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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상황이 등장할 때마다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법대로 해!”라는 호통이 바로 그것이다. 왜들 그리도 목소리들은 커지는지, 자신감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일기도 한다. 아마도 자신이 ‘선’한 편에 섰다는 착각 혹은 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게다. 법의 엄정한 잣대라면 나의 억울함을 백분 해결해줄 것도 같다. 실제로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법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법이 전적으로 옳은 건 결코 아니며 세상에는 악법이라 부를 만한 것들도 존재한다. 악법도 법이므로 존중해야 한다고 몇몇 이들은 말한다. 그렇지만 악법으로 인해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해당 법이 악법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비록 속도가 더딜지라도 많은 이들의 요구가 이어진다면 법은 좀 더 정의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법 자체가 정의가 아닌 것도 문제겠지만, 법이 옳아도 그릇된 판단은 충분히 존재 가능하다. 왜냐하면 법 역시도 사람에 의해 해석되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속고만 살았느냐는 의아함을 낳을 만큼 저자는 참으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자신이 목격한 수상한 의뢰인과 이상한 변호사, 의심스러운 판사 등을 언급한다. 법정에 서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이 돼 거짓을 궁리할 마음의 여유도 안 생길 것 같은데 아닌 모양이다. 아니, 거짓이야 말로 어쩌면 생존을 도모하는 이가 본능적으로 택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현실은 수준 미달이 의심되는 판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의뢰인에게, 변호사에게, 심지어 동료 판사에게 폭언을 가하는 판사의 이야기를 못 들어본 것은 아니다. 성폭력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가해자 취급하는 판사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는 쉬울 것이다. 정의보다 앞서는 것이 사회의 관습과 고정관념 등임을 깨닫고 얼마나 한탄을 했던지,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굴욕감을 느끼게 만드는 언사를 행해놓고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는 둥, 분위기 쇄신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는 미국 판사들의 모습이라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종교에 대한 몰이해가 부른 경우도 있었으니, 우리의 무하마드 씨는 종교적인 신념에 근거해 니캅을 고수함으로써 사건을 기각당하고야 말았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사건의 사실여부를 비롯해 그 어떠한 것도 듣질 않았다. 정의를 향한 걸음에 족쇄로 작용할 정도로 니캅의 힘이 강렬했다니, 왠지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가진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원고/피고 등 당사자와 사냥을 즐기고도 버젓이 사건을 맡은 경우도 있었으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절로 생각났다. 변호사 역시 이상한 경우는 많았다. 가장 끔찍한 경우를 꼽자면 테러리스트와 모종의 관계를 한 린 스튜어트라는 변호사를 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종적 종교적인 편견 등으로 인해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잦으므로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억울하게도 뒤집어쓰는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억울함을 해결해주기 위해 변호를 자처하는 건 분명 정의로운 일이겠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뉴욕 폭탄테러를 계획한 인물로 유명한 압둘 라만을 변호하면서 그녀는 또 다른 테러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녀와의 접견을 통해 압둘 라만은 부하들에게 일종의 지령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것 역시 변호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주에 속한 것인지, 확실히 그렇다고 답은 못 하겠다. 누가 되었건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직업의식에 사로잡힌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윤리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오로지 돈을 움켜쥐기 위해 제 능력을 발휘하다 보면 결국 법은 돈 있는 자들을 위한 것으로 굳어지고야 말 것이다. 너무 회의적인 시선일수도 있겠는데, 세상에 믿을 이는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되었다. 법마저도 정의를 대변해주지 못한다. 결국 힘 없고 빽 없으면 속 앓이를 하다가 외로이 스러지는 것이 이 세상의 질서인 것인지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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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곧 정의라는 그럴듯한 착각
멋모르던 시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외화는 내게 '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치열하게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상에 감동받은 나에게 "법은 공정한 것"이라는 등식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믿음'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이라는 제목을 보며 씁쓸하지만 이렇게 되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을 아직도 하는 사람이 있나?"
"내 글에서 말하는 일관된 주제는 사법체계의 청렴성, 즉 '정의의 실현과 법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6).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은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는 스티븐 러벳 교수의 책입니다. 저자는 병리학자가 질병을 연구하고, 도시계획자가 교통체증을 측정하고, 기상학자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심정으로, 사법체계의 "잘못"된 행위와 관행을 분석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법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법과 정의의 딜레마를 폭노하고, 그럼으로써 그 딜레마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저자 스티븐 러벳 교수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등장하는 킹스필드 교수님을 닮았습니다. 킹스필드 교수님은 집요한 질문 세례로 법학도들을 떨게 만들며 공부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교수님입니다. 유능한 변호사가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고 진실을 드러내듯이, 재판 사례와 사건을 예시로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듭니다.
월마트의 사진현상소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고객의 사진을 현상하다 아동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하여 한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월마트의 업무 규정을 어긴 잘못으로 해고되었습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키려는 월마트 규정과 학대 당하는 아이를 구하려고 빠른 판단을 내린 직원. 우리는 쉽게 직원의 영웅적인 행동을 칭찬하며 부당해고는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은 "이 상황에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단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어째서 그런지 미묘한 법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사건은 월마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월마트의 재판이나 변호사를 믿지 않은 클린턴의 실수,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간 오스카 와일드 재판과 같이 흥미진진한 사례가 등장하는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힙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좀더 어려운 사법'체계' 문제로 들어가면서 다소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배울 것,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맞지요?)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면 이 사회의 약자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합법적'인 폭력과 착취가 날뛰겠지요. 법조인 스스로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으면 사법체계는 정화되기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에 맞서려 한다면 언제든 '법'의 힘을 휘두르려 들테니 말입니다. 법의 딜레마, 재판의 허점, 사법체계의 불완전함을 알수록 더 깊은 절망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의와 공평한 집행을 위해 법이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법보다 불합리하고 무서운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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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는 패가망신' 이라는 말이 있다. 법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를 잘 나타내준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는 굳이 서구식 '법'이 아니더라도 유교적인 관습 및 마을 사람들의 유기적 관계가 질서를 유지시켜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혈연집단, 또래집단, 동창집단, 계조직 또는 경제적 협동체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에 법의 개입 없이 타협과 중재가 가능했다. 즉 민사소송 '법대로 하자'는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 난 상태를 의미한다. 영촌인 부부가 상대를 간통죄로 고소하는 순간, 이혼이 되는 것이다.
최초의 법을 누가 만들었을까? 지배계급이다. 블랙법과 부랑자법 처럼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을 만들고 집행했었다. '주최측의 농간'은 역사 이래로 존재한 것이다.
법도 동전의 양면성을 가진다.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없는 현대에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시키고, 안정화 시킨다.
책은 총 298쪽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의뢰인, 변호사, 판사, 법학계, 의료계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준다.
쉽고 재미있다. 특히 법의 부정적인 면을 파헤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악한 행위와 미심쩍은 관행에 촛점을 맞춘 이유는 사법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잘못되었는지 알아보고 보다 나은 대안을 궁리하자는 취지이다.
총 43꼭지의 글이 있는데, 칼럼 및 논평을 모은 글모음이라 아무 것이나 펼쳐서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 클린턴과 오스카 와일드 사건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클린턴이 르읜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자신의 변호사까지도 속였을거라 짐작한다.
클린턴은 '성관계를 가졌느냐?'는 질문에 구강성교는 성관계에서 배제한다는 라이트 판사의 불완전한 정의에 기대어 '아니다' 라고 답변하고 그 유명한 말 '부적절한 행위'를 언급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로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 사실은 더 흥미진진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알프레드 더글러스(애칭 보우지)와 사귀고 있었는데, 알프레드 아버지인 존 숄토 더글라스 후작이 와일드와 보우지를 스토킹 한다. 심지어 와일드의 집에서 '남색을 보는 것, 하려 드는 것은 나쁜 일이오' 라며 와일드를 비난했다.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와일드는 더글라스 후작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재판과정에서 와일드는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게 되고, 후작이 명예훼손 죄에서 풀려난 다음 날 와일드는 '외설죄'로 체포되어 중노동 2년형을 선고받는다.
변호사였고 법대 교수인 저자라 글이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었다. 당시 상황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묘사해준다.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및 선호도에 따라 형성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한 해석이 딴판인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래서 사법체계가 존재하며 '법'은 진실이고 정의가 아니라 진실을 담는 안전한 그릇일 뿐이다.
법에 대해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질 때 법이라는 그릇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고 각자의 안전을 공정하게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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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이야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예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난 정의는 살아있다는 말에 100% 절대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아니 못한다. 법정에서도 '정의'는 없었다, 종종~ 그래서 나는 그저 내가 그러한 피해자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늘 바랄뿐이다. '정의'가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의 탐욕이 주된 원인인 것 같다. 개인의 사리사욕때문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도 나몰라라하며 양심은 저 멀리 갖다 버린다. 미국 최고의 법학교수인 스티븐 러벳이 들려주는 논쟁의 중심에 선 재판들은 흥미와 함께 인간의 속물적인 근성과 양심, 법정에서의 정의의 유무에 대해 가감없는 비판과 함께 옳바른 개선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전문서적은 아니나 다루는 내용이 가볍지 않아서 집중하며 읽어야 해서 읽는 속도가 더뎠다. 우리나라의 사례는 아니지만 비슷한 부분은 많다고 보는데 정서상 약간 다른 부분들도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정당한 속임수는 존재하는가-편이 참 흥미로웠는데 우리나라 같았으면 아마도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살인범을 잡기 위한 거짓말은 정당하다 생각하는데 만약 그 살인범을 잡지 못했다면 차후로도 계속적인 살인이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까? 물론 거짓말이란 것 자체가 정당하다고 볼 순 없지만 상황에 따른 정당한 거짓말은 난 예외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선의의 거짓말은 이타적이란 생각이 들며 거짓말일지언정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마크 포틀러 검사는 국선변호인으로 가장하고 흉악범 닐에게 접근하여 그를 자수하게 하였다. 검찰 동료들은 포틀러를 칭찬했지만 콜로라도 주 변호사규정자문은 여러가지 변호사징계 위반으로 그를 기소하였다. 물론 당사자는 기소 이유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위원회는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결해 버렸다. 참으로 법의 테두리 내에서 너무 유도리 없는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이 사건은 특수한 상황 아래에 있었단 점을 들며 포틀러를 지지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인 -선의의 행동인가 비지니스인가-편을 읽고는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실험'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임상실험'을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해도 응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담당 의사의 권유로 많이들 참여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미국에서는 임상실험대상을 공급한 대가로 의사가 돈을 지급받는다니 참 소름끼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조승희 사건도 일부 나와 있는데 사건의 전말을 보니 인지오류로 인한 인재였단 생각도 들었는데 어쨌든 너무 안타까운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윤리'의식이 아주 중요한데 요즘 옳바른 '윤리'의식을 갖고 있는 공직자가 적음에 실망스럽다. 현실은 여전히 돈과 권력의 파워를 지지하며 약자는 늘 당하기만 한다. 법도 아는만큼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고 모르면 모르는 만큼 크나큰 상처를 준다. 이 책은 각각의 입장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저자의 날카롭고 이성적인 통찰력은 가히 읽는 재미와 나의 사고력을 확장시켜 주기까지 했다. 일관된 주제인 사법체계의 청렴성에 관한 내용들은 의뢰인, 변호사, 판사, 학계, 의학계의 종류별로 다루고 있다. 부정적인 사례를 통한 교훈을 담고 있는데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제목인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처럼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못한 부분도 있다. 법조계의 부조리와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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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을 읽고 생활해 나가면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발생할 수가 있다. 아는 것이 나오면 뭐든지 편안하면서 우선 즐겁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나오면 답답하면서도 내 자신이 왠지 수축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좀 더 궁금증이 생기면서 알고 싶은 욕심도 생기는 것 같다. 어차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알 수야 없겠지만 생활해 나가는데 닥치는 분야 정도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두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법률이라는 것도 그렇다. 정말 준법정신을 잘 지키면서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하는 당당한 사람들에게는 법률에 대해서 그렇게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위험에 닥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법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은 법률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하면서 직접적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본인이 부족하다면 변호사나 그 밖의 법 관련 전문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법률이 추구하는 목적인 정의의 실현과 공공복리의 실현을 할 수 있도록 법률이 우리 생활 속에 규제를 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생활 자체가 모범적이어서 법률하고 부딪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평소 법 관련 내용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의 생활과 모습에 대해서 다루는 법 관련 사례들을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가장 실감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례 등을 통해서 법률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함께 바른 방향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것 같다. 어떤 법률적이 사안이 발생하면 서로가 당당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과 같이 서로 힘에 의한 싸움을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법정이다. 법정을 통해서 쌍방의 서로 공방을 통해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그래도 비교적 정의에 입각한 진실 쪽으로 결판이 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두 개의 입장이 존재하면서 서로의 공방의 시간을 통해서 진실 쪽으로 나타나게 되는 법정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 믿고 있다. 따라서 모든 대상들에 있어서 모두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려 하고 모든 이야기를 완전하게 알리려 하며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저자가 후기에 표현하고 있듯이 ‘법이 곧 진실이자 정의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자. 그것도 도착점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법은 진실을 담는 가장 안전한 그릇일 뿐이다. 급하다고 그릇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처럼 사법체계는 진통의 과정을 통해서 바람직한 결론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공부를 하는 의미 있는 독서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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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시사 주간지 <한겨레 21>의 '죄와 벌'이라는 연재 시리즈를 읽었다. 이 시리즈에서는 유죄 판결이 났으나, 결국 무죄로 판명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과학수사와 같은 첨단 수사 기법들이 유죄의 결정적 증거로 쓰여졌으나, 결국 진실과는 멀리 떨어진 것을 보여줬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고통에 보내야 만 했다.
시리즈를 보며 놀라웠던 점 하나는 거짓자백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백에 의존한 유죄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형사와 검찰은 용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며 윽박지른다. 어린 청소년과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참지 못해 자백을 하고 만다. 수원에서 일어난 노숙소녀 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용의자로 몰린 청소년들은 살인죄로 기소 됐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후에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담당 형사와 검찰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스티븐 러벳 미국 노스웨스턴 법학대학교 교수의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은 ‘법과 정의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논쟁적인 사례와 테마를 책으로 묶어 냈다. 저자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과 소 논문 등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어 있다. 책은 정의의 실현에 법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법조계와 법정에 얼마나 많은 위선과 기만이 넘쳐나는지 맹렬히 폭로한다.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은 한편의 법정드라마를 보여준다. 사회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법정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의 갈피갈피에 ‘법과 정의의 딜레마’가 어떻게 줄타기를 하는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다만, 사례가 영미권 위주라 우리나라와는 법체계가 조금 다르기 때문에 동일시 보기에는 곤란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법부도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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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법에 대해 관심이 없이 지내왔었다. 왜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별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어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저런 잡다한 이유들이 떠올랐다. 사실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도 지금까지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몰라도 된다는 이런 안일한 생각이 더욱 법과 멀어지게 만든 것 같다.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책의 제목인 이 말은 정의나 법이나 언제나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조금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책의 제목만으로도 나른 혼란으로 빠트렸기에 나는 이 책이 무척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법과는 전혀 친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뉴스나 신문, 각종 매스콤들을 타고 전해지는 이야기와 소식들, 나는 그러한 것들이 지금까지 모두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확실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다. 너무 순진한 탓인지 아니면 바보 같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며 심히 혼란스럽다. 먼저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상한 의뢰인, 이상한 변호사, 의심스러운 판사, 시끄러운 법학계, 어수선한 의료계가 그것 이다. 각 부마다 작은 챕터들이 있는데 몇 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시간 날 때 마다 짬짬이 읽기에도 좋았다. 그리고 순서대로 읽지 않고 자신이 좀 더 흥미롭게 가질만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골라서 읽어도 된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감옥에는 죄 없이 억울하게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쳇 하며 웃으며 넘어갔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악법도 법이라지만 정의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권력을 남용하는 일들과 법정에서의 잘못된 심판은 하루 속히 사라져야 한다. 우리가 법을 존중하는 것처럼 법도 우리를 존중하여 정의가 착각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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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다룬 재미있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나마 재미와 상관없이 기억에 남아있는 책은 쉴라 재서너프의 '법정에 선 과학'정도 인데 명료한 논리가 인상적이긴 했지만 읽는 동안은 꽤 고역이었다. 그에 비해 법정을 다룬 책이라면 일반인들도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을 텐데 이 책은 법을 다루는 딱딱한 내용의 책은 아니고 무수한 사례를 통해서 법정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드러내고 있어서 흥미롭고 읽기에도 편하다. 물론 번역되면서 붙은 제목이 내용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진 않지만 법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소송 사례들은 꽤 흥미로운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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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특히 법에 대한 불신이 많다. 관련된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다. 판사에게 석궁을 쏜 교수에 대한 ‘부러진 화살’, 500만원 절도에 17년형을 선고받고 무전유죄를 부르짖으며 탈옥한 지강헌의 이야기를 그린 ‘홀리데이’가 기억난다. 또한 ‘전관예우’라는 아름다운 명칭으로 불리는 사법패밀리간의 봐주기나 이대생 살인교사사건시 회장부인 호화병실 입원, 재벌회장들의 집행유예로 끝나기 등 많은 부분에서 국민들이 분노한다. 천국이 아닌 한 다른 나라도 법이 완전하게 기능하지는 않는다. 다섯 살짜리 딸이 판사 등에 의해 성폭행당했음에도 처벌되지 않자 스스로 범인 세명을 처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리투아니아 아버지가 기억에 또렷하다.
# 미국이라고 100%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특히 재판에 지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억울하고 불의에 찬 사회라고 생각될 뿐이다. 진실에 대한 개념 자체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진보는 진보대로 옳다고 느끼고 생각한게 있을테고 보수주의자도 다른 개념을 보유하고 행동한다. 다만, 진실이라는 것이 자신의 경험과 선호도 그리고 목표에 따라 형성된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법체계가 때로는 진실을 무시하거나 경시한다고 보일지라도 사회에 내재한 논쟁적이고 모순된 견해를 수용하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법이 곧 진실이자 정의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참여자 모두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정의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실현하기 어렵다. 우리는 실패의 기억과 부정적인 사례에서 많은 지식을 얻기 때문에 이를 살펴봄으로써 사법체계의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 이 책은 저자의 컬럼을 모은 것으로 의뢰인, 변호사, 판사, 학계, 의료계 5부분으로 나누어 사례를 소개한다. 오스카 와일드부터 클린턴 대통령까지 다양하게 소개되고 스티븐 제이 굴드부터 아툴 가완디까지 다양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러나 컬럼이었던만큼 짤막짤막하다. 읽기 쉬울 수도 있지만 단편적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일반인보다는 변호사나 자격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변호사들이 가장 소송을 많이 당하는 공동대리부분을 보자. 진행되던 쇼핑몰 사업이 대중을 끌어들일 유명점포 입점이 수포로 돌아가자 거래전체가 결렬되어 파트너들의 분란이 일어난다. 합작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은 목적이 같아 이해충돌 위험이 없다고 생각해서 보통 같은 변호사를 쓴다. 직접적인 갈등관계에 있거나 서로를 반대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거래를 안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대리 사건에 숨어있는 진정한 위험요소는 이해충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발업자측은 조건을 붙이지 않고 한시라도 빨리 사업을 진행시키고 싶고, 투자자는 안정성이 관심사가 된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반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같은 변호사가 두 사람을 의뢰인으로 받아서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변호사 한 사람이 여러 명 파트너를 대리하는 경우 위험과 부작용을 완전하게 설명해야 소송을 예방한단다. 이러한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미국 사법계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그쪽의 속살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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