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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돌 하나의 무덤일지라도...
"비록 돌 하나의 무덤일지라도..." 내용보기
예전에 TV에서 우토로 마을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우토로 마을은 인근의 군 공항 건설을 위해 강제징용된 조선인들 1,300명이 온종일 강제 노동으로 혹사당하던 중에 자연스레 형성되어진 마을이었다. 하지만 패망 후 공항 건설은 중단되고 그 동안의 노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조선인들은 한 푼도 없는 처지인지라 전쟁이 끝나서도 그 곳을 떠날 수 없었고
"비록 돌 하나의 무덤일지라도..." 내용보기




 




 

  예전에 TV에서 우토로 마을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우토로 마을은 인근의 군 공항 건설을 위해 강제징용된 조선인들 1,300명이 온종일 강제 노동으로 혹사당하던 중에 자연스레 형성되어진 마을이었다. 하지만 패망 후 공항 건설은 중단되고 그 동안의 노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조선인들은 한 푼도 없는 처지인지라 전쟁이 끝나서도 그 곳을 떠날 수 없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선인의 마을로 자리잡게 도었다. 그러다가 그 마을 전체의 부지가 한 부동산 회사로 넘어가면서 회사가 거기 사는 마을 주민 모두에게 강제퇴거 명령을 내렸고 그로 발생한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애환과 그 도움의 호소를 다루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수 년에 걸친 가혹한 강제 노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그들을 거기다 그렇게 냉혹하게 몰아내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멀쩡히 우리나라 땅에 잘 살다가 어느 순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3~4백 미터 지하의 갱도에서 석탄을 캐거나 때로는 단바의 광산에서 처럼 겨우 30CM의 좁은 갱도에 몸을 집어 넣고 망간을 캐거나 우토로 처럼 공항을 건설하거나 일본 자국민에게는 시키지 않을 그런 고되고 위험한 막노동일을 하면서 강제징용 당한 우리 조선인들이 흘린 눈물과 피가 저 일본 땅에 참으로 가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기도 이를데 없었다. 그러다 그 후, 단바 망간 기념관에 대한 소식을 TV에서 또 보게 되었고, 그 때 나는 그 고통의 역사적 현장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 일본에 간다면 나 역시 저렇게 고통의 현장들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역사가 새겨놓은 상흔들을 겪고 기억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일단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거기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내 힘으로선 벅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적절한 도움을 얻을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차에, 이렇게 사진작가 이재갑의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그야말로 후쿠오카로 부터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 곳곳에 아로 새겨진 강제징용당한 우리 조선인들의 상처와 애환의 현장을 다루고 있다. 비록 그 대부분 일본이나 우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그저 무관심과 망각 속에 버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 속 저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들이 캐냈던 석탄 더미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처럼 절대 지워지지 않을 뚜렷한 역사적 존재로 남아있는 그 현장을 말이다.





  그 대부분의 현장은 "우리의 언어는 아우슈비츠가 어떤 장소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조너선 웨버가 말했던 것 처럼 언어화가 불가능한 그저 망연히 전해져오는 그 곳에 깃든 상처와 고통에 오롯이 젖을 수 밖에 없는, 리오타르가 말했던 바와 같이, '트라우마'의 공간들이다. 지은이는 답사를 통해 바로 이러한 트라우마의 공간에게 그동안 잃어버렸던, 그렇게 지워진 목소리들을 다시금 찾아주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진을 하나의 업으로 삼게 된 것은 다름아닌 '우리 이웃들의 삶이 때로는 우리 삶을 지탱한다'는 말이 내포하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는데 있었는데 작업이 치열해질 수록 바로 그 지탱하는 이웃들의 삶이 무엇보다 역사적인 것이며 오히려 한국전쟁과 일본 강점기 처럼 무엇보다 거센 폭력에 노출되고 그로인한 아픔과 상처로 점철된 역사속의 이웃들이 현재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우리들의 이웃인 그들의 눈물과 애환이 우리네 삶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에 그들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주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과도 같아서 그는 일본 전체에 걸친 강제 징용 당한 조선인들의 트라우마적 공간을 이렇게 하나의 책에다 담으려 하는 것이다.





  책은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 각각 한 챕터씩 할애하여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처음에는 이렇게 답사한 곳의 위치가 나와있는 지도가 있다. 다소 대략적이라는 게 아쉽지만 이 책이 답사기가 아니라 무엇보다 그동안 망각 속에 버려졌던 강제 징용 당한 조선인들의 삶을 다시 환기시키는 데 있음을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환기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진 작업이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임을 상기한다면 아마도 당연하겠지만 그는 그 아픔이 어떻게 현재로 연결되고 있는지,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그 아픔이 어떤 의미인지 또한 아울러 담는다. 그러한 측면이 무엇보다 개인의 기억함과 일본 사회의 망각함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즉 지워지고 있는 역사를 복원시키려 노력하는 개인들과 과거의 상흔과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지움으로써 이제는 전혀 다르게 변해버린 일본 현재의 모습 사이의 대비인 것이다. 그렇게 기억하려는 개인과 망각시키려는 사회의 대조를 통해 과거를 이어받는다는 것, 아픔을 기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로새기려 한다. 무엇보다 이 사진이 그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사진은 강제 징용 당한 한 조선인의 무덤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들이 노역 끝에 죽어도 묘비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조선인들의 무덤은 하나의 돌로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의 폐허를 지우고 과거의 범죄적 흔적을 지운 현재 일본의 변모해버린 모습에 비해서 이 희생자들의 무덤은 저렇게 제대로 된 표식하나 없이 그저 돌 하나가 된 채 그것도 풀 숲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무심하게 버려져 있는 것이다. 마치 현재의 일본이 그들의 범죄적 과거를 지우기 위해 자꾸만 망각 속으로 떠밀고 있는 듯한 형국과도 같다. 그 곳을 찾아오는 이는 저 할아버지 처럼 그것을 기억하는 개인들 뿐이다. 할아버지는 거기서 신세타령가를 부른다.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어째서 숯 파러 왔느냐"로 시작되는 그 타령은 마치 망자의 혼이 다시금 흘러나와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것 같다. 말이 아니라 노래, 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죽은 자의 빙의된 목소리라는 점에서 저 돌 하나로 남은 무덤은 그야말로 절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서의 트라우마의 공간이 된다. 그렇게 빙의라는 점에서, 그 상처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점에서 그 곳은 나와 연결된, 내가 속한 공간이 된다.





  여기서 그 트라우마 공간과 연결된 나를 되새김은 비단 내 국적, 내 민족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아우슈비츠가 비단 유태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가 인류에게 가할 수 있는 극한의 폭력이 가져온 비극을 상기시키듯, 여기 하나의 돌 무덤에서 환기되는 것도 다른 나라 백성이라고 해서 마구 가해지는 제국주의적 폭력과 착취가 가져오는 커다란 비극인 것이다. 지금 일본이 지우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폭력과 착취의 증거들인 것이다. 지워진 것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그 결과로서의 아픔, 새겨진 비극을 기억함은 바로 그 반복의 연쇄를 끊는 일이 된다. 초래될 비극의 도래를 지연시키는 일이 된다. 바로 이 사진에 나오는 벽에 쓰여진 글 처럼 말이다. 우토로 마을을 돕기 위해 사이타마에서 왔다는 이 누군가의 글은 이러한 기억함의 궁극이 종래에는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지 잘 보여준다. 지은이가 답사의 마지막 장소인 오키나와에 있는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들이 무덤인 '한의 비'에서 느끼는 것도 그것이다. 문득 거기 묻혀진 조선인들 중 하나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같은 고향이었음을 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격한 감정에 빠진다. 그는 이렇게 그 감정을 고백하며 답사를 맺는다.


"지난 1996년부터 일본 관련 작업을 시작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만들며 나를 합리화하고 이겨나갔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날들과 달랐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치솟고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마치 이 작업의 당위성이 나의 운명인 듯 기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p.338)"

이 치솟는 울분, 아픔, 눈물이 바로 트라우마적 공간과의 만났을 때의 반응이며 그것은 모두 저 아픔을 당한 자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자각에서 나온다. 그렇게 나와 연결되고 내가 속해 있는 바로 그 곳의 존재라는 깨달음 말이다. 우토로 마을을 도우러 온 사이타마에서 온 사람이나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결국 울어버린 지은이나 트라우마적 공간 앞에서 느끼는 것은 똑같다. 이들이 모두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들의 고통이 내 고통이며 그들의 버려짐이 바로 나의 버려짐이라는 자각이다.

우리 할아버지도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 중 하나였다. 어쩌면 내가 정말 이 아픔의 현장들을 둘러볼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도 유년 시절 약주에 취하시면 내내 들려주시던 그 고통과 아픔이 절절했던 징용 시절의 기억이 어디선가 남아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분명 그 곳에 이르면 지은이와 비슷한 감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트라우마의 공간들을 내 몸 여기저기에 새겨놓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잊지 않는 것. 그 어디든 폭력에 노출되고 사회의 강압에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자들은 모두다 내게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아마도 그 새겨진 상처들은 그렇게 호소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언제든 빨리 그 곳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l****1 2011.09.26.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우리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내용보기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이 책은 중견 사진작가 이재갑의 사진집이다.요즘에 사진작가의 책들을 읽으며 내게 잘 맞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만나서 읽었다.이재갑 작가는 오래전부터 ‘역사’를 주제로 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이번 책을 기획하면서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을 탐방하고 그걸 기록하였다.작가가 답사한 지역은 후쿠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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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 책은 중견 사진작가 이재갑의 사진집이다.
요즘에 사진작가의 책들을 읽으며 내게 잘 맞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만나서 읽었다.

이재갑 작가는 오래전부터 ‘역사’를 주제로 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번 책을 기획하면서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을 탐방하고 그걸 기록하였다.

작가가 답사한 지역은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교토 우토로, 히로시마, 오키나와 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활동해온 재일 조선인 활동가 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탐방했다.
자이니치로서,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려온 배래선 선생과 함께 했다.
배래선 님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서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해방 이후에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남은, 수많은 재일동포의 한 분으로 산 증인이셨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재일동포 분을 통해서 듣는 강제징용의 역사는 참혹했다.
더 분노가 일었던 것이, 일본이 종전 후에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강제 징용의 사실을 얼렁뚱땅 넘겨왔다. 아예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여러 현장들을 교묘하게 포장해 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와서, 착취하고, 노예에 다름없이 대우했다.
그러한 현장들이 일본 땅 곳곳에 있는데, 이 현장들은 제거가 되거나 남아도 애매모호한 ‘기념’을 한 곳이 많았다.

배래선 선생님을 비롯하여, 자신들도 일제 징용의 피해자임에도 한 평생 역사를 알리기 위해 애쓰신 재일조선인 분들이 많으셨다.
그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냥 감사한 차원을 넘어, 그분들의 기록, 기억, 기념 활동이 아니었다면 묻혀졌을 역사였다.

수탈의 역사가 묻혀졌을 걸 생각하니 아찔한데, 정말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러한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을 놓쳐서 은폐된 역사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니 일제의 침략전쟁의 실상은 얼마나 끝이 없을지, 그 한계를 알 수가 없다.

소수 인원이긴 하지만, 강제징용에 관심을 갖는 일본의 시민단체도 존재해 왔다.
오래전부터, 재일조선인 활동가와 연대하여서 일제의 만행을 알려오신 일본 활동가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자국의 역사를 반성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분들이 진정한 일본의 양심이 아닐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와 반대 측면에서, 전범 기업으로 승승장구한 주제에 오히려 한국을 깔보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분노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탄광지인 지쿠호. 그곳에서 일제 시대에 탄광업으로 성공한 아소 가문이 대표적이다.

아소 가문은 탄광업이 사양길에 오르면서 쇠락은 했지만 1960년대까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를 기반으로 종합병원을 세우거나 다른 사업을 운영하며 명맥을 이었다.
이 가문에서 정치인이 나왔는데, 전 前총리인 아소 다로이다.

아소 다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망언을 일삼은 인물이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다”.
아소 다로는 일본 극우파의 실세였고, 정계 은퇴 후에도 조상이 이룬 부로 아소 시멘트를 물려 받아 잘 먹고 잘 살았다.

『일본은 1939년부터 1945년에 약 100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를 강제 연행했다.
조선 국내에서 동원한 485만명과 합하면 실제로는 6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연행된 셈이다.
후쿠오카 지역 41개 광업소에 배치돼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사람은 약 11만 명인데,
그 가운데서도 아소 탄광은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심했던 곳이다.』
(23쪽)


시모노세키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 가장 왕성한 항구였다. 관부 연락선이 운영되어 부산을 통해서 일본 쪽으로 숱한 수탈의 이동 통로 구실을 했다.
지금은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항구의 곳곳을 공원이나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그럼에도 배래선 님을 비롯한, 강제징용을 기억하는 조선인 분들에게는 시모노세키 항은 악몽과 같은 곳이다.

일본의 교묘한 행보들에 탄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침략 수탈의 거점이었던 곳, 참혹한 인간 말살이 이루어진 곳에 기념비 같은 것이 거의 다 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만행은 싹 숨겨놓고, 그냥 덤덤하게 예전에 전쟁의 현장이었다는 식으로만 기술해 온 것이다.

더 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본이 패전하긴 하였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눈부신 근대화를 이룩했고, 그 현장들이 근대화의 초석이었다는 뉘앙스의 문구들을 적어넣었다.

재일조선인, 뜻있는 일본 활동가들에게 이러한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은 개탄스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교토 우토로 마을은 조선인 거주 지역으로 일본의 탄압을 지속해서 받은 상징적인 마을이다.
재일조선인을 비롯하여 한국의 시민단체, 전 세계의 관심있는 분들이 우토로를 도운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일본이 가미가제 특공대가 있었는데, 배로 인간 어뢰를 하는 가미가제도 존재했다.
이 배를 은닉하기 위해서 해안가에 동굴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이 작업에 조선인들이 투입되었고, 동굴을 만든 흔적들이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제의 침략전쟁, 태평양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던 것인지,
조선인이 강제징용된 실상을 통해서도 더더욱 알 수 있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노예에 가까운 처우를 받으며 목숨을 걸고 일했다.
책을 통해 보니, 온갖 험하고 위험한 일들에는 하나같이 조선인 노동자가 들어 있었다.

징집을 당해 총격전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것만이 위험한 줄 알았다.
한편,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강제 노역을 한 것도 무척 위험했음을 알 수 있다.
일하다가 요즘으로 치면 산재로 사망하신 분들이 많았고, 병에 들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고, 영양실조에 가까워 죽고 그런 분들이 부지기수였다.

배래선 님은 이재갑 작가와 헤어지면서 짧고 굵게 이렇게 말하셨다.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됩니다.
현재 일본 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철도 침목 하나가 조선인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의 도시들은 세계적인 레벨의 경제 대도시다.
겉에서 보면 화려하고 눈부시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근대화, 그 이면에 침략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침탈의 한 중심에 수많은 조선인들의 피와 땀, 목숨이 서려 있었다.

책은 말한다. 일본의 경제발전의 인프라를 이룬 각종 산업들에
조선인 강제징용의 희생이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하여서,
수십년 동안 지속적인 박해와 멸시를 받으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당한 역사를 기록해 온 재일동포분들의 노고에 다시금 감사했다.

역사는 기록 記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기록을 담당한 주체 중에,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동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한 이를 옆에서 도와온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의 노고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 땅 곳곳에 서린, 조선인 강제징용과 희생의 역사들.
이를 끈질기게 기록하고 알려온 분들.
이 자체가 하나의 또 다른 한국의 역사가 아닌가 싶었다.

대학 학계, 저술 활동, 영화와 소설, 대중문화.
이러한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책처럼 사진의 르뽀르타쥬도 무척 도움이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도구로든, 어떤 매체로든
묻혀진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쓰여지면 좋겠다.

한 가지 꼭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이거였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잊고 방치하면 묻혀진다.
묻혀지는 진실은 결국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점을 깨달았을 때 소름이 돋았고 경각심이 들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일본에 남은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배는 일제강점기의 여객선으로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본 경제 건설과 근대화의 초석이라는 명분 아래 끌려가는 데 이용되었다.
이렇게 끌려간 우리 젊은이들은 결국 인간성이 말살된 잔혹한 전장에서 이유 없는 죽음을 강요당했다.』
(80쪽)

『미쓰비시의 나가사키 조선소. 일제강점기에 초대형 전함을 만들면서 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해 혹사한 군수공장이다. 지금도 해상자위대의 이지스 함을 건조하는 등 배를 만들고 있다. 현재의 미쓰비시 중공업은 과거 미쓰비시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한일협정을 들어 배상을 거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124쪽)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4년까지 해저 탄광으로 유명했던 하지마 섬에 상륙했다.
이곳에는 해저탄광에 일을 하기 위해 온 광부들이 묵었던 숙소와 영화관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약 5,000명이 살았다.』
(130쪽)


『한국의 자료 중에 놀라운 사진이 한 장 있다.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본군에게 두 발이 잘려 나간 변씨 성을 가진 남자 사진이다. 선교사에 의해 전해진 이 사진은 독립운동가 이강훈 선생이 품에 간직했다고 한다.
그가 1939년 주중 일본대사 아리요시 암살 미수로 체포돼 백정기 의사와 함께 12년간 감옥 생활을 하는 도중 인간으로서 한계를 느낄 때마다 꺼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삼았다.』
(224쪽)


『원폭에 의한 실질적 피해는 일본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자국의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삶 또한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조선인과 일본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전쟁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일본은 자국의 피해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원폭을 맞은 실질적 경위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는다.』
281쪽



b********5 2019.06.12.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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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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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이 책에 나온 망간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망간 기념관에 숨겨진 조선인들의 한과,조선 징용인들과 그 당시 같이 일한 일본인 근로자와의 60여 년 만의 어색한 만남을 보면서 지금도 그 한이 다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프로그램에서 나오지 않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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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이 책에 나온 망간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망간 기념관에 숨겨진 조선인들의 한과,조선 징용인들과 그 당시 같이 일한 일본인 근로자와의 60여 년 만의 어색한 만남을 보면서 지금도 그 한이 다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프로그램에서 나오지 않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는 위에 말한 망간 기념관 말고도 곳곳에 조선인의 영혼과 한이 서려있는 장소들이 상당히 많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본 곳은 단 5곳이었지만,내 생각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여러 지역은 지금 거의 온전하게 남은 곳이 없다. 그나마 몇 곳은 개발되어 놀이공원이나 대기업 소유의 토지로,아니면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남아있다. 아직도 일본 정부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위에 쓴 단바 망간 기념관과 인골댐이라 불리는 히로시마 현 야마가타 군에 있는 오도마리 댐이다. 오도마리 댐에서의 추락사고로 조선인이 댐 아래에 떨어졌는데,일본인이 공사 지연을 막기 위해 떨어진 조선인을 구하려던 다른 조선인을 막고 그대로 아래에 흙을 부어서 생매장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정말 울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에 글보다 오히려 사진이 더 많은 것은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사진을 통해 말하려 하려는 작가의 의도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일강제병합 100년,해방 66년이 지났지만,아직도 우리의 가슴 속에 한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앞으로 이러한 책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으로 과거를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1/9/26

l*****3 2011.09.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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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 재 갑 글 ․ 사진       열방들 사이에 끼어 있는 조그만 반도 한국.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수없는 고통을 당했던 민족. 역사는 사실(a fact)이지만 그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은 여러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 불 수 있는 역사관(歷史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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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 재 갑 글 ․ 사진

 

    열방들 사이에 끼어 있는 조그만 반도 한국.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수없는 고통을 당했던 민족. 역사는 사실(a fact)이지만 그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은 여러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 불 수 있는 역사관(歷史觀)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이재갑은 사진을 찍는 작가로서 일본 현장을 취재하며 한국인의 입장으로 지난날의 역사를 되집어 보고 있다. 일본 전 지역에 걸쳐 펼쳐진 한민족의 아픔의 역사. 화려한 조명을 삼가하고 가능한 현장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대로, 음산한 형태의 사진은 당시 고통 가운데 울부짖어야만 했던 한민족의 아픔을 고스라니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인 듯하다. 돈을 위해서라면 인간적 양심도 팔아버릴 것 같은 사람들. 유태인을 학살한 독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세를 가졌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행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비열함을 느끼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양심적인 일본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이나마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아 가는 일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징용으로 인해 고통 당 한 사람들은 수 없이 많지만,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해괴한 일이 일본에서는 가능하다. 일본인들은 국력이 약해 점령당한 나라와 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점령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일본을 위해 일해야 하고 생명을 바쳐야 한다고 여기는가 보다. 이런 식의 논리로 식민지가 된 조선과 조선인도 황국민이라면, 일을 함과 대가를 지불함에 있어 똑같은 대접을 해야 함이 옳은 일이겠지만 그런 일에는 엄청난 차이를 두었다. 한 마디로 자신들 편리한 대로 황국민도 되었다가 조센징도 되었다가 했다는 것이다.

    사진과 함께 징용의 아픈 역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갔다. 일본 정부에 대해 바른 소리 한 마디 못하는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불만도 깊어져만 간다. 물론 당시 국력이 약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겠지만, 그 아픔은 고스란히 힘없고 빽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 주로 겪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아픔을 겪었던 연약한 사람들은 그 때보다는 부강해진 조국 대한민국 정부로부터도 잊혀져 가고 있다. 나라를 독립을 위해 힘써왔던 분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업적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당시 국력의 약함을 인해 식민지 국가에서 나라 잃은 아픔가운데 숱한 노동과 치욕을 참고 견뎌야만 했던 징용 노동자들이나, 위안부들 역시 기억되고 그들이 겪었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씻어주는 일들이 필요할 것이다.

    자국민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부가 어찌 대놓고 아픔을 준 나라에 대해 쓴 소리,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미움과 더불어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미움과 불신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나라 잃은 슬픔도 크겠지만, 나라로부터 버림받고 잊혀진 국민의 서러움과 슬픔도 그에 못지않게 클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모두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일환으로 첫 단추부터 바로 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벌여왔던 친일파 명단 밝혀내기, 물론 지난 세월의 일을 파헤쳐 무엇을 할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그 누구도 감출 수는 없다. 물론 그 사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매우 중요하겠지만.

    한국에서부터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바로 정립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도 당당하게 역사를 바로 정립하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그럴 때 그 바른 역사의 토대 위에 또 다른 역사가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까지 마음이 무겁고 먹먹하다. 살아서는 나라가 연약해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와 갖은 고생과 치욕을 당하였고, 죽어서 조차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서러움을 겪고 있는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한없이 흘렸을 눈물이 내 마음에 강이 되어 흐르는 듯하다.』

 

h********2 2011.09.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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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역에 아로새겨진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수난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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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경술국치 100년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배상의 길까지 막혀버린 이 울분을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독도를 내 놓으라고 한다.북한은 협정이나 배상을 받지 않았으니 북한이 배상을 요구하면 배상을 해줄 것인가?과거사의 상흔을 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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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경술국치 100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배상의 길까지 막혀버린 이 울분을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독도를 내 놓으라고 한다.
북한은 협정이나 배상을 받지 않았으니 북한이 배상을 요구하면 배상을 해줄 것인가?
과거사의 상흔을 묻고 미래를 바라보며 일제가 우리에게 입힌 죄악상을 묻어두자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더욱. 일제강점기가 한반도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국외추방을 해야 할 것이다. 뼈속깊이 친미파, 친일파가 득세하는 나라 대한민국, 죽어서도 제대로된 묘비명을 세우지 못하고 후손들마저 찾지 않는 그분들에게 한없이 죄스럽다.

 

박정희, 김종필의 망국적 한일협정!! 배상도 못해준다고, 독도도 내놓으라 한다.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원수의 돈은 받지 말았어야 했다. 그돈으로 독재자가 경제성장의 밑천으로 삼아 우리 이만큼 되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가? 혈서를 쓴 다카키 마사오와 김종필이 맺은 한일협정이 독도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보상문제를 원천봉새하고 있으니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까

한국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 에 따른 해석상의 분쟁 해결을 일본정부에 제안했으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일본정부는 15일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성 부대신의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청구권 협의 제안과 관련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해결이 끝났다” 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수하며 한국 정부의 협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반발하여 '한일협정 무효화를 위한 국민행동 준비위원회'는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발족식을 열고 1910년 한일합병 국치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을 무효로 하기 위한 실천에 나선다고 밝혔다.
준비위는 성명에서 "박정희 정권이 대일 굴욕외교 끝에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과 여러 협정은 일본의 후안무치한 역사 왜곡을 묵인하고 방조한 결과"라며 "군부독재의 모욕적 유산인 한일협정을 무효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준비위는 "1965년 한일협정 무효화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 시민의 투표를 통해 반영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보도중에서)

 

과거의 역사를 묻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어가자며 일제강점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친일망국적 역사관을 가진 이들이 횡행하는 한반도. 아직도 친일잔재, 친일파 청산이 되지 않았으니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일본. 독일만 가해자가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도 가해자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미국은 제국주의 침략기에 약소국을 침탈하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총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지금도 하고 있지만 일본은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하여 미국의 묵인하에 전범 처벌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전범 처벌을 받은 경우도 많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입은 피해를 과대포장하고 있다.
제국주의 정책으로 막대한 이득을 본 2차대전 패전국만이 아니라 승전국도 피해를 입힌 나라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런 목소리는 너무나도 낮다.


저자는 필생의 업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피와 한이 서려있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현지를 답사하며 사진으로 담아 오고 있으며 이 책은 무려 15년간에 걸쳐 집필했다고 한다.

 

나라 잃은 민족은 살아도 사람으로 산것이 아니다.
재일 사학자인 박경식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939년부터 1945년에만 약 100만명이 넘는 우리 동포를 강제 연행했고 군속으로 37만명을 전선에 동원했다. 조선 국내에서 동원한 485만명과 합하면 실제로 6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연행된 셈이다. 후쿠오카 지역 41개 광업소에 배치돼 강제 노역에 시달린 사람은 약 11만 명인데 그 가운데서도 아소탄광은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p(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의 증조부가 창업주인 탄광이다.)

조정래의 한강을 보면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목욕하는 순서중 꼬래비가 조선인 노동자였다고 한다. 필리핀 다음으로..나라 잃은 민족이니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받았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
강제 징용의 현장이 이 네 지역뿐이랴, 사할린에서 홋가이도 일본 전역에 걸쳐 조선인의 피와 땀, 한이 서리지 않은 지역이 없고 일제강점기로 인해 만주, 하와이, 멕시코, 쿠바. 일장기를 달고 전쟁에 참여해야 했던 사람들의 원혼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음이다. 우로토로 비슷한 곳이

후쿠오카현 미이케 탄광,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현 이마리 가와나미 조선소, 사카가 우토로 마을, 제2의 우토로 오사카 아파치 마을, 히로시마 야스노 발전소,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 수도 없이 많은 탄광과 무기공장, 비행장, 방공용 터널, 이 책에서 소개되지 않았지만 동경의 지하철 공사현장에도 관동대지진시 참혹하게 숨져간 수많은 우리 민족의 한과 눈물이 서린 저주받은 일본땅, 우리 국민들중 일부는 일본은 더 센 지진으로 사라져야 할 나라라고 더 센 쓰나미로 천벌을 받아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아소 타로 가문은 물론이고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미쓰이나 미쯔비씨 역시 강제 징용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를 일구었음에도 그들은 강제 징용 피해보상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보상한 것 역시 그당시의 금액으로 지불할 정도로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그들은  강제징용의 현장을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고 한다.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은 물론이고 그 어느 현장이고 공식적으로 강제징용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조선인들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한적한 곳에 세운 위령탑에서나마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삼천리 방방곡곡 남아 있는 강점기 역사의 현장,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 중국, 하와이 등에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 모두가 발로 찾아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그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한일협정으로 챙긴 돈으로 경제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독재자를 미화하고 그 딸이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인 나라 대한민국. 그래서 일본은 민주당이고 자민당이고 모두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신사참배를 8월 15일이면 강행하는 정치인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우리안에 남은 친일의 잔재, 그릇된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책을 더럽히는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일본에게 진정어린 사과와 배상을 톡톡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전국의 모든 도서관은 물론이고 각급 학교에 필독서로 비치하여 널리 읽혀야 할 책이다.

신세타령가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나는야 어째서 숯 파러 왔느냐
일본 땅 좋다고 누가 말했느냐 일본 땅 보니 배고파 못살겠네
숲을 팔 때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 말만 하면은 몽두리 맞았네
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소! 고향에 가고 싶소!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썼네
어머니 장에서 쌀가루 부쳐 왔네 쌀가루 받아 들고 눈물만 흘렸네
보따리 풀어서 쌀가루 집어먹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불러 봤네
어미니 소리도 크게 못 부르고 감독 놈 겁이 난서 가만히 불러 봤네

 

'대일본제국 군인은 전쟁터에서
3일이나 4일 밥도 안 먹으면서 적들과 싸우고 있다!

너희들은 세 끼니 꼬박꼬박 밥을 먹고 있지 않느냐!'

 

십오 세 소년은 몸이 아파서 하루 놀라다가 두드려 맞았네
몽두리 맞고서 굴 안에 끌려와서 천장이 떨어져서 이 세상 이별했네
죽은 이 꺼내서 손발을 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 서 이름만 불러 봤네
감독 놈은 몽두리 들고서 죽은 사람 옆에 두고 숯 담아내라 하네

 

'대일본제국 군인은 전쟁터에서
3일이나 4일 밥도 안 먹으면서 적들과 싸우고 있다!
너희들은 세 끼니 꼬박꼬박 밥을 먹고 있지 않느냐!'

 

이 말을 듣고서 복장을 두들리면서 나라 뺏긴 민족은 이렇게 서러움 받나
몽두리 맞을 각오는 같이 맞지 하며 하꼬를 제쳐서 숱을 부어 냈네
하꼬를 일 바다서 죽은 사람 실어 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천장만 쳐다봤네
여기저기에서 죽은 사람 많았는데, 초상 치르는 것은 한번도 못 봤네.

 

-사진만엽록 10권중 9권 아리랑 고개에서 인용

 

* 당시에는 조선인이 광산에서 강제 노역이나 사고로 목숨을 잃을지라도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에야 동료들에 불에 태운 유골을 수습하여 근처 일본인들이 묻힌 묘지 근처에 몰래 묻고, 가지고 간 폐광석(보타이시)으로 조선인의 묘지를 표시했다고 한다. 조선인의 묘지라는 것이 알려지면 가만 두지 않기 때문에 묘지를 세우지 못했다.

y*****n 2011.09.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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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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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어 생각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일본에 대해서 먼저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격하면,, 욕도 나오겠지.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들과 지금 일본이 행하고 있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백문이 불여일견'도 있다. 이 두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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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어 생각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일본에 대해서 먼저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격하면,, 욕도 나오겠지.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들과 지금 일본이 행하고 있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백문이 불여일견'도 있다.

이 두가지의 숙언을 받아들이기에 아주 좋은 책이 있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지난 세월 우리가 일본에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했던 곳을 찾아가서

그곳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조상들의 역사가 어떻게 보존되고 있으며

우리들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고 했던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올바로 보존하지도 못하는데 우리는 진정한 승자 일까?

재생지로 만든듯 가벼운 책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로맨스도 아닌데 읽으면서 마음이 아련하고 눈물도 났다.

 

하지만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는 말처럼

강제노역을 당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조선인들을 위한

비석을 세워주는것 역시 일본인이었다.

일본정부가 한 것이 아니고, 일본시민이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백의민족으로 하얀옷을 입는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약탈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한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건 얼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훌륭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g******g 2011.09.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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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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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서 한일 양국 간 해소되지 못하는 민족감정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화해할 수 없는 과거의 역사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역사를 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와 대륙의 여러 나라를 비롯하여 조선에 와서는 명나라나 청나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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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서

한일 양국 간 해소되지 못하는 민족감정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화해할 수 없는 과거의 역사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역사를 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와 대륙의 여러 나라를 비롯하여 조선에 와서는 명나라나 청나라 그리고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나 전쟁 또한 자주 일어났지만 유독 일본과의 마찰과 대립은 심한 생채기를 남기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기에 민족감정이 그대로 남아 유지되거나 확대 되는 경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사회는 국경 없는 사회라고도 할 만큼 세계는 서로는 각국의 이해를 기반으로 활짝 열린 자세로 다른 나라를 대하고 있다. 그것이 자국의 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에 문호를 열고 세계를 대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시대 국경을 맞대는 한일 양국은 묵은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깊어져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양국의 문제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100여 년 전부터 일본이 한국에 행한 잊을 수 없는 악행이 바로 그 원인이 아닌가 싶다. 일제 강점기 국권을 빼앗고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벌인 다양한 정책의 기억이 남아 있고 해방이후 우리 스스로 일제 잔재를 올바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여기에 일본 정부가 그간 보여준 대한국 정책은 그러한 감정을 더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일로 인해 우리 스스로 발목을 밥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해결되지 못한 것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순차적으로 해결해 가면서 요구할 것은 분명하게 요구한다면 양국 모두에게 분명하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민족 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간 보여준 양국 정부의 일련의 정책에 기인하고 있다.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양국 국민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화해 분위기를 정부의 정책은 역으로 돌려놓기에 일쑤다. 민간차원에서 오랜 시간 노력을 경주해 일궈온 국민들 사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등을 돌리는 결과를 정부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국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나 양국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대의에서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한 사진작가가 일본을 지속적으로 일본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옛 조선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노역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을 달리해 찾기도 어려운 흔적들이지만 남아있는 곳을 찾은 것이다.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과 그와 관련된 건축물에 대한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작가의 행보는 후쿠오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사카,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 곳곳을 다니며 군부대 진지,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지하 터널, 비행장, 통신 시설 등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 지금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은 말이 없다. 하지만 사진만큼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사진에 담긴 모습들은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담아내고 있다. 말이 없지만 말 없음이 오히려 강한 울림으로 다가선다. 저자의 발길이 머뭇거리고 때론 멈춰선 곳이 어디쯤일지 사진을 짐작하게 만들고 있다. 순전히 사진에 담긴 모습만으로도 지난 시간 조선인들의 삶을 되살리는 것처럼 말이다.

 

“일제강점기 재일 조선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됩니다. 현재 일본 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철도 침목 하나가 조선인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자의 발길을 돕고 조선인 강제징용과 관련된 진실을 밝히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재일 한국인 배동록 씨의 말이다. 애써 외면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에서 울분을 토하지 않을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 또한 반드시 살피고 자나갈 일이다. 왜 당당하게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하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찾아간 곳 마다 조선인들의 피와 땀의 결실로 만들어 졌지만 유적을 보존하고 기념관이나 체험관을 운영하는 주체들은 어디에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일 양국의 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이 현 시대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은 양국의 화해와 공존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예견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무엇을 선행되어야 양국의 공종은 가능해 질까?



m*****8 2011.09.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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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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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재갑 글 사진 살림 刊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숙명적인 이웃인 일본은 악질이다. 지지리도 이웃나라 복이 없는 것은 우리나 폴랜드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패악은 인류 사상 전무후무한 원자탄 피폭과 대자연이 응징하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패키지 패널티로 응징돼도 마땅하다. 천인이 공노할 일제의 패악 운운은 이제는 상투적이고 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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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재갑 글 사진 살림 刊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숙명적인 이웃인 일본은 악질이다. 지지리도 이웃나라 복
이 없는 것은 우리나 폴랜드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패악은 인류 사상 전무후무한 원자
탄 피폭과 대자연이 응징하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패키지 패널티로 응징돼도 마땅하다.
천인이 공노할 일제의 패악 운운은 이제는 상투적이고 식상하지만 말이다.


일본 열도가 유난히 방사능 친화적인 운명조차 하늘의 뜻이며 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패악에 따른 인과응보일 뿐이다. 망언쟁이 이시하라 신따로도 하늘이 내린 천벌이라고
개탄했다지만, 주변 국가에게 몸서리쳐지는 패악을 저지른 일본의 끊임 없는 자연 재앙
은 신의 뜻일 게다. 노심용융이라는 생소한 용어는 동일본 지진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모르고 지나갈 말이였을 게다.


일본은 이제 극복해야할 존재는 아니다. 그들은 나치 독일이 유태인에게 저지른 홀로코
스트에 대해 무릎 끓고 사과하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저자는 불편한 역사를 카메라
에 담아내는 글 쓰는 휴머니스트로서 르뽀로 일본 속의 조선인 강제징용의 잔혹한 기록
을 평상심으로 읽는 고통은 감내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치가 떨린다.


꼭, 100년 인터벌로 중국의 동아시아 지배 전략과 자위권을 내세운 일본의 전략들이 또
한바도에서 부디친다. 그들은 자국국익 우선에다 외향적이다. 반면 우리는 좌파들이 과
거와 내부로만 눈을 돌리면서 갈등을 빚고 있으니 지정학적으로 일,중 충돌의 허브(?)에
있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에 좌파도 일본도 이제는 신
물이 난다. 기우겠지만 100년 만에 다시 청·일 전쟁의 재판으로 치닫을까 아연해진다.


일본 총리 노다는 국수적 역사관과 강경파라는 평이 난 소위 마쓰시다 정경숙 1기생이다.
그는 한국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들고 나올 때마다 사죄를 하기 때문에 일본의 등이 휘어
졌다며 어떻게든 펴지 않으면 안된다는 울트라내쇼날리스트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
사 참배와 역사 교과서에 대해 반드시 간섭한다며 투덜거라니 역시 버르장머리를 고쳐놔
야 한다는 YS 일갈은 새삼스럽다. 적개심의 끝은 제로 톨레랑스다. 이를 어쩌나.



d****o 2011.09.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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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표지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목을 듣고서 이미 예상했던 바이지만, 책에 실린 이야기 역시 무거웠다. 추석 연휴 전부터 펴든 책인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이었다.      어떤 책이 됐든, 내게 책은 tv나 영화보다는 재미가 덜한 대상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나 영화보다 책을 더 자주 접하는 이유는 시간을 보내고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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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표지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목을 듣고서 이미 예상했던 바이지만, 책에 실린 이야기 역시 무거웠다. 추석 연휴 전부터 펴든 책인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이었다.

 

   어떤 책이 됐든, 내게 책은 tv나 영화보다는 재미가 덜한 대상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나 영화보다 책을 더 자주 접하는 이유는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의 "남는 것" 때문이다. 온종일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난 날은, 순간의 재미는 있지만 "내가 대체 뭘 한 거지....?" 하는 후회가 남곤 한다. 하지만 책과 씨름하며 보낸 날은 뿌듯하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고. 대부분의 책이 그런 뿌듯함을 주곤 하지만 그 뿌듯함이  배가 되는 책은, 내게는 "역사책"이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이 책 제목에 "사史"자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이는 사진작가 이재갑. 그간 한국근대사와 관련된 사진작업을 많이 해 온 분인가 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글쓴이의 일본 답사기이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 글쓴이의 일본 답사는 관광이 아니라, 일본 속의 우리 근대사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다. 글쓴이가 주로 찾아가서 보고, 듣고, 그리고 사진에 담아온 이야기들은 주로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탐욕과 야망 아래 짓밟히고 학대당하다가 결국엔 죽음에 이른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에 대한 것이다. 책에 씌인 글의 실제 상황을 상상해보다 그 끔찍함이 치를 떨게 했다. 댐 공사 중 시멘트 구조물에 떨어진 조선인들을 구하지 않고 시멘트를 그대로 들어부어 "인골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며 탄광 내에 그대로 묻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흔적을 보여주는, 지금은 잊혀져가는 조선인들의 한서린 그 장소들. 광복 후에도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당시 징용자들의 후손들이 산다는 우토로 마을의 슬픈 사연들은, 한국인인 나 역시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이다. 슬프고 마음이 무거웠다. 글을 통해, 사진을 통해 본 참상이 이러할진대 실제로 그 곳을 두 발로 디디고 육안으로 그 흔적들을 확인했던 글쓴이의 글이, 사진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을거다.

 

   글쓴이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마도 전쟁가해자로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에 대한 질타와 일본 근대 산업의 토대가 된 시설물들을 만들다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에 대한 언급이나 반성이 없는 일본에 대한 섭섭함일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므로'라는 말만으로는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 이 책을 보며 했다. 무거웠던 책.

h****i 2011.09.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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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오늘날 일본에서는 k-pop을 비롯한 한국의 아이돌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한류'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활발한 문화교류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아직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불편한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민들이 서로의 나라를 떠올릴 때 드는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은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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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오늘날 일본에서는 k-pop을 비롯한 한국의 아이돌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한류'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활발한 문화교류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아직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불편한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민들이 서로의 나라를 떠올릴 때 드는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은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영토로 강제 징집되어 열악한 대우를 받으면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의 뼈아픈 흔적을 담고 있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 5개 지역의 제철소, 탄광, 동굴 터널 등을 답사하면서 견디기 힘든 강제 노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조국을 그리워하며 비참하게 일본 땅에서 죽어갔을 우리 민족의 묘지나 순국비, 기념관 등은 우리 선조들의 아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지게 해준다.

 

 공교롭게도 책 안의 담긴 사진들의 상당수가 우중충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음울한 분위기가 그 당시의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웠다. 이제는 거의 다 폐허가 되어버린 탄광소의 모습은 우리 민족들이 억압받고 탄압받던 그 시간 이후로 멈춰버린 듯 했다. 뼈 아픈 일제강점기의 상처는 비단 우리나라 영토안에 있던 국민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 땅에서 다수의 일본인들의 억압과 탄압을 받아가며 어렵게 삶을 이어가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우리 민족들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p***e 2011.09.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