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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학동네 여성의날 테스트'라는 책유형 검사를 했다. 책에 관한 심리테스트를 해서 내게 맞는 세계명작을 추천해주는 거였다. 질문 중에 줄거리 위주로 빨리 보느냐, 천천히 정독하느냐 하는 것이 있었다. 난 그때그때 다른데 하며 고민했다. 책을 볼 때 각자 좋아하는 이유가 있고 책을 보는 스타일이 있을거다. 난 잡식성이고 책에 맞춰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김승옥 선생의 글을 보면서 알았다. 난 문장이 좋은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잘 쓴 멋진 문장, 상황을 한 줄에 정리하기도 하고, 유머도 구사하며, 호흡이 느껴지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 넣는, 나를 끌고가는 문장들을 좋아한다. 김승옥 선생의 글은 빠져든다. 1967년작이 이렇게 세련되고 현대적일 수 없다. 완전 훅 빨아들이다니. 이 책에는 '내가 훔친 여름' 장편과 '60년대식' 중편, 두 편이 들어있다. 내가 훔친 여름은, 휴학중인 서울대생 '이창수'에게 동창이라며 능글거리는 '장영일'이 찾아온다. 암에 걸리고 싶다는 요상한 소리를 하며 여행을 떠나자고 유혹하는데 이창수는 홀린듯 그와 함께 무작정 기차를 탄다. 서울대 뱃지를 티나게 만지며 변죽이 좋은 장영일은 혁대에 서울대 뱃지를 잔뜩 붙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수에 도착한 그들은 다방에서 선배로 선배에서 캬바레로 캬바레 사장에서 실내디자인 의뢰까지 삼천포로 한없이 빠진다... 60년대식은, 자살을 계획했던 '도인'은 옛 애인 '애경'을 찾지만 그녀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묘령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도 신박했다. 이야기도 재밌는데 문장은 기가 막히고. '전후 문학의 기적', '살아 있는 신화', '현대문학의 고전', '단편 문학의 전범', '감수성의 혁명', '산문언어의 연금술사' 김승옥 선생에 대한 찬사를 또 한번 적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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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모두다 젊은 시절의 객기스러운 여행과 방랑의식을 한번쯤은 꿈꿔보기도하고, 실제로 친구들과 함께 꿈꿔온 여행을 실현시켜보기도 한다. 그러한 방랑적인, 정해진 계획없이 실행에 옮겨보는것도 젊은시절 한때의 마지막 추억꺼리를 쌓아올리는 시간임에는 틀림없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여행은 왠지 뭔가 부족하고 아쉽기만한 충분하게 마음속에 정처하지 못하고 훗날의 여행을 다시 꿈꾸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한다. 그러한 젊음의 방랑의식이 만들어낸 작품 '내가 훔친 여름'은 바로 우리들의 젊은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훌쩍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 낯선곳에서의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잊을수 없게 만드는 사건들, 이 모든것들은 우리들의 공통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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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산수(傘壽)의 노인이 되었지만 김승옥 하면 개구져 보이는 젊은 시절의 얼굴과 그 젊은이가 자못 진지하고 쓸쓸하게 써 내려갔을 아름답고 세련된 문장들이 떠오른다. 내게 그는 여전히 만 마흔이 되지 않은 청년처럼 느껴지는데, 마치 그가 절필한 시점부터 어딘가에서 냉동되어 여전히 젊은이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에게서 발견하는 청춘의 우울과 비극과 허무는 참으로 달콤한 괴로움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문장이 어쩐지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구원의 희망은 희미하기만 하고 그러나 그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타락을 택하지도 못하는 나의 삶을 묘사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만 치던 창수나 자살을 계획하던 도인 둘 다 계속해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도인은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이 <정열>이라 한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에게 정열이란 늘 우습고 한심스러운 것이었는데 말이다. 삶에의 의지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오늘 지인과 이야기를 하는데 사는 데 이유가 어디 있냐며, 태어났고 죽지 못하니 살 뿐이라고 했다. 비관적인 어조로 한 말은 아니었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늘 삶에 큰 미련이 없다고 믿었다. 삶에 미련을 가지기엔 너무 대충 살았고 스스로의 행복에 대한 책임감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내일 죽는다는 상상을 해 보았더니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인지,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항상성의 반작용인지, 아니면 진짜 삶에 어떤 의욕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이러한 고민과 혼란의 시간도 영혼을 부려 먹는 일의 한 방편이고, 그리하여 어떤 양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위안 삼을 뿐이다. 청춘의 여름이란 불안하고 낭만적이다. 에너지는 넘치는 데 반해 세상은 모순투성이인 한편 정신은 연약하고 허무해서 차라리 무기력과 도피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당연하다 단언할 수도 없고 영 볼썽사나운 것이 사실이지만 창수와 도인은 어쩐지 사랑스럽고 종국에는 다시 삶을 마주하려는 그들의 태도가 반갑기 그지 없었다. 훔친 것이 여자였든 무전여행이었든 신분이었든 그렇게 해서라도 창수는 여름을 이어갔다. 나의 이 우중충한 여름도 욕심낼 만한 계절이었으면 좋으련만! 2019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