스펙 잘 쌓아놔라 등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장의 밥벌이에 몰두하는 치열한 삶의 조언이 아닌, 인생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조언인지라 더욱 따뜻하게 다가오는 느낌도 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밤만 되면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고 엄한 사람에게 짜증도 쏟아낸다. 내 삶에 대한 의문점은 아주 많고 나는 그것들을 껴안은채 수많은 나날을 보내왔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청춘이기에 느낄 수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당장은 막막하고 보이지 않지만 먼 훗날 나는 그 답을 알게되지 않을까. 나중에 내가 지금 이날을 기억한다면 나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의 긴 꼬리뒤에 살짝 미소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청춘의 서툴음과 철없음을 기억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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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도쯤? 그때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행운이 시작되었다. 이불 속에 웅크린 채 엎드려 누워 그 시절 날 아프게 했던 그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나는 이 책을 놓지 않았다. 그 시절, 나의 20대. 그때의 나에게 이 책은 위로였고, 행운이었다.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사람에게 의지하고 무작정 잊으려고만 하지 않았을까.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하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새로운 책을 읽는 게 더 즐겁고 좋다. 책장을 펼치기 전의 그 가슴 뛰는 설렘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보통은 읽었던 책에는 손길을 건네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이 책이 아른아른 떠오르더니 급기야 책장을 펼쳐 반가운 마음으로 재회했다. 역시 좋은 책은 언제든, 어디서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생각이 깊고 진중한 친한 언니가 20대를 먼저 지나오면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아직 그 시기를 살아내 보지 못한 동생들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의 책이다. 그렇기에 나에겐 그 어떤 책보다 깊게 와닿았던 소중한 책이다. 언니, 오빠가 없었기에 그 존재에 대한 갈구가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 나보다 먼저 인생을 경험해 본 그들에게 지혜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부재했던 그 관계. 그래서일까? 나는 책 속에서 답을 얻고자 했다. 고전이든, 자기계발 서든 닥치는 대로 읽으며 그 부족함을 채우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그런 갈급함을 해소시켜 준 참 고마운 책이다. 정여울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해본 것은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이였을 테다. 그저 그런 여행서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은 그녀의 사유의 삶이 그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음이 갔다. 그렇게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이 책을 만났던 것이다.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연이고 행운이다.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나의 소중한 책.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나도 많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으며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왜 14년도에 이 책을 읽고 이제껏 한 번 더 읽지 않았을까. 내가 바른길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한 번 더 점검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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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묵독 파티'를 하는 북카페 <북티크>를 처음 찾았다. 강제로라도 독서의 시간 속으로 나를 '꽂아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어떤 책을 읽을까하다가 늘 책꽂이에 꽂아두고 읽지 못한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를 들고 갔다. 자리를 잡고 책을 폈다. 글이 짧고 사진이 많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금세 접혔다. 당장 편안하고 쉽게 기댈 곳을 찾다보니 황경신의 '생각'들이 불편하고 어려웠다. 얼른 서고로 가 새로 책 한 권을 샀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처음 보는 책은 아니다. 이미 1~2년 전부터 서점에 가면 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었으니까. 이 책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두 번째, 세 번째 훑어 보았을 때까지 나는 이 책 제목의 모든 단어가 거슬렸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과거와 회상 그리고 가정의 의미를 가진 어미와 접사가 모두 싫었다. 이 책을 다시 사 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간된 지 2년, 그 사이 무려 22쇄를 찍은 이 책을 샀다. 황경신의 책을 대체하려는 급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연히 주간지 <시사인>에 연재 중인 정여울의 ‘책꽂이’라는 칼럼을 보게 된 것이 선택을 도왔다. 2주에 한 번 신간을 소개하는 그녀의 글의 문체와 어휘들에 이끌려 칼럼을 필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출판계에서 '정여울'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녀를 책이 아닌 인터넷 기사 속에서 처음 만난 것이다. 그리고 출간된 지 2년 만에 이 책을 어느 작은 서점에서 샀다. 20대 청춘을 위한 20가지 키워드를 다룬 책. 지금 내 나이, 만으로 겨우 4개월 남은 29세의 일이다. 정여울의 칼럼을 읽으며 나는 대번에 대한민국에 사는 여자 사람으로서 정여울 작가와 많은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그녀와 교감하고 그녀의 글에 감동받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책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평범하고 담담한 어휘들마다 자꾸 눈물이 맺혔다. 슬픈 눈물만은 아닌 것 같고 웃음이 나는 공감과 해소의 눈물에 가까웠다. 얼마 전, 한 커뮤니티를 통해 동화스토리텔링 수업을 들으며 스토리를 만들 때 도움이 되는 질문지를 받았다. '꿈, 사랑, 청춘, 감성'이란 것들은 무엇이고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며, 왜 그런지 적어나가다 보면 캐릭터와 사건, 갈등과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모이면 결국 소설이든, 에세이든 한 편의 작품이 되는 것 같았다. 문득 얼마 전 읽은 김민철의 <모든 요일의 기록: 쓰다, 찍다, 읽다, 듣다, 배우다> 와 같은 동사와 이 책의 <여행, 장소, 탐닉, 사랑, 우정, > 등의 명사를 갖고 질문을 만든다면 무한대의 이야기를 매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20개 명사에 관한 그녀의 에피소드를 '작게' 들려 주어 고마웠다. '이런 이야기라면 나는 백 가지도 더 있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하마터면 망각의 쓰레기통에 버려질 뻔했던 어린 시절과 지금보다 젊었을(?) 때의 기억들을 가까스로 붙잡아 기억의 공간에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물론, 고맙지만 아픈 순간도 있었다. "고생 자체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의미가 없다. 고생을 미화하지 말자."
고생의 아름다운 의미는 지금 그곳을 빠져나왔다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일까. 힘든 시간을 빠져나온 내게 너무 필요한 말이었고, 사실이었지만 심장이 아프고 억울해 눈물이 났다. 진짜 하나도 없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그 시간의 의미를, 후에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한 액땜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의미는 결국 내가 시험에 실패했고, 공무원 신분의 교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 뿐인지도 몰랐다. 요즘은 내 나름대로 '감성'의 정의를 새롭게 찾아나가는 중이다. 최근에 내린 정의는 외부 상황과 자극에 예민하고 기민하게 반응해 내는 것이다. 알고보면 매일 매일의 일상과 경험, 느낌, 감정이 늘 내가 갈 길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든 감각과 감정을 어떤 다른 고민에 묻어 잊어버리거나 혹은 '너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아', '그렇게 느끼지 마'라고 최면을 걸어왔던 것 같다. 최면이 깊어 병이 되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나를 깊은 최면에서 깨어 나게 하는 감성의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어떤 자존심에선지 몰라도 나는 특정 한 작가를 대단히 추켜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거의 모든 문장이 완벽하게 맘에 드는 작가를 만났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냥 이 책은 있는 그대로 모두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에피소드마저도 너무도 비슷한 것이 많았다. 평생에 마음에 묻어놓고 써보질 못한 이야기를 타인의 문자로 만나게 된다는 것, 마치 내 일기를 남이 대신 써 30년만에 내 앞에 들이민 것만 같은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심장이 있는 가슴팍부터 배꼽까지 간질거리고 의미도 뜻도 없는 말들이 마구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책을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래... 그동안 너무 메말랐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해 봤지만 성격과 대인관계, 어릴적 꾸었던 꿈과 소비성향에 꿈을 결심한 나이까지... 분명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대체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입이 벌어졌다. 이런 사소한 순간에도 예민하게 마음을 읽고 최대한 기록하고 표현해내다보면 가능해 지는 것일까. 젖어드는 것이 아니라 맑게 깨어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 '감성'이라는 것을 서른이 다 되어 이해하고 있었다.
‘묵독파티’가 끝나고 회원들과 함께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원 중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책에 인덱스 테이프는 왜 붙이는 거고, 왜 그렇게 많이 붙이셨냐고.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서평을 쓸 때에 인덱스를 붙인 부분을 들춰보면 글을 쓰기 편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부 제 이야기 같아서요. 꼭 제가 쓴 일기같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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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정여울작가의 글에 눈이 가는 걸까? 이번에 내가 고른 그녀의 글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란 책이다. 여기서 그때란 20대의 청춘을 말한다. 도대체 20대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만약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 알고 있는 걸 모두 행동으로 옮겨 후회없는 학교 생활을 했을까? 나의 대답은 'no'이다. 나는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것이다. 사랑, 우정, 직업, 학교 생활, 소통 등등 모든 면에서 나는 서투를 것이며, 우왕좌왕할 것이며, 여전히 방황할 것이다. 그러니까 20대, 청춘인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내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정여울 작가의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었기에 읽을 수 없었겠지만....가장 후회되는 것은 독서를 좀더 많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30대가 되어 하기 시작한 독서를 20대 그 시절에 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꽤 많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다. 독서를 통해 내 진짜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의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분명 그 시절보다는 격렬하게 노력했을 것이다. 지금의 20대 청춘에게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처럼, 나 역시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었음을 인정한다.
이 책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거나 아예 성찰이 부재한 20대의 청춘에게 20여개의 키워드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도록 해주고 있다.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의 카테고리는 20대의 청춘은 아니지만 30대의 청춘인 나에게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주었다.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자기계발서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남이 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즉 사유하는 청춘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면에서 이 책은 그 반대편에서 답을 말해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는 생각책으로서 청춘들에게 삶에 대해 묻고 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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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중반 여러가지 고민도 많고 일도 사랑도 공부도 쉽지 않은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랑, 이별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이제 겨우 사회로 나와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여유도 없었고 어디 기댈곳도 없었던거 같다.
잠깐 점심시간에 서점에 들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을 구매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가볍게 읽고 싶은 마음에 구입하게 된 책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읽고 난 후 내 마음은 180도 달라졌다.
다시는 내게 돌아오질 않을 시간. 지금도 1분 1초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소중함이 느껴졌다.
일도 사랑도 열정없이 하던 내가 죄인이 된 기분. 책을 읽고 하루하루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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