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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진짜... 울고 싶어졌다. 지금 현재의 미국 상황을 비판한 책이라지만, 우리는 미국을 쫓아가고 닮아가려 노력하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이 책에 나온 그야말로 끔찍한 내용들 중 일부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실현되었으며 나머지도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기에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암울하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정권을 잡은뒤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우리 아이들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이래서 우리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거다!)
기업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규제에서 해방되어 오직 이익만을 최우선시한다. 어린이의 세기라는 20세기에 겨우 '아동의 권리'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신자유주의 개혁의 마지막 30년에 '어린이의 이익 최우선'이 아닌 '기업의 이익 최우선'이 법에 명시되며 아이들을 보호할 능력이 되는 부유한 나라에서조차(여기서는 미국) 기업의 이기적인 이윤 추구를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킨다.
기업의 탐욕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다. 오직 이윤 추구를 위한 놀라운 마케팅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혹은 선택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기업의 전략 속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중독성 있는 게임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니켈로디언과 빅브라더식 통제를 연상시키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 소아정신과의 무책임한 진단과 처방 남발(그것도 제약 회사의 영향력 하에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다량 배출하는 발암물질, 신경 독성 물질, 호르몬 교란 물질 등 다양한 화학물질, 남이 들어간 페인트와 휘발유 회사의 로비 활동, 리복 기념품 펜던트를 삼키고 납중독으로 사망한 네 살 소년, 믿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아동노동법 하에서 혹사당하는 어린 아이들(미국에서!), 공교육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끌어들여 학교를 폐쇄하고 결국 십대 소년들의 싸움과 죽음을 유발한 르네상스 2010, 교육 민영화 일제고사의 딜레마...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섬뜩했다. 경제적 이익이 최상의 가치로 인정되는 시대에 연약하고 설득되기 쉬운 소비자인 우리 아이들은 철저하게 휘둘리며 상처 받고 있었다.
저자 조엘 바칸 역시 열세 살, 열네 살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조르는 상황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은 과연 살기 좋아진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ㅠ.ㅠ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 거대 기업의 횡포와 무시무시한 영향력 하에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절망적이다...
"사회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만큼 그 사회의 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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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고 한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부모들이 제 아이의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성공에 목말라하는 순간에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아이들의 삶이 마치 기업의 노예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극도의 소비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니 특정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마치 부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눈만 뜨면 TV에서 광고를 해대고, 필요한 게 있어 방문한 가게에서는 극진한 태도로 “고객님”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필요도 없음에도 구입한 게 그리하여 얼마나 많았던가. 잠재적 소비자가 아니라 이미 엄연한 소비자의 대열에 들어선 우리의 아이들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적잖은 비용을 매일 지출하며 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이 그리 윤택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래도 물건을 구입하는 주체로서의 아이들은 조금 사정이 나은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전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기업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함으로써 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를 자신의 고객으로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그냥 놔둬도 무방할까? 대답은 “아니오”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그대로 노출되는 일은 전세계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저자가 다룬 것은 미국 사회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굳이 수록된 사례들이 미국의 것임을 인식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법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는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막장’이다. 이타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적이 되어 상대를 헐뜯고 할퀴기에 바쁘다. 폭력적으로 뒤틀린 관계는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간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드라마가 시작하기에 앞서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기에는 특정 연령대는 되어야 한다는 식의 문구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누군가가 나서 텔레비전을 끄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막 10살을 넘은 아이도 별 제재 없이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된다. 사이버 공간 상에 존재하는 각종 사이트들도 폭력적이긴 마찬가지다. 성적인 장면을 연출해가며 모두의 눈과 귀를 멍하게 만드는 포르노 사이트만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용대상을 아예 청소년으로 규정한 사이트일지라도 왜곡된 성 의식을 주입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꽤 된다. 부모가 나서 아이를 단속하는 일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미온적인 태도다. 부모가 24시간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업들의 자중과 정부의 강력한 제재 의지가 필요하다. 누가 보아도 폭력적이지 싶은 위의 사례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좀 더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면 부모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좀 산만하지 싶어 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니 ADHD라는 처방과 함께 약을 준다면? 우습게도 이를 공부를 잘 하게 만들어주는 약이라며 넙죽 받아먹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마냥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잘 다독이고 보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아이에게 약물을 먹이고, 혹 그로 인하여 되돌릴 수 없는 부작용이라도 발생한다면 그 때의 책임은 누가 져야 마땅할까? 장삿속에 눈이 멀어 필요치도 않은 처방을 했던 소아정신과 의사들과 제약회사들의 사례가 비단 미국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미국의 것이라면 옳거니, 긍정적 부정적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곤 했던 우리니 이 또한 이미 충분히 흡수해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벌어들인 돈에는 우리 아이들의 피가 묻어 있을 수도 있으며 우리 사회의 시름시름 앓는 미래가 그려져 있을 수도 있음을. 아이들은 행복해야만 한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공부를 못하건 잘하건.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극소수만이 행복할 수 있는 체계를 점차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바늘구멍을 하나 뚫어 놓고는 아이들더러 그 구멍에 맞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주문을 한다. 장시간 학교에서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공부하는 기계를 닮았다. 노력 끝에 원하는 대학에 갔다 하여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때부턴 기업이 원하는 일꾼의 모습이 되기 위해 부단히도 스스로를 재단한다. 인간 아닌 인력을 양성하는 사회엔 희망이 없다. 바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본다. 난 정녕 행복했던가? 그래도 초등학생 무렵엔 제법 행복했지 싶다. 중학교 때까지도 그럭저럭.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턴 단호하게 “불행했다”는 대답을 하련다. 요즘 아이들은 불행의 연령대가 우리 때만큼 높지 못하다. 초등학교 때도 학원을 여러 개 다닌다. 유치원도 영어 유치원. 심지어 말을 시작하기도 무섭게 과외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아이 스스로가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의 욕심에 기대어, 사회에서 필요하다 강요하니까 행하는 건 결코 아이를 위하는 게 아니다. 결론은 이리 빤하고 또 쉬운데 실천이 어렵다. 이미 너무도 많은 부분이 뒤틀려서 이를 바로잡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두렵다고 망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작하는 그 순간 이미 우린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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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K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 < 내아이를 위협하는 나쁜 기업에 관한 보고서>
RHK의 새로나온 책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민감한 이야기인데요.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직 판단하기 어려워 기업의 이윤추구에 먹이감이 되기 쉬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의 감성이나 특성을 노리고 만들어진 제품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되는데요. 가까운 예로 학교앞 문구점에 가보면 정체를 알수 없는 물건들이 많다. 대부분 어디서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불량식품에서 부터 알수 없는 종류의 화학 장난감들.. 어느 날 아이가 액체괴물을사달라고 졸라서 살펴보니 원료가 무엇인지도 적혀있지 않고 강한 인공향과 만지면 차갑고 이상한 느낌이 나는 겔타입의 장남감이였어요. 아이들은 신기해 던지면서 노는데 특이하다보니 너도나도 사서 던지고 놀더라고요. 또 문구점 주인은 아이들이 문구점으로 들어올때 새로나온 불량식품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권하는 걸 보았어요. 우리 아이한테는 되도록 가지 말거나 사지 말라고 이야기 해놓았지만 언제가지 막을 수는 없겠죠. 본 내용속에 게임이야기를 들었을땐 정말 앞이 캄캄했어요. 성인도 아닌 아이들이 잔인한 게임에 빠져 즐긴다는 점에 말이죠. 저희 아이 친구들도 휴대폰만 보면 게임을 내려받고 해보고 친구들앞에서 점수를 자랑하는 모습을 많이 받고 저희 아이도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도 해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부모가 이런 유해함을 알고 피해 갈수도 있지만 선택권이 없을 때도 많죠. 아이들이 먹는 먹거리, 용품,또 의약품까지 .. 이 책은 그러한 문제를 부모가 인식하고 이러한 병폐를 벗어나기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였지만 한 아이의 부모이기에 그냥 넘어갈수 없는 문제이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머릿말이예요. 읽다보니 마음이 참 무거워지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업의 부도덕한 이윤추구로 위험에 처해 있는 아이들...
차례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이런 내용들이 좀 더 공감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 저학년이지만 앞으로도 걱정이 되네요. 사후조치보다 사전예방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도록 노력하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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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느낌은, ‘멍’함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주류를 이루는 기업의 횡포가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이것은 현재를 만족하기 위해 미래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디어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부분이긴 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때 기업과 자본주의에 철저히 속은 것 같아 참 부끄러웠다. 이 책에서는 아이를 둘러싼 환경체계로 부모, 정부, 기업을 언급한다. 좋은 부모의 역할은 ‘제대로 걱정하는 능력’이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관심이 부모들에게는 결여되어있다. 정부는 기업에 ‘보이지 않는 손’을 팔아버린 채 방관하고 있다. 기업은 두려움을 조장하거나 축소하여 혼란스럽게 만든다. 1장에서 밝히듯 아이들을 향한 기업의 횡포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세에는 어린 시절이 따로 없을 만큼 한명의 인격체로 대접받았던 아이들이 19세기부터 보호받아야할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며 ‘유모국가’는 없다는 기치아래 아동보호는 점점 사라졌고, 2008년 경제가 거의 붕괴되기 전부터 정부는 관련 기업의 무오하고 이기적인 행위에 대해 눈을 감아주게 된 것이 현대의 횡포로 확장되었다고 본다. 이는 어린이 마케팅(2, 3장), 소아정신과와 제약회사(4, 5장), 화학물질(6, 7장), 농장관계자(8장), 교육업체(9, 10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치밀한 방법들로 이루어졌다(각 장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행태에 대해 너무나도 자세하고, 직설적으로 잘 다루고 있기에 꼭 일독할 것을 권장한다). 다음세대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장마다, 그리고 결론에서 알려준다. 목소리를 내고(부모), 규제를 만들고(정부), 자숙과 책임을 져야한다(기업). 아이를 단순한 소비자와 구매자로, 이윤창출의 도구로 바라보는 차원을 넘어서 한 인격체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고찰 대상’이 되도록 우리는 힘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유일한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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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라고들 말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 뿐만 아니라 교사, 학교, 정부 등이 아이들의 보다 좋은 교육과 환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보다 좋은 교육과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각자가 다 다르겠지만, 어떤 방향으로 선택하더라도 최종 목적은 아이들이 성장한 미래에서의 행복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미래의 주체인 아이들은 자신들이 한 인간 존재로서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또한 자신들의 현실을,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투자해야 하는 현실을 행복해하고 있을까? 만약 행복해하지 않는다면 왜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무엇이 아이들을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은 21세기 초반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10대들을 위협하고 있는 부모, 교사를 포함한 인간관계와 기업과 정부를 포함한 주위의 주변 생활환경, 특히 작고 연약한 아이들을 자신들의 물품소비자로만 생각하는 거대기업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어른들의 각성과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민주시민으로서 행동할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아이들이 의식하고 있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든 수많은 폭력과 선정적인 중독성 게임과 방송들, 그리고 쓰레기 음식과 부작용이 감춰진 의약품들, 인체에 미치는 엄청난 악영향을 감춘 채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들, 그리고 아이들의 학습결과를 단순한 숫자로 표시되는 기업들의 회계결과처럼 만들어 비교함으로써 아이들을 단순기술자로 만들어버리는 교육단체와 정부, 이와 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교묘히 마케팅하여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이런 기업들에게서 떡고물을 받아먹으면서 기업의 어두운 면을 감춰주는 학자들과 연구소, 정부관계자들에 대해서도 비판하다. 그리고 이러한 감춰진 사실들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험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부모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사회에서 자기만의 인격을 개발하고, 개인으로서 발전하고, 밀이 말한 “고귀하고 아름다운 고찰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시절이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업계와 기업이 아이들의 나약함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아이들의 이익은 뒷전으로 미루다 보니, 어린 시절이 수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런 상황은 반드시 막아야 하고, 막을 수 있다.” - P. 27.
“중독과 미디어 폭력, 선정성, 소비지상주의, 건강에 해로운 상품은 “어린 시절의 핵심 교과과정”의 주제다. 이 교과과정을 만든 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어린이와 어린 시절에 전에 없던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위를 자랑했다. 그런 기업에게는 오직 이익만이 진정한 목표였다.“ - P. 78.
저자는 20세기를 ‘아이들의 세기’라고 말한다. 20세기, 그중에서도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채택되기 전까지의 시기는 아이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환경과 생활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규제들이 시행되었고, 아이들은 보호받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가는 더 이상 규제를 강화하지 못하게 되었고, 도리어 그마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규제마저 기업들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해, 그럼으로써 기업들의 무한한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위해 폐지해 갔으며, 아이들의 마지막 보루인 교육마저도 객관적인 숫자를 우선시하는 사기업적인 경영논리를 받아들였고, 점점 민영화된 공기업들과 같은 수순을 밟아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로 아이들과 10대를 소비자로 하는 기업과 교육관련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아이들 문화를 생산하는 측은 잔인하게도 의도적으로 ‘중독’을 양산한다. 아이들에게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유일한 목표에 따라, 자사 상품에 아이들을 중독시키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 P. 70.
“교육이 갈수록 표준화되면서 교양교육은 뒷전으로 밀리는 추세 뒤에 숨은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단순한 원인 하나는 새로운 시장 친화적 개혁이 거대 기업에게 돈이 된다는 사실이다.” - P. 236.
기업은 그 존재이유가 이윤이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주주들의 이익을 챙겨줘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목적인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이윤을 줄이고 보다 좋은 놀거리와 먹을거리, 교육을 희망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을 희망하는 헛된 꿈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최근의 기업들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기업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그 이면에 감춰진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묻혀서 흘러가는 대로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부모들과 어른들을 비판한다.
“기업은 소유주에게 부를 안겨준다는 사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자연이든, 인간이든, 아이들이든, 지구든, 그 무엇이든 모든 것을 이익을 챙길 기회로 삼도록 만들어졌다.... 규제와 제약에서 벗어난 기업은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대상에는 아이들도 포함된다.” - P. 24.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의 메시지가 커지고 축적될수록, 기업은 세계적 병폐와 관련해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결책의 일부가 된다.” - P. 256.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조건들을 바꿔야 한다. 무차별적인 마케팅으로 폭력과 약물에 중독시키는 기업들을 보다 구체적이고 강하게 규제시켜야만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업은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이익만을 생각하는 존재이니까.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입법부, 즉 국회위원과 정부관료들에게 계속 외쳐야만 한다. 그들이 기업이 그들에게 주는 혜택 때문에 기업의 편을 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외침은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민주시민으로서 가장 기본인 투표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의지를, 모든 부모들의 의지를 표현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부모들도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질 때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도 밝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건전하고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내려면 부모의 ‘개인적’ 선택과 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선택과 결정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여건’ 또한 중요하다.” - P. 246.
“정부의 규제 체계나 기타 조치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문제에서 지금보다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시민이 요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사회를 바꾸려는 집단적 노력에, 즉 민주주의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또는 적어도 존속하려면, 부모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 P. 251.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좋든 싫든, 전문가의 의견이기 때문이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환경과 먹을거리,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까지 모든 것이 기업의 논리에 묻혀져 간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우리의 아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미래에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일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부모인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지도 모르는 자신의 무지한 선택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물어보자.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고려없이 사주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진정 아이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며 좋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노력했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지. 최소한의 노력인 투표는 했는지.
부모가 현명해지면 아이들의 미래는 행복해질 것이다. 최소한 먹을거리와 교육에서라도.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무엇을 제공하겠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 P. 239.
* 오탈자 - P. 127. 세 번째줄 : 프랜시스는(문맥상 단어 삭제) 이 변화가 “무모하고”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한다.
* 오탈자 - P. 172. 밑에서 두번째줄 :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 추가)였으리라는...
* 오탈자 - P. 230. 밑에서 세 번째줄 : 통제할 수 있는 있는(단어 삭제) 사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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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우리 미래를 짊어지는 인력일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상대로 기업이 마케팅 대상으로 볼 뿐만 아니라, 집중공략하고 있다는 것은 심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날이 지날수록 정말 어른 노릇, 부모노릇 하기가 힘들어지는 경향이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고 교육하기 위해 절대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공감대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인데, 기업들이 이러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차단하거나 아님 멀어지게 하는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을 아이답게 대우하고, 또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하게끔 도와줘야 하는 매체나 기업들이 아이들을 손쉬운 돈벌이 상대로 여긴다는 것은 정말 너무 황당하고, 섬뜩한 일이 아닐수 없다. 솔직히 우리 부모들도 그러한 기업의 마케팅전략이나 홍보매체의 용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원하면 솔직히 거부를 못하는 것 역시도 사실이다.
이러한 기업의 폐단을 알고 또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나 규제가 많이 등장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기업의 이윤을 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법의 테두리를 아주 교묘히 빠져나갈수 있는 방법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그러한 상업화시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화도 났지만 의문이 드는 점은 이윤을 내기 위한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자식이 있고, 손자들이 있을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의 건강과 정신을 해하는 상품들을 버젓이 어떠한 규제없이 제공하는지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점을 갔을때 조차도 정작 먹어야 하는 제품보다는 거기에 딸려오는, 아님 세트로 구매했을때 훨씬 더 싸게 제공된다는 장난감세트에 눈이 간다. 그 장난감을 차라리 단독 구입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홍보전략에 매번 휩쓸리게 되는 것이 아이키우는 부모심정인것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은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항상 문제가 터진 이후에 고치거나 개선하려는 경향이 많은데, 어린이와 관련된 산업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으로 사전예방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준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행은 정말 근절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고, 우리사회의 또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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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이를 위협하는 나쁜 기업에 관한 보고서
다양한 발명품과, 화학약품 등의 기술 발달을 통한 다양한 제품들을 통해 이전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물질적인 풍요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실현되고 다양한 편리를 누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접하는 풍요속에는 그에 버금가는 다양한 위험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실 위험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도 많이 있지만,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연구된 결과가 없기 때문에 마치 아무일 없는 것 처럼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 제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문제의 대상이 더 이상 일반적인 성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대단히 큰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사람에게 유해한 무엇인가가 음식물과 연계되어 물의를 일으키는 내용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으며, 단지 적발된 그 때만, 이슈가 될 뿐, 어느샌가 슬그머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단편적인 뉴스나 가끔 나오는 기사들을 통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도 어떤 식으로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들은 물론, 잘 알지 못하거나, 혹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새로운 정보들을 제시하는 내용을 보면서, 육아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내용의 중대성에 비해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무엇인가 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구조적인 모습이나 전문적인 영역들도 있었습니다. 폭력적인 게임에 대한 문제나 소아과 진료 문제와 같은 것들 모두 쉽게, 한 번에 고쳐질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외에 생각지도 못했던 교육과 같은 분야에서 다양한 내용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지금의 아이들과 다음의 세대에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너무 나도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어떤 실망감과 막연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해결해야할 것은 많지만, 해결하기 쉽지는 않고, 한 개인이나 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어떤 사회나 문화적인 시스템 개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확하게 어떻게 고쳐야 한다라고 하는 대안 제시가 미흡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기한 문제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려주고 있어, 문제해결을 위한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닌, 최소한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작은 실마리를 얻었다는 약간의 안도감도 생겼습니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상태와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문제점을 인지했다는 작은 전진을 계기로,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처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실행을 위한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모두 함께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꼭 읽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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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둘러싼 자본주의의 검은 그림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적은 투자로 많은 이윤을 거두어 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내가 생산한 것을 누군가에게는 팔아야 하고, 생산자는 끊임없이 시장을 찾아 헤멘다. 이 행위들은 '최대의 이익'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것과 충돌하는 규제, 윤리적 딜레마들에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된다. 조엘 바칸의 책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은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들을 둘러싼, 기업의 부도덕한 면들을 자세히 파헤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사례가 중심이다. 왜 하필 미국인가.
"심각한 폭력과 무질서와 굶주림이 도처에 널린 빈곤 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이들의 운명이 더욱 비참하지만, 부유한 나라에서 자행되는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이 작업의 원동력이 된 믿음이다. 부유한 나라의 아이들 역시 피해자이고, 집안이 가난하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게다가 부자 나라는 가난한 나라나 개발이 덜 된 나라의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부유한 나라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된다."(머리말 중에서)
분명히 문제를 해결할 수단과 능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나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 소개된 연구를 하게 된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며 게임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폭력과 그릇된 성의식을 형성시키는 현실, 새로운 정신질환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약학적 처방이 확대되는 데에 숨어있는 제약회사의 음모, 교육 민영화에 대한 견해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업은 소유주에게 부를 안겨준다는 사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자연이든, 인간이든, 아이들이든, 지구든, 그 무엇이든 모든 것을 이익을 챙길 기회로 삼도록 만들어졌다. 그 밖의 다른 것에는 순수한 관심을 가질 줄도 모르고, 부당한 행위를 하면서도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줄도 모르고, 법과 사회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낄 줄도 모르는 기업은 본질적으로 인간 사이코패스를 닮았다고도 주장했다. 규제와 제약에서 벗어난 기업은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고, 그 대상에는 아이들도 포함된다.(p24) 위 인용문에서 보듯 저자는 기업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기업은 조직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지 그 기업을 구성하는 개개인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되었던 '악의 평범성'의 개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근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성장한 아이들에 대한 보호 의식은 20세기에 이르면서 인권에 대한 존중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최근들어 그런 규범조차 퇴조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기업의 반사회적 행동을 규제하던 정부가 그 역할을 점점 내려놓고 있다는 데에 큰 비중이 있다.
요즘 아이들을 지배하는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게임'과 '스마트폰'을 꼽겠다. 자는 시간과 학교에 있는 시간(심지어 학교에 있는 시간도 게임이 잠식하는 경우가 많지만)을 빼고 아이들의 시간 대부분은 게임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한해 1조 달러가 넘는다는 어린이 마케팅 시장에서도 이 게임의 비중이 가장 큰데, 이 과정에서 적용되는 어린이 마케팅의 두 가지 대원칙은 이렇다. 독특하고 미숙하고 격정적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감정을 겨냥할 것, 그리고 어린이를 겨냥하되 부모의 가치나 관심과는 상반되더라도 부모와는 별개로 오직 어린이만 유혹할 것. 미국사람들이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가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을 유혹할 수 있는 선정성과 폭력성이 무차별적으로 아이들에게 흘러든다.
이러한 마케팅은 아이들이 부모가 아닌 브랜드, 기계, 인터넷 사이트, 캐릭터, 아바타에 시간과 마음을 쏟게 만들어 부모와의 유대가 약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린이는 부모와 긴밀한 정서적 유대를 맺어야만 자긍심, 독립심, 정체성이 발달하는데 게임과 미디어 컨텐츠가 그 고리를 끊어놓다보니 "부모 노릇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힘들어지고, 아이들 사이에서 공격성과 폭력성이 심각해지고, 청소년은 성숙하지 못하고, 괴롭힘은 늘어나고, 아이들은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무례하고 반항적인 태도가 점점 더 만연한다."(p64) 그럼 이러한 문제가 과연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부모의 탓인가. 연구자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부모들이 가정이나 이웃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아이들을 분리시키려고 하지만 TV, 영화, 게임에 나타나는 엄청난 양의 폭력에 대해서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는 기업의 거대한 공세 앞에 개별적으로는 대항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그 검은 파도에 아이들을 무방비상태로 둘 것인가. 미국소아과 학회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그래도 부모에게 아직 남은 조금의 힘이나마 사용하라고 권고한다.
1. 아이들에게 (오락용) 미디어를 하루에 총 한두 시간만, 좋은 프로그램으로 골라 즐기도록 제한할 것. 2. 아이 방에서 텔레비전을 치울 것. 3. 두 살이 안 된 아이에게는 되도록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말고, 말하기, 놀기, 노래하기, 함께 읽기처럼 두뇌 개발에 유용한 상호작용 활동을 하게 할 것. 4. 아이들과 청소년이 보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관찰할 것. 되도록 유용하고 교육적이며 비폭력적인 프로그램을 보게 할 것.
옳은 말이지만 참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부모와의 유대가 끊어져 상기한 것처럼 정서적 힘이 약해진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랐을 때 그런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부모의 역할을 참 힘들고도 중요하다. 이러한 부모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일들이 더 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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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이지만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다. 마지막 학기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수업을 듣고자 교육사회, 교육심리라는 과목을 선택했다. 사회학적으로 바라본 교육의 모습, 심리학적으로 바라본 교육의 모습.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교육의 중요성이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듣고나서 책을 읽어서인지 결과는 아쉽고도 씁쓸했다.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본다. 늘어가는 빈부격차, 악순환이 반복되는 지배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책이 대상을 아이들로 한정지어 그 영향을 보고 있지만 이것은 어른들에게 인간사회 전체로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미디어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앞으로 자라서 사회를 구성해 나가야할 아이들이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어른들에게 있다.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가들, 과학자들, 교사들, 공무원들 같이 사회를 구성하고 각 분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야할 책이다. 구성원들이 잘못되어서 사회가 잘못되었는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성원들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고 그들이 속한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상적인 해결책은 불가능하고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바칸 교수도 말했다. 사회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이 세계가 처해있는 상황이 맞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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