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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
목차를 열어보는데 파스텔 색감의 배경에 그림까지 책이 예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첫 느낌을 받았습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조선 시대 음악가들의 희로애락 - 장악원 풍경 2장 알고 보면 재밌는 궁중음악 상식 - 예禮와 악樂의 앙상블 3장 조선의 대표 음악가 10인의 고군분투기 - 새로 쓰는 악인樂人열전 4장 기技로 완성하는 예藝 - 이야기가 있는 악기樂器열전 조선의 궁중음악과 음악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장악원 풍경
질문 1 장악원에 소속된 음악인 수는
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장악원 음악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악원에 소속된 음악인의 수는 천여 명에 달하였다고 하는데 규모가 엄청나지요?
하지만,,,따지고 보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까지 추어야 했던 그들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지요.
질문 2 장악원의 정기 연습 일은 언제일까요?
장악원의 정기 연습 일은 2일, 6일, 12일, 16일, 22일, 26일입니다. 한 달에 6번이군요. 국가의 대표적인 음악기관의 연습량치고는 너무 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비정규직 공무원 신분이었습니다. 장악원 소속 악공에게 주는 보수가 최저 생활비에도 못 미쳤다고 하니 생업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고려한 배려인 셈입니다.
조선 시대의 음악인은 이른바 3D 직종의 하나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장악원 소속 악공과 악생들은 정기적으로 실기 시험까지 치러가며 연주 실력을 연마해 갔습니다.
1장 장악원 풍경에는 이런 음악인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무동,, 여기,,관현맹인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답니다
조선 시대 전문 음악인으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품계는 전악입니다.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박은 전악이 담담하였다고 합니다.
- 이 책 40 페이지-
궁중음악 상식
질문 3 조선 시대의 5대 의례를 아시나요?
조선 시대에는 5대 의례인 길례, 가례, 빈례,군례, 흉례에 따라 다른 곡을 연주했습니다. 음악에 따라 다른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지요.
-이 책 82 페이지-
우주의 암호가 들어 있다는 일무 佾舞 에 담긴 상징성,,, 악기의 국산화를 위해 노력해온 장인들의 발자취도 살펴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 음악인들은 너무 중국에 의존을 많이 했더군요. 좀 속상했습니다.)
조선의 대표 음악가
질문 4 정조가 혹시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왕이었단 사실을 아셨는지요?
조선 음악의 대들보 맹사성, 악학궤범을 편찬한 성현, 나이 오십에 음악의 길을 찾은 임흥,,등등 조선의 음악을 이끈 대표 음악인 10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존경심을 심어줍니다.
그런데 내가 눈여겨본 것은 따로 있습니다. 정조가 장악원 음악을 듣고 나서 일일이 음률에 대해서 지적하기도 하고 음악이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닦는 덕으로 여겼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조는 음악에 관한 관심과 조예가 깊은 왕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정조는 남다른 왕이십니다!
그리고 박지원 홍대용, 김용겸 같은 실학자들이 악기 연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놀랐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양금과 관련하여,,, 그리고 눈 그친 겨울밤 수표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표교에 얽힌 아름답고도 낭만적인 일화가 이 책의 188~189에 나옵니다. 아!! 이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189 페이지-
이야기가 있는 악기
질문 5 해금이 관악기라고요?
마지막 장의 주인공은 우리 국악기입니다. 저자는 악기가 처음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도 알려주고 악기와 함께 전해지는 일화들도 소개합니다.
망국의 한이 실린 가야금,,, 한때 사라졌다가 부활한 비파에 얽힌 비화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조금 낯 선 악기가 되어버린 비파가 예전에는 장악원에서 배워야 하는 필수 악기였다고 하더군요. 악기도 유행을 따르나 봅니다.
- 이 책 245 페이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홍대용이 양금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왔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양금을 연주할 줄 몰라서 음조를 맞추기 위해 다들 애를 먹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참,,,, 나는 해금 부분을 읽다가 해금이 현악기가 아닌 관악기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의아해하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의 217에서 확인해 보세요.
- 이 책 218 페이지-
우리나라 음악에 관심은 많지만,,,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궁금했지만,,,답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국악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책에는 삽화도 풍부하고 악기 사진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나라 음악에 대한 애정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책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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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운좋게도 종묘에 우연히 들렀다 종묘제레악에 맞춰 줄을 지어 춤을 추는 일무를 보게 되었다. 역대 왕과 왕비를 제사하는 제사의례에 음악이 연주되는 것도 생소했지만 일정한 질서를 이루며 곡조에 맞춰 추는 일무는 볼만 했었다. 그나마 판소리에 관심이 있어 방송에서 가끔 국익한마당이나 흔치않은 국악 공연을 보곤했었는데 대중 매체에서 조차 궁중음악을 많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전무하다시피했던지라 연주에 쓰이는 악기나 노래, 춤이 일체를 이루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멋진 공연을 보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더랬다.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종묘제례악을 포함해 궁중음악과 악기에 관해 알아보겠노라는 다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지부지 잊혀지고 말았다. <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란 이 첵의 제목을 접하며 불현듯 몇해전의 다짐이 떠올랐다.
책은 오늘날의 국립국악원에 해당하는 조선 최고 음악 기관 장악원을 중심으로한 조선시대 궁중음악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장악원이야말로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중심으로 궁중음악을 움직이던 기관이였기에 장악원에 관해 알고 나면,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시대 음악과 음악인들의 삶이 한층 우리곁에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추구하였던 조선은 유교 이념이 그 뒷받침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음악은 단지 듣고 즐기는 수단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운항하는 우주의 섭리를 담고 있었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예악 정치는 중앙집권체제인 조선을 의식화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즉, 유교적 신분 질서와 예를 구현하는 ‘정치’였다. 왕실과 조정이 세심하게 관리한 궁중음악은 엄격한 예법에 따라 빈틈없이 짜인 의식이었다.종묘제례를 필두로한 각종 제레 의식에서 제례 악무는 그 배치부터 우주를 그대로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시행하는 국가적 규모의 다섯가지 의례인 길레, 가례, 군례, 흉례는 '국조오례의'라는 전레서에 상세히 기롯해 놓았으며 이 오레를 이해하면 다양한 궁둥음악이 어떠한 형태로,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목적으로 연주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책은 장악원의 풍경을 중심으로 당시 음악인들의 일상과 그들이 연주한 음악, 악기에 얽힌 사연,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을 위해 흘린 땀과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 시대 궁중음악의 모습과 특히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선 음악의 기틀을 세운 맹사성과 박연부터, 성현, 김용겸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대표 음악가 10인의 삶과 음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관련 풍속화를 비롯해 조선의 대표 악기들의 그림을 곁들여 악기에 전해지는 유래와 악기 제작, 악기의 달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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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부끄럽게도 한국인이면서 한국음악은 더 모른다. [조선의 오케스크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를 본 순간 꼭 읽어봐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 음악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알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악기라고는 북,장구, 징, 꽹과리, 가야금 정도만 조금씩 접해봤다. 그 렇지만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하나도 없다. 물론 서양 악기도 리코더 외에는 연주할 수 있는게 없다. 그런 나에게 이책과의 만남은 횡재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이책을 통해 우리 음악의 변천사를 알 수 있었다. 특히 궁중음악이 어떻게 발전하며 이어져 왔는지 세세하게 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장악원은 지금으로 말하면 국립 국악원이다. 그들은 각종 의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조선의 악은 예와함께 의례의 핵심이었고, 그만큼 조선의 대표적인 음악기관이었던 장악원의 역할은 컸다고 한다.
특히 이책에서는 장악원에서 쓰여졌던 악기는 어떤 것이 있으며 악기의 관리는 어떻게 했으며, 악보들은 어떤 것이있으며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는지까지 아주 상세히 잘 알려주고 있다. 그만큼 예와 함께 중시되었던 악이었기 때문에, 장악원에서는 악보에 관한 의궤뿐아니라 악기 제작과정과 관리에 관한 의궤까지 두어 철저하게 관리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악인열전과 악기열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과 가장 관련이 깊은 인물은 단연 박연이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중에도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 많았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은 다방면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악과 예를 따로 떼어놓고 논하지 않았던 학자들이 역시나 악에도 통달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고 악기 열전에서는 우리 전통악기를 사랑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북쪽 고구려의 악기 거문고와 남쪽 가야의 악기 가야금, 두줄의 팔방미인 해금,저음으로 영혼을 위로한다는 아쟁,그리고 서양에서 전래된 다양한 악기까지. 작가의 표현이 정말 아름다워 그 악기들이 더 간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를 읽으면서 새로운 기쁨에 빠질수 있어서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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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악을 배우던 친구가 있었답니다. 그 친구를 따라서 국악학원에 가기도 했는데 그때 처음 본 악기가 바로 '대금'이었죠. 그 뒤 언젠가는 대금을 배우고 말리라 했는데 마음만 여전하고 쉽게 다가오지 않더라구요. 물론, 피아노와 같이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악이 아니기에 국악원이 아닌 이상 접촉 또한 어려운 악기죠.
음악은 슬프때나 기쁠때나 표현 할 수 있는 도구잖아요. 더불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도 악기를 배우게 하는 것은 더더욱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요. 그것이 비록 피아노, 바이올린 등 국악이 아니어서 아쉽지만요. 우리의 악기를 보면 정말 멋진데 널리 보급화가 안되서 문화센터가 아님 배울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오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장악원(掌樂院)은 조선 시대 궁중 음악의 기관입니다. 어느 시대나 음악을 존재하기 마련인데 조선시대에는 바로 이곳이 음악의 중심지였죠. 또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궐안에 상주하고 있는 숫자로 천명이 넘는 인원이었고, 언제나 연습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험을 치르기도 했는데 음악인들이 노력하는 만큼 그들의 대우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 씁쓸했답니다.
음악을 실질적으로 연주를 하던 악공과 악생들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외에 부가적으로 더 배워야 하기도 했고,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르기도 했지요. 이렇게 힘들게 배우고 연주를 함에서도 언제나 극빈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니 .... 항소심을 올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죠. 또한 읽는 동안 조선 땅을 떠나야 하는 음악인들도 있었답니다.
조선의 악기중 중국의 악기를 제작하고 만든것도 더러 있습니다. 그곳에서 배우고 직접 제작을 하기도 했지만 중국의 요청으로 이 나라에서 활동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창가비(唱歌婢)' 입니다. 중국 사신과 함께 그 나라로 들어가 궁중의 연향에서 노래와 무용을 담당했답니다. 하지만, 순수히 따라 나선것이 아니기에 그곳에서의 삶은 그리 평탄치 많은 않았겠죠.
그렇기에, 조선을 떠난 이들을 위해 왕이 그들에게 위로연을 열어줄 때 곡 소리만이 넘쳐났다고 하니 그 상황에서 뭉클해졌죠. 그래서, 장기간 체류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몸으로 치르는 고역이나 노역을 면제 해주었다고 하네요. 그만큼 힘든 결정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죠.
이렇게 전반부는 조선의 음악과 음악인 그리고 장악원을 이끌어가는 애기가 흘러나고 후반부에 들어가면 악기에 대해 설명이 시작이 됩니다. 낯익은 이름도 듣기도 하고 새로이 알게된 악기도 있는데 관심이 많이 갔던 '대금'에 대해 일화나 현재의 대금과 당시 대금의 차이점 등을 알 수 있었답니다. 어느 악기든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든 악기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있고 이것이 모두 하나가 되면 진정 음악이 되는 거라는 것을요.
이 책은 조선의 음악과 그리고 우리 악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는 책입니다. 서양 음악에 너무 큰 관심을 두었기에 다소 관심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점차 많은 분들이 궁중 음악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고유의 악기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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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지만 내가 장악원이란 명칭을 들어본 것은 몇해전 방영된 MBC의 '동이'란 드라마를 보면서이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최씨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또 자라온 곳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업으로 여기는 장인들이 있는 장악원은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중추기관이었다고 한다. 동이의 영특함이 빛나는 에피소드를 매회 만들어내야했기에 장악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사고들이 간간히 비춰졌던 기억도 난다. 악기가 잘못되어 음이탈현상이 일어나거나(이건 왕이 진노할 정도로 큰일로 비춰졌던 기억이 난다.) 시험을 통해 실력향상 꾀했다는 책내용처럼 드라마 속에서도 시험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알고보니 드라마 '동이'는 이 책을 많은 부분 참고했을지도 모르겠다..ㅎㅎ
<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는 장악원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악기들의 이야기이다. 국가 차원의 각종 행사 및 연회, 제사에 빠지지 않았다던 음악을 담당하는 핵심기관이었던 장악원은 꽤 중요한 기관이었으나 급여나 대우면에서 좋지 못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선호하는 직업은 한결같았나보다. 궁중음악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그 과정은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특히 조선을 대표하는 음악인 10인을 한권의 책으로 자세히 만나본 기회가 되었던 점은 즐거웠다. 아는 분은 한두명뿐이라 씁쓸했지만 이번 기회에 조금 조선의 위대한 뮤지션들을 모두 만나본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대표 악기들이 등장하여 대미를 장식해주니 책 한권으로 장악원을 통째로 털어서 습득한 기분이 든다. 장악원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같는지, 어떻게 그들이 치열하게 음악을 위해 살아왔는지, 그들의 악기에는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을 갖고 있는지 등 다양한 내용들이 참 많이 담겨있다.
책에서 가장 놀랍고 흥미롭고 즐거웠던 순간은 많은 삽화 속에 등장하는 장악원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60여 컷에 이르는 의궤의 기록화와 다양한 자료 사진을 첨부했다는데, 특히 삽화부분은 놀라웠다. 한나라의 왕이 아닌 높은 고위관료직 신하도 아닌 그 그림에서는 악공과 악생, 무동들이 주인공으로 보였다. 박물관이나 다른 자료집같은데서 똑같은 그림을 봤더라면 아마 나는 그림의 가장자리에 늘 위치하는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을텐데... 이번에는 다르게 보였다.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사극이나 영화 속에서도 음악이 나오는 연회 장면이나 의례행사에 늘상 존재해왔던 그들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달리 보이게된 시각을 갖게 해준 점은 참으로 고맙다. 조선의 궁중 음악 조금은 가까워진걸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되는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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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수밭출판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용이 재미있는 경우도 많고 편집 자체가 마음에 들고 나랑 맞는 내용이 많은 것 같아서 추수밭 책이라면 크게 망설이지 않고 구입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초석이라고 보게된다. 이 책도 추수밭 출판이고 내용도 부담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소재의 신선함이 끌려서 읽게되었다. 조선과 오케스트라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묘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또한 한국사람으로서 외국의 음악보다도 우리나라의 음악을 더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부끄러운 생각도 들어서 이 기회에 국악에 관한 이해를 높여보자는 계산이었다.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조금은 어려운 측면도 있었지만 나같은 일반 독자를 위해서 최대한 쉽게 쓰기위해서 노력한 흔적도 돋보였고 읽는동안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많은 사진자료와 이야기들을 첨가하여서 지루할쯤 되면 넘어갈 수 있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요즘은 연예인이 아이들의 1지망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유교시대에서 글공부만이 출세의 지름길이었고 3D업종으로 취급받던 악공과 악생은 정말 구하기가 힘들 만큼 귀했다고 한다. 대접이 천했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귀했던 것인 것 같다. 오죽하면 장악원에서 악생과 악공은 봉족제도로 운영되었을까! 당시 이들의 월급으로 생활하기에는 최하층의 극빈자의 삶을 감수해야 했다.
4장의 이야기가 있는 악기열전부분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종류의 악기들이 있는데 사실 우리는 정말 유명한 악기를 제외하고는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가늠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문고나 가야금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문 형편에 무엇을 바라겠느냐마는, 그래도 이 편에 실려있는 악기들의 이름은 낯이 익고 가끔 티비에도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알아두면 상식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비파나 해금, 대금과 피리 같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악기부터 생황이라는 다소 생소한 악기까지! 비슷하면서도 다루고 있는 음역대가 다르고 또 생김새나 구멍의 갯수, 줄의 갯수들이 미세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사진을 통해서 보면 좀 더 와닿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소리도 들어보고 싶다.
우리의 음악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분께 추천할만한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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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 속에 사람의 삶이 보인다
국악에 관심을 갖고 대금을 공부하기 시작한지 5년 반이 넘어서고 있다. 대금을 손에 잡기 시작한 것은 책을 통해 알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풍류와 멋을 나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치다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대금을 공부하는 동안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비슷한 정취를 맛보곤 한다. 선조들이 누렸던 음악을 통한 멋과 맛은 시대가 변하며 차츰 달라져왔지만 여전히 그러한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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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각,치,우... 우리나라의 음계로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악학궤범>에 중국음악을 설명하는 글로 사용되었다는 말이 보인다. 한국식 궁상각치우가 따로 있다는 말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음악을 대표하는 말쯤으로 배웠던 것일까? 다시보니 문묘악과 같은 음악은 중국식 궁상각치우로 봐야하지만 향악을 말할 때는 한국식 궁상각치우를 써야 맞다는 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진짜로 머리 아픈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머리가 아프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된다. 우리 음악인데 우리는 왜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물관을 찾아가봐도 악기형태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연주했던 음악인들의 이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일까? 들으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우리음악인데 왜 그토록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일년마다 들을 수 있는 종묘제례악과 성균관의 석전대제에서 들을 수 있다는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이라고? 종묘제례악이 향악계에 속한다는 말은 의외의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조선시대에 궁중의례에서 사용했다는 전통음악을 아악이라고 했으며 거기에 반하는 음악을 향악과 당악이라 했다고 한다. 향악은 말 그대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해져내려오던 음악으로 속악이라고도 한다. 당악 또한 말 그대로 삼국시대에 당나라에서 유입된 음악이다. 외세로부터 들어온 음악과 우리의 토속적인 음악을 구분하기 위하여 향악이라 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향악이란 말은 민속적인 의미를 더 크게 담고 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일반 백성들의 음악쯤이랄까? 당시 3D업종에 속했다는 음악인의 길.. 우리 어릴때도 '딴따라'라는 말로 업신여김을 받았었다는 기억이 난다.
<악학궤범>이 어떻고 <시용향악보>가 어떻다고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른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게다. 종묘제례에 대해 공부할때 軒架와 登歌에 대해 배우면서 아하, 그렇구나 했었던 때가 생각난다. 제례악을 연주하는 장소는 조금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는데 낮은 곳에서 노래와 함께 연주를 하는 악대를 헌가라 하며 높은 곳에서 노래없이 그냥 연주만 하는 악대를 등가라 한다. 헌가에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등가에는 타악기와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를 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 웅장한 음악소리가 귓가에 내내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출간된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아마도 모드라마에 나왔던 '장악원'이라는 관청때문에 관심을 모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다가갈 수 없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좀 더 쉽게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이 더 많아지기를 개인적으로나마 바래보는 것이다. 지금의 국립국악원에 해당한다는 장악원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 음악인들의 일상을 그렸다는 그 책이 궁금해진다.
내용이 총 4장으로 분류되어져 있는데 3장의 새로 쓰는 樂人열전과 4장의 이야기가 있는 樂器열전을 통해 조선의 음악인들과 우리 악기를 알 수 있어 좋았다. 1년 사시사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했다는 장악원 사람들.. 가장 많이 출연했던 행사가 제사 의례였다는 말을 통해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 조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음악조차도 禮와 樂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말이 보여 하는 말이다. 맹사성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밖에도 박연이나 성현, 임흥, 천재적인 기예꾼이었다는 정렴, 악보제작의 달인이었다는 허억봉, 한립, 이연덕, 김용겸... 낯선 이름이 많이 보이지만 귀가 밝았던 왕도 꽤 많았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가야금 소리가 가장 멋지게 들리는 곳은 토담집이다... 흙으로 지은 집에서 가야금 소리를 들으면 소리가 너무 울리지도 않고 먹히지고 않아 온화하면서도 섬세한 소리가 하나하나 살아난다는 말이 잠시 시선을 멈추게 한다. 자연과 어울어져 있을 때 그 악기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살풋 웃음이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겹쳐서. 아무래도 음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형태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자연을 멀리하는 형태속에서 전자음이 탄생하는 걸 보니. 가끔 정말 한번 해볼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해금을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 슬프고도 아련한 소리가 좋아서. 어렸을 적 친정아버지의 퉁소소리가 너무 좋아서 한번 더 불어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던 기억이 난다. 비파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비파가 좀 더 일찍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면 지금의 기타쯤은 충분히 이겨내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제사 거문고와 가야금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
우리가 보통 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외래어인 music을 번역한 것이고, 전통적으로는 '음'과 '악'이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음'이란 음이 일정한 질서로 배열되어서 일정한 곡조를 이룬 것을 말하고, '악'은 干과 戚, 羽와 旄를 들고 추는 춤까지 수반된 것을 의미한다. 역대 왕과 왕비를 제사하는 제사의례에서 연행되는 '악'은 유학적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총체적 의미의 '악', 즉 樂歌舞가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 까닭에 등가악대와 헌가악대, 그리고 춤인 일무를 갖추어 연행하게 된다. (-82쪽)
登歌 : 종묘나 문묘, 사직등의 제례를 거행할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 가운데 堂上, 즉 댓돌 위에 편성되는 악대. 제례뿐만 아니라 가례, 빈례, 군례의 예를 행할 때에도 당상에 편성된 악대는 등가라 했으며, 등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登歌樂 또는 登歌之樂이라 했다. 軒架 : 堂下, 즉 댓돌 아래의 뜰에 편성되는 악대. 헌가가 연주하는 음악은 軒架樂 또는 軒架之樂이라 했다. 헌가는 제후국의 위격에 해당하는 악대의 명칭으로, 고종이 황제국을 선언한 1897년 이후에는 宮架로 바뀌었다. (-33쪽)
雅樂 : 원래는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제사음악을 가리켰지만 조선시대가 되어 아악 선율을 연주하는 제사음악을 모두 아악이라 하였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당악과 향악을 속악이라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용어이다. 현재는 궁중음악을 비롯하여 민간 지식층의 음악을 아울러 아악 혹은 正樂이라 이르기도 한다. 唐樂 :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유입된 당나라의 음악과 송나라의 속악. 원래부터 있었던 향악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오늘날 한국 음악에서 당악이라고 하면 당나라 음악에서 유래된 것은 없고 거의 송나라 詞樂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鄕樂 : 삼국시대 이후 조선조까지 사용되던 음악의 한 갈래로, 당악과 함께 속악으로 분류된다. 순수한 우리 재래 음악과 서역에서 들어온 음악도 포함된다. 삼국시대에 당악이 유입된 뒤 외래의 음악과 토착음악을 구부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 (-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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