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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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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이 보여주는 이명준은 광장을 찾기에 실패한 사람이다. 또 마땅히 찾아야 할 광장을 찾지 못한 우리이기도 하다. 4.19는 새로운 자유의 바람을 서울의 공기에 불어넣었고 그 때 이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분단과 자유, 꿈과 좌절의 그 시대의 사람의 고민과 같은 진동수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광장은 공감이다. 모여서 느끼는 같은 마음, 너도나도 좋은 일을 같이 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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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이 보여주는 이명준은 광장을 찾기에 실패한 사람이다. 또 마땅히 찾아야 할 광장을 찾지 못한 우리이기도 하다. 4.19는 새로운 자유의 바람을 서울의 공기에 불어넣었고 그 때 이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분단과 자유, 꿈과 좌절의 그 시대의 사람의 고민과 같은 진동수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광장은 공감이다. 모여서 느끼는 같은 마음, 너도나도 좋은 일을 같이 해보자고 들뜨는 마음, 우리 따로 다른 골방에 있다 나왔는데 어찌 그리 마음이 척척 맞는가하는 탄성. 그럴줄 알았다,해방은. 그리되었어야 했다, 해방은. 그 광장이 서로를 물고 뜯는 곳이 되었다. 다른 구호를 쓴 플랭카드 아래 적과 백의 스크럼이 서로 원수가 되었다. 광장은 자유다. 옥죄지 않는 공간, 돌아가는 강강수월래처럼 우리가 뛰기에, 같이 웃기에, 웃다 웃다 지쳐 눈물 짓기에 넉넉한 자유였어야 했다. 고문은 大韓 백성의 것이 아니고, 감옥은 더 이상 가둘 사람이 없어야 했다. 이명준은 그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고 새로운 광장을 찾고자 했다. 그는 북에서도 실패했고 스스로 광장을 허무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광장은 공허이다. 말로 채워지는 공간,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이다. 숨쉬는 나의 혈육, 사랑하는 내 겨레 그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야 했을 광장이 말만 가득한 내 겨레를 못박는 광장이 되었다. 이명준이 찾은 대용품은 바다이다. 상호교감하는 살아있는 광장이 아닌, 일방적이고 내적이기만 한 빈 공간, 서로의 자유를 마주보며 자신의 자유를 느끼는 광장이 아닌, 자유의 도피처로서의 내면적 깊이의 바다에 그는 가라앉는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나라, 불쌍한 백성. 박정희, 김일성, 전두환, 김정일. 2002년 시청앞은 붉게 물들었고, 2003년 그곳은 다시 촛불과 인공기 소각과 전경버스로 채워지고, 2004년 찬 공기만이 살벌한 이 백성의 머리위를 허허히 지난다.
s***y 2004.01.16.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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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광장조차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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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기쁨도 잠시였다. 우리는 좌.우의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거대한 이웃나라들의 강요였다. 결국, 전쟁은 터지고, 어느 한쪽에라도 속해야만 했다. 절대 굥유될 수 없었던 사람, 여기 이명준이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 터부로 되어있는 고장 -북"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만 있는 고장 - 남" 어느 땅으로 발을 딛기에 그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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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기쁨도 잠시였다. 우리는 좌.우의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거대한 이웃나라들의 강요였다. 결국, 전쟁은 터지고, 어느 한쪽에라도 속해야만 했다. 절대 굥유될 수 없었던 사람, 여기 이명준이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 터부로 되어있는 고장 -북"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만 있는 고장 - 남" 어느 땅으로 발을 딛기에 그는 너무 "생각"이 많았다.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고 절규하지만, 두 고장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경계인으로 살고자한다. 광장를 꿈꾸지만 밀실에 갇혀있는 그! 사실, 밀실에서 겨우 탈출해도 광장은 없다. 이미 죽은지 오래다. 우리의 광장은 있었기나 했을까?! 읽는내내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광장은 막연한 유토피아나 이상향이 아닐까?! 가장 기본적인 친일청산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진정한 광장을 꿈꾸는건 정말 꿈꾸는 일일까?! 고철처럼 녹슨 심장이 다시 박동할 수 있는 그런 광장이 오기를 바랄뿐이다.
a******5 2004.08.16.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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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밀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사랑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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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이라는 작가는 이념이라는 비교적 예민한 문제에 대해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는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시각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편협성이 일부 깃든 반공적인 시각으로 무작정 보는 것이 아니라, 평행적인 그리고 그럼으로써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념적인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해 내가 거부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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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이라는 작가는 이념이라는 비교적 예민한 문제에 대해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는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시각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편협성이 일부 깃든 반공적인 시각으로 무작정 보는 것이 아니라, 평행적인 그리고 그럼으로써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념적인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해 내가 거부감이 들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또한 그럼으로써 독자에게 열려 있는 시각의 길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한다. 이념적인 문제나 이데올로기 혹은 분단문학을 다루고 있다는 '광장'이라는 작품은 나에게 그것보다는 삶과 사람에 대한 길을 화두로 삼고 있는 작품으로 더 크게 와 닿았다. 물론 이념의 문제가 삶과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있어 이 작품은 이념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기 보다 이명준이라는 한 인간의 관점에서 자신과 사람에 대한 인식을 다룬 작품으로 더 크게 와 닿았다. 작가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이데올로기의 문제 역시 결국에는 이명준이라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결코 삶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작품의 결미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최인훈이라는 작가도 이념 대신에 사랑을 택했다. 작품에서 나타내고 있듯,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광장'과 그에 대비되는 '밀실'을 다루고 있다. 이명준이라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던져 주는 광장은 그에게 견뎌내기 힘든 곳이었다. 광장과 밀실과의 괴리를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낀, 또한 그럼으로써 광장에 속한 다른 어떤 이보다 광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했던 이가 그였다. 작품의 서두에서 보면 이명준이라는 인물은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념이라는 문제엔 오히려 무관심하다거나 소극적인 인물이었다. 작품을 읽어 가면서도 알 수 있듯 그는 광장보다는 자신만의 밀실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인간이다. 실제로도 그는 아버지가 없는 현실 속에서 아버지의 친구인 '변선생' 집에 얹혀 살면서도 전혀 미안하다거나 얹혀 산다는 것에 대해 의식을 하지 않으며 또한 생계를 걱정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즉 사회로 대변되는 광장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에 관해서는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듯 자신만의 밀실에 관심을 두고 살았던 그에게 문득 잊고 살았던 아버지라는 존재에 의한 광장으로의 호출을 받게 된다. 철학이라는 관념의 세계에서 지식인의 평범한 개인적 일상을 경험하며 살아가던 그가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처음으로 광장에 나서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자유'의 남한도 '혁명의 열정'이 있을 듯한 북한도 이명준에게는 광장으로서의 괴리감을 던져 줄 뿐이었다. 그는 광장 속에서 오히려 광장과의 괴리감을 극명하게 느끼게 된다.한 때 그의 모든 것이었던 철학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관념의 탐구도 그가 윤애나 은혜의 사랑 속에서 구하려고 했던 삶의 '기쁨'과 이유를 말해 주지는 못했다. 광장과 밀실 속의 개인의 존재에게 있어서 작가는 무엇보다 '몸의 길'을 통한 사랑의 의무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 이명준이 살아 온 광장은 그 자신에게 부채꼴로 표현된다. 철학도였던 그 자신이 투영되고, 윤애랑 바닷가 모래 분지에게 뒹군 기억들, 그리고 은혜랑 함께 보낸 시간들, 북한에서의 혁명의 정신이 없는 단지 당의 복창만을 외치는 '요령'을 터득한 그를 비웃음으로서 자조하는 순간들, 그렇게 부채의 사북자리를 향해 나아간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그 새로운 길로서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의 길을 택한다. 그것이 자신을 구원해 줄거라 믿는다.('모든 일이 다 잘 될 터였다.') 그러나 제 3국으로 가는 마지막 뱃길에서 갈매기로 표상되는 은혜의 사랑이, '무덤 속에서 몸을 푼 여자의 용기'가 결국 부채의 사북자리까지 몰린 이명준을 구원한다. 남한과 북한의 이념 체제에서 결국 염증을 느끼고 정치적 망명을 택한 이명준은 제 3국을 택함으로써 한국이라는 특수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면 광장으로 인한 밀실 속에서의 괴로움도 벗어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사북에 몰린 이명준을 다시 푸른 광장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것은 은혜의 사랑이었다. 따라서 이명준의 죽음은 은혜에 대한 사랑으로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그것은 감당하지 못한 이념 체제 속에서의 한 지식인의 자살이 아니다. 더 이상 삶의 이유가 없는 이명준에게 어차피 은혜가 없는 삶은 죽음과 같았으리라. 그는 죽음을 택함으로써 결국 이념보다는 은혜와의 사랑을 택한 것이고, 그녀와 딸에 대한 사랑과 연결 되어 있는 바다 속에 몸을 던짐으로써 비로서 평안을 또한 기쁨까지도 얻게 된다. 결미 부분의 이명준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자기가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넉넉한 뱃길에 여태껏 알아 보지 못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까지 한 일을 생각하면, 무엇에 씌웠던 게 틀림없다. 큰일날 뻔했다. 큰 새 작은 새는 좋아서 미칠 듯이, 물 속에 가라앉을 듯, 탁 스치고 지나가는가 하면, 되돌아오면서, 그렇다고 한다. 무덤을 이기고 온, 못 잊을 고운 각시들이, 손짓해 부른다. 내 딸아, 비로서 마음이 놓인다. 옛날, 어느 벌판에서 겪은 신내림이, 문득 떠오른다. 그러자, 언젠가 전에, 이렇게 이 배를 타고 가다가, 그 벌판을 지금처럼 떠올린 일이, 그리고 딸을 부르던 일이, 이렇게 마음이 놓이던 일이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 작품이 사랑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는 어떤 삶도 의미가 없다는 것. "나? 나 같으면 이따위 바보 짓은 안 해. 전쟁 따윈 안 해. 나라면 이런 내각 명령을 내겠어. 무릇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삶을 사랑하는 의무를 진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자들의 스파이다. 누구를 묻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한다. 이렇게 말이야." 그것은 시인의 말이었을지 모르나, 진실이 깃든 말이다. 전쟁에 대한 이명준의 말은 작가가 사랑을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광장과 밀실과의 괴리감으로부터 인간을 지켜 주는 것도, 사북자리에 몰린 인간에게 다시 희망을 던져 주는 것도 사랑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의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p******r 2002.03.0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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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이데올로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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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과도기적 단계에 발을 내딛은 한국사회의 혼란속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실존''의 문제와 현실과의 괴리를 갖고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 그리고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사랑''.. 광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 셋이 가장 핵심적인 틀이 될 것이다. 나는 교양시간에 이것을 주제로 사범대 친구들과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현재 한국사회-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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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과도기적 단계에 발을 내딛은 한국사회의 혼란속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실존''의 문제와 현실과의 괴리를 갖고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 그리고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사랑''.. 광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 셋이 가장 핵심적인 틀이 될 것이다. 나는 교양시간에 이것을 주제로 사범대 친구들과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현재 한국사회-명준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더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지금-의 문제와 제 3의 이대올로기(대안적)를 찾는 토론을 주도했었다. 그 중 어느 학생의 "이념이 한 통치자의 개인적 의도로 이용될 수 있는 것 아니겠냐" 는 의견에 일주일동안 국가론을 뒤지고 다녔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총명하고 가난한 좌파 운동권 출신 교수인 아버지와 오른쪽 날개의 맨 끝 깃털에 계시는 부르주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나의 출생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이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우리가 익히 매체에서 보고듣는 운동권 출신의 저명한 사람들을 알고있고 또한 그들은 현재 신 신분사회 (나는 배운놈, 못 배운놈으로 크게 나눠지는 이 사회구조가 새로운 신분사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의 꼭대기에 있으며 그들은 낡은 점퍼 차림에 운동화로 때로는 수염도 제대로 안 깎고 노동자들의 권익과 이 땅의 힘없고 돈없는 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분들의 자제분들은 수백만원짜리 과외에 비싼 옷을 걸치고 좁고 냄새나는 한국땅에는 더이상 못 있겠다며 물 건너 가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다. 모순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에는 일관된 점이 있다. 그것은 ''좋은것이 좋은 것이다''는 것이다. 현대의 한국사회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이다.) 피라미드 상류층인 자본가와 고학력자는 양심상, 혹은 인정상 아무래도 아랫층을 신경쓸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동정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도 인간인지라 어떻게서든 남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들은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내려가게 되어 또 커다란 피라미드가 형성되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아랫층은 생산자이며 노동자이고, 1차소비자는 그들의 고용주이며, 2차 소비자는 비교적 규모있는 기업, 최종 소비자는 대기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일부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모두가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나 여러분, 불행하게도 돈이 돈을 낳습니다. 요즘 세상에 공부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나는 가까운 일선 교사들로부터 이런말을 자주 들어요. 교과서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좋은 성적을 내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많은 돈을 벌어야 또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와 똑같이 키울 수가 있거든요.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든 공산-사회주의 사회든 똑같다. 혹은 당신이 중립국을 찾아냈다 할 지라도 똑같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심을 가지고 사는 동물이므로 그 욕심에 의해 새로운 피라미드, 먹이사슬의 구조가 생겨날 것이다. 나는 며칠 전, 물론 지금은 헤어지고 없는 사람에게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못배우고 돈없는건 죄악이야."라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끊임없이 못배우고 돈없는 내 친구를 매도하였는데 나는 그의 입을 통해 사회 전반을 형성하고 있는 일반인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교육이 가장 먼저 이데올로기의 시스템을 벗어나 자유로워야 하며 교육을 통해 생산된 학생들이 건강한 의식과 따뜻한 마음과 도덕적으로 올바른 심성을 지녀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를 골고루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몇번씩 했다. 슬프다. 너무. 나는 그저 사막의 모래알갱이 같은 한 개인일 뿐인데. 그렇지만 사회는 항상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고 나 혼자로는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힘이 내게는 없어.. 푸른 광장. 이제는 밀실에서 떠나 자유의 광장으로 가야할 때. 바다는 명준에게 도피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일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아, 그리고. 최인훈 선생님의 문학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그의 작품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고고학'' 인데 여기에 대해 살짝 눈치를 본다면, "고고학은 깨지고 부서진 불완전한 형태의 과거의 유물을 발굴해 그 시대를 유추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 이다. 끊임없는 과거의 재발굴을 통해 우리는 미래로 가는 보다 현명한 길을 얻어야 할 것이다.
f*******e 2006.04.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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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 전율, 전율, 최인훈의 광장,구운몽_뻑보이(ffuckboy
"전율, 전율, 전율, 최인훈의 광장,구운몽_뻑보이(ffuckboy" 내용보기
사기 캐릭이라는 말이 있다. 캐릭터(보통 인물 혹은 게임에서의 유닛)가 주변과 비교하여 너무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능력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크기이다 보니 사기캐릭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이다.   광장을 읽으며, 그리고 읽고나서 이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함께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사기캐릭.   역사상 사기캐
"전율, 전율, 전율, 최인훈의 광장,구운몽_뻑보이(ffuckboy" 내용보기

사기 캐릭이라는 말이 있다.

캐릭터(보통 인물 혹은 게임에서의 유닛)가 주변과 비교하여 너무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능력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크기이다 보니 사기캐릭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이다.

 

광장을 읽으며, 그리고 읽고나서 이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함께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사기캐릭.

 

역사상 사기캐릭은 많다. 모차르트나, 니체, 피카소 등.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장소와 시간은 나의 그것과 너무나 멀리 있기에 그런 느낌이 덜했다.

그냥 책속, TV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내 바로 옆의 사람같지 않은 그 아스라한 비현실감.

 

그런데 최인훈은 아니다. 그는 살아있다. 지금 나와함께 공기를 마시고 있으며, 그가 살았고 또 살아내고 있는 곳이 또한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이 땅과 이 시대에 같은 선조를 가지고 비슷한 겪음을 가지고(그것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살아가는 바로 내 옆에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그가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과 그 능력의 비현실감은 나를 흥분에 몸부림치게 했다. 덜덜떨리는 느낌이 가슴이 벅차고 답답한 그 느낌이 나와 함께했고 지금도 내 곁에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이제야 읽은것에 감사한다. 그나마 책이라도 좀 읽고 생각이라도 좀 할 수 있는 지금 2013년, 서른 여섯의 내게 다가온것에 감사하다. 조금만 앞섰어도 나는 지금 느낀 것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느끼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글을 1960년에 썼다. 지금으로부터 53년전.

그의 나이 스물 다섯에.

 

아아!!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보면서 타올랐던 그 미친 존재감에 대한 시샘과 경외를 보면서도 나는 그네로 부터 너무 멀리 살기에 그것이 뭔지 잘 느끼지 못했는데, 1960년에 25세의 최인훈은 군대에서 이 글을 썼다. 이 엄청나게 아름답고 절절하고 깊은 글을... 그당시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어땠을까? 그당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땠을까? 그당시 먹고사는 문제는 어땠을까? 그당시 군대란 어땠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는 이미 초판 서문에 니체를 논한다.

제대로 된 번역이나 있었을까?

내가 얼마전 읽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작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제대로 된 번역판이 아니던가? 니체 뿐이랴? 그가 글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그 생각의 깊이, 공부의 깊이, 바라봄의 깊이. 그것이 과연 스물다섯의 내가, 아니면 21세기, 지금을 사는 누구라도 감히 흉내나 내고 이해나 할 수 있는 수준이던가?

 

아아, 이 작품은 그정도로 압도적이고 압도적이고 압도적이다.

이 작품은 그정도로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이 작품은 그래서 더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다.

 

내가 한국어를 읽을 수 있어 이 작품을 원어로 본것에 감사하다. '광장'으로 인해 아직 살아계신 '최인훈'으로 인해 정말 미치도록 행복하다.

 

이 작품집은 그가 60년에 쓴 광장과 62년에 쓴 구운몽이 함께 들어있다.

이 책의 출판사와 같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내가 지금 읽은 '최인훈 전집'판이 아닌, 소설 명작선 본도 팔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살펴보니 내용은 1989년 개정된 전집본과 같으나, 본 판에 실린 머리말이나 해설이 없이 1976년 판까지의 서문만 있으므로, 사서 읽으려거든 이 전집판을 읽기 바란다. 

 

저자는 이 '광장'을 1960년 발표한 이후, 새로 출간될 때마다(계기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작품을 고쳐썼다. 문체를 일부 바꾸고, 불명확 했던것들을 고치고,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치는등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에따라 서문도 굉장히 많은데, 작품을 읽기전에 보았던 서문은 읽고 난 후 완전히 다른 무게와 감동으로 다가왔다. 53년전에 나온 이 위대한 작품을 나같은 젊은이가 보기 쉽도록 더욱 쉽고 완벽하게 다듬어낸 작가에게 감사하다.

 

광장이 나같은 일반인과 소통할 수 있는 그의 천재성의 발현이라면, 구운몽은 그 천재의 자기확인 작품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구운몽은 우리같은 놈들은 잘 이해하고 아주 깊이 속속이 느끼기에는 좀 힘든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정말 꿈꾼것 같은 모든것이 뒤죽박죽인...

그래서 일단 구운몽은 이정도로 하고, 광장을 읽으면서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구절을 몇가지 발췌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평을 가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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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몸을 따른다. 몸이 없었던들, 무얼 가지고, 사람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고지라는 소원이, 우상을 만들었다면,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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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에게 만지우고 잡히는 걸 싫어하지만, 애인한테만은 다르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데 윤애는 곧잘 그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럴 때 그는 창피스러웠다. 그녀가 고분고분하면 좋아라 하고, 마다하면 비로소, 그녀도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아니고, '사람'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과 부딪친 것을 창피를 당했다고 여겼다니, 남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살을 섞는 데서 그녀가 어느 만큼한 즐거움을 가지는지, 그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명준은 그 일을 실존 연습이라 불렀으나 그가 보건데 그녀의 답안은 썩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또는 그의 출제 방법이 나빴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없으면 몸은 빈집인 모양이지. 지금에 와서는 두 사람의 잘못을 가릴래야 가릴 수 없다. 다만, 어떤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알았달 뿐 아니라, 서로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면, 모든 허물은 덮어지고도 남는 것이 아니냐고 달래보는 길밖에 없다.

더구나 이미 더 이어질 길이 막혀버린 지난 일이고 보면, 피고가 유리한 쪽으로 풀이하는 것이 어느 편을 위해서나 좋을 일이다. 그녀와 만나고 헤어지면 으레껏 사로잡히게 되던, 죄지었다는 느낌. 어찌 보면 그것은 커다란 오만이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이긴 사람의 느낌이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이나 해칠 수 있을까. 남의 앞길을 끝판으로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죄악감이라면, 그는 하느님의 자리를 도둑질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사람의 팔자를 망치지 못한다. 다만 자기의 앞길을 망칠 뿐이다. 어떤 뜻에서건 나와의 사귐은, 윤애에게 한 가지 겪음이었을 거다. 그 겪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얕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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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본놈들 밑에서 벼슬을 지내고 아버지 같은 애국자를 잡아죽이던 놈이 무슨 국장, 무슨 처장, 무슨 청장 자리에 앉아서 인민들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사회는 백귀 야행하는 도시 알 수 없는 난장판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섹스와 재즈와 그림 속의 미국 여배우의 젖가슴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재빨리 외국인을 친지로 삼아서 외국으로 내빼고 있었습니다.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그 험한 사회의 혼탁에서 잠시 몸을 빼고, 아른다운 아내와 쪼들리지 않을 만큼 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간판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 외국으로 간 것입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실팍한 뼈대를 이루는, 약삭빠른 수재들 말입니다. 이도저도 못 하는 우리 같은 것은, 철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19세기 구라파의 찬란한 옛날 얘기책을 뒤적이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사람이 남조선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심장의 소유자들입니다. 젊은 사람치고,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량의 정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남조선이라는 이상한, 참으로 이상한 풍토 속에서는 움직일 자리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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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껏해야 '일찍이 위대한 레닌 동무는 말하기를.....' '일찍이 위대한 스탈린 동무는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동무들에 의하여, 일찍이 말해져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제 아무도 위대해질 수 없습니다. 아 이 무슨 짓입니까?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된 겁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현실의 모든 경우에 한결같이 적용되는 단 한 가지의 처방을 내린 것으로 해석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란, 정확하게는, 그가 자기 시대를 분석한 그의 저술 속에서 쓴, 방법론을 가리켜야 합니다. 이론 속에 엉켜 있는 방법과 정책이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든 마찬가집니다. 정책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창시자조차도 반드시는 정확하달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계승자인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해석권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동무들도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었을 리가 없고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어떤 결정된 진리만을 믿은 게 아니고 진리는 더 고치는 것이 용서 안 될 만큼까지 최종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태도까지 믿은 것입니다. 수많은 고결한 심장의 소유자들이, 이런 공화국을 만들려고, 중세기의 순교자들보다 더 거룩한 죽음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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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욕망'이 터부로 되어 있는 고장. 북조선 사회에 무겁게 덮인 공기는 바로 이 터부의 구름이 시키는 노릇이었다. 인민이 주인이라고 멍에를 씌우고, 주인이 제 일하는 데 몸을 아끼느냐고 채찍질하면, 팔자가 기박하다 못해 주인까지 돼버린 소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걸음을 떼어놓는다. '일등을 해도 상품은 없다'는 데야 누가 뛰려고 할까? 당이 뛰라고 하니까 뛰긴 해도 그저 그만하게 뛰는 체하는 것뿐이었다. 사람이 살다가 으뜸 그럴듯하게 그려낸 꿈이, 어쩌다 이런 도깨비놀음이 됐는지 아직도, 아무도 갈피를 잡지 못해서, 행여 내일 아침이면 이 멍에가 도깨비 방망이로 둔갑할까 기다리면서. 광장에는 꼭두각시뿐 사람은 없었다.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건네려고 가까이 가면, 깎아놓은 장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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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은, 대들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죽였다. 그를 향하고 있는 네 개의 얼굴. 그것은 네 개의 증오였다. 잘잘못간에 한번 윗사람이 말을 냈으면, 무릎 꿇고 머리 숙이기를 윽박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짜증끝에 성낸, 미움에 일그러진 사디스트의 얼굴이었다. 명준은 문득 제가 가져야 할 몸가짐을 알았다. 빌자, 덮어놓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자. 그의 생각은 옳았다. 모임은 거기서 10분 만에 끝났다. 명준은 사무친 낯빛을 하고, 장황한 인용을 해가며, 허물을 씻고 당과 정부가 바라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했다. 지친 안도감과 승리의 빛으로 바뀌어가는 네 사람 선배 당원의 낯빛이 나타내는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명준은, 어떤 그럴 수 없이 값진 '요령'을 깨달은 것을 알았다. 슬픈 깨달음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슬기였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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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네."

고즈넉이 네 하는 이 짐승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밖에서 졌기 때문에, 은혜에게 이처럼 매달리는 걸까. 이긴 시간에도 남자가 이토록 사무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없을 테지. 졌을 때만 돌아와서 기대는 곳. 기대서 우는 곳. 철학을 믿었을 때, 그녀들에게 등한했었다. 사회 개조의 역사 속에 새로운 삶의 보람을 걸어보려던 월북 직후의 나날, 윤애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나한테 무엇이 남았나? 나에게 남은 진리는 은혜의 몸뚱어리뿐. 길은 가까운 데 있다?

명준은 거칠게 그녀를 껴안았다. 그의 품속에서 그녀는 눈을감았다.

늘 그랬다. 이 여자가, 인민을 위한 '예술 일꾼'이며, 인류의 역사를 뜯어고치는 거창한 대열에 발맞춰나가는 '여성 투사'라? 좋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은혜다. 내 거다. 그 밖에 그녀가 되고 싶어하는 여러 것일 수 있다. 그는 그녀의 뺨에 자기의 그것을 비볐다. 도톰한 입술을 깨물어 열고 부드러운 혀를 씹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방안은 어두웠다. 그는 한 팔로 그녀를 받쳐안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만져본다. 목을 더듬었다. 가슴과 허리를 짚어 내려갔다. 벅찬 깨달음을 준 다리를 쓸었다. 몸의 마디마디 그 자리를 틀림없이 알고 싶었다. 움직일 수 없이 자기에게 기대는 따뜻한 벽을 손으로 어루만져, 벽돌 하나 하나를 다짐해보고 싶었다. 손이 떨어지면 그것들은 자기한테서 떠날 것만 같았다. 순례자가 일생에 몇 번이고 성지를 찾아 의심을 죽이고 믿음을 다짐하듯이, 손에 닿고 만져지는 참에만 진리는 미더웠다. 남자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진리는, 한 여자의 몸뚱어리가 차지하는 부피쯤에 있는 것인가. 모든 우상은 보이지 않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의 약함때문에 태어난 것. 보이지 않는 것은 나도 믿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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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려오는 사람들을 고문하는 데도 지쳐버린 때였다. 처음에는 사람의 몸을 짓밟는 악한 기쁨이 있었다. 자기 팔다리의 힘찬 움직임이, 다른 한 사람 위에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은, 이명준에게 몸의 길을 믿게 해주었다. 그의 팔에 감긴 띠가 그들의 등에 떨어질 때, 희생자들은 에누리없이 곧이곧은 외마디 소리를 울려주었다. 그는 팔을 놀리면서 희생자들이 그들의 한창때에 어떠했을까를 그려보았다. 흰 칼라가 말쑥한 양복에 윤나는 구두를 신고 돌아다녔을 거다. 그 치사한 악덕으로 번 그들의 돈으로, 만화보다 더 초라한 조국에서, 자기들만은 서양 사람들의 자리에서 사는 듯한 꿈속에서 살아온 그들일 것이었다. 백 사람이 나무 뿌리를 먹는 갚음으로만 한 사람이 파리제 화장수를 쓸 수 있는 슬픈 틀 속에서, 아무 뉘우침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란 걸 떠올리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제학의 추상적인 법칙을, 이명준 자신의 주체적 증오로 옮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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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기까지 끝내 배우지 못한 무엇인가를 S서 건물 지하실에서 배우려 했다. 역사를 따라잡기 위해, 잡혀온 인간들이 밉상스런 인민의 적이라는 느낌을 자기 속에 키우기 위해서, 이명준은 가죽띠를 휘둘렀다. 희생자들이 나타내는 되받음도 가지가지였다. 의젓하려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는 사람도 있었다. 비굴한 사설을 늘어놓으며, 매 한 번마다 부서지는 소리를 내는 자. 고문을 하는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크기 위해서 아리송한 눈의 연기를 하는 지능족. 아픔을 받아들이는 나름의 모양을 치르면서, 그는 점점 시들해갔다. 태식을 고문했을 때 느꼈던 그런 싱싱한 죄악의 기쁨은 아주 짧은 동안에 사라져갔다. 덮개를 씌운 전등에서 비치는 동그란 불빛 아래, 그가 내리치는 가죽띠에 몸부림치는 몸은, 인민의 적이니, 증오할 자본주의자니, 민족반역자니, 간첩이니, 그런 버젓한 것이 아니었다. 옷을 걸치고, 말을 하는, 젖먹이 짐승의 하나일 뿐이었다. 처음에 그들이 보여주는 괴로움의 흉내는 곧이곧은 걸로 비쳤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바랄 수 있는, 가장 알짜 반응인 것 같더니.

그는 끝내, 윤애의 몸에서 똑똑한 응답을 받아보지 못했었다. 깡그리 그녀를 차지했다고 믿기가 무섭게 그녀가 보이곤 하던, 알 수 없는 버팀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물건을 만지려고 할 때처럼, 밑창 없는 안타까운 허망 깊이 그를 차넣었었다. 사람의 사귐이 몸의 그것조차도 얼마나 믿지 못할 길인가를 말해주었다.

고문은 그렇지 않다고 처음에 생각한 것이다. 그가 준 팔의 힘에 꼭 맞먹는 외마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믿은 것은, 그러나 잘못이었다. 엄살을 부리는 사람이 있었고, 참아내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셈을 헛갈리게 했다. 다섯을 줬는데 여섯을 받는 사람과, 넷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어긋남을 줄이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매를 더하는 것, 꾀죄죄한 체면을 차릴 수 없도록 녹초를 만들어버리는 길이었으나, 그 길은 길이자, 벼랑 끝이었다. 저쪽을 없애버리고는 내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분별이 없어져버린 몸은 어울릴 값어치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함부로 지르는 허소리를 참다운 항복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의식을 되찾고 숨을 돌리자마자, 그들은 또다시 점잔을 부리려 했고, 또 녹초를 만들면 의식을 잃은 살덩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명준은, 고문에서도 졌다. 그리고 그 무렵, '역사'를 앞지르는가 싶던 '어른'들의 '밖'의 움직임도 '역사'의 느린 걸음걸이에 져가고 있었다.

 

현대 무기라는 매개물은, 싸움터에서조차 몸과 몸의 만남을 가로막는다. 더구나 소총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를 두고 포격만 해대는 전쟁은 나쁜 장난 같았다. 지지는 햇볕 아래 멀리 울리는 포소리를 들으며 참호에 서 있으면, 이 거창한 죽임의 마당이, 문득 자기와는 동떨어진 먼 이야기인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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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주세요."

S서 이층에서 윤애도 그더러 용서해달라고 했다. 은혜도 지금 용서를 빈다. 윤애와 은혜의 똑같은 말은, 뜻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윤애의 말은 악마에게 빌붙는 천사의 그것이었다. 은혜의 말은 애인 앞에 뉘우치는 죄지은 여자의 그것이다. 하지만 난 윤애에게 끝내, 악마로 대하지는 못했지. 놓아보낸 건 잘했어. 태식을 도망시킨 것도 잘했어. 은인의 아들을 놓아보낸 것이라 생각지 말자. 윤애의 남편을 살려준 것이다. 윤애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설령 나타난다 하더라도 다시는 윤애일 수 없다. 그녀 말대로 사정을 알았으니까. 이렇게 은혜가 다시 내앞에 있잖아? 게다가 용서까지 빌잖아? 하구말구. 용서하구말구. 무얼 용서하라는지. 용서고 뭐고 할 만한 일인지는 몰라도 은혜, 네가 용서하라니 용서하구말구. 난 이제 다른 일에는 아무 자신이 없어도 용서하는 재주만은 자신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아마 전생에 퍽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 거다. 그러니 그토록 용서하라고 외쳤지.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있거든 이 여자를 돌로 치라 했을 때, 분명히 저도 넣어서 한 말이야. 예수처럼 훌륭하진 못해도 너 하나는 용서하겠어. 그는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추슬러올리며, 그녀의 귀에 입을 댔다.

"사랑해."

"모스크바에서도 아무 재미 없었어요. 잘못했어요. 전쟁으로 귀국한 후 모집이 있었을 때, 전 간호병으로 제일 먼저 지원했어요. 꼭 뵙고 용설 빌고 싶었어요. 이젠 죽어도 좋아요. 잘못했어요. 제가 미우시더라도 용서해 주세요."

"사랑해."

"용서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사랑한다는 말은, 용서한다는 말을 열 번 거듭한 거나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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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멎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명준은 깊은 구렁에 빠졌다. 북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없었다. 아버지가 전쟁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 수는 없었으나, 설령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 한 가지만으로 북을 택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살 테지. 효도같은 걸 하기엔, 현실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리고 북녘 같은 데서 살붙이란 무엇이던가. 그러고 보면, 이제 그가 북으로 가야 할 아무 까닭도 없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은혜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버린 지금에. 믿음 없이 절하는 것이 괴롭듯이,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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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의 뜰 필사가 끝나면, 광장을 필사할 생각이다.

나에게 이렇게나 큰 감동을 준 작가와 이 작품에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를 드린다.

 

 

 

 

 

 

 

 

 

 

 

f******y 2013.11.1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밀실에서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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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념이며 사회며.. 다 관심없어한다. 그 보다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게임이며 영화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생각하게 하는 책보다는 환타지 소설이 이슈가된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도 책이나 사상이 주제가 되기는 쉽지 않은세상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최인훈의 광장은 40년 이상의 나이먹음에도 불구 하고 나에겐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명준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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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념이며 사회며.. 다 관심없어한다. 그 보다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게임이며 영화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생각하게 하는 책보다는 환타지 소설이 이슈가된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도 책이나 사상이 주제가 되기는 쉽지 않은세상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최인훈의 광장은 40년 이상의 나이먹음에도 불구 하고 나에겐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명준은 이렇게 넓은 지구에도 어느 곳하나 발붙일 데가 없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혼란스런 이 곳을 영영 떠나버리고 싶었을 그 기분을 나는 안다. 조금만 썩은 부분을 도려내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사과가 깍다보니 속안이 온통골아있어서 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지구를 버릴 순 없고 나를 버릴 수 밖에... 목숨이 붙어있는 것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 아닌가. 어떤땐 모든 걸 버릴 때에야 얻어지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밀실에서의 탈출이야 말로 ‘나’를 내던지던 그 순간에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란 걸 작가는 말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비린내 나는 살갗 검은 여자들이, 꼬챙이로 고기를 꿰어 광주리에 옮기면서, 목쉰소리로 셈을 외친다. 한나히요, 두흘이요, 서어히요, 가락을 붙인 셈 소리는 성의 구별을 잊게 한다. 저 여자들도 삶의 뜻을 가끔 생각할까? 아마 결코 않는다. 철학은 한가에서 온다고, 무엇에서 비롯했건 교육받은 숱한 사람들에게, 생각한다는 버릇이 붙어버렸다는 일은 물리지 못한다. 아가미처럼 이루어진, 이 '생각'이라는 가닥을 떼어버리면, 그들은 죽는다. 아가미를 떼지 않고 매듭을 푸는 길만이, 사실에 맞는 처방이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YES마니아 : 로얄 l****0 2002.07.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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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내용보기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광장의 첫 문장입니다. 이토록 매혹적인 첫 문장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토록 많은 쉼표가 들어가 있는 문장도 보기 어렵습니다. 광장의 첫페이지는 숨을 쉬게 만듭니다. 쉼표가 있을 적마다 숨 쉬고 템포를 늦추게 만든답니다. 요새도 쉼표를 쓰던가 하는 의아심이 생길 정도로 첫 쪽의 쉼표는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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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광장의 첫 문장입니다. 이토록 매혹적인 첫 문장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토록 많은 쉼표가 들어가 있는 문장도 보기 어렵습니다. 광장의 첫페이지는 숨을 쉬게 만듭니다. 쉼표가 있을 적마다 숨 쉬고 템포를 늦추게 만든답니다. 요새도 쉼표를 쓰던가 하는 의아심이 생길 정도로 첫 쪽의 쉼표는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쉼표를 건너뛰면 숨이 막힐 것 같았지요. 하여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걸렸답니다. 초판은 1976년에 발행했으니 제가 7살때군요.

 

동안 심심찮게 '광장'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번도 읽지 못했어요. 전에 '화두'를 읽을 적에 아 '광장'을 읽어야지 했었는데 그러고 말았답니다. 맨 먼저 광장을 읽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빨려들어갈 듯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솔직히 그닥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책을 재미로 읽거든요.

 

2차 대전이 끝나고 남북은 어설프게 분단되어 있었죠. 어설프다는 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 남으로든 북으로든 갈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명준은 명문대 법대생입니다.(저자가 그렇죠) 그의 아버지는 북쪽에서 꽤 고위층인가 봅니다. 일제시대 순경 놈들이 해방후에도 여전히 순경이죠.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간첩죄를 추궁받다가 북으로 넘어가죠. 북에서 기자를 하는데 남쪽이든 북쪽이든 이 희멀건할 것 같은 청년에게는 절망 뿐이죠. 그래서 남쪽에서도 여대생을 좋아했고 북쪽에서도 발레리나를 좋아합니다. (여대생과 발레리라라니?)

 

한국전쟁이 터지고 명준은 참전했다 포로가 되어 거제도에 수용됩니다. 종전 후 포로들에게는 남쪽과 북쪽에서의 치열한 구애작전이 펼쳐집니다. 익히 알고 있는 거제도에서의 포로들간의 싸움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에서 절망한 명준은 제3국행을 택하죠. 제3국행 중 바다에서 투신해서 죽습니다. 뭐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체로 명준의 치밀한 심리묘사에 치중해 있습니다.

 

전 평론을 읽지 않은데 표4에 김현의 평론이 발문으로 나와 있었습다. 젊은 사람이 할 만한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사랑이 없다면 풍문과 이데올로기만이 남는다고. 단지 사랑만이 인간을 그 자체로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고. 전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명준이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하게 할 수 없는 현실, 꿈이나 이상이나 인류를 위한 희생 같은 모든 걸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릴 현실에 대한 도피였을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라~ 사랑이나 하지 뭐. 이런 식이었죠. 왜 전 다르게 읽히는 걸까요? 아마 명준의 여자에 대한 인식의 낙후성 때문일거예요. 거기서 여자들은 별 생각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사랑이라고 한다면 명준이 사랑을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상대역이 자신과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혹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대답해 주시겠어요?

n****5 2003.12.10.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내용보기
광장과 동굴. 무슨 관계가 있길래 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떠오르는 것일까. 그저 탁 트인, 밀폐된 느낌상의 대조적 나열에 불과한 것일 뿐인데... 나에겐 광장이 없다. 내가 내 마음을 툭 터놓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솔직해 본 적도, 내 생각을 말해본 적도 억의 없다. 내 스스로가 광장에 나서길 피하는 건지, 내가 엉겨붙을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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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동굴. 무슨 관계가 있길래 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떠오르는 것일까. 그저 탁 트인, 밀폐된 느낌상의 대조적 나열에 불과한 것일 뿐인데... 나에겐 광장이 없다. 내가 내 마음을 툭 터놓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솔직해 본 적도, 내 생각을 말해본 적도 억의 없다. 내 스스로가 광장에 나서길 피하는 건지, 내가 엉겨붙을 만한 그런 광장이 이젠 없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무엇때문에 난 내속에 웅크려서 광장에 나서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나이를 먹을수록 외로움은 더해지는 것같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허전하고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땐 내가 놀러갈 수 있는 광장이 많았던 것 같다. 순수함과 자유로움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그 공간들. 이젠 추억 속에서 아련히 떠오를 뿐이다. 지금은 나홀로 외톨이가 되어 고독감에 젖어 슬픈 흐느낌만을 연신 낼 뿐이다. 플라톤은 동굴은 선입견, 편견으로 얼룩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동굴 소의 사람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자신이 제일 잘난 줄 알고 ,자기 좋을 대로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동굴 안의 폐쇄된 주관성에서 벗어나 광장의 개방된 객관성 속에서 인간은 인간다워지는 것 같다. 동굴 안에 자기가 간직하고픈 소중한 것들이 많겠지만, 언제까지나 그 속에서 안주할 수 만은 없기 때문에. 짐승이 아닌 인간에게는 광장이 필요하다. 난 내 이기심때문에 광장이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한참동안 빛을 보지 못해 눈이 부시다. 그래, 이젠 나아가자, 그리고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광장은 언제나 나한테 문을 열어놓았으니까. 난 오늘 광장에로의 두려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그렇게 보면 햇빛에 반짝이는 구름과, 바다와 뫼, 하늘, 항구에 들락날락하는 배들이며, 기차와 궤도, 나라와 빌딩 모조리, 그 어떤 우람한 외로움이 던지는 그림자가 아닐까. 커다란 외로움이 던지는, 이 누리는 그 큰 외로움의 몸일 거야. 그 몸이 늙어서, 더는 그 큰 외로움의 바람을 짊어지지 못할때, 그는 뱄던 외로움의 씨를 낳지 .그래서 삶이 태어난 거야. 삶이란, 잊어버린다는 일을 배우지 못한 외로움의 아들.
s****i 2001.01.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광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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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그리고 또 하나의 나라 북한을 선택하지 못하고 제3국을 선택했던 명준... 개인적 삶의 공간. 즉, 폐쇄된 밀실만 찾았던 명준... 그가 원했던 이 모든 것이 인도로 향하면서 맞이했던 죽음이었을까? 사실 광장을 읽으면서 상당한 이해와 인내력이 필요했으며 다소 따분하기까지 하였다. 계속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광장이라하며 또 소설내에서 명준이 철학을 전공하는 이유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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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그리고 또 하나의 나라 북한을 선택하지 못하고 제3국을 선택했던 명준... 개인적 삶의 공간. 즉, 폐쇄된 밀실만 찾았던 명준... 그가 원했던 이 모든 것이 인도로 향하면서 맞이했던 죽음이었을까? 사실 광장을 읽으면서 상당한 이해와 인내력이 필요했으며 다소 따분하기까지 하였다. 계속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광장이라하며 또 소설내에서 명준이 철학을 전공하는 이유로 철학적인 말까지 덧붙여 있어서 소설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었다.

 

작가 최인훈은 북한에 대해서 '혁명은 없고 혁명의 모방만 있으며 인민은 없고 석상만 있는곳'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이런 표현이 북한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작가가 이명준이라는 사람을 만들어내서 남한과 북한 두 나라를 모두 버리고 제3국을 선택하게 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광장을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쓰고 있을때 남한과 북한을 '분리된 두 나라'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에대해 가슴이 아팠다.

 

광장에서도 명준이 남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두 나라를 서로 비교해보면 다른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남한은 서구적 자유로 가득차서 진실한 광장은 없고 밀실만 존재하는 부조리한 광장이었으며 북한은 남한처럼 밀실은 인정되지않고 허위로 가득찬 광장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명준은 두 나라 모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제 3국을 택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그렇다면 광장을 쓴 작가 최인훈은 명준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그렇다. 난 이책에서 작가가 명준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에게 암시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명준이 남한과 북한 두 나라 중에 한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제3국을 택했다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한 철학자가 조국의 문제에 대해서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도 없었으며 철학자가 말하는 소위 썩어빠진 광장이라고 말하는 곳은 개선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피하기만 했기 때문에 제 3국을 택한 답답한 철학자에게는 죽음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제 3국을 선택함으로서 인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갈매기 2마리를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는데 그 바다는 푸르고 싱싱한 광장을 말하는 것일까? 또, 갈매기 2마리는 전쟁에서 전사하고 없는 옛사랑 은혜와 그의 자식이 갈매기 2마리로 부활한 사랑의 결정체라 믿고 바다에 뛰어들어 부조리 없는 바다의 광장을 택한 것일까?

 

명준은 남한과 북한의 소위 말하는 썩어빠진 광장으로 인해서 사회가 오염됐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랑에 너무 의지하고 믿었던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배신도 당하고 다시 그 사랑을 그리워도 했다. 명준이 여자와 사랑하는 것에만 아주 적극적으로 나갔는데 그 사랑에 대한 적극성을 명준이 비판하는 남한과 북한의 광장에 조금만 보탬을 했더라면 제 3국을 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책을 읽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낀점을 쓰면서 책에 대한 내용과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비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의 광장 모습을 그려보았다.

 

일기예보를 해줄 때 한반도 반을 딱 잘라서 남한의 날씨만 보도 해주고 북한의 날씨는 보도를 못해주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고 가슴도 참 많이 씁쓸하였다.

 

비록 아직까지도 한나라로 합쳐지지 못하고 갈라져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는 떨어지지 못하도록 강력 접착제로 착! 붙여질 것이다.

q****9 2007.12.12.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영원한 고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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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C느낌표 선정도서'로 "마당 깊은 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처음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을 만나게 되었다. 목록을 보니 너무나도 읽고 싶었던 작품들이 눈에 띄어 무척이나 기뻤던 기억이 있다. 내심 '모두 읽어보리라' 결심한 것 도 그때다. '마당 깊은 집' 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 나는 나의 결심을 흐지부지 잊은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와우북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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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C느낌표 선정도서'로 "마당 깊은 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처음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을 만나게 되었다. 목록을 보니 너무나도 읽고 싶었던 작품들이 눈에 띄어 무척이나 기뻤던 기억이 있다. 내심 '모두 읽어보리라' 결심한 것 도 그때다. '마당 깊은 집' 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 나는 나의 결심을 흐지부지 잊은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와우북에 들렀다가 '금주의 시리즈'에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이 소개된 것을 보고 나의 결심을 상기하게 되었다. 나는 즉시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의 1권인 '최인훈'의 "광장/구운몽"을 주문하게 되었다. 또한 "광장"이란 작품은 고교시절 교과서에서도 접한 작품이어서 친근감과 함께, 더 큰 호기심으로 배송 되기만을 기다렸다. 교과서에서 접한 작품인 만큼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지루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내용을 아는 영화는 감동이 덜하지 않는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걱정은 괜한 것이 되었다. 휘어져 사뿐히 내려오다가 갑자기 솟구치는 듯한 문체, 현실과 회상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 나에겐 어려울 수도 있었을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머리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표현과 구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작가 '최인훈'에 대한 존경심을 나도 모르게 자아내게 했다. 광장은 주인공 '이명훈'이 중립국을 향해 가는 배안 에서 시작된다.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남한에 남겨진 명훈은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결국 윤애와의 사랑을 접고 월북하게 되다. 그런데 북한에서의 생활도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여기서 작가는 남한과 북한의 사회상을 "광장"과 "밀실"이라는 비유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남한은 "광장은 없고 밀실만 존재하는 사회"로 북한은 "밀실은 없고 광장만 존재하는 사회"로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의 사회상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을 이루는 또 하나의 큰 뼈대는 주인공 명훈이 나눈 사랑 이야기 (love story)다. 결국 명훈을 자살로 이끄는 결정적 요소로도 작용하게 된다. 사상과 마찬가지로 명훈은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사랑을 하게 되는데, 작가는 남한에서 명훈과 사랑한 '윤애'보다는 북한에서, 그리고 6.25전쟁 중에도 함께 한, 결국 전사하고 마는 '은혜'란 인물에 더욱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뒤에 실려 있는 '해설'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이 광장이란 작품은 처음 쓰여진 후 많은 수정을 거치게 되는 데, 처음에는 작가가 이 두 여인에 대한 비중을 공평하게 둔 것 같다. 왜냐하면 명훈을 죽음으로 이끄는 상징적 존재인 '두 마리의 갈매기'를 처음에는 '윤애와 은혜'로 묘사하다가 수정된 후에는 '은혜와 은혜의 뱃속에 있던 태아(딸)'로 그 의미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결국 안식하고자 했던 사상과 사랑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명훈은 이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되며, 중립국을 선택하게 된다. 중립국을 향해 가는 배 안에서 그는 선장을 통해 헤어진 연인이 갈매기가 되어 따라오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며, 줄곧 자신의 배를 따라오던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며, 은혜와 자신의 딸이라 생각하고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어찌 보면 단순할 수도 있는 내용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이 곧 작가의 능력, 또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k****k 2003.12.0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