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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잘 모르는 이승만.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샀다. 이 책은 이승만의 활동을 충실히 기록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이승만은 자신이 꿈꾸던 공화국을 수립하여 자유, 평등, 민권을 이 땅에 뿌리내렸다.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을 격퇴하였다.
책을 통해 그려진 그의 모습과 사상이다. 이승만은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유학을 배우고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과거제 폐지 후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과 영어를 배웠다. 신문사를 운영하고, 집회를 주도하면서, 자유, 평등, 민권을 외쳤다. 중추원 議官으로 임명되어 개혁을 추진하다 면직되었다. 입헌군주제를 기도한 모반에 가담하였다가 옥고를 치루었다. 옥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고종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되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났다. 미국대학에서 수학하여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망국 후 귀국하여 YMCA 활동을 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정착하여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독립운동이 고조되던 1910년대 말 필라델피아에서 대한인 총대표 회의를 열었다. 한성 임시정부에서 집정관으로 임명되었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을 맡았다. 상해에서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다시 도미하여, 국제회의에 대한독립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 면직되었다. 하와이에서 교민사회를 이끌었고 주식회사 경영활동도 했다.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임시정부의 주장을 국제적으로 알리고자 전권수석대표로 제네바에 갔다. 국제연맹회의에 참여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런던과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일본의 미국 침공을 예견하였고, 전쟁 발발 후 임시정부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해방 후 개인 자격으로 귀국 후,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조직을 결성하였다. 미국을 상대로 남한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UN에서 총선거 실시안을 가결했다. 남한 지역 총선거로 의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제정하였다. 제헌 헌법에 따라 실시한 의회투표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에 취임했다. 북한의 남침을 UN의 도움을 받아 격퇴했다. 419까지 남한을 통치했다. 사상. 기독교를 신봉하였다. 교육을 중요시하였고, 상공업을 장려했다. 평등한 사회를 주장하였고 민주공화제 정부를 지향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했다. 업적. 정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대통령 중심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외교,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여 해양주권을 지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역내 평화를 확보했다. 군사,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다. 경제, 농지개혁으로 자영농체제를 확립하였다. 교육,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하였고, 각종 지원책으로 고등교육을 급격히 확대시켰다. 사회, 양반제도를 실질적으로 혁파하였고, 문존무비의 관념을 타파하였고, 남녀평등 사상을 유포했다. 문화, 한글 전용을 시행하고, 개신교 교세를 확대시켰다.
세가지 정도 생각이 든다. 첫째, 이승만은 민주공화국 수립을 주도할 자질과 능력, 경험을 가졌다. 망국 이전 주권을 가진 조선에서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인륜에 기반한 구학문과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신학문을 모두 익혔다. 정치학을 공부하였고, 활발할 외교활동으로 펼쳤다. 중국과 미국에 살고, 유럽을 방문하여 세계적 안목을 가졌다. 특히 모스크바를 직접 방문하여 공산주의의 현실을 파악했다. 정치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해방 후의 난국을 돌파하였다. 집권을 위한 조직을 구축 정비함과 동시에 소요를 일삼는 공산주의 세력을 격퇴하였고,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둘째,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한 버팀목이었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바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방 후 조선은 모두가 민주주의를 원하였으나, 현실은 전체주의가 자리잡기 좋은 환경이었다. 조직운영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전체주의가 작동하고, 일상생활에는 삼강오륜의 가부장적인 유교적 질서가 굳건하였다. 권력을 장악하면 영구집권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승만은 국부로 존경받아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켰다. 또한, 민주주의를 국민들에게 교육하였다. 나이든 이들에게는 자유로운 선거와 지방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알게 하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셋째, 419를 유발한 부정선거과 과잉진압의 최종 책임자라는 점에서 그가 한국 정치사에 오점을 남긴 것은 맞다. 하지만, 그가 독재자라는 비난은 사리에 맞지 않다. 언론과 정당활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적인 조치를 시행하기는 했지만, 전체주의라고 부를 만큼 그 자유를 파괴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무리하게 개헌했으나, 의회주의의 틀을 해체시키지 않았다. 국민들의 반대에 직면해서는 그것을 분쇄하기보다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전횡을 일삼는 것을 가리키는 독재라는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집권 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공산주의의 위협과 만연한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형식적 자유민주주의를 실질적 자유민주주의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는지 그 전진과 후퇴의 역동적인 과정을 살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승만의 생애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사상과 업적에 대한 부분은 여러 분야를 섭렵하여 내용이 간략하다. 사소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기독교 건국론이다. 용어에 대한 정의가 없어 기독교 건국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나라를 세우고 운영한 사람의 사상으로 기독교 건국론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해 보인다. 기독교에 우호적인 정책과 기독교 건국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