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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운문 보다는 산문을 좋아합니다. 산문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운문을 싫어하는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문을 싫어하는 까닭 중에 하나는, 그 해석의 자유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산문이야 읽으면, 작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쉽게 알수 있지만, 운문의 경우에는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작가가 이런 글을 썼는지 알아내기가 힘들었고, 더욱이, 내가 느낀 그 느낌이 그 글의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몇몇 좋아하고 외우는 시들도 있습니다. 가령,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라든지, 황지우의 '늙어가는 아내에게', 나태주의 '풀꽃' 같은 시들은 외웁니다만, 좋아하는 시와 그렇지 않은 시의 명확한 분류기준이 없다는 것도 운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작가의 한결같은 감상평이 맘에 와 닿았습니다. 시 내용보다도, 한결같은 기준으로 그 시를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느낌만으로 충분하다는 그 자신감이 맘에 들었습니다. 작가가 관찰한 자연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현상에서 자신은 어떤 것을 느끼고, 작가가 사용한 현상의 표현법에 대해서 자신은 어떻게 느끼는지를 일종의 정형화된 틀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편자의 일관된 시 해석 방법은 교조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자유롭고 주관적인 감상 역시 시를 해석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시를 어렵게 느끼는 어른에게도 다시금 시를 읽는 재미를 알려주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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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에서 읽은 시 하상만 엮음 송진욱 그림 실천문학사
학교에서 지구과학 시간에 과학 동시를 쓰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직접 쓴 동시를 발표한다는 것이 좀 간지럽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잘 쓴 시를 보면 이런 시들이 생각보다 멋있다고도 느꼈다. 그리곤 딱히 과학 시를 찾아보려 하진 않았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수업 시간에 했던 것이 생각나서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이미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았었다. 그 때 인상적인 시를 고른 메모지가 아직도 책에 붙여져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시를 좋아한 것을 보면 시 취향은 한결같다고 느꼈다. 내가 고른 시는 손택수 시인의 <내 목구멍 속에 걸린 영산강>이다. 시의 내용은 할아버지는 붕어를 드시고, 돌아가신 후 땅에 묻혀 지렁이는 그 흙을 먹고, 붕어는 지렁이를 먹고 ‘나’는 붕어를 먹는다는 내용이다. 예전의 나는 이 시를 읽고, 먹이 사슬의 정점이 인간이라는 믿음을 깨트리는 시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약간은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다윈이 한 말 중에 “지구상의 모든 흙은 한 번은 지렁이의 몸을 통과했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시 속의 할아버지도, 이후에는 ‘나’도 지렁이에게 먹힌다는 얘기이다. 덧붙이자면, 인간의 잘못으로 수질 오염이나 토양 오염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2018.8.16.(목) 이은우 (고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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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에서 읽은 시 하상만 엮음 / 송진욱 그림 실천문학사
불과 불의 만남은 물 (우리가 물이 되어_강은교) <내 목구멍 속에 걸린 영산강> 손택수 시 (46쪽~47쪽에 실린 시)
① → ② → ③을 반복한다.
내 목구멍 속에 걸린 영산강. 지렁이가 붕어나 닭에게 먹힌다. 인간이 그 붕어나 닭을 먹는다. 인간이 죽고 묻힌다. 인간이 땅이 되고, 그 흙을 지렁이가 먹는다. 다시 지렁이를 물고기가 먹고, 닭이 먹고 그것을 인간이 먹는다. 그것인즉, 우리는 죽은 사람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지구상의 모든 흙은 한 번은 지렁이의 몸을 통과했다." - 다윈의 말 인간이 먹이 사슬의 가장 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뒤바꿀 기회를 주는 시이다. 나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 것 같고 매우 인상적이다. 먹이 사슬이 꼬여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화남풍경> 박판식 시 ( 65쪽에 실린 시) 아무 감정없게 느껴지던 '부력'이라는 과학원리 단어를 어미 당나귀 속의 새끼 당나귀를 감싸주는 양수를 이용하여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든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또 어미가 채찍을 받아도 새끼에게는 그 아픔이 가지 않게 도와주는 양수가 모성의 아름다움을 느껴지게 해준다. (^^ 글씨를 너무 잘 쓴듯하다. ^^) 2013.11.2.(토) 이은우(초등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