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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작품은 프리즘처럼 역사와 시대를 재현하고 예술가의 주체성을 투영한다. 피카소의 작품이 바로 그러하다. 피카소는 20세기 현대 예술의 최고 거장이다. 피카소의 작품에서 우리는 천재 예술가의 미적 상상력과 더불어 유럽 특유의 문화 예술적 변천사를 읽어낼 수 있다. 좋은 예술은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에게 있어서도 무언가 성찰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예술은 거울과 같아서 언제나 그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내용상으로 예술가 자신이나 타인들 내지는 사물들을 조명하는 것 같지만 예술의 모든 것이 실은 감상자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피카소의 예술 작품에게서 나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 꿈, 내면의 그림자 등을 발견하게 된다.
미술사가 존 핀레이의 [피카소 월드](미술문화, 2013)는 현대 예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삶과 작품을 연대순으로 고찰하고 있다. 시기별로 피카소의 예술작품의 특색을 살피고 그런 작품의 뮤즈가 되었던 친구와 연인들, 그리고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관계도 살피고 있다. 모든 거장이 그러하듯 피카소의 작품은 당대 예술의 전위적인 이정표였다. 후기 인상주의, 원시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고전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은 예술사조의 소용돌이 속에 피카소가 자리잡고 있다.
피카소는 그림으로 아수라와 같은 세상과 싸웠다. 피카소는 평화주의의 이상을 채택하고 파시즘, 전쟁, 가난에 반대한 신념의 화가였다. 아래 사진 맨 왼편의 <게르니카>(1937)와 <한국에서의 학살>(1951)은 파시즘과 전쟁에 반대한 피카소의 신념을 대표한다.
한편, 맨 오른편 청색 색깔의 그림은 청색시대의 대표작 <삶>(1903)이다. 피카소가 가장 가난했고 가장 의기소침했던 시기에 그린 대표작이기에 소개하고 싶었다. 청색시대의 전형적 테마인 어머니와 아이가 나오고, 시인이자 화가였던 친구 카를레스 카사헤마스와 그를 자살로 몰고간 제르맨 가르갈로의 얼굴이 보인다. 피카소는 친구를 자살로 몰고간 여인과 관계를 가졌다는 데서 죄책감을 가졌다. 피카소는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고전주의와 같은 다양한 양식으로도 작업하였다. 그런 점에서 <물가의 세 여인>(1921)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세 여인은 거대한 그리스 여신, 뮤즈의 신 또는 운명의 여신을 상징하고 있고, 양식적으로 고대 프레스코화나 조각상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고 싶다. 나는 적갈색의 흙과 같은 피부를 지닌 물가의 세 여인이 각각 실존, 생명, 지성을 재현하고 있다고 본다. 풍만한 모습에서 낙천적인 성격이 드러나기에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 이브'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세 여성을 가부장제와 제국주의로 억압받는 서발턴 여성들로 삐딱하게 해석하는 이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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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나보다 강하다. 나는 회회가 시키는 대로 한다"(147).
피카소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다른 번역은 "그림은 나보다 강하다"이다. 그의 그림은 강했다. 어릴 때, 제일 먼저 외우게 된 외국 화가의 이름이 '피카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벽이나 노트에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 놓으면 우리 부모님은 "피카소네, 피카소!"라고 칭찬을 하셨다. 무엇을 그렸는지 잘 모르겠는 그림을 보면 우리는 "피카소"라고 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도 많지 않지만, '입체파'라는 이름을 얻게 해준 그의 작품들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도 없는 듯하다.
(나처럼) 피카소를 그저 '화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는 뛰어난 데생화가이면서 유화가, 판화가, 조각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는 피카소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하게 활동한 만큼, 그 자신이 미술사에 하나의 이정표(갈림길)가 된 만큼 그와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규정 짓기도 어렵다. "때로는 환영받고 때로는 비난 받은 피카소는 천재, 보헤미안, 순응주의자, 고전주의자, 원시주의자, 샤먼, 초현실주의자, 이단자, 투우사, 시인, 공산주의자, 모방자 그리고 심지어 자기 미술의 혼성모방자로 알려졌다"(7).
<피카소 월드>는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미술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 미술가, 문학작품의 주인공, 친구와 협력자 등을 탐구하는" 가운데 탄생한 책이다.
피카소가 거장인 거장인가 보다. 이 화가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야기인지 아니면 완전히 상상력의 산물인지 알 수 없으나 피카소가 불과 연기에서 탄생하였다는 주장이 전해진다"(8). 사산된 것으로 여겨진 신생아의 얼굴에 그의 "삼촌"이 피우고 있던 담배의 연기를 뿜어 소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울지 않는 아기 때문에 불안해진 의사가 "시가"를 피우며 아기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더니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피카소 월드>의 저자는 피카소의 전기학자들이 "그의 출생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다소 멋지게 각색하여 신화화하는 전통을 받아들였다"고 해석한다.
<피카소 월드> "미화된" 피카소에 대해 또다른 진실을 폭로한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본적격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피카소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가 물감과 붓을 건네준 즉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린 "재능 많은 신동"으로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그림을 "결코 어린이처럼 그려본 적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피카소 월드>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초기 드로잉은 재능 많은 신동이기는커녕 숙달된 솜씨와 완성도를 갖추기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 스케치는 아홉 살 소년의 실력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11).
위의 사진은 <카사헤마스의 죽음>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텁게 칠한 표면, 점묘로 채색한 붓질, 강렬한 색채와 어두운 윤곽선의 구사" 뿐 아니라, 피카소는 "고흐의 슬픈 생애와 치명적이고 자학적인 총상으로 인한 끔찍한 종말"까지 차용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절친한 친구의 죽음이라는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피카소는 분명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위해 친구를 버리고 파리로 돌아간 일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했고, 친구를 자살로 몰고간 바로 그 여인과 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 (...) 카사헤마스의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서 피카소의 팔레트는 점차 변화하였다"(15). 피카소에게 청색은 절망의 색이었다.
피카소의 삶에는 여인과 친구들이 많았는데, 피카소를 절망의 청색에서 구원해준 것도 한 여인과 친구들이었다. "그의 색채가 보다 따뜻해지고 다양해지며, 상징주의적 멜랑콜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곡예사, 유랑극단, 기타 서커스 공연자, 축제, 극장과 같은 이미자가 1905년경부터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그의 삶 속에 등장한 새로운 여인, 즉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많은 시인과 작가들뿐만 아니라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영향력 있는 프랑스 친구들로 구성된 확장된 가족을 포함하는 개인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기도 했다"(28).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한 피카소의 그림이 청색을 버리고 강렬하고 화사한 장미빛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피카소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20세기 미술사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받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꼽을 수 있다. 피카소는 "고전주의, 자연주의 그리고 입체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뒤썩어가며 인체를 그렸다." 재밌는 것은 이 파격적이고 선구자적인 거장이 사실은 대단한 '모방가'였다는 것이다. 르누아르, 뭉크, 고갱, 고흐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나름의 파격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며 비상하고 획기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사진의 여인은 피카소의 임종을 지켰다는 그의 아내 재클린이다. 뒷쪽에 스카프를 한 사람이 피카소의 딸 마야다(147). "평화주의의 이상을 채택하고 파시즘, 전쟁, 가난에 반대"한 이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그림으로 세상과 싸웠지만, 결국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노년까지 엄청난 창조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사랑에도, 일에도, 신념에도 참으로 불꽃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안가, 판화가, 무대 디자이너, 도예가, 조각가로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176).
"비교적 최근까지 피카소의 후기 작품은 그의 이전의 작품에 비해 다소 열등한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카소 월드>는 이렇게 재평가를 내린다. "최근의 연구는 그의 창의력과 재능, 상상력이 말년까지 위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황소의 머리>라는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카소의 작품이다. 이 조각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일관성"이 없다고 하는데, 널리 알려진 바로는 버려진 자건거의 안장과 손잡이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버려진 자건거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장의 힘이 아닐까. 거장의 손을 거치면 버려진 것들도 예술이 되고, 그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피카소 월드>는 피카소의 삶과 작품을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카소의 전기를 기대했다면 다른 책을 보는 것이 좋겠다. <피카소 월드>는 전문적이고 학문적이다. <피카소 월드>는 "흔히" 알려진 이야기와는 달리 '사실과 진실'에 기반하여 피카소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을 탐구한다. (그러니까 어, 알고 있는 것이랑 좀 다른데, 싶은 면들이 있다.) <피카소 월드>를 보고 나니, 대가의 것을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규칙들을 거부하고 파격을 시도한 이 남자는, 자신의 내면(신념까지)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살았던 불꽃 같은 인물이라는 인상이 남는다. 글쎄, 피카소를 공부하는 학도나 특별히 피카소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에 관심을 두고 이 책을 살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미술관에 가는 마음으로 거장의 작품집을 하나 책꽂이에 꽂아두어도 특별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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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하면 주저없이 파블로 피카소를 떠올릴 것이다.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동안 유화,조각을 비롯하여 수 천 편의 작품을 남겼고 또한 그 작품들을 통해서 20세기 현대 미술의 사조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다양한 미술 사조에 포함되면서 그 사조에 어울리는 많은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주변에 붙어있었던 여러 명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미술가로서의 삶 뿐만 아니라 인간 피카소의 면모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워낙 많은 작품을 남긴 탓에 그동안 피카소 관련 책들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존 핀레이의 <피카소 월드>를 본다면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그의 시대별 미술 사조와 작품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설명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그 시대에 걸맞는 작품들의 사진과 존 판레이만의 미술사 설명은 관심만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또다른 피카소의 작품들이 어떤 것이 있나를 찾아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 추가로 피카소의 사생활,개인적인 인간관계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까지도 소개하고 있어서 딱딱한 미술책으로만 느껴졌던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초반에는 그 당시 시대에 맞춘 듯한 느낌의 배경색이 두드러진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창의적이고 독특한 피카소만의 작품들이 탄생하는 걸 보면서 비교적 적은 페이지임에도 연대기를 한 눈에 잘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대표작들인 <아비뇽의 아가씨들>,<게르니카>,<한국에서의 학살> 뿐 아니라 콜라주,유화,파피에 콜레,조각,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자화상 뿐 아니라 고전 명작의 패러디,여인들,심지어 사회문제까지 포함시키는 다양한 주제 선정은 진정으로 피카소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미술가로서 활동했는지,또 얼마나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특히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은 스페인과 한국이 거의 지구 한 바퀴 정도 거리에 떨어져있음에도 스페인 내전처럼 어떤 정치적 상황보다는 보편적인 인류의 고통을 다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온 작품 수는 약 200 여 편에 불과하다. 그가 평생 남긴 작품 1000 여 편에 비하면 겨우 5분의 1 정도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 나온 작품들 중에는 일반 그림이 아닌 조각,전단지,사진 같은 작품들도 상당수 포함된다. 이렇게 방대한 그의 작품들을 겨우 책 한 권으로 표현하기에는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거나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량이 짧은 이 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갤러리에 나온 특별 문서나 사진,삽화 부분은 피카소를 더 많이,더 쉽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 그의 많은 작품들을 소개할 순 없지만 책 한 권만 읽어도 이해가 갈 것이다.
201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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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 <피카소 월드> 서평을 쓰기에 앞서 참 많은 문헌을 찾아보고 동생과도 폭풍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이 피카소라는 사람도 참 어렵다. 그에 대한 전기나 작품집을 출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것을 읽고 평가하기는 참 어렵다. 특히나 이 피카소는 오래도 살았고 다작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보면서 글을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일단 나는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던 당시에 고딕지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을 다녀왔다. 바르셀로나 외에도 파리나 루체른에도 있다. 이것도 물론 그의 작품이 참 많기도 하고 비교적 현대의 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내가 다녀온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의 성장기 시절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피카소의 작품과 다른 작품이 많아서 놀랐다. 그곳에서 본 피카소의 작품은 오히려 렘브란트나 르누아르의 그림같아서 놀랐다. 그것이 바로 밑에 있는 <과학과 자비>라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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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한 벽면에 걸린 굉장히 큰 (내 기준으로) 그림이었는데 솔직히 깜짝 놀랐다. 나는 무지하게도 피카소는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기하학적 느낌이 나는 황당한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고, 이 후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이 사람의 삶의 배경이 어땠기에, 혹은 어떠한 심리적 영향을 받았기에 이렇게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지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책을 함께 보며 대화를 하던 도중 나는 피카소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에 집중했다. 그는 1881년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아흔 두살에 사망했다고 하니 참 시대에 비해 장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고 냉전 시대에도 살아있었으며 그러한 전쟁이 만연한 시대와 이념갈등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았다. 또한 그는 예술계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에 있었는데, 일단 학술적으로 피카소는 그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아가씨들>로 대표되는 큐비즘 기법을 사용하였다.
![]() 나와 동생이 피카소의 미술 기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 그도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고 느끼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합리적이고 불필요한 장식을 없애는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아르데코 양식이 유행을 하였다. 그건 쉽게 말해서 합리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내가 도서 <빈이 사랑한 천재들>에서 봤던 건축가 아돌프 로스 역시 이러한 합리주의에 영향을 받아 '장식은 범죄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기기도 했다.
* [아르데코]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당시 파리에서 피카소・아폴리네르・프루스트・제임스 조이스・장 콕토 등 예술가들이 일으킨 큐비즘 예술 활동에서 영향받은 디자인 운동을 말한다. 정확히는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 장식 미술전(L’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 coratif)이 시작된 해부터 1930년 초엽까지 성행했다. 이 당시 패션계에서는 폴 푸아레와 마들레느 비요네가 기능주의를 주장하여 폴 푸아레는 그때까지의 코르셋에 의한 모래시계 형태의 드레스를 거부하고 부드러운 슬림 스타일의 드레스를 발표했다. 드레스와 신체 움직임의 조화를 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모슬린・크레이프 드 신・실크・벨벳 등 얇고 부드러운 천이 주로 사용되었다. 즉 아르 데코의 디자인이란 유연하면서 유동적인 기능이 높은 것을 동양적인 신비로운 색과 무늬를 넣어 이국적으로 처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위의 그림을 보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 라스 메니나스>라는 그림이 있다. 피카소는 이러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자신의 화풍으로 단순화 시키고 여러 번 새롭게 그려보았다. 이미 그는 어린 시절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그림은 잘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그림, 자신이 그려서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계속해서 찾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시대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했고,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고 전쟁에 반대하기도 하면서 주제가 확실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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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라는 천재 예술가를 이 책 한권으로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인생을 엿보고 작품들을 보면서 참 재미있었다. 위에 황소 가면을 쓴 그의 모습이 보인다. 인터넷에 피카소를 치면 참 재미있는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 아인슈타인 만큼이나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화풍은 여러 번 바뀌었고,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어느 쪽이던 그 사람이 그렸고, 그의 작품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재미있었다.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유럽 근현대의 역사적 변화에도 관심이 생기고 그 혼란한 시대상황에 유행하는 미술 기법의 변화에도 관심이 있었다. 또 한가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유럽 여행을 갔을때 여행 경로에 무리가 있었음에도 바르셀로나를 들렸다 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알아볼수록 재미있는 것이 더 많이 나오고 더 알고 싶은 작가, 피카소. 더 시간이 여유로울 때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 나름 전공자인 동생과 이야기하면서 서평을 쓰기도 했고 많이 검색하고 알아보고 쓰긴 했지만 제대로 내용을 감수받은 것이 아니라, 일부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그저 한 사람의 서평이자 견해일 뿐이니 자료로 쓰이기 어렵습니다^^;; 그점 양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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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대중은 예술가의 삶에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들의 작품 속에 숨겨진 어떤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그것이 그림이라면, 그림 속 인물과의 관계는 무엇이며, 그림이 상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생각을 하며 작품을 만들었을까, 궁금증은 끝이 없다. 평론가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천재 화가 피카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피카소 월드』는 피카소의 제목 그대로 피카소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작품, 친구, 연인, 그의 의식까지 말이다.
이 책은 피카소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미술에 영향을 미친 친구와 협력자를 소개하며 그에 대한 접근으로 피카소를 말한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에서 교사이자 화가인 아버지와 강한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화가였던 아버지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열네 살에 그린 그림은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작품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은 무척 생경하게 다가온다.
<첫 영성체. 1896년>
프랑스 파리에서 본격적인 작업에 몰두한 피카소의 작품에는 당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거나 시작된 것이 많다. 책은 피카소의 작품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떤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피카소의 상황(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거나,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누구와 교류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분명 앙리 마티스의 <삶의 행복>에 보이는 쾌락적 원시주의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시도였다. 이 작품은 일종의 상실한 낙원의 그림, 즉 화려한 색채에 황홀경으로 몸을 뒤틀거나 원시적 자유분방함 속에서 춤을 추는 그룹과 고상한 개인들로 가득한 행복하고 관능적인 회화다.’ 40쪽
피카소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케치를 한 습작을 많이 볼 수 있다. 연대순으로 수록된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파리에서 연극 무대를 맡고 발레가 그의 창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책엔 친구들과 교류한 흔적인 편지나 사진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피카소가 존경한 세잔, 함께 작업한 조르주 브라크, 좋아했던 친구 에릭 사티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전시회나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기록이니 책을 통해서만 피카소를 만나는 이들에게는 반갑다. 회화, 조각, 석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된 점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작은 글씨를 따라 읽는 일은 쉽지 않다.
<피카소와 여동생 롤라. 1888년>
<프랑스와즈의 초상. 1946년>
<피카소가 가비 레스피나스에게 보낸 편지. 1916년>
‘미술가로서 오랜 생애를 거치며 피카소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탐구하였다. 대개 그는 어떤 특별한 의도 없이 그가 존경하고 부러워한 대가들에게 단지 도전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미술을 차용하였다. 이것이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알찬 결실을 맺은 부분일 것이다.’ 176쪽
이 한 권의 책으로 피카소를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피카소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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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전문적이랄것도 없고 그냥 눈에 띄는대로, 좋은 그림이 있으면 좋은대로 그렇게 그림과 화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 가운데 피카소에 관한 작품과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책 제목마저 '피카소 월드'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피카소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피카소와 관련된 책들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이 책은 좀 더 세분하게 연도별로 나눠 그의 작품에 대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짧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아버지의 그림 세계와 피카소에게 강요된듯한 종교적인 주제에 대한 그림의 설명이 있는데, 나로서는 처음보는 피카소의 작품도 많았고 미술사적인 가치와 의미는 모르겠지만 무척 흥미롭기는 하다. 그런 것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비둘기' "피카소는 종이 오리기 작업에 소질이 있었다. 작은 비둘기 형상의 이 이미지는 아마도 가족들을 위한 오락의 의미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작품은 피카소의 유명한 종이와 골판지 구성작품 및 그의 후기 철판조각을 예견한다"(11) 그리고 또 하나 피카소의 비둘기가 나온 작품이 있다. 반전포스터로 한번쯤은 봤을것같은 '평화여 영원하라'는 작품이다. "피카소의 회화 [평화여 영원하라]는 반전주의에 대한 신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신념으로 그는 독일군이 스페인 도시를 폭격한 직후에 유명한 [게르티카]로 평화에 대한 외침을 나타냈다."(144)
사실 피카소의 초현실주의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콜라주, 조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다 총체화되어 있고 실험적이고 흥미롭지 않을수가 없다. 이 책은 '피카소 월드'답게 그의 개인적인 기록과 사진, 드로잉, 작품들이 시대별로 꼼꼼하게 설명되어있고, 작품의 도판도 잘 실려있다. 피카소의 삶과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과 사건들, 그로인해 탄생한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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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예술 세계를 깊이 탐구하다.
피카소 하면 그의 대표작인 작품 중 <게르니카>와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피카소는 현존했던 화가들 중 가장 부와 명성을 드높게 누렸던 작가로 기억된다.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되는 삶을 그는 살았다. 개인적으로 사후에 명성을 드높인 반 고흐의 일생 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자신의 여인들이 바뀜에 따라 화풍의 변신을 꾀한다는 그의 일생이 더 찬란하게 보였다. 닮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고, 그것을 끝까지 누린 예술가. 그의 작품이 도발적이고 창의적이지만 그의 삶도 무척이나 파격적이다. 살아생전 가장 유명 화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기에 명성도, 그에 대한 진실도 왜곡되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피카소 월드>는 그의 삶 속에서도 무엇보다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심화한 책이다. 피카소의 작품 마저도 해석하기 어려웠지만 초기 이후에 그려진 드로잉과 작품 이후 부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그의 회화는 독창적인 것은 물론이고,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그림에 영감을 받아 '피카소화' 시켜 다시 그림을 그림으로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를테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이나 뭉크의 '병실의 죽음'은 물론이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물랭주르에서'등 그가 깊이 영감을 받은 그림은 다시 그의 머릿속을 통해 재생되어 변신한다. 설명을 읽고 있음에도 초기의 화풍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계속 되어왔고 장 콕토나 기욤 아톨리네르의 영향을 통해 또다른 기법으로 피카소는 창조한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그는 영감을 받은 주제로부터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피카소만의 독창적 구조에서 다시 보여지는 점이 놀라웠다. 그의 그림은 전공하지 않는 이에게는 문서를 암호해독 하는 것처럼 어렵다. 현대 미술을 다시 마주하는 느낌. 특히나 그의 예술 세계에서 보여지는 구성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때로는 정치를 풍자하며 그린 그림과 '화가와 그의 모델'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의 작품에서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난해해지는데 특히 초기에는 그가 그림 작품이나 드로잉에서 그가 얼마나 과감하게 색채를 사용하며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초기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많은 인물화와 여인의 모습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연인들을 그린 그림 또한 기억에 남았다. 색을 입힐 때도 그렇지만 드로잉에서 보여지는 섬세하고 힘찬 그의 그림은 회화에서 부터 드로잉, 석판화, 도자기, 조각까지도 모든 영역을 넓히며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 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피카소의 이면과 달리 훨씬 더 광범위하고 찬란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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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핀레이의 <피카소 월드 Picasso s World>(2013)의 서문에는 이러한 말이 적혀져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가 가정 중요한 미술가들 중에서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이 의미를 여러 생각 할 필요 없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하였고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서양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큐비즘(입체주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표작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등이 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으며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 개로 나눌 것 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으며 1905년 피카소는 이른바 '장밋빛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의 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졌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니라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2년의 기간 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많은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태까지의 피카소를 소개할 때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멘트이다. 존 핀레이는 이 책의 목차에서 밝혀 듯이 1881-1097 모더니즘과 <아비늉의 시절들>, 1908-1916 입체주의와 <야생인>, 1917-1928 초현실주의와 드로잉, 조각, 1929-1973 후기 모더니즘과 <게르니카>로 연도와 작품별로 크게 내개로 그의 작품 활동을 소개한다. 우리들은 흔히 가장 많이 보던 그의 작품들은 거의 후기시절로 편중되어 있어 잘못하면 그를 오해하기 쉽도록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그의 모더니즘의 전시회의 피카소를 보게 되면 낯선 그림들과 금방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초기작들은 실상 알고 보면 고전적 문법에 충실한 인상주의였기 때문에 그의 초기작을 보고 나면 그의 후기작을 본 것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이나 놀라운 감흥은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새롭게 대탄생 된 것은 그가 프레임의 차원을 단지 2차원적 평면에만 의존하지 않고 음영감을 주입하여 새로운 단게에 3차원으로 그 시도를 모색했을 때인데. 이러한 경향은 현대 텔레비전의 그 화면의 발전과정과도 유사하다. 지금의 영화관은 웬만한 스펙타클한 영화들은 아이맥스 3차원에 매료되있는 상태인데, 이것은 인간의 감각이 항상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어서 받아들이게 되는 원초적 본증의 기재이다. 극장과 가정에서 피카소가 처음에 시도한 투시기법의 전환과 같은 효과가 지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 피카소는 그 표면의 재현에만 집중했던 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으며 평생을 무정부주의자로 살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의 전통과 가치, 그리고 정치적 태도, 도덕적 엄숙함을 마음껏 조롱하면 그 개념을 파괴하는 데 일생을 보낸 카사노바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랑과 정치적 해석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그가 의도한 목표였으며 세계였으며 철학이었다. 그는 열렬히 사랑병을 앓은 예술가로서 행동하며 그 엔돌핀을 캔버스에다 마음 것 뿌린 행위예술가였다. 이러한 일 때문에 그가 죽은 후 유산배분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그의 작품의 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캔들은 이미 가쉽거리의 단골소재가 되어버렸다. 지금 피카소의 작품을 본다는 의미는 지금 당시의 현재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저울과 같은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의 그림을 보는 자체만으로 무차별적 만족도가 상승할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