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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한테 머리띠를 주지 마셔요 (사진의 털)
"사진가한테 머리띠를 주지 마셔요 (사진의 털)" 내용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59   사진가한테 머리띠를 주지 마셔요― 사진의 털 노순택 글·사진 씨네21북스, 2013.5.14.     잡지 〈씨네21〉에 주마다 싣는다는 사진이야기 가운데 여든 꼭지를 그러모아서 선보인 노순택 님 《사진의 털》(씨네21북스,2013)을 읽습니다. 어느 날 어느 시인과 어느 공장을 찾아갔더니 “전기가 끊긴 창문 없는 공장 안에서, 시인은 내게 사진을 찍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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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9

 


사진가한테 머리띠를 주지 마셔요
― 사진의 털
 노순택 글·사진
 씨네21북스, 2013.5.14.

 


  잡지 〈씨네21〉에 주마다 싣는다는 사진이야기 가운데 여든 꼭지를 그러모아서 선보인 노순택 님 《사진의 털》(씨네21북스,2013)을 읽습니다. 어느 날 어느 시인과 어느 공장을 찾아갔더니 “전기가 끊긴 창문 없는 공장 안에서, 시인은 내게 사진을 찍으라고 명하였다(25쪽).”고 합니다. 그래서 노순택 님은 전기가 끊긴 깜깜한 공장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창문도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장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라고 하잖아요. 시인이 사진을 찍으라고 하잖아요.


  시인은 나중에 시를 썼을까요. 썼을 수 있고 안 썼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쓸 생각일 수 있고, 어쩌면 안 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사진가는 언제나 바로 이곳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가는 다른 곳이나 다른 때라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다시 꾸며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무대를 만들거나 모델을 세워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상황이든 무대이든 모델이든 늘 바로 이곳에 있을 때에 찍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없으면 다시 꾸민 상황이나 무대를 찍지 못하고, 다시 꾸민 상황이나 무대가 있더라도 바로 이곳에 있어야 사진을 찍습니다.


  노순택 님은 어느 사진잔치 자리에서 겪은 일을 “형사님들은 이른바 ‘채증’을 위해 갤러리를 샅샅이 촬영했다. 그분들도 관람객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누가 우리 작품을 이렇게 세심한 각도로, 이렇게 정성을 담아 카메라에 담아 주었던가(37쪽).”와 같은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전시관을 샅샅이 찍었다는 형사님이란 얼마나 놀라운 관람객일까 궁금합니다. 참말 어느 관람객도 이렇게 사진을 찍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요모조모 샅샅이 찍으며 ‘채증’을 하는 관람객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잔치 자리를 찾아가는 관람객은 이녁 사진기가 아닌 이녁 마음에 사진 작품을 담기 때문입니다. 이녁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우고 싶으니 사진잔치 자리에 가요. 이녁 마음을 새롭게 북돋우면서 가슴속에 고운 사랑을 심고 싶기에 사진잔치 자리에서 즐겁게 눈빛을 밝힙니다.


  사진을 읽거나 글을 읽거나 늘 똑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겉글을 읽으면 속글을 알 수 없어요. 겉사진을 읽으면 속사진을 알 수 없습니다. ㅈㅈㄷ신문을 읽을 적이든 ㄱ이나 ㅎ신문을 읽을 적이든 똑같아요. ㅈㅈㄷ신문만 속살을 파헤치듯이 읽을 일이 아닙니다. ㄱ이나 ㅎ신문도 속살을 제대로 파헤치면서 읽을 노릇입니다. “찍혀 있는 사진을 읽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사진이 보여주는 걸 보되 그 사진이 감추고 있는 게 무엇인지 추리하는 것이다(64쪽).”와 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에 나오는 사진은 무엇인가를 감춥니다. 아니, 감춘다기보다 추리소설을 쓴다고 해야 할 테지요. 추리소설을 쓰는 글과 사진이 넘치니, 신문 독자나 잡지 독자로서는 스스로 탐정이나 형사가 되어 꿍꿍이를 찾아내야 합니다.


  아무래도 오늘 이 나라는 살기에 재미가 없기 때문에 추리소설 같은 글과 사진이 넘칠는지 모릅니다. 참을 참 그대로 이야기하면 밋밋하거나 따분하니, 한 꺼풀을 씌우거나 두 꺼풀을 입히려 하는지 모릅니다. 저마다 계급과 신분과 학력과 돈과 이름값 따위를 앞세워서 잇속과 기득권을 거머쥐려 하니, 추리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꿍꿍이를 감출 수 없는지 모릅니다. 어깨동무하려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고,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1등이 되려 하니, 기자도 작가도 추리소설 작가가 되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참말은 아주 쉽습니다. “전쟁은 산 것을 죽일 뿐, 그것이 누구의 삶인지, 어떠한 삶인지 가리지 않는다(147쪽).”와 같은 말처럼, 참말은 아주 쉽습니다. 전쟁은 산 것을 죽입니다. 게다가 전쟁은 죽은 것도 다시 죽입니다. 전쟁은 모두 다 죽입니다. 전쟁은 사람도 죽이고 풀과 나무도 죽입니다. 전쟁은 숲을 죽이고 지구별을 죽입니다. 전쟁은 사랑을 죽이고 꿈을 죽입니다.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찾지 못합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는 무기이지, 평화를 누리려는 빛이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면서 밥그릇을 챙기려는 무기이지, 어깨동무하는 모둠살이로 나아가려는 웃음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안보의 이름으로 짓밟혀도 좋은 평화’란 성립 가능한 언어일까. 안보의 이름으로 찢겨도 좋은 ‘타인의 공동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194쪽).”와 같이 물을밖에 없습니다. 짓밟혀도 될 만한 평화란 없습니다. 밟혀도 되는 권리란 없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야 하니, 연습이나 훈련을 할 적에 두들겨패도 되지 않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오직 금메달을 따도록 엘리트 체육선수 몇 사람만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어 키워야 하지 않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 맛을 보고자, 앳된 운동선수한테 갖은 욕설을 일삼거나 얼차려를 주어도 되지 않습니다.


  사진가 노순택 님은 “뉴델리의 거리에서 요청됐던 사진가의 윤리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죽음과 그 이유를 증언해 달라는 잠펠 예시의 호소를 전파하는 것이었을까, 눈앞의 불을 끄는 것이었을까(241쪽).” 하고 묻습니다. 사진길 걷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이 물음을 받아 되묻고 싶습니다. 시골 흙일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골마을 논밭에 농약과 비료를 뿌려야 시골 흙일꾼이 될까요.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과서에 적힌 대로 아이들을 대입시험지옥으로 내몰면 될까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때맞춰 예방주사를 놓고 때맞춰 유치원에 넣으며 때맞춰 영어를 가르치고 때맞춰 학원과 대학교에 집어넣도록 돈을 착착 벌면 될까요.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사진가는 머리띠를 두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가는 이쪽에 서지 않고 저쪽에 서지 않습니다. 사진가한테는 이쪽 저쪽이 없습니다. 사진가한테는 사진만 있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입니다.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있을까요. 큰아이가 예쁠까요, 작은아이가 예쁠까요. 어버이는 두 아이를 놓고 누가 더 예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이는 두 어버이를 놓고 어머니가 좋은지 아버지가 좋은지 가를 수 있을까요? 어버이한테도 아이한테도 오직 한 가지만 있어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진가한테 사진만 있는 까닭도 하나입니다. 사진가한테 있는 사진이란, 삶을 담는 사진이고, 사랑을 찍는 사진이며, 빛을 나누는 사진입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과 사랑과 빛을 꿈꿉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과 사랑과 빛을 노래합니다. 시골 흙일꾼은 흙 한 줌으로 삶과 사랑과 빛을 노래합니다. 교사는 교과서 아닌 ‘참사람’다운 모습으로 이끄는 넋을 들려주면서 삶과 사랑과 빛을 이야기해요.


  그나저나, 노순택 님은 머리띠를 두른 사진가이거나 활동가일까요. 아직 머리띠를 안 두른 사진가이거나 활동가일까요. 앞으로 머리띠를 두르고야 말 사진가이거나 활동가일까요. 아직 어느 길머리에 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진가와 어버이와 참사람과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서, 여기에 ‘한국사람’과 ‘서울사람’이라는 자리에 서서 이 나라를 바라봅니다. 노순택 님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곰곰이 지켜봅니다.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이달의 사락 h*******e 2014.02.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고자 애써야 보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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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봄. 저자는 한 권의 책 앞부분에 들어갈 글을 썼다. 책 제목은 <사진의 털>. 좋은 사진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지만,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이 적잖이 당시의 이슈들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독서는 아니라는 평을 할 법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로 했던 건 망각의 능력이 어마어마하단 점을 잘 알아서였다. 불과 5년 전의 일임에도 당시를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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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봄. 저자는 한 권의 책 앞부분에 들어갈 글을 썼다. 책 제목은 사진의 털>. 좋은 사진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지만,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이 적잖이 당시의 이슈들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독서는 아니라는 평을 할 법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로 했던 건 망각의 능력이 어마어마하단 점을 잘 알아서였다. 불과 5년 전의 일임에도 당시를 살아가던 내가 어떠한 사건들을 접했으며, 어떤 기분을 느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고작 하루 전날의 일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누가 5년 전까지 세세하게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서서히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일들을 그리 쉽게 잊어도 되는가는 별개의 문제 같다. 이 책에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이 수록됐다. 2009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해이자, 용산 대참사가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목차의 제목만으로도 나의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왔다. 생각보다 참으로 팍팍한 시대였다는 생각이 목차를 읽었을 뿐임에도 절로 들었다.

 

모두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대기업에 몸담았던 그의 지난날이 근거 없는 신뢰감을 심어주었던 걸까. 2008년 그의 취임에 사람들은 적잖은 기대감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그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적임자였는지는 몰라도 사람을 살리는 데엔 그리 재능이 없는 인물이었다. 얼마 전 10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던 20098월 경찰의 쌍용자동차 사태강경진압이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어 가능했음이 밝혀졌다. 이는 그의 집권 시기에 발생했던 숱한 폭력적인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진은 제주도, 그 중에서도 강정의 모습을 주목했으며, 나날이 붉어져만 가는 색깔논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폭력의 현장에는 가해자도 있기 마련인데, 저자의 카메라 렌즈가 담아낸 가해자의 모습은 너무도 풋풋했다. 솜털이 아직 남아 있는 팔뚝이라니. 그들이 과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알기는 했을 지가 궁금했다. 애초에 빚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감동의 현장도 사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크레인타워 위에 올라선 김진숙 님의 모습에 나는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지금은 뜸해진 트위터로 당시 상황을 거의 생중계마냥 전해 들으면서 나는 그저 무사귀환을 기도했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에 역설적이게도 희망버스라 이름 붙인 차량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갔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 중에 박종철의 아버지가, “박창수의 애비가 계셨다. 절대 질 수 없는 투쟁이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전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지금은 절대 사용치 않을 법한 폰(스마트폰이라는 게 아직 존재치 않던 시절이다)을 손에 들고 있었고,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촌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던가!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 일들이 마치 방금 겪은 양 선명하게 떠오르는 놀라운 경험이 책을 읽는 내내 가능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성 언론은 결코 주목치 않았으며, 혹 다루었을지라도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시선만을 보이려 안간힘을 썼던 것들이었다. 올해의 보도사진이라며 주목 받는 사진들 중에도 그러한 것들이 많은 게 오늘날의 일이다. 실력이라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돈으로 좌지우지가 가능하단 걸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마음의 눈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세상이 저자의 사진에는 담겨 있었다. 그 점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달의 사락 q*****2 2018.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글과 사진이 만들어내는 둔중하고 배지근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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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마음때문이었다.  낙서장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어느 순간 사진이 없으면 가시성이나 내용이 단조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이후부터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사실 포스팅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게 되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피사체가 되
"글과 사진이 만들어내는 둔중하고 배지근한 조화" 내용보기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마음때문이었다.  낙서장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어느 순간 사진이 없으면 가시성이나 내용이 단조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이후부터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사실 포스팅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게 되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피사체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보낼 사진이 아니라면, 포스팅을 염두에 두지 않은 사진들엔 조금 소홀해지고 있었다.  여튼 나의 블로그 활동에 사진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이엔드 레벨의 사진기로 특별한 조작기술없이 장면설정을 통한 연출만으로 찍어올리는 사진이지만, 주제를 설정한 사진들은 희미하지만 나름의 특징이나 분위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 블로그에서 사진이 일순위로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일차적으로 고민하며 블로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은 다만, 글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글과 함께 게재된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다짐한 것은, 사진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키기 매우 힘든 다짐이었다.  어떤 포스팅이나 특정 카테고리의 글들은 어쩔 수 없거나, 떠오르지 않는 글을 억지로 써야 하거나, 무의식중에 저절로 사진을 설명하는 글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의 다짐과 비교해보면 그런 포스팅은 조금 부끄러운 글들이 되어버렸는데, 뒤돌아보는 나의 블로그에서 그런 포스팅들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걸 보면 나도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도 앞에서 밝혔듯이 서로 상보적으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끌어주는 글과 사진의 관계는 나의 블로그에서도 추구하는 정말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글의 내용과 사진의 모습이 뭔가 어울리지 않더라도, 종국에서는 왜 이 글과 사진이 어울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깨달음을 주는, 그런 포스팅으로 내 블로그를 채워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런 글과 사진이 깨달음 이후에 주는 마음의 울림까지 만들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진다면, 나는 블로거로서 더할나위없는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과 바램을 가진 나는 이 책을 엮어낸 저자가 무척 부러워질 수 밖에 없다.


  글을 읽다가 사진을 보면 때로는 왜 이 사진인가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또는 사진먼저 보다가 글을 읽으면 좀 생뚱맞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서는 왜 그 사진인가 또는 그런 글인가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 한쪽을 은근하게 후비며 배지근한 열감을 자아내는 섬세함 또는 깊이가 느껴진다.  저자는 사진작가인가 아니면 글쓰는 이인가 싶을 정도로 글과 사진의 조합은 정말 애틋하다.  그것이 시대를 공감해온 근저의 시사성있는 주제이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날선 칼로 베기보다는 둔중한 누르개로 지긋한 힘으로 눌러 배어나오는 진액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여튼, 사진과 글의 조합이 보여주는 어울림과 차분함은 블로거인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며 본받고 싶은 작업이자 능력이다.  그런 깊이는 어디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진의 기술을 터득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으나, 글의 깊이와 글과 사진의 애틋한 조합은 욕심부려보고 싶은 요소이다.  단편의 나열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장을 덮고나서도 이어지는 어떤 여운은 쉽게 넘어볼 수 없는 높이임을 직감하기에 나의 욕심은 아직 오만일 뿐이다.

h*****1 2013.1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