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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제는 강의가 두 개 있었는데 저녁에 좀 일찍 끝났어요.
저번에 알렌상드르 졸리앙의 책을 읽고 힐링에서 철학으로 대세가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중심에는 철학자 '강신주'가 있습니다. 네, 제가 요즘 이 분한테 필(?)을 받은 것 같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저자가 좋아서 그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는 경우는 흔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반갑습니다. 책은 너무 좋았는데, 저자에 흥미가 안 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를 알게 된 건 좀 됬습니다. 팟 케스트 방송에도 게스트로 나오고, 오마이스쿨에도 온라인 강의(여러가지가 있는데, '벤야민'강의는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를 하는 걸 보면서 그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죠. 하지만 관심을 가진 건 최근입니다. 대학로 벙커1이라는 곳에 문학수 기자의 <아디지오 소스테누토> 출간기념 강연을 갔다가 대담자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도 클래식을 듣는다는 걸 알았을 때 동질감을 느끼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읽은 책이 아래 세 권입니다. 공동 저작으로 나온 걸 제외하고 혼자 쓴 단행본만 17권정도 되는데, 그나마 유명하고, 쉽게 썼다고 일컬어지는 책들만 우선 접근한거죠. 최근에는 벙커1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하는 라디오도 잘 듣고 있습니다. 팟 캐스트나 오프라인 강연 등에서 '대중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매스컴에도 종종 나오고 있고, 신문에 기고도 하고 있고, 한마디로 말과 글 양방향으로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인터뷰어인 지승호와 인터뷰이인 강신주, 두 사람이 나눈 대담은 총 5주, 50시간, 4,500매라는 숫자로 정리됩니다. 이 숫자가 보여주듯, 책도 두껍습니다. 장작 600 페이지 정도입니다. 주제도 인문정신, 사랑, 시 읽기, 제자백가와 동양철학,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 음악 등 다양합니다. 평소에는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군데군데 뽑고, 간혹 저자의 이야기나 제 느낌을 소개하는 식으로 서평을 썼는데, 이 책은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힘든 것 같습니다. 책 전체가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아서 어느 한 곳을 뽑아서 이야기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그래도, 책(혹은 독서)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이 부분만은 소개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독서는 마음에 작용하고,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겠죠. 앞으로도 시간 때우기 위한 독서, 지적 허영심을 위한 독서, 그리고 서평을 위한 독서는 하지 말라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경험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잣대는 마음이 움직였느냐에요. 경험을 하기 이전의 마음 상태와 한 후의 마음 상태가 달라야 해요. 책을 읽어도 간접 경험이 안 되는 건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치고 중요한 것 외우고 해서 그래요. 그건 책 읽는 게 아니에요. 읽었을 때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간접 경험이거든요. (185 페이지)
대담집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어쨌건 두껍고 무엇보다,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제자백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자'나 ~가'로 끝나는 동양사상에 문외한이신 분들한테는 중간 부분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전 초등학교 시절에 경전을 배운 경험도 있고, 동양사상에 나오는 우화나 개념 같은 것에 조금 익숙했던 것에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아, 그리고 벙커1 팟 캐스트로 하고 있는 강신주의 '다 상담'을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조금 쉽게 읽힐 수 있겠네요.
저녁에 스튜디오 연주회를 보러 나간 경복국 옆 통의동 카페에서 반나절 죽치고 앉아 하루만에 읽었습니다. 느낌이 가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치만 그건 책을 읽는 동안이었고, 읽고 난 뒤에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책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의 고통과 그 이전의 고통을 조화롭게 겪으면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비단 '글쓰기'에만 한정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보다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겠죠.
힐링 서적들을 읽고 먹어도 고픈 군대밥이나 마셔도 갈증나는 바닷물 같다는 느낌을 받아보신 분들은 조금만 더 용을 써서 이 분의 철학에 몰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전 그럴겁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본인의 대표작으로 꼽는 <철학vs철학>과 <김수영을 위하여>도 읽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제가 제일 잘 한 건, 위의 두 저작보다 이 대답집을 먼저 읽은 것이겠네요.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제가 김수영이라는 사람을 똑같이 흉내 내면 사랑이 아니라 제가 미친거에요. 스토커랑 흉내 내는 것은 달라요. 사랑하려면 상대방이랑 달라야 해요. 그런데 멘토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성을 내가 담보하려고 하는 거에요.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자기 메아리에요.
매번 강의할 때 제가 하는 얘기가 뭔지 아세요? '당신들이 나를 선생 말고 강신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김수영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 시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맞다. 이건 강신주의 해석이다.' 라고 답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얘기해요. 그러면 제가 또 야단을 쳐요. '맞다. 그러나 동등한 해석은 없다. 그래서 영화 평론을 보더라도 영화에 근접한 해석이 있고 모자라는 해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뻔히 아는 것 아니냐'고요. (188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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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가 쓴 17권의 책 가운데 이 책을 두 번째로 읽는 것을 감사한다.
왜냐하면 강신주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일상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철학자에 대한 선입견은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탐구하기에 대중들과 소통하기 어렵고 그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 틀을 깬 사람이다. 길거리의 철학자, 통섭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 것 같다. 인터뷰 집은 개인에 대한 심층탐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공개되기 마련이다. 물론 일방적인 찬양을 하며 권력이나 돈의 개가 되어 진실과 멀어지고 개인을 찬양한 인터뷰집도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터뷰어 지승호는 강신주란 인물에 대해 낱낱이 까발리며 그의 실체를 드러낸다. 또한 인터뷰이 강신주도 자신에 대해 일점의 속임도 없이 자유분방한 자세로 내면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받아들이기에 거북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이나, 동거를 결혼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걸러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승호는 강신주의 이런 태도에 대해 돌직구를 던지고 아는 척 하지 않고 중요한 것만 이야기하는 화법을 즐긴다고 말한다. 원칙에 어긋난 사람에게 대해서는 쌍욕도 서슴지 않는데 이 책속에서 강신호의 돌직구를 맞고 신음하는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명박,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과 이건희, 공자, 교수 등 많은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유는 권위,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의 외침이기에 수긍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학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이 사회의 잘못을 질타하고 썩어있는 곳을 도려내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든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로 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 강신주는 자신에 대해 깨알 같은 자랑을 한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교수들은 학생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승진을 위해 학생들을 이용하는 실태를 보며 자신은 직구 승부를 하며 정면으로 부딪쳤고 결국은 거리의 철학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자신감과 자긍심은 배울 만하다. 결국 그가 대중들의 관심사가 된 철학자로 자리매김 한 것은 실력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자랑이 밉지 않다. 그것은 원칙을 말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적인 깊이는 모르겠지만 강신주는 다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동양철학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에 대해서도 박식하고 문학, 글쓰기, 책읽기 등에 대해서 거침없는 생각들을 털어 놓는다. 전문가들이 강신주의 책을 보면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될 것 같은데 과연 만리장성처럼 넓은 그의 학문세계가 누구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무너질 것인가? 라는 기대감도 있다.
그럼 이 책에서 강신주는 어떤 주장을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의 저항정신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한 사람의 사상을 책 한권으로 다 알 수는 없지만 강신주가 지향하는 가치와 왜? 우리에게 저항 정신이 필요한지 알게 된 것은 이 책의 가치다. 내가 있는 곳에서 혼자라도 팽이처럼 돌아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겁이 많다. 마치 한편으로는 삼성을 비난하면서도 우리 자식만큼은 삼성에 입사하고 싶은 이중성. 이중적인 이 마음이 우리의 모습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라고 말했지만 강신주는 ‘책은 팽이다’라고 말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자신을 깨트리는데 있다.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며 의식이 자신을 지배할 때 인간은 스스로 돌 수 있을 것이다. 출간된 강신주의 여러 책보다 이 책을 먼저 읽는다면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삶의 가치란 생각을 한다. 잊지 말자. 나는 지금 있는 곳에서 나 홀로 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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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불온하다!!! 목사님이나 부모님이나 사장님이 보면 혼내실 것 같다. 교회, 권력, 자본주의라는 기득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강신주는 불온한 사람이며, 이번 책은 그가 왜 불온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맥락을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문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간의 강연과 저서에서 이미 자체발광하며 대한민국에 유례없는 철학 매니아층을 형성한 강신주만의 매력은 바로 에둘러 말하지 않는 정공법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그가 감내한 고통이 진하게 스며 있기에 돌직구를 던지는데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깊이있지만 지루하지 않고, 직설적이지만 가볍지 않은 그의 사유와 언어가 인터뷰어 지승호를 만나 날개를 단 것 같다.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대담집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결코 수면제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의 철학적, 인문학적 계보를 김수영 시인에게 연결하는 강신주가 읽어주는 '달나라의 장난'라는 시를 보면 인문학적 불온함(?)의 이유가 나온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p. 152)
사회적, 종교적 권력을 가진 자들은 우리에게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돌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문학이 가진 자유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각각의 팽이가 되어 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저릿저릿 아파오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 지점이 바로 자신의 맨얼굴에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픈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간 두꺼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경우 메스를 들이대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그 중 제일 빨간 불이 켜진 곳은 기독교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강신주는 이론적 무신론자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선 기독교가 없어져야 한다는 래디컬한 주장까지 한다. 나름 건강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나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른 책들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며 아프게 이 부분을 통과해가고 있는 중이다.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예요. 그래서 반체제적이고, 김수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한 거죠. 사랑과 자유의 힘을 믿을 때 우리는 강해져요. 반대로 제대로 사랑을 못 할 때, 인간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붕괴되어버릴 때 사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계에서도 절망이 오는 거예요>(p. 591)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신을 기독교적 틀에 가두려 한다고 강신주가 화를 낼 것 같은데...이건 그냥 내 생각이니 용기를 내어 말해보겠다(쫄지말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는 당시에 상당히 불온한 사람이었다. 율법주의적인 유대인들의 종교성에 맞서 스스로 도는 팽이처럼 살다 간 사람이었으며,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과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연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간이 되어 고통을 선택한 자유가 있었기에 그는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진정한 인문주의자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서 교회언니로서의 개인적 아픔은 조금 해소되었으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여전히 갑갑하다.
그래서 불온한 이 책을 강추한다. 특히,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획일적인 신앙의 틀을 강요해 온 파시즘적 교회 권력, 그리고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면서도 실천적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언니, 오빠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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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이렇게 적으면 이 책 잘못 읽었다고 뭐라 하실려나???ㅋㅋ 너무 열정적으로 말을 하셔서 한 발 뒤에서 뒷짐 지고 보는 사람이 있음 그런 느낌이 들 것 같다. 저 놈이 뭔 말을 하기에 듣는이들이 저렇게 빠질꼬...사이비 교준가??ㅋㅋ 내가 살고 있는 삶에서는 동떨어진 이야기인 철학과 인문학이지만...그래도 가끔은 한번씩 자세히 꼭 들여다 보고 싶은 꽃 같은 것이다. 지천으로 깔려있어 대충 이뿌다 하고 지나가는 삶이지만 한번씩은 자세히 봐 줘야하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의 무게을 느끼게 하는 꽃 같은... 그 꽃을 하필이면 아이들 방학기간에 잡아 시끄러운 틈에 읽었지만 손을 놓을 수 없어...기어코 다 읽었네.. 읽다가도 뭔 남자가 이렇게 말이 많아..시끄럽기도 했지만...읽다보니..아 이사람은 열정과 사랑이 있구나..그 나이에도 그럴 수 있다는것에 이뻐보인다. 외모가 아니더라도 이뿔수 있다는 맘이 드는...내 새끼들이 외모가 뛰어나서 이뿐것이 아니듯...ㅋㅋ 관심이 간다. 아 이 사람은 더 알아봐야겠구나..라는 생각에 다음책은 이 사람의 책.김수영을 위하여를 선택한다. 목에 핏대올려가면서 김수영을 찬양하는 강신주... 김수영시는 풀이라는 시와 폭포밖에 모르는 나로서는..그리고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나는 대체 왜 김수영을 강조하나 의문이 든다.
맨얼굴의 철학,당당한 인문학. 이건 지승호와 강신주의 대담집이다. 지승호 사람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말 많은 인터뷰이로 인해 자신의 질문은 최대한 줄이면서도 중요한 건 다시 강조해주고 어려운건 다시 풀어주고...그래서 이 책의 주제들이 너무 무겁고 다양했지만 지승호의 덕분으로 잘 읽혀졌다. 감사를 드린다. 듣는 연습이 안 되어 있는 나에게 참 좋은 경험이였다. 귀대신 눈으로 들었지만...
끝으로 이 책에서 제일 나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책을 읽을때 감응하자이다.그 책의 내용 요약이 아니라..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왜 그기에서 내 마음이 움직였는지...다시 생각할 수 있는 독서법을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다시 배워본다. 권 수가 중요하지 않음을...책을 읽어야 하는 우리 아들에게도 적용하자. 읽어야 함에서 강요가 느껴지지만..또 책 잘못 읽었나..ㅋㅋ 참 실천이 힘들다. 모든 살아있는 한 유기체는 폭력이 숙명이듯이... 내가 부모인이상...자식들에게 강요는 숙명일까??? 가끔은 내 자식들을 손님으로 대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 그렇게 억압하고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근데 손님이 아니니..영 그렇게 맘 먹기도 안 되고... 천상 맨날 소리치는 삶의 연속이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내가 되기를 바라보면서...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들..
경쟁,분리가 인간 사회에 일어나면 체제가 이기는거고 반경쟁,사랑,공존쪽으로 가면 체제가 붕괴돼요.p63 알면서도 참 안 되는 것이 이건가보다. 경쟁 안 하고 키우고 싶다. 비교 안 하면서 살고 싶다. 내가 가진것에 만족하면서 살고 싶다.내가 아닌 내 주위도 돌아보면서 살고 싶다.언제나 싶다로만 끝나버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념을 사랑했다는 데 있어요. 형식과 정차,이념이 다 정해진 엄마들이 무슨 교육을 시켜요.p318 나를 꾸중하는 말인거 같다.ㅠㅠ
지배를 이기는 싸움은 우리 내면에서부터 출발하는거에요.우리가 노예로 길러지면 혁명을 일으켜도 새로운 주인을 세워요. 난 항상 노예니까.좋은 왕과 나쁜 왕을 구별 하는게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서 왕의 자리를 없애야 해요. p176
약자들은 자기의 비겁함을 다른 데 전가하는 경우가 많아요.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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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권 정도의 단행본을 내고 수많은 강연을 다니면서 본인이 어떤글과 어떤말을 하고 싶은지 대담 형식으로 엮어놓은 책으로 시종일관 인문학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쫄지말고 자유,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수 있어야 하고 실천해야 된다고 말한다. 너무나 노골적이기 까지 하게 밀어부치면서 지금 너는 당당하냐? 사랑하냐? 내면의 감시자가 작동하는건 아니냐고 혼내키는거 같다. 그동안 들은 강의와 책의 내용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글쓴이의 의도나 느낌을 알수가 있어서 강신주 책 한두권 읽어본 사람은 이 책 먼저 읽고서 강신주 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고서 수많은 단행본들에 대한 가이드 역활을 해줄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책에 나온 내용처럼 이 책은 선물 이란 생각이 들며 선물은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받았다는것을 몰라야 한다라고... 소중한 것을 선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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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좋았던 점은 강신주씨의 기존 저작들에 대한 이해와 강신주씨 본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전문적인 인터뷰어 지승호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강신주씨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 놓았는데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광범위하며, 또한 대화의 특성상 꺼내놓았던 주제에서 점차로 확장되어가는 것이 정말 장난 아니기 때문에 가히 강신주씨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 했다.
항상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분은 참, 뭐랄까 필터링이라는 게 없는 분 같았다. 자신의 생각과 날 것에 부딪히라고 강하게 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조차도 검열 없이 내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에 근거가 있고 논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딱히 비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 자리한 그 분의 자의식(?) 비스무리한 것을 보면서 묘한 반감이 들기도 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 많기도 했다.
무엇보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O, X를 결정하게 하면서 형성하게 되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라고 하면서 '자본=국가=신'의 공식을 프레임으로 가둔 것이 의아했다. 또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신에게로 도망가서 '기도'하는 것을 일종의 회피행위로 보았는데, 나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어째서 회피행위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서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일종의 자신과의 내적인 대화의 또 다른 형식이며, 자신 내부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라고 했던 말에 동감하는데, 이것처럼 기도는 회피 행위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지 자신 스스로 설 수 없는 유아적인 도피 행위가 아니다.
사실 기독교는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진리와 같이 작용하는 몇 가지가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뭐랄까 그 활용이 매우 방대해서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가득하다. 그래서 훌륭한 교회에서부터 사리사욕을 채우고 자본가적인 교회에서까지, 심지어는 사이비적인 종교적 행위로 목사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교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다양한 기독교에 오직 한 가지 틀만 제시하면서 비판하고 억압하는 것은 그 타당성과 논리성에 대해 동의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기독교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가 맞는 것인지 돌아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역시 강신주씨는 철학자라는 것에 동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철학자들과 여러 관념들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강연을 통해 쌓게 된 능력이며 그래서 바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스케줄이 이해가 되었다. 쉽게 말해주다 보니 쉽게 쓰게 되었다, 그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에 납득했고 그렇게 살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 나는 강신주씨가 다른 저작에서 소개한 철학저서들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 텍스트의 난해함이 컸고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강신주씨가 쉽게 설명하는 능력을 체감할 수 있었으며 그의 말로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에 원문 읽기에 너무 겁없이 도전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명확하게 언어로 끄집어낼 수 있으려면, 난해하고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 책들을 꺾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들을 힘껏 꼬집으며 정말이지 당당하게 자신의 모든 생각을 풀어놓는 모습을 함께하면서, 그가 제시한 많은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마음 속으로 힘껏 비판하면서 더 많이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남겨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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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음악을 들을 때면, 정말 좋다 싶은 음악이 있을 때면, 공연실황앨범을 찾아 들었다. 스튜디오에서 정갈하게 녹음된 음악과는 다른 1회성의 날 것의 느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실망하던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라이브의 음반은 나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다. 히키코모리같은가. 오디오의 볼륨을 한껏 올리고 가만히 듣는 레드제플린의 모비딕은 또하나의 오르가즘과 다를 바 없었다. 라이브는 학실히 힘이 있고, 1회성이 주는 제한성은 감정의 저 밑바닥을 긁는 묘한 힘이 있다. 라이브 음반은 현장에서보다 더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불러준다. 놀랍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젊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날카로움을 어떻게 유지하는냐의 문제죠. 세계를 용서하면 안돼요. 나쁜 놈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랑 화해하면 안되요. 나쁜 놈들은 나쁜 놈들이고, 도와줄 사람은 도와줘야죠. 세상은 이분법적이에요. 그걸 초월하는 순간 고상한 책이 나오고 보수적인 책이 나오는 거에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이분법적이었으면 좋겠어요.(105쪽)
저자 강신주의 강연을 진짜 강연보다 더 리얼하게 들었다. 50시간에 걸쳐한 인터뷰를 대략 10시간만에 읽었나보다. 총 599쪽의 많은 분량을 아주 재미있게 흥미진진하게 읽고, 보고, 들었다. 이 시대에 이렇게 유식하고, 단호하고, 다정하며, 열정적인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철학자(그것도 동서양을 아우르는 듯한)이자, 인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자, 수필가이자, 잘 나가는 강연자. 게다가 설악산을 100번 넘게 종주하지를 않나, 서양고전 음악에 탐닉하지를 않나, 하여튼 무지 독특한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 숨가쁘게 혹은 멍하니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몽매한 존재였던가에 깜짝 놀랐던 순간이 여러번, 이를 여실히 깨닫게 해준데 대해 강신주와 지승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았던 지식은 사실 지식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파격 또는 逆의 해석은 두고두고 내 머리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게 제대로 사는 것인가 하는 화두를 던져준데 대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마워하긴 참 오랫만이다. 맨얼굴과 당당함. 이거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으로 사람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로 정할 생각이다.
쫄지 말고 당당해져야 해요. 그래야 자기 상처라든가 비겁함, 남루함에 대해서도 직면할 수 있어요.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굽실거리다가 죽지 말고 고개 뻣뻣하게 들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책에 사인해줄 때도 이렇게 써요. "항상 당당하세요"(481~482쪽)
맨얼굴과 당당함과 더불어 이 책에서 거론되는 단어중 돋보였는 게 '남루함'과 '지랄한다', '육박한다'였다. 저자는 쪽팔리고 비겁함에 대해 애정이 있을 경우 남루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추호의 애정이 없을 경우 지랄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육박전이라는 단어에서 나타나듯이 나를 둘러싼 무엇과도 치고받고 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이 권력이든, 종교든 나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존재와 타협을 거부하고 맞서 싸울 수 있어야 진정한 개인으로 자립할 수 있다. 말이 쉽지, 행동은 아주 어렵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존경스럽다. 남루함과 지랄, 그리고 육박의 정신은 이 시대 저자가 이 시대의 어여쁜 현상을 보는 프레임이다. 가급적 남루하지 않도록 육박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 인문학자로서 사랑에 대한 애착은 아주 끈적끈적했다. 사랑사랑 그 강조하는 사랑에 강신주의 모든 게 담겨있다.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신주는 그럼에도 아주 아주 구체적이다. 명확하다. 그래서 쉽게 다가온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인문학서나 철학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개운하다. 구체적이니까, 명확하니까.
가면을 벗어야 상대방을 알아요. 가면을 한 번만 벗으면 돼요. 세상이 홍해처럼 갈라져요. 내 맨얼굴을 인정해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 그런데 가면을 써도 이 가면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나뉘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가면을 벗으면 가면 쓴 모습이나마 좋아해주던 사람마저 없어질 것 같다고 두려워해요 그런데 안 그래요. 새롭게 재편되는 것일 따름이에요. 그러니까 맨얼굴을 인정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으로 양분하는 편이 나아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살아야 해요.(586쪽)
이 책은 강신주의 그간 인생역정과 공부실력을 반환점 차원에서 검토하고, 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많은 이들이 언급되었다. 강신주가 사랑해마지 않는 김수영을 비롯하여, 공자, 순자, 묵자, 진시황, 예수, 니체, 드뢰즈, 라캉, 칸트, 베토벤 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시대 다양한 인물이 얘기중에 나왔다. 비판적인 시각도 있고, 긍정적 시각도 있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는 거의 숭배에 가까운 평이고, 공자나 맹자에 대해서는 아주 냉혹하다. 그 밖에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나온다. 이들이 지금의 강신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이들도 있고, 전혀 모르는 이들도 있다. 모르는 이들이 누구인지 애써 찾아보진 않았다. 그냥 나는 현장에 있는 것이니까. 강신주의 강연을 있는 그대로 듣고 싶었다. 그들은 앞으로도 강신주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또한 새로운 이들이 강신주의 새로운 모습을 형성할 수도 있겠다. 좋은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또다른 저자 지승호의 고생도 눈에 훤하게 보인다. 그이의 재능과 노력 덕분에 이 책을 볼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이 여기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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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거부감 철학에 대한 거부감을 가득 실어준 책, 물론 저자의 논지에 따르자면 그것도 모두 솔직하지 못하고 나를 속이며 사회성에 길들여진 나약함 때문이라 반박하겠지만 혼자도는 나만의 세계에 다른이의 삶을 그럴듯하게 끼워넣어 궤변을 늘어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의 이야기에 참신하고 수긍이 하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과도한 표현으로 일반인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내 말이 모두 옳으며 나만이 세상의 진리를 꿰뚷고 있다는 고집만 버리고 좀더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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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말 그대로 우연하게 읽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이런류의 제목의 책들은 조금은 가벼워 보이고 읽기를 나도 모르게 꺼려하곤 한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50page 정도를 읽기 시작한 후부터 책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기분은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고3 수능을 치고 모든 친구들이 암막커튼을 드리우고 공포, 액션 영화만 볼 때, 친했던 역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한강' 이라는 장편소설을 암막 사이의 햇빛에 비춰가며 읽고, 집에 가면 새벽5시 조금 넘어서 이 책을 읽으려는 목적 하나로 일어나고, 자기 전에는 이 책을 읽다가 잠들었던 기억과 상당히 유사했다. 내 인생에서 '한강'이라는 책은 내가 최초로 온 마음으로 받아들인 책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 중 하나이다. 지나간 일에는 큰 의미를 두진 않지만 이 강렬한 순간만큼은 남겨둔다. 두 번째로는 김수행 교수님의 자본론 강의를 찾아듣고 공부하며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빠져들었을 때이다. 이 경험은 더 강렬했다. 나의 생각의 구조들을 대부분 뜯어 고쳤다고 말해야 될 것이다. 아득했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으로 보였다. 기사들이 뜻하는게 무엇인지 읽혀졌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구해 들어가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탐구하다가 만난 책이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다. 주변에서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강신주 라는 철학가를 알 것이다. 어렴풋이나마. 내가 책을 읽는 순간부터 이 책에 나를 맡겼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강신주라는 사람을 은연중에 거부했던 나를 모두 내버렸다. 내가 오를 산을 발견했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나아갈 길, 만들어갈 길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한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다.
강신주는 말한다. 사람은 고유명사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말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메아리 쳐지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나 역시 그렇게 하겠다고, 그러나 지금 나는 너무 작다. 그래서 당신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잠시 올라가겠다고, 그래서 내가 서야할 곳을 찾겠다고. 내가 서고나면 당신을 버리고 나의 영역을 구축하겠다고.
강신주를 만남이 내 삶에서의 정신적 깊이를 더할 수 있음을 느낀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놈의 본능을 이번에는 한 번 제대로 실천해서 나아가보련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뒤, 다시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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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적혀 있는 강신주 선생의 구어에서 가장 독특한 울림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육박'이었어요. 주제에 욱박해 들어가다, 그런 거요. 그런데 그의 언어, 그의 사유, 그의 논리, 그 하나하나가 육박 투였어요. 결코 쉬운 책이 아닌데도 박진감을 느낄 만큼 빠르게 읽혔어요. 원고지 4500장 분량이라네요. 보통 책 서너 권 분량이잖아요. 그런데 가장 빨리 읽히는 책보다 더 빠르게 읽혔어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목도 적지 않았어요. 철학, 또는 인문학 계열의 책을 이토록 빠르게 완독한 적은 없었어요. 그렇게 읽었는데도 잔상을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어요. 독특한 육박 투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저자의 방대한 섭렵이었어요. 비단 철학, 인문학, 그런 쪽만은 아니에요. 음악에도 그 조예가 만만치 않아요.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그 경지가 놀라워요. 그리고 또, 석사과정을 끝내면서 지도교수와 싸우고 학교를 옮겨 박사과장을 하고, 박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도교수와 심한 갈등을 일으켜, 결국 강단 대신 이른바 거리의 철학자가 된 그 사연도 다분히 육박美가 느껴졌어요. 지도 학생에게 노예가 되기를 욕하는 현실에서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그의 싱싱한 야성, 그것이 결국 육박이라는 색다른 낱말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육박 투를 느낀 이유는 또 하나 있어요. 대담자이자 공저자인 지승호 선생에 대한 것인데요, 이 책뿐만 아니라 당대에 움직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는 그가 장악하고 있는 지식, 상황, 그런 게 놀라워요. 대충 요식이나 때우는 가짜 인터뷰어와는 달라요. 인터뷰어라는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낸 그는 인터뷰이에 대해, 그 사상은 물론 섬세한 결까지, 알 만큼 알고 인터뷰를 시작하는데, 그게 왜 놀라운가? 이 책에서만 해도, 결코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은 강신주 선생의 책 모두를 소화하고 있거든요. 소화하지 않고는 이런 인터뷰를 할 수 없죠. 더러는 지승호 선생이 빗나가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대목도 있는데, 그런 대목에서도 지승호 선생은 잘 꾸려나가거든요. 놀라울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해서 강신주의 지승호의 육성을 듣는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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