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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폐암 판정을 받고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파주의 둘째 아들네 집으로 모시고 오면서 시작된 어머니와의 7개월간의 동거,선물과 같은 시간들이 때로는 가족간의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분명 자식된 도리이고 누군가는 책임을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큰 병이기에 많은 돈이 들고 시한부 삶이기에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삶을 지켜 본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임을,그래도 마지막까지 지켜드리며 어머니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때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과감없이 솔직하게 남겨 어떻게 보면 모두에게 선물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 책은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7개월' 더군다나 폐암 판정을 받으신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라 더 읽고 싶었다. 저자보다 더 앞선 시간에 나 또한 친정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 드렸던 아픔이 있어 어떻게 보면 아버지를 생각하며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정아버지는 당신이 먼저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해보시고,병원에 잘 가지 않는 분이신데 얼마나 아팠으면 병원에 가셨을까? 그런데 의사는 좀더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렇게 하여 자식들과 함께 종합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폐암2기,발견은 정말 더 진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했는데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아서 손을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다른 부위에 있었더라면 수술하여 좋은 경과를 낼 수 있는데 왜 하필 손도 댈 수 없는 부위에서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는지.그렇게 하여 검사하시는 동안 병원에서 일주일 계시게 되었는데 엄마가 함께 계셨다. 그때까지는 그리 많이 아프시지 않으신 상태라 아버지는 곧 나으리란 기대감에 더 빨리 집에 가고 싶으셨는지 모른다.그리고 한참 바쁜 일철이었으니 시골분이 일을 놓고 그냥 계시기란 정말 답답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아버지는 내게 그 시간을 선물해주시는 것처럼 여겨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을 뜻 깊게 지냈다. 아버지는 막내딸 덕분에 병원생활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하셨고 함께 계신 분들도 정말 좋아하셨다.
암선고를 받고 나니 약보다 민간요법에 더 귀가 솔깃해져서 누가 무엇이 좋다고 하면 그것을 찾아 다니게 되어 있다. 우리도 와송에 비단초 상황버섯등 암에 좋다는 것을 해드리며 조금이라도 우리 곁에서의 아버지 시간을 연장해 보려고 노력했다. 더 미리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시한부 삶이라고 하니 아버지가 그립고 안타깝고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몇개월 정정하시더니 일년여 다 되어 가면서 급기야 아버지의 건강은 하루 아침에 쇠락,입원 후 수개월 후에 다시 명절을 보내고 입원하시게 되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는 다는 것도 힘들지만 그래도 곁에 자식이 함께 있으니 기꺼이 받으시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셨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런저런 실수도 하시고 어린애처럼 간식 하나에도 즐거워 하시고,그런 시간들이 지금은 정말 값지게 내게 저장되어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 모두가 아버지와 함께 나눈 이주일의 시간은 정말 선물과 같은 시간들이었는데 입원 후 시나브로 드시는 것이 줄어 들더니 아버지는 김장을 모두 마치고 두다리를 펴고 자려는 그 순간에 주무시며 편안히 가셨다.믿어지지 않고 내게만 슬픔이 닥친듯 했지만 그 시간도 다 지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이젠 그 슬픔도 퇴색해 버려서 아버지의 기억이 희미해 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저자의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이 땅의 어머니란 이름이 모두 강인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여장부처럼 살림을 꾸려 가시면서 마지막 그 시간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시던 꼿꼿하시던 분이셨으니 당신이 그런 큰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를 아마도 받아 들이시기 힘드셨을 것이다.아니 꼭 일어나시리라 믿으셨을 것이다. 대부분 일을 하시던 분들은 건강하게 다시 건강을 되찾아 당신이 하시던 일을 하시리라 믿으시간다.친정 아버지 또한 그러셨다. 당신이 하시던 밭일이며 논일이며 그것 손을 놓으면 누가 할 사람이 없으신것처럼 걱정을 하셨다. 당신 안계시면 자식들 입에 들어갈 것이 없는 것처럼 노심초사 늘 걱정하셨기에 더 일어나시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셨다. 하지만 암이라는 놈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한번 물고 늘어지면 놓아주질 않으려 한다. 한사람을 그물에 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모두를 못살게 굴기도 한다. 친정아버지는 그래도 고생을 많이 하시지 않고 가셨다고 볼 수 있고 병원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은 편이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암환우 가족들이 겪는 고통,경제적 손실은 환자가 겪는 고통도 크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크다.
누군가는 환자 곁에서 돌봐 드려야 하고 병원비도 감당해야 하는가 하면 그에 준하는 모든 일들을 감당해나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때론 고부간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하고 형제간의 갈등및 가족간의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그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닥칠 수 있는 문제이고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한번 겪고 나니 누군가의 부모님이 혹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이젠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큰 슬픔을 한번 겪고 나니 대처하는 힘이,좀더 단단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막상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한 친구들은 걱정을 하며 자문을 구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고 슬픔은 내게 닥쳤을 때에는 커보이지만 남의 슬픔일 때에는 내게 보이지도 않을 때가 있다.그래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슬픔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겪고 나면 담담해진다.그 아픔이 아버지건 어머니건 간에 슬픔은 정말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 오는 것 같다.
단골미용실에서 머리를 하시고 당신이 사시던 부산 만덕에서의 삶을 더 연장하길 원하셨지만 어머니에겐 고향과 같아도 자식들에게는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던 그 곳의 삶이 어머니의 마침표로 인해 모두 박제화되듯 사라져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지만 어쩌지 못하고 현실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당신의 삶을 받아 들이시는 어머니의 여정을 지켜보며 그 시간들이 결코 가족의 갈등의 시간이 아니라 당신에게 선물과고 같은,7개월이 선물이라고 하는 것을 읽으며 나 또한 공감하며 아버지를 떠 올리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되새기고 싶지 않은 아픔이기도 했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며 난 아버지를 그리워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던 그 시간들이 오버랩 되면서 눈물이 쏟아져 어느 순간 줄줄.곁에 계실 때 잘해드려야 하는데 그게 또 맘처럼 잘 되지 않는다. 늘 혼자 계시는 엄마께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잘 안된다.마음 뿐이다.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고 되돌리고 싶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나는 그동안 잘 살았다.그 동안 행복했으니 울 필요 없다.' 라는 말씀을 읽으며 우린 아버지께 당신이 폐암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대충 알고 계셨지만 아버지가 더 일찍 삶을 놓아 버리실까봐 말슴 드리지 않았는데 그게 한편으로는 후회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삶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한편으로는 더 고생 안하시고 편안하게 주무시며 가신 것이 큰 복처럼 여겨지고 모두가 또 그렇게들 말씀들 하신다.아버지는 병원에 계신 동안 유언처럼 내게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그 모든 것을 잘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는 딸이되었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당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다 가셨다고 늘 생각한다. 저자의 어머니 또한 비록 자식들과 마찰은 있었지만 그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올곧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던 강직한 분이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의지해야 하는 자신의 육신에 대한 원망이 아마도 자식들과 마찰로 빚어지지 않았을까.그래도 죽음 앞에서 자식들간 매듭을 풀고 가시고 누군가에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고 가셨으니.저자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좀더 친정엄마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어디까지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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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생의 아픔은 얼마나 깊어져야 눈부신 새벽을 맞을 수 있을까 나 역시 거기서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어머니의 고통 앞에서도 자신의 스케줄을 조금도 변경하지 않는 아내와의 갈등, 죽음을 앞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기 싸움, 생의 끝을 향해 가며 간당거리는 어머니의 병세를 지켜보며, 나는 괴로워하고 또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땅에는 나보다 훨씬 힘든 아픔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부터인지 내 눈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세상의 남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남편으로 불리는 사람들, 여자들이 흔들릴 때 넓은 가슴을 빌려 주던 남자들이 이제는 반대로 흔들리고 있다. 갈수록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암으로 인한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짐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갈등을 만드는 가족들의 태도가 문제였다. ‘이 지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목숨마저 불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흉내낼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이 영원하다는 말에 감히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사랑의 달인들이다.
(김용원 지음, <어머니의 전쟁 > 중에서 ) <어머니의 전쟁>은 저자인 둘째아들이 폐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와 7개월 동안 함께 지내며 겪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쓴 글이다. 저자인 김용원님은 1962년 2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사람 좋기만 하고 생활력이 없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리느라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어머니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대부분 보냈다. 부산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서울로 입성한다. 결혼 후 군에 입대하는 등 수많은 삶의 굴곡들을 거치며 ‘종교’와 ‘시’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종교는 직업으로 이어져 그는 신촌교회 사무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월간 『열린시』에 <웅촌화장장>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어머니의 전쟁>은 저자가 어머니와 7개월간의 일들을 잔잔한 글로 쓴 이야기들이다. 부산에 형님과 가까운 곳에 사시던 어머니께서 폐암선고를 받으셨다. 그동안 어머니께서는 부산 만덕에서 사셨다. 형님은 효자다. 형님은 어머니가 사시는 곳을 맴돌았다. 형님의 손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인절미나 죽, 혹은 호박엿이 들려 있었다. 이를 못마땅해 하는 형수와는 많이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수십 년 세월을 헤어지겠다는 형수의 협박을 받으며 그렇게 살았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들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다. 어머니에게는 큰 아들의 존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을 대신할 남자였으며 사랑하는 남자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폐암선고를 받으신 어머니를 부산에서 둘째 아들이 사는 파주로 모셔오게 되었다. 부산 만덕 인근의 가까운 거리에서 에서 37년간 가까이에서 모시던 형님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갑작스런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아내는 힘들어 했다. 둘째 아들인 나, 아내 그리고 둘째 여동생이 번갈아 병원에서 간병을 하기도 했다. 이 후 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에 계셔도 어머니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지루한 장마철이 지속되듯이 그러했다. 어머니께서 드시는 약의 양도 많아졌고 항암치료도 시작되어 병원에 가는 일도 잦아졌다. 서서히 가족들이 지쳐갔다. 또한 일정한 수입에 병원 치료비는 점점 쌓여갔다. 아내는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집에 병간호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집을 비울 때에는 둘째 여동생이 병간호를 하지만 여동생도 힘들어 했다.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도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며느리가 애써 만든 음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도 카랑카랑하신 어머니의 목소리에 아내는 이내 한 숨을 쉰다. 점점 더 심해지는 고부갈등은 둘째 아들이자 남편인 남자를 힘들게 했다. 점점 어머니의 병세는 심해졌다. 급기야 아내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평소와 다르게 신경질을 내고 푸념을 한다. 병원비 부담을 왜 우리만 해야 하냐고 한다. 형제들에게 같이 부담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급기야 부산의 형과 여동생들에게 전화하라고 채근한다. 남자는 그 푸념을 있는 그대로 묵묵히 다 받아 주었다. 그리고 몰래 집을 나와 노래방에 가서 1시간 동안 목이 터지게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어머니 연세가 82살, 폐암 4기로 올 7월에 의사가 4~6개월 생존한다고 했으니 어머니는 올해 11월이나 12월까지 사실 수 있다. 어머니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고 씩씩하게 행동셨다. 삼시 세끼 억지로라도 죽을 드시고 간식으로 포도나 요구르트를 드시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밥은 죽으로 즉은 묽은 미음으로 바뀌었다. 며느리이자 아내인 여자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시어머니의 병수발과 어머니의 간섭에 지쳐가는 몸과 마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위해 이를 악물고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남자는 27년간 같이 살아왔고 여전히 그의 아내를 사랑했고 그 사랑은 아내를 믿게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부부라는 서로의 믿음 바탕으로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다. 때론 상대방에게 욕설로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이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었다. 다시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급기야 완화병동으로 병실을 옮겼다. 완화병동은 더 이상 완치치료는 하지 않는다. 통증을 완화시키고 서서히 운명의 시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다. 어머니는 끝까지 완화병동으로 가려하지 않으셨다. 못된 둘째 아들이 고집을 부려 반 강제로 어머니를 설득하여 입원하셨다. 새벽 1시 40분 의사가 황급히 달려와서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불과 3일전 까지만 해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못난 둘째 아들을 훈계하던 어머니였다. 삶과 죽음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 둘은 가까운 이웃처럼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꽃으로 장식된 단의 영정사진 속에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온종일 눈이 내렸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다. 어머니는 자식들로 인해 평생 발 한 번 편하게 뻗어보지 못하고 생을 살았다. 하지만 오늘 어머니는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갑자기 암에 걸린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오면서 벌어지는 고부갈등. 이러한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남자. 어머니와의 마지막 7개월의 시간들. 그 것은 전쟁이었다. 한줌의 재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어머니. 전쟁이 끝나고 우리 가슴속에 남겨진 것은 어머니라는 훈장이다. 그리고 부부라는 사실 하나로 함께 힘든 시간을 견디어준 아내는 또 다른 이름의 어머니이다. “폐암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했던 마지막 7개월 동안 두 모자가 겪었던 이야기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살다간 성자(盛者)가 목숨 바쳐 사랑했던 귀한 자식들임을 한시도 잊지 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이 책을 추천하면서 쓰신 글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목숨 바쳐 사랑했던 귀한 자식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품고 있었던 바로 그 자식들이다. 그런 자식들은 얼마나 어머니를 생각하고 살까 어머니에게 효도하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 당연함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어머니를 다시 돌아보자. 119힐링실천 : 부모에게 효도하기! ( 나라는 존재의미를 알게 한 부모님께 오늘 한 가지라도 효도하자. 특히 어머니에게 더 효도하자. 장모님이시신, 시어머니시든 그분 둘의 삶을 존경하고 사랑하자!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인 아내에게도 고마움 표현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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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두 손을 살포시 마주대고 계시는 그 모습이 나이든 내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지 하며 가슴 아파옵니다. 언제나 우리에겐 부르면 눈물부터 나는 그리움의 존재인 어머니. 우리에게 당신의 인생 전부를 희생하고 여자로써의 삶은 포기한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다 가시는데 우리는 그런 어머니를 생각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내 옆에서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어머니가 우리가 성장해 감에 따라 귀찮고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가 되고 우리도 나이가 들어가면 어머니는 짐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자라서 인지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고 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고 그리워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저자인 김용원님의 어린 시절을 보니 저희 가정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인지 어머니의 성품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사람 좋기만 하고 생활력이 없어셨던 아버지때문에 자연스레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는 누구보다 강할 수 밖에 없었고 생활고에 힘들게 살면서 피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로 올라와 종교를 가지고 그 종교로 직업까지 가지고 생활해 나갑니다. 폐암에 걸린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오면서 강하고 강한 어머니를 간병하며 고부간의 갈등도 생기고 가족간의 갈등도 생기게 됩니다. 만만치 않은 병원비에 경제적 어려움도 따르고 생활도 어려워 지지만 불효를 했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성심성의껏 모시면서 계절이 바뀌어 가지만 그럴수록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과 감사가 나날이 커짐을 알게됩니다.
저도 어릴 적 사람좋기도 소문난 아버지가 지병을 가지고 계셔서 어머니 혼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우리 남매들을 키웠습니다. 부유한 정도까진 아니어도 중산층으로 넉넉히 살아갔지만 자식들을 더 잘키워보겠다는 어머니의 욕심에 어머니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집안이 어렵게되자 결국 사춘기가 온 저에겐 너무 큰 시련이었습니다. 항상 키우지도 못할꺼면 왜 나낳냐는둥 사소한 문제 하나하나로 어머니와 부딪히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백지 상태인 아이를 하나하나 돌봐가며 키운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일이며 사랑이 아니면 절대 해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어머니에게 정말 불효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육아외에 또 다른 문제인 고부간의 갈등이 없길바래 항상 올케편을 들어주고 엄마가 늘 잘못했다고 말하며 싸웠는데 펑펑울며 전화하시며' 다른집은 딸 하나라고 엄마랑 꿍짝꿍짝하는데 너는 어쩜 그리도 차갑냐고 두번 다시 연락 안한다'고 말씀하시곤 끊으셨어요. 순간 너무 당황하고 내가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는데 결국 받지 않으시더라구요. 자식들이 다 결혼하고 나니 자식 사랑이 극진했던 어머니는 너무나 큰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고 아들들한테는 전화하기 눈치보이는데 그나마 딸인 나는 편하니 이런저런 속얘기를 한건데 그걸 받아주지 않으니 서러움이 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는 어머니이고 아무리 강하고 자식앞에선 엄하시다해도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말 처럼 언제나 져주는게 부모님인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불효하고 있다는 이 순간이 진짜 불효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어머니가 약해지기전에 우리가 먼저 어머니의 어깨가 되어드려요. 마지막까지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는 어머니이길 바라며 그런 어머니가 되시게 다 커서 알아버렸지만 우리가 조금은 모른척해주며 져주자구요.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의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전해봅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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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렸을 때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분의 억척스러움과 고집을 이겨내면서 나의 주장을 펼치고 싶은 생각에 싸우느라 바빠서, 죽음이라곤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저자의 어머니도 그러하셨다. 부산 만덕동 (나도 개인적으로 이 곳을 잘 안다)에서 평생을 고생하시면서 사셨고, 억척스러움과 잡초같은 강인함은 누구도 따라갈 자가 없었다. 오죽하면 병원에 입원해서까지 "에구 저 노인네 젊을 땐 한 성깔 했겠네!" 라는 말을 들었을까... 하지만 병은.. 늙음과 함께 필연적으로 인간에게 따라오는 이것은 그런 한 성깔하는 노인네를 이렇게나 무너뜨리고 힘들게 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를 생각했다. 아직 어머니께서는 정정하시기에 그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나의 할머니는 뇌출혈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까지 몇 년동안 병치레를 하셨고, 그녀의 병수발을 드느라 작은어머니께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큰 며느리와 중간며느리 (우리 어머니)가 멀리 사시는터에 같이 살고 있는 작은 며느리가 병수발을 했고, 그 사실은 가족을 분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알던 무섭고 엄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음이 정말 아팠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한 번 쓰러진 뒤, 전신 진단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 후 7개월간의 일을 기록한 사실적인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의 미덕이 참으로 사실적이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에 대한 저자의 지극한 효심도 감동적이었고, 그녀를 바라보는 애틋함이 온통 가슴을 메이게 했지만, 자신의 어머니이므로 사랑하는 것과 며느리로서 사랑하는 것, 손자 손녀로서 할머니를 사랑하는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또한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서도 아들이 추울까봐 이불을 덮어주려고 거동도 힘드신데 내려오셨다는 ..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음을 또 한번 느끼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예전엔 어머니의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몰랐는데, 이제서야 알 것 같다고. 어머니의 사랑은 목숨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고...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는 우리 어머니도 기력이 예전같지 않으시다. 추호령같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사근사근해지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도 이젠 눈물이 맺힌 듯 애틋하다. 함께 살지 못하고 서로 늙어만가니 이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드려야지, 하고 다짐을 해 보았다.
이 책엔 암환자로서 말기암을 치유하기 위한 자식의 노력이 가상하게 그려져있다. 몸에 좋다는 것을 먹이기 위해 양재동 농협에 갔던 일은 참 공감을 하게 만든다. 전날 TV에서 방영된 암에 좋다는 약을 (그 약이 진짜 좋을지는 미지수이다) 구하기 위해 갔는데 이미 동이 나서 겨우 구해 온 사연은 마음을 참 안타깝게 만든다. 또 암환자의 병수발, 보험 이야기, 암환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아내와의 관계에서 너무나 힘들었던 것들 등 내가 직접 겪지 않았는데도 구구 절절이 공감되었다. 나에게도 곧 닥치리라. 이 사회에 사는 모든 30대 이상의 자식들은 부모님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꼭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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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의 아내로 자식들의 엄마로 그림자삶을 살아온 우리들의 어머니가 여기에 있읍니다 살면서 잊고 있었는데 이책을 읽고 생각해냈습니다 언제나 서퍼렇게 날선 평형선 관계로 믿었는데 하지만 그것은 한남자를 향하여 길고 긴 인생길을 동행하는 관계라는 것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깨달은 어리석음을 생각케합니다 어머니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모든 아내와남편들이 이책을 통해서 스스로의삶의 진정한 힐링이 될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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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늘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인데 저는 글재주가 없어 그냥 흘려버리는 것을 잘 정리하셨네요. 저희 어머니도 얼마전 55세의 나이로 돌아가셔서 더욱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가 다 이런 경험은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다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귀중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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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지막 7개월을 함께 한 아들의 일기이자 고백을 담은 글이다. 폐암 말기를 진단 받으신 81세의 노모, 항암 치료를 하기엔 연세가 많으셔서 치료를 포기했다. 부산에 계시던 어머니가 힘겨운 말기암 치료를 하기위해 고향집을 정리하고 파주로 모셔오면서 작은 아들의 생활은 모든 것이 어머니 중심으로 이뤄졌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경제적으로 오는 힘겨움과 말기 암환자의 고통까지도 함께 해야했던 마음이 조금은 짐작이 된다.
처음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3-4개월의 시한부를 선고 받았다. 항암 치료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남은 생의 질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항암 치료 한번 해보지 못하고 집으로 퇴원했다. 독한 진통제만 먹기위해 식사를 겨우 드셨다. 아들은 이런 어머니를 세심히 돌보지 않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눈치를 본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라 어머니 병원비도 힘에 부치고, 다시 항암 치료에 강한 의지를 보이신 어머니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다.
병이 드신 부모님을 보신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어머니의 보호를 받던 자식이 이제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과 조금씩 나약해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어머니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저자의 말에 안쓰러움과 쓸쓸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과 가까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더욱 소중해진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의 자극을 받았다. 늘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던 내 생활이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서로 간의 신뢰감,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말이다.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과 나로 인해 태어난 소중한 생명들, 아껴주고 돌봐야 할 책임감도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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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정말 얼마 만에 불러보는 단어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누구나 다 존재한다. 그래서 내 곁에 계실 때는 소중함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내 곁을 떠난 후에 어머니의 정을 그리며 못 다한 효도를 생각하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러했기에......
[어머니의 전쟁] --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7개월
이십 여 년 전에 간경화로 고생을 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니처럼 [어머니의 전쟁], 이 책 역시 폐암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 7개월 동안을 곁에서 모시며 병간호를 한 아들의 고백서이다 우리의 어머니가 모두 그러했듯이 자식 뒷바라지와 어려운 형편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다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 우리곁을 떠나시고만 경우가 많이 있었다.
시집을 가서 직장맘으로 살다보니 편찮으신 어머니를 꾸준히 뵐 수 없었고 허망하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보내드린 나는 엄청난 후회를 안고 살아가고있다. [어머니의 전쟁] 이 책속에서는 어려운 형편과 마누라의 눈치속에서나마 어머나를 곁에서 모실 수 있었던 저자를 보며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비록 병원에 계실지라도 휠체어를 밀어드렸던 추억, 항암치료과정중에 어머니로서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고,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일 등 그 모든것이 부럽기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내 곁에 어머니가 계시지않고, 모실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와 같은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살지 않도록 어머니를 한번이라도 자주 찾아 뵙기를 바랄뿐이다. 내가 이승에 도착하면 우리 어머니가 과연 나를 알아보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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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10 년전 나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 나의 시어머니도 류마티스 관절염을 23년간 고생하시다가 천국을 가셨기 때문이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서 우리의 부모님이 걸어왔던 그 길을 우리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인생은 한번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이 세상에서 천년이고 만년이고 살 것처럼 아둥바둥 살아 간다. 이 책의 저자는 어머니의 마지막 7개월의 남은 생을 효도 하기를 최선을 다한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들은 효도를 다 한 것 같지만 돌아 가시고 나면 후회가 많이 남아요 이 세상에 살아 계시는 부모님이 계시면 효도하기를 게을리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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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쟁』을 읽고 이 책을 보면서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잠깐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열일곱에 시집을 오셔서 집안의 큰 며느리로써 각종 집안일을 다 꾸리시면서도 구남매를 낳으시고 키워냈던 정말 대단한 어머님이셨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하는 고기잡이 어선 사업이 잘못되면서 결국 시골에 있는 집마저 다 날리고, 시골에서 남의 셋방에 살 정도로까지 되어버렸고, 자식들도 대부분이 초등학교 졸업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며, 중간에 둘째 누님과 막내 아들까지 잃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말년에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님을 받들고 열심히 사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님이셨다. 그렇게 그냥 시골에서 힘들게 사시다가 고인이 되신 어머님께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했으니 말이다. 정말 좋으신 우리 어머님이셨는데... 진지하게 함께 하면서 기록으로 남겨서 이렇게 소중한 책으로 출판해 낸 저자 분께 깊은 감사와 함께 존경을 표한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일들을 이런 좋은 결실로 맺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서 어머님에 대한 짧은 시간이지만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정말 어떤 어머니의 마음도 다 똑같은 것 같다. 자신의 뱃속을 통해 잉태한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또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운명 이전에 얼마만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 요즘 대부분의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집을 떠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결혼을 하게 되면 분가하여 생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뜸할 수밖에 없고, 서로의 관계도 자꾸 멀어져 가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와 어머니와 함께 한 7개월의 시간들을 낱낱이 밝혀주고 있는 대단히 귀한 기록이다.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운명을 한 아쉬움이 내 자신에게도 절실히 느껴진다. 이 기간 동안 있게 되는 어머니의 병세의 변화와 고부간 갈등, 경제적인 면 등 정말 쉽지 않는 모든 일까지 잘 언급하고 있어 더 실감이 느껴진다. 이런 와중에서도 은근히 펼쳐지는 가족 간의 사랑도 느낄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정말 우리들에게 있어 어머니라는 존재가 진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병원 치료기간에 펼쳐지는 진정한 모자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울러 이런 사실을 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모델로 삼아서 교훈적인 이야기로 활용할 생각을 하였다. 정말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근본을 주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