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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토대는 문학과 예술이고 시는 문학과 예술의 토대가 된다. 시는 또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인본정신은 시를 통해 가장 잘 구현된다. 안대회의 [궁극의 시학](문학동네, 2013)은 중국 전통 미학의 대표적인 텍스트인 [이십사시품]을 매우 알기 쉽게 해설한 수작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기본적인 시학 이론뿐 아니라 동양 미학의 깊은 풍미까지 만끽할 수 있다.
시학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미학과 통찰이 모두 집약된 예술과 철학의 총체다. 이런 시학을 시적인 형식으로 구현하면서 체계적인 동양 미학 이론을 정립한 텍스트가 바로 [이십사시품](이하 [시품])이다. [시품]은 웅혼, 충담, 섬농 등 스물네 개의 풍격을 일종의 시로 표현한 시학 텍스트로, 동아시아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풍격이란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말로 시와 시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학이 제시한 풍격은 단지 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림, 음악, 조각, 건축, 춤, 영화에까지 적용과 응용이 가능하다.
저자는 오랫동안 당나라 말엽의 시인 사공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분명치 않다. 청대의 유명한 시인 왕사정과 원매는 시품의 미학을 매우 중시했다. 조선의 경우,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조선 예술가의 문예에 영향을 끼쳐 19세기에는 중요한 미학적 근거의 하나로 널리 읽혔다. 시품이 끼친 영향은 서예와 인장, 그림 등 형상예술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시품]의 각 풍격은 네 글자 12구 48자로 짜인 운문이며, 원문으로 계산해보면 전체가 겨우 1152자에 지나지 않는다. 스물네 개의 풍격을 차례대로 제시하면, 웅혼, 충담, 섬농, 침착, 고고, 전아, 세련, 경건, 기려, 자연, 함축, 호방, 정신, 진밀, 소야, 청기, 위곡, 실경, 비개, 형용, 초예, 표일, 광달, 유동의 순이다. 이러한 미학 범주는 무작위의 창작 정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시적 정서의 체계를 범주화하려는 노력은 [시품] 말고도 선례가 있다. 가령 [문심조룡]은 전아, 원오, 정약, 현부, 번욕, 장려, 신기, 경미의 여덟 개 범주로 나누었고, [창랑시화]는 높음, 예스러움, 깊음, 멂, 긺, 웅혼, 표일, 비장, 처완의 아홉 개 범주로 시의 풍격을 범주화한 바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율곡 이이는 1573년 [정언묘선]을 편찬하면서 충담소산, 한미청적, 청신쇄락, 용의정심, 정심의원, 격사청건, 정공묘려 등 여덟 개 범주로 풍격을 나눈 바 있다.
시품의 스물네 개 범주는 시의 작풍과 작법을 논한 시론도 포함하지만 시인의 생활과 사상, 시와 자연의 관계도 더불어 논하고 있다. 시경은 작위적이고 의식적인 창작을 지양하고 자연스럽게 완성되어야 한다. 저자는 매 풍격마다 중국과 한국의 대표적인 시와 산문을 예시하고 있다. 가령 네번째 풍격 침착(沈着)을 예로 들어 보자. 침착은 상실감이나 고독감을 표현하되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는 풍격이다. 이를 다시 우아미의 침착과 비장미의 침착으로 구별하는 학자도 있다. 저자는 당나라 시인 두보가 비장미의 침착을 구현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소개하고, 한국의 시인들 가운데는 이주, 정사룡, 노수신, 이달, 김창흡, 이광사 등을 언급한다. 저자는 또한 각각의 풍격을 멋진 그림으로 재현한 정선, 반시직, 장부, 제내방 네 화가의 그림을 보기좋게 설명하고, 이광사, 김정희, 권돈인이 쓴 서예도 더불어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 풍격 웅혼(雄渾)은 영웅의 장대한 기백을 표현한다. 굳이 '웅혼의 시인' 한 명을 꼽는다면 남명 조식(曹植,1502-72)을 꼽겠다. 저자 안대회는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시를 본문에 소개하고 있지만 , 나는남명집에 실린 <시내에서 멱을 감으며>도 웅혼의 품격을 보여준 명시라고 본다.
온 몸에 찌든 사십 년의 찌꺼기를 全身四十年前累
두번째 풍격 충담(沖淡)은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풍격이다.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이 충담의 미학을 구현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충담의 미학을 이상적인 시의 풍격으로 간주했다.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조탁과 기교보다는 투박함과 무기교를, 역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중시했다. 조선의 대표적인 '충담의 시인'으로 저자는 율곡 이이를 꼽는다. 다음은 율곡의 시 <산속에서>다.
약을 캐다가 문득 길을 잃고 보니 採藥忽迷路
ㅡ「산속에서(山中)」
세번째 풍격 섬농은 섬세하되 농후한 정을 표현한 풍격이다. 섬농은 충담과 달리 짙은 감정을 표출한다. 이욱과 진관, 주방언 같은 송대 완약파 시인들이 여리거나 부드러운 감정을 표출하는 섬농의 미학에 능했다. 저자는 '섬농의 시인'으로 자하 신위(申緯,1769 ~1845)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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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이십사시품”(줄여서 ‘시품’)이라는 이름의 시학(詩學)을 다룬 저작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당나라의 ‘사공도’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 또한 분명한 건 아니다.(저자는 좀 더 후기인 남송 시절로 본다) 그런데 이 작품이 대박을 친 거다. 중국의 여러 문인들은 물론 조선에서도 끊임없이 인용되고, 2차 창작물(그림이나, 비슷한 형식의 시학 책 등)들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십사시품”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내용이다. 스물네 개의 장은 우선 원전의 내용을 풀어 놓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세 사람(우리나라의 겸재 정선과 중국 청나라 건륭제에게 바치기 위해 그린 반시직, 제네방)의 그림을 실사도판으로 옮기고 설명한다. 그리고 각 장의 주요 ‘시풍’을 잘 표현해 낸 또 다른 시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휴가를 떠나면서 책 한 권을 들고 나가려고 책장을 살피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 들어온 지 제법 됐는데, 우선 그 두툼한 두께와 한시라는 주제의 어려움 때문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하지만 여름휴가와 한시라.. 뭔가 좀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 아니던가. 큰 맘 먹고 가방에 넣었는데, 결과적으로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시(漢詩)라는 영역은 즐기기가 쉽지 않다. 우선 한자의 압박 때문에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까. 얼치기로 비슷하게 따라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그 좋은 맛을 느끼려면 과정과 재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법이다. 게임의 조작법을 모른 채 아무 거나 눌러서 잠깐은 화면을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충실한 번역과 좋은 설명은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꼭 고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거니까.) 원전에서 말하는 시풍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와 관련된 그림과 또 다른 시인과 그들의 시들을 함께 접하니, 각 장마다 잘 구성되어 지루할 틈이 없는 교양강좌를 듣는 느낌이었다.
특히 저자는 무조건적 찬사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물네 개의 시풍들 중 서로 비슷해서 잘 구별되지 않는 내용들도 있으며, 각각의 시풍의 배열에 긴밀한 논리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등, 어느 정도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분석해 더욱 신뢰감이 간다. 여기에 저자의 풍성한 지식이 더해지니 말 그대로 하나의 백과사전을 보는 듯했다.
다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약간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각장의 초반마다 이광사가 쓴 이십사품의 각 풍격이 사진으로 실려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양반은 각 풍격에 어울리는 서체로 이를 표현해냈다. ‘웅혼’ 같은 풍경은 흘려쓰는 서체인 초서로, ‘충담’ 행서로 쓰는 식. 그런데 저자는 이때마다 그가 사용한 서체를 설명하는 문구를 곁들여왔는데, 후반부 몇 개의 장에서는 이것이 빠져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설명의 내용도 조금씩 줄어드는 경향도 보인다. 아무래도 긴 시간 연재를 하면서 조금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닌가 싶은.
더운 여름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아니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차분하게 읽다보면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몇 개는 반드시 나올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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