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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니체의 허무주의로 보는 삶의 진경《우울할 땐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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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에 모대학이 철학과를 폐지한다고 하여 학생들과 논란을 빚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이라는 곳이 이제는 교육이 목적이 아닌, 기업적 영리추구가 목적이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철학은 우리 삶의 珍景진경을 깨닫게 해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물질의 가치가 정신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면서 이미 삶에서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되새기기에는 세상은 지나치게 핑핑
"니체의 허무주의로 보는 삶의 진경《우울할 땐 니체》" 내용보기

아침 신문에 모대학이 철학과를 폐지한다고 하여 학생들과 논란을 빚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이라는 곳이 이제는 교육이 목적이 아닌, 기업적 영리추구가 목적이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철학은 우리 삶의 珍景진경을 깨닫게 해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물질의 가치가 정신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면서 이미 삶에서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되새기기에는 세상은 지나치게 핑핑 돌아가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 쇼크》에서 가족 구조의 빠른 해체와 매스미디어는 탈대량화,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다변화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였다. 변화의 과도기사이에 낀 우리 세대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인 허무와 우울, 공허와 회의가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는 《우울할 땐 니체》에서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질병(우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니체의 위대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대한 점검이 먼저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과 몇 가지의 이론을 숙고해보는 식의 철학을 권고한다. 진단과 이해, 적용과  내다보기의  네 단계 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에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목적인 철학서이다. 

 

 

삶의 목적은 세계와 그 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망 없이는 규정할 수 없다.

 

삶은 추와 같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직시해야 하고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을 그럭저럭 견뎌야 하며 삶에서 ‘무의미함’을 감추기 위해 종교나 과학뒤로 숨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며  회의주의자처럼 생각하고, ‘노동을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길’이라며 두려움을 갖는 것에 대해 ‘잠시라도 삶에 해를 끼치는 것은 금지하거나 단념시키라’고 한다. 뿐만아니라, 삶에서 항상 맞딱뜨리는 도덕적 양심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지길 권고하고 있다. 니체는 진정한 도덕은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고유한 도덕적 의무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의 특권으로 여겼다. 반대로 타자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우리가 현재 소유하면서 다른 사람과 구별해주는 독특한 재능으로 보고 있다. 또한 도덕(선)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적 미덕은 호사스러운 착각일 뿐이라고 한다. 가장 근거 없고 정예화된 정교한 이기주의의 발로로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다. 타인은 여기서 그리 쉽게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미래의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과 일치하기를 원하는 이런 나쁜 취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은 이웃의 입에 회자될 때 더 이상 선이 아니다. 어떻게 ’공동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자체 모순을 범하고 있다. 공동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가치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한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아니오를 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창조하면서 긍정할 수 있기 전에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낡은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자유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 안에 살고 싶고 자신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하고 부정해야 한다.’ 강한부정은 강한긍정이라는 말처럼 내면에 있는 무지와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이해함으로써 긍정 안에서 진화하는 부정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긍정의 가능성과 의심스러운 삶의 관점이 확고해지는 부식토가 되어야한다고 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의 목적 중 하나는 허무주의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 우리가 이론상으로 삶을 거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가 허무주의를 부정하는 효과적인 방식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니체는 모든 일에 성마르게 반응하지 말며 사물을 세부적으로 상세히 관찰하는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니체의 허무주의와 영원회귀 사상은 세상에서 우리가 떠안고 있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고 있음을 말한다. 니체는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초인을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으로의 도피, 현실에 대한 부정의 의미가 아닌, 인간은 자신을 더욱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존재 즉, 자신의 책임의 짐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초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던  존재들 가령, 종교나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집단주의, 도덕적 양심, 행복에 대한 환상,  우리를 얽매이고 있던 관념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의 짐을 내려놓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테리 이글턴이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는 말처럼 삶의 무의미함이 곧 삶의 珍景진경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3.06.05. 신고 공감 7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고통을 직면하는 것[파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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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위에 던져놓았던 책은 빛에 반사되면서 반짝거리는 청람색의 표지글씨로 인해 자주 내 눈에 들어왔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잡지 못했던 것은 제목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다. 니체라니. 표지의 글씨를 보며 나는 또 수레국화를 떠올렸다. 그 꽃의 신비로운 빛깔과 니체를 연관시킴으로써 조금만 더 친숙해지길 바랐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기독교를 분노하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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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위에 던져놓았던 책은 빛에 반사되면서 반짝거리는 청람색의 표지글씨로 인해 자주 내 눈에 들어왔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잡지 못했던 것은 제목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다. 니체라니. 표지의 글씨를 보며 나는 또 수레국화를 떠올렸다. 그 꽃의 신비로운 빛깔과 니체를 연관시킴으로써 조금만 더 친숙해지길 바랐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기독교를 분노하게 만든 철학자였다. 그런 그의 조부와 부친이 목사였다는 것은 의외다. 보통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어렵기만 느껴지는 니체의 사상. 그 니체를 저자는 차분히 들여다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그의 철학을 활용할 거라고 말했다. 따라가 보자.


니체는 오랫동안 그 자신이 질병으로 고통 받았으면서도 불구하고 질병을 사유로 인도하는 커다란 선물이라고 말했다. 질병을 통해 일상의 단절을 경험하고 우리를 구속시키고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우리 정신의 질병으로 허무주의를 꼽는다. 허무주의에는 삶의 목적이 없으며, ‘왜?’라는 질문에 답을 낼 수 없으므로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더 이상 욕망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자기 밖으로 뛰어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행복인데 허무주의자들의 이상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수면의 한 형태이거나 죽음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허무주의라는 것이다. 늘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안온하게 살아온 나 자신이 바로 니체가 말한 수동적 허무주의자의 표본이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또 행복 대신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온 사람을 능동적 허무주의자라고 말했다. 그 대표적으로 얼마 전에 알게 된 미국의 트럼펫트 쳇 베이커가 있었다. 예술가들 중에 이런 능동적 허무주의자들이 많았다.


“우월한 인간은 끊임없이 가장 행복한 동시에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69쪽


기독교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는 니체는 전쟁을 촉발시키는 종교와 철학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안에서 사형의 도구였던 십자가를 종교의 상징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이미 인류가 기독교의 독에 중독되어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는 현실을 희생해서 허구에 찬미를 보내는 기만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이때 니체는 가장 초라한 현실도 가장 높은 이상보다 가치 있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존재한다”는 것에 있었다. 니체는 가장 악독한 범죄자도 허구적인 ‘선한 인간’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니체의 가치관은 우리가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보다 가치 있고 값어치 있도록 살아가게 한다.


니체는 진정한 몸의 건강이 질병에 대한 건강한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마음의 원한은 고통을 악성 종양으로 발전시키는 병리적 반응으로 본다. 원한은 복수를 실행할 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므로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가해지는 모욕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면 원한은 일어나지 않는다. 복수가 내면화되어 스스로를 희생자이자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 원한인데 이 원한을 자기 파괴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망각이라는 특효약이다. 여기에서도 니체는 기독교의 원죄의식을 비판하면서 우리를 원한과 양심의 가책이라는 독약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우리가 이웃에 행하는 도덕은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전달하는 연민의 감정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보다 그 고통에 그 비슷한 고통을 첨가해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들은 우리 가치와 의지를 위축시키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또 타인을 도우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도우라고 하는데 타인에게 이타주의가 되면서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은 스스로에게 끔찍한 이기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남에게 칭찬을 받는 이타주의는 정직하지 않은 이기주의의 한 형태일 따름이니 우리가 남을 돕는 행위의 근간에는 자신의 이기심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참되지 않으니 스스로의 마음이 진심으로 시키는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니체의 냉소주의를 제대로 들어볼 수 있었다. 관습이나 남의 눈치를 보며 행하는 모든 도덕은 진정한 도덕이 아니라는 것.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다다른 사람만이 가지는 “혼자만의 도덕이” 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몸이 움츠려들었다.


아모르 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도 이런 나긋나긋한 말을 했다. 사람은 사랑을 취하면서 고독을 버릴 수는 없다. 사랑과 고독이 함께 오듯이 쾌락과 고통, 불행과 행복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는데 우리가 기피하려는 대상마저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무엇보다 먼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허무주의를 이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난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부정해서 삶을 소모하기 보다는 적정한 거리를 두어 망각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부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것을 더 많이 긍정해서 그 부정적인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적게 먹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다른 쪽으로 열정을 쏟아서 먹는 것에 무관심하게 하라는 거다. 그러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목표에 이른다고 한다. 니체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니체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이렇게 풀어주고 있다. 그래서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니체의 사상을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 저자의 도움으로 인해 니체가 과거의 현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 그가 경계한 허무주의를 벗어나는 길은 우리 앞에 있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 뒤에 있을 쾌락을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라는 메시지로 전달 받았다.


니체는 삶이 무한반복 되지 않으므로 현재를 가장 소중하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니체가 ‘신이 죽었다’라고 하는 의미를 허구인 신을 추구하며 살기보다 완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한 번뿐이 이 삶을 가장 가치 있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다 읽고 책을 덮자 청람색 표지글자색깔이 수레국화처럼 마음에 꽂힌다.



t******e 2013.06.05. 신고 공감 6 댓글 9
리뷰 총점 종이책
☆『우울할 땐 니체』니체의 사유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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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쉽게 다가가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상과 닮은 것에 대한 사유를 발견할 때 철학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내 마음이 내면의 깊은 사유를 원할때 철학의 의미는 더 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때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우울할 땐 니체』를 읽으면서 자꾸 내용이 겉도는 걸 발견했다. 읽다보면 글은 읽는 것 같은데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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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쉽게 다가가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상과 닮은 것에 대한 사유를 발견할 때 철학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내 마음이 내면의 깊은 사유를 원할때 철학의 의미는 더 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때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우울할 땐 니체』를 읽으면서 자꾸 내용이 겉도는 걸 발견했다. 읽다보면 글은 읽는 것 같은데 저자가 말하는 의미가 제대로 마음속으로 다가오지 않음을 느꼈다. 또한 읽었으되 행간의 의미를 찾을수 없어 몇번이고 다시 앞장으로 가 다시 읽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앞장으로 와 문장을 읽다보면 마음에 드는 구절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니체의 글들을 통해 우리의 내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글을 설명한다.

먼저 이 책의 활용법을 보자면 니체의 글을 통해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책이라고 말했다. 19세기 철학의 여러 관념을 통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이끌 것이며, 니체의 사유가 우리의 삶을 바꿀수도 있다고 했다. 첫 째 장에서 진단하기, 두 번째 장은 이해하기, 세 번째 장에서는 적용하기, 네 번째 장은 내다보기로 우리를 니체의 사유로 이끈다.

 

 

질병을 통해 습관과 단절하며, 우리의 우선 순위 등을 바꿔준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질병에 걸렸을때 우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끝없는 번민을 하게 된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죽음에 임하는 자세와 특별할 게 없어 보였던 자신의 삶과 가족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생명이 얼마나 귀한 건지 깨닫게 된다.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게 되는 것을 경함할수 있다. 니체가 생각하는 질병은 허무주의였다. 삶의 덧없음을 허무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삶은 단순히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삶 속에 있지 않고는 살기를 원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는가? 더 이상 삶은 생존하기 위한 단순한 투쟁이 아니다. 아무도 단순히 생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자연계는 훨씬 빈약할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이기를 원한다.  (87페이지)

 

일단, 내면의 함이 충분히 축적되면 우리는 그 힘을 머뭇거림, 과잉, 잘못된 길, 헛된 투쟁으로 낭비하지 않고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결정적 선택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확실한 몸짓, 정의로운 제도를 가지는 법, 우리를 동요시키는 충동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196페이지)

니체의 사상,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철학을 논하는 글은 조금 어려웠다. 삶에 대한 내면의 깊이를 찾는 일이 어렵게도 여겨졌다. 아마도 5,6월을 보내며 마음에 바람이 든건지, 여기저기 쏘다니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리라. 마음이 붕 떠 있는데, 니체의 철학을 말하는 책이 마음속 깊이 들어올리는 없으니까.

 

 

『우울할 땐 니체』라는 제목때문일까.

이제는 내 마음이 우울해진다고 느낄때 니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울함을 느낀다는 건 삶에 대한 허무이기도 하니까, 그것을 치료하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니체를 읽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허무주의를 검색해보니 니체가 『유고』라는 작품에서 '허무주의'를 이야기 했다고 했다. '허무하다'라는 말을 쓰거나 '우울하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허무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에 직면하기'로 인해 치료가 된다고 했다. 삶의 고통, 질병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열망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바로 삶의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라고 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6.09. 신고 공감 6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발타자르 토마스] 우울할 땐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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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음과모음 1기 서평단에서 열다섯 번째 받은 책이다. 지금까지 서평단을 통해서 다양한 책을 만났지만 이 책은 받으면서부터 중압감을 느꼈다. 니체에 대해서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이고, 그의 저서인『짜라스트라우스는 이렇게 말했다』에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게 되기를 바란다.'라는 구절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구절도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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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음과모음 1기 서평단에서 열다섯 번째 받은 책이다. 지금까지 서평단을 통해서 다양한 책을 만났지만 이 책은 받으면서부터 중압감을 느꼈다. 니체에 대해서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이고, 그의 저서인『짜라스트라우스는 이렇게 말했다』에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게 되기를 바란다.'라는 구절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구절도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니체는 읽는 사람을 무겁게 할 존재인 듯한 느낌이었다. 서평단이 아니라면 펼치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그런 책을 어떻게 읽었던가? 내가 느낀 것을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책장을 넘겼을 뿐이다. 문장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고 간혹 가슴을 울릴 만큼 멋진 문구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전체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말은 품격이 있는 것 같은데 읽어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부끄럽게도 내가 유일하게 이해한 것은 프롤로그 격인 '이 책의 활용법' 정도였다.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 4단계를 거치라고 하였다.

 

진단하기-이해하기-적용하기-내다보기

 

그러면서 각 단계에 대한 안내를 하였는데 그 부분은 공감을 했다. 어찌 이 책뿐이겠는가? 모든 책이나 이론이 내용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그것을 이해한 뒤에, 나름대로 적용을 하면서 다음 단계를 내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데야….

 

둘째, 부분은 이해가 되기도 했으나 전체적인 의미는 역시 난해했다. 차라리 내용을 읽지말고 소제목만 읽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소제목들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내용에 들어가면 읽는 순간은 이해가 되는 듯했으나 읽고 나서는 남는 것이 없었다.

 

셋째, 책의 구성은 좋았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짚고 넘어가기'를 통하여 다시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집중을 유도했다. 또한 책 뒤에 「독서 길잡이」라는 표제로 덧붙인 니체의 저서와 각종해설서에 대한 저자의 촌평은 니체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기의 화두도 뜬구름 잡는 듯하니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 어쩌면 책이 어렵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읽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할 일은 많고, 마음은 급하고, 책장을 빨리 넘겨서 과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줄거리가 없으니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해결하고 말고 할 과제가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독자에게 깊은 생각을 통해 심오한 차원으로 유도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리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봄바람에 황사가 날리듯 책장만 넘겼을 뿐이다.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토양이 없는데다 이해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으니 어쩌면 이 책은 불성실한 독자를 만난 것을 한탄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학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깨달은 것은 제목 정도이다. '우울할 땐 니체'를 읽으면 그 뜻을 생각하느라고 우울함을 잊을 지도 모른다는 것…. 아무튼 저자는 니체를 이해했으니 이 책을 썼을 테고, 역자는 뜻을 파악했으니 책을 옮겼을 것이다. 출판사 역시 그 의미를 짚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니체를 이해를 한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우울함에서 벗어날 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이 책이 뜻 있는 독자를 많이 만나서 이 땅의 인문학을 한 차원 높이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과는 관계가 없지만 니체에 관해 내가 아는 유머 한 편을 소개하겠다. 오래 전에 서울의 어느 대학에 있었다는 낙서다.

 

신은 죽었다. -니체-

니체는 죽었다. -신-

낙서한 놈 보면 죽인다. -미화원-

 

니체가 쉽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웃음을 머금을 수 있으면서도 무언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으로, 그렇게 해설서를 쓸 수는 없었을까?

y******3 2013.05.31.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북리뷰] 니체와 가까워지기
"[북리뷰] 니체와 가까워지기" 내용보기
1. 우울할 땐 니체? 니힐리즘의 대명사 니체가 우울한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다?    아직은 나에게 니체는 우울한 존재이기만 한데 이 책에선 어떤 모습으로 말을 건넬지 모르겠다. 2. 저자인 발타자르 토마스는 독일계 프랑스인으로서 철학 교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감이 묘하다. 철학교수면 철학교수이지 철학교수 자격은 또 무엇?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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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울할 땐 니체? 니힐리즘의 대명사 니체가 우울한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다?

   아직은 나에게 니체는 우울한 존재이기만 한데 이 책에선 어떤 모습으로 말을 건넬지 모르겠다.


2. 저자인 발타자르 토마스는 독일계 프랑스인으로서 철학 교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감이 묘하다. 철학교수면 철학교수이지 철학교수 자격은 또 무엇?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연구하는 삶에 앞서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바 있고, 철학 강의와 글쓰기, 사진, 음악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철학에 감성을 더한 글을 기대해본다.


3. 저자는 서문이기도 한 '이 책의 활용법'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더 넓은 삶의 범위와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하겠다고 한다.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그리고 내다보기가 그것이다.


4. 니체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몸만 약한 것이 아니라 말년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정신병발작을 일으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다. 니체의 저서 대부분은 육신의 고통과 영혼의 불안정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질병을 통해 습관과 단절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질병은 나에게 늘어진 자세, 여가, 기다림과 인내에 대한 의무를 선사한다. 그러나 사유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질병의 가장 큰 선물이다."


5.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본다면, 질병은 가장 큰 고통 속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생명을 발견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니체는 '위대한 건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질병을 특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한다. "위대한 건강은 우리가 소유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고 있고 획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이 위대한 건강을 희생시키고 있으며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학문]


6. 니체가 육신의 질병 못지않게 진단하고자 했던 질병은 일명 '허무주의'다. 이는 존재가 의미를 갖지 않고 삶에 가치가 없으며 노력이 고통보다 가치가 없다는 자각, 모든 것의 가치는 동등해서 선과 악, 부와 빈곤,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 가치의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허무주의 : 이것은 목적이 결여되어 있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결여되어 있다. 허무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인가?"  [유고]


7. 삶에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원초적인 철학적 질문이다. 명쾌하게 답변 할 수 있는가? 나는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말로, 글로 표현했지만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 자체의 의미에 대해 자문해보길 원하고 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접근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삶의 의미를 판단 할 수 있으려면 삶에서 빠져나와 그 삶을 관조해야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8. 그렇다면 니체는 무엇이라 하는가?  "삶은 무엇인가? 이 점에 근거하여 삶을 더 명확하게 규정하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삶은 힘을 향한 의지이다."   [유고]


9. 저자는 '힘을 향한 의지'를 이렇게 풀이한다. '힘을 향한 의지는 세계라는 혼돈속에 어떤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물에 자신의 힘을 부과하는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10. 니체는 운명과 숙명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부여했다. 니체는 그의 저서 [즐거운 학문]을 통해 존재의 모든 양상에 대해 '예'라고 답하는 것이 쉽다고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적인 긍정의 원칙은 그의 눈에 원한, 양심의 가책, 허무주의에 대한 처방이 된다. 따라서 니체는 추하고 기괴한 것을 더 추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부정하는 대신에 그것을 본질적인 존재 양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1. 자신과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과 반대되는 이상을 열망하고, 자신을 넘어서서 또 다른 존재가 되길 원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특질이자 약점이다. 니체는 이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생명 자체는 나에게 비밀을 말한다. '보시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해요'라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2. 니체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인간은 자기 현실에서 도망침으로써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현실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서 초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충분한 긍정을 통해 초월할 수 있다. 신이 되기를 열망하는 대신에 온전한 인간이 되길 열망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마음에 담으면서 이 책이 나름대로 책 제목의 값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니체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굳이 우울할 때가 아니더라도 상관 없을 것 같다. 항상 우울하다면 어느 때나 무관하지만..



이달의 사락 s******5 2013.06.04.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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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또 다른 얼굴 [우울할 땐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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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철학책하면,,, 드는 생각은 고리타분하고, 어렵고, 두루뭉술한 말들이 일색인 책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물론,,, 잘 읽게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삶에 대한 고민, 잘 살아야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철학적인 질문들은 더 깊어지고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할 땐 니체>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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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철학책하면,,, 드는 생각은 고리타분하고, 어렵고, 두루뭉술한 말들이 일색인 책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물론,,, 잘 읽게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삶에 대한 고민, 잘 살아야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철학적인 질문들은 더 깊어지고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할 땐 니체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옳고 그름은 무엇인지,,, 철학책을 읽으면서 찾아야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풀어놓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에 관한 연구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삶의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답하는 철학을 만날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프리드리히 니체,

1844년 독일 레켄에서 태어난 니체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천재소년이었다. 열 살 무렵. 시를 짓고 작곡을 하고 생각을 조리 있게 전하는 출중한 입담으로 1864년 본 대학 신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승 빌헬름 리츨을 만나면서 철학에 눈을 뜬 니체는 24세에 스위스 바젤대 교수가 됐고, 쇼펜하우어의 추종자가 된다. <비극의 탄생>(1872)을 시작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권력의지’ ‘초인등의 개념을 잇 따라 내놓으며 유럽 사상계의 이단아로 떠올랐다. 출판사를 못 잡아 역작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를 사비로 출간할 정도로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인물이다. ‘광기의 철학자’ ‘시대의 이단자’ ‘예언자적 사상가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 걸 보면 그에 대한 평가는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울할 땐 니체의 저자인 독일계 프랑스인 철학 연구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니체의 허무주의를 통해 고통스러운 우리의 일상을 진단하고 있다. 우리의 사소한 행동과 습관을 바꾸는 데 집중하며 그것이 진정한 이론의 이해라고 역설하며 니체의 사상을 네 단계로 우리의 행동에 접목시켜간다. 일단, 먼저 문제의식을 설정하고 해결해야 할 우리의 증상, 즉 허무주의의 면면을 진단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스스로의 문제를 의식하고, 인정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2부에서는 그 증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 일상에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 양식이 필요한지 적용해 좀 더 멀리, 넓은 시야로 내다보며 삶의 궁극적 목적과 질문을 마주하라 얘기하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사실,, 현실에 접목해 쉽게 풀어놓았다하지만,, 역시 철학서는 철학서이기에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울할 때 읽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은 니체의 철학 이론에서 긍정의 단면을 이렇게 많이 찾을 수 있음에 놀랄 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하나 더 불면증이 있다면,,, 집중해 읽어도 좋으리라... 초콤,,, 빨리 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 -;;;)

 

 

 

 



n****5 2013.06.02.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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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정신으로 읽은 니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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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교수로, 문필가로 살았으나 생의 후반부는 질병과 정신의 광기로 자신과 타인들에게 고통을 안기며 비참하게 마친 니체라는 사상가에게서, 우리는 현재에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원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려던 니체는 공부를 통하여 기독교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고 자의로 신학을 버린다. 그가 저작들을 통해 기독교의 신을 비판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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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교수로, 문필가로 살았으나 생의 후반부는 질병과 정신의 광기로 자신과 타인들에게 고통을 안기며 비참하게 마친 니체라는 사상가에게서, 우리는 현재에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원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려던 니체는 공부를 통하여 기독교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고 자의로 신학을 버린다. 그가 저작들을 통해 기독교의 신을 비판하였지만 그리스도만 부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당시 유럽 사회에서의 부상하는 사상, 이론, 현상들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던 니체는 바그너를 좋아하게 되어 교류하였지만 바그너의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반감을 갖고 그와도 절교했다. , 독일 국가의 뛰어남을 신봉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거리를 두었고 반유대주의를 배격하였음은 물론이다. 놀랍게도 그는 현대 소비주의가 시작한 19세기 유럽의 물신을 마르크스 등장 이전에 예견하였고, 사회주의와 막 태동한 공산주의의 문제점도 거침없이 논쟁했다고 한다.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울할 땐 니체에서 1장은 진단하기, 2장 이해하기, 3장 적용, 4장 내다보기로 되어 있다.

 

1장 진단하기 파트에서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가 니체 철학에서 읽어낸 사상은 능동적 허무주의라고 난 받아들였다. 소극적 허무주의는 대체로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인간과 세계에서 허무함을 읽어내며 삶에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쯤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가 보기에 니체의 허무주의는 그렇게 얕지 않았고 서구의 오랜 철학을 전복시킬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삶이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는 니체의 한 마디가 그의 깊은 허무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니체가 살았던 19세기에서 한참이 지난 20세기와 21세기를 작가는 어떻게 보았을까? 작가는 니체가 비판하고 개념화한 이론 틀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고 현재를 단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니체가 활동한 당시에 그는 기독교를 강하게 비판, 거부함과 동시에 사회주의의 유행, 과학의 영향력도 부정했다고 한다. 발타자르 토마스는 니체 철학을 따르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20세기는 대체 종교가 그리는 이상향, 이데올로기, 신의 그림자들의 세기다. / 과도한 이윤 추구, 약물 중독이나 테러리즘을 통해 계속해서 지옥으로 추락된 이후 수십 년에 관해 말하자면 이 수십 년은 냉소주의나 우울증으로 이어진 허무주의의 시기였다.” (p.39~40)

 

2알량한 도덕은 버려라에서 저자는 좀 더 강하고 확신있는 어조로 니체의 원작을 통해 기독교가 역사에서 저지른 과오를 비난하고, 기존의 주류 철학, 역사관에서 벗어날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유신론자인 내게는 불편한 점이 있는 논리도 있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고, 만연체의 긴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한 리뷰어의 능력 부족 탓에 나의 해석이 완벽하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에겐 불쾌하게 다가갈 수도 있겠으나 내가 파악한 책의 논조는 기독교 사상은 신도들에게 '노예 근성을 주입해 왔다'는 것으로 들렸다. 종교와 성서에 대한 디테일한 저자의 지적들은 신학적인 얘기까지 거론해야 해서 본인의 깜냥을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말할 수 있는 점은 저자가 니체를 빌리어서 철두철미한 반 기독교의 사상을 계속 펼치고 있었다.

 

동감할 수 없는 이론도 있었으나 복잡한 철학적인 주제들이 많았다. 실제 있었던 서양사의 다양한 흑역사들에는 주의하여 읽게 되는 단락들이 있었다. 편파적이고 여러 층위로 꼬인 문장들 탓에 저자의 의도가 희석될 수도 있어 보였지만 독서 후 다른 조사를 해 봐야겠다는 동기 부여를 주었다.

 

니체 사상을 떠나 본서가 무척 낯설게 다가왔던 것은, 요즘 국내 출판계가 힐링풍의 에세이들이 주류여서 이렇게 직설적이고 때로 무자비하기까지 한 자세로 삶에 대해 피상적인 낙관주의를 갖는 풍토를 차갑게 지적한 교양서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타인을 그 고유성 안에서 이해하지 않고는 도울 수 없다.

타인은 우리의 방식으로 행복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필연적으로 불행하다고 가정할 때 연민은 강박이 된다. (p.146)”

 

독자가 잘못 읽으면 마치 저자가 모든 종류의 도덕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쉽게 말하면 자기가 체험으로 직접 깨달은 도덕으로 개인 자신의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당신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일이 있는가? 당신에게만 의미 있고 다른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일이 있는가? 그러면 이것이 당신의 참된 의무일 것이다.” (p.159)

 

 

니체주의자인 작가이지만 때로는 시대착오적이고 시대 흐름에 뒤쳐진 이론들을 거부하고 반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생물학에서 특히 위험한 우생학적으로 신체정신이 나약한 이들을 대의를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고 니체가 말한 강경한 저술에 대하여 그랬다.

(이러한 부분들이 히틀러 나치즘의 파시즘에 악용되었다.)  

 

발타자르 토마스를 통해 본 니체는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패권적 사고, 철학의 전반을 비판한 사상가로 느껴졌다. 19세기 독일과 유럽 사회에서 니체가 보기에 기득권의 영향력이 상당했고 그것이 바람직하기 보다는 혐오스럽게 여겨졌던 것 같다.

당대에 주류에 의심을 품어라’, ‘잘 정돈된 질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혼돈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니체 철학의 단편단편을 통해 엿보는 그의 사상이 무척 난해했지만 문장들만큼은 통렬하다.

 

,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니체는 기독교가 내세를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현세는 중요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으로 가르쳤고 심지어 삶을 경멸하게끔 만들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289페이지의 두, 세문단의 글에서 나는 좀 경악스러웠는데 그러한 논리가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자살을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기독교 예술인들의 아름답고 탁월한 고전 작품들을 알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현재의 삶에 대한 예찬,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것이라 느껴왔기 때문에 니체의 반기독교에 수긍하기 어려웠다.

 

또한 니체의 후반기 저작에 곳곳에서 장애인과 약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를 보이는 논리들도 참으로 이해되지 않고 반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밝혔듯 니체가 당시에 부패한 기독교 계층을 바라보며 가졌을 생각들과 그 속에 담긴 현실 비판의 메시지들은 통렬했다

니체의 초인 사상은 인간이 인생에서 삶이 주는 압박과 고통, 권태와 반복을 어떻게 자율적이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찰에서 나왔다. 비록 뇌의 기능을 잃어서 말년에 이탈리아 길거리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니체의 초인 사상이 뒤로 갈수록 망상에 가까워졌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니체의 원작을 독일어 서적 번역본으로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본서는 프랑스 작가가 집필했기에 그가 인용한 프레드리히 니체의 작품은 프랑스어본 일거라고 여겨졌다.

 

어려운 내용에 번역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학습하듯이 한 단락 한 단락마다 밑줄 긋고, 메모하며 열심히 읽었던 고역스런 책이었다.

도전에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쉬운 행복을 거부하는 데, 고통과 위험을 즐기는 취향에 대한 승리에, 존재의 부조리와 불확실성을 직면하는 데 있는가? 행복은 풍요로운 안녕, 확신을 주는 안락함, 익숙한 습관적인 행동, 유용하다는 느낌 중에 어디에 있는가?

미래의 위험 혹은 현재의 안전에 있는가 

이제 니체를 버리고 우리 자신을 찾을 시간이 되었다.’ (p.315)

 

YES마니아 : 로얄 b********5 2016.08.29.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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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니체 - 안 우울하면 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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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발타자르 토마스       제목을 보고 한참 고민했다. '우울할 땐 니체'라니. 나체가 아니고 니체다. 단순하게 보면, 이 책을 읽고 우울한 기분을 풀어버리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깐만, 니체가 개그 캐릭터였던가? 학교 다닐 적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 기독교, 특히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파시즘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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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발타자르 토마스

 

 

  제목을 보고 한참 고민했다. '우울할 땐 니체'라니. 나체가 아니고 니체다. 단순하게 보면, 이 책을 읽고 우울한 기분을 풀어버리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깐만, 니체가 개그 캐릭터였던가? 학교 다닐 적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 기독교, 특히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파시즘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니체의 숨겨진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기억을 못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니체는 개그 캐릭터가 아니었다. 하긴 철학자치고 유머감각이 탁월해서 저서를 읽으면서 실실 웃는 사람을 접한 기억이 없다.

 

  '1장 진단하기'를 읽으면서, '우울할 때 읽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년에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듀오가 내놓은 노래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가 떠올랐다. 아! 예전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읽은 부분이 생각났다. 확실치는 않지만, 온전히 뭔가에 빠져서 그 감정을 느껴보라는 말이었다.

 

  니체도 그러했다. 아파봐야 건강한 삶의 즐거움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저자도 질병을 통해 생명력을 발견하라고 말했다. 또한 질병은 자기 인식에 이르는 길이라며, 베토벤의 예를 든다. 질병이란 아마 몸에 깃든 온갖 병뿐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적인 고난도 포함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난 아프지 않고 내 삶을 고찰하고 싶은데……. 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니체의 사상에서 나왔나보다.

 

  '2장 이해하기'는 알량한 도덕은 버리라는 말로 시작한다. 뭘 이해하라는 걸까? 바로 삶이다. 나를 둘러싼 외부적이며 물리적인 환경, 모든 것이 혼란으로 가득한 이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내 삶을 정확하고 온전하게 이해하라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힘에 있다고 하는데, 그 힘의 의미는 뭔지 확실히 모르겠다. 육체적 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리라. 어쩌면 정신력을 말하는 게 아닐까? 요즘 용어로 쉽게 멘붕을 겪지 않는, 멘탈이 갑인 사람이 되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니체의 종교와 사랑에 대한 부분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기독교가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건 믿는 인간의 문제이지 종교 자체의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이상향을 실현한 것이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 말도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이 없었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외적인 제도로만 종교를 현실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적인 성장까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언제나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3장 적용하기'는 자기 자신이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중단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 한다. 금지하지 말고 다른 것을 허용하라는 말이다.

 

  문득 예전에 보았던 짤방이 하나 떠올랐다. 금연을 하기 위해 금연 껌을 씹다가, 나중에는 그것에 중독된 배우의 이야기였다. 니체가 말하는 건 바로 이런 건가?

 

  그 외에도 자신의 지식을 체화하고, 열정을 정신적으로 만들며,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라고도 한다. 물론 그러면서 약간의 쉼을 허용하라고 충고한다.

 

  '4장 내다보기'는 순간은 영원하다는 말과 함께, 예술과 종교 그리고 과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삶을 충실히 사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미래를 위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위인도 언급한다.

 

  결론 부분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책의 저자는 니체를 끌어들여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3장과 4장에서 나온 것들은 지금까지 읽었던 자기개발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얘기들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1장과 2장은 참으로 힘겨웠다.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인데, 괜히 니체의 사상을 얘기하면서 어렵게 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아니라 니체라는 한 철학자의 사상을 얘기하고픈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은 했다고 본다.

 

 



v********0 2013.06.02.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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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땐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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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땐 니체 표지가 참으로 인상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다. 니체라는 글씨안에 턱을 괴고 앉아있는 사진을 타이틀로 앞글자에 우울할땐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는데 우울할 글씨를 바라보고 있다. 철학적인 접근은 쉽지 않고 현재도 철학이라는 말은 힘들게 접근한다. 하지만 접근을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도 풀어가는 과정을 느끼는 책도 더러 있다. 빨간 띠로 지치 당신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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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땐 니체

표지가 참으로 인상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다.

니체라는 글씨안에 턱을 괴고 앉아있는 사진을 타이틀로 앞글자에 우울할땐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는데 우울할 글씨를 바라보고 있다.

철학적인 접근은 쉽지 않고 현재도 철학이라는 말은 힘들게 접근한다.

하지만 접근을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도 풀어가는 과정을 느끼는 책도 더러 있다.

빨간 띠로 지치 당신을 위해 니체가 이시대에 내리는 진단과 처방을 준다고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상과 닮은 것에 대한 철학적 사고와 생각을 찾아서 고민한다면 이책장을 열다가 느낄수 있다.

이책의 활용법을 먼저 제시하고 dLT다.

진리 문제의 접근이 아닌 독자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유도하면서

첫 째 장에서 진단하기, 두 번째 장은 이해하기, 세 번째 장에서는 적용하기, 네 번째 장은 내다보기로 우리를 니체의 사유로 이끄는 것을 통해 읽기 위한 책이 아닌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책이라는 것을 먼저 제시한다.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니체의 글들을 통해 철학적 진리가 아닌 우리 내면의 사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글을 설명하고 하고 있다.

19세기 철학의 여러 관념을 통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이끌 것이며, 니체의 사유가 우리의 삶을 바꿀수도 있다고 했다.

질병을 통해 허무주의와 연계를 보여줌으로써 생각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유도하고 있다.

도덕에 관한 삶의 관점을 보면서 도덕적 생각을 유도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본능과 적을 대한는 것을 길을 찾아서 볼수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한번 더 추구하게 된다.

안에서 봤다면 밖으로 볼수 있는 내다보기를 통해 순간을 통한 삶을 구성하면서 예술과 진리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된다.

삶은 단순히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닌 그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생각이 행동으로 옮길수 있도록 유도하는 철학서이다.

우리를 동요시키는 충동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196페이지)

니체의 사상과 니체의 철학을 잘 알지 못한채 읽다보면 어렵다고 느낄수 있다. 하지만 삶에 깊이를 좀 더 할수 있게금 만드는 책으로 우울할 때 보다는 한번 정리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읽어보기 좋은 책인듯 싶다.

맨 뒷표지에 세상만사 덧없다,

어디 한번 배운대로 살아보자라는 문구가 책의 정리해주는 문구이다.

 

j********1 2013.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뭐? - 니체의 압도적인 '리 프레이밍'!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뭐? - 니체의 압도적인 '리 프레이밍'!" 내용보기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삶이 우울하고 지쳐버린 당신은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정신과 상담의를 찾았다. 아주 학식있고 인자하게 생긴 상담의는 당신의 고백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준다. 그 모습에 왠지 신뢰가 가득 생겨버린 당신은 이제 정말 이 지긋지긋한 우울과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상담의가 내어놓을 처방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이윽고 상담의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뭐? - 니체의 압도적인 '리 프레이밍'!" 내용보기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삶이 우울하고 지쳐버린 당신은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정신과 상담의를 찾았다.

아주 학식있고 인자하게 생긴 상담의는 당신의 고백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준다. 그 모습에 왠지 신뢰가 가득 생겨버린 당신은 이제 정말 이 지긋지긋한 우울과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상담의가 내어놓을 처방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이윽고 상담의가 입을 연다.

 

 "당신이 현재 겪고 있는 아픔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하면서 그는 뭔가 내어준다. 약 같은 것인 줄 알았던 당신은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된다. 그건 분명 약 같은 게 아니었다. 네모나고 두터운 그것은 분명 책? 그래 책이었다.

 "이... 이게 뭔가요?"

 그런 당신의 질문에 상담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보시다시피, 책입니다. 니체의 책인데 제 생각엔 이게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일 듯 하군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반응은?

 

 아마도 그대로 뛰쳐나오지 않을까? '사람 놀리나?'하고 투덜거리면서. 우리가 아는 상식에선 얼른 이해되지 않는 일이니까. 당신은 계속 이렇게 투덜거릴 것이다. 니체야 말로 우울의 철학자 아니었던가?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고 늘 허무주의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그런데 뭐야? 우울한 나에게 니체라니! 이열치열, 이냉치냉이라는 건가? 무협지에 나오는 독을 독으로 해독하는, 뭐 그런 거?  말도 안 돼! 그런 게 가능할리 없잖아!

 

 이런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정말 그런 책이 나왔다. 그것도 당당히 '우울할 땐 니체'라는 제목을 가지고.

그러니까 당신이 만났던 상담의는 정말 존재했던 것이다. 그가 바로 독일의 철학 교수, 발티자르 토마스다. 전공이 정신분석이 아니라 철학이라서 과연 상담의 자격증을 어떻게 땄는지는 의문이지만...

 

 

 사진에서 보듯 이건 농담이 아니다. 지은이도 그냥 멋으로 적어놓은 제목이 아니다. 그건 책을 넘겨보면 바로 확인하게 된다. 그가 정말로 우울의 특효약으로 니체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목차에서 곧장 드러난다. 목차의 순서가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라는 순서로 되어있으니까. 뭐야, 이건 그야말로 상담 순서 그대로잖아!

 

  그동안 니체에 대해 다룬 책이 참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왜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을까? 발티자르 토마스는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 책의 활용법'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 책은 여느 철학책과 좀 다르다.(...) 대부분의 철학 서적은 특히 진리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이론의 토대를 닦는 데 모든 힘을 쓴 나머지 실제로 적용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와 달리 이 책에서는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위대한 철학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에 부여하는 의미까지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p. 9)

 

  그러니까 이 책이 이런 모양새가 된 것은 지은이가 이런 취지에서 책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적 이론에 골몰하기 보다 그 철학에서 실제 우리 삶에 쓸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한다. 이를테면 보다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주고 윤택하게 해 줄 것들을...

 

  니체를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우울의 특효약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의 우울이란 게 알고보면 무엇보다 세계에 대한, 그리고 그것에 결부된 우리네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해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컵에 반쯤 담긴 물을 보는 것과 같다. 같은 사물이지만 아시다시피 받아들이는 건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반 밖에 남지 않았구나' 생각할테고 또 어떤 이는 '반이나 남았구나' 생각할 것이다. 상황은 같은데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물론 개개인이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 해석에 따라 어떤 이는 비관적 우울에 빠지고 또 어떤 이는 낙관적 희망에 빠진다. 아마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를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는 우리의 감정 상태를 좌우하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개관적 상황이 나에게 영향을 미쳐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객관적 상황마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의 상태와 일치되도록 변형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객관적 상황이란 어디까지나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의 상태에 죄책감 없이 푹 잠길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핑계가 되는 셈이다.

 

  다른 또 한가지 사실은 상황이 그렇다면 정말 치유를 위해 바꿔야 할 것은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위의 단순한 사례에서 보듯이 우울과 희망의 갈림길은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놓여있었다. 그 해석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프레이밍(framing)' 이라 부른다. 이는 사진 용어로 카메라로 대상을 찍을 때 화면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우리가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 애시당초 해석 작용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내가 처한 상황이 바뀌어야 결국 치유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에 불과하고 보다 진정한 치유를 원한다면 궁극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프레이밍'인 것이다. 우리의 지혜로운 조상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분명히 제시한 바 있다. 그것이 바로 한 도사에 의해 호랑이로 바뀌어진 생쥐의 이야기다. 늘 고양이에게 쫓겨 우울했던 생쥐는 정신과 상담의와도 같은 도사를 찾아 이렇게 부탁한다. 제발 자신을 호랑이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더 이상 고양이에게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되니 자신의 삶은 더없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상담의는 그 소원을 들어준다. 생쥐는 소원대로 호랑이가 되었다. 하지만 생쥐의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호랑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쥐는 여전히 고양이를 두려워하고 피해다닌다. 상담의 도사는 '겉모습은 호랑이일지 모르나 속마음이 여전히 생쥐로구나'라고 하면서 호랑이가 된 생쥐를 도로 생쥐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상황을 해석하는 프레이밍이 바뀌지 않는한 진정한 치유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옛 선조들은 이런 우화로 이야기 한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 역시도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리 프레이밍(Re-Framing)' 이라 말한다.

 

  발티자르 토마스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일종의 '리 프레이밍'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우울의 특효약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니체야 말로 앨런 매길이라는 철학자가 그를 소개하며 최초의 '극단의 예언자' 라 불렀을만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세계를 그리고 삶을 해석하는 그야말로 '리 프레이밍'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존재해 왔던 철학사조들과 전혀 다르게 삶과 세계를 바라보도록 해 주었던 하이데거, 데리다 그리고 푸코. 그들 역시도 니체의 계승자들이다. 

  

  니체는 이를테면 '시각 교정자'이다. 길들여진 우리 눈을 교정하여 보지 못했던 것을 보이게 만들거나 보던 것들은 더욱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렇게 시력을 증강시키고 시야는 확대한다. 그러기에 예언자다. 예언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도록 알려주고 그 미래에 비추어 현재의 우리 모습이 진실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히 보게 하니까. 하지만 앨런 매길에 따르면 그는 보통의 예언자가 아니다. 극단의 예언자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 부터 전복시키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체가 행하는 '리 프레이밍'의 범위 또한 깊고도 넓다. 이를테면 전면적인 시각 교정인 셈이다. 발티자르 토마스가 하필이면 니체를 우울의 특효약으로 삼은 그 진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전복적으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과는 가장 반대쪽에서 나와 세계를 보게 할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과연 그에 의하면 많은 것들이 전혀 다르게 '프레이밍' 된다. 싫기만 한 고통도 오히려 삶의 향상을 위한 능동적 계기로 작용하며 우울의 바탕이 되는 허무주의도 사실은 전적인 긍정을 위한 토대가 된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은 마술이다. 니체는 마술사다. 그렇게 니체의 '프레스티지'는 내가 처한 세상의 색깔을 전혀 다른 색깔로 채색한다. 우중충한 우울과 낙담의 회색벽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았는데 니체의 손짓 하나로 가지각색의 꽃으로 만발한 화원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다. 니체의 철학엔 그런 게 있다. 스스로는 말년을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보냈지만 그의 철학만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보다 강한 긍정과 의지로써 단단히 이 삶을 부여잡게 한다. 그런 니체에게 우리의 무기력을 낳는 우울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 어떤 우리의 절망과 낙담을 초래하게 만드는 고통과 같은 삶의 부정적인 경험들조차도 지금 현재 나의 진실한 모습을 깨달아 부족한 부분은 메우고 보다 강한 부분은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진정한 자기 완성을 위한 자기 단련의 계기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니체의 재료들을 발티자르 토마스가 그러모아 우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취지대로 보다 실용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극단적 긍정의 예언자'라 할만한 니체 철학의 면모는 그리 자세히 소개되어있지 않으나 그런대로 정말 우리가 우울하거나 낙담할 때 어떻게 니체로 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는가는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발티자르 토마스가 원하는 대로 우울증의 특효약으로 얼마든지 쓰일 수 있는 책이지만 나로서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니까 보다 손쉽게 니체 철학으로 다가가게 해 주는 일종의 좋은 안내서와 같은 의미로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니체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원래 실용적인 목적으로 기획되었던 것이라 보통의 철학책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이 니체 철학과의 첫만남으로 좋지 않을까 싶어진다. 니체가 정말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이 책을 통헤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좀 더 갖게 된 관심에 더욱 보다 깊게 니체 철학을 알아보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시다시피, 요즘은 정말로 고통이 만연한 시기이다. 고통은 우리의 힘과 의지를 빼앗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타인과의 단절을 가져와 연대하려는 손짓을 거두게 만든다. 고통은 나를 나에게 가두고 근시안이 되도록 함으로써 결국엔 고통을 가하고 있는 현재를 영속시키는데 일조하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바닥부터 뒤집어 엎는 '리 프레이밍'의 철학자 니체가 오늘날 필요한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고통 혹은 절망의 '리 프레이밍'은 고통의 전혀 다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자기에로의 고립이 아닌,  레비나스가 그랬듯 타인과의 연대를 굳건히 시켜 줄 공감의 근거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프레이밍으로 나를 포획하려 드는 사회로 부터 탈주시키고 또한 그 탈주의 선들이 연대하여 지금 고통을 가하는 현재를 변화시키는 힘들의 언덕이 되어줄 지 모른다.  이것이 어쩌면 니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우울증 특효약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니체를, '리 프레이밍'으로 보다 자유롭게 나와 세상을 보고 싶다면 부디 니체를 접해보는 건 어떨까?

 

 

 

 



l****1 2013.06.06.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