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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9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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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봄. 저자는 한 권의 책 앞부분에 들어갈 글을 썼다. 책 제목은 <사진의 털>. 좋은 사진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지만,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이 적잖이 당시의 이슈들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독서는 아니라는 평을 할 법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로 했던 건 망각의 능력이 어마어마하단 점을 잘 알아서였다. 불과 5년 전의 일임에도 당시를 살아가던 내가 어떠한 사건들을 접했으며, 어떤 기분을 느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고작 하루 전날의 일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누가 5년 전까지 세세하게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서서히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일들을 그리 쉽게 잊어도 되는가는 별개의 문제 같다. 이 책에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이 수록됐다. 2009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해이자, 용산 대참사가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목차의 제목만으로도 나의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왔다. 생각보다 참으로 팍팍한 시대였다는 생각이 목차를 읽었을 뿐임에도 절로 들었다. 모두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대기업에 몸담았던 그의 지난날이 근거 없는 신뢰감을 심어주었던 걸까. 2008년 그의 취임에 사람들은 적잖은 기대감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그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적임자였는지는 몰라도 사람을 살리는 데엔 그리 재능이 없는 인물이었다. 얼마 전 10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던 2009년 8월 경찰의 ‘쌍용자동차 사태’ 강경진압이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어 가능했음이 밝혀졌다. 이는 그의 집권 시기에 발생했던 숱한 폭력적인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진은 제주도, 그 중에서도 강정의 모습을 주목했으며, 나날이 붉어져만 가는 색깔논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폭력의 현장에는 가해자도 있기 마련인데, 저자의 카메라 렌즈가 담아낸 가해자의 모습은 너무도 풋풋했다. 솜털이 아직 남아 있는 팔뚝이라니. 그들이 과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알기는 했을 지가 궁금했다. 애초에 빚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감동의 현장도 사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크레인타워 위에 올라선 김진숙 님의 모습에 나는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지금은 뜸해진 트위터로 당시 상황을 거의 생중계마냥 전해 들으면서 나는 그저 ‘무사귀환’을 기도했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에 역설적이게도 희망버스라 이름 붙인 차량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갔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 중에 박종철의 아버지가, “박창수의 애비”가 계셨다. 절대 질 수 없는 투쟁이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전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지금은 절대 사용치 않을 법한 폰(스마트폰이라는 게 아직 존재치 않던 시절이다)을 손에 들고 있었고,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촌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던가!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 일들이 마치 방금 겪은 양 선명하게 떠오르는 놀라운 경험이 책을 읽는 내내 가능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성 언론은 결코 주목치 않았으며, 혹 다루었을지라도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시선만을 보이려 안간힘을 썼던 것들이었다. 올해의 보도사진이라며 주목 받는 사진들 중에도 그러한 것들이 많은 게 오늘날의 일이다. 실력이라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돈으로 좌지우지가 가능하단 걸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마음의 눈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세상이 저자의 사진에는 담겨 있었다. 그 점만으로도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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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마음때문이었다. 낙서장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어느 순간 사진이 없으면 가시성이나 내용이 단조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이후부터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사실 포스팅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게 되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피사체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보낼 사진이 아니라면, 포스팅을 염두에 두지 않은 사진들엔 조금 소홀해지고 있었다. 여튼 나의 블로그 활동에 사진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이엔드 레벨의 사진기로 특별한 조작기술없이 장면설정을 통한 연출만으로 찍어올리는 사진이지만, 주제를 설정한 사진들은 희미하지만 나름의 특징이나 분위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 블로그에서 사진이 일순위로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일차적으로 고민하며 블로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은 다만, 글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글과 함께 게재된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다짐한 것은, 사진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키기 매우 힘든 다짐이었다. 어떤 포스팅이나 특정 카테고리의 글들은 어쩔 수 없거나, 떠오르지 않는 글을 억지로 써야 하거나, 무의식중에 저절로 사진을 설명하는 글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의 다짐과 비교해보면 그런 포스팅은 조금 부끄러운 글들이 되어버렸는데, 뒤돌아보는 나의 블로그에서 그런 포스팅들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걸 보면 나도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도 앞에서 밝혔듯이 서로 상보적으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끌어주는 글과 사진의 관계는 나의 블로그에서도 추구하는 정말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글의 내용과 사진의 모습이 뭔가 어울리지 않더라도, 종국에서는 왜 이 글과 사진이 어울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깨달음을 주는, 그런 포스팅으로 내 블로그를 채워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런 글과 사진이 깨달음 이후에 주는 마음의 울림까지 만들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진다면, 나는 블로거로서 더할나위없는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과 바램을 가진 나는 이 책을 엮어낸 저자가 무척 부러워질 수 밖에 없다. 글을 읽다가 사진을 보면 때로는 왜 이 사진인가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또는 사진먼저 보다가 글을 읽으면 좀 생뚱맞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서는 왜 그 사진인가 또는 그런 글인가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 한쪽을 은근하게 후비며 배지근한 열감을 자아내는 섬세함 또는 깊이가 느껴진다. 저자는 사진작가인가 아니면 글쓰는 이인가 싶을 정도로 글과 사진의 조합은 정말 애틋하다. 그것이 시대를 공감해온 근저의 시사성있는 주제이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날선 칼로 베기보다는 둔중한 누르개로 지긋한 힘으로 눌러 배어나오는 진액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여튼, 사진과 글의 조합이 보여주는 어울림과 차분함은 블로거인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며 본받고 싶은 작업이자 능력이다. 그런 깊이는 어디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진의 기술을 터득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으나, 글의 깊이와 글과 사진의 애틋한 조합은 욕심부려보고 싶은 요소이다. 단편의 나열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장을 덮고나서도 이어지는 어떤 여운은 쉽게 넘어볼 수 없는 높이임을 직감하기에 나의 욕심은 아직 오만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