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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이호우, 하면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몇편의 작품이 생각난다. '개화', '달밤', '살구꽃 핀 마을', '깃발' 등의 제목이 기억난다는 말이지 작품 내용을 온전히 기억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여동생인 이영도 또한 시조시인이라는 것. 이런 단편적인 정보가 내가 이호우에 대해 아는 전부다. 달리 말하면, 이호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시조집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를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이호우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알게 되었지만.
시조선집의 제목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는 작품 '개화'의 초장에서 따온 것이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 '개화' 전문 (74쪽)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처음 만났던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이호우의 작품 중에서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꽃잎의 개화를 하늘이 열리는 개벽의 순간으로 표현한 초장도 좋지만, 바람, 햇볕 같은 자연, 더 넓게 말하면 우주만물과 하나가 된 화자를 표현한 종장도 참 좋다. 어려운 시어 하나 없이 개화 순간의 자연과의 일체감을 이렇게 잘 드러낼 수 있다니! 고시조의 상투적 정서와는 확연한 차별성을 지닌, 현대 시조의 개성을 잘 살린 작품이다.
시조집 뒷부분의 작가 연보에 따르면, 이호우는 25세때인 1936년 시조 '영춘송'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했다고 한다. 이후 신문 독자투고를 통해 작품 발표를 하다가 1940년 잡지 <문장>에 시조 '달밤'이 가람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고 한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아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 '달밤' 전문 (11쪽)
이 작품도 교과서를 통해서(아니, 모의고사를 통해서인가?) 알게된 작품이다. 낭만적인 분위기의 이 작품은 감상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창작연도는 모르겠다) 1940년은 일제 강점기로, 그것도 일제의 탄압이 극도로 심해지던 시기,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삶이 질곡에 빠져있던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감상에 젖어 있다니! 박목월의 시 '나그네'(1946년 청록집에 수록)에서 "술 익은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이란 구절이 어수선했던 해방공간이라는 시대 상황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유감스럽다는 말이다. 낭만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으로는 '살구꽃 핀 마을'이 가장 좋아 보인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려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 '살구꽃 핀 마을' (14쪽)
이 작품도 낭만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달밤'과는 좀 다르다. 발표시기가 1955년(이호우시조집)인 만큼 일제강점기와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동란 직후로 국토가 초토가 됐다고는 해도 외적 억압은 없는 시대인 만큼 이런 감상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2연의 중장과 종장이 조지훈의 '완화삼', 박목월의 '나그네'의 화자의 판박이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호우의 시조가 전부 개인주의적 감상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격동의 우리 민족과 사회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조들도 있다. 학창 시절 배운 연시조(3연) '깃발'이나, 분단된 조국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은 '휴화산'(50쪽), '춘한 2 - 아아 삼팔선'(51쪽), '추석'(58쪽), '상실'(61쪽) 등에서 보여주는 정서는 확실히 건강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음 작품은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66년 1월 12일 중앙일보 월남 현지보도. 베트콩과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병들은 하루에 1불. 청룡부대 K하사가 캄란에 상륙한 지 사흘 만에 죽었다. 부대 재무관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K하사의 유해 위에 3불을 올려놓고 눈물을 뿌렸다. 사흘 복무했으니 3불이 나왔던 것이다.'
무슨 업연이기 먼 남의 골육전을
생떼같은 목숨 값에 아 던져진 3불 군표여
그래도 조국의 하늘이 고와 그 못 감고 갔을 눈. - '삼불야' (73쪽)
시조집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는 전체 5부, 그리고 약 60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연시조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시조이고, 평시조는 구별배행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호우 시조의 세계에 대해 규정하기에는 나의 시조안이 많이 부족하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은 옳지 않을 듯 싶다. 찜찜하긴 하지만 이쯤에서 리뷰를 마치는 걸 수용해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